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서울서부지법원장. 양승태 대법원장은 6일 이기택 서울서부지법원장(56사법연수원 14기)을 대법관 후보자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이 후보자는 다음달 퇴임하는 민일영 대법관(60사법연수원 10기) 후임이다. 앞서,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이기수)는 지난 4일 회의를 열고 이 법원장을 포함한 후보 3명을 선정, 양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박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여 국회에 임명 동의를 요청하면 국회는 청문회를 거쳐 동의를 투표하고, 가결되면 박 대통령은 후보자를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서울 출신의 이 후보자는 경성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거쳤다. 법원 내 민법과 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분야 최고의 이론가로 손꼽히며 지적재산권법 연구회장도 지냈다. 양 대법원장은 합리적인 법적 사고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이나 일시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선고해 오면서도 기존 관행에 묻히지 않고 다양한 사회 계층을 아우른 이 후보자를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팀
지난 7월15일 중앙선관위 소속 독립기구로 설치된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위가 출범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컸다. 그동안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국회 소속으로 최종 수정 권한을 국회가 행사하면서 다양한 문제점이 노출됐었지만 소속이 달라진 선거구획정위의 출범으로 그동안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이해관계에 따른 자의적 선거구획정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회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마련한 획정안에 대해 사실상 수정 권한을 포기하는 내용을 담아냈기에 내년 20대 총선부터는 더 이상 게리멘더링(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조정)으로 인한 논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선관위 소속 독립기구로 설치하도록 본회의를 통과한 5월29일로부터 두달밖에 지나지 않았고, 선거구 획정위가 출범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야는 까마득하게 잊은 듯하다. 중앙선관위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던 5월29일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됐음에도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아 예비후보자는 자신의 선거구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유권자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예비후보자가 다른 선거구의 후보자로 등록하여 혼란을 겪는 경우도 발생하고 △선거일을 한 달 정도 남긴 시점에 선거구가 확정되어 선거비용 제한액을 비롯해 입후보를 위한 공무원 등의 사퇴 시한 등 선거구획정과 관련된 모든 선거사무에 대해 특례를 두고 이미 집행된 선거사무를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 등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앙선관위는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에 나섰다. 이는 총선 6개월 전인 오는 10월13일까지 선거구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선거구획정 계획에 따르면 10월 13일 선거구획정안 국회 제출, 11월13일까지 국회의결, 12월5일까지 선거비용제한액 결정ㆍ공고, 12월15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개시로 20대 총선이 본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이때문에 획정위는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8월13일까지 의원정수, 지역구 비례대표 의석수, 자치 구 시ㆍ군의 일부 분할 허용여부와 같은 선거구 획정 기준을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야가 이를 결정해 주어야만 지역구를 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한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흘러갈 것으로 기대하진 않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오히려 물 흐름이 차단되고 역류하는 분위기다. 선거구획정을 위해서는 공청회, 의견수렴도 해야 하지만 우선시 돼야 할 것은 바로 의원 정수다. 기초가 튼튼해야 무너지지 않고 다시 쌓는 우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7월26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5차혁신안을 발표하면서 국회 의원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확대하는 방안을 촉구한 뒤 여야는 서로의 논리에 따라 자기 주장만 하고 있다. 벌써 2주째다. 이렇게 가다가는 선거구획정으로 인한 선거개혁, 정치개혁은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구획정위에서 결정되는 선거구에 대해서 정말로 국회가 한 글자도 고칠 수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여야 14명의 국회의원들이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8.15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무대에 함께 나선다. 독창이 아닌 합창은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등 각 파트로 나눠져 있지만, 자기 목소리만을 내기보다는 함께 어우러져야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줄 수 있다. 정개특위가 선거구 획정에 관한 권한을 내려놓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것처럼, 여야는 1주일 뒤인 8월13일까지 선거구획정위가 요청한 의원정수 등을 제시, 선거개혁, 정치개혁의 서막을 알려줬으면 한다. 여야 의원들이 합창을 통해 보여주는 것처럼, 정치개혁에서 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줄 수는 없을까. 정근호 정치부장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언론(言論)이 영웅(英雄)을 만들고, 언론과 친해져야 성공(成功)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과 진정한 소통(疏通)을 하기 위해서 언론이라는 좋은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몇 가지 예화를 살펴보자. 1983년 가을의 일이다. 당시 경제기획원 S사무관이 P사무관, 신문기자와 함께 커피 한 잔을 했다. S사무관은 이렇게 말했다. 효율적인 종합국토이용체계를 갖추기 위해서 건설부에 있는 도로국이 교통부로 이관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서 건설부와 교통부가 합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에 공감하면서 인구청 신설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P사무관의 강력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기자의 멘트가 곧바로 이어졌다. 그 다음날 오후 모 석간신문 1면 머리 기사로 건설부 도로국 교통부 이관, 인구청 신설 이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이를 해설하는 기사가 나왔다. 그런데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이 사안은 경제기획원 실무수준에서 발상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 보도되었다. 이 기사가 출고되자 당시 총무처 장관이 경제기획원 차관에게 항의 전화를 했고, 담당사무관은 곤경에 빠졌다.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이때의 언론 보도는 시간이 지나자 사실로 입증되었다. 몇 년 후 건설부와 교통부가 통합되어 건설교통부가 출범했다. 담당자의 주장이 언론을 타자 씨앗이 된 셈이었다. 언론에 보도가 제대로 되지 못해 정부 정책이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한때 미국에 의료공영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의료비 부담 문제 때문이었다. 의료비와 보험료를 낮추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에드워드 케네디(Edward Moore Kennedy) 상원의원이 주축이 되어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AAA(미국의료보험협회), AMA(미국의사협회) 등 거센 반발에 부딪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실패의 원인은 국민의 여론을 등에 입지 못한 것이었다. 이처럼 언론은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좋은 정부 정책에 대한 언론인들의 철저한 검증이 때로는 냉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송하성 경기대학교 교수(한국공공정책학회장)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진 검은 피부의 아이들, 광활한 초원과 사자ㆍ기린ㆍ얼룩말 같은 야생동물 등 거룩한 대자연을 품고 있는 아프리카. 지난 4일 같은 부서에 있는 후배가 월드비전과 동행해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후배를 보내며 2011년 2월 봉사활동 차 갔다 왔던 아프리카 가나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태국과 케냐를 경유해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였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잘 발달된 아크라의 모습은 당시 생각해왔던 아프리카와는 달랐다. 이런 곳에서 무슨 봉사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봉사활동의 목적지인 크라치웨스트로 가는 동안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1시간 정도를 가니 1990년대의 모습이 나타났고, 1시간을 더 가니 1980년대의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1시간을 또 가니 경험해보지 못했던 1960년대가 연상됐다. 목적지로 향할수록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이랄까. 그로부터 크라치웨스트에 사는 부족을 방문해 목도한 그들의 집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방이 하나만 있는 집은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짐승들이 사는 우리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곳은 우물을 파기 위해 방문한 마을이었다. 부족민들은 호소했다.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면서 발생한 피부병과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몸을 보여주면서 이곳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우물에서 퍼올린 물이 담긴 큰 대야를 머리에 이고 걷는 아이들의 행렬이다. 마을에서 우물까지 1~2시간은 기본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와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의 무게라는 핑계같지 않은 핑계로, 4년 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들의 가슴 아린 모습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좀 더 낮은 곳을 살피며 나보다 못한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아프리카에서의 다짐을 다시 한번 일깨워 본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반도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자원이 빈곤한 우리나라는 원료를 수입하여 가공 수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산업 등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거대규모의 무역국가로 탈바꿈했다. 수출을 통한 산업 발전을 보면서 자연스레 인천, 부산, 울산 등 항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수도권에서는 당연히 인천항의 중요성이 재인식되는 것이다. 최근 인천시가 경기만을 인천만으로 바꾸자는 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만에 인천시 구역이 다른 지자체의 구역보다 넓은 것은 사실이다. 그간 괄목상대하게 발전하여 커진 시세와 인천공항과 200여 곳의 크고 작은 섬과 바다를 바라보는 인천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명칭을 바꿔서 얻는 이익보다도 명칭변경 논란으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여 잃는 손실이 크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 본다. 경기만은 황해도 옹진반도부터 충남 태안반도를 잇는 약 528km 의 해안선을 갖고 있다. 그 안에 해주만, 아산만, 남양만 등 작은 만을 포함하고 있는데, 수백 년 전부터 사용하던 경기만 명칭을 인천만으로 변경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나라가 처해 있는 국면부터 직시해야 한다. 동해는 러시아, 일본과 아우르는 환동해경제권과 서해는 거대한 땅을 가진 중국과 바다를 마주하며 환서해경제권에 속해서 관련국들과 협력과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멀리 내다보고 세계와 경쟁을 생각할 때다. 조그마한 나라 안에 있는 안마당과도 같은 바다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발전을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큰 문제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일이다. 유동운 경기도 해양항만정책과장
수원 31운동 주도했던 할아버지 일제에 고문옥고 광복군서 활약 수감 기록독립운동사진 등 없다고 독립유공자 인정 못 받아 안타까워 일제강점기 시절 고문을 당해 머리가 함몰되고 왼쪽 손목을 평생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광복군에 입대한 아버지는 진정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광복 70주년을 앞둔 6일 수원지역의 숨겨진 독립운동가였던 김노적 선생의 차남 김지형옹(77)의 눈시울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김옹은 몸이 아픈 가운데서도 나라를 걱정하던 아버지는 진정한 애국자였다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895년 5월12일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교동) 332번지에서 태어난 김노적 선생은 민족대표 48인으로 지칭되는 김세환 선생의 지도를 받아 수원지역의 31운동을 주도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19년 2월 서울과 지방에서 31운동을 위한 지하활동이 시작되자 김세환 선생과 수원상업강습소에서 거사를 모의했다. 마침내 3월1일 저녁이 되자 군중 동원을 맡은 김노적 선생 등은 창룡문 봉수대에 올라가 횃불을 치켜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거사는 성공했지만 김노적 선생은 수괴로 지목체포돼 수원경찰서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이로 인해 갈비뼈 4개와 왼팔이 부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됐지만, 끝까지 일제의 압력에 굴하지 않았다. 이후 교사생활을 하며 신간회 활동을 벌이던 김노적 선생은 1939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1941년 광복군에 자원 입대했다. 당시 그는 고문 때문에 왼팔이 망가진 상태였다. 김지형옹은 어린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늘 아픈 분이었다.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드리다 보면 일제에 당한 고문으로 두개골이 함몰되고 곳곳에 흉터가 가득했다며 그야말로 살아계신 게 신기할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더욱이 몸이 망가진 김노적 선생은 사실상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여서, 가족들은 항상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김옹은 지금은 형편이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정말 살림이 어려웠다. 어머니는 먹을 것이 떨어지면 편찮으신 아버지를 대신해 이웃집에 동냥을 다니며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김노적 선생이 수원지역 31운동의 중심인물이었음에도, 여전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노적 선생의 손자 김현학씨(48)는 할아버지의 수감기록이나 독립운동사진 등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물론 할아버지가 상을 받자고 독립운동을 하신 건 아닐테지만, 후손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송우일기자
지적능력이 부족한 20살 아들과 단둘이 생활하던 50대 가정주부가 아사상태로 발견돼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다행히 아들은 아사 직전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6시10분께 안산시 관내의 한 주택가에서 가정주부 A씨(54)가 자신의 방안에서 이불을 덮고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몸에 뼈만 남은 앙상한 상태로 시신 옆에 있었던 아들 B씨(20)도 함께 발견됐다. 경찰은 이웃주민으로부터 옆집에서 악취가 너무 심하게 나는데 확인을 좀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이들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A씨는 시신이 많이 부패된 상태였다. 12년 전 남편을 잃은 A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아들과 함께 지난 2011년 1월 안산시로 이사를 왔으며, 이후 지적능력이 부족한 아들 B씨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 수년간 집안에만 있었던 것으로 시측은 파악하고 있다. B씨는 발견될 때까지 물만 마시면서 버텨왔고, 어머니가 언제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시 관계자는 덧붙였다. 아들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으며 현재는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의뢰한 상태며, 아들 B씨는 친인척이 살고 있는 인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를 계속해서 받을 예정이다. 한편 안산시는 B씨에 대해 긴급생계지원 대상자로 지정, 생계비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안산=구재원기자
현장에 있던 2명이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한 흉기살인 사건의 진실이 3일간의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드러난다. 수원지법 형사12부(오상용 부장판사)는 지난달 16일 열린 L씨의 공판준비기일에서 L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오는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진행되는 국민참여재판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L씨는 지난 2월18일 안산시 단원구의 지인 K씨 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K씨를 흉기로 찔러 죽인 혐의(살인)로 기소됐다. 그러나 L씨는 조사받는 동안 혐의사실을 부인하며, 함께 있던 다른 일행이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L씨가 진범이라고 지목한 B씨는 술자리에 계속 있지 않고 나왔다는 취지로 진술하며 L씨의 주장을 반박했으나, 사건 발생 직후 만난 지인에게 내가 사람을 찔렀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재판부는 B씨를 비롯해 당시 현장에 있던 일행 등 5명을 증인으로 소환, 심문할 계획이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사망자는 있지만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사건이라며 증인 심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수일에 걸쳐 재판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관기자
수원중부경찰서는 지난 3월부터 5개월간 마약사범 집중 단속을 벌여 수도권 일대에서 필로폰 등을 판매알선하거나 투약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로 12명을 구속하고 30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조직폭력배 일원인 L씨(38)는 지난 6월 마약 판매책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필로폰 10g을 구입한 뒤 직접 투약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선한 혐의다. 또 전직 소방공무원 H씨(47)는 지난 3월 마약을 하면서 알게 된 S씨(49)에게 자신이 구입한 필로폰 30g을 판매한 혐의다. 택시기사 K씨(53)도 지난 2월부터 필로폰을 2차례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피의자 중에는 H씨와 K씨처럼 평범한 시민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피의자들로부터 필로폰 20g(시가 6천600만원 상당, 666명 동시투약분)을 압수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진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