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구청장 이훈성)는 27일 팔달구청 1층 열린공간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한 런치음악회를 개최했다. 이번 런치음악회는 수원음악진흥원 소속 실력 있는 러시아 재즈밴드가 피아노ㆍ더블베이스ㆍ보컬 3인조의 멋진 재즈음악을 선사했고, 어울러 만화작가 사포의 3분 초상화 체험을 실시해 구청을 방문한 주민과 직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런치음악회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청을 방문하는 시민들과 격무로 애쓰는 직원들에게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공연을 통해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했다. 다음 공연은 오는 9월 중 3인조 인디밴드 긱스트링이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이훈성 팔달구청장은 우리 직원들과 주민들이 멀리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즐기며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음악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이형철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27일 화성시 현대기아자동차 남양기술연구소에 대한 소방안전컨설팅을 진행했다. 연구소는 화재 발생 시 다수 인명 피해 발생 우려가 있는 중점관리대상으로 분류돼 있다. 중점관리대상은 대형 건축물, 가연성 물질 대량 저장ㆍ취급소, 다중이용시설 등 특별관리가 필요한 시설이다. 이날 컨설팅은 연구소 회의실에서 이형철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 화성소방서장, 연구소 관계자 등 총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 본부장은 대상물 소방안전관리 현황을 보고받은 뒤 주요 안전관리 사항에 대한 안전컨설팅을 진행했다. 또 연구소 현장을 직접 방문해 화재취약요인과 소방시설 등을 확인했다. 연구소는 ▲차량 디자인ㆍ설계 ▲각종 부품 시험 ▲시험차량 조립 등 자동차 연구개발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곳으로, 가스시설 등 위험물 등을 취급하고 있어 화재예방을 위한 철저한 소방관리가 요구된다. 이형철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경기도에는 중점관리대상으로 795개소가 지정돼 있다며 지속적인 특별검사와 소방교육ㆍ훈련 등으로 화재요인을 사전에 차단해 재난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수원소방서(서장 이경호)가 구급현장에서의 전문성을 키우고자 신규 구급대원 대상 전문화교육을 실시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교육에서는 각종 재난현장을 경험한 10년 이상 베테랑 구급대원이 전문 강사로 나서 지난 20일 임용된 신규 구급대원 6명을 대상으로 응급처치 등을 교육했다. 또 ▲병원 전 전문심폐소생술 훈련 ▲친절민원응대 및 폭행피해 예방요령 ▲ 구급차량 및 구급장비 점검 운영관리 요령 ▲정맥로 확보 이론 및 실습 ▲전문기도확보 이론 및 실습 등도 진행했다. 교육에 참여한 신규 구급대원 A씨는 실제 구급현장에서 활동하게 되면 많이 떨리고 어떠한 응급처치를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경호 수원소방서장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재난현장에 발맞춰 마련한 전문화 교육을 통해 소방조직에 첫발을 내딛은 신규구급대원들의 빠른 적응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며 앞으로 수원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참된 구급대원으로 거듭나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채태병기자
수원시 권선구(구청장 이택용)가 관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소방안전교육인 찾아가는 어린이 안전박사 인형극 공연을 실시했다. 수원시 권선구는 지난 26일 경기종합노동복지회관 대강당에서 늘찬어린이집 등 어린이집 6개소의 아동 134명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어린이 안전박사 만들기 인형극 공연을 실시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교육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인형극 공연으로 진행됐으며, 화재 및 안전사고에 취약한 아이들에게 소방안전교육 효과와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마련됐다. 인형극은 불의 사용과 소화기 체험, 화재발생 시 행동요령 등의 내용으로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권선구 관계자는 앞으로도 부모님들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보육환경 조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권선구는 특수시책으로 찾아가는 어린이 안전박사만들기 인형극을 기획해 지난 4월부터 6월 말까지 총 12회 공연을 진행했으며, 관내 어린이집 아동 1천여 명에게 안전교육 수료증을 전달했다. 김태희기자
■ 을사늑약, 일제가 대한을 삼키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역사가 정교는 대한계년사에 그날에 벌어진 일제의 만행을 이렇게 폭로하고 있다. 17일 이른 아침, 5강[한강동작진마포서강양화진] 각처에 주둔하였던 일본병이 모두 경성으로 들어왔다. 기병 700~800 명과 포병 4천~5천 명보병 2만~3만 명이 사방으로 가로 세로 달리니 우리나라 사람은 촌보(寸步)의 자유도 없었다. 궁성 안팎을 두어 겹으로 둘러싸니 대소 관리가 나고 들며 떨었다. 이등박문(伊藤博文)과 그 수행원 및 그 부하의 무관과 다수의 보병기병헌병이 순사 및 고문관, 보좌원들과 연속하여 풍우처럼 대궐 안으로 달려 들어와서 각 문을 파수하고 수옥헌 지척에도 겹겹이 둘러서니 총과 칼이 총총히 벌여서 철통같았다. 이어 그 인장을 받아가지고 회의석으로 들어가서 그만 누르니 그 때가 18일 상오 한 점 종이 칠 때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사실이 알려지자 종로 상인들은 일제히 철시했으며,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이 통곡했다. 늑약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문이 쏟아졌으며, 경운궁 앞에서 수천의 시민들이 조약 파기를 주장하는 군중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상소와 항의로는 늑약의 폐기와 오적 처단을 기대할 수 없었다. 침략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와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을 비롯한 오적을 처단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을사늑약을 자세히 보도하여 일제의 침략의 진상을 널리 알린 황성신문은 11월 20일자에 시일야방성대곡-이날에 목 놓아 통곡하노라라는 위암 장지연의 사설을 발표했다. 우리 태황제 폐하께서 강경하신 성의로 끝내 거절하셨으니 그 조약이 성립되지 못한 것은 생각하건대 이등후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아! 저 돼지 개만도 못한 소위 정부 대신이란 자들이 영리를 노리고 공갈을 겁내서 움찔움찔 물러서고 움츠려 떨면서, 매국의 적이 되어 3천리 강토와 500년 종사를 남에게 바치고 2천만 생령을 다른 사람의 노예로 몰아내도다. 애통하고 애통한 일이로다. 동포여! 동포여! 2천만 동포가 다 함께 울면서 읽었던 글이다. 한국인을 몹시 사랑했던 영국인 베델은 대한매일신보 12월 1일자에 늑약무효라는 기사를 실었다. 지금 일본이 군사를 이끌고 황궁 안으로 들어가 위협하고 억지로 외부대신을 시켜 인장을 누르고 가져가니, 이것은 잔약 질병의 사람을 위협하여 강제로 증서를 작성한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더구나 만국 공법에 강제로 작성한 조약은 무효가 된다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한일간의 새 조약은 신용 없고 효과 없고 능력 없다는 것을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하야시 곤스케, 그리고 을사오적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와 원한은 골수에 맺혔다. ■ 원태우, 이토 히로부미를 표적으로 삼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원태우(元泰祐, 1882~1950, 원태근김시근김태근으로도 불림)는 안양동에서 원태성과 이호순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일본 헌병대장이 사건 직후에 작성한 보고서에는 20세 김태근으로 기록되어 있어 혼란을 주지만 호적을 추적하여 1882년에 출생했으며 본명이 원태우인 것으로 밝혀졌다. 원태우는 깊은 학식은 없지만 평소부터 의기를 높이고 바른 일에 앞장 서는 정신과 기백을 가진 젊은이였다. 을사늑약이 조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던 그는 이토가 열차로 수원 지방을 구경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친구 이만여, 김장성, 남통봉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것을 결의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닷새가 지난 1905년 11월 22일 오전 9시, 이토 히로부미가 늑약 체결의 일본 측 담당자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공사와 함께 특별열차를 타고 남대문역(서울역)을 출발하여 수원에 도착했다. 수원 화성을 둘러보고 팔달산에 올라 주변 경치를 구경한 이토 일행은 수원에서 안양으로 이동하며 사냥을 즐겼다. 안양에서 잠시 휴식한 이들은 안양역에서 오후 6시 15분 서울행 열차를 탔다. 한편 침략의 원흉 이토와 하야시가 탄 열차를 전복시키기로 결심한 원태우와 그의 친구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술을 나눠 마시고 철도 레일에 돌을 올려놓고 열차를 기다렸다. 열차가 레일을 벗어나면 원흉 이토와 하야시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물론 이번 거사는 단순한 객기일 수가 없었다. 일제는 그해 1월에 개통한 경부선 철도를 파괴하려 했다는 혐의로 개통된 지 이틀 후인 1월 3일에 한국인 3명을 체포해 공개처형한 사실이 있다. 계획대로 일이 성사되어도 사형 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멀리서 기차가 보이자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이만여가 갑자기 철로 위에 놓았던 돌을 치우고 달아났다. 뜻밖의 사태가 벌어졌으나 철로에 다시 돌을 올려놓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흘려버릴 수 없었던 원태우는 주먹만 한 화강석 돌멩이를 주워 들고 열차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열차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원태우는 열차로 달려들며 이토와 하야시가 탄 객차를 겨냥해 돌멩이를 던졌다. 열차가 출발하고 약 2분이 지난 오후 6시 17분, 경부철도 안양역에서 서북방으로 약 800m 떨어진 언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원태우가 던진 돌멩이는 이토와 하야시가 탄 객차의 유리창을 박살냈다. 이토의 왼쪽 눈꺼풀과 얼굴 여덟 곳에 유리 조각이 박혔다. 아수라장이 된 열차는 현장에서 1시간이나 머물러 8시에야 남대문역에 도착했다. 사건 직후 원태우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대장이 거느린 헌병과 경찰들에게 체포되었다. 함께 체포된 이만여, 김장성, 남통봉은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원태우는 철도방해죄로 징역 2개월에 곤장 100대를 선고 받았다. 열차 전복을 계획하고 목숨을 노렸던 사건치고 형량이 적은 것은 당사자 이토가 가벼운 죄로 처벌하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조선 청년에게 아량을 보여 초대 총독인 자신의 대범함을 선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틀이 지난 11월 24일 대한매일신보에 이 사건이 보도되었다. 한편 11월 23일자 오사카매일신문과 11월 29일자 도쿄매일신문에도 이 사건이 보도될 정도로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12월 8일에는 일본 박물관 기관지 일로전쟁화보에 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이란 제목의 삽화가 실렸는데, 갓을 쓰고 휜 도포를 입은 남자가 오른손을 번쩍 들어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시흥군수 김종국이 파면되고 경기도관찰사 정주영은 견책을 당했다. 혹독한 매질과 고문으로 원태우의 건장했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죽기를 각오했던 그는 아무런 숨김없이 혐의 사실을 솔직하게 밝혔다. 영등포감옥에서 두 달을 보내고 이듬해 1월 24일에 석방되었으나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흉터가 너무 심해 한 여름에도 긴 옷을 입고 다녔을 정도였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성기에도 심한 고문을 가해 자녀를 둘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원태우 지사를 본받은 투쟁이 또 일어났다. 1906년 6월 하순, 일본에 갔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안양에서 10리 떨어진 곳에서 어떤 선비가 이토가 탄 열차에 돌을 던졌다. 이번에도 열차의 유리창을 깨트렸으나 이토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경찰과 헌병이 그 선비를 붙잡아 헌병사령부로 연행하여 혹독한 고문을 가하며 배후를 캐물었으나 단독 거사로 밝혀졌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09년 10월 26일에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었다. 1910년 8월 29일, 지도상에서 대한제국이 사라졌다. 나라가 아주 망하면서 원태우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몸이 불구가 되어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자 형 원영우의 삼남인 원계복이 숙부를 뒷바라지했다고 전한다. 만년에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임곡동에서 살았던 원태우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에 별세했다. 고단한 그의 육신은 안양시 만안구 안양 공동묘지에 묻혔다. ■ 의로운 이름을 기억하자 안양시는 원태우 지사의 애국활동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사업을 꾸준하게 벌이고 있다. 안양역 입구 벽면에 원태우 지사의 초상을 새긴 부조를 비롯하여 만안도서관에는 원태우 지사의거비가 설치되어 있다. 자유공원에도 지사의 흉상이 있고 이토가 탄 열차를 향해 돌을 던진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표지석을 세워 지사의 의거를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고증에 아쉬움이 있다. 지사가 거사를 감행할 때 20대 청년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흉상과 부조는 40대 장년의 얼굴이다. 원태우 지사는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훈처에 따르면 지사는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별세하였다. 놀랍게도 지사가 별세하고 40년 세월이 더 흐른 1990년에야 비로소 독립유공자로 수훈을 인정받았다. 왜 이처럼 오랫동안 지사의 의로운 투쟁이 묻혀 있었을까? 통렬히 반성해야할 일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경기도의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김진일 의원(더불어민주당ㆍ하남1)은 27일 하남시 덕풍동 소재 A 아파트 수돗물에서 녹물의심물질이 나온다는 시민의 제보를 받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현황을 파악했다. 이날 현장에서 하남시민인 윤씨는 다른 지역에서의 녹물사태를 뉴스에서 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남일 같지가 않아 샤워기에 녹물필터를 설치했다며 3일밖에 되지 않은 필터에 녹물로 의심되는 물질로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김 의원은 하남인구 중 60%가 넘는 시민들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다며 일전에 신장동 모 아파트에서도 녹물사태가 발생하는 등 이번 사태가 하남 관내에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시민 여러분이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도 도시주택실, 경기도시공사 등 해당 부서에 내용을 공유했다며 도민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 분석해 노후수도관 교체 등 필요한 조치를 한시도 지체하지 말고, 주민 불편에 따른 긴급조치실시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에 도 관계자는 하남시와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현호기자
경인여자대학교는 몽골 해외봉사단이 최근 몽골국영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고 27일 밝혔다. 몽골국영방송에서 보도한 경인여대의 봉사활동은 학생 간 문화교류의 목적으로서 자매대학인 라지브간디대학교에서 진행중인 4개의 프로그램을 준비과정부터 심도있게 다뤘다. 프로그램은 전통놀이, 태권도, 한국 음식과 차 문화 등을 소개하는 한국문화 수업과 대중가요와 춤을 배우는 K-Pop시간, 그리고 한국 패션과 화장에 대해 직접 시연해주는 K-Beauty, 한국어 수업으로 구성됐다. 라지브간디대학과 경인여대는 2018년 복수학위 협약을 맺었다. 라지브간디대학에서 1년을 수학한 16명의 항공전공 학생들이 오는 9월 경인여대 2학년에 등록할 예정이다. 경인여대는 라지브간디대학과의 1+1 복수 학위프로그램을 2019년부터는 식품영양전공, 뷰티케어전공으로 확대 추진 중이다. 송길호기자
1961년생. 1988년 공직생활을 시작. 권선구 평동장, 수원시 대중교통과장, 시민안전과장, 안전교통국장 등을 역임. 탁월한 업무추진능력과 포용력으로 조직 내 신임이 높아. 지난 2010년 행정안전부장관상, 2018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상(협력치안활동 경찰행정발전)을 수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
수원시 ◇4급 전보 △장안구청장 이병규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더불어민주당ㆍ안산1)이 27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지방이양일괄법 등 자치분권 발전 관련 법률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회장을 역임 중인 송한준 의장은 이날 오후 세종시청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축사를 통해 오늘 토론회를 통해 지방과 중앙이 소통하고 충청지역 주민과 지방자치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져 지방자치가 한층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송 의장은 1991년 지방자치가 새로이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지방자치법이 거의 변화하지 않으면서 우리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 지방자치법이 오히려 지방자치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지방자치법과 더불어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지방이양일괄법 등 자치분권 발전 관련 법률이 개정 돼야 지방자치가 발전할 수 있다며 오늘 토론회를 통해 지방과 중앙이 소통하고 충청지역 주민과 지방자치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져 지방자치가 한층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종특별자치시의회가 주최하고 세종대전충북충남 도의회가 공동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서금택 세종특별자치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전국 광역의회 의장과 이춘희 세종시장, 서승우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정책관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최현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