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수도권에서 가장 넓은 갯벌인 소래습지생태공원에 자연마당을 조성한다. 23일 시에 따르면 공원 내 습지와 그 주변 5만㎡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서식지와 생태휴식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2020년까지 총 30억900만원을 투입한다. 시는 이번 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자연마당 조성사업 실시설계 용역을 시행했으며, 환경전문가 토론과 시민단체 자문 등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최근 용역을 마무리했다. 주된 사업은 공원 내 갯벌과 염생식물 등을 복원하고, 저어새나 도요새 등 야생조류의 서식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또 이외에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 보고로 보존할 방침이다. 생태계 보호를 통해 소래습지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인천의 바다와 다양한 동식물을 보고 느낄수 있도록할 예정이다. 이밖에 시는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조류관찰 전망대도 설치한다. 시 관계자는 소래습지는 인천 내륙지역에 남아있는 최후의 폐염전이 보존돼 있어 다양한 생물군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며 시민들에게도 다양한 해양생태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소래습지 공원은 1970년대 전국 최대 천일염 생산지였지만 생산이 중단되면서 황폐화됐다. 특히 해수 유입량이 감소되면서 염생식물 군락도 축소됐고, 저어새 등도 서식지를 잃어가고 있다. 주재홍기자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는 선수단 피지컬 강화를 위해 브라질 출신 바우지니(Myung Baldini) 코치를 영입했다고 23일 밝혔다. 바우지니 코치는 브라질, 이탈리아 이중 국적을 지닌 지도자로서 브라질 피지컬 코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브라질 아틀레티코 소로카바에서 U-20팀 및 프로팀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후 한국에서 생활하며 세한대(2014~2015), FC안양(2016), 부천FC(2017) 등에서 활약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중국 연변부덕FC에서 피지컬 코치를 했다. 바우지니 코치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축적한 피지컬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합에 나설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천 구단 관계자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선수단 체력 관리를 위해 바우지니 피지컬 코치를 새로 영입하게 됐다고 했다. 송길호기자
(재)인천문화재단은 오는 25일부터 7월 14일까지 복합문화공간 트라이보울에서 기획전시 No Matter, Paste를 선보인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2019년도 미술창작 전시공간 활성화 지원 사업 국비 보조금사업에 선정,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기획 전시 No Matter, Paste에서는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동시대의 추상미술을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비유해 틀과 반죽으로 불리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참여 작가는 문이삭, 심혜린, 이승찬 총 3인이다. 이들 모두 독특한 방법으로 추상, 이미지를 구현하는 특별한 작품을 선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트라이보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길호기자
장정민 옹진군수가 지난 22일부터 23일까지 백령면과 대청면의 모내기 영농현장과 생업현장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모내기철 맞아 지역 내 농업인 격려와 생업현장 군민 애로사항 청취, 가뭄대비 농업용 저류지 등 현장 점검을 위해 진행됐다. 장 군수는 첫날 백령도의 진촌6리, 북포2리를 포함한 주요 모내기 현장 7곳을 방문했다. 둘째날은 대청도의 모내기 현장과 고추, 양파, 고구마 등 재배농가를 방문했다. 장 군수는 30여 명의 농가 주민들을 직접 만나 격려하고 현장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농업인의 노고를 체험하고자 직접 이앙기를 몰고 모내기를 하는 등 적극적인 현장군수의 면모를 보였다. 동행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들은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못자리 관리, 고추 지주세우기, 밭작물 적기 파종시기 등 농작물 관리요령에 대한 교육과 영농현장 병해충 방제를 실시했다. 장 군수는 앞으로 농촌 노동력 절감과 안정된 농업생산기반 마련을 위한 농기계은행 설치 확대 등 농업분야 주요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통해 농민이 편안하고 풍요로운 옹진 건설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송길호기자
인하대병원은 인천지역 최초로 홈페이지에 의료의 질 지표 결과를 공개했다고 23일 밝혔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고객들이 언제든 인하대병원의 의료질 수준과 환자 안전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개된 의료질지표는 응급의료서비스, 중증질환, 항생제 사용 관리, 환자 중심성4개 분야로 해당 질환 및 수술, 진료 서비스에 대한 지표 결과로 구성된다. 또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가 예방과 치료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 각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적정성평가, 환자경험평가,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기관평가 등도 수록돼 있다. 김영모 병원장은 진료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의료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질적인 측면에 대한 자발적 점검의 기회로 삼아 의료진이 진료 결과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이다며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치료가 단순히 일방향적인 측면에 그치지 않고, 고객과 늘 소통하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쌍방향적 치료, 더 나아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환자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공개를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인하대병원이 공개한 자료는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강정규기자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외식업체간 협력을 통한 경영비 절감 및 국산 농산물 직거래 활성화를 위해 2019 국산 식재료 공동구매 조직화 사업대상자를 모집한다고 23일 밝혔다. 국산 식재료 공동구매 조직화 사업은 외식업소에서 대량으로 필요한 쌀소금양파 등의 식재료를 함께 구입할 수 있도록 조직화에 필요한 비용 및 운영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aT는 이 사업을 통해 양질의 국산 식재료 대량구매로 인한 원가절감으로 외식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산 농산물 소비확대와 생산자의 안정된 판로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지원대상은 전국 우수외식업지구 및 외식관련 법인, 협회, 조합, 번영회 등 복수의 외식업소로 구성된 단체 및 조직이며, 조직화 예정인 단체조직도 포함된다. 지원항목은 인건비물류비창고임차비교육컨설팅비 등 식재료 공동구매를 위한 제반비용이며, 500만원 한도 내 실집행금액의 100%를 지원한다. 또 신청조직 평가를 통해 지원대상을 선정하고, 선정된 조직은 오는 11월 20일까지 사업집행 후 정산받는 방식이다 신현곤 aT 식품수출이사는 외식업계는 우리 농산물의 최대 소비처라며, 외식업계의 건실한 성장이 곧 우리 농식품의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나가겠다고 했다. 공동구매 조직화사업 지원을 희망하는 단체는 The외식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이메일(atexpogo@at.or.kr)로 상시 신청가능하며, 문의사항은 aT 식품외식기획부로 연락하면 된다. 송길호기자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은 방사선종약학 팀 이주아 방사선사가 프로야구 경기 시구자로 나섰다. 인천성모병원은 이주아 방사선사가 최근 인천문학야구장에서 개최된 2019 프로야구 KBO리그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 경기의 시구자로 선정, 시구를 했다고 23일 밝혔다. 보통 시구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사 등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주아 방사선사는 인천의 숨은 영웅 자격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이주아 방사선사는 그동안 사단법인 대한방사선사협회 인천시회 복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의료봉사, 외국인 근로자 및 난민 등을 위한 의료봉사, 사랑의 연탄 나눔 봉사, 매월 병원별 릴레이 봉사 등을 기획하고 참여했다. 또 최근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천시의회의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주아 방사선사는 먼저 프로야구 경기의 시구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며 이를 기회로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건강한 지역사회를 만드는 데 협회와 함께 노력 하겠다고 말했다. 송길호기자
인천시교육청은 올해 4조2천949억원 규모의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추경 예산안은 본예산보다 5천61억원(13.4%) 증가했으며 역대 최대 규모다. 가장 중점을 둔 학교 환경 개선에는 본예산보다 1천905억원(67.3%) 늘어난 4천737억원을 편성했다. 냉난방 시설 개선, 화장실 개보수, 석면 교체 등 대규모 학교 공사가 포함됐다. 고등학교 학비 무상 지원이 포함된 교육 복지 분야에는 본예산보다 165억원(4.8%) 증액한 3천555억원을 편성했다. 교내 공기정화장치 설치 등 보건급식체육 활동에는 3천370억원, 교수 학습 활동 지원에는 1천998억원을 편성했다. 교육부 교부금 사정악화 및 누리 과정 등으로 발행한 지방교육채 조기 상환을 위한 예산으로는 본예산보다 2천494억원(890%) 증액한 2천774억원을 편성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증가한 추경 예산안으로 그동안 노후화된 학교 등에 환경개선과 무상교육 등이 대폭 확대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추경 예산안은 인천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를 거쳐 다음 달 28일 시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된다. 송길호기자
지난 4월 8일 한국관광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은 각 과 별로 드림투어를 떠났다. 드림투어는 매년 1학년 친구들이 각 과 별로 해외로 떠나 그 나라의 문화를 탐방하고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활동과 원어민과 직접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전공 언어를 살리며 꿈을 키워나가는 투어다. 1학년 관광영어통역과 학생들은 4월 15일까지 미국 서부로 드림투어를 떠났다. 관광영어통역과 학생들은 미국 서부의 다양한 관광지와 직접 외국인에게 자신의 전공 언어를 사용하며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활동을 했다. 1학년 관광일본어통역과 학생들은 4월 12일 일본 도쿄로 드림투어를 떠났다. 관광일본어통역과 학생들은 일본의 관광지뿐만 아니라 직접 일본 학교에 방문하고 교류하는 활동도 했다. 1학년 관광중국어통역과 학생들은 4월 12일까지 대만으로 떠난 드림투어에서 중국어과 친구들은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다양한 관광지 탐방과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며 꿈을 키웠다. 1학년 학생들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 같다, 정말 자신의 언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졌다 등의 다양한 소감을 남겼다. 유민정 평택 한국관광고2
독립혁명가 청사晴蓑 조성환(曺成煥, 1875~1948)의 고향은 경기도 여주이다. 청사의 생가는 경기도 여주 대신면 보통 1길 98에 위치한다. 청사의 집안은 대대로 조선의 명문가였다. 이조판서와 한성판윤 등 주요 요직을 역임한 조윤대(曺允大, 1748~1813)를 비롯하여 당대를 대표할만한 선비들이 즐비했다. 청사의 생가에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해시계(경기도 민속자료 제2호)가 섬돌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다. 청사는 어릴 적부터 해시계를 보고 자라서인지 지금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또 시기에 따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때(時)를 잘 알고 있었다. 청사는 육군무관학교 2기생으로 입학한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일찍이 터럭 하나만큼이라도 병통 아닌 것이 없는 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다(방례초본 인)고 경고 했듯이 청사는 졸업을 앞둔 시점에 부패로 썩어 문드러진 무관학교를 고쳐보려고 앞장섰다. 결국 청사는 동맹 퇴학의 주동자(황성신문 1902년 1월 20일)로 15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고 유배를 가야만 했다. 이 여파로 계급은 있으나 직책이 없는 군인이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강탈당할 무렵 청사는 평양의 기명학교 교사로 활동한다. 1906년 안중근이 간도로 망명하기 바로 직전에 만난 인물이 다름 아닌 조성환이었다. 조성환은 안중근에게 첨서添書를 써준다.(이등공伊藤公 암살범 안응칠(중근)에 대한 조사 보고) 조성환은 1906년 10월 5일자 황성신문에 청사자해晴蓑自解라는 시詩를 기고한다. 청사라는 호號의 의미를 스스로 풀이한 시이다. 여름엔 베옷 겨울엔 갖옷이 각각 마땅하지만 夏葛冬?各適宜 맑게 갠 날 도롱이 삿갓도 서로 어울린다네 晴天?笠底相隨 강호의 본디 모습 원래 이와 같으니 江湖本色元如此 비바람 앞날을 알기 어려울세라 風雨前頭未可知 이슬 젖어 우거진 풀 언덕에 앉아 있으니 露濕坐因芳草岸 밝은 달은 푸른 버들가지에 걸려 있구나 月明掛在綠楊枝 사람들아 지금 소용이 없다고 웃지 마라 傍人莫笑今無用 예로부터 처신에는 저절로 때가 있으니 從古行藏自有時 맑게 갠 날 도롱이 삿갓을 왜 써야만 했을까? 비바람 칠지도 모르는 조국의 미래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성환은 나갈 것인지(行) 묻혀 살 것인지(藏)를 저울질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황성신문은 쓸모 있는 재능을 지니고도 위양에서 낚시를 드리운다고 평했다. 강태공이 위양에서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렸듯이 조성환 역시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리라. 을사조약(1905)으로 외교의 축은 이미 무너졌고, 군대도 해산(1907년)되어 버렸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었다. 청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1908년 독립기지 건설을 하라는 신민회의 명을 받들고 연해주에 가서 최재형과 독립기지 건설을 논의한 후 북경을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지목한다. 거점을 마련한 청사는 1909년 2월 드디어 망명길에 오른다. 독립군의 불꽃이 되고자 이름도 조욱曺煜으로 바꾼다. 청사는 독립군의 통신원이 되어 도산 안창호와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주지역의 동포들의 현황과 중국 신해혁명 상황 등을 속속들이 알린다. 신해혁명을 직접 목격하기 위해 무관학교 동기 신규식과 함께 상해에 가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을 간파하면서 늘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강구해야만 했다. 상해에서는 중국혁명세력과 교류할 기관으로 한인 최초의 독립운동 조직인 동제사同濟社를 만든다. 그러다 북경에서 일본수상 가츠라桂太郞를 암살하려다 체포(매일신보 1912년 8월 15일자)되어 또 다시 10년 만에 거제도로 유배된다. 그는 유배에서 풀려나자마자 국내에서 가두연설 등을 통해 애국계몽운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신민부 재무부장을 역임했던 일강一崗 최석호崔碩鎬(다른 이름 최문석崔文碩, 獨立鬪爭 自苦一生前末記, 독립기념관)는 광산에서 일하다 청사의 연설을 듣고 지금 광산에서 한가하게 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기 때문이다.(최석호의 막내아들 최창화 증언) 망명 혁명가 조성환은 북경에서 광무황제가 국권을 포기한 날은 우리 동지가 국권을 계승한 날이요 4천년의 주권은 우리 동지가 상속하였다는 대동단결선언(1917)의 주역이 된다. 뿐만 아니라 대한은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하는 대한독립선언서(1919)의 39명 대표 중 한명이 되기도 한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핵심 요원으로 활약한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헌장이라는 헌법을 통과시켜 대한제국이 백성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으로 탄생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각의 군무차장에 이어 군무위원장으로서 임시정부의 군사문제를 책임졌다. 조성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하자 민족 재생을 위해 무기를 휴대하고 독립전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는 방략을 모색한다. 외국인의 도움(독립운동자금모집자 검거의 건, 1919년 12월 13일자)도 필요했다. 그때 마침 블라디보스톡에 체코군이 도착하자 조성환은 대장 라돌라 가이다(Radola Gajda)를 비밀리에 만나 막후교섭을 벌여 소총 1,200정, 기관총 6정, 박격포 2문, 탄약 80만발, 수류탄, 권총 등 무기를 대량 확보한다.(김희곤, 이범석 『우등불』) 조성환의 주도면밀한 협상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써 조성환은 청산리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셈이다. 조성환의 아버지 조병희 역시 독립에 대한 꿈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던지 독립자금 마련을 위해 여주의 생가를 팔고야 말았다. 독립혁명가 조성환은 독립군을 지탱해 주는 동포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에도 매진한다. 대종교는 그 중심축에 있었다. 북경에서는 동포들의 교육을 위해 한교교육회韓僑敎育會를 조직(1921)하였고 『부득이不得已』라는 신문도 부득이 발행했다. 남만주에서는 전만통일회의주비회에서 군사분과위원을 맡으며 남만주 독립혁명단체를 하나로 묶는 정의부正義府를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북만주에서도 신민부新民府가 탄생한다. 중앙집행위원장에 오석 김혁이 추대되고, 조성환은 외교부장을 맡는다. 이처럼 조성환은 독립혁명 조직을 그물망처럼 연계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각계 각파와 좌우 세력들을 하나로 묶어야 했다. 그것은 독립혁명조직을 통합하는 유일당 운동이었다. 독립혁명조직들을 연계하고 통합하는 전략을 전개하면서 한편으로는 독립전쟁에 필요한 군대 창설을 도모한다. 그는 임시정부 군무장으로서 군사특파단의 단장도 맡는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등의 조직은 군대창설을 위한 병력 모집을 주임무로 삼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드디어 한국광복군이 창설된다. 군대 해산 이후 33년 만에 대한제국의 군대를 잇는 어엿한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것이다. 군대가 창설되자 1944년 10월 3일 국무회의에서는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기 위해 국내공작위원회를 설치한다. 그러나 진공작전을 시도하기도 전에 광복은 느닷없이 도둑처럼 오고야 말았다.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청사 조성환은 조국의 독립과 반듯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온 정성과 정력을 다 쏟아 부었다. 해체된 군대를 다시 창설하기 위해, 동포사회의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 같고, 큰 용기는 겁먹은 것처럼 불철주야 전 중국을 누비며 전 방위적으로 활약했다. 독립군의 줄기와 가지를 연계하고 통합하여 강한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조성환은 귀국하여 즐거워할 사이도 없이 다시 찬탁이니 반탁이니 하며 좌우로 분열하고 갈등하는 비참한 현실을 목도하고 또 다시 대한독립촉성국민대회를 결성하고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청사晴蓑 조성환은 독립을 위해 탁월한 군사전략가로서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는 공을 세웠음에도 청사晴蓑의 이름조차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독립 혁명의 길을 걸으며 청사가 꿈꾸었던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의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권행완(정치학박사, 다산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