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올해도 군복무 청년 위해 '경기청년 상해보험' 상시 운영

경기도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인 청년들을 위한 군 복무 경기청년 상해보험 지원 사업을 올해도 진행한다. 20일 경기도에 따르면 군 복무 경기청년 상해보험 지원 사업은 도내 주민등록이 돼 있는 군 장병의 경우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군 복무 기간 상해 종류에 따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혜택을 받고 있는 도내 청년은 10만여명이다. 올해부터는 군 복무 중 발생한 상해나 질병으로 인해 수술을 할 경우, 건당 보험금 지급액이 기존 5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오른다. 여기에 군복무 특성상 발생 가능성이 높은 폭발이나 화재, 붕괴로 인한 상해사망과 후유장해 발생 시엔 최대 2천만원까지 보험금을 추가로 지급한다. 올해 새로 적용되는 사항은 지난 15일 이후 발생한 상해 또는 질병에 대한 청구 건부터 적용된다. 이 밖에도 ▲상해질병사망 시 3천만원 ▲상해 후유장해 시 최대 3천만원 ▲질병 후유장해 시 최대 3천만원(장해지급률 80% 이상) ▲입원일당 3만5천원(180일 한도) ▲골절화상 진단금 25만원 등이 보험금으로 지급된다. 2018년 11월 이후 경기청년이 군 복무 기간 중 질병상해를 당했다면 지급사유 발생일로부터 3년 내에만 보험금을 청구하면 된다. 지원 대상은 육군, 해군, 공군에 의무 복무 중인 장병뿐 아니라 상근예비역, 의무경찰, 의무해양경찰, 의무소방원 등도 모두 포함된다. 단 사회복무요원 등의 보충역, 직업군인은 소속기관에서 단체보험이 가입돼 있어 대상에서 제외된다. 보험금 청구는 경기청년 상해보험 전용콜센터에 연락해 구비서류를 확인한 후 접수하면 된다. 이후 보험약관에 따라 심사를 거쳐 보험금이 지급된다. 김승수기자

제2기 경기도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 구성 완료...첫 발 뗐다

제2기 경기도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위원회가 위원 구성을 완료하고 본격 활동에 나선다. 경기도는 4차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전환을 위한 민관협치기구인 제2기 경기도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고 20일 밝혔다. 민관 심의자문협의 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경기도의 4차산업혁명 관련 주요정책 및 계획을 심의점검하기 위해 지난 2019년 2월 구성됐다. 이번 2기 위원회에는 이한규 행정2부지사와 도의회 경제노동위원회 소속 이원웅남운선 의원, 민간 전문가 10명 등이 참여하게 된다. 임기는 2월부터 오는 2023년 1월까지 2년이다. 위원회는 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 문제해결이 필요한 기술적ㆍ제도적 지원, 데이터의 가공ㆍ결합ㆍ교환 비용 최소화와 효율화를 위한 표준화 지원 등 디지털 전환 촉진을 위한 정책자문과 전략 이행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쳐 나갈 예정이다. 임문영 도 미래성장정책관은 디지털 전환은 세계적인 추세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를 맞아 가속화 되고 있다며 산업, 공공, 민간 각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 교육?일자리?산업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도록 위원회를 통한 정책개발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활동한 제1기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는 경기도 4차산업혁명 촉진 기본계획을 심의하고 4차산업혁명 연구 및 워킹그룹 운영에 따른 과제를 발굴하는 등 주요 정책들을 논의했다. 김승수기자

경기도 재난 피해자 심리회복 '논스톱' 지원

경기도가 코로나19 등 재난 피해자의 심리회복을 논스톱으로 지원하는 재난심리 컨트롤타워를 만든다. 20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재해구호법 시행령을 근거로 해 재난심리회복지원 체계를 정한다. 도는 전문가 자문 및 관계부서 협조를 통해 재난 피해자에게 상담에서 치유, 사후관리까지 논스톱 지원체계를 만들 예정이다. 도가 이처럼 재난 피해자 심리회복 논스톱 지원체계를 추진하는 것은 그간 재난심리회복지원 관련기관 간에 역할이 상충했기 때문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당시 행정안전부 안전관리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총 4개의 기관이 화재 피해자에 대한 심리지원을 하려 하면서 심리지원 중복 및 혼선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도는 도민의 재난심리회복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 재난심리회복지원단(지원단) 구성을 추진했다. 지원단은 민간전문가, 유관기관, 시ㆍ도 관계부서 등으로 구성된다. 지원단이 만들어지게 되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연결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고 경기도 재난심리지원 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이른바 재난심리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지원단은 계획수립 및 조례 입안 등을 거쳐 올해 8월께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도는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내실화를 위해 전문가 인력 확보와 전문성 강화를 위해 교육도 함께 진행한다. 특히 전문성 검증 방안으로 상담활동가 등에 대해 중간평가 및 최종평가, 상담 활동 모니터링을 실시해 역량을 진단하고 자질 미달 시에는 전문 인력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도 관계자는 그간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여러 기관이 지원을 나와서 따로따로 노는 일이 많아 효율성이 떨어졌다면서 경기도 재난심리회복지원단이 만들어지게 되면 도내 재난심리 피해자들을 돕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수기자

민주당 김병욱 의원, ‘반려동물 3법’ 대표발의…반려동물 건강권 보장

김병욱 의원(성남 분당을)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재선, 성남 분당을)은 반려동물의 건강권 보장 등을 위한 반려동물 3법(보험업법 개정안, 수의사법 개정안,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김 의원은 21대 총선 공약으로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 경감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1천5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0%가량에 이르는 수치로, 반려동물의 복지와 의료제도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 의원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 반려동물의 질병이나 상해가 발생할 경우 치료비용을 지급하는 동물보험의 법적 근거를 담았다. 수의사법 개정안은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소속으로 동물의료제도개선위원회를 설치, 동물진료 표준비용을 연구조사하고 동물의료 민간보험제도에 관한 사항 등을 논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동물복지종합계획에 동물의료제도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동물의료제도의 개선발전 방안을 수립하고 시행하게 했다. 김 의원은 반려인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하면서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것이 동물병원 진료비다. 병원마다 진료비 차이가 크고, 진료비가 높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반려동물의 진료비 부담을 해소하고, 건강권을 지켜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송우일기자

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 김현종·안보 2차장 김형진 내정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국가안보실 제2차장에 김형진 서울시 국제관계대사를 청와대 제도개혁비서관에 이신남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내정하는 등 차관급과 비서관 인사를 단행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정희 전 한국전력공사 상임감사위원, 국가안보실 제2차장에 김형진 서울특별시 국제관계대사,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정희 신임 권익위 부위원장은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 한국전력공사 상임감사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출신이다. 이 부원장은 형사민사행정소송 등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맡은 경험과 풍부한 공익활동을 바탕으로 집단갈등 조정중재 능력과 소통역량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진 신임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외교부 북미국장, 차관보, 청와대 외교비서관 등 핵심보직을 역임한 외무 공무원 출신이다. 그는 한미 현안 및 북핵 문제 등에 해박하고 미국과 중국과의 외교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김현종 신임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은 대미협상 및 외교통상 전문가로 WTO(세계무역기구) 재판관, 통상교섭본부장, 주 유엔대사로 활동해 국제감각과 외교 전반에 대한 통찰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다. 한편 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 비서관에 대한 인사도 실시했다. 제도개혁비서관에 이신남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중소벤처비서관에 이병헌 중소기업연구원장, 농해수비서관에 정기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정책보좌관을 내정했다. 강해인기자

민주당 양기대, ‘주민등록법 개정안’ 대표발의

양기대 의원(광명을)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광명을)은 20일 세대분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규정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현행법은 이혼 후 다시 부모와 함께 살거나, 타지에 살던 형제자매가 직장 문제로 같이 살게 될 경우 각자 독립된 생계가 가능하더라도 거주지가 같은 가족으로 보고 하나의 세대로 분류한다. 하지만 주택 청약과 복지 혜택 등 다양한 사유로 인해 세대분리를 원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명확한 세대분리 관련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입 관련 민원 중 동일 주소지 내 세대분리 요구가 55%로 가장 많았다. 특히 지난해 1차 긴급 재난지원금을 세대 기준으로 지급할 때도 많은 민원이 제기됐다는 게 양 의원의 지적이다. 개정안은 가족구성형태 다양화,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인한 사회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에 한해 동일한 거주지에 2개 이상의 세대별 주민등록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양 의원은 명확한 기준이 없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세대분리 신청 민원이 상이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일관된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우일기자

민주당 임오경, 광명에 핸드볼팀 유치…SK슈가글라이더즈, 광명으로

임오경 의원(광명갑) 영화 우생순의 모델로,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초선, 광명갑)이 지역구인 광명에 SK슈가글라이더스 핸드볼팀을 유치, 지역 정가의 시선을 끌고 있다. 임 의원과 광명시, SK루브리컨츠 주식회사는 20일 광명시청에서 여자 핸드볼 구단 SK슈가글라이더즈의 연고지를 광명시로 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 2012년 창단한 SK슈가글라이더즈는 2회 우승한 전력이 있는 강팀으로서 현재 2020-2021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3위를 기록하고 있다.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소속 SK슈가글라이더즈가 광명시와 연고지 협약을 맺으면서 32만명 인구의 광명시를 연고로 한 첫 스포츠 구단이 탄생했다. 협약식에는 이배현 SK슈가글라이더즈 단장과 임오경양기대 의원(초선, 광명을), 박승원 광명시장, 박성민 광명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SK슈가글라이더즈가 광명시 연고 구단으로서 광명시민과 함께하고 광명시의 브랜드 및 명예를 높이며 핸드볼 종목을 육성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협약에 따라 SK슈가글라이더즈는 다음 달 1일부터 3년간 광명에 연고를 두고 SK핸드볼코리아리그를 치르게 된다. 앞으로 광명 시민체육관에서도 SK핸드볼코리아리그가 진행될 예정이며, SK슈가글라이더즈 선수 유니폼, 선수단 버스 및 경기장 내 구단 광고물 등에 연고지인 광명시 명칭 또는 슬로건 등을 표기하게 된다. 임 의원은 광명시민과 SK슈가글라이더즈가 인연을 맺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며 지난 총선 공약 중 하나인 광명 연고 스포츠팀 유치 약속을 지켜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코로나19 확산으로 핸드볼코리아리그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게 돼 아쉽지만 광명시와 SK슈가글라이더즈가 함께 성장을 이뤄나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송우일기자

[아름다운 강산 ‘산山 내川 들野’ 나들이] 광주 '남한산성'

1636년 12월1일, 중국 땅의 청나라 제2대 임금 태종(太宗) 홍타이지(皇太極)가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쳐들어 왔다. 조선의 용장으로 알려진 임경업 장군이주둔했던 의주 백마산성을 피해 바로 한성쪽으로 진군했고 임경업 장군의 장계는 12일에 왕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다음 날 청군이 평양까지 진군했다는 장계가 다시 올라 왔다. 조정에서는 급하게 세자빈과 왕자들을 강화도로 파천시켰다. 조선의 임금 인조와 세자는 뒤따라 강화도로 가기로 했는데, 그 시각 청군은 이미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막아 섰다는 탐색병사의 보고를 받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인조는 남한산성속으로 파천했다. 이 때 산성주변의 관리들이 산성안으로 모여 들었고 병력은 1만3천여명, 식량은 50일 분 정도가 전부였다. 이것이 병자호란의 시작이었다. 시강원의 대사간 정지호의 남한일기 치욕의 역사지만 교훈으로 삼아야만 청군이 남한산성에 처음 당도한 것은 12월16일, 이런 상황에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왕조의 조정은 항전을 주장하는 척화파와 항복하자는 주화파의 극심한 갈등으로 편안한 날이 없었다. 청 태종은 해가 바뀌자 군사를 12만명으로 늘려 남한산성 아래 쪽 탄천에다 진을 크게 치고 조선왕조를 강렬하게 압박했다. 청군과 대항한 각 지역의 전투는 승전보 보다는 참패한 내용이 계속 전해졌고 군사들은 지쳐서 탈진상태가 됐다는 보고가 계속 들려 왔다. 혹독한 추위와 눈바람을 이겨 내야 하는데, 식량마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강화도마저 함락돼 세자빈과 왕자들이 포로가 됐다는 비보까지 접하게 됐다. 전황은 막다른 지경까지 왔는데, 청나라의 용골대와 마골대 두 장수는 성문까지 와서 인조의 출성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더 이상 버틸 방법이 없었던 인조는 산성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인조의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대사간(大司諫) 정지호(鄭之虎)의 남한일기 47일간의 기록이다. 일기는 계속된다. 임금은 남색 옷에 백마를 탔다. 모든 의장을 다 버리고 신하 50여명만을 거느리고 서문을 나가니 세자가 뒤를 따랐다. 뒤따른 백관들은 서문에 서서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다. 임금이 산을 내려 온 조금 뒤에 갑옷 입은 청나라 군사 수백명이 달려 왔다. 임금은 삼정승과 판서, 승지 각 다섯 사람과 한림원 주서 각 한 사람, 세자는 시강원과 익위사의 관원들을 거느리고 삼전도로 향해 나아갔다. 삼전도에는 청태종의 수항대가 설치됐고 인조는 이곳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절하고 머리를 아홉 번 땅에 닿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항복의 예를 올렸다. 1636년 병자호란은 전쟁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소현세자와 빈궁, 봉림대군과 그 부인이 볼모가 돼 청나라로 잡혀 가게 됐고 조선은 해마다 금은보화와 수많은 물품을 조공해야만 했다. 게다가 무고한 백성 60만명이 끌려가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됐다. 참으로 처참한 역사의 기록이다. 후손들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하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남한산성, 한양의 보장처이자 적군의 방어선 유사시 임시수도의 기능까지 서울의 중심부에서 동남쪽으로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지형적으로 평균 고도 해발 480m 이상의 험준한 산세를 이용해 방어력을 극대화한 곳으로, 둘레가 12㎞에 이르며 산위에는 도시가 형성될 만큼의 넓은 분지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임금과 조정이 백성들과 함께 대피할 수 있는 왕실의 보장처(保障處)이기도 했다. 남한산성의 축성시기와 주체에 대해선 2가지 주장이 엇갈린다. 하나는 백제가 한성을 수도로 삼던 때 세운 성이란 것, 다른 하나는 신라가 쌓았다고 하는 주장성(晝長城)이라는 의견이다. 남한산성이 백제 때 쌓은 성이란 주장은 이미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나왔다. 한강 유역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내외적인 여건 때문에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산-한성 등 여러번의 천도를 단행했다. 남한산성이 전략상 요충지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남한산성이 백제의 왕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듯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대동야승(大東野乘)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여지도서(輿地圖書)대동지지(大東地志) 등 대부분의 조선시대 고서들은 남한산성은 백제의 고성이라고 적어 놓았다. 주장성이란 주장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직후 한창 나당전쟁이 벌어지던 문무왕 12년(672), 당나라 군대를 임진강선에서 막지 못할 경우 그 다음 방어선 전략을 짰다. 그 전략이 지금의 남한산 주위에 둘레 4천360보 규모로 성을 구축했는데, 그 성의 이름이 주장성(晝長城)이었다는 것이다. 그 후 임진왜란 중인 선조 28년(1595), 남한산성 자리에 다시 성을 축조했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증축했다. 인조 2년(1624)에는 인조가 총융사 이서에게 명해 남한산성을 다시 개축했다. 남한산성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강화를 맺은 이후 재침에 대비해 수축됐고 수축 완료 후에는 광주목의 읍치(邑治)가 성내로 이전됐다. 이후 광주부로 승격됐는데, 남한산성이 기본적인 수도방어목적만이 아니라 행정의 중심지이자 유사시 임시수도로서 기능도 했다는 것을 시사해 주기도 한다. 조선시대 당대에는 광주성이라고도 불렸다. 황성 옛터에 밝은 햇살이 1999년 복원까지 군사적 요새였던 남한산성이 병자호란 이후에는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소가 됐다. 천주교 최초의 박해인 신유박해(1791년)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됐다. 한덕운 토마스가 최초의 순교자가 됐고 이어서 병인박해 때까지 약 300여명에 달하는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교수, 장살 등의 방법으로 이곳에서 순교하게 됐다.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탄압을 받았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조선시대의 천주교 탄압은 엄연한 사실(史實)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임시 궁궐로 사용했던 남한산성의 행궁은 지리적으로 4대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17대 효종의 영릉(寧陵)과는 근접한 위치라 19대 숙종, 21대 영조, 22대 정조 임금이 영녕릉 참배를 위해 이곳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일제의 조선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행궁이 불 태워 졌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남한산성을 조선왕조의 치욕의 역사로 부각시키는 소재로 삼기까지 했다. 당연한 결과로 남한산성은 폐허의 성터로 남게 됐다. 여기에 1917년에는 성안에 있던 군청마저 지금의 광주시내가 된 경안으로 이전, 남한산성은 쇠락의 수렁으로 빠져 들었다. 더해 일제의 방화로 터만 남아있던 남한산성 행궁터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산성의 일부와 함께 행궁터는 완전히 매몰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오랫동안 방치됐던 남한산성은 1975년부터 성벽을 복원하기 시작했고, 행궁터 복원은 2002년부터 시작돼 2014년 마무리 됐다. 남한산성 복원에는 만해기념관의 전보삼 관장의 집념과 열정 그리고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있었다. 이것은 남한산성복원의 초석이 됐다. 여기에 1999년 임창열 경기도지사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은 남한산성 복원에 큰 힘이 됐다. 폐허가 된 황성의 옛터에 밝은 햇살이 내려 앉고 아름다운을 꽃을 피워 세계가 인증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많은 분들의 노력은 역사에 길이 길이 남으리라. 글=우촌 박재곤 / 사진=김태홍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