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젊은 치매환자와 다름없는데”… ‘귀 막은 정부’ 탈시설만 강조

장애인복지시설 부족으로 돌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기도 발달장애인 가족의 울분 섞인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현장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탈시설 정책 추진만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2일 정부는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고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심의ㆍ확정했다. 로드맵을 살펴보면 정부는 우선 오는 2024년까지 시범사업을 통해 관련 법령 개정 및 인프라 구축 등 탈시설 기반을 구축한다. 이후 오는 2025년부터 매년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지원사업을 추진, 2041년에는 시설 장애인들의 지역사회 전환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장애인 학대 관련 범죄가 발생할 경우 즉시 폐쇄하는 One strike-Out 제도 도입, 신규 장애인거주시설 설치 금지 등의 내용도 담겼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됐으나 임기 말 발표된 로드맵에 대해 전문가와 발달장애인 부모 등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가 장애인 당사자의 주거결정권을 보장한다며 탈시설 정책을 강행하고 있지만, 정작 시설에 있는 장애인 중 80% 이상이 스스로 의사표현조차 못하는 중증 발달장애인이란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인환 ㈔장애인인권센터 대표는 경증 또는 지체장애인과 달리 발달장애인은 지역사회 자립이 매우 어려움에도, 일괄된 기준을 적용하는 등 장애유형에 따른 정책 고민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며 정부가 탈시설 선언하며 향후 20년간 장애인복지시설을 없앤다고 하니 관련 종사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이것은 곧 장애인이 받을 서비스의 질 저하로 연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정부 로드맵에 반발해 단체를 결성하고 집회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는 10일 오전 보건복지부(정부세종청사)를 찾아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진행된 집회는 지난달 26일에 이은 2차 집회로, 부모들은 ▲탈시설 정책 및 로드맵 철회 ▲장애인 가족의 결정권 및 선택권 보장 ▲중증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시행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김현아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공동대표는 발달장애인은 젊은이의 힘을 가진 치매환자와 다름이 없는데, 이들에게 지역사회에 홀로 나가 생활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탈시설 강조 전에 발달장애인 돌봄에 대한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자식보다 단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이라는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우선 3년간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정책의 미비한 부분에 대해선 향후 보완해나갈 것이라며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 문제에 대해선 주거서비스 제공기관 운영 등으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말복 맞아 폭염 나기 [포토뉴스]

[세계는 지금] 역사의 반전

어김없이 8월의 더위가 우리의 몸을 감는다. 울창한 한여름의 숲 속 길을 따라 두 갈래 길이 보인다. 내일의 길은 푸른 빛의 소나무가 울창했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소년의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소년의 어깨 위로 떨어지는 한낮의 햇살이 더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무신발을 신은 어린이가 숲길을 헤매고 있었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아동은 절망의 숲길을 정처 없이 돌고 있었다. 검게 타다 남은 잔목들 사이로 검은 상처를 품은 야생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소년의 영혼을 혼미하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제의 승자가 그날의 패자였다. 그해 8월 초 두 번의 섬광을 보기 전에 도쿄의 지도부는 게임을 끝낼 수 있었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해 3월 도쿄대공습은 전주곡이 아니었다. 연이은 나고야, 오사카, 고베 공습 역시 서곡이 아니었다. 화염과 굉음이 지축을 흔들었고 포효하던 제국주의의 교향곡 연주는 숨이 차고 있었다. 5개월 후 히로시마의 선량한 시민들은 하소연할 촌음도 찾지 못했고, 나가사키의 소시민들은 몸을 피할 한 평 공간조차 찾을 수 없었다. 군국주의 연주가 멈추고 점령군이 일본 전역을 장악했다. 일부 인사들의 의욕이 넘친다고 평화헌법이 쉽게 개정되지는 않는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여전히 악몽을 꾼다. 해마다 3월10일이 되면 검붉은 섬광 아래 소이탄의 파편들이 나뒹굴던 1945년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가미가제의 대가가 너무나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그것은 더 이상 대대로 이어질 영광이 아니고 그저 한편의 악몽이었다. 도쿄대공습의 검은 사진들을 다시 보아야 평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히로시마의 박물관을 둘러보아야 국제 평화주의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연로한 모습으로 연명하고 있는 앞서간 세대의 희미한 기억만 잠시 살펴도 일본은 제대로 판단할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경계하고 있다. 역사의 반전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본 땅에서 일어나는 혐한시위는 역사의 반전을 예고하는 일이다. 한 수 아래로 간주되는 나라를 겨냥한 시위는 없는 것이다. 가속도가 붙어 질주하는 나라는 무섭다. 한국을 잘 아는 일본인일수록 역전 가능성을 우려한다. 국제무대에서 영원한 강자도 없다. 패배주의를 딛고 힘차게 일어서는 민족이 새로운 강자이다. 혁신주의의 기치를 드높이고 신기술을 선도하는 나라가 진정한 21세기의 강국이다. 검정 고무신을 신은 그때의 당찬 소년이 이제 은발을 흩날리며 화사하게 다가올 내일의 추억을 상상한다. 최승현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경기만평] 길들이기...?

추석 선물세트 등장한 대형마트 [경기포토]

[휴먼시티 수원] 日 만행 알린 안점순 할머니…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 방앗간 앞에서 시작된 악몽의 시간 안점순 할머니의 원래 이름은 순이였다. 순이는 일제의 핍박이 극심하던 1928년 겨울 서울 마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순이 가족은 형편이 좋지 못했다. 삼 남매를 키우기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순이는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다. 불행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마포 복사골 큰 방앗간 앞으로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의 여자아이들은 다 모이라는 방송이 울려 퍼진 어느 날, 순이는 엄마 손을 잡고 방앗간 앞으로 갔다. 오라면 가야 하는 시절이었다. 쌀가마를 재는 저울에 여성들이 한 명씩 올라섰다. 그 중 어느 정도 몸무게가 나가는 여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올라타야 했다. 또래보다 덩치가 좋아 50㎏을 넘겼던 순이도 트럭에 실렸다. 순이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트럭은 여러 번 어딘가에서 멈춰 여성들을 더 태웠다. 여성들은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톈진으로 이동해 어딘지 분간조차 어려운 곳으로 끌려갔다. 산도 없고, 나무도 없고, 누런 모래가 뒤덮인 사막 같은 곳 가운데 덩그러니 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통스러운 생활이 시작됐다. 일본 군인들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 지옥 같은 생활은 3년 넘게 계속됐다. 전쟁이 끝나자 일본 군인들은 여성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중국군과 러시아군이 쳐들어와 무차별 공격을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방법도 모르는 순이는 무작정 걸었다. 며칠이 지나 어렵사리 베이징에 도착한 순이는 우연히 광복군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집에서 허드렛일을 도우며 8개월 정도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른 순이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귀국선 소식을 듣고 톈진에서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했다. 꿈에 그리던 복사골 집으로 걸어가는 길, 순이는 떡시루를 머리에 이고 걸어오는 어머니와 마주쳤다. 생사를 넘나들며 집에 돌아온 순이와 어머니는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안점순 이름으로 세상에 서다 순이가 안점순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십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집에 돌아온 후 석 달을 앓아누웠던 순이는 남자라면 진저리가 나 결혼은 생각하기 싫었다. 그러다 또다시 전쟁이 발생했고, 피난 생활을 하며 생계를 위해 빨래와 식당일 등을 가리지 않았다. 대구부터 강원도까지 옮겨 다니다 30대 초반부터 식당을 운영하며 고된 삶을 이어갔다. 가족들은 순이에게 큰 힘이 됐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공개하고 2년이 흐른 1993년 8월, 막내 조카가 안점순을 피해자로 신고하고 피해자생활안정지원법 대상자로 등록했다. 수원에 살고 있던 조카의 권유로 수원으로 온 뒤에도 위안부 피해는 언급하고 싶지 않았고, 조용히 지냈다. 마음을 열기 위해 피해자 지원단체가 끊임없이 노력했고, 75세가 된 순이는 2002년 드디어 마음을 열고 안점순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서로 보듬은 안점순 할머니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UN 인권위원회 여성폭력문제특별보고관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고, ILO(국제노동기구)의 국제심포지엄에도 참여해 자신의 경험을 쏟아냈다. 2015년 한일합의 무효를 외치며 위로금 수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 안점순 할머니와 수원평화나비, 수원시의 동행 안점순 할머니의 활동은 수원지역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2014년 3월 수원에서 평화비를 건립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시작돼 건립기금 7천여만원이 모였다.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건립된 수원평화비를 계기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매월 수요집회를 주관했다. 이후 안점순 할머니와 수원평화나비, 수원시는 유럽 최초의 평화비 건립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2016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수원시가 소녀상 건립을 제안했고, 74개 시민단체와 함께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시민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의 조직적인 방해로 프라이부르크 소녀상은 결국 무산됐다. 수원시와 수원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독일 현지에서 독일추진위가 결성돼 힘을 보태면서 수원시민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소녀상은 독일 중남부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자리할 수 있게 됐다. 안점순 할머니는 지난 2017년 3월8일(현지 시각) 독일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고 소녀상은 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안점순 할머니는 다음해 3월30일 삶을 마감했다. 수원시는 할머니의 장례를 수원시민사회장으로 치러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후 수원시와 수원평화나비는 올해 안점순 할머니를 기리는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만들었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에 추모 공간 및 기림비를 만들어 피해자의 허물을 벗고 여성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 평화운동가로 다시 태어난 안점순 할머니의 뜻에 따라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다. 안점순 할머니 생전 모습. 안점순 할머니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이제라도 사죄 한마디 하면 끝날 일인데, 억만금을 준들 청춘이 돌아오겠어? 그 사과를 듣고 싶다 이거지 나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가기념일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를 증언한 날을 기념해 정해졌다. 수원시에도 위안부 피해자가 살고 있었다. 끔찍했던 기억을 꺼내 평화와 인권을 설파하는 활동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故 안점순(1928~2018) 할머니다. 일본의 만행을 알려 다시는 전쟁과 핍박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던 할머니는 일본으로부터 직접적인 사과를 듣지 못한 채 영면했다. 이정민 기자

[현장, 그곳&] 코로나 불안감 속 수능 100일…고군분투 고3 수험생

올해 처음 치러지는 문ㆍ이과 통합수능이 1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급변하는 코로나19 상황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 수험생들이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수험생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원격수업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더 어려운 입시 환경에 직면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주어진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고군분투하고 있다. 10일 오후 2시께 수원시 팔달구 A 스터디카페에서 만난 윤태섭군(19ㆍ유신고)은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윤군의 마음 한켠에는 코로나19 감염이라는 걱정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계속 남아있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며 이 때문에 수능이 100일 남았다는 것도 실감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밖에서 공부한 뒤에도 집에 들어가 계속 책상 앞에 앉게 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오전 10시15분께 다른 학교보다 2주 정도 일찍 개학한 수원고는 학생들의 연필소리로 가득해야 할 교실이 텅 비어 코로나19 확산세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에 김명식 교무부장은 수능 준비로 분주해야 할 시기에 학생들이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대입 준비를 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 안타까운 심경을 나타냈다. 김 부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정규수업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학생들의 대입 상담을 할 정도로 바빴다고 회상하면서 현재 상황에서 직접적인 대면이 어려운 만큼 유선ㆍ온라인 상으로 상담을 하며 학생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능 합격 기원 도량으로 유명한 의왕시 대한불교 조계종 청계사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수능 100일을 앞두고 200여명의 학부모 등이 이곳을 찾았지만, 올해는 그의 십분의 일 수준인 20여명만 스님 공불 소리에 맞춰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산한 분위기와 달리 자녀와 손자의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는 이들의 진심은 코로나19 확산 전과 비교해 변함 없이 간절하고 뜨거웠다. 최효진씨(52ㆍ가명)는 아들의 수능 고득점을 기원하면서도 코로나19 등 각종 감염병으로부터 아이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절을 올렸다고 말했다. 입시학원들은 수능 100일을 앞둔 만큼 수험생별로 수시와 정시로 나눠 전략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종운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수시에서 수능 최저기준 통과가 중요한 학생들은 자신이 강점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집중해야 하며,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의 경우 과목별로 고르게 시간을 배분해 공부하는 학습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민훈기자

[사설] 2학기 등교 확대 방역 강화해 학습결손 보완해야

코로나19 확산세가 연일 거센 가운데 10일 신규 확진자 수가 1천540명 늘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시작된 4차 대유행이 비수도권으로 번져 지난달 7일부터 35일 연속 네 자릿수를 나타내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적용이 6주 연속이다. 방역당국이 추이를 보며 완화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고강도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피로감과 경제적 피해가 심각하다. 현재는 백신 접종에 따른 집단면역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델타 변이 확산과 백신 접종 후에도 확진되는 돌파 감염이 많아 거리두기를 완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가 최고 방역단계인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도 학생 3분의 2 수준의 등교를 허용하기로 했다. 3단계 때는 전면 대면수업을 허용한다. 당장 다음 주로 다가온 개학부터 4단계 적용 지역의 경우 유치원, 초등학교 1ㆍ2학년, 고3 학생은 전면 대면수업을 진행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9일 2학기 전면 등교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학교의 문을 더 여는 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거리두기 4단계에선 전면 원격수업이 원칙이지만 학생들의 학력 및 사회성 저하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다음 주 개학부터 9월3일까지를 대면 수업과 방역에 적응하는 집중 방역주간으로 설정했다. 교직원의 백신 2차 접종이 대부분 완료되는 9월6일부터는 등교 인원이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각 학교가 가능한 한 학교밀집도 기준을 지켜야 하지만 지역별, 학교별 상황에 따라 자율성이 보장된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교육 결손을 고려하면 대면수업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상황에서의 등교는 위험한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등교를 환영할 수도, 그렇다고 무기한 원격수업을 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년 이상 등교가 제한적으로 이뤄지면서 학력 격차가 벌어졌다. 특히 저학년 아동을 중심으로 사회성 발달 부족, 언어능력과 신체발달 위축 등도 우려된다. 때문에 일부 국가들에선 코로나19 확산에도 등교를 장려하고 있다. 전파력 강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우세종이 됐고 어디서 감염됐는지 모르는 깜깜이 감염이 30%를 넘는다. 학생 감염이 학교보다 지역사회나 가정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고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어차피 2학기 등교가 불가피하다면 안전을 위해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렵게 학교 문을 열게 됐는데 교내 집단감염이 속출하면 등교 수업은 또 힘들다. 교육과 방역 당국은 세심하고 철저한 방역수칙을 마련하고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