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라인은 신문ㆍ방송사 사진·카메라 기자들이 더 이상 취재원에 접근하지 않기로 약속한 일종의 취재 경계선이다. 유명인사에 대한 과열 취재 경쟁으로 인한 몸싸움과 이에 따른 불상사를 막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포토라인 설정은 1993년 1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검찰 소환이 계기가 됐다. 당시 정 회장은 국민당 대표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려 나왔는데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아수라장이 됐고, 한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정 회장 이마가 부딪혀 찢어지는 상처가 났다. 이후 무질서한 취재 현장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질서유지 차원에서 포토라인이 설정됐다. 사진기자나 카메라 기자들은 포토라인의 약속을 지킨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갑작스런 시위나 시민들의 돌출 행동이 발생할 경우 포토라인이 무너지기도 한다. 포토라인은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관행이다. 피의자나 참고인을 검찰청사 앞에 잠깐 멈추게 한 뒤 사진을 촬영하고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것은 대중의 분노를 풀어주는 짧은 의식이기도 하다. 보통 검찰청사 1층 차에서 내려 포토라인 앞까지 걸어서 10초도 안걸리는 시간이지만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이 짧은 시간이 피의자들에겐 조사받는 시간보다 더 길고 치욕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사적(私的) 형벌’ 또는 ‘현대판 단두대’라고도 한다. 이에 어떤 피의자들은 플래시 세례를 피하기 위해, 눈빛과 표정을 숨기기 위해 모자나 마스크를 쓰고 포토라인을 지나기도 한다. 검찰청 포토라인이 설정된 이후 지난 22년간 권력형 비리사건에 연루된 거물들이 줄줄이 이곳에 섰다. 전두환·노태우·노무현 등은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나왔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은 아들과 형이 포토라인에 섰다. 이젠, 현직 박근혜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느냐 마느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관련해 최씨를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사건 당사자들이 줄줄이 소환돼 포토라인에 섰다. 검찰은 수사 결과 최씨와 안 전 수석의 공소장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적시했다.박 대통령이 국정 농단 의혹과 관련해 범죄 혐의 전반에 상당한 공모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도 규명해야 할 의혹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이 됐다. 피의자 신분으로 정식 입건됐다. 최순실과 안종범의 공소장 범죄 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는 문구가 적시됐다. ‘공모하여’가 등장한 문서는 검찰 공소장이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옮겨 적은 사설 정보지(일명 찌라시)가 아니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제기하는 의혹도 아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거르고 걸러낸 표현이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퇴임 순간까지 ‘피의자 박근혜’ 신분이 됐다. 공소장 속 피해자는 대기업이다.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한 53개 기업을 모두 피해자로 봤다. 롯데 그룹(하남 복합체육시설 건립 비용), 포스코 그룹(펜싱팀 창단), KT(광고 의뢰)도 모두 직권남용 및 강요죄의 피해자로 규정했다. 검찰은 이런 피해 사실 모두에 대해 대통령을 공범이라고 규정했다. 이들 기업이 피해자이고 박 대통령은 가해자라는 법률적 표현이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강요 또는 협박이 확인됐음을 말한다. 애초 검찰 주변에는 대기업 수사에 대한 한계가 예상됐다. 대기업들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진술에 부담을 느낄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공소장에 게재된 혐의에는 이들 대기업에 대한 대통령의 혐의 사실이 모두 적시됐다. 대기업들이 대통령의 범죄 사실을 상당 부분 진술했다는 얘기다. 이들 기업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상당히 강도 높았음을 짐작게 한다. “99%는 입증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 했다”는 검찰 관계자의 전언도 이를 설명한다.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미르ㆍK 스포츠 재단에 대한 검찰의 성격 규정이다. 박 대통령에게 이 문제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법률적 탈출구였다. 그 스스로도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와 국민 경제를 위한 일”이라고 했었다. 미르ㆍK 스포츠 재단을 국가적 통치행위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석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의 강요는 국가 역점 사업에 대한 강조로 풀이될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는 유일하게 남은 법률적 출구였다. 검찰의 공소장이 이 희망의 끈을 차단했다. 미르ㆍK 스포츠 재단을 사적인 것으로 확정했다. 아예 ‘실질적 주인은 최순실’이라고 못 박았다. ‘안종범은 행동대장’이라는 표현까지 거침없이 공개했다. ‘출연금 성격이 바뀔 가능성은 없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검찰 관계자는 “출연금 자체는 여러 번 검토했다. 명백하게 강압적인 직권남용에 의한 출연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 측으로서는 핵심 논리를 잃어버린 셈이다. 검찰의 공소장이 무슨 의미인가. 재판에 넘겨졌다는 뜻이다. 재판에 넘겨진 형사사건의 무죄 선고율은 2% 남짓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그 2%의 확률을 기다려야 하는 ‘피고인 대통령’이다. 이런 대통령에게 나라의 운명을 계속 맡겨야 할 것인가. 공소장 속 ‘공모하여’의 법률적 의미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 본다.
박근혜 대통령 측이 검찰 대면 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측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는 20일 “검찰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믿기 어렵다”며 “직접 조사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현재의 검찰 수뇌부를 임명한 인사권자다. 유 변호사는 바로 사흘 전까지 그런 검찰 수뇌부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대면 수사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었다. 이랬던 변호인이 갑자기 검찰에 대한 불신과 대면 수사 전면 거부를 밝혔다. 적절치 않다. 첫 번째 이유는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이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사과에서 의혹을 밝히는 모든 과정에 대한 협조를 약속했었다. 이 과정에는 검찰 수사와 특검 조사가 당연히 포함됐다. 검찰 수사는 그중에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과정이다. 이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스스로의 대국민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난주 보여줬던 변호인의 언행이다. 지난주부터 공식 변호인으로 나선 유 변호사는 언론에게 조사 일정에 대한 흐름을 설명했었다. 검찰은 조속한 대면 조사를 요구했으나 그때마다 준비 미비 등을 이유로 미뤘다. 그러다가 검찰이 사건 발표를 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검찰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떼를 부리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 측의 속 보이는 태도다. 최순실의 구속시한은 20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유 변호사는 이런저런 핑계로 대통령 조사를 미뤘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최순실 공소장에 대통령의 언급이 없게 하려는 작전으로 보였다. ‘공모하여’라는 언급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법이다. 그러나 검찰의 공소장은 강경했다. 되레 조사에 응해 항변을 하는 것보다 나쁜 결과가 나왔다. 결국 변호인은 스스로 꾀에 스스로가 넘어간 결과가 됐다. 국민은 예상했던 검찰 공소장을 청와대 측이 새삼 반발하는 것도 이런 예상이 빗나갔기 때문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경우든 청와대의 반발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민이 수긍할 리도 없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는 검찰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혹시 사태가 이른 지경을 청와대와 주변 변호인들만 모르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청년수당’을 두고 벌이는 정책 경쟁이 치열하다. 워낙 청년실업의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취업 지원 등을 목적으로 청년층에게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거다. 경기도 성남시가 ‘청년배당정책’이란 이름으로, 지난해 9월 처음 시동을 걸었다. 많은 논란이 일었지만, 서울시도 ‘청년활동지원사업’으로 청년수당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복장제도는 중앙정부와의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예산안 무효 확인소송 중이다. 반면 경기도는 최근 ‘연정사업’의 일환으로 ‘청년구직 지원금’을 추진한다. 인천시도 고용노동부가 시행 중인 ‘취업성공 패키지’ 사업을 통해 뒤늦게 합류했다. 묘하게 여당 단체장이 순항하는데 반해 야당이 곤혹을 치르고 있는 형국이지만 유권자인 청년층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데는 하등 문제 될 게 없다.한편 수도권 단체장들의 경쟁에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조심스레 이견을 보였다. “복지정책에는 내셔널 미니멈이 있고, 지역별 차등이 있어선 안 된다”며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 간에 벌이는 복지정책 경쟁을 경계했다. 그도 청년수당 정책의 경쟁에 뛰어들었다. 청년실업 문제는 한 도시만의 현안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권의 담론을 조속히 시민사회로 옮겨와야 한다. 이미 경험했듯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국가적 현안임에도 정쟁으로 흐르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시민에게 돌아왔다.특히 중앙과 지방정부 간 재정분담 규모로 갈등을 빚지 않았나. 당장 교육·복지·경제 등의 지방분권은 물론 재정분권 자체에 큰 진전이 없다보니 현장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정책은 정쟁에 휩싸여 차단되기 일쑤다. 늘 그랬듯이 중앙집권적인 행정과 지역 패권적인 정치구조로 인해 정상적인 토론이 어렵다는 거다. 그래도 현장에선 청년실업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여전하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제2차 청년친화 강소기업’ 227개소를 선정·발표했다. 지난 4월 청년·여성 취업연계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발표한 1차 강소기업 891개소에 이어 추가된 거다.총 1천118개로 늘어났다. 이들 기업은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의 결격사유가 없고, 신입사원의 월평균 통상임금이 200만 원 이상인 곳이다. 구인난을 겪는 중소기업과 취업난에 놓인 청년층 간의 미스매치(mismatch)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치적 이슈화도 중요하지만 청년실업 극복을 위한 해법을 현장에서도 찾아야 한다는 거다. 여야 정치권은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에 지친 청년층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특히 딸과 조카의 특혜 입학은 헬(Hell)조선(朝鮮) 청춘들에 분노를 넘어 절망을 안겨줬다. 성적표에 ‘가’로 행진하는 “가가, 가가”(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구나)라는 조소가 나올 정도로 교육농단의 극단을 봤다. 또한 국민연금의 삼성그룹 합병 밀어주기로 혈세 낭비와 정경유착 의혹에 휩싸였다. 세계경쟁에 나선 글로벌기업이란 게 무색할 정도다. 어느 분야치고 온전한 데가 없다. 이제 지방으로의 과감한 권한 이양과 경제정의·사회정의 실현으로 작금의 혼란을 극복할 때다. 김송원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늑대는 달의 젖을 빌어먹고 산다. 보름달은 초승달로 여위어가고 늑대 눈엔 밤마다 초승달이 뜨고 진다. 퇴화한 달빛들 땅속에 묻혀 있다가 푸른 싹으로, 나비로 태어난다. 어린떡잎 들썩임과 아기나비 날갯짓엔 우주를 들어 올리는 힘이 있다. 둥근 열매가 익는다, 혹은 영근다는 말이나 하늘, 하늘하늘 날아다닌다는 말은 모두가 거짓말이다, 땅으로 추락한다는 젖은 말이다. 발 달린 것들 허공 딛는 시간이 더 많고, 날개달린 것들도 알고 보면 땅 밟는 시간 더 많다. 초원은 바람을 낳아 기르고, 햇빛은 그늘을 낳아 기른다. 싱싱한 빗줄기는 샛강을 낳아 기르고 있다. 파도지느러미,애간장 다 녹이며 쉬지 않고 시를 짓지만, 壯元은 文魚의 가문에 뼈대와 같은 취급이다. 다만 머릿속 가득 저장된 먹물로 괴발 네발 문어발로 구불링구불링 쓴 획들은 모두 달필이다. 조팝꽃그늘을 밀어내며 하얗게 웃는 저녁은 또 어떤 계절의 물거품 되는 풍경인가. 연두빛 더듬이의 서툰 몸치로 둥둥 물살을 저어간다 ? 에 줄줄이 걸려드는 ! 물음표와 느낌표는 아무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의 부호다. 날개 굳은 나비 한 마리가 개미떼를 까맣게 몰고 하얀 우주 밖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서빈
樹木等到花(수목등도화) 謝才能結果(사재능결과) 江水流到舍(강수류도사) 江才能入海(강재능입해), 혼탁한 정국현안과 관련하여 얼마 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전달했다는 경구이다. 청와대가 나서서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해설까지 곁들여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지혜로 삼아야 할 말씀이라고 전했다. 다수의 언론이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여과없이 보도했지만 실상은 화엄경에서는 이와 유사한 문구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출처가 불명확하고 진정성을 찾기 힘든 정보가 급증하고 있다. 솔개가 40살이 되면 갱생하기 위해, 무뎌진 부리를 바위에 쪼아 버리고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과 깃털 마저 뽑아낸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거 없는 우화일 뿐이다.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를 함께 수조에 집어넣으면 미꾸라지가 더욱 건강해진다는 메기론,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이면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개구리가 속수무책으로 삶아져 죽는다는 개구리론 등이 모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기성세대에게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진 것도 허다하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며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전화기 발명도 자주 언급된다. 두 사람이 동일한 기술로 전화기를 발명하였지만, 벨이 2시간 먼저 특허를 신청해서 최초발명가로 인정받았으며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특허제도는 2011년 전에는 발명시점이 빠른 사람에게 특허권을 부여하는 선발명주의를 고수하고 있었다. 모로 가나 기어 가나 서울 남대문만 가면 그만이지, 화엄경에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떻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존재가치는 듣는 사람의 지식을 확장하여,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아무리 잘 이해하고 감동을 받더라도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손까지”라고 하지 않던가. 한 순간의 거짓(!) 감동은 단거리 이동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궁극적인 실천의 동력으로는 미흡하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우형록 한양대 겸임교수
지난달 1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29번째 방문이었다. 22년 전 첫 방문 당시 자연사 박물관에서 ‘라스푸틴’의 성기를 본 기억이 이렇게 새삼스러울 수가 없다. 라스푸틴의 여성편력과 그로 인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몰락을 알고 있다. 라스푸틴의 커다란 흉물을 보면서 ‘이 왕조도 참 변변찮았구나. 그랬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가 있었겠는가’ 하는 경멸스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면 그때의 라스푸틴이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할 것 같다. 라스푸틴의 본명은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노비흐’다. 러시아어로 방탕하다는 의미의 ‘라스푸트’라는 말이 그에게 붙어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이 됐다. 1869년에 태어나 1916년 살해당한 그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가져온 주범이자 러시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라스푸틴이 러시아 황제와 가까워진 건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아들 알렉세이가 앓던 혈우병을 고쳐주면서다. 이 계기로 라스푸틴은 황후의 마음을 사로잡고, 황제의 신임도 얻었다. 현대의학으로도 불치의 병인 혈우병을 그가 어떻게 치료하였겠는가. 인간의 나약한 구석을 파고 드는 사악한 말로 정신적 안정을 얻게 해 황후를 아바타로 만들고 나아가 황제를 또 하나의 아바타로 만든 것이다. 그러고는 국정을 마음대로 요절을 내 러시아를 망가뜨렸다. 최태민, 그리고 그의 딸 최순실은 대통령을 아바타로 만들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라스푸틴의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 같다. 그러나 라스푸틴과 최태민 부녀는 차이점이 있다. 라스푸틴의 관심은 오로지 여자에만 있었다. 그러나 최태민 부녀의 욕심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최태민은 욕심이 부엉이 같아서 여자와 돈, 심지어 권력까지 모두 탐했다. 최순실은 또 어떠한가. 재화에 대한 욕심이 사납고, 권력으로 재벌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의 재정을 사유화했다. 모든 형이하학적인 것은 ‘in put = out put’이다. 국가의 재정은 물론 재벌을 털어 만든 그 재화도 결국은 어떠한 형태로든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재화도 하나의 에너지다. 어떤 에너지든 간에 창조될 수도, 소멸될 수도 없다는 것이 열역학 제1법칙이다. 최순실이 탈취한 재화는 질서있는 재화에서 무법의 재화로 바뀌어진 것이다. 이는 체계화된 에너지에서 무질서한 에너지로 변화돼 버린 것으로 스스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이는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다시 스스로 폭포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 폭포수를 원래의 상태로 돌리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는 인위적으로 그 물을 퍼서 올리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물을 퍼 올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추가적인 에너지는 폭포수가 떨어지면서 만들어 낸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가 소비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별 수확이 없다는 의미다. 최태민 부녀가 자신들의 용도도 써 버렸거나, 또는 어딘가 자기의 것으로 위장 합법화시킨 우리 국민의 재화는 자발적으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다. 모든 것을 돌려놓을 수도 없다. 그나마 일부의 것을 돌리고자 했을 때는 추가적으로 재정이 발생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별 소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경제적 균형으로만 계산할 문제가 아니다. 제2, 제3의 최태민 부녀가 생기지 않는 미래, 즉 대한민국의 흑자 균형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큰 추가적인 에너지가 요구되는 한이 있더라도 최순실 부녀의 재화는 반드시 국민의 것으로 돌려야 한다. 이것이 현재의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할 일이다. 이철태 단국대 화학공학과 교수·지식재산교육센터장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지원 조례안 처리가 보류되면서 없어질 위기에 놓였던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가 일단 유지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경기창조혁신센터의 내년도 운영 예산 절반이 삭감돼 사업 차질은 불가피 한 것으로 보인다. 20일 경기도의회 경제과학기술위원회에 따르면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입주 스타트업의 피해 등을 고려해 유지하고 내년도 운영 예산(도비) 15억 원 가운데 절반인 7억5천만 원을 삭감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내년도 총 운영 예산은 63억2천만 원으로 국비 16억6천만 원, 도비 15억 원, KT분담금 31억6천만 원이다. 경제과학기술위원회 남경순 위원장(새누리당ㆍ수원1)은 “최순실 게이트로 국비 지원이 불확실해 서울시처럼 전액 삭감 의견이 있었지만 입주 스타트업(신생벤처기업)의 피해 등을 고려해 일단 예산의 절반만 반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 국비가 통과되면 내년 추경에서 나머지 예산을 증액할 계획”이라며 “만약 국비가 지원되지 않으면 간판을 바꿔 다는 등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활로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경제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 16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 조례안을 국비 지원 결과에 따라 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는 국정농단의 중심에 있는 최순실씨 측근인 차은택씨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만큼 지원 조례안을 다루는 것은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지원조례안은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사업 경비 등 출연금 지원과 공무원 파견 등 행정 지원 내용을 담고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의 핵심사업으로 전국 17개 시도에 들어섰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성남 판교공공지원센터 1ㆍ5층에 1천620㎡규모로 지난해 3월 개소했으며 제품개발테스트랩, 핀테크지원센터, 금융특허상담원스톱서비스존, 스타트업 입주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재 74개의 스타트업이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해 있다. 한편 경제과학기술위원회는 경기도형 청년수당 사업인 ‘청년구직지원금’ 예산(165억 원)도 120억 원가량 삭감했다. 이는 사업 시작이 내년 7월인 점을 감안한 결정으로 부족한 예산은 추경에 담기로 했다.
평택시는 토성의 도시다. 평택에 대략 14개 정도의 성곽이 있는데 그 중 12개가 토성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농성(경기도 기념물 제74호)은 들판에 홀로 덩그러니 평지에 쌓은 작은 토성으로 지금까지 언제 축조됐는지 의견이 분분한 의문의 성곽이다. ■ 오늘날과 다른 척박한 평택현 토요일 아침 평택으로 가는 길에 비가 조금씩 내렸다. 오성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평택시에 들어서니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안개가 피어올라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농성으로 가기 전에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릴 겸 먼저 용성리성지(경기도 기념물 제205)를 들렀다. 2003년에 이뤄진 농성의 지표조사 및 발굴 결과 농성과 비슷한 시기에 쌓은 성곽 중 하나로 지목된 곳이 용성리성지였다. 또 용성리는 평택시에서도 여러 성곽들이 모여 있는 곳이어서 농성으로 가기 전에 지형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다. 용성리성지를 보고나서 읍지에서 미리 봐둔 농성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팽성읍의 농성까지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렸는데 가는 길에 농성과 연관이 깊은 안성천도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평택은 오늘날과 많이 달랐다. 평택현은 연산군 시절에 경기에 속한 적도 있으나 안성천을 사이에 두고 충청도에 속했다. 조선전기에 시인으로 명성이 높던 서거정은 “한 언덕 약간 높게 사방이 편평한데 / 저물녘 돌아와 외로운 정자에 올라보니 / 땅은 바다와 가까워 생선 게가 풍부하고 / 들엔 이미 가을 깊어 벼농사로 가득찼네”하고 평택을 노래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평택현은 오늘날 팽성읍을 기반으로 한 작고 척박한 고을이었다. 고을이 너무 작아 고을 뒤에 있는 주산에 올라 사람들을 부르면 모두 모였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전하고 있다. 또 주변이 퍽퍽한 황무지인데다가 관개도 잘 되지 않아 조금이라도 한재를 만나면 그해 농사는 기대할 것이 없었다. 홍수가 나면 평야여서 물이 고이기 일쑤였다. 만약 이곳에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다는 자부심마저 없었다면 평택민들의 삶은 더 팍팍했을 것이다. ■ 평야에 홀로 서 있는 토성 농성은 안성천이 서해로 흘러가는 하구의 구릉에 쌓은 토성으로 해발 24m의 낮은 구릉에다 남북이 긴 직사각형 모양을 띠고 있다. 둘레와 길이는 지난 2003년의 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제시하면 전체 둘레는 337m, 남북길이는 134m, 동서길이는 96m다. 토성 내부의 면적은 5천984㎡이며 외벽선 기준 면적은 1만1천312㎡이다. 외벽의 높이는 대략 5~8m다. 동ㆍ서쪽에 성문터가 있으며 현재 동쪽 성문터 쪽으로 출입구가 나있다.규모가 워낙 작아서 농성을 천천히 한 바퀴 걷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된다. 성터 내부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언제 심었는지 알 수 없으며 20여 년 전에는 밭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성벽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외황도 두었으며, 바깥이 저지대 습지여서 자연적인 해자도 나름대로 형성돼 있는 당당한 토성이다. ■ 농성은 언제 쌓았을까. 농성에 올라서면 낮은 구릉이지만 주변에 산이 없는 탓인지 사방을 멀리까지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성곽을 언제, 무슨 목적으로 쌓았는지 궁금해진다. 또 조선시대 문헌이나 지도에는 ‘토성’으로 기록돼 있는데 언제부터 ‘농성’으로 불리게 됐는지도 의문이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1942년)에는 임진왜란 때에 일본군이 여기서 농사를 지으며 토성을 축조했고 농성이라는 이름도 그 때 생겼다고 했다. 아마도 오늘날 이 자료를 근거로 해 농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은데, 일제가 농성을 임진왜란기 일본군과 연결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다분하다. 현재 농성을 축성한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전 시기에 걸쳐 있다. 삼국시대 축성설은 김해식 토기 조각이 발굴된 것을 근거로 삼고 있으며 통일신라 축성설은 임(林)씨의 시조인 임팔급과 연결 짓고 있다. 현재 농성 공원 안에 임팔급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이 설을 신빙성있게 보는 것 같다. 그런데 2003년에 동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 및 발굴조사에서는 삼국이나 통일신라로 볼 수 있는 유물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보다는 고려청자 및 분청사기 조각 등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의 유물들이 다수 발굴됐다. 이를 근거로 하면 농성의 축성 시기는 고려시대 축성설이 가장 유력하게 된다. 또 농성의 축성 방식이나 출토 유물이 앞서 소개한 용성리성지나 덕목리성과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용성리성지는 왜구가 극심하던 고려 공민왕 때에 용성현 치소인 비파산성으로 진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용성리성 역시 평지에다 장방형으로 쌓은 토성이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농성이 고려시대에 아산만 일대와 연결한 해안 방어나 고려 말 왜구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농성에는 청야전술을 펼치기 위한 식수 시설이 없으며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치성도 없다. 이 점은 농성이 장기간 들어가 있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다. 오히려 이곳에 몰려있으면 성벽 높이가 낮은 데다 퇴로마저 없어 함락될 위험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이 여전히 농성을 둘러싼 의문이다. 그래서 이 성은 적침을 살피는 조망성이었을 가능성도 타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역의 역사를 밝히는 등대 농성에서 출토된 유물로만 보았을 때에 농성이 고려시대 이후로 축성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높다. 하지만 이것이 농성의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출토 유물과 상관없이 지역에서 전승되고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평택현 지도’(1872년 지방 지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지도에는 “임진왜란 때에 백성들이 쌓았다”고 돼 있다. 또 『팽성지』에는 “옛일을 잘 아는 어르신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삼국 전쟁 때에 서로 약탈을 했기 때문에 농민들이 매번 추수가 끝난 후에 곡물을 모아서 그곳에 저장해두었다고 한다. 또는 신이한 승려 도선이 진(鎭)의 지맥을 위해 이곳에 성을 처음 쌓았다고 한다. 어느 말이 옳은 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기록상 농성이 ‘토성’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는 것은 조선후기다. 조선전기의 기록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농성은 축조 주체가 농민을 포함한 일반 백성이며 승려 도선까지 등장한다. 삼국 전쟁이나 임진왜란 등 전쟁에 맞선 지역민들이 부각되고 있으며 민간에 인기가 높던 풍수설까지 동원되고 있다. 이처럼 조선후기에 평택 지역에서 농성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역민들과 연결되어 유통된 것은 농성이 지역민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오늘날 경기도에는 약 230여 개의 성곽이 분포돼 있다. 이들 중에는 이름만 남아있는 채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성곽들도 있다. 필자가 지난번에 소개한 남양주시 마진산성도 그 중 하나다. 평택현에 조성된 이 조그마한 토성의 역사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으며 조선후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토성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을 수호하는 존재로 부각되어 오늘날까지 잘 남아있게 됐다. 앞으로 농성의 의문이 풀리고 또 어떤 이야기들이 덧붙여질지 모르지만 이 토성이 오래오래 후세에 전해져 평택의 역사, 한반도의 역사를 밝히는 등대로 남아있기를 바래본다. 정해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신분증 사진과 얼굴이 다른 것 같은데요?”지난 18일 오후 8시께 번화가인 의정부시 행복로의 한 술집 안에는 종업원이 의심의 눈초리로 방금 온 여성 3명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를 들은 다른 친구는 화를 내기 보다, “얘가 쌍수(쌍꺼풀 수술)를 한대다 화장해 그렇다”고 까르르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까다로운 인증절차가 이어졌다. 위조 신분증 판독기와 지문감식기 등을 갖춰놓은 해당 술집은 짙은 화장 안에 다소 앳된 얼굴을 가진 여성들의 동의로 기계 검증을 진행했고, 이것도 모자라 페이스북 등 SNS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 로그인 절차를 갖는가 하면 휴대폰 인증문자로도 발송했다. 마치 FBI·CIA를 연상케 하는 신원 확인에서 ‘1997년생 (20살)’이란 당당한 성인인증을 마친 이들은 마음 편히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직후 해방감을 맛본 청소년 수험생들이 ‘몰래 술집으로 모이지 않을까’라는 어른들의 우려는 철저한 검증에 대부분 가로막힌다. 20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경기 북부지역에서 수능 직후 지난 17~18일 양일간 경찰 등 500여 명을 일제 투입해 펼쳐진 술집 단속 결과, 술을 마시는 청소년이나 이들에 술을 판매한 업소는 ‘0’이었다. 과거처럼 ‘술집 한번 뚫어보자’는 식의 청소년 수험생들의 노력과 ‘고생한 아이들에게 술 팔아주자’는 업소의 묵인 등 긴밀한 유착관계(?)는 이제 옛말이 된 셈이다. 이는 단순히 청소년 수험생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 18일 밤에는 의정부 한 고깃집에서 가진 가족 간의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수험생이던 아들에게 “고생했다”고 술을 주는 장면이 목격됐지만, 업주의 경고와 경찰의 계도 등이 이어지자 “술 대신 사이다를 따르겠다”는 식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는 해프닝도 연출되기도 했다. 의정부서 관계자는 “잦은 단속과 교육으로 청소년에게 술을 사고파는 사회분위기가 많이 뒤바뀌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수능 후 청소년들의 벌어질 일탈을 막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민애 참교육학부모회 경기지부장은 “수능시험이 끝난 해방감에 들뜬 청소년 수험생들을 업주 등 어른들이 올바르게 선도해 줘야 한다”며 “또한, 청소년들에게 음주문화보다 다른 건강한 놀이문화가 만드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