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기자가 외박을 했다.
남편은 잘 다녀오라며 걱정했고, 친정엄마는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직장 동료들은 왜 굳이 사서 고생이냐고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유일하게 6살 딸아이 유치원 담임께서 딸 사진을 보내주며 힘내라고 응원해주었다. 아줌마 기자는 길고 긴 봄밤 어디서 무엇을 하며 밤을 샜을까? 아줌마 기자는 지난 21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인 22일 아침 7시까지 12시간 동안 성남중원경찰서 성호지구대 에서 밤을 보냈다. 성남시 관할 분당ㆍ수정ㆍ중원경찰서 가운데 가장 바쁜 곳으로 꼽히는 성호지구대(지구대장 전재근 경정)에서 야간근무 1일 현장체험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경찰관의 강인함을 닮고 싶었다. 올해 1월 1일자로 지역사회부 성남 2진으로 근무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부족함이 있었다. 바로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었다.
특히 성남시 3개 경찰서 출입기자로 형사과, 강력팀, 수사과, 여청과, 정보과까지 각 팀에서 인지ㆍ수사하고 있는 사건들도 취재해야 하는 데 어려움이 큰 게 사실이다. 기자 세계에선 이를 마와리를 돈다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 경찰서 내 각 부서, 팀을 샅샅이 들러 취재한다는 뜻인데, 마와리는 경찰서만 도는 것이 아니다. 성남지역 내 지검, 병의원, 학교 등을 부지런히 다니며 세상 사는 이야기들을 직접 듣고 취재해야 한다. 그래서 성호지구대에서 하룻밤 보내면서 소위 말하는 깡을 키우고 싶었다. ■ 야간에만 하루 평균 60여건 출동신고 긴장의 연속 흔히 지구대를 민생치안의 최후 보루라고 한다. 치안 행정의 최일선 기관으로서 범죄와 사고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하는 일이 많다. 각종 범죄사고 신고, 구역 내 순찰, 사회적 취약자 보호, 음주음전 단속, 교통질서 확립 캠페인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성호지구대도 예외는 아니다.
중원구 성남동을 담당하는 성호지구대는 전국 최대 규모의 민속5일장인 모란시장과 모란역 먹자골목이 있는 유흥지역으로, 모텔촌이 밀집해 있고 나이트클럽이 3개나 있어 그야말로 성남에서 가장 많은 출동 건수를 자랑한다. 야간에만 평균 60건에 달하고 여름철에는 80건이 넘는다. 특히 모란시장이 열리는 4일과 9일에는 이 일대 유동인구가 3만8천명이 넘어 그야말로 화장실도 못갈 정도로 바쁘다 한다.
목ㆍ금ㆍ토요일도 출동건수가 많다. 지역적 특성상 각종 사건, 사고와 범죄 등 치안수요가 많은 곳이다보니 성남중원경찰서(서장 신경문) 성호지구대는 근무지 중 기피 1순위다. 현재 성호지구대에는 경찰 입문 2개월차 시보경찰관부터 정년이 코앞인 고참 경찰관까지 총 56명의 직원들이 4개팀으로 나눠 4부제 근무를 하고 있다. 21일 야간근무는 2팀(팀장 권광오 경감)과 함께 했다. 저녁 7시, 야간근무 직원과 똑같이 조끼를 입고 전 근무팀으로부터 야간근무 유의사항에 대해 교육을 받은 뒤 12시간 동안 도보순찰, 112순찰, 상황근무 등 본격적인 밤샘 야간근무가 시작됐다.
권광오 팀장은 중원경찰서는 크게 2개 지구대와 4개 파출소가 있고, 성호지구대가 관할하는 성남동은 4개 지역으로 나눠 112순찰차 4대가 커버하는데 강기자는 오늘 12호 순찰차를 타고 먹자골목이 있어 출동이 가장 많은 1구역에서 근무하세요. 현장에선 항상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긴장해야 하고 특히 경찰 멱살잡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며 안전을 신신당부했다. ■ 끊이지 않는 유흥가 사건사고안전 귀가지도까지 이상무 저녁 8시 10분, 2팀 4조 김진오 경위와 전 원 순경과 함께 순찰차에 올라탔다. 차량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을 겸한 112 신고 지구대 시스템 화면에는 중원경찰서 2개 지구대와 4개 파출소에 접수된 내용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시비, 폭력, 소음, 가정폭력, 행패소란, 기타경범, 층간소음 등의 내용들이 쉴 새 없이 접수되고 출동, 완결 등의 과정들이 초저녁부터 숨가쁘게 진행됐다. 그나마 운좋게 기자가 담당한 지역에선 큰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행운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대기(휴식) 없이 바로 밤 10시~12시 근무조인 전하정 경위와 김유암 순경과 함께 순찰을 시작하자마자 출동이 연이었다. 전 경위와 김 순경은 10시 4분, 주취자가 도로에서 발로 차량을 찼다는 여성운전자의 신고를 받고 바로 출동해 운전자의 놀란 마음을 안정시키고 피해 사실 등을 확인하고 귀가지도까지 하는데 신속하고 매끄러웠다. 이어 10시 30분, 먹자골목 M타워 인근에서 싸움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술에 취해 몹시 흥분한 남성은 여자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난동을 벌이고 있었다.
전 경위와 김 순경은 침착하게 남성을 제지했지만 남성은 화를 참지 못하고 두 경찰관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순간 기자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경찰관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인근 지역을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긴급 출동, 총 5명의 경찰관이 현장을 정리했다. 10분간의 위험한 상황이 정리됐다. 그런데 밤 10시 53분 재신고가 접수됐다. 전 경위와 김 순경은 당황한 기색없이 현장에서 민첩하게 민원을 처리했다.
그렇게 두번째 순찰을 마치고 밤 11시45분 성호지구대에 도착했다. 권광오 팀장과 직원들은 오늘 이상하게 출동이 적다며 주말 저녁에 왔으면 고생좀 했을 거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진짜 아침근무까지 할거냐고 재차 물었다. 기자는 대답했다. 사진만 찍고 지구대 야간근무했다고 기사 쓸거였으면 애초에 안왔습니다. ■ 야간근무는 졸음추위와의 싸움고되지만 보람찬 현장 기자의 답이 끝나자마자 권 팀장은 2조 고상구 경사와 김용민 경장과 함께 현장 출동지시를 내렸다. 3번째 112순찰차에 타자 순간 하품이 쏟아지고 피곤이 밀려왔다.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가며 애써 잠을 쫓아냈다. 게다가 저녁도 못 먹고 야간근무에 투입돼 밥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꼬르륵 소리가 뱃속에서 쉬지 않고 들렸다. 봄밤 야간근무가 이리 추운줄 몰랐던 터라 살짝 감기기운까지 돌았다. 배고프고, 졸립고, 추웠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 경사와 김 경장은 관할 지역 구석구석을 순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대충대충이 통하지 않았다. 새벽 1시40분, 술취한 손님이 난동을 피운다는 순대국집 사장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두 사람은 취객의 소지품까지 챙겨 안전귀가를 안내하고 새벽까지 장사하는 가게 주인의 안전을 살폈다.
늦게까지 고생이 많다는 한 손님의 감사인사에 환하게 웃는 김용민 경장의 미소가 백만불짜리였다. 그때 고 경사가 편의점에 가서 따뜻한 커피라도 마시자고 했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두 경찰은 커피를 마시고 기자는 샌드위치와 바나나우유로 배를 채우고 새벽 1시 50분 지구대로 복귀했다. 4번째 순찰은 2시 22분, 1조 김희용 경사와 김기태 순경과 함께 했다. 출발하자마자 출동신고가 떨어졌다. 술취한 노숙자 3명이 싸우고 행패를 부린다는 편의점 주인의 신고였다. 현장에 가보니 소리를 지르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노숙자들의 행각은 천태만상이었다. 심지어 경찰관에게 쓰레기를 던지기도 했다. 인근 순찰차 2대가 출동해 상황정리를 하니 새벽 3시9분이었다.
순찰을 마치고 녹초가 돼 지구대에 도착해보니 무면허 운전자가 술에 취해 조사를 받고 있었다. 마지막 순찰은 3조 백대현 경위와 박용희 경장과 함께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이어졌다. 이날 2팀이 야간근무에 처리한 112신고는 31건으로, 직원들은 평소보다 조용하고, 평온한 밤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성호지구대 경찰들은 기막힌 사람들이었다. 우선, 운전솜씨가 기가 막혔다. 좁은 골목길도, 가파른 언덕배기도 문제 없었다. 방어운전도 잘했다.
골목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헤집으며 달리는 운전솜씨가 예술이었다. 또 유연성 뛰어난 기가 막힌 조직이었다. 경찰은 공권력을 가진 힘이 센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하룻밤을 같이 생활해 보니 지구대 경찰관에겐 유연성이 비밀병기였다.
그들은 시민, 주취자, 약자를 힘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단, 자신의 힘을 그르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겐 힘을 알맞게 조율해서 사용할 수 있게 단호하게 대처할뿐이었다. 지구대 사람들은 그들의 자존심과 힘, 주먹 등은 가족이 있는 집에 놓고와 오로지 자긍심과 시민을 위한 마음만 가지고 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당초 1일 체험을 통해 배우고자 했던 경찰의 강인함과 깡 보다는 오히려 유연성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구대에서 하룻밤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가 삶이 되고, 그 삶이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을 체험한 12시간은 성호지구대 2팀 경찰관들의 고되지만 의미있는 삶의 단면이기도 했다.
성남=강현숙기자 사진=전형민기자
사회
강현숙 기자
2015-04-23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