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와의 만남은 설 지난 엿새만인 추운 겨울이었다, 요즘 같으면 덜 여문 아가씨 정도였을 나이인 스무살 이었으니, 내가 어머니의 젖을 물고 컸던 기억은 여타 사람들처럼 기억날 리 없다. 그저 형하고 살던 시절 내 누이동생 둘이 살던 것만 어렴풋이 가물가물 할 뿐이다. 어느해 싸락눈이 내리는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심한 부부 싸움을 했다. 나는 시쳇말로 625전쟁 같은 날이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이후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그날 무서움에 떨다 형과 두 누이동생과 함께 잠을 자는데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우리 얼굴을 쓰다듬은 그 손길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훗날 그 어느날 어머니는 서울생활을 하신다고 그야말로 무작정 상경했다. 이후 경희대 입구에서 도라지를 다듬어 파시는 어머니, 집이라야 남의 집 정말 초라한 어느 모퉁이집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처절한 삶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형제들에게 전하는 김형수 의장의 에세이 서문). 90세에 가까운 노모를 둔 구리시의회 김형수 의장(65). 그의 애절한 사모곡이 각박한 구리 지역사회에 심금을 울리고 있다. 7남매 중 둘째인 차남으로 태어난 김 의장은 평소 효자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정치에 투신해 온 긴 시간 동안, 부모님을 모시면서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였다. 지난해 부친을 떠나 보낸 후 그 누구보다 모친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 그런 그가 설이 지난 최근, 고령의 노모를 끝내 요양원에 모셔야만 했다. 거동조차 어려워 상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경에 달했기 때문이다. 모친을 홀로 둔 채 요양원 문턱을 나서는 그의 발길은 천근만근, 이런저런 생각에 간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마음의 짐을 도저히 덜 수가 없어 형제들에게 전하는 에세이를 써 내려갔다. 지인들 사이 아름아름 퍼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사모곡이다. 드디어 아버지가 면목동 가게 사장님이 되셨다. 당신 가게였지만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 잡수시지도 못하는 어머니였다. 발달장애 아들 때문에 맘 놓고 어디 한번 다니시지도 못하는 어머니, 휘경동 한인빌라를 사시고 서울을 다 차지한 것처럼 행복해 하던 어머니, 평생을 한번도 당신 맘대로 백원짜리 하나 못쓰신 어머니, 아버지 직업이 없으셨던 방학동 시절 생활비 걱정으로 노심초사하시던 어머니, 천하의 시망떡이 지금 누워 계신 곳에서 신세 한탄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중문). 김 의장은 평생 모친이 살아왔던 가족에 대한 무한한 희생을 느낀 감정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모친이 있어 행복했던 그 시절도 갈망했다. 그 마음을~, 어머니 차라리 기억을 못 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차라리 데려가 주세요. 가슴 저 밑에서 올라오는 응어리가 있어 그래도 행복합니다. 응어리가 올라올 수 있는 어머니가 계셔서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이런 시간도 저한테 많지 않을 것 같아 목이 메입니다. 어머니~(끝). 김 의장은 지금도 모친으로 긴 밤을 설칠 때가 많다. 모친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날이 그리 많지 않음도 안타까워한다. 형제들 다 같이 좀 울어 봤으면 하는 맘도 없지 않다. 운들 그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김 의장의 모친은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다. 구리=김동수기자
한국마사회(회장 김낙순)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생명나눔, 헌혈운동에 동참했다. 이번 행사는 감염병 여파로 인해 외출 자제와 단체행사 취소 등으로 헌혈자가 감소함에 따라 적정 수준의 혈액 보유가 어렵다는 대한적십자사의 요청에 따라 마련됐다. 이에 마사회는 회사 내에서 행사를 추진, 전 임직원이 손쉽게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마사회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임직원과 경주마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총 4회 헌혈 행사를 주관하게 됐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훈련을 위해 흩어져 있던 마사회 탁구단과 유도단 관계자 등도 함께했다. 마사회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모인 헌혈증은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을 통해 필요한 곳에 전달하기로 했다. 과천=김형표기자
양주시의회가 지난 25일 의원연구단체 자치법규연구회를 발족하고 내년 지방자치법 시행에 앞서 전부개정된 법률을 면밀히 분석하는 등 연구활동에 나섰다. 시의회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32년만에 지방자치법이 전부개정되고 지방의회의 조례입법권이 한층 강화되는등 지방자치 확대와 분권 확립을 위한 자치법규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시의원 8명 모두 한 연구단체로 모여 연구에 집중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개정 지방자치법 제28조(조례) 제2항에는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은 그 법령의 하위 법령에서 그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접 규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법령에서 조례로 위임하도록 정한 사항에 대해서도 기존 해당 법령의 시행령, 시행규칙 등에 의해 조례 제정 및 개정에 제한을 받아왔다. 이에따라 전국 지방의회들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 따라 자치법규와 연관된 의원연구단체 구성을 검토 중이다. 양주시의회 자치법규연구회는 민생조례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사회환경에 반드시 필요한 조례 제정에도 심도있는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자치법규연구회 대표의원인 황영희 의원은 지난해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올 한해 타 시군 의회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민생조례를 꼼꼼히 살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양주=이종현기자
양주시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 밑그림이 나왔다. 28일 양주시에 따르면 시는 경기북부 테크노밸리(양주 테크노밸리)를 활성화할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를 조성키로 하고 지난해 11월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연구용역은 경기북부 특화산업인 생활소비재업종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고 공공지원센터 내 서비스기반 제조ㆍ혁신주체의 협력플랫폼 구축, 지역산업 고도화 등을 위해 진행됐다. 시는 앞서 지난 24일 용역 수행기관인 경기대진테크노파크 주관으로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 조성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개최했다. 박귀남 경기대진테크노파크 본부장은 이날 경기북부 제조업체 창업동향과 국내 혁신클러스터 현황, 양주시 신성장 동력산업군 등을 면밀하게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양주 테크노밸리 활성화를 위한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 운영 비전과 전략 등을 발표했다. 특히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와 적정인력 규모를 분석하고 지원분야와 유치대상 기관 등을 탐색하는 등 다양한 기업지원 콘텐츠 확보를 위한 조성전략을 제시했다. 시는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 유치를 위해 제시된 다양한 의견을 적극 반영, 유치전략을 내실화하는 등 완성도를 높여갈 계획이다. 한편 제조융복합 혁신지원센터 조성 연구용역의 최종 결과물은 오는 5월 제시된다. 시 관계자는 중간보고회에서 도출된 결과를 통해 단계별 추진전략을 설정하고 구체화한다면 경기북부 신성장산업의 거점이 될 양주 테크노밸리의 성공적 추진에 한 발 더 다가설 것이라고 말했다. 양주=이종현기자
양주시 남면 산업단지 내 외국인 근로자 변사체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중이던 외국인 근로자 4명, 내국인 6명 등 10명이 28일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다. 시에 따르면 양주시보건소는 지난 24일 남면 산업단지 내 섬유업체에 근무 중인 외국인 A씨(49) 변사체에 대한 코로나19 검사결과 확진됨에 따라 25일 소속 직원들에 대해 실시한 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26일 외국인 근로자 10명과 내국인 3명 등 직원 13명이 확진판정을 받아 누적 확진자가 14명으로 늘어났다. 나머지 18명은 음성으로 확인돼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또한 양주시가 24일부터 남면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선제검사에서 외국인 근로자 21명, 내국인 1명 등 22명의 확진자가 발생, 남면 산업단지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36명으로 늘어났으며 28일 10명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음에 따라 통 4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한편 양주시는 25일 기준으로 산단 내 외국인 근로자 115명을 포함, 총 719명에 대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진행했으며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업체에 대한 긴급방역과 함께 추가 접촉자 확인 등을 위한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양주=이종현기자
고양시는 28일 주민 10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5명은 이전 확진자의 가족이나 접촉자로 분류됐고, 5명은 감염경로를 조사 중이다. 28일 오후 4시 기준 고양시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감염자는 총 2천171명이다. 보건당국은 확진자들의 접촉자와 동선 등을 확인하는 등 심층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고양=최태원기자
3.1절 특집 손창신 독립운동가 후손 손용수씨 독립운동가들의 애국정신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독립운동가 손창신 지사의 딸 손용수씨(87)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손지사는 31운동 당시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인천창영초등학교)에 들어가 전화선을 끊고 동맹휴교를 주도했으며, 이는 인천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병환으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손씨가 딸인 이영란씨(61)를 통해 전한 손 지사의 모습은 따뜻하고 자상한 딸바보 그 자체다. 손씨는 늘 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며 자상하고, 자식을 예뻐하던 그런 분이셨다고 했다. 딸에겐 한없이 자상했던 손 지사는 나라를 빼앗긴 암흑의 시대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저항했다. 손씨는 옳은 일에는 강한 책임감을 가진 분이셨고, 민족적 정신과 신념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분이라며 형제들에게도 명예롭게 살도록 엄하게 가르치셨다고 했다. 손 지사가 김명진이만용박철준 지사와 함께 인천공립보통학교의 전화선을 끊은 일은 인천 만세운동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당시 손 지사는 16살이란 어린 나이에 재판정에 섰다. 비록 무죄로 풀려나긴 했지만, 일제의 탄압은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10대 소년을 무려 6개월간 옥에 가뒀다. 손씨는 그래도 재판 당시 어린 나이라 함께 했던 분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탄원해줘 무죄를 받았다며 출소 후 지방에서 선생님을 하시다 20대 때는 인천청년동맹에서 활약하며 저항운동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손 지사가 받은 표창장과 손 지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쓰다듬던 그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사료 발굴에 나서주길 당부했다. 손씨는 어린 학생들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신념으로 주도한 독립운동인 만큼 지금 세대에게도 용기와 영감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료 발굴을 통해 이런 정신을 이어가도록 지원해준다면 젊은 세대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창영초 내에 총동창회가 있어 지사 분들을 기념하고 있는 것처럼 애국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후손으로서 이런 정신을 대대손손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제의 칼 앞에 맞선 할아버지의 절개는 제게 평생의 자랑입니다. 인천 만세운동의 역사를 쓴 계양구 황어장터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심혁성 지사의 손자 심현교씨(69)는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심씨가 7살이던 때 유명을 달리한 심 지사는 인천에서 전개한 가장 대규모 만세운동인 황어장터 만세운동의 선봉에 섰다. 평소 어려운 이웃을 보면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곳간을 털어주던 심 지사는 나라를 빼앗기고 슬픔에 빠진 국민을 바라볼 수 없어 당당히 일제의 총칼에 맞섰다. 비록 심씨가 어린시절 돌아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를 통해, 심 지사를 기억했던 이웃을 통해 그날의 역사만은 마음에 새겨져 있다. 심씨는 당시 일본 순사들에게 체포되고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시고, 재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고도 너희가 왜 나를 심판하느냐며 화를 낸 분이라고 했다. 이어 출소한 후에도 일본에 세금을 내고 싶지 않다고 하시면서 산속으로 들어가 전북 무주의 덕유산이나 함경도의 유명산에 다니면서 약초를 캐 생활하셨다고 설명했다. 심씨가 추억하는 할아버지는 황국신민이 되지 않겠다며 스스로 은둔 생활을 택하고, 해방 때까지 가족들을 작은할아버지에게 맡긴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그런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지금의 심씨에겐 자긍심으로 남아있다. 심씨는 할아버지가 목숨을 내놓고 지킨 절개를 떠올리면 너무나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그이지만 가끔 정부에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심씨는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대부분 형편이 여의치 않다며 하지만 정부에서는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31절이나 815때만 반짝 연락해 행사에 불러다 놓는게 전부인데, 그럴 때 좀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질적인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살펴봐준다면 우리 뿐 아니라 국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나라를 사랑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한승기자
1919년 3월 1일. 모두가 암흑 속에 숨죽여 살던 그 날.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학생 등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짖은 날이다. 태극기와 함성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한반도를 뒤덮으며 독립의 염원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선 31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학생부터 교회 신도, 상인 등 수많은 인천시민은 만세를 외치며 밖으로 나왔다. 그중 많은 독립운동가가 일제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굽힘 없이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그 정신은 지금도 인천 곳곳에 기록으로, 그리고 역사로 남아있다. ■ 인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 만세운동에 불을 지피다 인천에서는 3월 6일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하면서 만세운동의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펼쳐진 31운동 소식을 들은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인천 창영초등학교)에서는 34학년 학생들이 주도해 휴학을 결정했다. 이에 놀란 교직원들이 경찰에 사실을 알리지만, 동맹 휴학을 주도한 김명진이만용 지사는 8일 오후 9시께 학교 건물 2층에 몰래 들어가 가위로 전화선을 끊는다. 학교 측과 경찰서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 사실을 안 경찰은 학부형 회의를 소집하곤 급기야 주동자 25명을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다음날에도 학생 405명 중 85명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김명진 지사는 가택 침입 및 전신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경찰에 붙잡히지만, 경찰 앞에 당당히 서 내 나라 독립을 위해 한 점도 부끄럽지 않다고 외친다. 휴학은 10일 가까이 이어지고, 독립을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활활 타올라 인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인천창영초는 국가보훈처가 현충 시설로 지정했고, 창영초교 총동창회는 1995년 선배들의 애국심을 기리며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3월 8일에는 오은영우소식강봉희 지사 등이 손병희 지사가 발표한 독립선언서와 같은 취지의 문서 약 800장을 인쇄한다. 다음날 새벽, 독립선언서가 곳곳에 뿌려지면서 인천에서 본격적인 만세운동이 시작했다. 기독교도와 청년학생 등 300여명의 시민은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 모여 만세를 부르짖었다. 인천 최초의 만세운동이다. 경찰은 만국공원 집회를 강제 해산했지만, 같은 날 오후 8시30분께 경인가도 부근에서 50여명의 시민이 또 한 번 독립 만세를 부른다. 일본 경찰은 그중 1명을 체포한 후에야 군중을 해산시킨다. ■ 강화도황어장터 대규모 만세운동인천 31운동의 절정 강화도에서는 결사대장 유봉진 지사가 대규모 만세 시위를 이끈다. 그는 대한제국 진위대 출신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그의 보호 순사를 지원했다가 탈락해 기회를 엿보던 상황이다. 3월 1일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돌아온 유봉진 지사는 10일가량 그가 다니던 길직교회의 이진형 목사와 함께 시위 작전을 짰다. 주문도 예수교회당 신도 120명 앞에서 나는 그 운동을 위해 결사대원이 될 것이니, 천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천국에서 만나자고 외치면서 동참을 호소했다. 그리고 3월 18일 오후 2시께, 강화읍 장터에서는 서서히 모여든 길직교회, 잠두교회 신도들이 일제히 만세를 외친다. 면 보자기와 종이에 그린 태극기, 조선독립 글씨를 쓴 깃발을 흔든다. 그 순간 유봉진 지사가 결사대장이라고 쓴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백마를 타고 등장해 시위대를 이끌기 시작한다. 행진은 군청과 객사, 향교, 경찰서까지 이어져 1만5천여명으로 시작한 인파가 경찰서 앞에서는 어느새 2만여명에 달했다. 강화도에서는 약 35차례 만세운동이 일어나며 43명이 경찰에 붙잡힌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단일 사건으로는 서울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수다. 특히 3월 24일 오후 2시께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현 계양구 장기동)에는 심혁성 지사의 주도하에 300여명의 군중과 태극기, 만세 함성이 장터에 울려 퍼진다. 때마침 현장을 지나던 경찰 4명은 이를 보고 심혁성 지사를 주재소로 연행했다. 군중들은 일본 경찰의 뒤를 따르며 심혁성 지사를 놓아 달라고 맹렬히 저항했다. 임성춘 지사 등 주민 600여명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며 경찰의 앞길을 막아섰고, 경찰이 겁을 먹고 한발 물러선 틈을 타 심혁성 지사를 구해낸다. 이에 분노한 일본 경찰은 칼을 빼 들고 군중 속으로 달려들어 이은선 지사를 칼로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군중들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연신 몽둥이질해댔다. 이날 심혁성 지사를 비롯한 계양주민 40여명은 31운동을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당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심혁성 지사는 1년여의 옥고를 치르고도 독립운동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논과 밭 그리고 집을 팔아 생필품을 장만해 장터에서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전국을 30년 가까이 돌아다니며 만주 등지에서 애국지사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의 민족적 자부심과 자긍심은 황어장터 3.1 만세운동 기념탑으로 세워져 그날의 황어장터에서의 역정을 대변하고 있다. ■ 21세 청년들의 목숨 바친 혈투 3월 28일에는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현 중구 용유동)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용유면 군중 150여명은 관청리 광장에 모여 큰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나선다. 만세운동 뒤에는 이를 주도한 혈성단(조명원조종서문무현이난의최봉학 지사)의 역할이 크다. 이들은 앞선 23~24일 조명원 지사의 집에 모여 독립만세운동 계획을 세운 상태. 혈성단은 조선독립운동을 거사할 것이니, 28일 관청리 광장에 모이라는 안내문을 제작해 일일이 봉투에 넣어 마을에 배포했다. 혈성단은 남북리와 그 인근 거잠리, 을왕리 등을 다니며 글을 아는 사람에게 안내문을 배포했다. 28일에 관청리 광장에서 군중 150여명이 만세 시위를 했다. 조명원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관청리를 향해 행진했다. 이 만세운동을 끝으로 혈성단 단원을 포함한 만세운동 주요 참가자들은 모두 일본 경찰에 붙잡힌다. 이들은 인천경찰서로 옮겨진 뒤 가혹한 구타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조명원 지사는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고, 조종서최봉학문무현 지사 등 나머지 혈성단원은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조명원 지사 등 혈성단원들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한 이후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조명원 지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데다, 일제의 감시로 평생 별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혈성단 지도자들의 평균 나이는 21세에 불과했다. 이 젊은 청년 지도자들의 피땀 흘린 행진을 기리는 31독립만세기념비는 인천공항 하늘길 바로 아래 솟아있다. ■ 사활을 건 혁명, 기억하고 보답할 방법 찾아야 역사가들은 31운동을 31혁명이라고 부른다. 독립운동을 이유로 사망한 사람만 7천500여명에 달하고 4만7천여명이 투옥 1만6천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사활을 건 혁명인 셈이다. 이태룡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인천에도 수많은 선조가 31혁명으로 나라를 위해 힘썼고 희생당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선조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비밀기록 때문에 이들에 대한 포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100년이 넘었다고 해서 선조들의 저항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이 두 발 뻗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땅이고 나라라며 그들을 기억해야 하고 그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강우진김보람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8일 경기도내 3기 신도시 주택 공급에 대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기본주택으로 공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용적률과 금융제도 개선 등 약간의 제도만 고치면 재정부담 거의 없이 무주택자에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공공택지상 아파트는 로또분양해 투기수단으로 내 줄 것이 아니라, 공공이 보유하되 국민들이 평생 편히 살도록 기본주택(장기공공임대 또는 토지임대부 환매조건 공공분양주택)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높은 집값은 자산양극화 심화와 과다한 주거비로 소비악화를 불러와 경제침체의 원인이 되는 만큼 기본주택으로 주거비를 줄여 소비여력을 늘려 경제선순환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이 지사의 설명이다. 아울러 이 지사는 주택문제 해결방안이 부동산으로 돈 못 벌게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 말 속에 답이 있다고 했다. 그는 주택가격이나 보유주택 수 억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실주거를 보호하고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며 투기가 의미 없도록 조세로 불로소득을 철저히 환수하고 비주거용 주택 구입에 금융혜택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오가는 나라에서 국민 절반의 꿈이 내 집 마련이고, 젊은이들은 집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며 높은 집값 때문에 소비가 줄어 국가 경제가 침체되고, 온 국민이 일보다도 로또분양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것은 나라 망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광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