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북미 실무회담 확인…“北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 될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6·12 북미정상회담 개최 준비를 위한 북미 실무회담이 북측에서 열린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며 "북한은 언젠가는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무부가 몇 시간 전 헤더 나워트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북미 실무회담이 판문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힌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의 회담 사실을 재확인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도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회담이 이뤄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측의 잠재력과 경제적 번영을 거듭 거론하면서 이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의견 공감'까지 언급함에 따라 한때 무산 위기에 처했던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개최가 사실상 본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글에서 "'우리의 미국 팀이 김정은과 나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이는 주한 미국대사와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지낸 한국계 성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를 대표로 하는 미국 측 협상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기에는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 그 외 미 국방부 관계자 등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에서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핵화 등 의제 조율을 위한 이번 실무회담은 28∼29일에도 이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우리는 6월 12일 싱가포르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며 "그것(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개최 검토)은 변하지 않았고, 회담 논의가 아주 잘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며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와 맞물려 6·12 정상회담 재추진을 사실상 공식화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트위터에서 "나는 진실로 북한이 눈부신 잠재력이 있으며 언젠가는 경제적, 재정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김정은도 이 점에서 나와 의견을 같이한다. 그것은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기자 문답 등을 통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수용할 경우 "나는 그(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부분을 얘기해왔다"며 "그는 안전할 것이고 행복할 것이며 그의 나라는 부유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조 달러를 지원받아 '가장 놀라운 나라 중 하나'로 발전했다고 설명하면서 북한도 한국과 "같은 민족"이라고 반복해 강조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트윗은 그 연장 선상에서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경제적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합뉴스

[사설] 중앙당 인터넷까지 가세한 ‘비방전’/경기도민이 왜 이런 선거를 봐야 하나

경기도지사 선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가 연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오른다. 남경필 후보의 이름도 덩달아 주요 검색어가 되고 있다. 요 며칠 흐름만으로만 보면 단연 전국 최대 격전지다. 드루킹 사건으로 핵심 이슈에 올라 있는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도 이재명ㆍ남경필 후보보다 쳐진다. 서울 시장 선거에 나선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 후보도 압도하고 있다. 이쯤 되면 경기도지사 선거가 전국 선거를 주도하는 것일까. 천만에다. 안타깝게도 그 내용이 부끄럽기 짝없다. 욕설과 비방, 마약과 비방이 주제다. 불을 그어댄 건 자유한국당이다. 당의 공식 홈페이지에 이재명 후보의 욕설 파일을 공개했다. 이른바 ‘형수 욕설’로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 측은 흑색선전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안 그래도 이번 선거는 유권자 관심에서 멀다. 기본적으로는 심하게 기울어진 판세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야당 후보에 크게 앞서간다. ‘해보나 마나’라는 의식이 유권자 심리에 팽배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메가톤급 이슈가 덮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정무위원장이 만드는 신경전이다. 트럼프의 ‘북미회담 파기’ 선언과 북한 김계관의 ‘회담 개최 희망’, 이어 나온 트럼프의 ‘재고’ 언급이 모든 이슈를 삼켰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사실상 선거가 끼어들 틈이 없다. 한참 달아올라야 할 선거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 상황이 최악으로 덮친 게 경기도지사 선거다. 안 그래도 관심 없는데, 이전투구의 비방전까지 겹쳤다. 이재명 후보의 복지 공약이나 남경필 후보의 대수도론은 전혀 주목받지 못한다. 본인들부터 정책 선거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 선거전부터 서로 공격을 취하며 상대를 선택하듯 했던 둘이다. 겨우 이런 모습 보여주려고 골라잡으려 했던 것인가. 역대 경기지사 선거에서 이런 모습은 없었다. 김문수 의원과 진대제 장관이 붙었던 2006년, 여권 견제 주자냐 반도체 신화 주인공이냐는 이슈가 있었다. 남경필 후보와 김진표 후보가 격돌한 2014년 선거, 차세대 주자냐 경제 부총리냐는 주제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경기도민들에게 참담한 선택을 던져 놓고 있다. 선거의 품격이 곧 유권자의 품격이라 했는데, 우리 경기도 유권자의 품격을 왜 이렇게 추락시키나.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고, 분노스러운 경기지사 선거다.

[아침을 열면서] 지방선거가 전당대회 전초전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6ㆍ13 지방선거가 20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도 정치이슈 부각으로 지방선거다운 분위기는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선거 이후 차기 당권을 차지하려는 후보들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지방선거에 지방이 실종되고, 전당대회의 전초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선거 이후에 차기 당권을 누가 거머쥘 것인가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정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밀실공천이 재연됐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위해 공천권을 행사할 당 지도부와의 ‘끈’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사천(私薦)에 가까운 비민주적인 공천(公薦)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치권의 지방선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지방선거는 정치권의 사익을 위한 수단,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 언론들의 보도 행태도 문제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의 성공적 개최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에 매달려 진실을 추적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문제는 지방선거가 한참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는 것이다. 흥미 위주의 보도경쟁을 하느라 정책 검증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가 돼 버렸다.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중대한 과정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의 새로운 문제점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사회는 압축산업화 고성장시대에서 지능정보화 저성장시대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대에서 인구절벽 사회로 커다란 변곡점에 서 있다. 복잡계(複雜界)로 접어들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사회적경제적 양극화 심화 위기를 사전에 예방하고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한 창의적인 상상력과 인구변화에 따른 지방 소멸 등 지역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해법들이 공론화되어 경쟁과 토론을 거쳐 검증되어야 한다. 지난 25일로 후보자 등록은 끝났다. 등록마감일까지 공직선거법에 의해 발행이 가능한 선거공약집은 전무했고, 선거공약서도 없었다. 상술한 바람과 달리 후보는 보이지 않고, 정책경쟁도 없으며, 관심도 없는 형편없는 3무(無) 선거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우리사회 당면과제에 해법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권력이라는 ‘잿밥’에만 마음이 가 있다. 지난해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은 권력의 사유화와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반영한 결과였다. 613 지방선거 역시 어떤 정치 집단이 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려 하는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정신을 주민자치와 생활정치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것이다. 봉사자로서 충실히 일할 자세를 보인다면 기회를 줄 것이고 여전히 권력의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다면 철퇴를 가할 것이다. 지방선거를 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자, 오만함을 보이는 자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필요하다.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 소장

[경기정명 1000년, 경기문화유산서 찾다] <14> 안양 만안교(萬安橋)

“어여차 대들보를 아래로 던져라/ 붉은 난간 아득하게 먼 들판 안았는데/ 돌아보니 만안교 밑으로 흐르는 시내가/ 도도하게 날마다 콸콸 흘러내리는구나./ 엎드려 바라니 상량한 뒤에/ 기둥들은 빛을 발하고/ 온 동네는 더욱 넓어져라./ 바람과 구름은 현륭원에 있는 나무들 길이 보호하여/ 그 복을 더욱 돈독히 하고/ 산과 물은 누각의 해자를 둘러 안아서/ 길이 이 땅을 편안하게 하소서.” 1796년 11월에 우의정 윤시동이 지은 신풍루 상량문의 끝부분이다. 이처럼 만안교와 화성 행궁은 동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 위치한 만안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8호)는 안양시민들에게 아주 친숙한 유적이다. 매년 정월이면 이곳에서 답교(다리 밟기)축제가 벌어지고, 10월초에는 안양시민의 날 행사인 ‘만안문화제’가 열린다. 안양시 도심을 가로지르는 만안로 역시 이 다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처럼 안양시 역사문화의 뿌리와 줄기인 이 돌다리는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참배하러 갈 때 사용되었다. ■ 길이 31.2m 너비 8m ‘돌다리’ 즉위한 지 13년이 되던 1789년, 정조는 오랜 숙원을 풀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알려진 수원 화성으로 이장하고 자급자족의 신도시 화성을 건설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정조는 매년 현륭원을 참배했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창덕궁을 떠나 용산에서 배다리로 동작나루를 건너 남태령을 넘고 과천과 인덕원을 거쳐 지지대고개를 넘는 길이었다. 그러나 과천의 노정길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참여한 김상로의 형 김약로의 묘가 있으므로 불길하다하여 노량진에서 시흥, 안양, 수원의 새로운 행로를 만들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보다는 과천길에 남태령이라는 가파른 고개가 있어 겨울철에 오가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에 새롭게 길을 개척했다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처음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왕의 행렬이 지날 수 있도록 했으나 1795년(정조19)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돌다리를 완성했다. 교량의 규모는 길이 31.2m에 너비 8m인데 실용성이 돋보인다. 가로로 열두 명의 병사가 지날 수 있고, 말을 탄 다섯 기병이 나란히 지나 갈 정도로 넓은 이 다리의 바닥은 대청마루를 엇물려 짠 것처럼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을 정교하게 깔았다. 7개의 홍예는 하단부터 곡선을 그어 전체의 모양은 반원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홍수가 져도 바닥이 파이지 않도록 시내 바닥에 반반하게 다듬은 판석을 넓게 깔았다. 원래는 현재 위치로부터 남쪽 200m 지점에 있었던 것인데 1980년 8월 국도를 확장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아무튼 정조가 행차하던 이 원행길은 훗날 1번 국도가 되고, 수원을 거쳐 삼남으로 연결되는 철도도 이 길을 따라 났다. ■ 만안교 건설의 숨은 주역 ‘신형’ 만안교는 임금의 행차가 편안하기를 비는 마음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한다. 그렇다면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는 이 다리를 건설한 주역은 누구일까. 경기감사 서유방의 공로는 알려진 것이지만, 실제로 공사를 감독한 주역은 따로 있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등의 기록을 통해 확인한 인물은 평안도 안주에서 차출되어 온 무관 신형(申泂)이다. 화성성역의궤를 보면 신형은 1794년 3월에 간역(看役)으로 임명되어 11월에 이르기까지 실사 266일, 1795년 8월에서 1796년 9월에 이르기까지 실사 246일 동안 장안문을 비롯해 동장대 등을 건설한 것으로 확인된다. 1797년 1월 말, 만안교에 도착한 정조가 다리를 건설할 때 감독한 신형을 어가 앞으로 불러 성명을 아뢰게 하고, 새롭게 건설한 다리가 잘 되었다며 칭찬했다. 정조와 신형의 일문일답이 이어진다. “지금 이후부터 아무 염려가 없겠느냐?” “이전에 비하면 완전하고 단단합니다” “그런데도 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냐?” “다리 아래 좌우의 석축 부분의 미진한 곳을 마무리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너는 화성성역에서는 어떤 일을 하였으며 어떤 상을 받았느냐?” “장안문의 성벽 700보를 쌓았고, 동장대를 간역했으며 신은 이미 재작년에 오위장을, 작년에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습니다” 정조가 다시 물었다. “변장을 지냈느냐?” “아닙니다” “네가 수고 많았다. 화성에서 명을 기다려라” 정조는 신형이 평안도 안주 병영의 장교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화성 성역의 총재대신 채제공이 신형을 첨사로 제수할 것을 청하자 허락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1797년 2월 1일자로 신형을 청성 첨사로 삼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덧붙여 기억할 사람은 안양의 백성들이다. 관악산과 삼성산 자락에 화강암이 많고 석공도 많아 석수동이란 지명이 생겼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그렇다면 만안교와 만안교비도 이 석공들의 손으로 만들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정조 편안한 원행길 ‘효행의 다리’ 정조는 원행을 ‘행행(行幸)’이라 선언했다. 곧 행복한 나들이라는 뜻이다. 정조의 뜻대로 원행길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다. 어가를 호위하는 5군영 군사들의 진법훈련도 길 위에서 벌어졌다. 백성들은 장용영과 훈련도감을 비롯한 5군영 병사들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일사불란한 훈련을 지켜보았다. 백성들에게는 흥미로운 구경거리이지만, 군사들에게는 행군과 훈련이 동시에 실시되었던 것이다. 병사들에게도 원행이 끝나면 무예를 시험보아 부상을 넉넉하게 주어 격려했다. 원행을 시작하면서 ‘신작로’(新作路)를 건설한 것도 특별한 일이다. ‘신작로’라는 용어는 정조4년(1780년)에 처음 등장하는데, 수원으로 원행이 이루어지면서 신작로는 더욱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국왕의 잦은 행차가 백성들에게 좋을 수만 없는 일이다. 왕의 행차를 위해 길을 닦고 다리를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정조는 지역 수령들에게 무보수의 부역을 시키지 말고 일당을 지급하여 백성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지시했다. 아울러 백성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격쟁’을 허락했다. 꽹과리를 두드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격쟁은 왕과 백성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꽹과리를 쳐 원통한 일을 고하면 왕이 즉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재위 24년 동안 1천335건의 격쟁 처리했다. 백성들이 행복한 행차가 되어야 한다는 정조의 신념이 만들어낸 특별한 행사였다. 이처럼 백성들에게 다가가려는 정조의 노력으로 13번의 원행길은 큰 원성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아버지를 위한 정조의 효심은 고을과 고을을 잇는 신작로로, 신도시 화성의 건설로 결실을 보았다. 원행은 농사철을 피해 농한기인 겨울철에 이루어졌다. 겨울철 눈 쌓인 험한 남태령 고개를 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길을 닦으려면 수고도 배로 들었다. 해당 고을의 수령들에게 대안을 마련하도록 어명이 하달되었다. 새로운 길을 어디로 내면 좋을 지 살펴본 수령들은 시흥로가 편리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런 논의 과정을 거쳐 시흥로는 화성 성역이 착공된 지 2개월 째 접어든 1794년 4월에 개설되었다. 거리는 과천로와 비슷했으나 시흥로의 지세가 평평하고 넓었다. 정조는 원행을 앞두고 금천현감을 한 등급 높여 현령으로 승격시키고, 금천이란 읍호를 옛 이름인 ‘시흥’으로 개칭했다. 더불어 그때까지 ‘금천로’로 불리던 노정 또한 ‘시흥로’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 시흥로는 조선시대 도로건설의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사업이다. 이때 새로 닦여진 노량진과 화성을 잇는 넓은 신작로는 한양과 화성의 거리를 좁혀줬다. 1795년 9월, 경기감사 서유방이 안양천에 석재로 만안교를 착공하여 3개월 만에 완공했다. 이 만안교는 현륭원 부근 황구지천에 놓았던 대황교와 함께 원행 과정에서 축조된 석교이다. 잘 닦여진 신작로 ‘시흥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울과 수원을 잇는 육상 교통의 대동맥으로서의 구실을 수행하고 있다. 만안교 남쪽 측면에 축조 당시에 세운 비석이 서 있다. 만안교비는 높이 164cm, 너비 64cm, 두께 34cm이다. 1795년에 건립된 만안교비는 서유방(徐有防, 1741~1798)이 비문을 짓고, 명필 조윤형(曹允亨)이 본문 글씨를 썼다. 비석 전면의 ‘만안교’라는 큰 글씨는 예서의 대가 기원 유한지(兪漢芝, 1760~1834)의 작품이다. 공사를 지휘 감독하고 비문을 지은 서유방은 그 형인 서유린(1738~1802)과 함께 정조의 최측근이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지지대] 낙태죄 폐지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가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를 규정한 헌법조항을 폐지키로 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낙태 허용을 위한 헌법 개정 여부를 놓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66.4%, 반대표가 33.6% 나왔다. 유권자들은 낙태금지를 엄격하게 규정한 1983년 수정 헌법 제8조의 폐지 여부를 놓고 투표했다. 이 조항은 임신부와 태아에게 동등한 생존권을 부여하고 있다. 낙태를 할 경우 최대 14년형이 선고된다. 아일랜드는 낙태 완전 금지에서 벗어나 1983년 임신부 생명에 위험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했다. 원치않는 임신을 한 임신부들은 영국 등에서 ‘원정 낙태’를 해왔다. 낙태에 찬성 입장인 레오 바라드카르 총리는 투표결과에 대해,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용한 혁명의 정점”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로 아일랜드는 임신 12주 이내의 경우 본인의사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는 대부분의 유럽국가에 동참하게 된다. 아이슬란드는 임신 16주까지, 스웨덴은 18주까지, 네덜란드는 22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반면 유럽국가 중 몰타는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금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낙태죄 폐지 논란에 휩싸여있다. 여성가족부가 “여성의 기본권 중 건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서를 최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여가부는 “헌법과 국제규약에 따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건강권은 기본권으로서 보장돼야 한다”며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이 규정하는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이러한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70조는 ‘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돼있다. 때문에 원치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은 음성적으로 시술을 받고 있다.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해 16만8천738건의 낙태가 이뤄졌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연간 109만 5천건으로 추정했다. 낙태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정확한 집계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형법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 선진국은 임신중절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강간, 근친상간, 임산부의 생명·건강에 위협, 심각한 태아 손상의 경우 낙태를 합법화하고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조치를 없애도록 요청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낙태죄가 폐지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연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