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농수산물도매시장의 일부 중도매인들이 외국에서 수입한 농산물을 등록하지 않지 않은 채 무단으로 반입, 사법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본보 5월14일자 6면)이 일고 있는 가운데 시가 행정처분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16일 안산시농수산물도매시장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안산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중도매업으로 허가를 받은 A 청과 등 16개 중도매업체에서 상장(거래할 품목을 등록하는 절차)하지 않은 농수산물을 거래하려다 적발됐다. 이에 따라 관리사무소 측은 지난 10일 단속에 적발된 업체들이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을 위반함에 따라 관련 규정에 의거 행정처분 명령을 앞두고 사전통지서를 전달했다. 이어 오는 31일까지 상장되지 않은 외국산 바나나를 판매하다 적발된 것과 관련 처분에 의견이 있을 경우 의견서를 제출해 줄 것을 전달했으며, 제출이 없을 시에는 행정처분에 이의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현행법상 도매시장에서 도매법인이 실시하는 도매는 출하자(생산자)로부터 위탁받아 실시하고 중도매인은 도매시장 법인이 상장한 농수산물 이외의 농수산물은 거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도매시장 관계자는 적발된 업체에 대해 행정처분을 진행하고 있으며 재발방지를 위해 지난달에도 관련 내용에 대해 중도매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며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산=구재원ㆍ채태병기자
1919년 삼일 만세운동을 돌아보면, 다소 의아한 점이 있다. 이 운동을 통해서 되찾으려는 나라가 왕국이나 제국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선이 1897년 10월에 대한제국으로 바뀌었다가 망하게 된 때가 1910년 8월 29일이었으니, 3ㆍ1운동이 일어나기 불과 10년 전에는 왕국 내지 제국의 신민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 왕국을 말하지 않고 민국을 말하게 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재조명되고 있다. 임시정부를 몇몇 망명자 집단으로 폄하하는 견해가 일부 있다. 그러나 임시정부를 추동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낡은 시대를 흘려보내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기원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중대한 의미를 띤다. 그 선각자들 가운데 주요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조소앙(趙素昻, 1887~1958)이었다. 조소앙의 출생지는 교하군(현 파주시 월농면)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본가와 그를 기리는 기념관은 양주시 남면 양연로(황방리)에 있다. 두 지역은 30km 정도 떨어져 있다. 행정구획의 변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출생지와 성장지가 약간 달랐다고 볼 수 있다. 조소앙은 조정규(趙禎奎)와 박필양(朴必陽)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용은(鏞殷)이고, 자는 경중(敬仲)이다. 소앙(素昻)은 그의 호이다. 어려서 통정대부인 할아버지 조성룡(趙成龍)으로부터 한문을 수학하고, 1902년에 성균관에 입학했으니, 전통적인 한학을 학문적 배경으로 성장한 셈이다. 그의 문장엔 동양 고전에 대한 지식이 배어 있다. 그러나 조소앙은 맏형 조용하(趙鏞夏)의 영향으로 서양의 최신 지식을 접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리고 1904년에 황실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에 건너가 도쿄부립제일중학교, 세이소쿠영어학교, 메이지(明治)대학 법학부 등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다. 그의 일본 유학생활 8년은 그의 일기 동유약초(東遊略抄)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성균관 시절부터 일본의 침탈 행위를 규탄했다. 일본 유학시절에도 유학생들의 조직 활동에 적극 가담하여 일본의 잘못을 성토하는 문필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일본 당국에 의해 요시찰인물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1912년 3월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일시 교편을 잡았으나, 이미 마음먹었던 중국 망명을 결행했다. 그의 사상적 지평은 넓었다. 전통 유학에 머물지 않고, 세계의 종교에 관심을 가졌다. 1915년에 발표한 육성교(六聖敎)는 단군,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마호메트 등 여섯 성현의 가르침을 일체화한 것이다. 이는 종교의 통합을 통해 국내외 동포의 대동단결을 기하고 민족간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취지였다. 1917년 7월 상해에서 신규식ㆍ박은식ㆍ신채호 등 14명의 명의로 대동단결의 선언을 발표했다. 독립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할 최고기관과 헌법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경술국치일이 황제권의 소멸일이며, 민권의 발생일이라는 주장이다. 즉 한인의 주권이란 한인 아닌 자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이기에 주권 양여는 근본적 무효이며,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로 오히려 주권이 한국 인민 전체에 귀속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건설할 국가의 정체와 독립운동을 주도할 임시정부의 법적논리적 근거를 세운 셈이 됐다. 1919년 2월의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는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 국제정세의 변동을 포착하여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민족독립운동자 39명의 명의로 발표했는데 그 기초 책임을 조소앙이 맡았다. 이 선언은 일본 유학생이 발표한 28독립선언서와 국내의 33인이 발표한 독립선언서보다 시기적으로 선구를 이루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혈전이라는 무장투쟁노선을 견지한 것이다. 이는 대동단결의 선언의 독립운동론을 이은 것이었다. 31운동을 전후로 한 독립운동의 흐름은 4월 상해에서의 임시정부 수립으로 귀결됐다. 10일 늦게 모여 밤샘 토론 끝에 11일에 대한민국 국호와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결정됐는데, 여기에는 조소앙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이후 독립운동과 헌법정신의 근간이 됐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은 지금의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규정으로 이어져 왔다. 제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이를 통치함이고, 제10조는 임시정부는 국토 회복 후 만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함이다. 권력분립과 의회주의를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제3조에서는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이라고 하여 신분제적 질서를 부정하고 평등의 원칙을 선언한 것이다. 제4조에서 기본권 내지 자유권, 제5조에서 참정권, 제6조에서 국민의 교육납세병역 의무, 그리고 제7조에서 국제평화주의 원칙을 정하고 있다. 제9조의 생명형, 신체형 및 공창제(公娼制)를 전부 폐지한다는 조항도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는 의미가 있었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가 큰 활동에 조소앙이 법학 전공자로서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조소앙은 외교활동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유럽을 순방하면서 한국 독립의 지지를 호소했는데, 특히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서 지지를 얻었다. 즉 만국사회당대회에서 한국독립을 승인하는 외교적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유럽 순방을 통해 조소앙은 소련 공산당을 비롯한 유럽의 다양한 정치 이론과 현실을 견문할 수 있었다. 1920년대 후반에 노력을 기울인 민족유일당운동이 더 이상 진전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1930년 1월 조소앙은 안창호, 이동녕, 김구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뒷받침하는 정당으로 한국독립당을 결성했다. 이때 당의 이론화 작업을 조소앙이 맡아 바로 삼균주의를 선보였다. 1931년 1월에 쓴 한국독립당의 근황[近像]이란 글을 통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조소앙은 한국독립당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한 생활을 주의로 삼는다고 말했다. 사람과 사람의 균등을 도모하기 위해, 정치 균등화, 경제 균등화, 교육 균등화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 균등화 방안으로는 보통 선거제를, 경제 균등화 방안으로 국유제를, 교육 균등화 방안으로 국비 의무 학제를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민족과 민족의 균등을 위해 민족자결주의를, 국가와 국가의 균등을 위해 식민주의의 배격과 침략 전쟁 금지를 주장했다. 조소앙은 또한 건립할 국가의 형태와 정치 체제로 바로 민주 입헌공화국을 제시했다. 흥미로운 점은 독립당과 공산당의 차이점을 제시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파괴하는 시기에는 독립당은 민족투쟁을 도구로 삼고, 공산당은 계급투쟁을 도구로 삼는다. 그리하여 전자는 국내의 모든 반일 민중과 국외의 피압박 민족과 연합하여 일본을 타도하는 것을 도모하고, 후자는 국내의 무산계급과 세계의 무산계급이 모든 자본주의 국가를 타도할 것을 도모한다. 건국하는 시기에는 독립당은 자체 주권을 옹호하여 어떠한 외세의 간섭과 대행 통치도 승인하지 않고, 공산당은 동일한 주의를 가진 대국에 자국을 편입하는 것을 수단으로 삼아 더 이상 자국의 주권을 인식하지 못한다. 또 공산당은 노동자와 농민 계급을 간판으로 내걸고 독단으로 정치를 행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1939년 독립운동방략을 발표했는데, 한국독립당, 임시정부, 광복군이 삼위일체가 되어 독립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기초했는데, 삼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대일선전성명서(對日宣戰聲明畵)가 주석 김구와 나란히 외무부장 조소앙의 명의로 발표됐다. 조소앙은 1945년 일본이 패퇴하여 귀국했는데, 임시정부는 미군정에 의해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김구와 함께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다. 총선거에도 불참하고 남북 협상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는 태도를 바꿔 참여했는데, 서울 성북구에 출마하여 전국 최고 득표로 당선됐다. 그러나 곧 625전쟁이 발발하여 납북되고 말았다. 그는 북한에서 1958년 9월 세상을 떴다. 전통은 힘을 잃고 새것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는 그러한 전환기에 새로운 나라를 이끌 생각들을 정리하여 제시했다. 외교활동과 무장투쟁활동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찾아 끝까지 독립운동에 종사했다. 28 독립선언서를 집필한 이광수, 31 독립선언서를 집필한 최남선이 훗날 변절한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삶의 무게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조소앙은 독립운동의 방향을 정하고 대한민국 탄생을 기초한 사상가였으며, 불굴의 독립운동가였다. 김태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생생정보'에서 소개된 누룽지 통닭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16일 방송된 KBS 2TV '생생정보'에서는 '7전 8기 부자의 탄생' 코너를 통해 누룽지 통닭이 소개됐다. '생생정보'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누룽지 통닭은 서울 강서구에 소재한 식당에서 판매 중이다. 더 자세한 위치는 '생생정보'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리얼가왕' 코너를 통해 물냉면과 손칼국수, 한우국밥 등이 소개돼 시청자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장건 기자
'생방송 투데이'에서 소개된 대왕 타르트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16일 방송되는 SBS '생방송 투데이'에서는 '골목빵집' 코너를 통해 대왕 타르트가 소개됐다. '생방송 투데이'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왕 타르트는 경기도 평택시에 소재한 제과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더 자세한 위치는 '생방송 투데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는 드라이 카레와 마라 요리가 소개돼 시청자들의 입맛을 자극했다. 장건 기자
'생방송 투데이'에서 소개된 마라룽샤와 드라이카레가 화제다. 16일 방송되는 SBS '생방송 투데이'에서는 '맛의 승부사' 코너를 통해 드라이 카레가 소개됐다. '생방송 투데이'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라룽샤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다. 드라이 카레는 서울 마포구에 소재한 식당에서 판매 중이다. 더 자세한 위치는 '생방송 투데이'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건 기자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에서는 마을에 울려퍼지는 미스터리 굉음, 시각장애 1급 피아니스트 소년, 28년 만에 극적 상봉하게 된 모자 이야기가 소개된다. 16일 방송되는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이하 '순간포착')에서는 흥미진진한 사연들을 다룬다. # 마을에 울려 퍼지는 의문의 굉음 온갖 추측을 난무하게 만드는 의문의 소리가 벌써 네 달째 계속되고 있다는 제보에 현장을 찾은 제작진, 제보자가 들려준 녹음 파일 속에는 그 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귓전을 때리는 굉음이 하루에 많게는 수십 번씩 2-3초간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고 하는데, 이 소리 때문에 제보자는 잠 설치기 일쑤요, 급기야 제보자의 아들은 따로 원룸을 구해서 나가 사는 상황이다. 이웃 주민들도 이 소리 때문에 괴롭긴 마찬가지다. 제보자는 수 일째 보일러실, 물탱크, 옆 빌라 정화조 등 소리가 날만 한 곳은 전부 뒤져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실험참가자들이 동원됐다. 그 날도 어김없이 소리가 울리자 참가자들이 일제히 가리킨 방향이 있었다. 드디어 밝혀지는 충격적인 진실, 불규칙한 간격으로 새벽을 뒤흔드는 굉음의 정체를 '순간포착'에서 확인해본다. # 10살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특별한 피아니스트를 만나러간 서울의 한 음악 연습실. 부드러운 선율로 청중을 매료시키고 있는 주인공은 시각장애 1급으로 앞을 보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보고 연주한다는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건호(10세) 군이다. 차이콥스키, 바흐, 쇼팽 등 수준급의 곡들을 오직 듣고 외워서 연주한다는 건호 군은 절대음감의 소유자다. 또한 곡을 이해하는 능력도 탁월해서 음 하나하나에 실린 감성까지 완벽히 재현한다. 더욱 놀라운 건 즉석 변주에 작곡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놀라운 피아노 실력,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생후 3개월에 선천성 망막 이상인 흑암시증(LCA) 진단을 받고 집에서만 지냈던 건호 군은 5살이 되던 해 유치원에 가게 됐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배운 적도 없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는 건호 군은 이후 일취월장하여 약 3년 전부터는 비장애인과 겨루는 콩쿠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 큰 행복을 느낀다는 건호군의 마음으로 통하는 감동적인 선율을 '순간포착'에서 만나본다. # 28년 만에 상봉한 모자 파출소에서 날아든 기막힌 제보. 28년 만에 기적적으로 만나게 된 모자가 있다는데, 무단횡단을 하던 여성을 발견하고 신원을 조회하자 실종 상태로 나왔고, 곧바로 아들에게 연락을 취해 파출소에서 감격스러운 두 사람의 재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연의 주인공 어머니 방숙진 씨와 아들 유순식 씨를 만나본다. 28년 전,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가정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갔다는 어머니를 찾기위해 아들 순식 씨는 사방팔방으로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여 년이 넘도록 은행 기록은커녕 병원 기록조차 없는 어머니가 살아 계실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는 순식 씨. 그토록 사무치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와의 극적 만남이 이뤄졌지만, 28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정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변해버린 낯선 모습만이 남아있었는데, 눈물겨운 상봉 뒤 숨겨진 사연은 무엇일지 순간포착에서 만나본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일이'는 오늘(16일) 오후 8시 55분 방송된다. 장건 기자
3,500원짜리 물냉면과 2,500원짜리 손칼국수가 '생생정보'에서 소개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16일 방송된 KBS 2TV '생생정보'에서는 '리얼가왕' 코너를 통하 3,500원짜리 물냉면과 2,500짜리 손칼국수가 소개됐다. '생생정보'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물냉면과 손칼국수는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위치는 '생생정보'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건 기자
경기도교육청은 5월 10일 의정부 몽실학교 모떠꿈방에서 제9기 경기도학생참여위원회 총회를 개최했다. 경기도학생참여위원회는 학생인권정책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수렴과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학생참여위원회의 위원은 총 87명으로 공개모집으로 선발한 학생 78명과 다문화장애특성화학생선수 등 소수 의견 반영을 위해 위촉된 9명의 위촉위원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2019년 5월부터 2020년 4월말까지 1년 동안 세 권역으로 나눠 활동한다. 이번 총회는 위촉장 수여, 특강, 운영위원 선출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운영위원 위원장은 김민석(평택고 2학년), 부위원장은 박주현(이천고 1학년), 김승수(평택중 3학년), 김민정(내정중 2학년), 이세은(율정초 6학년) 등이 선출됐다. 선출된 운영위원은 인권전문가, 학생인권옹호관 등이 참여하는 학생인권정책 심의기구로서 역할하는 경기도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미디어경청종합
5월 8일 수요일, 안양여고 학생들은 창체 시간을 이용해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기념, 부모님과 선생님께 직접 감사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행사는 안양여고의 동아리 또래상담부와 학생회가 서로 협력해 진행한 행사로, 또래상담부와 학생회 소속 학생들은 행사 전에 학생들이 편지를 쓸 수 있도록 회의를 하는 등 행사를 준비했다. 편지지 역시 더 세련된 디자인으로 보급됐는데, 이로 인해 학생들은 편지를 쓰는 것에 더욱더 열중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쓴 편지들은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와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로 나뉘어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는 학생들이 직접,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는 또래상담부가 모아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달됐다. 이번 행사로 인해 학생들은 부모님께 또는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내면의 성장 역시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고유정기자(안양 안양여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