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마련하고도 예산은 0원’…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 ‘전무’

장애아동에게 적합한 통합 지원을 하는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가 설치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지자체의 무관심으로 단 한 곳도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는 장애 조기 발견, 장애아동 사례 관리, 복지 지원 사업에 관한 정보 제공, 장애아동과 그 가족에 대한 상담 및 교육 등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는 전무하다. 특히 지난 2011년 장애아동 복지지원법이 제정되면서 지원센터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지만 경기도는 물론, 광역지자체에 단 한 곳도 없다. 정부와 지자체의 무관심 때문에 설치되지 않고 있는 것인데, 관련 예산 역시 마련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서울에 설립된 중앙장애아동지원센터 한 곳이 있지만 중앙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 통합 운영을 하면서 행정 업무만 담당하고 있다. 즉,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아동의 장애가 의심되거나 확인되더라도 상담이나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셈이다. 현재 경기도내 18세 미만 장애아동은 2만2천998명인데, 사례 관리나 관련 상담, 교육 등을 받기 위해선 학교의 특수 학급 프로그램이나 병원 등을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장애아동을 키우는 A씨는 “아동들은 초기에 장애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 발견하지 못해 치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며 “통합적으로 장애아동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곳이 없어 병원이나 다른 센터를 찾아다녀야 한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1일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를 17개 광역지자체별 1개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장애아동 복지지원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오현숙 서정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장애아동의 경우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지역마다 장애를 초기에 발견하고 아동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해주는 지원센터가 있어야 부모들의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지자체에 관련 국비 지원 등을 통해 지역에 지원센터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발달장애아동지원센터 등 다른 센터가 지역장애아동지원센터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며 “지자체에서 관련 예산을 세워야 지원센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매년 설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청년, 일자리 찾아 ‘IN 서울’ [경기도 청년에게, 이곳은④]

“뭐가 됐든 ‘京企’보다 나아요”… 서울로 떠나는 청년들 지역 청년들이 도계(道界)를 넘나드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 때문’으로 나타났습니다. ■ 서울로 이사한 둘 중 하나 ‘경기도민’ 12일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행한 ‘2023년 연간 국내 인구이동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20대의 인구 이동률은 22.8%, 30대는 20.1%로 전 연령층 중 ‘청년층’의 이동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이는 20~30대 청년 100명 중 21명이 최근 1년간(2022~2023년) 거주지를 옮겼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서울 전입자의 절반 이상(52.9%)이 경기도에서 이동했다는 데서 얼마나 많은 경기도민들이 서울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국내 시·도 간 이동 사유 1위는 ‘직업’(35.1%)이었습니다. 이어 ‘가족’(26.1%), ‘주택’(18%) 등이 뒤따랐습니다. 실제로 2022년 경기 청년 통계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통근 및 통학 등을 이유로 매일 서울에 간다고 응답한 비율이 21.8%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대중교통을 통해 경기도에서 서울로 향할 때에는 편도 71.6분, 왕복 총 143.2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지옥철’이더라도…서울 대기업 일자리 원해 이동하는 길이 아무리 피곤해도 청년들은 ‘서울 속 직장생활’을 희망합니다. 취업준비생 남상은 씨(25)는 “중소기업 취업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대기업으로, 그리고 기왕이면 서울에 있는 곳으로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1월 ‘경기도 청년층과 고령층, 일자리에 대한 시각차’ 자료를 통해, 20대 청년층 응답자의 43.5%가 대기업 취업을 선호한다고 밝혔습니다. 인크루트의 ‘2023년 대학생이 일하고 싶은 기업’ 조사에서도 상위 10개 기업 역시 모두 대기업이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본사의 약 75%가 서울에 위치한 터라, 결국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 역시 ‘서울’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기업 규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경기도에는 청년들이 원하는 직종이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2022년 경기도의 지역 청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청년 인구 24.5%는 “서울로의 구직을 희망한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또 해당 자료에서 경기도 청년들은 ▲경영 ▲행정 ▲사무 ▲예술 ▲디자인 직종 순으로 취업을 희망한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경기도 안에서 산업별 산업체 수를 보면 ▲도매 및 소매업 ▲제조업 ▲숙박업 순으로 많습니다. 즉 경기도의 수많은 일자리가 청년들의 선호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 돈도, 복지도 서울이 낫다 청년들의 일자리 선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단연 ‘임금’입니다. 통계청의 2022년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대기업 근로자 월 평균 소득은 세전 591만원으로 중소기업(286만원)의 약 2.1배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청년들도 ‘돈’을 따라 대기업이 많은 서울을 향한다는 뜻입니다. 이어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고임금 직역에 종사해야 워라밸(Work-Life Balance)까지 잡을 수 있다는 게 중론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5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청년 세대 직장 선호도 조사’ 결과에서도, 임금에 뒤따라 워라밸을 선호한다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일과 고소득도 중요하지만, 회사 이외의 자신의 삶도 중요한 게 청년 세대들의 인식입니다. 기업 내 복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수한 복리후생은 구직 희망 직업을 고를 때 임금만큼 중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복지 비용은 기업체의 규모별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2022년 회계연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에서 집계된 중소기업의 복지 비용은 13만6천900원으로 대기업의 34% 수준에 그쳤습니다. 황광훈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경기도 일자리는 ‘제조업’과 ‘제조업 분야의 수많은 중소기업’ 등 특정 산업군으로 구성돼 있다. 불가피하게 ‘직종 쏠림 현상’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라며 “청년들은 제조업 분야, 비화이트칼라(비사무직) 직종으로 취업을 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경기도 지역 내에서 청년 인구가 빠지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여건, 고용안정성 등을 고려할 때 제조업, 중소기업으로의 (지역 내) 취업을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道 “청년 붙잡고 싶지만…” 이에 경기도는 지역을 떠나고 있는 청년들을 붙잡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종, 임금, 처우 등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어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심화되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임금 관련 대표적인 정책은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 지원사업’입니다. 2021년 첫 시행된 이 사업은 중소기업 재직 청년들의 임금을 도에서 일부 보전하는 내용입니다.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지 못하는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완화하고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장려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도는 청년들이 경기도 안에서 일자리를 찾고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취업 과정과 일자리 연계를 돕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취업 컨설팅, 취업 연계교육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기청년맞춤형 채용지원사업은 4.52(5점 만점)의 만족도를 보였습니다. 희망 직업에 취업하는 것은 청년층의 안정된 고용 상태로도 이어집니다. 경기도의 청년 인구가 원하는 일자리를 지역에서 찾아 이탈하지 않고 정주할 수 있는 경기도만의 타개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조새봄 경기도 청년일자리팀장은 “지자체 차원에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정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거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연우기자, 아주대 ADDRESS팀(경제학과 윤주선, 경영학과 임승재, 사회학과 이자민·정민규)

[경기만평] 정봉주의 난⋯?

[사설] 국회의원 53명, 김승원 경기도당위원장의 길

김승원 의원(수원갑)이 선출됐다. 신임 민주당 경기도당위원장이다. 중앙당에서는 순회 경선이 치러지고 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국 단위 행사다. 경기도당위원장 선거에 대한 관심은 덜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경쟁 구도가 치열했다. 김 의원의 최종 득표율은 57.59%다. 강득구 의원(안양 만안)이 42.41%였다. 달포 전 국민의힘 위원장 선출과 비교된다. 현역 의원들이 서로 고사했다. 5선의 전 의원에게 맡기다시피 했다. 국회 원내 제1당은 161석의 민주당이다. 제2당은 90석의 국민의힘이다. 국민의미래(18석), 더불어민주연합(14석), 조국혁신당(12석), 개혁신당(3석), 새로운미래(1석), 진보당(1석) 순이다. 민주당 경기도당 소속 의원은 53명이다. 국회 정당 규모로 본다면 제3당에 해당한다. 정당의 구성은 헌법으로 보장하는 정치구조다. 의석수만으로 정당에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다. 그럼에도 비교를 하는 이유는 의석이 지배하는 힘 때문이다. 김 의원이 대표하는 것이 의석 53명이다. 하나 된 목소리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상당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경기도 현안 입법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이 있다. 경기도 산업의 40년 족쇄다. 가칭 경기남부국제공항 입법도 있다. 경기 남부권 의원 상당수의 관심사다. 재선 김 의원도 매번 내놓는 공약이다. 경기 북부 균형발전 관련 입법도 있다. 분도로 가느니 마느니 갈림길에 있다. 반도체 생태계 지원 관련 법도 있다. 경기도 관련 법이다. 다른 지역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서울 또는 인천 의원들의 입장도 다소 차이가 있다. 오로지 경기도 의원들의 힘으로 풀어가야 한다. 다르다면 조율해야 하고, 같다면 묶어 내야 한다. 이 막중한 책임과 권한이 경기도당위원장에게 있다. 냉정히 돌아보건대 역대 도당위원장들은 못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저 경기지역 언론 앞에서 잠시 화두로 꺼내고 마는 정도였다. 김승원 도당위원장대(代)에서 달라져야 한다. 수락 연설을 관심 갖고 들었다. 이재명 전 대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을 말했다. 검찰개혁과 족벌언론개혁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법사위에서의 대여 투쟁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했다. 도당위원장을 떠나 민주당 소속 의원이다. 당과 궤를 같이하겠다는 걸 탓할 건 아니다. 다만 경기도 유권자를 향한 ‘지역 일성’이 들리지 않아 아쉽다. 역대 어떤 정당도 가져 보지 못한 거대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 경기도당이다. 기대가 많다.

[사설] 기약 없는 스마트오토밸리... 특화산업 역외 유출 막아야

중고차 수출은 이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해 있다. 연간 50만대 이상의 중고차가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한해 6조원대 시장이다. 이 수출 시장의 80%를 인천이 차지하고 있다. 인천 지역 경제의 특화산업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 산업적 환경은 열악하다. 관련 제도적 정비나 지원이 없어 영세·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가 ‘스마트오토밸리’ 조성에 나서 있다. 인천 남항 인근의 중고차수출클러스터다. 당초 사전 절차를 거쳐 올해는 착공하려 했다. 그러나 기약도 없이 늦춰질 상황이라고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경색과 주민 반대 때문이다. 인천 중고차 수출 산업의 역외 유출이 걱정이다. 스마트오토밸리는 인천항 남항 인근 50만3천여㎡(15만평)가 부지다. 이곳에 4천370억원을 들여 2026년까지 최첨단 친환경 중고차수출클러스터를 새로 짓는다. 중고차 수출상사 입주·지원 시설과 2만여대 규모의 중고차 전시장을 갖춘다. 정비소나 튜닝클러스터, 중고차 테마 공간 등도 포함한다. 옛 송도유원지 일대에 난립해 있는 중고차 수출상들을 이전, 집적화하는 사업이다. 스마트오토밸리의 민간사업 시행은 ㈜카마존이 맡고 있다. 시행사는 현재 사업을 수행할 PF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PF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 사업의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해서다.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인천항만공사의 땅을 중고차 수출업체에 재임대하는 구조다. 더욱이 공모사업인 탓에 임대료 수익도 시세의 절반 이하다. PF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원래 올해 말 착공, 2026년 완공할 계획이었다. 사업 일정 맞추기가 물 건너 간 상황이라고 한다. 또 하나 걸림돌이 있다. 사업 부지 인근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업들도 진척이 없다. 주민들은 중고차 수출단지의 환경 피해를 우려했다. 남항 우회 교량 건설과 연안부두 트램 우선 추진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 사업도 답보 상태다. 인천지방해수청이나 인천시가 내부 검토도 마치지 못했다. 중고차 수출도 저절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다. 최근 세계 중고차 수출 시장의 중국 성장세가 가파르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다. 여기에 국내 다른 도시들도 중고차 수출 산업을 탐낸다. 군산, 평택, 당진 등 서해안 항구도시들이다. 이들 도시도 중고차수출복합센터 등을 지으려 한다. 결국 인천의 수출 물량이 대상이다. 중고차 수출상들이 인천에만 눌러 있으리라는 생각은 안일하다. 사업 구조를 고쳐서라도 스마트오토밸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임준태 칼럼] 국내 정보보안기관의 역량 강화할 때다

최근 정보기관 요원들의 일탈행위와 더불어 미국에서 우리 측 정보요원에게 자료를 제공했던 재미교포 체포, 그리고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가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인 24명의 수감자 맞교환 사례가 보도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 암살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정보보안기관들의 문제점과 역량, 새로운 간첩죄 개념 정립 및 방첩업무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024년 1월부터 국가정보원이 담당하던 대공(對共)수사업무가 경찰청으로 이관되면서, 정보(Intelligence)와 법집행기관(Law Enforcement)간 상호견제 및 분리라는 큰 흐름에 부응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논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지금의 여소야대적 정치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 주도로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가정보는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한 정책결정에 기여하는 중요한 지식이며 국가정보의 최종 수요자는 대통령이다. 정보기관은 국내외에서 국익을 증진하고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정보를 국가 지도자에게 앞으로 닥칠 위협에 대해 미리 알려주기 위해 노력할 뿐만 아니라 국가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의 정책 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정보기관의 중요한 역할이다. 한반도에서는 호전적인 북한 체제와 준전시 상태로 장기간 대치하면서 국가안보적 이슈가 유독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21세기에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주체와 요소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따라서 외국 혹은 적대세력에 의한 군사적 침략으로부터 국토 방어라는 전통적인 안보 개념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1950년대 초반 제정된 형법과 국가보안법에서 규정한 ‘간첩 및 적국’의 개념도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향후 국회에서 간첩죄 관련 형법 개정에 심도 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국가안보와 국익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외국의 정보활동 및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국가안보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 위협을 방어해야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첨단 및 방산기술을 탈취하려는 산업스파이 등에 대한 방첩업무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중동국가에서 입국하는 외국인 및 유학생, 북한이탈주민 등에 대한 촘촘한 보안심사가 필요하다. 정보보안기관 업무의 특성상 성공사례보다는 실패한 공작이 두드러질 때가 많다. 블랙요원은 하루아침에 양성되는 것이 아니다. 암약하는 간첩사건을 적발하기 위한 방첩·보안활동의 경우 수년간 장기적인 은밀한 관찰 및 공작 과정을 거쳐야 할 때도 있다. ‘전쟁 시에는 1명의 유능한 정보관이 수만명의 군인을 살릴 수 있다’는 정보의 역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의 원훈(院訓)이 바뀌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정보는 국력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각급 정보보안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통치자의 성숙한 리더십을 기대한다.

[지지대] ‘1호선 전철’ 개통 50년

1974년 8월15일은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한 날이다. 서울역~청량리역에서 시작한 1호선은 오는 15일이면 50년이 된다. 광복절인 이날은 만원버스에 시달리던 시민들을 해방시킨 ‘역사적인’ 날이다. 지하철은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증가한 인구와 한계에 다다른 지상 교통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됐다. 1974년 개통 당시 이름은 ‘종로선’.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 역을 잇는 9.54㎞ 길이의 국내 첫 지하철이다. 우리 기술과 인력으로 결실을 맺어 열차가 첫 운행되던 날, 그러나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개통식 직전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은 것이다. 지하철 개통 당시 재밌는 일화가 많다. 신발을 벗고 역사에 들어왔다는 어르신,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약속 장소가 엇갈린 시민의 민원으로 환승역에 통합 출구 번호를 만들었다는 얘기 등이 있다. 지하철은 신문물의 상징이었다. 대중교통 체계가 지하철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새롭게 형성됐다. 역을 중심으로 땅값이 크게 올랐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생활문화도 바뀌었다. 지하철역은 만남의 장소가 됐고, 전동차에서 이동 시간에 신문과 책을 읽는 등 독서문화가 발달해 출판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1호선 전철은 남쪽으로 점점 확장됐고, 구로에서 인천과 수원으로 갈렸다. 이후 남쪽으로 충남 아산 신창까지, 북으로는 경기도 연천까지 연결됐다. 현재 1호선은 38선 넘어 최북단 연천역에서 최남단 신창역까지 203.6㎞ 구간을 달린다. 1호선 전철의 하루 운행 거리는 12만8천520㎞로 매일 지구 3.2바퀴를 도는 것과 같다.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첫해 2천900만명이던 수송 인원은 올해 상반기 2억7천303만2천810명에 달했다. 하루 수송인원으로 환산하면 약 8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증가했다. 50년간 승객 800억명을 싣고 지구 5만바퀴의 거리를 달린 1호선은 오늘도 시민들을 곳곳에 실어 나른다. 언젠가는 북한 땅까지 내달리길 기대해본다.

[경기시론]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

최고 권력,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앞장서서 나라의 공력을 좀비 같은 역사 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공동체의 정신문화를 공적인 영역에서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맡은 연구기관들과 독립기념관장에 해당 기관의 고유 목적과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인물들을 동시에 임명하면서 온 나라를 상대로 소모적 싸움을 걸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입장이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다. 이미 헌법에 명시된 1919년 3·1운동에 기반한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을 계승한다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평가와 공동체의 합의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민간 단체 활동과 학술적 연구의 보호 아래 ‘자유’를 누리면서 주장해 왔다. 그런데 왜 자신들의 세계관과 기반 자체가 다른, 평소 소신대로면 없어져야 할 기관의 최고 높은 자리를 탐할까. 일제의 침략과 병탄이 합리적 과정이라면 왜 대다수 시민이 동의하지 않을까. 왜 일본이 일으킨 동아시아·태평양전쟁을 찬양하지 않을까. 왜 주둔지마다 식민지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밀어넣었던 행위를 차마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일까. 왜 강제노역과 자원 수탈을 새로운 형태의 노동시장과 자유무역으로 포장할 수 없는 것일까. 문명과 사회가 발전시켜 온 양심과 상식이란 것이 있다. 남의 나라 자원과 영토, 외교, 군사, 주권 따위를 강제로 빼앗는 데 대장쯤 돼 보이는 몇몇에게 어르고 겁을 줘 문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게 하면 그건 범죄지 나라 간의 협약이 아니다. 깡패나 건달들이 그렇게 하고 더 힘센 깡패들에게 다시 빼앗기거나, 나중이라도 밝혀지면 범죄로 처벌받는다. 그들이 ‘앙망하는 근대화’된 나라와 국제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일제 침략에 동조했던 역사를 합리적 선택, 일반적인 본성으로 포장하고 싶은 의도는 알겠으나 그것이 상식이 될 수는 없다. 끝까지 저항하고 빼앗긴 주권을 찾아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과 그 행동을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음’으로 매도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침탈과 전쟁범죄에 동조한 과거를 ‘있을 법한 선택’으로 세탁하기 위한 비열한 행위이고 ‘공범’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반성하고 사과하면서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제도와 규범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을 거부하는 자들이 국가 기관의 자리를 탐하고 있고,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은 그런 기회주의자들을 수집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부여한 권한으로 민주주의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권력에 엄격해야 할 법치의 칼로 민주주의를 강박하는 기회주의적 극단 정치의 냄새가 역하게 풍긴다. 기회주의는 사회에서 우수한 특성이 될 수 없다. 다수의 협력이 있어야 거기에 기생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도 협력하지 않는 사회는 개념이나 현실로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 사고와 기회주의 정치는 재난과 위기에서 추종자들 외에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구하지 않는다.

[천자춘추] 이항 대립(二項 對立)을 넘어서

이항 대립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가 짝을 이뤄 특정한 개념을 구현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한 개인의 성격을 생득적인 ‘본성’과 후천적인 ‘양육’의 측면에서 조망하는 방식이다.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서도 인생의 방향은 ‘타고난 천성’과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이항 대립을 통한 개념화라고 할 수 있다. 이항 대립은 현상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해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상의 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성격만 하더라도 어디까지가 본성이고 양육인지 현실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또 성격은 패턴화돼 있어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관성보다 불규칙성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배우자나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작정하고 비위를 맞추려 해도 좀처럼 맞출 수 없다. 의사든 상담자든 현실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정신건강 이슈가 성격이다. 전문가가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당사자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를 겪고 있고, 누구보다 예민한 상태에 있어 누가 자신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게 못마땅하다. 무언가 언짢고 불편하면 좀처럼 다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의 내면에는 극단적인 이항 대립의 로테이션 구조가 있다. ‘원하고 원망하죠’라는 노래 가사처럼 서로 다른 극과 극이 공존하면서 언제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선과 악, 사랑과 미움, 현실과 비현실, 설렘과 낯섦, 존경과 혐오 같은 이질적 요소들의 양립과 잦은 태도 교체를 기본원리로 삼는 내적 구조는 동물의 보호색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버림받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방식이 과연 도움이 됐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가 주관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믿는 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당사자는 자기 내면에 이런 이항 대립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나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자신이 혼란, 좌절, 패배감, 버림받는 느낌을 받고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족,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이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매 순간 판단하게 만드는 내적 이항 대립뿐 아니라 자신만 실재하고 타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듯 관념화하는 유아론(唯我論)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의도된 개입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엄습하는 생각과 감정에 거리 두는 연습(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음챙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이들과의 집단상담(타인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타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판단중지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활동(천진난만한 아이들과의 놀이), 옳고 그름에 갇히지 않는 변증법적 대화(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는)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