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라디오 이수민.
A: Why do you think John and Carol invited us tonight? B: They’re having a party. A: I know that, but what is the party for? B: I think they are going to announce their engagement. A: John과 Carol이 왜 우릴 오늘밤에 초대한 것 같아? B: 파티를 한대. A: 그건 알지만, 뭘 위한 파티인데? B: 내 생각엔 그들의 약혼을 발표할 것 같아. announce는 동사이며 ‘발표하다’, ‘선언하다’, ‘알리다’ 등의 사전적 의미로 사용된다. 어원은 ‘알리다’, ‘~에 대하여 이야기하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annuntiare에서 유래했다. 유사한 표현으로는 make known, declare, reveal 등이 있다. 자료제공= 최선어학원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에 기구치(鞠智城)라는 성이 있다. 1400년 전 우리 백제에서 건너간 귀족이 세운 성으로 65ha에 이르는 이 넓은 성에는 인근 3개 성에 대한 무기, 병참, 예비병력을 담당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성의 외곽 등은 요즘 들어 복원된 것. 특히 성 광장에 세워진 백제 귀족 억예복유(憶福留)의 축성 지휘를 하는 모습의 동상이 인상적이다. 그는 왜 일본에까지 와서 이와 같은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벌였을까? 일본은 왜 지금껏 당시의 병영 모습을 애써 보존하려는 것일까?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은 백제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663년 8월 2만7천명의 군사를 파견했다. 훗날 천지(天智) 천황의 이름으로 등극한 중대형(中大兄) 왕자가 원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 일본 원군은 마침내 지금의 강경 포구와 부여(사비성) 사이의 금강을 타고 진격해 왔다. 하지만 강폭이 좁고, 강 양안에 매복해 있던 당나라와 신라군의 기습 공격에 일본은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무참히 패배했다. 4백여 척의 전함이 불탔고 거의 모든 병력을 금강물에 빠뜨린 왜군 사령관은 겨우 백강(금강의 강경포구 구간의 별칭) 전투현장을 벗어나 일본으로 귀국했다. 이것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동북아 3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인 ‘백강전투’. 한반도에서 벌어진 첫 국제전이기도 하고 중국대륙과 해양세력 일본 사이에 낀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이 빚은 미래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어쨌든 ‘백강전투’에서 일본군이 패퇴할 때 이 전투에 참여했던 많은 백제 귀족들이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들은 당나라와 신라가 연합하여 이번에는 일본으로 쳐들어 올 것에 대해 숙의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들은 일본으로 올라오는 목줄과도 같은 구마모토의 기쿠치에 성을 쌓는 작업을 서둘렀고 그 총책임자는 백제에서 건너온 귀족이 맡았다. 그렇게 기쿠치성 안내문에 기록되어 있다. 기쿠치성 외에 일본 야마모토 조정은 인근의 오노성(大野城), 사가현의 기이성, 나가사키현의 가네다성을 축성했으니 일본이 당나라에 대해 큰 위협을 느낀 것 같다. 이 성을 돌아보노라면 멀리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팔각형의 대형 전망대, 당시 병사들이 숙소로 쓰던 막사 등이 1400년 전 가졌던 대륙에 대한 경계심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대륙세력(중국)과 해양세력(일본)이 맞부딪히는 한반도는 유럽의 폴란드처럼 강대국 틈새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계속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1274년과 1281년 몽고는 고려를 앞세워 일본을 침략했는데 마침 불어온 태풍 ‘가미카제(神風)’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이 침략전쟁으로 하여 몽고군의 병선(兵船)을 만드느라 우리 남부지방은 벌목으로 거의 모든 산들이 민둥산이 되었고 제주도는 몽고군의 말 목장이 되어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있다. 이후에도 계속된 임진왜란, 6ㆍ25와 국토분단 등 우리 한반도가 겪어야 할 지정학적 운명의 상처는 너무 가혹하게 전개되어 왔다. 요즘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이 뜨겁다. 1400년 전에 ‘백강전투’에서 활 쏘는 전쟁으로 시작된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활보다 무서운 핵무기가 등장한 것이 다를 뿐. 지정학적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려는 어떤 선택-역시 그럴만한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신뢰란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라 하였다. 즉,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 하에 상대방의 협조를 기대하는 것으로부터 신뢰는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행정연구원에서 국가, 사회,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정부 신뢰도가 가장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국민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는 입법·사법·행정 업무와 관련하여 소통, 투명성, 일관성에 있어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최근 일상생활의 필수사항인 운전면허 시험제도 개선대책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있다. 현행 운전면허 시험제도는 국가 면허시험장에서만 시행하다가 1995년 기능, 운전면허 응시자 적체현상이 일자 부득불 운전교육기관인 운전전문학원제를 도입 검정권을 부여하여 시행하였다. 또한 2011년 국민편의 확대란 미명하에 운전면허시험을 대폭 완화하여 의무교육시간이 총60시간에서 13시간으로 줄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운전면허 취득 제도가 부실운전자 및 비정상적인 사회적 비용을 양산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는 다양한 지적들이 있어 왔다. 이에 정부에서는 부랴부랴 면허시험 개선안을 발표했으나, 속내를 살펴보면 1995년 이전 시행하던 장내 기능시험을 재도입하는 것일 뿐 새로운 것이 없어 동족방뇨(凍足放尿)의 방편에 지나지 않음에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운전면허취득을 대하는 선진국의 태도는 매우 엄격하다. OECD회원국 의무교육 시간은 평균 50시간이다. 특히 교육과 시험을 철저히 분리하여 운영하고 있다. 정식 운전면허를 따는 데, 호주 4년, 프랑스 3년, 독일은 2년이 걸린다. 대부분 초기에 임시면허나 관찰면허를 주고 운전자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운전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후에 정식면허를 주고 있다. 운전면허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운전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과 그 결과에 따른 엄격한 법 집행이다. 이 기본이 흔들리면 아무리 좋고 멋있는 나무일지라도 올곧게 서있을 수가 없는 법이다. 운전면허 취득수단이 사실상 이원화된 현행 운전면허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운전교육시간만 확대하는 것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덕룡 손해보험협회 수도권본부장
한 농부가 한 마리의 암소를 기르고 있었다. 가난한 농부에게는 소중한 재산이기에 가족같이 아끼고 소중히 아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이 농부가 수심에 찬 얼굴로 수의사를 찾아왔다.자신의 집에 소가 병이 나서 며칠째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명을 다 들은 수의사는 커다란 알약 하나를 주면서 집에 가서 소에게 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의사가 준 알약이 상당히 커서 거의 탁구공만 했다. 농부는 “이렇게 큰 알약을 어떻게 먹어야 합니까?” 하고 먹이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수의사는 “커다란 호스에다가 이 약을 넣고 그리고 한쪽 끝은 소의 입을 벌리고 목구멍 깊숙이 넣은 후 한쪽 끝을 잡고 힘껏 훅 부세요. 그러면 쉽게 약이 소 목구멍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농부는 알겠다며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저녁 즈음에 이 농부는 아침에 수의사를 찾았을 때 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수의사를 찾아왔다. “웬일이십니까? 소가 상태가 더 안 좋아 졌나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요” “그러면 무엇입니까? 약은 먹이셨어요?” “예” “그런데요. 왜 그렇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오셨습니까?” “그런데요. 저… 그놈이 먼저 불었어요.” 신앙이란 무엇인가? 신앙인의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신앙은 믿음이며 믿음은 힘이고 능력이다. 신앙인은 세상을 향해 먼저 바람을 불어 넣어야 할 사람이다. 신앙인의 고유한 능력인 사랑과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명을 지닌 사람이다. 세상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세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녹록치 않다. 경제적인 논리의 바람, 세상의 인기의 바람, 세상의 권력과 부의 바람으로 끊임없이 우리네 삶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여기에 맞설 신앙인이 불어야 할 바람은 무엇인가? 올바른 신앙인의 바람이다. 신앙이란 진리를 추구함이다. 믿음이란 정직과 신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직하고 신실해야 한다. 적어도 신앙인은 세 가지 면에서는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첫째는 자신과 타인에게 있어서 정직해야 한다. 배우자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에게 정직한 자만이 행복한 가정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둘째는 자신의 소득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 털어서 먼지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신앙인은 털어서 먼지가 나지 말아야 한다. 먼지가 나지 않도록 스스로 먼저 털어버리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정직해야 한다. 정직한 신앙인인 되어야 한다. 자식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우지 않으려고 하는 부모가 한심하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한심하고 불쌍한 것은 그 부모의 자식이다.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난 자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성적을 속이고 얻어진 졸업장과 학위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누리려는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부모의 부정한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면제받은 자식에게서 어떻게 이 나라의 안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바람은 도처에서 불어온다. 광명한 천사의 탈을 쓰고 유혹한다. 종교의 탈을 쓴 세상의 바람은 더 음흉하고 무섭다. 부단한 자기 성찰과 함께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이 나를 향해 불기 전에 내가 세상을 향해 먼저 불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반종원 수원침례교회 목사
▲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내 대형 식당인 송도 한옥마을이 불법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내 대형 식당인 송도 한옥마을이 불법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이 셔틀버스가 자칫 시내도로에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여서 시민의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다. 26일 구와 엔타스 등에 따르면 엔타스는 송도 센트럴파크 내 송도 한옥컴플렉스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으로부터 임대받아, 모두 4개의 식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식당이 골프장에서 쓰이는 8인승 카트(전기 전동차)를 개조, 인근 주차장까지 손님을 태워 나르는 불법 셔틀버스 2대를 운행하고 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과 도로교통법 등에는 모든 차량이 일반 도로에서 주행하려면 자동차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해야 한다. 즉 차량 등록증을 보유하고, 차량 앞뒤에 번호판이 달려야 한다는 의미다. 이 셔틀버스는 ‘송도 한옥마을’, ‘셔틀버스’, ‘한옥마을-주차장’ 등의 문구만 있고 차량 번호판도 없이, 식당에서 인근 센트럴파크 주차장까지 왕복 400~500여m를 매일 운행하고 있다. 특히 셔틀버스가 시내도로를 주행할 만큼 안전도 확보되지 않았다. 애초 지붕과 문이 없는 골프장 카트를 개조한 탓에 출입문은 투명 플라스틱 등으로만 되어 있고, 심지어 맨 뒷좌석은 아예 출입문이 없고 사고방지 끈만 걸려 있다. 차량에 안전벨트는 있지만, 대부분 손님은 짧은 거리인 탓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이용한다. 만약 시내도로에서 일반 차량과 충돌 사고라도 발생하면 차체가 충격 완화 효과 등이 없기에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고, 개조된 지붕 때문에 셔틀버스의 높이가 2m 가까이 되어 전복 우려도 크다. 더욱이 정식으로 등록된 차량이 아니므로, 당연히 자동차 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어서 교통사고 시 보상도 쉽지 않다. 이날도 이 셔틀버스는 점심때를 전후로 한 번에 3~4명씩 태우고서, 손님의 안전을 담보로 수십 차례 시내도로를 무법 질주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골프 카트인 이 차량은 도로교통법상 도로 위를 절대 달릴 수 없다”면서 “운행하려면 지자체에 반드시 등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엔타스 관계자는 “손님들이 주차장에서 걸어오면 불편하기에, 편의를 위해 운행했던 것”이라며 “더는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이민우기자
K2 윤아.
‘천상의 시인’ 천상병 시인의 유품이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4년이 넘게 구리시 갈매동 한 극단 창고에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천상병 시인 기념사업회는 그동안 의정부시에 관리나 문학관 건립 등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시는 답을 주지 않고 있다. 26일 기념사업회 측에 따르면 장암동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살던 고택이 의정부IC 개설로 철거된 뒤 부인 목순옥 여사는 지난 2010년 별세 전까지 장암동 수락산 기슭의 집으로 이주해 살았다. 이 집마저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처분될 처지가 되자 기념사업회 측은 2011년 유품을 수습해 구리시 갈매동의 극단창고로 옮겼다. 목 여사가 살던 집은 지난 2012년 5월 개인에게 매각됐다. 기념사업회 측이 보관하고 있는 유품은 원고, 편지, 사진, 책 등과 책장, 책상, 의자, 생활집기 등 500여 점으로 110여개 박스에 이른다. 기자가 찾아가본 창고엔 극단의 다른 물품과 함께 천상병 시인의 유품 박스가 쌓여져 있었고 일부 자료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분류돼 보관돼 있었다. 기념사업회 측 관계자는 “그동안 천상병 시인과 연고가 있는 의정부시와 노원구에 문학관 건립이나 관리 등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며 “창고마저 곧 비워줘야 할 처지로 유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천 시인 부부는 결혼 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10년, 의정부 장암동에서 13년 정도 살았다. 의정부시에는 천 시인의 시 ‘귀천’에서 이름을 따온 ‘소풍길’이란 둘레길이 있고 해마다 천상병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노원구 역시 수락산 등산로를 ‘천상병 등산로’로 명명하고 천상병공원도 만들어 천 시인을 기리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천상병, 목순옥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모임’ 회원 20여 명은 지난 2013년부터 시낭송 모임 등을 통해 문학관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의정부지역 문화단체 한 관계자는 “의정부시가 문화·관광도시를 내걸고 각종 개발사업엔 열중이면서도 의정부의 대표적 문화적 자산인 천상병 시인과 관련된 사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의정부시 관계자는 “의정부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임에 공감한다”며 “문학관 건립 등 당장은 어려워도 관리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의정부=김동일기자
유벤투스 토트넘.
회원 간, 협회 간 불협화음으로 삐걱거렸던 시흥예총이 낡은 틀을 청산하고 시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단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최찬희 회장의 역할이 컸다. 최 회장은 취임한 지 6개월여밖에 안됐지만, 시흥예총이 주관하는 모든 행사에 협회 간 기회균등의 원칙을 정립하고 회원 간 적극적인 소통으로 화합을 이끌어냈다. 그는 취임 당시 “예술에 대한 열정과 기품이 살아 숨 쉬는 시흥예총을 만들겠다”며 “소신과 원칙 속에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여타의 이유로 관심을 넘은 간섭으로부터 예술인들이 자유롭도록 바람막이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2일 시흥시청에서 최 회장을 만났다. 보통 예술가처럼 깐깐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그런 선입견이 깨졌다. 시흥예총 회장이라기보다는 자상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하지만, 시흥의 예술발전에 대한 포부를 밝힐 때는 특유의 열정과 카리스마가 물씬 풍겼다. 그가 각종 불협화음으로 삐걱대던 시흥예총의 회장직에 출마한 동기가 궁금해졌다.“시흥의 예술 꿈나무를 발굴·육성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 최 회장은 “이를 위해 시흥예총과 회원단체가 유명단체의 초청공연 때 각 장르를 전공하는 예술 꿈나무들의 협연을 통해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으며, 지역 내 예술분야 전공학생을 파악해 장르별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밝혔다.이어 “그래야 시흥의 예술이 기존 예술인에 국한되지 않고, 시흥의 예술과 문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해외관광객을 대상으로 가장 한국적인 체험프로그램을 접목한 예술공연과 생활예술인(동아리)의 끼 발산을 위한 공간(중장기 계획) 마련 계획도 갖고 있다. “시흥시는 문화예술회관은 고사하고 전문공연을 할 수 있는 예술인의 마당이 전무한 실정으로, 경기도 내에서 문화예술 SOC를 따질 때는 10위다, 그러나 평가항목에서 도서관을 빼면 꼴찌다”며 “시흥시의 문화예술 SOC는 풍요 속의 빈곤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그는 회장에 취임한 이후 회원 간 화합을 강조해 왔다. 회장선거에서 대의원 35명이 투표한 결과 17대18, 1표 차로 당선되면서 회원 간 단합이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인터뷰 중에도 “시흥예총이 주관하는 모든 행사에 치우침이 없는 협회 간 기회균등의 원칙을 준수하는 예총이 되겠다”는 취임 당시의 포부를 거듭 밝혔다. 화합의 한 방법으로 ‘시흥예총 상조회’를 결성해 회원 간 상부상조를 통한 화합과 우애를 돈독히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예술회관이나 전문공연장은 가정으로 보면 서재와 같아서 지속적인 문화예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그런 풍토에서 자란 꿈나무 중 세계를 흔드는 예술인이 한 명이라도 탄생한다면 그것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며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지원과 전문 공연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흥=이성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