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국민적 관심’이 범죄 막는다

지난달 대형상점 주차장에서 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차량에 불을 지르고 증거를 없앤 김일곤이 검거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외에도 과거 조두순, 박봉춘 사건 등 아동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해마다 늘고 있으며 범행 수법은 더욱 흉악해지고 있다. 이에 경찰은 국민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아동ㆍ여성들을 보호하고자 경찰 인력을 충원해 여성청소년과에 성폭력수사 전담팀을 신설했다. 최근에는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붐비는 대형마트, 백화점, 아파트, 주차장에서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있어 경찰청은 지난 7일 강신명 경찰청장 주재로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를 열고 이달 12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자치단체와 함께 주차장 전수조사를 해 치안환경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노력만으로는 이와 같은 범죄의 뿌리까지 근절할 수 없어 국민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여름, 세종시 소재 아파트 주차장에서 내연녀가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흉기로 협박, 납치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주차장에 있던 한 남성이 살려달라는 피해여성의 비명을 듣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칼을 든 범인과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피해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처럼 경찰의 출동과 도움을 기다릴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용감한 시민의 관심과 도움으로 피해자는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둘 다 크게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도와주기보다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인지를 주의 깊게 판단해야 한다. 우리 국민 모두가 내 가족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깊은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다. 김상희 안성경찰서 일죽파출소 경장

[경기만평] 뭘해도 안돼…

[지지대] 인간과 기계의 협업

사람과 기계가 협업을 한다. 사람이 기계를 조작하고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을 해야 한단다. 지난 13일 경기도가 빅데이터에 대한 국제교류를 촉진하고 데이터 산업의 체계적 육성을 위해 마련한 2015 빅포럼에서 세계 3대 경영전략 애널리스트로 꼽히는 토마스 데이븐포트(Thomas H. Davenport) 밥슨대 교수는 ‘빅데이터 분석과 자동화가 고용에 미치는 위협’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데이븐포트 교수는 “스마트한 인간과 스마트한 기계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이 기계보다 잘 할 수 있는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과연 인간이 기계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모두 예상하듯 데이븐포트 교수는 “기계분석에 의한 의사결정의 자동화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들을 위해 인간의 능력을 강화(Augmentation)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정부와 교육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데이븐포트 교수는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에게 소득보전을 해주기보다는 기계들이 할 수 없는 일자리를 찾아 고용보장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며 “예술이나 감성적인 분야 등에서 인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빅데이터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하고 이에 대해 사람들이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선 6기 남경필 경기지사는 일자리가 넘치는 따뜻한 경기도를 만들겠다며 7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특히 남 지사는 내년 도지사 가용 예산 2천억원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한다. 재정적 지원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물 흐르듯 자연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데이븐포트 교수가 얘기한 ‘인간과 기계의 협업’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하는 일자리의 형태에 대한 구체적 예시다. 바로 지금이 스마트한 인간과 스마트한 기계가 어우러진 미래 사회의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사설] 공공 자전거, 너무 값싼 제품 일색 아닌가

학부모들 사이에 신종 ‘등골브레이커’가 등장했다. 너도나도 타기 시작하는 고가(高價) 자전거 열풍이다. 대당 가격이 40~50만원에 이른다. 수백만원대를 호가하는 자전거도 있다. 과거 일부 동호인들 사이에만 유행하던 고가 자전거가 학생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다. 자전거의 고급화는 필연적으로 부대용품 고급화로 이어진다. 20만원짜리 점퍼에서 십수만원에 이르는 헬멧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자전거와 복장까지 갖출 경우 100만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다 보니 고가 자전거 절도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972건이던 자전거 절도가 3월에 1천30건으로 늘었다. 6월에는 다시 2천467건까지 치솟았다. 겨울에서 봄, 다시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비정상적인 범죄 증가 추세다. 더 큰 문제는 절도 피의자의 80%가 10대 청소년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상당수는 ‘금품 절도’보다는 ‘갖고 싶어서’라고 범행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 고가 자전거 열풍이 자전거 절도라는 형사범죄로까지 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당수 시군에서 공공 자전거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좋지 않다. ‘공공 자전거는 지저분 하다’거나 ‘볼품 없다’는 평이 많다. 행정기관이 신중히 받아들여야 할 여론이다. 공공자전거는 전시용이 아니다.실제로 시민들이 탈 수 있어야 한다. 깨끗한 관리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비치하는 자전거도 양에 비중을 두다 보니 지나치게 저렴한 자전거 일색이다. 최소한 아이들이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정도의 제품으로 교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자전거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15일부터 17일까지 서울광장에서 자전거 축제가 열린다. 서울시는 이 행사에 ‘자전거 벼룩시장’을 운영한다. 자전거 완제품은 물론 부품들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시민에게 제공한다는 목표다. 해봄직한 시도다.학교별ㆍ지역별 단체 구입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군이 직접 마련해도 되고 관련된 산하기관이 주도하도록 해도 된다. 어차피 자전거 도로 건설과 자전거 보험에 많은 돈을 들여온 지자체들이다.

[사설] 판교 환풍구사고 1년, 안전불감증 여전하다

안양의 한 아파트 환기시설에서 지난 12일 9살 초등학생이 1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플라스틱 재질의 채광시설은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의 환기를 위해 설치된 것으로, 낡은 시설에 대한 보수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 아파트 단지 내 환기시설은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이후 실시된 경기도의 안전점검 전수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알려져 사각지대 관리가 부실함을 보여줬다. 17일이면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1주년이다. 이때 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경기도는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위험한 환기구 점검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2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도와 시ㆍ군공무원, 소방서 직원,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826명의 점검반을 동원해 지하철 285개, 일반건물 1만2천901개 등 도내 환풍구 1만3천186개를 대상으로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했다. 하지만 긴급안전점검 대상이 지하철과 쇼핑몰, 공동구역 등의 환기시설로 제한되면서 안양시 사고와 같이 아파트 단지 내에 설치된 환기기설에 대한 점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도내 모든 환기시설을 점검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런 사각지대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도는 안양 사고를 계기로 다음주부터 아파트 환기시설 등도 점검한다는 계획이지만 ‘사후약방문’식 대처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1년이 되지만 지금도 곳곳에선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5일 열린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광명을)은 “지난해 도가 위험시설물 안전점검을 통해 2천858개소에 대해 불량대상 시정 등의 조치를 했다. 그러나 291개소는 아직까지 시정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시정이 안된 시설 중엔 불량 환풍구가 85개나 된다. 안전표지판 및 차단시설 미흡, 덮개 지지물 고정 미흡 및 부식, 실외기 등 물건 적치, 차량통행 등 사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경기도는 이들 시설물이 대부분 민간 시설로 강제 조치가 어려워 지속적으로 시정 요청만 하고 있다고 미온적으로 답했다. 민간시설물이라고 소극적으로 조치하거나 방관해선 안된다. 위험한 불량시설물을 계속 방치할 경우 제2의 환풍구 붕괴사고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아직도 지하철 주변뿐 아니라 상가 등 일반 건물의 경우, 환기구 주변에 안전 펜스나 위험을 알리는 표시가 없는 곳이 부지기수다. 환기구 덮개가 덜컹거리는 곳도 많다. 그 위를 시민들이 생각없이 지나다니고 있다. 아직도 안전불감증이 만연해 있다.

[데스크 칼럼] ‘체육웅도’ 부끄러운 자화상

“경기체육의 맏이로써 여유가 있다면 오히려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린다는 생각으로 도와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최근 우수선수 영입비 요청을 위해 경기도체육회를 찾았다는 수원시체육회 관계자의 자조 섞인 전언이다. 이 관계자는 도내 대학에 다니고 있는 세계적인 유도선수의 수원시 직장운동부 영입을 위해 자체적으로 큰 액수의 영입비를 책정하고, 부족한 부분(계약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경기도체육회 규정에 따라 매칭지원 방식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그러나 놀랍게도 경기도체육회의 우수선수 육성지원금이 단 1억5천만원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들의 간절한 사정을 설명하고는 씁쓸하게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놀란 것은 대한민국 체육을 앞장서 이끌며 ‘체육웅도’를 자부하는 경기도의 우수선수 영입지원금이 타 시ㆍ도는 차치하더라도, 기초 자치단체인 수원시의 10%에도 안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스포츠 메카’를 자부하는 수원시는 2000년대 들어서 우수선수 발굴ㆍ육성을 통한 글로벌 스포츠스타 배출을 목표로 꾸준히 직장운동부를 창단해 광역과 기초자치단체를 통틀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20개팀 150여 명의 직장운동부를 육성하고 있다. 직장운동부 육성에 투입되는 예산만 해도 연간 100억 원을 상회하며, 우수선수 영입을 위한 비용도 17억 원에 달한다.이 같은 투자를 바탕으로 수원시는 매년 전국체육대회에서 경기도 득점의 30% 가까이를 책임지며 경기도가 지난해까지 13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에 경기도체육회와 가맹경기단체 등은 ‘수원시가 맏형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곤 한다. 그런 수원시가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을 겨냥해 야심차게 초특급 우수선수를 영입키 위해 ‘큰집’에 손을 벌렸다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경기도체육회는 31개 시ㆍ군 체육회와 55개 가맹경기단체가 속해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체육단체로 16일 개막하는 제96회 하계 전국체육대회에서 지난 2월 전국동계체육대회 14연패 달성에 이어 동반 14년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또한 경기도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대회 등 각종 국제 종합대회에서도 우리나라가 상위권 성적을 거두는 데 높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인 규모와 성적에서 전국 최고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체육회의 예산은 일반회계가 150억원 안팎으로 규모 면에서 전국 17개 시ㆍ도 가운데 여섯 번째 정도 밖에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는 지난 2007년 200억원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년 긴축 재정으로 인해 50억원이나 줄어든 수치다. 따라서 그나마 6억원에 달했던 우수선수 영입 지원금도 25%로 줄어들면서 시ㆍ군과 각 경기단체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시ㆍ군 지방자치단체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수선수를 발굴ㆍ육성하고 있는데도 경기도는 그 열매만 따먹을 뿐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도체육회는 시ㆍ군과 경기단체 등에 미안한 마음 뿐이다. 하지만 경기도체육회와 각 경기단체들은 아무도 넘지 못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 가지 목표가 있다. 3년 뒤 서울시가 유일하게 달성한 전국체육대회 16연패 달성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첫 동ㆍ하계 전국체육대회 동반 17연패를 달성해 한국 체육사에 큰 획을 긋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도 집행부 등 일각에서는 ‘꼭 우승을 해야만 하느냐’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스포츠는 경쟁을 통해 승리를 쫓는 생리를 지니고 있다. ‘체육웅도’를 자부하는 경기도가 도내에서 육성된 우수선수 조차 잡지 못하면서 대한민국 체육을 앞장서 이끌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부끄러운 자화상과도 같게 느껴진다. 황선학 체육부장

[언제나 청춘] 25. 기타오케스트라 리여석 지휘자(75)

통기타는 대한민국에서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자유와 젊음의 상징이었다. 통기타 하나 어깨에메고 나서면 바닷가 모래밭이든, 광장이든, 들판이든, 기찻길이든 그곳은 낭만과 열정이 숨 쉬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금 통기타는 향수와 추억의 악기에 가깝다. 7080 세대에 젊음을 추억하게 하는 쎄시봉이나 포크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기타 선율은잠깐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 통기타가 옛 시간에만 머물러 있는 추억의 산물은 아니다.여전히 우리 곁에서 자유와 젊음을, 낭만과 열정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한평생을 기타와 함께해온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 리여석지휘자(75)에게 기타와 인생을 들어봤다.■ 대한민국 최초의, 최고의 기타 오케스트라를 만들다.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타오케스트라다. 1971년 창단해 무려 45년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기타 오케스트라’라고 하면 좀 낯설다.일반적인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와 같은 현악기와 플루트·호른·오보에와 같은 관악기, 티파니·심벌즈와 같은 타악기로 구성된 대규모 합주단이다. 기타라는 악기 하나만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밀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지휘자 리여석은 45년 전에 이런 고정관념과 틀을 깨고 과감히 국내 최초의 기타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1971년 인천 부평여자중학교 국어교사였던 그는 학교장의 제안을 받아 30~40명의 학생과 기타 합주단을 만들었다. 기타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기타가 좋아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을 뿐인데 교장이 그의 실력을 높이 샀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날로 향상되는 아이들의 연주실력에 그도 부쩍 흥이 났고, 욕심도 생겼다.그는 “기타 1대만 있으면 저음과 고음, 화음, 리듬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풍부한 음역의 곡을 연주하기에는 저음과 고음이 약하다”면서 “기타의 한계를 느끼고 고민하다 일본의 유명한 기타 오케스트라를 떠올렸다. 합주용으로 기타를 개량해 연주하던 일본 기타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 처음으로 합주용 기타와 악보를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손 벌리기가 어려워 사비를 털어 악기를 구입했다.합주단을 만들고 1972부터 1979년까지 정기 연주회를 16회나 열었으며, KBS·MBC·TBC 등 TV에도 20여 회 출연해 한국 기타합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1980년 리여석 기타 실내합주단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1993년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로 한 단계 도약했다. 기타오케스트라를 거쳐 갔던 많은 학생은 성인이 돼서도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는 “비록 학생들이 단원으로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의 훌륭한 단원이자 후원자, 응원단이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이후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1994년 제30회 정기연주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인천뿐만 아니라 국내 곳곳에서 초청 연주회를 했고, 1995년에는 국제 기타오케스트라협회 한국본부도 설치했다.또 일본의 국민문화제 실내악 부분 아시아 대표로 초청을 받아 국외로까지 진출했다. 1999년 일본 사가시 기타앙상블 ‘라 에스페란자’와 처음으로 합동연주를 시작한 뒤 지금까지 친선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 까까머리 소년, 기타와 처음 만나다.리여석 지휘자가 기타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시절이다. 선배의 집에 놀러 갔다가 생전 처음 본 기타는 그에게 신세계였다. 그는 “줄이 맞춰져 있었는지 기타 줄을 몇 번 튕겨보니 노래가 되는 게 정말 신기하고 재밌었다”면서 “가르쳐줄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고군분투하면서 배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하지만 선배가 이사를 가면서 기타와 헤어졌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대학에 진학했을 때 기타는 다시 그를 찾아왔다. 기타를 갖고 있던 대학 친구가 그의 군용목침대와 바꿔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두말없이 기타와 목침대를 바꿨다. 그에게 처음 자신만의 기타가 생긴 것이다. 그 뒤로 그는 책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혼자만의 기타 세계를 열어갔다.■ 세 번의 벼락, 세 번의 진화리여석 지휘자의 기타 인생에는 3번의 고비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기타오케스트라 연주회를 하면서 유명세를 얻고 있던 그는 한국기타협회 회장 등 기타계 원로 앞에서 직접 연주할 기회를 갖게 됐다.그러나 연주 결과는 ‘벼락’이었다. 원로들은 그에게 ‘기타의 기초가 없으니 다시 배우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독학으로 기타를 배웠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그 조언을 고깝게 듣지 않았다. 이미 기타오케스트라를 대표하는 지휘자였지만, 정식으로 기타를 배워 기초를 다졌다.두 번째 벼락도 갑자기 찾아왔다. 몇 년 뒤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한 공연에 초청돼 400여명의 청중 앞에서 연주한 일이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 청중 1명이 찾아와 “당신들의 연주는 음악이 아니다”고 혹평했다. 혹평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음악의 대가인 금수현 선생으로, 지휘자 금난새의 아버지였다.금수현 선생은 “음악 이론을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지휘자 리여석은 자신이 근무하고 있던 학교 음악교사를 찾아가 음악이론을 공부했다. 공부는 빛을 발해 혼자서 450여 곡을 편곡할 수 있는 실력으로 향상됐다. 그는 “더 이상의 벼락은 없을 거라 자신했는데 아니었다”면서 세 번째 벼락을 소개했다. 그에게 세 번째 충격을 안긴 인물은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초대 지휘자인 김중석 교수였다. 김 교수는 “지휘를 배워야 한다”면서 직접 1년 여 동안 그에게 지휘를 가르쳐줬다. 그는 “지휘를 배우고 나서 그전의 연주회 동영상을 봤더니 형편없이 느껴질 정도로 지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이렇게 3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고비를 뛰어넘었다. 그는 “그때야 비로소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는 설움을 벗을 수 있었다”면서 “누구와도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꿈은 끝나지 않았다.대한민국 최고의 기타오케스트라를 만든 그에게는 아직 꿈이 남아 있다. 그는 기타오케스트라를 만들면서 언젠가는 ‘100명이 넘는’ 단원을 가진 오케스트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교직에서 나와 과감히 기타를 선택한 것도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반세기 가까이 기타오케스트라를 이어왔지만, 아직 ‘100’은 그에게 꿈의 숫자다.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평균 30~40명 단원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이상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그는 실망보다 희망을 품고 있다. 가식 없이 편안한 웃음을 보이면서 “하다 보면 100명 오케스트라를 만들 날이 오겠지…”라고 말했다.그에게 기타는 인생 그 자체다. “기타가 없었다면 대학 졸업 후 방황하다 공원벤치 신세가 됐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생각하면 참 잘했구나 싶다”고 회상했다.일흔 다섯 살의 마에스트로 리여석. 이제는 손이 굳어 예전만큼 기타 위에서 활개를 치는 연주를 듣기는 어려워졌지만, 그가 지휘하는 기타오케스트라는 계속된다. 그는 “12월 9일 송년 연주회가 있으니 꼭 보러 오라”면서 기어코 약속을 받아낸다. 소복이 내리는 눈과 가슴 시린 겨울밤, 그리고 기타선율, 생각만으로도 기대된다.김미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