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과 남극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1년 내내 새하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미지의 땅. 차갑고 매서운 바람과 혹한을 이겨내야만 하는 곳. 365일 방한복으로 중무장하지 않으면 야외활동조차 불가능한 지역. 군인 시절 우리나라에서 가장 춥다는 강원도 철원 한 산 정상에서 나름 살인적인 추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 체감온도 영하 38도.대다수 사람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펭귄과 북극곰은 볼 수 없었지만, 북극과 남극 못지않게 춥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북극의 다산과학기지와 남극의 세종·장보고과학기지를 운영하는 극지연구소에서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다가왔다.■ 혹독한 환경에서의 생존 그리고 진화 극지연구소 생명과학분야의 연구원들은 환경적응기작 연구를 통해 극지생물들이 혹독한 극지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적응 전략과 진화과정을 탐구한다. 극지생물들은 다른 지역에서 서식하는 생물들과 구별되는 적응기작을 보유하고 있다.우리가 사는 일반적인 지역과는 달리 특별히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며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같은 연구를 통해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환경오염 등 세계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극지연구소를 방문, 실험의 일부를 체험했다. 건네진 흰 가운을 입고 왠지 벌써 연구원이 된 듯한 우쭐한 느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배양실로 향했고, 사실 잘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로 뒤섞인 설명이 끝나자마자 극지연구소 유전체사업단 연구팀이 북극에서 직접 채집한 북극꽃다지 식물을 받아들었다. 겉보기엔 어릴 적 할머니 댁 근처에서 보던 잡풀과 다름없어 보였지만 연구소 소속 박사들의 설명이 있고서야 북극꽃다지가 얼마나 대견한 식물인지 알게 됐다. 특히, 북극꽃다지를 비롯해 극지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은 오랜 시간 저온에서 진화해 온 탓에 기후변화와 자외선 증가와 같은 환경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를 통해 극지연구소는 기후변화는 물론, 지구온난화 등을 감지 대처해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북극꽃다지 외에도 기자는 극지연구소 유전체사업단 이정은 박사팀을 따라 배양실 이곳저곳을 돌며 남극 및 북극에서 채집, 배양 중인 남극개미자리와 남극좀새풀 등 각종 식물을 관찰했다. 극지에 사는 식물들을 눈으로 관찰하고 이들의 삶을 어설프게나마 이해한 뒤 기자는 곧바로 연구 과정을 체험하기에 이르렀다. 극지연구소의 연구팀은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대사체학 같은 첨단 과학적 기법을 사용해 극지생물의 생명정보를 다각도에서 분석하고 환경적응에 필요한 핵심 유전자를 발굴함으로써 극한생물의 생명 현상을 탐구하고 있다. 연구팀을 따라 극지생물의 진화적 기원과 성장을 포함해 분화, 유전자, 신호전달 등 다양한 생명현상을 분자수준에서 이해하기 위한 연구과정을 체험했다. 극지연구소에서 다루는 생물들은 보통 생물학 실험실과 다르다는 것을 극지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기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실험에서 많이 쓰이는 남조류는 상온에서 배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극지에서 온 남조류는 낮은 온도에서 더 잘 자라는 경우가 많아 저온 배양기에서 배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과정을 따라가는 내내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가 너무 많아 식은땀이 날 법도 한데, 이곳 배양실은 극지의 식물들을 저온에서 배양, 그 서늘함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막는다. 극지연구소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여러 종류의 현화식물 및 남극 지의류에서 분리한 남조류와 남세균, 빙하에서 분리한 미세조류 등 여러 가지 광합성생물을 보유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들의 특이성을 규명하기 위해 유전체를 분석하고,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유전자군을 선별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주로 극한생물의 진화와 적응, 생태 등을 비롯해 다양한 생물학적 관점에서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극한생물로부터 생물자원발굴과 신규 생물소재개발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또 이들의 계통분석과 생물지리학적 분석을 통해 극지생물의 지리적 이동과 대륙이동은 물론, 생물진화 간 상호관계 등을 연구하고 있다.이 밖에도 극지연구소의 연구원들은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환경오염 등 세계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문제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 식물의 ‘주민번호’… 조사하면 다 나와? 극지연구소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업무 중 하나가 바로 극지에 사는 생물의 DNA 분석이다. 북극의 다산기지, 남극의 세종·장보고기지 등지에서 극지 기후변화, 지질학, 해양환경, 빙하, 생명과학 등 순수 과학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 등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DNA분석 등 연구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DNA추출, 세포조직 파쇄, 이를 통해 얻어진 배양액을 또 DNA추출 용액에 넣고 확인해야 하며 이 밖에도 채집된 생물 개체들을 개별 종으로 구분하는 작업인 종 동정 작업을 거쳐야 한다. DNA를 추출하기 위해 기자는 연구원들과 함께 어렵게 채집해 온 극지식물을 파쇄했다. 따로 배양을 하고 있어 연구에 필요한 자원은 충분히 있지만, 왠지 극지에서 어렵게 구해온 식물을 파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하지만, 극지연구소 유전체사업단 연구팀의 다양한 연구를 위해서는 유전체를 구성하는 DNA에 극지생물의 생명정보가 전부 들어 있기 때문에 모든 연구에 DNA분석이 필수적으로 필요해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자는 극지지의류의 ‘공생남세균’을 동정하기 위해 DNA를 추출하기에 앞서 공생 남세균의 세포조직을 파쇄했다. 정확한 연구결과를 얻기 위해, 이같은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김장을 할 때 갈던 마늘보다 훨씬 정성을 다해 곱게 갈았다. 이렇게 파쇄돼 얻어진 배양액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DNA추출 용액에 넣고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유전물질 DNA는 유전자를 이루는 기본 단위로, 이를 더 작게 자르면 A, G, C, T라고 표기되는 4개의 염기로 구분된다. 염기들의 배열 구조에 따라 유전정보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 개체의 DNA의 총 염기서열을 유전체라 하며, 이는 생물종 유전정보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 30억쌍 정도의 DNA를 갖고 있으며, 유전체를 해독한다는 것은 해당 생물의 생명정보를 모두 해독한다는 의미다. 고등생물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5종의 극지생물의 유전체가 해독됐으며, 이중 남극대구와 남극요각류, 2종이 극지연구소에서 해독됐다.이번 연구 과정에서 기자는 연구팀과 함께 남세균이 어떤 종류인지 확인하기 위해 DNA를 채취, 염기배열 순서 확인 작업에 돌입했다.생물의 DNA는 그 생물의 주민등록번호와 같다. 앞서 추출된 DNA를 2시간가량 PCR이라는 기기에 그 반응을 살폈다. 이는 DNA 증폭을 위한 작업인데, 염기서열분석 결과를 쉽게 하는 것은 물론, 이를 통해 어떤 종에서부터 유래한 DNA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 같은 방법으로 수억개의 DNA 염기서열 중 특정 부위만 증폭해 분석할 수도 있기도 하지만 세포에 들어있는 수억쌍의 DNA를 한꺼번에 읽어 낼 수도 있다.최근 이슈가 되는 유전체 해독은 이 대용량서열분석기를 통해 얻어진 염기서열정보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극지연구소는 대용량 서열분석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모두 연구소에서 진행할 수 있으며, 극지 생태계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하는 생물종이거나 특이한 생리적 대사물질을 가진 생물종,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생물종 등을 타깃으로 유전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이정은 박사는 “연구팀은 극지생물 중에서도 극지식물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들의 주요 유전자원을 발굴해 얻어진 연구결과는 급변하는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용 식물자원 개발로 이어지고, 나아가 미래 식량에너지개발에 이바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지연구소의 생명과학연구는이처럼 기자가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체험한 극지연구소는 북극의 다산기지, 남극의 세종·장보고기지를 통해 극지 기후변화, 지질학, 해양환경, 빙하, 생명과학 등 순수 과학을 연구한다.이와 함께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는 물론, 에너지 자원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북극해 주변에 매장된 석탄·석유·천연가스·금속 광물 자원 등을 탐사하고 있다.또 극지 환경에 대한 연구와 그곳에 사는 생물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으며, 생물자원 및 천연물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응용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이중 극지연구소가 진행하는 생명과학연구는 살아있는 생물과 생명의 현상과 기능의 진화, 적응, 생태 등 다양한 생물학적 관점에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극지생물의 환경 적응 기작 연구와 극지생물의 다양성과 진화연구, 극지생태계 연구와 환경모니터링 연구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여기에 극한생물로부터 생물자원발굴과 신규 생물소재개발과 같은 다양한 연구는 물론, 극지 환경모니터링 연구와 미래를 위한 생명자원뱅크도 운영하고 있다.최성원기자사진=장용준기자
사회
최성원 기자
2017-01-12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