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잃고 힘들어" 일면식도 없는 여성 살해

충남 서천에서 돈을 잃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천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3일 일면식이 없는 4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30대 남성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이날 새벽께 서천군 사곡리의 한 인도를 배회하다 40대 여성 B씨를 마주치자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잔혹하게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같은날 오전 3시45분께 이 인도 부근 공터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전날 오후 11시56분께 ‘운동을 나간 뒤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B씨 가족의 112 실종신고를 접수 받고 수색에 나선 상태였다. B씨는 실종신고 후 3시간 30여분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도시 중심부와 멀지 않았지만, 방범용 폐쇄회로(CC) TV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주변 상가 CCTV 등을 토대로 용의자의 이동 동선을 추적해 서천군 주거지에 있던 A씨를 긴급체포했다. 범행을 시인한 A씨는 "최근 사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 세상이 나를 돕지 않는 것 같아 힘들어서 흉기를 들고 거리에 나와 B씨를 보자마자 찔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A씨가 흉기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것 등을 토대로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을 추가 수사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경찰은 A씨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북한, 美 항모 입항에 '발끈'..."위협적 행동 신중 검토"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처음인 미군 항공모함의 부산 입항에 북한이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의 제1항모강습단 소속으로 미국의 세 번째 니미츠급 항공모함 칼빈슨함(CVN-70)은 순양함 프린스턴함, 이지스 구축함 스터렛함과 함께 지난 2일 부산에 입항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 미국이 북한을 향해 "안전상 우려를 무시하고 정세를 악화시키는 도발적인 행위들을 상습적으로 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4일 보도했다. 김 부부장은 또 "가장 적대적이며 대결적이려는 자기의 의사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며 전략적 수준의 위혁(힘으로 으르고 협박함)적 행동을 증대시키는 선택안을 심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고 위협했따. 이어 김 부부장은 미국이 칼빈슨함 입항, 핵잠수함 알렉산드리아 전개 등을 통해 전략 자산들을 상시 배치 수준에서 한반도에 투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달 중 실시될 미일한 해상훈련과 프리덤 실드 합동군사연습(한미 합동군사연습·FS)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고조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부부장은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무모한 과시성, 시위성 망동들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행동을 동반한 대조선적대시정책은 우리의 핵전쟁억제력의 무한대한 강화의 명분을 충분히 제공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가만히 앉아 정세를 논평하는데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미국이 계속해 군사적 힘의 시위행위에서 기록을 갱신해나간다면 우리도 마땅히 전략적 억제력 행사에서 기록을 갱신할 수 밖에 없다"면서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시험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낯 뜨거운 문구 버젓이… 불법 ‘바닥조명’ 기승 [현장, 그곳&]

“유흥 업소를 홍보하는 문구가 버젓이 아이들에게도 노출되고 있는데 단속을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지난 2일 오후 6시께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의 한 거리.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이곳 도로 한 가운데 고보조명이 설치돼 있었다. 조명의 가로 크기는 약 5m로 도로 폭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조명에는 ‘하이볼&칵테일’이라는 문구와 함께 상세한 가게 위치가 적혀 있었다. 같은 날 오후 10시께 부천시 원미구 신중동역 인근도 상황은 마찬가지. 음식점이 즐비한 이곳에는 총 3개의 고보조명이 설치돼 있었으며 고깃집, 클럽, 노래방 등 가게 홍보를 위한 조명들 다수가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중 한 조명에는 ‘이쁜애 제일 많은 곳’이라는 문구도 함께 적혀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A씨(40대·여)는 “바로 옆 건물에 아이들 학원도 많은데 지나다니다가 아이들이 이런 문구를 보게 될까 걱정된다”며 “이런 건 지자체에서 단속 안 해도 되는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경기도내 공공목적으로만 사용이 가능한 고보조명(바닥조명)이 지자체 단속을 피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고보조명은 공공시설물 이용 광고물로 허가를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고보조명은 전자빔 등을 이용해 문자 및 도형을 투사, 보도의 노면에 표시하는 조명으로 적은 비용에 홍보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고보조명의 경우 상업 목적은 불법임에도 유흥가를 비롯해 도내 곳곳에서 공무원들의 단속이 활발한 낮 시간이 아닌 밤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가 단속은커녕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중 단속 구역 위주로 불법 배너나 입간판 현수막을 대상으로 한 단속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며 “불법인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밤에만 적발이 가능한 탓에 민원이 접수되지 않으면 확인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즉각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단속을 하지 않는 건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분명한 문제가 된다”며 “조명 자체가 불법인 데 거기에 불쾌한 문구를 담고 있으면 인권 침해 문제나 경범죄 등에도 해당할 수 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對 중국 관세 10% 추가…加·멕에 25% 부과 강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 모두 20%를 올리기로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백악관은 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은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펜타닐은현재 18~45세 미국인의 사망 원인 1위이며 그 원료는 중국에서 만들어진다"라면서 "중국 공산당은 펜타닐을 제조하고 수출하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방금 대(對)중국 관세를 20%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4일부터 좀비 마약인 펜타닐 대응 노력 미흡 등의 이유로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그는 또 지난달 27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을 통해 이달 4일부터 중국에 10%의 관세를 더 부과하겠다고 했었다. 한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예정대로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대만의 파운드리업체 TSMC의 대미(對美) 반도체 생산설비 투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가 4일부터 시행된다고 확인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부과할 25% 관세와 관련해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각국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와 비관세 장벽 등을 고려해 적용하는 '상호 관세'를 4월2일부터 부과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4일부터 멕시코·캐나다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뒤 캐나다와 멕시코의 마약 및 불법이민자 유입 억제 등 국경강화 방지 등 협의를 거쳐 두 나라에 대한 25% 관세를 1개월 유예했었다. 이에 따라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대부분 물품에 대해 무관세였던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북미 3국간 관세전쟁이 본격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24시간 남았다… 막판 한표 호소 [새마을금고 이사장선거]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 D-1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며, 233명의 경기인천지역 후보자들이 마지막 유권자 마음 잡기에 나선다. 3일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5일 치러질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의 선거 운동 기간이 4일 종료된다. 이에 앞서 지난달 18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후보자 등록 기간에 전국 1천102개 금고에서 1천542명이 입후보했다. 경기도에서는 94개 금고에 149명이, 인천에선 49개 금고에 84명이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경기인천지역 143개 금고 중 71개 금고(경기 51개·인천 20개)는 후보자가 1명이어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다. 경기인천지역 233명의 후보자는 후보자 등록 종료 다음 날인 20일부터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전화 ▲문자메시지 ▲정보통신망 ▲명함 배부 및 지지 호소 ▲공보·벽보 게시 ▲어깨띠·소품 사용 ▲정책 발표 등을 통한 선거 운동은 오늘까지 가능하다. ‘제1회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는 MG새마을금고 창립 이래 최초로 시행되는 이사장 직선제다. 당초 MG새마을금고중앙회 이사장 선거를 자체적으로 시행했지만, 금품 제공 등 부정 비리 이슈가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자 국회는 지난 2021년 새마을금고법을 개정, 선거의 운영과 감독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며 자산 규모에 따른 직·간선제 투표를 진행하도록 했다. 이에 이번 전국동시새마을금고이사장선거에서 자산규모가 2천억원 이상인 금고는 직선제로 이사장을 선출한다. 2천억원 미만인 금고는 총회나 대의원회에서 간접선거를 진행한다. 이번 이사장 선거를 실시하는 경기도 94개 금고 중 84개 금고가 직선제로 선거를 진행한다. 인천은 49개 금고 가운데 21개 금고에서 직선제 방식으로 이사장을 선출한다. 나머지 경기 10개 금고, 인천 28개 금고는 간선 방식 중 대의원회 투표로 이사장을 뽑는다. MG새마을금고중앙회 관계자는 “한 달 반여의 선거 기간 동안 많은 후보자의 진심이 유권자에게 전달됐길 바란다”면서 “중앙회도 선거 종료 시점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2. 경기도·인천 경제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2025년, 경기도와 인천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두 지역의 발자취는 소상공인의 눈물과 땀, 기업의 노력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대한민국 경제 역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작지만 고귀한 요소인 ‘사람’에서부터 그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복 이후 80년간 경기, 인천의 산업화 과정과 경제적 변화를 경제 통계와 지표를 통해 짚어봤다. ■ 수도권 경제를 움직인 거대한 흐름 ‘인구 이동’ 광복 이후 경기도와 인천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인구 이동’이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기록에 따르면 1949년 전국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 경기도 인구는 275만594명(13.6%)으로 집계됐다. 당시 경기도 행정구역에는 현재의 서울과 인천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인구는 5천121만7천221명이며, 이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인구는 2천604만 7천523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50.9%에 달한다. 전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천369만4천685명의 경기도 인구와 302만1천10명 인천 인구의 합은 1천671만5천695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32.6%를 차지한다. 수도권 인구 증가는 단순한 팽창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는 원동력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경기도는 서울과 맞닿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IT산업의 중심지로, 인천은 항만과 물류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더 많은 경제활동을 유발해 수도권 전체를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로 변화시켰고, 오늘날까지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 산업화와 공업 발전, 그리고 분리된 길: 경인 경제, 시대의 흐름을 타다 대한민국 경제가 기틀을 다지던 시기, 경기도와 인천은 빠르게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산업화의 출발점이자 경인 지역 경제의 토대가 형성된 1940년대 경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를 살펴봤다.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경기도에서는 다양한 업종의 공장이 활발히 가동됐다. 특히 ▲식품(45개) ▲화학(44개) ▲기계(30개) ▲섬유(20개) ▲요업(17개) ▲광업(17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 활동이 이어졌다. 이는 미군정 시기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 재산을 불하받아 운영된 공장들로,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도 경기도 산업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천 역시 산업화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1946년 3월 인천에서는 168개의 공장이 운영됐고 불과 3개월 후인 6월, 242개로 급증했다. 이는 인천이 빠르게 산업 중심지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천은 일본 식민지 시절 귀속된 공장들이 대거 분포했던 지역으로 당시 귀속 공장 201개 중 135개가 집중된 지역이었다. 1949년 ‘인천부(仁川府)’에서 공식적으로 ‘인천시’로 승격될 때까지도 인천은 경기도 산업의 핵심을 담당했다. 산업의 기틀을 다진 경기도와 인천에선 시대별 산업 변화를 눈여겨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경기도에서는 음·식료품, 섬유·의복 등 소비재 산업이 주를 이뤘으나,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바탕으로 기계 및 장비, 고무·화학·석유·석탄 등 중화학공업이 급성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한국 최대 규모의 경인공업지대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주요 대상 지역이 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이 시기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제품 수출 비중은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급증했다. 1981년, 인천이 경기도에서 완전히 분리돼 독립된 광역시로 재탄생했고, 경기도와 인천의 주요한 산업에도 변화가 일었다. 1980년대 이후 경기도는 IT,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성장하며 산업 구조가 고도화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평택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이 발전하고, 판교·광교테크노밸리 등 첨단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경기도 4차 산업의 특화도와 동태를 분석한 GRI연구논총에 따르면 경기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에서 ICT 제조업종의 비중은 2002년 24.3%에서 2012년 39.6%로 상승했다. 인천은 2000년대 이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을 발전시켰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인천항은 지난 2022년 컨테이너 물동량 335만 TEU를 처리했으며 2023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국제 화물 운송 실적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국제 비즈니스, 첨단 산업, 관광 레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지역 경제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 시장과 소상공인 시장과 소상공인의 변화는 단순한 상업 흐름을 넘어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시대별로 시장의 형태와 소상공인의 업종이 달라지며 경기도와 인천 경제의 구조도 함께 변화해 왔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에 따르면 1954년 경기도에는 111개의 시장이 운영됐다. 축산물과 농산물이 주된 거래 품목이었으며,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중심지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상설시장이 증가하고 수원과 인천 등지에 중앙도매시장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경기도의 상점 수가 2만851개로 집계됐으며, 이 중 법인 사업체는 330개였다. 농산물과 식료품 중심이던 시장은 점차 의류, 의약품, 건축자재 등 다양한 품목을 거래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에는 전통시장 수가 165개로 늘었고, 이 중 70개가 상설시장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슈퍼체인’(대형 마트 체인)이 등장하면서, 유통 구조도 커지는 흐름을 보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집계한 지난해 7월 기준 전통시장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150개의 전통시장과 2만3천40개의 점포, 인천에는 44개의 인증된 전통시장과 1만1천504개의 점포가 있다 ■ GRDP로 본 대한민국 경제 중심지 경기·인천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는 광복 이후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1940년대 후반, 공식적인 경제 통계가 부족했던 시기에도 연구자들은 간접추계를 통해 당시 경제 규모를 분석했다. 표학길·이근희의 ‘한국의 지역별 국내총생산(RGDP)의 간접추계’ 연구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84년까지 경기도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29%에서 51% 사이의 부가가치 비중을 기록하며 산업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부터는 현대적인 지역내총생산(GRDP) 개념이 도입되며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 규모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집계가 시작된 1985년 기준 경기도의 GRDP는 약 13조원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이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며 2014년에는 GRDP가 약 352조를 달성, 약 350조였던 서울의 GRDP를 초과하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실질 경제성장률이 서울의 3배에 달하는 성과를 기록하며 수도권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탈서울 현상, 신도시 개발, 교통망 확충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진됐다. 2023년 기준 경기도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35.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56.0%에 달하면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고 있다. 인천의 성장 속도도 눈에 띈다. 1985년 인천의 GRDP는 3조2천억원으로 전국 8위를 기록했다. 2017년 GRDP는 88조5천억원으로 특별·광역시 중 서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인천 역시 2023년 제조업 비중이 27.7%를 차지하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62.1%로 증가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문미성 경기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와 산업이 집적된 경인 지역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핵심 지역으로서 시대별 성장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과 교통 인프라를 제공하며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를 이끌었다”며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미래 성장을 주도하는 선도 지역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43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잿빛 폐허 위에서 희망을 설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광복과 전쟁의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과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일궈낸 이들. 우리는 그들을 ‘지역경제의 개척자’라 부르기로 했다. 1950년 삼백산업(三白産業)과 광공업의 불씨를 댕기고 중화학 공업과 IT·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세계 시장에 진출한 기업부터, 지역 주민과 호흡하며 삶의 애환을 나눈 소상공인의 이야기까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 경제의 개척자들을 조명해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그려본다. 편집자주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1. 불모지서 ‘기회의 땅’으로 “대한 독립 만세!” 1945년 8월15일. 억압의 어둠을 뚫고 두 손이 하늘을 갈랐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희망의 불씨가 뜨거운 태양 아래 솟구쳤다. 3·1운동으로 시작된 외침은 8월의 환희로 타오르고, 광복의 깃발이 억센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그날, 광장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함성을 품은 사람들은 무너진 폐허 위로 다시 일어섰다. 고난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새로운 역사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적은 경기도를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경제 심장부로 만들고, 인천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우뚝 세웠다. 대한민국 경제의 태동을 알리고 중심을 지켜온 지역 경제. 그 안에는 광복 전후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기업들이 숨 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40년대부터 지역 곳곳에서는 산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안양의 노루페인트는 광복과 함께 건설·산업 현장에 색을 입히며 성장했고, 삼성제약은 1950년대 국민 건강을 책임지며 국내 제약 산업을 선도했다. 1951년 인천의 공성운수와 이천 애경개발은 교통과 생활용품 산업을 기반으로 도시 재건의 초석을 다지며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한제분은 1952년부터 한국 밀가루 산업을 재건하며 국민 식생활을 책임지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대한전선과 가온전선은 전력과 통신망 구축을 주도하며 경제 회복의 기틀을 다졌다. 팍팍한 삶 속에서 꿋꿋이 희망을 노래한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도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오산 할머니집 설렁탕은 광복 전부터 지금까지 설렁탕 한 그릇으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왔다. 1945년, 의정부의 부흥국수는 피란민들이 모여드는 시장 한편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으로 자리를 잡으며 오늘날 국수 공장을 세우는 역사를 만들었다. 같은 해 문을 연 인천 영제한의원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침술을 이어왔고, 수원 만빈원은 1950년부터 짜장면 한 그릇에 고향의 맛을 담아내며 지역 경제의 뿌리를 지켜왔다. 이들은 단순 사업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역사의 증인이다. 1941년 설립돼 국내 전선 산업의 포문을 연 ‘대한전선’ 관계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헌신해 온 모든 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앞으로도 경기도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2025년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울림으로 남아있는 1945년 8월15일 그날의 함성. 그 80년의 역사 속 경기도와 인천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하며 성장의 발판이 된 기업들과 소상공인을 만나 이들의 역사와 시대상을 조명해 본다. ■ 광복 이후 ‘대한’의 이름으로…대한민국 불 밝힌 대한전선의 태동 대한민국 ‘빛’의 역사를 되짚어가면 국내 전선 산업의 시작을 알린 대한전선이 있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조선전선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조선전선’은 일본이 물러나며 대한민국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故 설경동 회장은 이를 불하받아 경기도 안양에 자랑스러운 ‘대한’의 이름을 내걸고 대한전선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한전선 초대 회장인 설경동 회장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업가였다. 설경동 회장이 1936년 세운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는 연 1천만원(현재 가치 1조원)에 달하는 동해안 정어리어업 및 가공 산업을 주산업으로 삼았다. 1945년에는 선단 70여척을 보유하면서 그 규모를 더욱 키워 나갔다. 그러나 설 회장은 광복 당시 친일파로 몰려 공산당에 재산을 몰수당했고, 남은 어선 몇 척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수산과 무역회사 대한산업을 설립했다. 당초 사업에 소질을 보였던 설 회장은 회사를 굳건히 성장시켰고, 수원의 성냥공장까지 인수하며 한국전쟁 전 성냥업계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전쟁과 함께 설 회장의 전 재산은 먼지가 돼 사라졌다. 그러나 설 회장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 대한방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 1954년에는 대동증권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설 회장은 일본의 잔재였던 조선전선을 불하받아 이듬해 대한전선으로 재창업했다. 굴곡진 설 회장의 인생처럼 주인을 찾지 못하고 내팽개쳐 있던 과거 조선전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전선으로 대한민국을 밝히기 시작했다. 대한전선은 ‘조선’이라는 사명(社名)을 벗고 ‘대한’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전무했던 전선 산업의 시초가 되는 등 여러 의미의 개척을 일궈냈다. ■ 어둠 속 한 줄기 빛…광복과 함께 전선 산업 선도한 ‘대한전선’ 광복 이후 1955년 조선전선은 현재의 사명인 대한전선으로 사명을 변경,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1957년 PVC 피복 전선을 생산했으며 1959년 국내 최초 용동 압연기 설치, 1961년 국내 최초 연피통신케이블 생산 등 ‘최초’의 기록을 세워나갔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에 들어서며 대한전선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1960년 초반 국가 주도의 인프라 구축 사업 등 수많은 현장에 전선을 공급했으며, 1964년 국내 최초로 전선을 해외에 공급하며 대한전선이라는 사명과 대한민국을 알리는 국위선양을 이뤄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8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대한전선은 당시 재계 5위까지 성장했다. 대한전선은 1969년 텔레비전을, 이듬해인 1970년에는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산업 발전의 고도화가 진행된 1970년대 후반, 대한전선은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초고압 OF 케이블 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초 광섬유를 개발하면서 전선 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국내외 전력 및 통신망 구축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전선은 1980년대에 ‘제2의 창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국내 전선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본격적인 기술 연구 및 생산을 위해 기술연구소와 안양 광통신케이블 공장을 설립, 해저용 광케이블과 누설 동축케이블, 국내 최초 Kraft 절연 345kV OF 케이블 등을 개발해 냈다. 대한전선은 기술력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하며 경기지역의 제조업에 한 획을 그었다. 수출 등 세계 무대로 영역을 확장한 대한전선은 1997년 제34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 해외에서 대한전선의 위상을 증명해 보였다. 세계 10대 종합 케이블 기업으로 성장한 대한전선은 자동화, 4차산업의 등장 등 전 산업에 변화의 파동이 일었던 2010년대에도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내공으로 흔들림 없는 성장세를 이어 나갔다. 지난 2011년 대한전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당진공장을 준공했으며 2023년 국내 최초로 525kV 전압형 XLPE HVDC 케이블 국제 인증을 받았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대한전선은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비전과 경영이념, 중장기 전략 등을 수립해 도약과 전진을 이뤄 나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을 채워 나간 대한전선은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과 세계 최고의 케이블&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 하에 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음도 치료합니다…1945년 의료 산업의 포문을 연 ‘영제한의원’ 경기인천지역의 경제를 이끌어 온 ‘지역경제의 개척자’는 기업뿐만이 아니다. 빽빽한 보도블록 틈에서도 푸릇한 새싹이 고개를 내밀 듯, 척박했던 광복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지역 경제를 성장시킨 소상공인도 주역이다. 현재는 구도심이 돼 버린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자리하고 있는 영제한의원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광복 이전 문을 연 영제한의원은 길 영(永), 구할 제(濟), 생명을 영원히 구한다는 염원을 담아 이름 붙여졌다. 이는 한의학의 핵심인 ‘구제창생(救濟蒼生)’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염원을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인간적이며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영제한의원 경영 방침이자 역사의 시작이다. 영제한의원은 노학영 초대 원장, 노두식 2대 원장, 노승조 3대 원장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대째 지역 주민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주치병원으로 자리 잡기까지 여러 시대적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창업주인 노학영 1대 원장은 대한민국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노학영 원장은 1940년대 초 인천 도원동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복숭아밭이 많아 ‘도산정(桃山町)’이라고 불렸던 도원동은 일제강점기 병참기지화로 노동자들이 살 집이 부족해지자 인천부 즉, 지방관청이 직접 집을 지어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난을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이 대거 도원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영제한의원을 찾는 일본인 환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길고 긴 일본의 통치가 끝난 1945년, 노학영 원장은 광복을 기념하며 1945년을 개원 원년으로 삼고 지금의 위치인 숭의동에 터를 잡았다. 노학영 원장은 ‘동의보감’, ‘변증기문’, ‘방약합편’ 등 한의학 처방 서적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일일이 옮겨 적거나 목판, 금속활자로 찍어내 의술을 연구했으며, 노 원장의 영제한의원은 광복의 감동과 함께 활짝 문을 열고 지역민과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됐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로의 모습을 갖춰가던 꽃 같은 시절이 지속될 줄 알았지만, 불과 5년 뒤 6·25전쟁이 발발하며 세상은 암흑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그 일대를 뒤로 한 채 무의도로 피난을 가게 됐고, 인고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영제한의원은 흔적도 찾기 어려울 수준으로 폐허가 돼 버린 상태였다. 절망만이 남아있던 노학영 원장은 영제한의원이 지역민의 웃음꽃이 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재건에 힘을 쏟았다. 노 원장은 전쟁 잔해를 정리하며 수천 번의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항상 그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응원해 준 주변 상인들과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숭의동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1978년 아버지인 노학영 원장으로부터 병원을 물려받은 노두식 2대 원장은 아버지 노학영 원장과 한의원이 80년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역에 대한 ‘애정’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두식 원장은 “아버지인 노학영 초대 원장에 이어 47년 동안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병을 잘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서 “‘영제’라는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힘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지역민과 함께하고, 지역 경제 역사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38

전국에 눈비…강한 바람에 풍랑특보까지 [날씨]

화요일인 4일 전국에 비 또는 눈이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분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새벽(0~6시)부터 강원산지·동해안과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에 비 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오전(6~12시)부터는 전국에서 눈이 내리다 자정 전에 대부분 그친다. 특히 강원산지·동해안과 경북북부를 중심으로 시간당 3~5㎝(특히 강원산지 시간당 5㎝ 이상), 경기남동부와 그 밖의 강원도, 충청권, 일부 경상권은 시간당 1~3㎝의 강하고 습한 무거운 눈이 내리면서 대설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별 예상 적설량은 ▲경기남부 3~8㎝ ▲서울·인천·경기북동부 1~5㎝ ▲경기북서부, 서해5도 1㎝ 내외 ▲강원산지·동해안 10~30㎝(많은 곳 강원산지 40㎝ 이상) ▲강원내륙 5~10㎝(많은 곳 15㎝ 이상) ▲충북 3~10㎝ ▲대전·세종·충남내륙 3~8㎝ ▲충남서해안 1~5㎝ ▲전북동부 1~5㎝ ▲전북중부내륙, 전남동부내륙 1㎝ 내외 ▲경북북동산지·경북북부동해안 10~30㎝ ▲경북북부내륙 5~10㎝ ▲대구(군위)·경북남서내륙, 경북남부동해안, 울산·경남서부내륙 3~8㎝ ▲대구(군위 제외)·경북중남부내륙, 경남중·동부내륙, 울릉도·독도 1~5㎝ 등이다. 강수량의 경우 ▲경기남부 5~10㎜ ▲서울·인천·경기북부, 서해5도 5㎜ 내외 ▲강원산지·동해안 10~40㎜ ▲강원내륙 5~20㎜ ▲대전·세종·충남, 충북 5~20㎜ ▲광주·전남 5~30㎜ ▲전북 5~20㎜ ▲경북북동산지·경북동해안 10~30㎜ ▲대구·경북내륙, 부산·경남, 울산, 울릉도·독도 5~30㎜ ▲제주도 10~40㎜ 등으로 예보됐다. 눈비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가시거리가 짧아지고 도로가 미끄럽다. 또 중부지방과 경상권을 중심으로 기온이 점차 내려가면서, 빙판길과 도로 살얼음이 나타나는 곳이 많다. 차량 운행 시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감속 운행하는 등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한편 당분간 전국에 바람이 순간풍속 55~70㎞/h(15~20m/s)(산지 70~90㎞/h(20~25m/s))로 강하게 부는 곳이 많다. 제주도의 경우 순간풍속 70㎞/h(20m/s) 이상(제주도 94㎞/h(26m/s) 이상)으로 매우 강하게 부는 곳이 있다. 해상에서는 풍랑특보가 발효됐다. 서해중부먼바다와 그 밖의 전남앞바다, 경남서부남해앞바다는 밤까지, 서해남부먼바다와 남해서부먼바다, 동해중부앞바다, 경북북부앞바다, 제주도앞바다는 다음날까지, 그 밖의 남해동부해상과 동해중부먼바다, 동해남부해상, 제주도남쪽먼바다는 당분간 바람이 30~80㎞/h(8~22m/s)로 매우 강하게 불고 물결이 1.5~4.0m(대부분 동해상과 남해상, 서해남부남쪽먼바다, 제주도해상 5.0m 이상)로 매우 높게 인다. 또 제주도남쪽해상에는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곳이 있으니 해상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5~4도(강원 -7도), 낮 최고기온은 2~8(제주 13도)도로, 평년(최저 -5~4도, 최고 7~12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다. 지역별로 기온분포는 ▲수도권 -4~5도 ▲부산·울산·경남 -2~8도 ▲대구·경북 -2~7도 ▲광주·전남 0~9도 ▲전북 -1~6도 ▲대전·세종·충남 -2~6도 ▲충북 -4~5도 ▲강원 -7~6도 ▲제주 7~13도 등으로 전망됐다. 미세먼지는 청정한 동풍 기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강수 영향으로 대기질이 맑아 전 권역이 ‘좋음’ 수준을 보인다.

[사설] ‘추락사’ 못 막은 건설사, 법정 구속 못 피한다

안성 서울세종고속도로 사고는 추락이었다. 교각 위에 올려진 ‘거더’ 6개가 옆으로 밀렸다. 그 위에 올려진 ‘런처’를 옮기는 작업 중이었다. 상판과 함께 작업자들이 추락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런처’ 고정 작업이 부실했다는 얘기도 있다. 워낙 대형 사고여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사실 우리 주변의 추락사는 생각보다 많다. 많은 경우 사고의 원인은 안전장치 미비다. 작업모, 안전대 등을 착용하지 않는 원시적 사고다. 그 실태를 보자. 지난해 3월 용인시 처인구 주택 건설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숨졌다. 거푸집 고정 작업을 하다가 5m 아래로 추락했다. 지난달 5일에도 오산의 건축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숨졌다. 추락 사고였다. 지난 6일에도 평택의 예술의전당 건설 현장에서 50대 남성이 숨졌다. 역시 추락사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경기도에서 228명이 추락해 숨졌다. 같은 기간 전체 건설 현장 사고 사망자는 288명이다. 무려 79.1%가 추락사다. 큰 사고가 생길 때마다 대책이란 게 나왔다. 작업자의 안전 조치를 더 강제하는 온갖 방안이다. 더 이상 안전 대책을 낼 게 없을 정도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가 이렇게 진단했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안전매뉴얼은 완벽에 가깝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편의 등을 이유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안전 수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관리 및 감독을 철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문제는 현장의 안전 수칙 준수다. 이 대목에서 모두가 주목해야 할 판결 추이가 있다. 추락사가 발생한 책임에 대한 벌이 엄하다. 26일 인천지법 형사2단독 김지후 판사의 판결이 그랬다. 2022년 7월 한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가 13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작업자는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김 판사는 작업자를 고용한 건설사 대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1월 서울지법 형사7단독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건축 현장에서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안전모 미착용, 안전 난간 미설치 등이 확인됐다. 재판부는 대형 건설사 현장 소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역시 법정 구속했다. 관련 판결의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 합의=집행유예’라는 통례를 깨고 있다. 적당한 형량을 기대하던 피고인들에 철퇴를 내리고 있다. “안전조치 의무 위반과 과실 정도가 가볍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판시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주목해야 할 판결 추이다. 인부가 추락사한 건설회사를 법원이 용서하지 않고 있다.

[사설] 주차장 방불 아암대로… 빨리 제2순환선 돌파구 찾아야

해안도로라 불리는 인천 아암대로가 과포화 상태라고 한다. 화물차와 승용차가 뒤엉켜 거대한 주차장을 이룬다. 이런데도 주변 지역 교통량은 계속 늘어난다. 인천신항과 송도국제도시, 시흥 배곧신도시 등의 간선도로다. 생업을 위해 매일 이곳을 지나야 하는 시민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곳 10여㎞ 구간에서 1시간을 까먹기도 한다. 몇 차례 확장 사업으로 더 넓힐 수도 없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건설이 해법이지만 마냥 늦어지니 답답하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는 수도권제1순환선의 바깥쪽을 원형으로 도는 노선이다. 전체 12개 구간(263.4㎞) 중 9개 구간은 이미 개통했다. 그러나 인천~안산 등 일부 구간이 빠져 미완성이다. 수도권제2순환선 인천~안산(19.8㎞) 구간 사업비는 1조6천889억원이다. 지난 2018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1구간인 시화나래나들목(IC)~남송도IC(8.4㎞) 구간은 올 하반기 착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2구간 남송도IC~인천 남항(11.4㎞) 구간은 아직 노선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처음 송도국제도시 바깥 서해 바다를 통과하는 노선을 계획했다. 그러나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이 반대하고 나섰다. 조망권 등 주거 환경이나 갯벌 습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부는 인천시와 협의해 대체 노선을 마련했다. 원안 노선보다 송도 6·8공구 구역에서 더 먼 바다로 떨어뜨리는 노선이다. 이와 함께 대체 습지 조성 방안도 포함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갯벌 보전과 주민 피해를 고려해 노선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달았다. 이후 국토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국토부와 인천시는 인천 구간의 대안 노선 마련을 서로 떠밀고 있다. 국토부는 인천시가 해양수산부, 주민, 단체 등과 협의, 대체 노선을 내놓으면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인천시가 처음부터 이 도로의 부지 확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도 지적한다. 그러나 인천시는 사업 주체인 국토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슨 국가 기간 사회간접자본시설 사업이 이토록 꼬여 있나. 인천시와 국토부, 환경부, 주민, 환경단체가 제각각이니 사업이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이미 개통한 인천~김포 수도권제2순환선을 달려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국토부는 수도권제2순환선이 하루 5만대의 교통량을 처리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아암대로 과포화도 해결된다. 그런데도 애꿎은 인천시민들만 꽉 막힌 아암대로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다른 곳에선 잘만 달리는데 인천만 막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