14세의 소년, 31운동에 참여하다 평택 안정리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원심창(元心昌, 1906~1971)은 선친을 잃고 편모슬하에서 자랐으나 의협심이 강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진 총명한 소년이었다. 4년제 평택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지내던 원심창은 14세가 되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경험은 그를 민족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했고, 고향을 떠나 민족사학의 명문으로 알려진 서울의 중동학교로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2년에 중동학교를 중퇴하고 진로를 모색하던 원심창은 고향에 내려가 지내다가 그해 연말에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다. 16세의 소년 원심창은 낯선 일본의 수도 동경에서 2년 동안 노동과 공부를 병행하며 대학입학을 준비했다. 일본생활이 채 1년도 되지 않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일원에 일본역사상 최강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일본인 자경단이 무고한 한국인을 6천명이나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진으로 민심이 흉흉한 9월 3일에는 흑우회를 이끌던 아나키스트 박열이 애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천황과 황태자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는 혐의로 검거되었다. 또 그해 말에는 일본의 저명한 아나키스트 오스키 사카에가 살해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나키스트 단체가 후쿠다 대장을 저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원심창은 아나키즘을 주목하게 하였다. 20세가 된 1925년 봄, 원심창은 일본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된 원심창은 당시 세계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과 오스키의 정의를 구하는 마음을 비롯한 아나키즘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절대 권위를 배격하고 서로 도우며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아나키즘은 식민지 청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무렵 그는 박열이 조직한 아나키스트 단체 흑우회에 가입했다. 흑우회의 기관지 이름을 불령선인이라할 정도로 박열은 일제에 노골적으로 저항했다. 박열은 중국에서 활동하던 의열단과 연결하여 여러 차례 폭탄을 반입하려고 시도했을 정도로 일찍부터 무장투쟁에 관심을 가졌다. 그해 9월 원심창은 대학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더 이상 학비를 마련한 길이 없었던 것이다. 1927년 원심창은 옥중에서 결혼한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가 형무소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편 그의 유골을 박열의 고향 경북 문경으로 보냈다. 투옥 중인 박열의 사업을 계승하기 위해 단체명을 불령사로 개편하고 기관지 흑우를 발행했으며, 일본의 아나키스트 단체인 흑색청년연맹에 가입하여 반제국주의 연합전선을 펼쳤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운동에 주력하여 조선자유노동자연합을 결성하고, 일본 최대 노동조직인 동흥노동동맹을 조직했다. 또한 친일단체인 상애회와 맞서며 그들의 진상을 폭로했다. 이 무렵 좌우 합작으로 출범한 신간회를 통해 공산주의를 전파하려는 움직임에도 맞섰다. 1929년 원심창은 몇몇 동지들과 본국의 가뭄피해를 외면하고 운동회 개최에만 열중하는 유학생들의 비민족적 태도에 반성을 촉구하며 신간회 도쿄 지부를 습격하는 학우회 사건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동지 7명과 구속되었다가 1930년 4월 말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당국의 감시가 심해져 활동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원심창은 항일투쟁을 펼치기 위해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했다. 육삼정 거사로 무기징역을 살다 1931년 5월 상해에 도착한 원심창은 아나키스트 조직인 남화연맹에 가입했다. 만주사변으로 일본의 통제가 크게 강화되었지만 중국 내에 항일 기운도 높았다. 그해 10월 상해 프랑스 조계에서 한중일의 아나키스트들이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했다. 11월 중순, 원심창은 프랑스 조계 안에 있던 백정기의 집에서 결성한 흑색공포단에 참여했다. 원심창은 백정기를 비롯한 동지들과 함께 1932년 1월 천진의 일청기선 부두에서 군수물자를 싣고 입항한 기선과 일본영사관, 일본군 부대에 폭탄을 던졌다. 폭탄의 성능이 약해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으나 이런 과감한 행동을 현지 신문은 항일구국연맹의 활약이라며 대서특필했다. 1932년 4월 29일, 중국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은 시라카와 대장이 중국군 19로군을 패퇴시키고 상해를 점령하자 일본 군부는 승전을 축하하며 일왕의 생일인 4월 29일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기념식을 겸한 승전축하식을 열었다. 이 행사장에 한인애국단 소속의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 등 핵심 요인들을 처단했던 것이다. 일본 경찰은 이 사건의 배후 지령자임을 밝힌 백범 김구의 목에 거금 6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윤봉길의거에 고무된 원심창과 백정기를 비롯한 남화연맹 흑색공포단 동지들은 제2의 홍구공원의거를 구상하고 있었다. 이 무렵 통신사에 근무하는 야타베 유지라는 일본인 아나키스트가 원심창에게 접근해왔다. 대단한 친화력을 가진 야타베는 이내 동지들과 친밀해졌다. 1933년 2월초, 오오끼가 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의 육삼정 회합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일본의 군부대신의 지원을 받은 아리요시가 중국 장개석 군대를 거금으로 매수하여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을 무력화시키는 비밀회합을 고급요정 육삼정에서 가진다는 특급정보였다. 원심창은 정화암, 유자명과 함께 야타베를 만나 다시 한 번 정보의 내용을 검토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진실하다는 동지들의 판단에 따라 아리요시 암살 계획을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동지들을 소집했다. 리더인 정화암이 모임의 배경을 설명하자 10명의 동지들 모두가 자기가 맡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결정하지 못하고 다시 모여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제비뽑기에서 백정기와 이강훈이 함께 하기로 결정되었다. 원심창은 야타베를 통해 아리요시의 사진과 자동차 번호를 알아내고 현장 안내를 맡기로 했다. 이날 원심창은 백정기, 이강훈을 비롯한 동지들과 제2의 윤봉길의사가 되어 대한 남아의 기개를 세계만방에 떨치자며 배갈을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정화암은 윤봉길 의거 뒤 백범이 일제의 추적을 피해 가흥으로 피신을 갈 때 주고 간 폭탄 두 개와 중국인 동지로부터 받은 권총 두 자루와 탄환 20발, 수류탄을 세 사람에게 분배했다. 육삼정 회합은 밤 9시부터 11시까지였다. 거사일인 3월 17일 오후 8시, 원심창은 이강훈, 백정기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현장 부근에서 내렸다. 이들은 육삼정에서 2백 미터 쯤 떨어진 중국음식점 송강춘으로 향했다. 거사에 사용할 폭탄은 윤봉길의사가 던진 폭탄과 성능이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서 일본인 동지 야타베를 만나 당일 육삼정의 정세를 파악하기로 약속했으나 야타베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종업원들의 수상한 거동을 보고 함정에 빠진 것을 눈치 챈 백정기가 품안의 폭탄을 빼드는 순간 종업원과 손님으로 위장한 일본 형사들이 덮쳤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이강훈, 원심창도 인력거꾼과 행인으로 변장한 여러 명의 일본 형사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된 3인은 일본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 해 11월 15일 일본 나가사키 지방 재판소는 원심창과 백정기에게 무기징역을, 이강훈에게 15년 형을 구형하였고, 11월 24일 최종 재판에서 재판장은 검사의 구형대로 선고하였다. 거사 직전에 정보가 새어나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국내외의 여러 신문에 크게 실려 일제의 대륙침략 음모가 폭로되었다. 실패한 거사였으나 중국인들을 항일전쟁에 나서도록 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후반생은 통일조국을 위해 1945년 10월 10일, 원심창은 13년 만에 일제의 형무소에서 출소했다. 원심창과 이강훈은 맥아더 사령부를 찾아가 아직도 투옥 중인 박열을 석방시켰다. 원심창은 이강훈, 박열 등 동지들과 함께 옥중에서 순국한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찾아내 이봉창, 윤봉길 두 의사의 유해와 함께 조국에 봉환하여 1946년 7월 6일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모셨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원심창은 재일교포의 단결을 위해 동지들과 민단을 조직하여 사무국장, 단장으로 활동하며 재일동포의 권익 옹호에 힘을 쏟았다. 원심창의 후반생은 남북의 화합과 협력을 바탕으로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는 숭고한 과업에 바쳐졌다. 고문 후유증으로 신음하며 통일운동에 헌신하던 원심창 선생은 1971년 7월 4일 65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한국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투사 원심창 선생의 생애를 살피면서 지금까지 비판 없이 사용되고 있는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스어의 아나르코anarchos에서 나온 아나키즘은 지배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옮기면서 아나키즘을 정부 조직이 없는 혼란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곡해하게 되었다.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도 아나키스트였다. 우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강제적 권력을 배격하는 아나키스트이지,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다. 아나키스트는 타율정부를 배격하지, 자율정부를 배격하는 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원심창 의사가 아나키즘을 선택한 것은 조국의 광복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었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생방송 투데이' 장가현이 다이어트 비법으로 보이차와 줌바댄스를 꼽았다. 19일 방송된 SBS '생방송 투데이'에서는 배우 장가현이 출연했다. 장가현은 "40일 넘기면서 본격적으로 나이살이 찌더라. 처녀적 몸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라며 줌바댄스 시작한 이유를 밝혔다. 줌바댄스는 라틴 음악에 따라 온몸을 움직이는 유산소 운동으로 심장 강화와 칼로시 소모가 많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또 보이차는 지방 분해를 활성화하고 나쁜 콜레스테롤 농도를 감소 시켜 체중 조절에 도움을 주는 갈산은 물론, 수분을 섭취할 수 있다.특히 복부, 허리의 지방을 분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적당량의 운동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단, 보이차에는 카페인 성분이 있어, 하루에 1티스푼 정도의 분말을 2L의 물에 우려 마시는 것이 좋다. 장건 기자
토요일인데 뭐해. 박 계장의 전화였다. 시간 있으면 법원 영장계 가 봐. 뭔가 있다는 귀띔이다. 서둘러 법원으로 갔다. 담당 직원 옆에서 미적댔다. 판사실 올려야 하니까 빨리 보세요. 문제의 영장을 찾아냈다. 무직이라고 적힌 표지를 넘겼다. 가슴 떨리는 단어들이 보였다. 대통령청와대서울시 부시장사기. 반은 눈에, 반은 머리에 담아왔다. 다음날 1면에 큼직하게 썼다. 대통령 친 동서, 사기 혐의 구속. 1998년 YS 동서 사건이다. 몇 번 없는 단독보도였다. 방송, 신문이 불을 뿜었다. 대통령 동서가 사기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청와대를 드나든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현직 서울 부시장 연루 의혹도 있습니다. 감추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박 계장이 어긴 것이다. 검찰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오후에 특수부장실을 들렀다. 항의를 각오했다. 그런데 노상균 부장이 웃는다. 잘 썼어. 미친놈들. 이런 게 감춘다고 감춰지느냐고. 법(法)으로 보자. 딱 떨어지는 위법이다. 피의사실을 무단히 공표했다. 무단 공표의 행위자가 검찰이다. 피의자는 인권을 침해당했다. 세상천지에 다 공개됐다. 당연히 처벌이 따를 일이다. 박 계장은 징계감이었고, 검찰은 배상 책임을 져야 했다. 나도 불법 유출된 피의 사실을 썼다. 수많은 기자들은 그 기사를 받아썼다. 나도, 그 기자들도 모조리 불법 행위자다. 하지만, 넘어갔다. 부장검사는 되레 잘했어라며 웃었다. 현실(現實)로 보자. 피의자는 대통령 동서다. 드나든 곳은 청와대다. 서울시 부시장과도 어울렸다. 이 모든 게 사기의 수단이었다. 대통령 청와대 서울 부시장. 범인(凡人)의 눈엔 모든 게 권력의 단어다.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따져 물어야 할 범죄다. 이런 사건을 두고 누가 슬그머니 넘어가자 하겠나. 청와대와 서울시, 가족들이라면 몰라도. 공개한 검찰의 잘못이 아니다. 공개하지 말라고 한 권력의 잘못이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에 대한 오해가 있다. 하나는 잘 지켜져 왔다는 믿음이다. 많은 경우 지켜지지 않는다. 관심을 끄는 사건일수록 더 그렇다. 노무현정부 많은 사건, 이명박ㆍ박근혜정부 많은 사건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또 다른 오해는 피의사실 비공개가 곧 선(善)이다란 믿음이다. 굵직한 사건일수록 숨기고 싶어 한다. 부패한 권력은 더욱 그런다. 이걸 덮어줘야 하나. 그들에겐 선일 게 맞다. 하지만, 국민에까지 선일까. 흉악범 얼굴 공개도 원래는 금지였다. 그러다 2010년부터 바뀌었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계기였다.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내 아들은 어떻게 하라고란 강호순 주장에 공분이 일었다. 오원춘부터 고유정이 그래서 다 공개됐다. 알 권리에 대한 국민 요구가 바꿔 온 흐름이다.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민심도 똑같다.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그러면 알도록 해야 한다. 정답은 없겠지만, 이것이 지금 형법이 가는 방향이다. 다들 조국 장관을 개혁 장관이라 한다. 논란 속에 취임했다. 그를 택한 대통령의 워딩도 검찰 개혁 적임자였다. 취임 이후 행보도 그렇게 간다. 고(故) 김홍영 검사 묘를 찾았다. 검찰 개혁단 구성을 마쳤다. 조만간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게 있다. 검찰 공보준칙 개정안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막는 개정이다. 피의자 사진 촬영을 막는 개정이다. 왜 하필 이런 게 개혁 장관의 1호 작품일까. 전임 장관이 시작한 작업이라 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때였을 거다. 말 안 듣는 동부 지검 때문에 고민한 듯하다. 엄밀히 조국 표(標)는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완성자가 조 장관이다. 시행을 결재한 서명자도 조 장관이다. 시행을 얼마간 미뤘다지만, 달라질 건 없다. 개혁 장관 조국의 첫 번째 개혁은 공보준칙 개정이 됐다. 높은 사람 소환할 때 사진 못 찍게 하고, 수사내용 공개한 검사를 엄벌하는 개혁 말이다. 뭐가 급하다고 이런 것부터 내놓나. 여론에 밀려날 걸 뭐하러 시작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조화롭지 않은 두 단어-개혁 장관과 공보준칙 강화-다. 1998년, 박 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정보 따서 해보려는데, 위에서 덮으라니까. 그런 게 검찰이다. 안 하는 수사는 없다. 못하는 수사가 있을 뿐이다. 개혁으로 뚫어줘야 할 구멍도 이런 거다. 못하는 사건 없애주고, 못하게 하는 권력 막아주는 거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투명성 확보다. 국민 앞에 더 당당한 수사 과정 공개다. 그런데 개혁장관의 1호 개혁은 이런 기대와 거리가 한참 먼 틀어 잠그기였다. 主筆
후배가 연주하는 어느 작은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카운터 테너가 넬라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아름답고 맛깔스럽게 하는 연주를 들은 기억이 있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 대학생 때 봤던 영화가 생각난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미션(The Mission) 이 영화에서 신부가 원주민들에게 다가가 강가에 앉아서 오보에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들리는 음악이 안니오 모리코네 작곡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훗날 이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곡이 넬라판타지아이다. 슬픔에 잠긴 듯 청아한 소리를 내는 악기인 오보에 연주로 원주민의 경계심을 푸는 것으로 설정한 것 같다. 이 설정은 이 영화에 기막힌 오보에의 선율을 탄생시키게 됐고 또한 이 음악 때문에 영화는 유명해졌으며 전 세계 오보에 주자들은 서로 경쟁하듯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연주하게 된다. 필자가 영화를 통해 장황하게 오보에라는 악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오케스트라 안에 숨겨진 배려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회를 가보면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악장이 먼저 나와 기준 음(A)을 어떤 악기에게 불어달라고 지시하고 그 악기가 부는 음에 맞추어 목관ㆍ금관 악기 그리고 현악기 차례로 튜닝을 한다. 이때 기준 음을 불어주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다. 오보에가 여러 가지 악기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서 기준 음을 부는 이유는 이 악기의 음정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오보에는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악기다. 왜 오케스트라의 많은 악기가 음정이 쉽게 변하고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악기에 음정을 맞춰 조율하는 것일까? 이유는 배려이다.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악기에게 조절 폭이 넓은 악기가 음정을 맞추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려 때문에 음정 조절 폭이 좁은 오보에 주자가 혜택을 받았다. 그렇다면,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어느 악기에 맞출까? 이 역시 오보에가 아닌 조율이 힘든 피아노의 기준 음에 온 오케스트라 악기들이 음을 맞춘다. 이것이 오케스트라 연주장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이유 있는 배려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있으면 현악기, 목관 악기, 금관 악기, 타악기가 함께 어우러져 질서와 조화를 이루며 엮어나가는 음의 스토리가 삶의 축소판과도 같다. 서로 조화와 대비를 이루며 상대 악기를 위해 한쪽 귀를 열어놓고 지휘자와 악보를 번갈아가며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또 하나의 배려를 통한 따뜻한 세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둥지가 됐으면 좋겠다. 약자를 배려해주고 배려받은 사람들이 노력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 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조요한오산문화재단 상임이사
최근 화재 발생 건수는 감소 추세이나 사상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실정이다. 화재 시 대피를 최우선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전국 소방서에서는 불나면 대피 먼저 홍보 캠페인을 추진 중이다. 영국, 미국 등 외국에서는 화재 발생 시 소화 요령보다는 비상대피를 우선하여 교육하고, 평상시 대피계획 수립 및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례로 종로 국일 고시원 화재(2018년 11월9일)로 세입자가 화재 사실을 전파하지 않고, 10분 넘게 혼자 불을 끄려다 실패하여 사망자가 7명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서울 은명 초교 화재(2019년 6월26일) 때는 방과 후 수업 중 학교 내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교사들이 116명의 학생들을 신속하게 대피시켜 0명의 사상자가 있던 사례가 있다. 과거와 달리, 화재 발생 시 소방시설, 스마트폰 등으로 화재신고는 많은 편이며, 119신고로 인해 오히려 대피가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최근 건축물을 보면 가연성 건축자재의 사용 증가로 화재 시 치명적인 유독가스가 다량 발생하고, 급격한 연소 확대로 대피 가능한 시간이 과거에 비해 짧아지고 있다. 이와 같이 화재 발생 시 대피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문화를 조성하여 화재 등 유사시 다수 인명피해를 저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방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화재 시 행동요령으로는 1위 119신고, 2위 소화기로 불 끄기라고 한다. 앞으로는 화재 발생 시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행동요령을 숙지하여 불나면 대피 먼저가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최병갑 가평소방서 재난예방과장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높은 학업성취도는 양질의 노동력확보를 위해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며 국가 생산력, 조세수입, 사회 범죄 등 다양한 국가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청소년의 학업 중단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그렇다면 학업 중단 청소년은 왜 발생하며 청소년의 학업 중단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또 학업 중단의 원인은 무엇일까? 학업 중단 청소년이 정규학교 학업을 중단하는 원인은 학업부적응 문제로 인한 학업성취능력과 동기의 부족, 미래 진로에 대한 불안 등의 개인적 원인과 가정의 사회ㆍ경제적 지위, 부모의 실직, 경제적 지원 부족 등의 가족 원인, 학교에서의 소외, 학업중단 청소년과의 접촉, 건전하지 못한 이성 관계 등의 교우관계 문제 등으로 매우 복합적이며, 다양한 문제들의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학업 중단 청소년에 대한 지원방안과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각자의 노력 외에도 그들을 둘러싼 학교, 가족의 관심과 노력이 요구됨을 알아야 한다. 학업 중단 청소년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학업 중단 청소년 관련 지원제도를 마련해 놓았다. 국내에서 행해지고 있는 학업 중단 청소년을 위한 지원제도 중 학업 중단 청소년 자립 및 학원지원 사업 두드림ㆍ해밀은 대표적인 지원제도로 학업 중단 청소년의 지속적인 사례 관리를 통한 중도탈락 방지 및 학업 복귀 지원과 사회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의 심리ㆍ사회적 특성과 욕구에 부합한 프로그램 제공을 통해 성공적인 사회진출을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안타깝게도 국내 대부분의 청소년 관련 지원 제도는 학업 중단 청소년에 대한 개입에 있어서 체계적인 예방 차원의 접근보다는 학업 중단 시점과 그 이후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국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학업 중단 이후의 청소년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예방을 위한 사전개입 프로그램을 주로 시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이같이 상담사의 도움, 가족의 긍정적 지지 등 다양한 지원체계를 통해 고위험군 학생의 개별 특성에 맞는 학업 중단 예방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성남 수내고 2 하이담
지난 3월, 중국인 과학자 허 젠쿠이(He Jiankui) 교수는 임신촉진 치료를 받던 일곱 커플의 배아에 대해 유전자 편집을 시도했으며, 이 중 한 커플이 출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대부분의 국가는 과학 윤리 차원에서 아기에게 유전자 편집시술을 하는 것은 물론 관계된 실험을 하는 것조차 엄격하게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규제 이유는 아기의 유전자 편집을 허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밝혔다. 의료계, 생명과학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태어난 아기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의견에 동조하는 크리스퍼 기술의 손을 들어주는 궤변론자들은 유전자 편집기술 관련 연구 방향이 실제 질병 치료나 생물설계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유전병이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크리스퍼 기술 개발이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식량난으로 인한 세계 각국의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GMO 식품, 즉 유전자 조작 식품은 식품의 생산량을 증대해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면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기술을 상용화 함에 있어 논란이 되는 부분은 안전성 문제다. 이는 기술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활용할 때 원하는 부위의 유전자를 정확하게 제거할 수 있는지 알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이번 유전자 가위기술을 통한 배아 출산처럼 이렇게 유전자 가위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사람의 한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이 무시된다는 점이다. 생명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실험 및 기술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크리스퍼 기술, 즉 유전자 가위 기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안정성 측면에서 아직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양날의 검과 같은 특성을 지닌 유전자 가위기술을 현대 사회 속에서 적절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광주 경화여고 2 윤다솜
얼마 전, 신문에서 전기와 수도가 차단된 집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해 굶어 죽은 엄마와 아이 시신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다양하고 세분화돼 있으며 종류도 너무 많아 일반인들은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다. 다양하고 세분화돼 있는 많은 복지 정책들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졌다면 위와 같은 사건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일들이 우리가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시행되고 있는 대부분의 복지정책은 소득수준이나 재산과는 관계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보편적 복지정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만7세 미만에게 주어지는 아동수당, 초중학교에서 시행되는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고등학교 3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시행되는 고등학교 무상교육 등 열거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많아지는 보편적 복지정책들이 꼭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보편적 복지정책을 무분별하게 쏟아낼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저소득계층이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선별적 복지정책을 더 많이 늘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회단체 또는 가까이에서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주변의 이웃들이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도 우리가 살피지 못하는 사각지대에서는 배고픔에 죽어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으로 국가의 복지정책을 효율적으로 시행했으면 좋겠다. 또한 무분별한 복지정책의 확대는 후대의 과세부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복지정책의 확대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퇴직한 어르신들이 무료함에 경로당이나 길거리를 배회하게 할 것이 아니라 워킹맘들과 연계하는 정책을 시행해 원하는 어르신들에게 시간제 육아도우미 일자리를 주선한다면 고령화 사회의 노후복지와 육아문제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화성 능동고 3 이지현
수원 고색고등학교(교장 정종욱)는 지난 8월 30일~31일 1박2일 부모동행 꿈길 여행을 다녀왔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에는 학생과 학부모 40명이 함께 했다. 부모동행 꿈길 여행은 1학년 학생들이 입학 후 고등학교 생활을 되돌아 보고, 미래를 향한 고교 3년간의 진로 로드맵을 작성, 부모님들을 모시고 발표함으로써 가족간의 대화와 소통을 바탕으로 학교 생활을 성실하게 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고색고의 진로 인성 함양 프로그램이다. 고색고는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학생들의 진로 탐색ㆍ설계 역량 강화를 위해 진로비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입학 전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스쿨멘토링 등의 표준화 검사 및 해석강연, 활기찬 학교생활을 위한 자존감회복 진로캠프, 1박 2일 집중 진로 역량 강화 캠프 등을 진행했다. 이 같은 집중적인 진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맞는 교육과정을 선택하는 기반이 조성됐다. 이번 부모동행 꿈길 여행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함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해가는 기회를 가졌다. 부모동행 꿈길 여행의 첫째 날에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연계해 작성한 3년간의 학업 계획을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해 자신의 진로 목표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임을 확인했다. 이어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함으로써 부모님들의 격려와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기회를 갖고, 진로 전문 강의를 통해 현재 입시 제도와 선배들의 입시 스토리를 바탕으로 고색고에서의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에는 부모와 학생들이 강릉 경포해변의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학업으로 인해 부모님과 소원해졌던 관계를 소중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주고 받음으로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하고, 대관령 삼양목장 정상을 손을 맞잡고 올라가면서 부모님의 사랑과 지지를 듬뿍 받았다. 1학년 임지훈 학생은 평소 부모님들과 대화를 할 시간이 부족한 친구들이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을 들었고, 내가 세운 진로 계획으로 더 충실한 고교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 고색고 교사 최병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