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살해현장 ‘시민의식도 죽었다’

눈앞서 사건 벌어져도 남의 일 ‘방관’ 사소한 폭력도 신고… 시민정신 절실해

‘폭력에 눈 감은 무방비 도시’ - (上) 폭력을 외면하는 사회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이웃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는 것은 기본이고 남이 다투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이를 외면하는 것이 다반사다. 전 국민을 경악케한 수원 엽기 토막 살인사건 역시 최초 신고 당시 경찰은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치부해 버렸고 목격자도 부부싸움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에 이번 사건은 단지 경찰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시민의식이 발휘됐더라면 ‘희대의 엽기 살인 행각’을 미연에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본보는 점차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을 외면, 흉악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현 세태를 진단하고 성숙된 시민의식을 통한 사회 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골목길 안쪽 외진 곳에서 벌어진 사건인 줄 알았는데…. 자동차도 다니는 찻길 바로 옆집에서 엽기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니 세상이 너무 무섭습니다.”

10일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이 벌어진 수원시 팔달구 지동 주택가.

 

인근 주민들은 사건 현장 주변에 모여 “여자가 끌려갈 때 목격자도 있고 소리도 크게 났다는데 왜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며 의아해 했다.

 

20대 여성이 납치된 지난 1일 밤 10시30분께 CCTV 화면을 보면 주변에 행인들도 있고 차도 왕래하고 있었다.

 

주변 행인과 이웃 주민들의 신고가 필요했던 장면이다.

 

이웃주민 A씨는 사건 당일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 가게 문을 열고 나갔으나 한 여자가 남자에게 끌려가며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해 일상적인 ‘부부싸움’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잠이든 A씨는 다음날 오전 9시30분 탐문 수사에 나선 경찰에게 어젯밤 상황을 설명했고 경찰이 현장을 덮쳐 ‘살인마’ 오원춘을 검거했다.

 

A씨는 “‘살려주세요’라고 한마디만 했다면 남자 3명이 범인 한 명 제압하지 못했겠느냐”고 피해자의 보다 강력한 저항을 아쉬워 하면서도 “그날 밤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며 보다 면밀한 관심을 보이지 못했던 점을 씁쓸해 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대전에서 찜질방에 가던 고교생 B군이 술에 취한 40대 남성이 휘두른 등산용 스틱에 상해를 입고 쓰러져 피를 흘리며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민들은 이를 외면했다.

 

또 지난 2월 서울의 한 지하철 안에서 여중생이 10대 남자에게 10분 넘게 성추행을 당하고 역 화장실로 끌려가 성폭행까지 당할뻔 했으나 안타깝게도 주변 어른들은 모두 이를 모른 척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어떤 형태이든 폭력은 부당하다는 인식을 갖고 현장을 목격하는 즉시 신고를 해야한다”며 “사소한 폭력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성숙된 시민의식을 통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원재기자 chwj74@kyeonggi.com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