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2. 경기도·인천 경제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2025년, 경기도와 인천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격변의 시대를 지나온 두 지역의 발자취는 소상공인의 눈물과 땀, 기업의 노력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대한민국 경제 역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고 있다.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작지만 고귀한 요소인 ‘사람’에서부터 그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복 이후 80년간 경기, 인천의 산업화 과정과 경제적 변화를 경제 통계와 지표를 통해 짚어봤다. ■ 수도권 경제를 움직인 거대한 흐름 ‘인구 이동’ 광복 이후 경기도와 인천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경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인구 이동’이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기록에 따르면 1949년 전국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 경기도 인구는 275만594명(13.6%)으로 집계됐다. 당시 경기도 행정구역에는 현재의 서울과 인천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인구는 5천121만7천221명이며, 이 중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는 인구는 2천604만 7천523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50.9%에 달한다. 전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1천369만4천685명의 경기도 인구와 302만1천10명 인천 인구의 합은 1천671만5천695명으로, 전국 인구의 약 32.6%를 차지한다. 수도권 인구 증가는 단순한 팽창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짓는 원동력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경기도는 서울과 맞닿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첨단산업과 IT산업의 중심지로, 인천은 항만과 물류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더 많은 경제활동을 유발해 수도권 전체를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로 변화시켰고, 오늘날까지 그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 산업화와 공업 발전, 그리고 분리된 길: 경인 경제, 시대의 흐름을 타다 대한민국 경제가 기틀을 다지던 시기, 경기도와 인천은 빠르게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산업화의 출발점이자 경인 지역 경제의 토대가 형성된 1940년대 경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를 살펴봤다. 자료에 따르면 1946년 경기도에서는 다양한 업종의 공장이 활발히 가동됐다. 특히 ▲식품(45개) ▲화학(44개) ▲기계(30개) ▲섬유(20개) ▲요업(17개) ▲광업(17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 활동이 이어졌다. 이는 미군정 시기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귀속 재산을 불하받아 운영된 공장들로, 광복 직후 혼란 속에서도 경기도 산업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천 역시 산업화의 중심지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1946년 3월 인천에서는 168개의 공장이 운영됐고 불과 3개월 후인 6월, 242개로 급증했다. 이는 인천이 빠르게 산업 중심지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천은 일본 식민지 시절 귀속된 공장들이 대거 분포했던 지역으로 당시 귀속 공장 201개 중 135개가 집중된 지역이었다. 1949년 ‘인천부(仁川府)’에서 공식적으로 ‘인천시’로 승격될 때까지도 인천은 경기도 산업의 핵심을 담당했다. 산업의 기틀을 다진 경기도와 인천에선 시대별 산업 변화를 눈여겨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 경기도에서는 음·식료품, 섬유·의복 등 소비재 산업이 주를 이뤘으나, 1960년대 이후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바탕으로 기계 및 장비, 고무·화학·석유·석탄 등 중화학공업이 급성장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한국 최대 규모의 경인공업지대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의 주요 대상 지역이 됐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이 시기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제품 수출 비중은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급증했다. 1981년, 인천이 경기도에서 완전히 분리돼 독립된 광역시로 재탄생했고, 경기도와 인천의 주요한 산업에도 변화가 일었다. 1980년대 이후 경기도는 IT,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성장하며 산업 구조가 고도화됐다. 2000년대 이후에는 평택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이 발전하고, 판교·광교테크노밸리 등 첨단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됐다. 경기도 4차 산업의 특화도와 동태를 분석한 GRI연구논총에 따르면 경기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에서 ICT 제조업종의 비중은 2002년 24.3%에서 2012년 39.6%로 상승했다. 인천은 2000년대 이후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물류 산업을 발전시켰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인천항은 지난 2022년 컨테이너 물동량 335만 TEU를 처리했으며 2023년에는 인천국제공항이 국제 화물 운송 실적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국제 비즈니스, 첨단 산업, 관광 레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 지역 경제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 시장과 소상공인 시장과 소상공인의 변화는 단순한 상업 흐름을 넘어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시대별로 시장의 형태와 소상공인의 업종이 달라지며 경기도와 인천 경제의 구조도 함께 변화해 왔다. 경기도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경기도사’에 따르면 1954년 경기도에는 111개의 시장이 운영됐다. 축산물과 농산물이 주된 거래 품목이었으며,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중심지였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상설시장이 증가하고 수원과 인천 등지에 중앙도매시장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형태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경기도의 상점 수가 2만851개로 집계됐으며, 이 중 법인 사업체는 330개였다. 농산물과 식료품 중심이던 시장은 점차 의류, 의약품, 건축자재 등 다양한 품목을 거래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에는 전통시장 수가 165개로 늘었고, 이 중 70개가 상설시장이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슈퍼체인’(대형 마트 체인)이 등장하면서, 유통 구조도 커지는 흐름을 보였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집계한 지난해 7월 기준 전통시장 현황에 따르면 경기도에는 150개의 전통시장과 2만3천40개의 점포, 인천에는 44개의 인증된 전통시장과 1만1천504개의 점포가 있다 ■ GRDP로 본 대한민국 경제 중심지 경기·인천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는 광복 이후 급격한 변화를 거치며 대한민국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1940년대 후반, 공식적인 경제 통계가 부족했던 시기에도 연구자들은 간접추계를 통해 당시 경제 규모를 분석했다. 표학길·이근희의 ‘한국의 지역별 국내총생산(RGDP)의 간접추계’ 연구에 따르면 1953년부터 1984년까지 경기도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빠른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29%에서 51% 사이의 부가가치 비중을 기록하며 산업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1985년부터는 현대적인 지역내총생산(GRDP) 개념이 도입되며 경기도와 인천의 경제 규모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집계가 시작된 1985년 기준 경기도의 GRDP는 약 13조원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이후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며 2014년에는 GRDP가 약 352조를 달성, 약 350조였던 서울의 GRDP를 초과하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실질 경제성장률이 서울의 3배에 달하는 성과를 기록하며 수도권 경제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탈서울 현상, 신도시 개발, 교통망 확충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촉진됐다. 2023년 기준 경기도의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35.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56.0%에 달하면서 산업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반도체,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구축하고 있다. 인천의 성장 속도도 눈에 띈다. 1985년 인천의 GRDP는 3조2천억원으로 전국 8위를 기록했다. 2017년 GRDP는 88조5천억원으로 특별·광역시 중 서울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인천 역시 2023년 제조업 비중이 27.7%를 차지하지만, 서비스업 비중이 62.1%로 증가하며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문미성 경기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와 산업이 집적된 경인 지역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핵심 지역으로서 시대별 성장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과 교통 인프라를 제공하며 한국 경제의 ‘퀀텀 점프’를 이끌었다”며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미래 성장을 주도하는 선도 지역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43

‘광복 80년’ 불굴의 도전… ‘기적의 경제’ 일구다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잿빛 폐허 위에서 희망을 설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광복과 전쟁의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과 지역의 경제 발전을 일궈낸 이들. 우리는 그들을 ‘지역경제의 개척자’라 부르기로 했다. 1950년 삼백산업(三白産業)과 광공업의 불씨를 댕기고 중화학 공업과 IT·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세계 시장에 진출한 기업부터, 지역 주민과 호흡하며 삶의 애환을 나눈 소상공인의 이야기까지.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역 경제의 개척자들을 조명해 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그려본다. 편집자주 광복 80주년 특별 기획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1. 불모지서 ‘기회의 땅’으로 “대한 독립 만세!” 1945년 8월15일. 억압의 어둠을 뚫고 두 손이 하늘을 갈랐다.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던 희망의 불씨가 뜨거운 태양 아래 솟구쳤다. 3·1운동으로 시작된 외침은 8월의 환희로 타오르고, 광복의 깃발이 억센 바람을 타고 펄럭였다. 그날, 광장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함성을 품은 사람들은 무너진 폐허 위로 다시 일어섰다. 고난의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새로운 역사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기적은 경기도를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하는 경제 심장부로 만들고, 인천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으로 우뚝 세웠다. 대한민국 경제의 태동을 알리고 중심을 지켜온 지역 경제. 그 안에는 광복 전후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기업들이 숨 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40년대부터 지역 곳곳에서는 산업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안양의 노루페인트는 광복과 함께 건설·산업 현장에 색을 입히며 성장했고, 삼성제약은 1950년대 국민 건강을 책임지며 국내 제약 산업을 선도했다. 1951년 인천의 공성운수와 이천 애경개발은 교통과 생활용품 산업을 기반으로 도시 재건의 초석을 다지며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한제분은 1952년부터 한국 밀가루 산업을 재건하며 국민 식생활을 책임지는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대한전선과 가온전선은 전력과 통신망 구축을 주도하며 경제 회복의 기틀을 다졌다. 팍팍한 삶 속에서 꿋꿋이 희망을 노래한 소상공인들의 이야기도 가슴을 뜨겁게 달군다. 오산 할머니집 설렁탕은 광복 전부터 지금까지 설렁탕 한 그릇으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왔다. 1945년, 의정부의 부흥국수는 피란민들이 모여드는 시장 한편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으로 자리를 잡으며 오늘날 국수 공장을 세우는 역사를 만들었다. 같은 해 문을 연 인천 영제한의원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침술을 이어왔고, 수원 만빈원은 1950년부터 짜장면 한 그릇에 고향의 맛을 담아내며 지역 경제의 뿌리를 지켜왔다. 이들은 단순 사업을 넘어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한 역사의 증인이다. 1941년 설립돼 국내 전선 산업의 포문을 연 ‘대한전선’ 관계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에 헌신해 온 모든 분의 노고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며 “앞으로도 경기도 경제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2025년 우리에게 여전히 뜨거운 울림으로 남아있는 1945년 8월15일 그날의 함성. 그 80년의 역사 속 경기도와 인천에서 대한민국의 경제를 지탱하며 성장의 발판이 된 기업들과 소상공인을 만나 이들의 역사와 시대상을 조명해 본다. ■ 광복 이후 ‘대한’의 이름으로…대한민국 불 밝힌 대한전선의 태동 대한민국 ‘빛’의 역사를 되짚어가면 국내 전선 산업의 시작을 알린 대한전선이 있다. 대한전선의 역사는 조선전선에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세워진 ‘조선전선’은 일본이 물러나며 대한민국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故 설경동 회장은 이를 불하받아 경기도 안양에 자랑스러운 ‘대한’의 이름을 내걸고 대한전선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한전선 초대 회장인 설경동 회장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업가였다. 설경동 회장이 1936년 세운 동해수산공업주식회사는 연 1천만원(현재 가치 1조원)에 달하는 동해안 정어리어업 및 가공 산업을 주산업으로 삼았다. 1945년에는 선단 70여척을 보유하면서 그 규모를 더욱 키워 나갔다. 그러나 설 회장은 광복 당시 친일파로 몰려 공산당에 재산을 몰수당했고, 남은 어선 몇 척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조선수산과 무역회사 대한산업을 설립했다. 당초 사업에 소질을 보였던 설 회장은 회사를 굳건히 성장시켰고, 수원의 성냥공장까지 인수하며 한국전쟁 전 성냥업계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한국전쟁과 함께 설 회장의 전 재산은 먼지가 돼 사라졌다. 그러나 설 회장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1953년 방직공장을 인수, 대한방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또 1954년에는 대동증권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 설 회장은 일본의 잔재였던 조선전선을 불하받아 이듬해 대한전선으로 재창업했다. 굴곡진 설 회장의 인생처럼 주인을 찾지 못하고 내팽개쳐 있던 과거 조선전선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전선으로 대한민국을 밝히기 시작했다. 대한전선은 ‘조선’이라는 사명(社名)을 벗고 ‘대한’으로 다시 태어나 우리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전무했던 전선 산업의 시초가 되는 등 여러 의미의 개척을 일궈냈다. ■ 어둠 속 한 줄기 빛…광복과 함께 전선 산업 선도한 ‘대한전선’ 광복 이후 1955년 조선전선은 현재의 사명인 대한전선으로 사명을 변경,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했다. 1957년 PVC 피복 전선을 생산했으며 1959년 국내 최초 용동 압연기 설치, 1961년 국내 최초 연피통신케이블 생산 등 ‘최초’의 기록을 세워나갔다. 196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에 들어서며 대한전선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1960년 초반 국가 주도의 인프라 구축 사업 등 수많은 현장에 전선을 공급했으며, 1964년 국내 최초로 전선을 해외에 공급하며 대한전선이라는 사명과 대한민국을 알리는 국위선양을 이뤄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68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대한전선은 당시 재계 5위까지 성장했다. 대한전선은 1969년 텔레비전을, 이듬해인 1970년에는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탁상용 전자계산기를 국내 최초로 생산했다. 산업 발전의 고도화가 진행된 1970년대 후반, 대한전선은 전 세계에서 8번째로 초고압 OF 케이블 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초 광섬유를 개발하면서 전선 산업의 선두 주자로 부상했다. 국내외 전력 및 통신망 구축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전선은 1980년대에 ‘제2의 창업’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국내 전선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했다. 본격적인 기술 연구 및 생산을 위해 기술연구소와 안양 광통신케이블 공장을 설립, 해저용 광케이블과 누설 동축케이블, 국내 최초 Kraft 절연 345kV OF 케이블 등을 개발해 냈다. 대한전선은 기술력과 전문성 강화에 집중하며 경기지역의 제조업에 한 획을 그었다. 수출 등 세계 무대로 영역을 확장한 대한전선은 1997년 제34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5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 해외에서 대한전선의 위상을 증명해 보였다. 세계 10대 종합 케이블 기업으로 성장한 대한전선은 자동화, 4차산업의 등장 등 전 산업에 변화의 파동이 일었던 2010년대에도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내공으로 흔들림 없는 성장세를 이어 나갔다. 지난 2011년 대한전선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당진공장을 준공했으며 2023년 국내 최초로 525kV 전압형 XLPE HVDC 케이블 국제 인증을 받았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대한전선은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비전과 경영이념, 중장기 전략 등을 수립해 도약과 전진을 이뤄 나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을 채워 나간 대한전선은 앞으로의 대한민국 100년과 세계 최고의 케이블&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청사진 하에 이를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음도 치료합니다…1945년 의료 산업의 포문을 연 ‘영제한의원’ 경기인천지역의 경제를 이끌어 온 ‘지역경제의 개척자’는 기업뿐만이 아니다. 빽빽한 보도블록 틈에서도 푸릇한 새싹이 고개를 내밀 듯, 척박했던 광복 이후 부단한 노력으로 지역 경제를 성장시킨 소상공인도 주역이다. 현재는 구도심이 돼 버린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자리하고 있는 영제한의원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광복 이전 문을 연 영제한의원은 길 영(永), 구할 제(濟), 생명을 영원히 구한다는 염원을 담아 이름 붙여졌다. 이는 한의학의 핵심인 ‘구제창생(救濟蒼生)’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염원을 바탕으로 환자들에게 인간적이며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영제한의원 경영 방침이자 역사의 시작이다. 영제한의원은 노학영 초대 원장, 노두식 2대 원장, 노승조 3대 원장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3대째 지역 주민의 아픈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주치병원으로 자리 잡기까지 여러 시대적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창업주인 노학영 1대 원장은 대한민국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노학영 원장은 1940년대 초 인천 도원동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복숭아밭이 많아 ‘도산정(桃山町)’이라고 불렸던 도원동은 일제강점기 병참기지화로 노동자들이 살 집이 부족해지자 인천부 즉, 지방관청이 직접 집을 지어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난을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이 대거 도원동에 자리를 잡았으며 영제한의원을 찾는 일본인 환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길고 긴 일본의 통치가 끝난 1945년, 노학영 원장은 광복을 기념하며 1945년을 개원 원년으로 삼고 지금의 위치인 숭의동에 터를 잡았다. 노학영 원장은 ‘동의보감’, ‘변증기문’, ‘방약합편’ 등 한의학 처방 서적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일일이 옮겨 적거나 목판, 금속활자로 찍어내 의술을 연구했으며, 노 원장의 영제한의원은 광복의 감동과 함께 활짝 문을 열고 지역민과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 됐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로의 모습을 갖춰가던 꽃 같은 시절이 지속될 줄 알았지만, 불과 5년 뒤 6·25전쟁이 발발하며 세상은 암흑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그 일대를 뒤로 한 채 무의도로 피난을 가게 됐고, 인고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온 영제한의원은 흔적도 찾기 어려울 수준으로 폐허가 돼 버린 상태였다. 절망만이 남아있던 노학영 원장은 영제한의원이 지역민의 웃음꽃이 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재건에 힘을 쏟았다. 노 원장은 전쟁 잔해를 정리하며 수천 번의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항상 그의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응원해 준 주변 상인들과 노 원장은 영제한의원과 숭의동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1978년 아버지인 노학영 원장으로부터 병원을 물려받은 노두식 2대 원장은 아버지 노학영 원장과 한의원이 80년의 역사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지역에 대한 ‘애정’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두식 원장은 “아버지인 노학영 초대 원장에 이어 47년 동안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 병을 잘 고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면서 “‘영제’라는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아 힘이 닿을 때까지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지역민과 함께하고, 지역 경제 역사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별기획팀 ● 관련기사 : 80년 통계로 본 성장 궤적... 인재와 산업 몰려든 ‘경기·인천’ [지역경제의 개척자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50303580238

전국에 눈비…강한 바람에 풍랑특보까지 [날씨]

화요일인 4일 전국에 비 또는 눈이 내리고 바람도 강하게 분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새벽(0~6시)부터 강원산지·동해안과 충청권, 전라권, 경상권에 비 또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오전(6~12시)부터는 전국에서 눈이 내리다 자정 전에 대부분 그친다. 특히 강원산지·동해안과 경북북부를 중심으로 시간당 3~5㎝(특히 강원산지 시간당 5㎝ 이상), 경기남동부와 그 밖의 강원도, 충청권, 일부 경상권은 시간당 1~3㎝의 강하고 습한 무거운 눈이 내리면서 대설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지역별 예상 적설량은 ▲경기남부 3~8㎝ ▲서울·인천·경기북동부 1~5㎝ ▲경기북서부, 서해5도 1㎝ 내외 ▲강원산지·동해안 10~30㎝(많은 곳 강원산지 40㎝ 이상) ▲강원내륙 5~10㎝(많은 곳 15㎝ 이상) ▲충북 3~10㎝ ▲대전·세종·충남내륙 3~8㎝ ▲충남서해안 1~5㎝ ▲전북동부 1~5㎝ ▲전북중부내륙, 전남동부내륙 1㎝ 내외 ▲경북북동산지·경북북부동해안 10~30㎝ ▲경북북부내륙 5~10㎝ ▲대구(군위)·경북남서내륙, 경북남부동해안, 울산·경남서부내륙 3~8㎝ ▲대구(군위 제외)·경북중남부내륙, 경남중·동부내륙, 울릉도·독도 1~5㎝ 등이다. 강수량의 경우 ▲경기남부 5~10㎜ ▲서울·인천·경기북부, 서해5도 5㎜ 내외 ▲강원산지·동해안 10~40㎜ ▲강원내륙 5~20㎜ ▲대전·세종·충남, 충북 5~20㎜ ▲광주·전남 5~30㎜ ▲전북 5~20㎜ ▲경북북동산지·경북동해안 10~30㎜ ▲대구·경북내륙, 부산·경남, 울산, 울릉도·독도 5~30㎜ ▲제주도 10~40㎜ 등으로 예보됐다. 눈비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가시거리가 짧아지고 도로가 미끄럽다. 또 중부지방과 경상권을 중심으로 기온이 점차 내려가면서, 빙판길과 도로 살얼음이 나타나는 곳이 많다. 차량 운행 시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고 감속 운행하는 등 교통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한편 당분간 전국에 바람이 순간풍속 55~70㎞/h(15~20m/s)(산지 70~90㎞/h(20~25m/s))로 강하게 부는 곳이 많다. 제주도의 경우 순간풍속 70㎞/h(20m/s) 이상(제주도 94㎞/h(26m/s) 이상)으로 매우 강하게 부는 곳이 있다. 해상에서는 풍랑특보가 발효됐다. 서해중부먼바다와 그 밖의 전남앞바다, 경남서부남해앞바다는 밤까지, 서해남부먼바다와 남해서부먼바다, 동해중부앞바다, 경북북부앞바다, 제주도앞바다는 다음날까지, 그 밖의 남해동부해상과 동해중부먼바다, 동해남부해상, 제주도남쪽먼바다는 당분간 바람이 30~80㎞/h(8~22m/s)로 매우 강하게 불고 물결이 1.5~4.0m(대부분 동해상과 남해상, 서해남부남쪽먼바다, 제주도해상 5.0m 이상)로 매우 높게 인다. 또 제주도남쪽해상에는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곳이 있으니 해상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5~4도(강원 -7도), 낮 최고기온은 2~8(제주 13도)도로, 평년(최저 -5~4도, 최고 7~12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다. 지역별로 기온분포는 ▲수도권 -4~5도 ▲부산·울산·경남 -2~8도 ▲대구·경북 -2~7도 ▲광주·전남 0~9도 ▲전북 -1~6도 ▲대전·세종·충남 -2~6도 ▲충북 -4~5도 ▲강원 -7~6도 ▲제주 7~13도 등으로 전망됐다. 미세먼지는 청정한 동풍 기류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강수 영향으로 대기질이 맑아 전 권역이 ‘좋음’ 수준을 보인다.

[사설] ‘추락사’ 못 막은 건설사, 법정 구속 못 피한다

안성 서울세종고속도로 사고는 추락이었다. 교각 위에 올려진 ‘거더’ 6개가 옆으로 밀렸다. 그 위에 올려진 ‘런처’를 옮기는 작업 중이었다. 상판과 함께 작업자들이 추락했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런처’ 고정 작업이 부실했다는 얘기도 있다. 워낙 대형 사고여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됐다. 사실 우리 주변의 추락사는 생각보다 많다. 많은 경우 사고의 원인은 안전장치 미비다. 작업모, 안전대 등을 착용하지 않는 원시적 사고다. 그 실태를 보자. 지난해 3월 용인시 처인구 주택 건설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숨졌다. 거푸집 고정 작업을 하다가 5m 아래로 추락했다. 지난달 5일에도 오산의 건축 현장에서 60대 남성이 숨졌다. 추락 사고였다. 지난 6일에도 평택의 예술의전당 건설 현장에서 50대 남성이 숨졌다. 역시 추락사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경기도에서 228명이 추락해 숨졌다. 같은 기간 전체 건설 현장 사고 사망자는 288명이다. 무려 79.1%가 추락사다. 큰 사고가 생길 때마다 대책이란 게 나왔다. 작업자의 안전 조치를 더 강제하는 온갖 방안이다. 더 이상 안전 대책을 낼 게 없을 정도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가 이렇게 진단했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의 안전매뉴얼은 완벽에 가깝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근로자들이 편의 등을 이유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안전 수칙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관리 및 감독을 철저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결국 문제는 현장의 안전 수칙 준수다. 이 대목에서 모두가 주목해야 할 판결 추이가 있다. 추락사가 발생한 책임에 대한 벌이 엄하다. 26일 인천지법 형사2단독 김지후 판사의 판결이 그랬다. 2022년 7월 한 건설 현장에서 작업자가 13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작업자는 안전모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김 판사는 작업자를 고용한 건설사 대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1월 서울지법 형사7단독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건축 현장에서 작업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었다. 안전모 미착용, 안전 난간 미설치 등이 확인됐다. 재판부는 대형 건설사 현장 소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역시 법정 구속했다. 관련 판결의 공통점이 있다. ‘피해자 합의=집행유예’라는 통례를 깨고 있다. 적당한 형량을 기대하던 피고인들에 철퇴를 내리고 있다. “안전조치 의무 위반과 과실 정도가 가볍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판시하고 있다. 건설업계가 주목해야 할 판결 추이다. 인부가 추락사한 건설회사를 법원이 용서하지 않고 있다.

[사설] 주차장 방불 아암대로… 빨리 제2순환선 돌파구 찾아야

해안도로라 불리는 인천 아암대로가 과포화 상태라고 한다. 화물차와 승용차가 뒤엉켜 거대한 주차장을 이룬다. 이런데도 주변 지역 교통량은 계속 늘어난다. 인천신항과 송도국제도시, 시흥 배곧신도시 등의 간선도로다. 생업을 위해 매일 이곳을 지나야 하는 시민들은 비명을 지른다. 이곳 10여㎞ 구간에서 1시간을 까먹기도 한다. 몇 차례 확장 사업으로 더 넓힐 수도 없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건설이 해법이지만 마냥 늦어지니 답답하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는 수도권제1순환선의 바깥쪽을 원형으로 도는 노선이다. 전체 12개 구간(263.4㎞) 중 9개 구간은 이미 개통했다. 그러나 인천~안산 등 일부 구간이 빠져 미완성이다. 수도권제2순환선 인천~안산(19.8㎞) 구간 사업비는 1조6천889억원이다. 지난 2018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1구간인 시화나래나들목(IC)~남송도IC(8.4㎞) 구간은 올 하반기 착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2구간 남송도IC~인천 남항(11.4㎞) 구간은 아직 노선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처음 송도국제도시 바깥 서해 바다를 통과하는 노선을 계획했다. 그러나 지역주민, 환경단체 등이 반대하고 나섰다. 조망권 등 주거 환경이나 갯벌 습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부는 인천시와 협의해 대체 노선을 마련했다. 원안 노선보다 송도 6·8공구 구역에서 더 먼 바다로 떨어뜨리는 노선이다. 이와 함께 대체 습지 조성 방안도 포함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환경부는 ‘갯벌 보전과 주민 피해를 고려해 노선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달았다. 이후 국토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한다. 국토부와 인천시는 인천 구간의 대안 노선 마련을 서로 떠밀고 있다. 국토부는 인천시가 해양수산부, 주민, 단체 등과 협의, 대체 노선을 내놓으면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인천시가 처음부터 이 도로의 부지 확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도 지적한다. 그러나 인천시는 사업 주체인 국토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슨 국가 기간 사회간접자본시설 사업이 이토록 꼬여 있나. 인천시와 국토부, 환경부, 주민, 환경단체가 제각각이니 사업이 나아갈 수 있겠는가. 이미 개통한 인천~김포 수도권제2순환선을 달려보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국토부는 수도권제2순환선이 하루 5만대의 교통량을 처리할 것으로 본다. 그러면 아암대로 과포화도 해결된다. 그런데도 애꿎은 인천시민들만 꽉 막힌 아암대로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다른 곳에선 잘만 달리는데 인천만 막혀 있다니.

[지지대] 떨어진 화살을 굳이

최근 아역 출신 여성 배우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를 사망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악플. 연예계 악플 잔혹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가수 설리 죽음 이후 비극의 사슬을 끊기 위해 20대 국회에서는 소위 ‘설리법’(악플 방지 법안)이 우후죽순 쏟아졌지만 현재까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이젠 일반인도 악플의 표적이 돼 고통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온라인상에 퍼졌다. 악플은 꼭 인터넷상에 남기는 독화살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타인으로부터 근거 없는 평가와 조롱을 하기도, 받기도 한다. 과거 한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인 33%가 사내 루머에 휩싸였다는 여론 결과도 발표됐다. 언론사의 생태계를 예로 들자면 ‘A기자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더라’ , ‘B경찰 사생활에 대해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등 동료 혹은 기관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된 확인 절차 없이 ‘정보보고’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날조된 정보로 인한 구설수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처지나 상황에 있더라도 초연함을 유지하라는 명언이 있다.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이 되어라’, ‘바다는 소낙비에 젖지 않는다’. 범부중생(凡夫衆生)이 듣기에는 너무나 거창한 문구다. 최근 유튜브를 즐겨 보고 있다. 몇 달 전 우연히 본 한 채널에서 진행자가 악플에 힘들어하는 게스트에게 자신이 본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며 건넨 위로의 말이 생각난다. ‘떨어진 화살을 굳이 집어 들어 내 가슴에 꽂지 마라.’ 진실에 닿지도 않는, 숨어서 하는 말에 자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오늘의 운세] 3월 4일 화요일 (음력 2월 5일 /壬申) 띠별 / 생년월일 운세

쥐띠 丙子 36년생 재수불리 질병조심 자손과 언쟁 술조심 흉(凶) 戊子 48년생 재물손실 사업불리 실속없고 고생만 할 운 庚子 60년생 직업고민 해결 자손기쁨 음식대접 만사 길(吉) 壬子 72년생 재물은 지출하나 시험 가택 차량문제 길(吉) 甲子 84년생 상사의 도움 문서차량 해결 능력발휘 만사 길(吉) 丙子 96년생 기분손상 면종복배 주의 재물손해 음주조심 소띠 丁丑 37년생 명예 생기고 자손경사 금전해결 매사원만 己丑 49년생 평범 무난하고 술 음식 생기고 대화로 해결 辛丑 61년생 직장고민 재물지출 경쟁불리 마음의 변화 癸丑 73년생 재수불리 타인과 시비 참고 인내해야 무난 乙丑 85년생 연인불화 마음답답 직장불안 재물지출 많고 丁丑 97년생 인정받고 연인화합 각종모임 능력인정 무난 호랑이띠 戊寅 38년생 자손걱정 과음조심 차량문서 재운불리 흉(凶) 庚寅 50년생 술 음식 생기고 좋은 듯 하나 출행여행 고민 壬寅 62년생 돈거래 불리 중상모략 조심 한발 양보해야 甲寅 74년생 차량사고 조심 말조심 재수불길 참아야 길(吉) 丙寅 86년생 일진불리 한발양보 음주과식 여행출행 조심 戊寅 98년생 재물지출 투자증권 별로 여행출행 음주가무 토끼띠 己卯 39년생 금전 무난하나 직장 및 자손문제 걱정 辛卯 51년생 직장문제 언쟁 생기나 친구의 도움받고 癸卯 63년생 재물지출 경쟁에서 손해 심신피로 술조심 乙卯 75년생 일진원만 인기좋고 구직성사 만사해결 길(吉) 丁卯 87년생 인기상승 연인화합 정서안정 만인의 우상 己卯 99년생 일진무난 재물원만 화목하나 직업은 고민 용띠 庚辰 40년생 자손경사 친척도움 직업안정 모임초대 길(吉) 壬辰 52년생 친구형제 모임 중심인물 되고 재물은 지출 甲辰 64년생 시험합격 승진가능 연인 데이트 재물지출 丙辰 76년생 가출충동 연인이별 음주가무 탈선조심 흉(凶) 戊辰 88년생 오락탈선 음주조심 음식대접 즐기는날 庚辰 00년생 직업도 해결 음식대접 뜻을성취 즐거운 하루 뱀띠 辛巳 41년생 자손기쁨 술 음식 생기고 친척친구 조언 癸巳 53년생 재물지출 구설시비 조심 문서나 서류는 길(吉) 乙巳 65년생 인기있고 승진가능 가정화목 가족외식 길(吉) 丁巳 77년생 애인 생기고 인기있고 뜻을성취 고민해결 길(吉) 己巳 89년생 운기상승 재수원만 고민해결 연인 데이트 辛巳 01년생 직업학업 스트레스 마음불안 눈치껏 조심해야 말띠 壬午 42년생 친구형제 모임문서 차량변화 출행할 운 甲午 54년생 오전은 무난하나 오후는 심신피로 시비조심 丙午 66년생 만사불길 감언이설 주의 투자오락 손해 흉(凶) 戊午 78년생 재수좋고 음식 생기나 마음답답 기분손상 庚午 90년생 고민해결 직업성사 음식대접 주도적 인물 壬午 02년생 친구모임 마음변화 여행 및 출행 재물은 지출 양띠 癸未 43년생 재물지출 경쟁불리 가족걱정 집안고민 乙未 55년생 매사원만 승진가능 인기있고 자손기쁨 길(吉) 丁未 67년생 인기있고 연인 생기고 술 음식 생기며 무난 己未 79년생 재수원만 음식 생기고 가정화합 직업안정 辛未 91년생 운기 상승하나 직장으로 고민 마음은 답답 원숭이띠 甲申 44년생 불길한 문서나 서류 뇌물성 재물 조심해야 丙申 56년생 만사불리 질병조심 가정불화 음주운전 흉(凶) 戊申 68년생 재수 원만하나 지출도 많고 가족연인 외식 庚申 80년생 음식 생기고 구직성사 능력발휘 귀인도움 壬申 92년생 여행과 출행 실속없고 분주하고 모임갖고 닭띠 乙酉 45년생 명예 생기고 매사원만 연인 데이트 만사 길(吉) 丁酉 57년생 인기좋고 술 생기고 데이트운 건강은 조심 己酉 69년생 집안화합 재수원만 음식대접 데이트 가능 辛酉 81년생 명예 손상되나 친구의 도움 직업으로 고민 癸酉 93년생 일진불리 음주 대인문제 및 오락으로 손해 개띠 丙戌 46년생 만사불길 일찍 귀가하여 가족과 대화나 해야 戊戌 58년생 재수원만 직업안정 운수왕성 술 생기고 길(吉) 庚戌 70년생 구직성사 귀인도움 자손경사 만사해결 길(吉) 壬戌 82년생 친구단합 모임 성사되나 실속없고 분주해 甲戌 94년생 변화변동 시험무난 분주다사 부모님 걱정 돼지띠 丁亥 47년생 인기좋고 가정화목 금전해결 행운오고 길(吉) 己亥 59년생 만사무난 데이트 하고 음식대접 즐거운 날 辛亥 71년생 직장갈등 생기나 원만히 해결 가정불화 조심 癸亥 83년생 재물손해 경쟁불리 타인 시기질투 조심할 때 乙亥 95년생 귀인도움 선물 생기고 인정받고 승승장구 길(吉) 청년철학관 작명연구소 서일관 원장

섬유예술가 장혜홍, 진부문화예술창작 스튜디오서 선보이는 서정적 추상

세계적인 섬유예술가로 활동 중인 장혜홍 작가(복합문화공간 행궁재 관장)의 예술세계가 강원도 평창군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펼쳐진다.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는 4일부터 1, 2 전시장에서 강원특별자치도와 평창군의 후원으로 ‘장혜홍 섬유예술 초대전’을 선보인다.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센터장 권용택)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선 장혜홍 작가의 최근 작업인 추상서정 ‘수원화성의 노을’부터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작가 품어낸 섬유 예술의 다양한 세계를 공개한다. 장혜홍 작가는 40년 넘게 활동한 한국의 대표적인 섬유예술가로 2011년 샌프란시스코 민속뮤지움에서 열린 ‘한국 섬유예술 11인전’을 시작으로 매년 국제전에 참여했다. 지난해에는 세계 3대 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되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섬유예술은 그 윗대 어머니들 삶의 모든 것”이라 말하며 명주, 조각보 등 우리나라만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전통 염색기법의 깊이를 더해 현대미술로 여성의 삶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에선 특히 사계절의 변화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시선과 마주할 수 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다녀온 후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서정적 추상을 시작한 ‘수원화성의 노을’은 한국 전통색으로 만든 염색물감을 칠하며 자개와 많은 혼합재료를 사용해 수원화성의 사계절 변화를 다채롭게 담아냈다. 또 2024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참가 작품인 ‘흑-Black project’, 팬데믹 기간 작가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어는 봄날’ 등 페인팅에서 설치미술까지 현대 섬유 예술의 확장성을 그려낸 작품이 걸렸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의 권용택 화가는 수원 출신의 한국을 대표하는 구상작가로 강원도 진부에 ‘하오개스튜디오’를 마련해 수원과 진부를 오가며 활동 중이다. 2020년 설립된 진부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는 그동안 100여 건의 전시를 진행하며 ‘남북평화미술전’, ‘수원-평창 평화미술 교류전’ 등 수도권과 지속적이고 다양한 교류전을 선보여 왔다. 관람객 또한 연간 5천여명이 다녀가는 등 지역의 시각문화예술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시작인 서정적 추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나 스스로도 기대가 된다. 세상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어서 기쁘다”고 말한 작가의 세계는 이달 29일까지 만날 수 있다.

광명 SK슈글즈, 천신만고 끝 개막 14연승 ‘파죽지세’

광명 SK 슈가글라이더즈가 ‘신한 SOL페이 2024-2025 핸드볼 H리그’ 여자부서 개막 14연승을 내달렸다. 김경진 감독이 이끄는 ‘디펜딩 챔피언’ SK슈글즈는 3일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서 열린 여자부 2라운드 마지막 경기서 ‘쥐띠 트리오’ 송지은(8골), 유소정(7골), 강경민(5골·6어시스트)이 20골을 합작, 이혜원이 9골로 분투한 부산시설공단에 28대27로 신승을 거뒀다. 개막 후 14연승 행진을 이어간 SK슈글즈는 승점 28을 기록, 앞으로 남은 3라운드 7경기서 3승만 더하면 정규리그 우승을 조기에 확정짓게 된다. 경기 초반 송지은, 유소정의 득점으로 기선을 잡은 SK슈글즈는 황수미, 권한나가 연속 득점한 부산시설공단에 4대5 역전을 내줬다. 이후 시소게임을 이어가다가 전반 막판 슛난조 속 권한나, 송해리, 문수현, 이혜원에게 연속 득점을 내주며 12대15로 뒤진 가운데 전반을 마쳤다. SK슈글즈는 후반들어 최수민, 강경민, 김하경의 연속 득점에 이어 후반 7분20초께 유소정의 중거리 득점으로 16대16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를 몰아 송지은의 돌파 득점과 유소정의 중거리슛으로 18대16으로 역전에 성공한 뒤, 강은혜의 연속 피봇 플레이 성공과 송지은의 돌파 득점으로 격차를 벌리는 듯 했으나 부산시설공단의 공세도 매서웠다. 부산시설공단은 SK슈글즈가 주춤한 사이 이혜원의 7m 득점과 김다영의 연속 득점을 앞세워 22대21로 재역전을 이뤄냈다. SK슈글즈는 최수민의 도움을 받아 송지은이 속공을 성공시켜 재동점을 만들고 박조은의 선방에 이어 송지은의 7m 득점으로 다시 경기를 뒤집었다. 부산시설공단이 이혜원의 돌파득점으로 다시 따라붙었지만 유소정이 돌파득점을 성공해 다시 리드했다. 이어 신다빈의 속공 성공으로 한숨을 돌린 SK슈글즈는 권한나에게 득점을 내줬지만, 박조은의 긴 패스를 받아 신다빈이 속공을 성공시켜 여전히 2점차 리드를 지켰다. 쫓고 쫓기는 상황이 이어지던 상황 속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부산시설공단 이혜원에게 속공으로 재동점을 허용한 SK슈글즈는 상대 원선필이 2분간 퇴장당한 틈을 타 송지은의 7m 득점으로 27대26을 만들었지만 권한나에게 다시 동점골을 허용했다. 경기 종료 1분10초를 남기고 SK슈글즈는 강경민이 해결사로 나서 다시 앞서가는 득점을 올렸고, 28초를 남기고 날린 이혜원의 슛을 박조은이 막아내 힘겨운 승리를 추가했다. 김경진 SK슈글즈 감독은 “연승행진을 이어가는게 갈수록 힘들다. 상대팀 부산시설공단이 신장이 좋고 항상 부담스런 팀이라서 오늘 더욱 힘들었다”라며 “유소정이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줬다. 팀웍을 바탕으로 전승 행진을 이어간 선수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문화산책] 여행의 계절, 여행의 위대함을 위하여

3월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날씨만 놓고 본다면 여행하기에 좋은 시절이 다시 찾아왔다. 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더 많이, 더 자주, 더 좋은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살아간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여행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일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여행이 주는 편익은 오랜 기간 다양하게 증명돼 왔으며 특히 청년 세대의 여행은 각자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과거 유럽의 그랜드투어나 신라 화랑의 풍류도는 청년 세대들의 여행이 자아 발견과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5월, 스카이스캐너가 Z세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사를 보니 응답자의 약 61%는 이미 부모 없이 해외여행을 경험했으며 대부분 19~21세에 첫 해외여행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들은 ‘새로운 경험과 정신적 충전을 위해, 덜 알려진 여행지보다는 인기 여행지로 떠나고, 스스로 여행경비를 마련해 저렴한 상품을 이용하는 등 가성비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젊은 세대의 해외여행에 대한 인식, 접근성, 편의성 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고, 이들의 여행 경험이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여행이 보편화된 시대에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여행 경험 자체가 문화 자본화돼 해외여행 경험 유무가 또 하나의 스펙처럼 활용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해외여행 사진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매년 3월20일, ‘국제 행복의 날’에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는데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 수준은 전 세계 143개국 중 52위로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소득 수준에 따른 행복감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 별개로 ‘세계행복보고서’에 나타난 뚜렷한 현상 중 하나가 세계 젊은 세대의 행복감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연령대별 행복감 그래프가 대체로 ‘U’자 형태로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행복감에 비해 중장년층의 행복감이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들의 행복감이 중장년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으며 유럽 및 미국 등에서는 이의 원인 중 하나를 SNS 이용률 증가로 보고 있다. SNS엔 여행의 기록이 넘쳐난다. 멋진 리조트와 테마파크, 이색적인 자연경관, 여행지의 맛집과 카페를 배경으로 자신의 여행을 과시하는 콘텐츠도 쉽게 발견된다. 여행의 진짜 묘미와 가치는 그런 것에 국한되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게시물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도 생각하게 된다. 관광 취약 계층에 속한 장애인, 다문화 및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이 그들이다. 과거에 비해 다양한 지원제도가 늘었다고 해도 더 세심한 관심이 여전히 필요하다. 여행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여행이 주는 위대함을. 그 위대함을 더 많은 청년 세대, 장애를 가진 이들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꼭 해외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여행 가기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에서부터 다양한 여행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더 쉽게 접근 가능한 정책과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제부터 본격 여행의 계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