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가 경강선, 제2영동고속도로, 성남~장호원간 자동차전용도로(일부) 등의 개통으로 사통발달의 교통 요충지로 떠오르며 지역발전이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지난 9월 24일 성남에서 광주를 거쳐 여주까지 잊는 경강선 개통은 광주시 교통 인프라 발전에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 광주지역 4개 역사에서 하루 평균 2만~2만 2천명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경강선은 분당, 서울을 빠르고 편리하게 오갈 수 있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아울러 지난 11일에는 원주로 연결되는 제2영동고속도로와 성남~장호원간 자동차 전용도로 초월읍 구간 2.8km가 추가 개통됐다.이번 개통으로 영동권과의 교류가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1개 차로만 개통됐던 성남~장호원간 자동차 전용도로 백마터널의 3차로가 전면 개통됨에 따라 교통정체를 겪고 있는 국도 3호선과 쌍동IC의 극심한 정체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조억동 광주시장은 “성남 ~장호원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내년 말 완전히 개통되는 등 광역 교통망에 발맞춘 대중교통의 합리적 노선개편, 관내 전역을 아우르는 지역도로망 구축, 역세권 개발 사업 등 체계적인 도시개발사업으로 광주시가 수도권 교통 중심 요충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발견된 목에 튀어 나온 혹 이것이 무엇이지 하면서도 통증이 없어 검사를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에 있는 갑상선에서 생긴 혹을 갑상선 결절이라고 합니다. 목에 만져지는 혹이 딱딱하고 잘 움직이지 않으면 꼭 검사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목소리가 쉰다거나 이물감이 느껴지고 기침이 잦게 나온다면 증상이 더욱 심해지기 전에 상담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갑상선 결절은 크게 양성결절과 암으로 구분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갑상선 초음파를 시행하게 됩니다. 초음파 검사에서 혹의 모양을 판단하고, 좀 더 정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을 때는 미세세침흡입검사를 시행하게 됩니다. 갑상선암으로 진단되었을 경우 갑상선전문의와 상담을 통해서 치료방침을 정하셔야 합니다. 환자의 나이, 암의 위치, 크기, 암의 종류에 따라서 치료방침이 달라지게 됩니다. 양성 혹일 경우는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 증상이 없고, 몸에 영향을 주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부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면 주위 조직에 압박할 수 있고 외형적으로 튀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럴 경우에는 해결을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갑상선 양성 혹의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고주파 치료가 있는데 갑상선 혹의 크기와 상태와 따라서 치료 방침을 정하게 됩니다. 갑상선고주파 치료는 바늘 끝을 혹 안에 넣고 고주파를 흘려 보내서 혹을 파괴시키는 방법입니다. 국소 마취로 시술하고 시간은 20분 정도 걸립니다. 갑상선 혹은 혹의 모양, 위치, 성격에 따라서 치료법이 다르게 됩니다. 혹이 괜찮은 양성 혹인지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를 알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갑상선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보시길 바랍니다. 엄태익 수원 하이유외과 원장
안산 세월호 정부 합동분향소에 걸린 현수막 20여 개가 한꺼번에 훼손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3일 안산단원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께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정부합동분향소 주변에 걸렸던 현수막 61개 가운데 25개가 군데군데 찢긴 채 발견됐다.경찰은 지난 12일 밤 10시께까지 현수막이 온전했던 점으로 미뤄, 누군가 간밤에 흉기를 사용해 훼손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훼손된 현수막에는 세월호 진상 규명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나머지 훼손되지 않은 현수막들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경찰은 “이전에도 현수막이 훼손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많은 양이 훼손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변 CCTV 분석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붙잡아 재물손괴 혐의로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을 아는가.놀랍게도 수원고읍성은 사도세자와 정조가 잠들어 있는 화산 융건릉 주변이다. 사실 ‘수원고읍성’이란 용어는 최근에 생겨난 것이다. 수원읍성이란 이름 사이에 ‘고(古)’라는 글자를 덧붙인 것은 현재 통용되는 행정구역상의 명칭과 구분하기 위함이다.“화성시에 화성이 없고 수원시에 수원이 없다”는 말에서 짐작하겠지만, 1949년 8월 행정구역 명칭을 제정할 때 당시 담당자들이 수원이 돼야 할 곳을 화성이라 하고 화성이라 불러야 할 곳을 수원이라 이름 붙이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을 저질렀다.조금만 깊이 생각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것이 혼란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이 터무니없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형편이다.수원고읍성의 흔적은 희미하지만 그 역사는 오래됐다. 수원이라는 고을 이름을 갖게 된 것은 1271년(고려 원종12년)이다.1789년 정조가 팔달산 자락으로 수원읍치를 옮기기 전인 220년 전만해도 융릉과 건릉이 자리한 화산이 수원고읍성의 중심이었다.수원에 관한 최초의 종합보고서라 할 세종실록지리지 ‘수원도호부’를 보면 “본래 수원은 고구려의 매홀군인데 △신라가 수성군으로 고쳤으며 △고려 태조가 수주(水州)로 승격시켰으며 △태종 13년 계사(1413)에 수원도호부가 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일찍부터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한강유역을 백제가 가장 먼저 차지했던 역사를 미루어보면 수원은 백제의 영토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수원읍성의 축성된 시기도 백제 초기(온조왕 11년 7월)에 독산책(독산성)을 설치했던 무렵으로 짐작된다. 지리지에서 주목할 것은 “읍토성(邑土城) 둘레가 270보요, 안에 우물 두 개가 있다”라는 기록이다. 읍성의 규모치고는 너무나 작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지지 모두 “읍성은 토축이며 둘레가 4천035척이나 지금은 모두 무너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지리지의 기록이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판각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글자를 하나 빠트렸을 가능성이 크다. 수원고읍성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주변 지리를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꼽을 점은 수원고읍성이 독산성과 서로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원이 중국과 직접 문물을 교류할 수 있는 길목에 위치하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수원고읍성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을 것이다.따라서 독산성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수기리성, 요리성, 당성을 연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수원은 고려시대에 4개 역(驛)이 설치되었을 정도로 교통의 요지였으며, 염불산 해운산 흥천산으로 연결되는 봉수, 즉 통신망도 갖추고 있었던 곳이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는 수원이 전략상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수원은 강무하고 매사냥을 하기 좋은 장소였다. 예컨대 세종이 왕세자와 종친을 거느리고 수원에서 강무(講武)를 벌였던 것을 비롯해 매사냥을 했던 사실도 여러 차례 실려 있다. 책만 보았던 학자 세종이 아니라 수원 들판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말을 달리며 멧돼지를 사냥했던 문무겸전의 세종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수원이 조선의 역사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은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이다. 선조실록을 보면 1593년 겨울, 왕세자(광해군)가 저녁에 수원부에서 머물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수원을 거론할 때면 “수원은 경기의 큰 고을로 양호(兩湖)의 요충지이자 서울의 보장지”라거나 “실로 우리나라의 정예로운 군병이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임진왜란의 전개과정을 기록한 난중잡록 1592년 7월에 “지난달 23일에 의병장을 따라 수원산성에 이르러 5일간을 머물렀다”고 했고 10월에는 “전라감사 권율이 수원 독성에 있으면서”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수원고읍성은 독산성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중요하게 활용됐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수원산성(水原山城)’이라는 원문이 네 차례 나온다. 수원부의 독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수원산성으로 표현된 고읍성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임진왜란 이후 수원고읍성에서 십리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산성은 더욱 주목되는 군사요새로 발전됐다.1610년 1월, 비변사가 “경기 지방의 산성이 무려 열일곱 곳이나 되는데 적이 물러간 뒤로 점점 폐지되고 오직 수원의 독성만이 꾸준히 수리되어 왔습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광해군은 왕세자 시절부터 수원의 지리적 여건과 상무적 풍토를 주목했다.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종묘나 성균관에 거둥할 때 수원에서 병사를 뽑아 호위를 맡겼을 정도로 의지했다. 덕분에 수원은 무향으로 발전했다. 효종은 수원의 군병이 훈련도감보다 많고 실력도 낫다는 신하의 평가를 듣고 “수원은 본디 무향(武鄕)”이라고 하였다.실록을 보면 이때부터 수원의 군병이 7천 혹은 8천이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무렵 수원고읍성 안에 왕이 거처할 수 있는 별당을 마련했는데, 시설이 확장돼 숙종시대에는 ‘행궁’으로 승격했다.이 무렵 행궁을 보호하기 위해서 읍성이 보수됐을 것이다. 숙종이 노량사장에서 군병을 친열하면서 “수원의 군병은 가장 정예하다”라고 했던 칭찬이나 “수원의 7천 병마는 본래 날래고 사납다”라는 대신의 말은 ‘무향’ 수원의 실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1760년 초가을, 사도세자가 수원고읍성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이때 사도세자는 화산에 올라 효종이 묻히려 했던 곳을 둘러보고 독산성을 방문해 무예를 시험하고 활을 쏘았다. 이러한 사도세자와 수원고읍성의 인연은 아들 정조에게도 이어졌다.1789년 초가을,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강무당이 있던 화산으로 옮기면서 수원읍성에 살던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유천마을(현재의 세류동)로 이주시켰다.관아와 강무당을 비롯하여 수원읍성에 즐비하게 서 있던 건물도 팔달산 아래로 옮겨졌다. 10월6일에 천장을 마치고 정자각에서 하룻밤을 지낸 정조는 다음날 아침 일찍 화산에 올랐다. 산을 내려온 정조가 신하들을 둘러보며 했던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산은 화산이니 꽃을 많이 심으면 좋겠다” 정조는 명에 따라 화산을 비롯하여 화성과 독산성 주위에도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었다. 관아와 민가의 이전으로 훤하게 된 빈터에는 소나무와 꽃나무가 자랐다.이때 화산과 성황산 자락에 사도세자의 명복을 비는 원찰 용주사를 중창하면서 수원고읍성은 역사의 뒤란으로 묻히게 됐다. 고려시대부터 500년 이상 번영을 누리던 수원고읍성은 순식간에 소나무와 꽃나무로 둘러싸인 한적한 곳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 수원고읍성은 물론 성벽도 허물어져 원형을 간직한 곳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성벽이 서 있던 자리만 몇 군데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혔던 수원고읍성 주변이 최근 택지지구로 개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수원고읍성은 경기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제대로 관리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한 25,000의 1과 50,000의 1 지도에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 수원고읍성의 일부가 표시돼 있다.융건릉매표소 부근을 공사할 때 관청건물지로 보이는 초석들이 발굴됐다. 이를 통해 수원고읍성의 주요 시설물들이 융릉 주변에 서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원대학교 도서관 건물 쪽에도 성터가 남아 있다.현지 주민들이 ‘고수문(古守門)’이라 부르는 곳인데 수원고읍성의 서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지점이다. 성벽의 흔적은 수원대 도서관 건물부터 수기리까지 연결되어 있다. 치리고개에 북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남문터는 융릉 건릉의 건너편 도로변에 남아 있다.치리고개에서 화산을 오르면 산허리 중간쯤에 융릉경내를 알리는 입산금지 표식이 있고, 건릉 경내를 표시하는 철조망이 쳐 있는 곳에 성터가 남아 있다. 따라서 수원고읍성은 성황산과 화산을 연결하는 능선과 골짜기를 포함하여 축조된 포곡식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수원고읍성을 둘러보며 스스로 다짐했다. “설령 한 줄의 기록이나 한 점의 유물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역사는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빈 곳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채워내는 작업도 인정하는 풍토라야 우리의 역사가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화성시가 공직자 출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나섰다. 출산 공무원에 대한 인사가점을 대폭 늘리고 희망 부서에 배치한다.복지포인트도 주고 출산 및 육아휴가자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없앤다. 13일 시에 따르면 기존 출산 우대 시책을 대폭 개선한 ‘공직자 출산ㆍ육아 우대 시책사업(안)’을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우선 출산 공무원에 대한 인사가점을 대폭 확대했다. 기존 셋째아 출산 시 1점과 넷째 이상 1.5점을 부여하던 가점을 첫째아부터 적용한다. 내년 1월1일부터 첫째아를 둔 여성과 남성 공무원에게 1.5점을 2차례, 모두 3점의 가점을 준다. 아이를 입양해도 같은 가점이 부여된다. 또 출산ㆍ육아를 위한 희망부서 근무도 수월해진다. 과거에는 출산 및 육아휴가 후 복직 시에만 희망부서 근무가 반영됐다. 앞으로 휴가 후 복직자는 물론 출산ㆍ육아를 계획한 공무원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특히 복지포인트 혜택도 강화된다.첫째아이 출산 시 200포인트(20만 원), 둘째아 출산 시 300포인트(30만 원) 등이 새롭게 지급된다. 현행 셋째아 이상 출산 시 3천 포인트(300만 원) 지급은 그대로 유지된다. 출산 및 육아휴직 후 받는 인사 불이익도 원천 차단된다. 근무평정 시 출산 및 육아휴직 사용 여부를 배제하고 근무실적과 경력 등만 반영된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민간기업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변화를 공직사회부터 앞장서 추진할 계획”이라며 “출산ㆍ 육아로 불이익을 받지 않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가평지역 자살 사망자수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3일 군에 따르면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 통계 결과, 지난 2013년 27명이었던 자살 사망자 수가 지난 2014년 23명, 지난해 16명 등으로 줄었다. 지난 2013년 인구 10만 명 대비 사망률의 전국 평균치는 28.5명이었으나 가평군은 44.9명으로 크게 높았다. 군은 이에 정신건강 개선 및 생명존중 인식을 높이고자 주민들 대상으로 생명 지킴이 교육 및 정신건강 전문서비스를 강화해 왔다.이 결과, 지난해 자살 사망자수가 크게 줄었고 인구 10만 명 대비 사망률도 26.3명으로 전국평균치(26.5명) 아래로 낮아졌다. 특히, 군은 자체 안전망 시스템을 구축해 효과를 높였다. 보건인력, 복지인력, 지역 협력단체 등 지역 인력자원을 대상으로 생명 지킴이 등의 교육과정을 통해 자살위험이 큰 대상자를 발굴, 적절한 정신건강 전문서비스를 제공해 자살 위험을 감소시켰다. 또한 주민을 생명사랑 강사로 양성,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노인시설, 마을회관 등에서 자살예방 교육을 시행해 생애주기별 생명존중 인식도를 높였고, 자살도구의 차단을 위해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해 왔다. 주민 스스로 자살의 위험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양성한 ‘생명 지킴이’는 올해 3천290건의 건강조사를 시행해 정신건강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자 453명을 발굴, 사례 등록 35명, 병원연계 19명, 복지서비스 54건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생명 지킴이로 활동 중인 김완천 이장은 “우리 마을에도 자살위험이 큰 가구가 있었지만 즉시 가평군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알려 전문 상담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도왔고, 현재 자살 위험에서 벗어났다”면서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전문가들이 함께해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건강한 삶을 이어가는 가평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성구씨 별세, 김동수(한국주택협회 진흥실장)씨 장인상=13일 오전 8시35분, 안양 메트로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15일 오전. 031-449-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