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교사의 손전화

▶야! 너 어디야? 술에 취한 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밤늦게 전화를 해서 한 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 학부모는 다음 날, 학교로 찾아가 학생들 앞에서 교사를 향해 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경기도 일선 학교에서 있었던 실제 교권 침해 사례다. 교사들이 학부모 전화로 힘들어하고 있다. 문제는 교사를 24시간 콜센터 직원처럼 생각하고 시도 때도 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경기교육정책 정기 여론조사(2019년 4월) 결과, 학부모의 교권 침해 사례 중 우선 대처해야 할 사항으로 ①업무시간 이외에도 걸려오는 학부모들의 연락(11.3%) ②교사의 사생활에 대한 침해(9%) 등이 합계 20.3%를 차지했다. 교사의 휴대전화번호 공개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우선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최근 일부 학교에서 교사 개인의 전화번호를 학부모에게 반드시 공개하라는 지시나 강요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이 접수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의해 교사는 개인 휴대전화번호 공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에 도교육청은 근무시간 외 휴대전화에 의한 교육 활동침해 관련 안내 공문을 일선 모든 학교에 보냈다. 내용은 개인 휴대전화번호 학부모 제공 제한의 법적 근거와 개인 휴대전화번호 학부모 제공 제한의 필요성을 담아 교사의 개인 연락처 공개 제한에 힘을 실었다. ▶아침마다 문자로 교사에게 사소한 일까지 부탁하고 심지어 아이에게 간식 사먹을 돈까지 빌려주라는 학부모의 전화가 수업 중에 온다고 한다. 촌각을 다투는 내용이 아니다. 급한 경우에는 학교 대표전화로 연락하면 된다. 손전화 대신 손편지도 있다. 의미없는 손전화로 교사를 괴롭히지 말자. 늦은 밤, 누군가 술에 취해 전화해 야! 너 어디야?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 있을까. 교사가 학부모 전화 민원에 시달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교사 손 밖에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강현숙 사회부 차장

[데스크 칼럼] 맬서스와 다윈이 대한민국 저출산을 논하다

통계청이 지난 29일 공개한 2019년 3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3월 출생아는 2만7천100명으로 지난해 3월보다 2천900명(9.7%) 감소했다. 전년 동월 대비 출생아 수는 2016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36개월 연속 최저기록을 경신했다. 합계 출산율 1이 무너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저출산 현상은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 사회적 위기론으로 우리의 미래를 흔들고 있다. 국가의 출산보건 정책 프레임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에서 사회 시스템의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조망하는 학계 최초의 저출산 프로젝트, 인구학자, 진화학자, 동물학자, 행복심리학자, 임상학심리학자, 빅데이터 전문가, 역사학자가 저술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는 재미있는 대담이 있다. 인구론을 저술한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와 생물진화론을 정립한 찰스 다윈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저출산에 대해 논하는 장면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맬서스와 다윈의 대담을 성사시켰다. 조 교수는 맬서스와 다윈에게 대한민국 저출산 실태에 대해 설명한다. 맬서스는 깜짝 놀라며 저출산 실태에 대해 전쟁이나 대기근이나 전염병이 창궐했냐고 반문한다. 맬서스는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강력한 재생산(출산)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한국은 재생산 본능이 작동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윈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에 인구 밀도가 크게 높아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최근 인구 밀도가 높아졌냐고 묻는다. 조 교수는 한국의 인구 밀도는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며 전쟁직후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1960년 한국에는 약 2천500만명이 있었는데 이후 계속 증가해 지금은 5천만명이 됐으니 전반적으로 인구 밀도가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다윈은 사람들의 밀도와 다른 종의 밀도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다른 종은 사회가 매우 단순하지만 인간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면서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물리적 밀도가 있냐고 질문한다. 조 교수는 전체 청년 수는 줄고 있지만 청년들이 살고자 하는 지역이 서울, 수도권, 부산 등 대도시로 한정돼 있다고 답변한다. 맬서스는 청년들이 활동하고자 하는 공간이 대폭 줄었으니 청년들의 물리적인 밀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지면서 한국의 청년들은 에너지를 본인에게 축적하기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맬서스는 물리적 밀도에 심리적인 밀도까지 높아지면 아마도 청년들의 재생산은 연기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근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물리적 밀도와 함께 심리적 밀도가 극도에 다다랐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다윈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이고 그게 결국 종의 진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다윈은 과거 부모와 선배 세대들의 생존과 재생산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보이고 있을 것이라면서 바로 사회적인 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맬서스는 결국 한국 청년들이 본인의 생존 본능이 더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물리적, 심리적 밀도를 낮추려는 정책이 가장 근본적인 해소 방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청년 관련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하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다윈은 한국 사회는 낮아진 출산율을 두고 청년들을 탓하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이미 청년들은 진화하고 있는데 진화를 되돌리려는 노력으로는 출산율을 높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제도와 규범을 점검하라고 조언한다. 청년들은 이미 바뀌었는데 아직까지 기성세대 중심의 제도와 규범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 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두 학자의 대담을 통해 나온 제안을 잘 새겨듣고 슬기롭게 저출산 현상에 대응했으면 한다. 최원재 문화부장

시흥시 배곧에 서울대병원 들어선다

시흥시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에 500병상 규모의 서울대 병원이 들어선다. 시흥시와 서울대학교, 서울대병원, 한라건설은 30일 서울대 시흥캠퍼스 스마트관에서 시흥 서울대학교 병원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임병택 시흥시장, 조정식 국회의원, 오세정 총장, 서창석 병원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협약에 따라 서울대는 올해 안에 예비타당성조사가 끝나는 대로 빠른 시일내에 병원 건립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병원 건립의 조기추진을 위해 시흥시, 서울대학교, 서울대병원은 6월 말까지 병원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시흥 서울대병원은 약 12만㎡(3만6천500평)에 건립될 예정으로 서울대는 올해 말까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예비타당성 조사 등 행정절차를 추진하게 된다. 이후 관계법령과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병원 설립과 운영에 관한 제반사항을 결정, 추진하게 된다. 특히 오 총장은 시흥 서울대학교병원은 환자치료 및 연구와 바이오 헬스 등 공공성과 산업성 등이 복합된 세계수준의 병원 건립에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시는 앞으로 교육의료 산학클러스터 조성, 지역과 대학, 병원이 연구개발 네트원크를 구축하고 수도권에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시흥지역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임병택 시장은 협약식이 끝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의 숙원이었던 서울대병원 시흥유치 소식을 전하게 돼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행복한 미래를 향한 시흥의 변화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시흥=이성남기자

파주시의회,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에 자유로IC 설치 촉구

한국도로공사가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 구간에 자유로IC 계획이 없는 현대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파주시가 반발(본보 28일 12면)하고 있는 가운데 파주시의회도 자유로IC 설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파주시의회는 30일 성명서를 내고 지난 26일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간 2공구 턴킨 심사결과 자유로IC 계획이 없는 현대건설이 선정되었다는 발표에 46만 파주시민과 특히 파주출판도시와 통일동산은 직격탄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공은 2공구 턴킨 발주시 자유로IC 설치 방안을 기술제안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자유로IC가 설치되지 않으면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는 파주시를 출구없는 섬으로 전락시켜 수도권의 대동맥 역할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파주시는 남북교류협력시대 물류 출발지와 유입지로서 충추적인 역할이 기대되는 도시로, 자유로IC가 설치되지 않으면 자유로 이용차량이 약 11㎞를 우회하게 되어 막대한 물류비용을 야기하고 7만여 문산인근 주민은 그동안 받아온 차별에 더해 타 지역과 달리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 불평등 문제까지 발생할 것이다고 말했다. 손배찬 의장은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앞으로 150일 간의 실시설계 기간에 파주시민과 통일경제를 염원하는 국민들의 욕구를 담아 자유로IC 설치를 반드시 반영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파주=김요섭기자

다중이용시설 테러대응 전시대비 주민체험훈련

경기발달장애인훈련센터 교육

[경기도 독립운동가를 만나다] 14. 안성에서 타오른 3·1운동의 불길

피고들의 선동에 응하여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등에서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을 야기함에 이르게 한 사실로서(민족대표 33인에 대한 판결문 중에서)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자원수탈과 무단통치에 신음하고 분노하던 조선인들이 마침내 일어섰다. 만세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가 5월말까지 타올랐다. 박은식은 31운동의 전 과정을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통해 자유와 독립을 향한 조선인의 위대한 행진으로 기록했다. 222개 부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으로 7500명 이상이 살해되고, 1만6천명이 부상당했으며, 체포된 사람만 4만6천명이 넘었다. 안성 삼일운동의 불꽃, 최은식 경기도 양성은 한국독립운동사의 분수령을 이룬 31운동의 우뚝 솟은 봉우리이다. 당시 언론도 안성의 만세운동을 주목했다. 매일신보 1919년 8월 10일자에 실린 안성의 최은식 등 126명 예심종결, 모두 다 내란범으로 고등법원으로 보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경기도 안성군에서 지난 4월 1일 밤에 촌민을 선동하여 소요 폭동을 일으킨 안성군 원곡면 최은식 외 126명에 대한 예심은 경성지방법원에서 취조 중이더니 지난 8일 오후에 종결 결정되어 피고 등은 관할이 다름으로 모두다 내란죄로 고등법원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안성의 만세운동에 참여한 연인원은 7~8천을 헤아린다. 그런데 일제는 최은식(1899~1960)을 안성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판단했다. 천안 출신으로 안성 원곡면에 살던 21세의 최은식은 이덕순, 이근수, 최두환 등과 함께 고종의 국장에 참관하기 위해 상경했던 3월 1일, 서울에서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만세시위 현장을 목격했다.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심한 최은식은 뜻을 같이한 동지들과 마을을 돌면서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3월 28일 원곡면 지문리와 외가천리 주민들이 원곡면사무소 앞에 모여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1일 저녁 8시 경 최은식은 이덕순, 홍창섭 등 동지들과 함께 원곡면사무소에 모여든 1천여 명의 주민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대를 이끌고 일본인 원곡면장과 서기를 끌어내어 선두에 세워 만세를 부르게 하고 양성으로 행진했다. 태극기와 횃불을 들은 시위대는 원곡과 양성의 경계인 성은고개(만세고개)에 이르렀다. 이곳에서 함께 시위를 주도하던 이유석(34세)이 열변을 토했다. 오늘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인 것은 천운이다. 양성주재소로 가서 일본 순사를 끌어내어 만세를 부르게 하고 주재소를 부수자. 최은식도 격정적인 연설로 호응했다. 조선이 독립하면 주재소, 우편소 등은 필요 없으니 부수자! 돌과 몽둥이를 들고 가서 주재소와 우편소를 불태우자! 일본 관헌이 만든 서류는 독립이 되면 쓸데없으니 불태우자! 일본인을 추방하자! 시위대는 조선 독립, 주재소와 우편소 파괴, 일본인 추방을 외치며 진군하듯 양성으로 들어섰다. 같은 시각 양성에서도 여러 마을에서 주민들이 만세를 부른 후 양성면사무소가 있는 동항리로 모여들었다. 1천여 양성주민들은 면사무소와 주재소에서 만세를 부른 후 해산하려다가 원곡의 시위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2천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밤 10시 무렵 최은식 등의 주도로 양성주재소와 숙직실에 불을 지르고, 우편소와 면사무소를 부수었다.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집과 일본상인의 가게도 파괴했다.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서류와 기물을 파기하고 시위군중과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해산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무렵 원곡면으로 되돌아온 최은식은 시위군중과 함께 원곡면사무소를 파괴하고 방화하며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였다. 4월 1일과 2일 무력시위를 벌인 이틀 동안 양성과 원곡은 해방 공간이 되었다. 결국 군대가 출동하여 시위를 진압하고 체포에 나섰다. 이때 최은식은 재빨리 몸을 숨겨 체포를 피했다. 그러나 일제가 그의 아버지를 경찰서로 끌고 가 혹독하게 매질을 하고 최은식이 나타나면 풀어 줄 것이라고 소문을 퍼트렸다. 사정을 알게 된 최은식이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가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3년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안성 출신 이유석(1886~1950)은 군대와 경찰이 집요하게 검거작전을 펼쳤으나 끝내 체포되지 않았다. 가명을 사용하며 피신생활을 하던 중에 광복을 맞이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가장 격렬했던 만세운동의 성지 안성의 31만세운동은 원곡과 양성, 안성읍, 죽산 세 지역에서 벌어졌다. 3월 11일 11시, 양성공립보통학교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성에서의 첫 만세운동은 서울에 유학 중이던 남진우와 고원근이 만세운동이 일어난 사실을 알리며 조회시간에 후배들을 독려하여 시작된 것이다. 저녁에는 안성 읍내 장터에서 상인을 비롯한 주민 50여명이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만세소리를 들은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키고 시위자를 체포했다. 3월 28일, 원곡면과 읍내에서 다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원곡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의 불길은 이웃 양성으로 번져나가 폭발했다. 안성의 만세운동은 지역민의 신망을 얻고 있던 원곡과 양성의 청장년들이 조직적으로 이웃을 설득하여 일으킨 총궐기로 방화와 파괴 같은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안성 읍내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3월 28일 동리를 시작으로 29일에는 장기리, 30일에는 서리에서 일어났다. 서리에서는 600여명의 시위대가 동리, 서리, 장기리를 돌며 만세를 불렀다. 계속 불어나는 시위대는 안성군청과 면사무소에서 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이어갔다. 4월 3일까지 이어진 시위에 3천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했다. 한편 죽산지역도 4월 1일부터 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죽산공립보통학교 학생 50여 명이 교정에서 만세를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학생들의 시위에 호응한 죽산의 농민과 상인들도 죽산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2일에도 학생들이 주도하여 죽산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죽산 장터에 모여든 1천여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와 학교, 주재소, 우편소를 돌며 시위를 벌이자 대열은 2천여 명에 달했다. 3일까지 계속된 죽산지역 만세시위도 격렬해져 일제의 통치 기구인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했다. 안성 읍내면에서는 3월 30일 김진수, 이경수, 이성옥이 주동이 되어 마을과 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민들이 수백 명으로 늘어나자 이들은 사람들을 안성 경찰서 및 관청 까지 이끌고 나가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 31일 권만동은 읍내면 동산에서 약 400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오후에는 이성옥이 마을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성옥은 군대가 출동하여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이 없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하고 다니다가 군병에게 체포되었다. 죽산 지역에서는 4월 1일 안재헌과 양재옥이 죽산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50여 명과 주민 수백 명과 함께 주재소와 면사무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2일에는 장암리 구장 곽대용이 주민 200여 명을 모아 주재소에 몰려가 만세를 불렀다. 시위대는 주민들까지 참여하여 1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밤에는 군중 200여 명이 일죽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에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함성을 지르며 돌을 던졌다. 잊지 말아야할 위대한 역사의 현장 이처럼 안성에서는 주재소와 면사무소 같은 일제의 통치기구를 파괴하고 무력화시키는 과감한 투쟁을 벌였다. 격렬하게 전개되는 만세운동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군대를 동원하여 총검으로 주민들을 학살했다. 일제 군경은 300명이 넘는 사람을 체포하여, 171명에게 징역 5월부터 최고 12년에 달하는 실형을 선고했다. 가장 치열하게 만세운동을 벌인 안성 원곡면에서만 24분이나 순국할 정도로 많은 희생이 따랐다. 만세를 부르던 현장에서 총탄에 맞아 절명한 것을 비롯해 안성경찰서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구치된 상태에서, 혹은 복역하던 중에,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숨을 거두었다. 안성 만세고개에 세워진 31운동기념관은 100년 전 목숨을 걸고 나라를 되찾으려 떨쳐 일어난 선열들의 피어린 역사를 담고 있는 자랑스런 공간이다. 대한민국은 이들의 거룩한 희생을 딛고 수립된 나라이다. 유공자들이 업적과 서훈을 받은 연도를 살펴보다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별세한 지 40년이 지난 1990년에야 애국장을 추서 받은 이유석 선생을 비롯한 유공자의 대부분은 1990년 이후에 서훈을 받았던 것이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순국 사실을 기록으로 입증할 수 있는 유공자조차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수훈으로 남아 있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19 제1회 광교바이오헬스심포지엄

구리시, 인창·수택 재정비촉진지구내 일부 지정해제

구리시는 인창ㆍ수택 재정비촉진지구에서 사업이 진행 중인 2개 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을 재정비촉진지구에서 지정 해제했다고 30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인창ㆍ수택 재정비촉진지구는 시가지의 40%가 넘는 약 2㎢ 면적으로 지난 2007년 최초 지구 지정돼 2010년 12개 촉진구역의 결정을 골자로 재정비촉진계획이 결정 고시돼 진행됐다. 그러나 불확실한 부동산 경기 및 국가 정책의 변화 등으로 해당 구역 주민들의 찬ㆍ반 의견이 대립하며 그동안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어 왔다. 이로 인해 2012년 1월 경기도 도시재정비 촉진 조례에 따라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설립되지 않은 7개 구역을 대상으로 주민 의견을 조사하고, 원하지 않는 6개 구역을 2013년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통해 존치관리구역으로, 2015년에는 토지 등 소유자에 의해 정비구역 해제 요청된 2개 구역과 추진위원회가 해산된 1개 구역을 추가로 존치관리구역으로 전환한 바 있다. 이번 재정비촉진지구 지정 변경은 두 번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통해 존치관리구역으로 전환된 구역들과 2016년 정비 구역에서 해제된 인창 B 구역을 지구에서 지정 해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반 시설 설치 비용 분담 계획 변경, 수택E구역 사업시행인가를 반영한 토지이용계획 변경 및 순 부담률 재산정 등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도 함께 병행된다. 시는 이번 재정비촉진지구에서 해제되더라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정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 사업의 추진은 가능하며, 주민이 요건을 갖추어 제안하는 경우 시는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시는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서는 주민의 자발적인 소규모 정비 사업 활성화를 유도하고, 도시 재생 뉴딜사업 등 단계적으로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구리=유창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