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 삭감 ‘칼바람’...얼어붙은 인천 복지사업

인천의 각종 복지사업 추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민선 8기 복지사업의 핵심인 신규 사업들이 긴축 재정을 이유로 내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리면서 첫 단추도 꿰지 못한데다, 그동안 추진하던 사업 예산도 축소 및 동결했기 때문이다. 23일 인천시에 따르면 2024년 본예산 규모를 올해 예산 규모 14조7천119억원(1차 추경 포함)보다 7천~8천억원 줄어든 13조9천여억원 수준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시는 최근 내년 본예산에 대한 각 부서별 1차 조정회의를 마치고, 시의회로 예산안을 넘기기 전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내년 복지사업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시가 내년에 1천600억원의 세수 부족과 중앙정부의 긴축재정 기조로 인한 국비 감소로 각종 복지사업 예산을 잘라냈기 때문이다. 시는 민선 8기 공약사업으로 내년부터 보육 환경의 질을 높이기 위해 반영하려던 ‘보육교사 처우개선비 5만원 인상’ 예산 92억원을 내부 검토에서 전액 삭감했다. 현재 인천의 어린이집 교사의 처우개선비는 17만원으로 전국 평균이자, 경기도의 처우개선비 28만원보다 낮다. 시는 처우개선비 인상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의 재정 형편 상 이를 후순위로 미룬 것이다. 또 시는 임신부 교통비 50만원 지원 사업을 위한 76억원의 예산도 내년 본예산에 반영하지 못했다. 앞서 시는 지난 3월 교통비 지원 근거를 담은 ‘저출산 대책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이와 함께 80세 이상 어르신 가구에 매월 5만원씩 지급하는 ‘노인돌봄(행복수당)’과 출산시 1천만원을 지급하는 ‘첫만남 이용권’은 물론 65세 이상 대중교통 요금 무료화 정책 등도 줄줄이 예산 반영에 실패해 결국 사업은 첫 발도 떼지 못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중앙 정부가 현금 지원을 하는 복지 사업에 대해 쉽게 사회보장제도 협의를 해주지 않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긴축재정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시가 이미 추진 중인 복지사업의 확대도 줄줄이 제동이 걸렸다. 시는 현재 일부지역에서 이뤄지는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포진 무료접종 사업을 전 지역으로 확대하려 했으나, 예산 규모가 커져 기초생활수급자로 대상을 축소하기로 했다. 또 임신·출산·육아 통합 관리를 하는 ‘인천맘센터’ 신축 사업은 백지화하고, 대신 인천시육아종합지원센터 내부에 센터를 두기로 결정했다. 맘센터의 사업 규모도 8억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40% 이상 축소했다. 특히 현장에서 복지 사업을 추진하는 인천여성가족재단과 인천시사회서비스원의 예산도 감축하는 등 허리띠를 졸라맨다. 여성가족재단의 내년 예산은 41억원 규모로 올해 43억원보다 2억원을 줄이고, 인천사서원의 출연금도 올해 28억원에서 3억원 줄인다. 인천사서원은 국비 8억원이 이미 날라간 상황이어서 신설하는 종합재가복지센터는 종전 중증장애인 활동서비스 등을 빼고 운영토록 할 계획이다. 송다영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취약계층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복지사업의 예산에 대해 시가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기조면 신규 복지 사업은 영영 추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65세 이상 어르신 인구가 늘어 내년 예산에 국비와 매칭한 사업비 규모는 늘어났지만, 신규 사업을 추진할 재정적 여력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공약 등 핵심 사업은 내년에 추경 등을 통해 사업 추진을 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돌아온 '화재의 계절'…火 키우는 불법은 '여전' [현장, 그곳&]

“왜 소방시설 앞에 주차를 하는지…. 불났을 때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책임은 누가 집니까?” 23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권선구 A시장 앞에 마련된 비상소화장치 주변에는 버젓이 적힌 ‘주정차금지’ 문구가 무색하게 차량 3대가 일렬로 불법 주차돼 있었다. 시장 내부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소방 도로’ 확보를 위해 길 양쪽으로 그려진 황색 실선 주변으로 수십 개의 노점들이 상품과 가판대를 설치해뒀고, 테이블 등의 고정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소방차 진입은 물론 보행조차 어려운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화성시 반월동 B아파트 상황도 마찬가지. 주차장과 각 층 현관에 설치돼 있는 방화문 대부분이 활짝 열린 채 돌과 신문지 등으로 고정돼 있는 상태였다. 닫혀있어야 할 주차장 방화문은 닫힐 틈 없이 입주민들에 의해 개방된 상태로 유지돼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문모씨(29)는 “그냥 주차장 출입문인줄만 알았지, 방화문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며 “지금까지 계속 열려있어도 아무도 닫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방화문을 열어둔 채 방치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화재의 계절'이 또다시 찾아오고 있는 가운데 경기지역에서 소방법령 위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건조한 가을·겨울철 화재는 자칫 큰 불로 번져 인명피해를 낼 수 있는 만큼 시민의식을 강화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소방청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경기지역에서 소방법령 위반으로 적발된 사례만 153곳에 달한다. 이는 전국 기준 1천26곳의 10%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다. 이들에 대한 조치현황(중복 포함)을 보면 시정명령이 94곳, 현지시정 82곳 등 가벼운 처분을 받은 곳도 있었지만, 위반 정도가 중해 과태료 처분(75곳)을 받거나 입건 및 행정처분(25곳)을 받은 곳도 있었다. 김상식 우석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화재가 발생할 확률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만큼 이를 사전에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소방법령을 잘 준수하게 하는 등 시민 의식 제고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시민 안전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는 등 더 노력하겠다”며 “시민께서도 무심코 한 행동이 큰 화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인식하는 등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공시제 ‘무용지물’... 동물진료비 지역별 천차만별

반려가구 비중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시스템이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개별 병원의 진료비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등록된 정보인 기초단체별 최저 진료비와 최고 진료비의 편차까지 커 제도의 실효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수의사법이 개정되면서 수의사 2인 이상이 근무하는 동물병원은 진료비를 게시해야 한다. 필수 표시 내용은 초진·재진 진찰료, 상담료, 입원비, 종합백신 접종비, 전혈구 검사비, 엑스선 촬영비와 판독료 등이다. 그러나 정작 이 같은 규정에도 개별 진료비를 확인할 길은 없다. 병원별 진료비가 아닌 각 기초단체별 최고·최저·중간·평균 진료비만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기초단체별, 기초단체 내에서도 진료비 편차가 큰 상황에서 개별 병원의 진료비를 확인할 수 없다면, 반려인구의 부담 완화를 위한 제도 목적을 지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부적으로 경기도가 지난 8월 도내 359개 동물병원 진료비 현황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시·군별로 평균 진료 비용 편차는 최대 5배에 달했다. 초진 진찰료는 성남시가 1만3천786원으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가장 저렴한 이천시(4천950원)에 비해 2.8배 비싼 수치다. 또 중형견 입원비(1일 기준)는 구리시가 9만9천원으로 나타나 포천시와 가평군(2만원) 대비 5배 가까이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같은 기초단체 내에서도 나타났다. 안양시의 경우 소형견의 입양비(1일 기준)가 최저비용은 2만2천원인 데 반해 최고비용은 30만원이었다. 단순 비교해도 13.6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애완견을 기르는 김소담씨(29)는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시스템에 게시된 평균 가격을 알고 갔는데도, 당일 추가되는 약값만 5만원이었다”며 “개별 병원마다 세부 진료비를 확인할 수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동물의료업계는 개별 진료 전문성과 약품의 종류, 보유 장비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진료비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내년 1월부터 1인 동물병원까지 예외 없이 진료비를 게시해야 하는 만큼 진료비 게시 기준이 개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경 한국반려동물진흥원 교육센터장은 “동물병원 진료비 공개시스템에 동물병원별로 필수 진료비를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다만 진료비가 다른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 수의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소비자도 합리적으로 병원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만평] 미션 임파서블...

[사설] ‘조폭 SNS’, 초기인 지금 아니면 근절 못 한다

경기경찰이 조직폭력배들을 많이 잡아들였다. 경기남·북부경찰청의 검거 통계가 설명한다. 2018년 644명, 2019년 736명, 2020년 544명, 2021년 670면, 2022년 757명이다. 범죄가 감소했던 때는 2020년이 유일하다. 코로나19 통제가 철저했던 시기다. 나머지 기간은 예외 없이 증가했다. 특히 남부권에서의 검거가 주목된다. 올해 상반기 조폭 특별단속이 있었다. 275명을 검거해 33명을 구속했다. 전국 1위다. 통계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조폭이 가장 설치는 경기도’로 풀면 안 된다. 경찰이 많이 잡은 것이다. 여기에 경기 남부권이 갖는 특징도 있다. 경기도 인구는 1천300만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중 북부가 300만명, 남부가 무려 900만명이다. 조폭 수가 많은 것 자체가 이상할 건 없다.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른바 MZ 조폭’이라 불리는 10대 조폭 문제다. 그리고 이들을 근절하지 못하는 문제다. 앞선 경기남·북부경찰청 통계에서 10대 조폭만 추려보면 이렇다. 2018년 11명, 2019년 37명, 2020년 26명, 2021년 28명, 2022년 62명이다. 이것도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급등 추세다. 10대 조폭의 증가는 범죄의 미래 수치다. 향후 폭력 조직 범죄의 증가를 점치게 한다. 그 속에 과거에 없던 특징이 보인다. ‘조폭 SNS’다. ‘조폭’, ‘깡패’ 등의 문패를 달고 활동 중이다. 2019년 3명에서 2023년 12명으로 늘었다. 조직폭력범 인터뷰를 올린 영상도 있다. 수감 경험을 공유하는 내용도 많다. 속칭 ‘현피’(현장에서의 싸움)를 중계하는 유튜버도 있다. 다분히 폭력을 미화하고 위세를 과시하는 내용이다. 접촉 연령층은 젊은 세대가 압도적이다. 감수성 예민한 10대 청소년이다. 범죄를 가르치는 셈이고, 조직폭력을 조장하는 것이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꼴이다. 당연히 단속해야 하고 근절돼야 한다. 그런데 시원한 조치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이 이런 이유를 말한다. ‘SNS 자체가 명백한 범죄 행위는 아니다.’ ‘계정 운영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이해는 하지만 납득하기는 어렵다. 조직폭력 SNS를 관찰하고는 있다고 했다. 수천~수만명이 시청하는 것도 알 것이다. 그걸 처벌할 수 없다며 관찰만 한다는 것이다. 꼭 쇠고랑을 채우는 것 말고도 단속의 길은 많다. 방송 통신 관련 기관과의 협조로 방송 폐쇄 등을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런 건 해보지도 않았지 않나. 현재 12명 정도라고 한다. 제어할 수 있는 단계다. 지금 뿌리 뽑아야 한다. SNS 전파력은 기하급수다. 금방 1천2백명 되고, 1만2천명 된다. 그때는 손 못 댄다. 서둘러 관계 기관 회의하고 실효적 대책 만들어야 할 것이다.

[사설]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 실현 가능 방안 찾아야

섬 주민들은 이동권이 크게 제약받는다. 우선 연안여객선이 하루 1~2회 운항에 그친다. 피서철 등 성수기가 아니면 승객 수요가 많지 않아서다. 그마저 바다 날씨에 따라 운항을 중단하기 일쑤다. 인천 섬 주민들의 이동권 보장 문제는 오랜 숙제다. 특히 백령·연평도 등 서해5도 주민들은 불편이 더 크다. 육지와의 거리가 멀고 군 작전 통제까지 겹친다. 섬 주민들은 인천시민이면서도 일일생활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푸념한다. 치과 치료나 은행 일을 보러 육지로 나와서도 하룻밤을 묵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인천시가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를 본격 검토한다고 한다. 인천시가 내년 인천연구원을 통해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에 대한 정책연구에 들어간다. 인천 섬 지역 주민들의 정주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완전공영제를 한다면 어떤 사업구조를 택할 것인지, 그 비용은 얼마나 필요할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는 지자체가 여객선 사업면허를 갖고 직접 운항하는 방식이다. 즉, 교통공사 같은 공기업이 여객선을 운항하는 형태다. 현재 인천의 연안여객선은 13개 항로에 이른다. 이 중 10개 항로를 민간사업자가 맡고 있다. 이 10개 항로 중 8개 항로는 1일 1~2회 왕복 운항만 하고 있다. 민간사업자는 운항일수와 횟수를 줄여 수익을 올리려 한다. 그만큼 섬 주민들의 이동권이 제한받는 구조다. 인천시가 완전공영제 도입을 통해 섬 주민들의 일일생활권을 보장하려는 이유다. 문제는 막대한 재원이다. 정책연구 이전에, 중앙정부 지원 없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섬이 많은 전남 신안군도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에 도전했다. 그러나 재원 문제로 다시 준공영제로 돌아섰다고 한다. 완전공영제를 하려면 인천시가 선박을 구입하고 기존 선사의 항로면허를 사들여야 한다. 초기부터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야 한다. 2천500t급 선박의 경우 신조선이 350억원, 중고선이 150억원에 이른다. 현재 수익이 나는 노선의 경우, 면허 확보도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인천 연안여객선은 현재도 사실상의 준공영제다. 시내버스 요금(1천400원)을 초과하는 뱃삯의 80%까지를 인천시가 지원한다. 올해 이 예산만도 169억원이다. 여객선 완전공영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가야 할 길인 것은 맞다. 접경지역의 경우 주민 정주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경기도의 경기패스 등 대도시 지역의 교통복지는 갈수록 확장 추세다. 이번 정책연구를 통해 연안여객선 완전공영제에 대한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중앙정부 지원 요구도 이런 준비를 갖추고서야 가능할 것이다.

[윤준영 칼럼] 의료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재화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은 필연적이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사회일수록 미래에 도래할 불안감을 떨쳐내는 방식에 있어 사회적 합의와 협동의 가치는 낮아지고 혼자만이라도 성공하려는 이기심만 점차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 의미로 본다면 현재 고수입인 의사는 타 직군에 비해 사람들의 쏠림 현상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직업의 자격을 ‘다른 변수 없이 단순히 성적으로만 판단해 줄 세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는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 최근 다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의사단체는 즉각적인 반대를 표명하며 강경대응을 예고했지만 의사단체를 제외한 정부와 시민들의 반응은 찬성에 가깝다. 건보재정의 악화와 특정 진료과의 쏠림현상으로 정원 확대가 의료공백의 해소에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의사단체와 필수의료서비스 인력의 공백으로 지방의 의료 공백이 가시화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들어보면 양측의 주장이 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분명 민감한 시기에 정부에서 이러한 화두를 던지는 데에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정치적 색깔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의사단체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득하지 못했다. 의사단체들은 의대 정원 확대가 국민의료비 증가가 가속화돼 건보재정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 7년간 국민 1인당 건강보험 급여비는 50% 이상 증가했고 전체 인구의 16%인 65세 인구가 건보재정의 43%를 사용한다. 건보료를 내지 않는 65세 이상의 노인층에서 절반 가까운 건보료를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나라같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나라에서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 재정의 무게와 동시에 의료가 단순히 노인에 대한 복지의 혜택으로만 작용되기 힘들다는 점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기존에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 대세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정재영(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및 신경과 등 노인 위주의 진료과목이 늘어난 것은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사면허 및 건강보험제도만 공공영역으로 관리하고 병·의원급 개원의에 대해서는 경쟁적으로 수입을 창출하게 만들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혼재돼 있기에 진료과목에 상관없이 수입이 일정하거나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가 정해져 있는 외국과 달리 의사들의 얼마나 일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천차만별이고, 진료에 소비되는 시간은 타 국가에 비해 월등히 짧아 ‘시간=돈’이라는 현상을 만들어 진료시간은 길고 환자의 수요 메리트가 없는 소아과나 산부인과 같은 진료과목은 기피하는 현상을 만들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저출산, 고령화가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모두가 산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있기에 노력에 비해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적영역이나 기피하는 진료과에 지원하는 사람은 적어지고 사적영역에서 고수입만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공적·사적 영역이 혼재된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문제에 대해 한마디로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의료는 정부 재정이 막대하게 투여되는 만큼 공적영역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선진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의사가 단순히 고수입을 보장하는 양질의 직업이라는 사회적 특권의식의 변화와 더불어 의사들도 공공재의 일환으로 본인들이 국가와 사회의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앞서 의료 문제 역시 인구 구조의 변화가 낳은 문제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저출산, 고령화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프리즘] 안전한 도시, 찰나의 반성과 후회

그 얘길 믿었더라면, 길을 막았더라면, 아니 그때 거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도시민으로서의 운명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역사적 사건들도 생각지 못한 작은 일들로 비롯되기도 하고, 순간의 반복된 여러 선택이 모아져 역사적 비극이 되기도 했다. 공동체 속에서의 삶이란 개개인의 의지와 선택보다 시대와 상황으로 운명지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해 이맘때쯤, 이태원 참사로 기억되는 핼러윈데이에 소중한 생때같은 생명들을 잃었다. 어제와 같이 그 아픔이 기억되는데 벌써 1년이 성큼 갔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었을 테고, 그날 이후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지 감히 짐작된다. 우리는 도시의 활력을 얘기할 때 사람들의 통행량 등 밀도를 얘기한다. 분명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들은 도시의 매력도를 높이는 도시브랜드 역할을 한다. 공적 공간이든 사적 공간이든 도시를 디자인할 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면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거의 보이지 않고, 거리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구성한다. 이는 싱가포르 도시개발청 URA의 엄격한 도시관리 덕분이다. 사적으로 소유된 건축물에도 사람들의 안전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오픈스페이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오픈된 공간은 거리와 광장이란 이름으로 공적영역에서 철저히 관리된다. 체계적인 도시관리는 색채나 디자인 등 건물의 외관에서 비롯되는 하드웨어적인 경관관리를 넘어선다.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이용 측면까지도 철저히 기획하고 관리되기에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뛰어넘어 안전한 도시로서의 체계적인 도시 이미지로 인식된다. 도시는 토지나 건축물 등 하드웨어로 만들어진 그릇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문화와 감성들이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유기체처럼 살아서 변화한다. 무엇이 담길 그릇인지, 또 담아야 할 내용에는 우선순위가 있으며, 구성원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안전이 당연 1순위일 것이다. 어쩌면 지난해 그날의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의 억눌렸던 청춘들의 함성을 가슴으로 이해해야 했고,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닌 청춘들의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줘야 했다. 존중과 이해로 함께 준비하고 즐길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양한 문화가 위협받지 않도록 모든 공간의 미비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안전한 도시는 미리 준비되고 계획돼야 함을 잊지 말자.

[경기시론] 재생에너지 계획경제

지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약속한 세계 모든 나라가 각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2100년 안에 지구 평균온도 상승이 3도에 근접한다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생존한계선이라는 1.5도 목표가 무색하다. 이는 협약 당사국들이 협약 이후에 더욱 강화된 감축 목표(NDC)를 천명했지만 현실의 기후위기 곡선은 예상보다 가파르게 상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목표도 충분하지 않고 그마저 달성은 미지수다. 우리나라도 더 강화된 목표를 발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방법으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지난 정부에서 발표한 것이다. 오히려 이 목표도 충분치 않다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최소 40% 이상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달성해야 한다고 비판이 많았지만 현 정부는 아예 그보다 목표를 10% 낮췄다. 포기 선언이라고 본다. 국민들이 ‘전쟁 상황’을 떠올릴 만한 말들을 서슴없이 하고 다니는 대통령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머리 위 땅 위로 직접 로켓이 날아가고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안일하고 나태할지 짐작할 만하다. 10년 안에 대규모 경제가 자율적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대전환 방법은 없다. 언제적 ‘계획경제’냐고 하겠지만 ‘재생에너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타이틀을 다시 불러올 필요가 있는지 심각하게 검토해 보자. 비상 상황인데 유연하면서도 엄격한 방법을 다 써봐야지 기존 경로와 시장가격 시스템에만 의존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표 달성을 포기하겠다는 증거다. 이미 확인은 끝났다. 화석연료 시대에서 재생에너지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금보다 혁신적인 목표와 실천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가 안일하면 광역시·도와 기초지자체, 지방정부들이 나서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만들어 내는 사회와 경제지표들이 제도와 정책 핵심 목표에 배치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원별 시설 규모와 자립도, 신산업 육성과 지원, 이들을 통합한 재생에너지 기반 경제 목표 및 이행률을 관련 법률과 자치법규, 정책실행계획에 연도별로 수치로 명시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공적 예산 규모를 시민자산, 민간금융을 통한 재원 조달계획과 연동해 특별법과 특별조례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각 기관과 부서 간 협력 및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 관계 법률과 자치법규 간 위계 및 정합성을 확립해야 하고, 이를 위해 이해관계자 상설기구가 필요하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직접 견인하는 ‘2030년 재생에너지 경제계획’을 통해 탄소중립을 위한 중간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미룰수록, 포기할수록 그 단계는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돼 되돌아온다.

[지지대] 이건희의 ‘다 바꾸자’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 삼성 임직원 200여명이 모였다.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이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였다. 이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주문했다. 초일류기업을 향한 삼성 ‘신(新)경영’의 시작이고, ‘제2창업’ 선언이었다. 당시 삼성은 국내 1등이긴 했지만 해외시장에선 2류, 3류 취급을 받았다. 이날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삼성의 체질과 관행, 의식, 제도를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품질로는 세계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진단한 것이다. 1995년 3월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선 15만대 500억원어치의 삼성 휴대폰을 쌓아 놓고 ‘화형식’을 가졌다. 설 선물로 임원들에게 휴대폰을 돌렸는데, 통화가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고 이를 이 회장이 전해 들었다. 그는 “돈받고 불량품을 만들다니,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라며 태워 버리라고 지시했다. 이건희 회장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독창적인 발상으로 오너가 아니면 내릴 수 없는 결단으로 오늘의 삼성을 이끌었다. ‘신경영 선언’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이건희의 신경영’으로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쓰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의 변화는 다른 기업은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 1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회장의 ‘다 바꾸자’는 변화와 혁신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삼성을 포함한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 상황은 신경영을 선언한 30년 전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이 회장이 ‘4류’라고 했던 구태한 정치도 나아진 게 없다. 저출산·고령화로 국가의 장래가 위태롭고, 이념 논쟁과 양극화로 갈등도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