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 이소영.
인천시는 박태환 선수의 브라질 리우 올림픽 출전을 환영하며, 박 선수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10일 밝혔다. 시는 이날 박 선수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준 대한체육회의 긍정적인 판단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에 감사드리며,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시는 박 선수의 올림픽 출전 확정에 따라 ‘문학 박태환수영장’ 훈련 장소 제공 및 훈련 지원 등 제반 사항을 적극 뒷받침할 방침이다. 또, 박 선수가 희망하면 인천시청 소속으로 재입단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예정이다. 이번 박 선수의 올림픽 출전은 의도치 않은 실수로 선수 생명이 끊기게 된 박 선수를 안타까워하는 많은 국민의 열망과 인천시의 간곡한 호소가 결실을 거둔 것으로 더욱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이번 출전 결정은 박 선수가 잘못을 뉘우치고 국민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데다, 인천시의 긴곡한 건의로 이뤄졌다”며“박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제홍기자
교통 인프라 부족으로 지연돼 온 영종도 드림아일랜드 개발사업의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인천시는 7일 정부관계부처합동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영종도 드림아일랜드 개발사업이 미포산업단지 인근부지 산업단지포함 사업과 함께 ‘보완 추진 사업’으로 결정 됐다고 10일 밝혔다. 이날 결정에 따라 정부의 각 부처는 영종도 드림아일랜드 개발사업의 정상 추진을 위해 그동안 문제가 돼 온 고속도로 연결 관련 인허가를 신속히 검토해 처리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 지원에 나선다. 정부는 우선 영종도 드림아일랜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접근성 확보를 위해 고속도로 연결 관련 인·허가를 신속히 검토해 처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인천시,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기관이 참여하는 TF팀을 구성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또 TF팀을 주축으로 조기 사업 추진 방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 중에 2조원 규모의 개발사업을 착공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교통 인프라 부족으로 지지부진해 온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종도 준설토 투기장에 들어설 복합리조트인영종도 드림아일랜드는 국내 항만재개발 사상 최초로 민간사업자가 제안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서울 여의도의 1.1배인 영종도 준설토투기장 332만㎡ 터에 워터파크, 아쿠아리움, 특급 및 비즈니스 호텔, 복합 쇼핑몰, 체육시설, 테마공원 등을 조성하는 복합리조트 개발사업이다. 총 사업비만 2조400억원에 달하는 이 사업은 시행자인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이 민간자본 1조9천436억원을 투입하고, 기반시설 등에 국비 964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하지만 영종도 드림아일랜드 계획에 따른 고속도로 IC 설치, 대중교통 노선 확충 등 접근성 부족으로 이를 해결할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추진이 지연돼 왔다. 특히 교통 인프라 구축에 지역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인천시의회가 반발하는 등 지역사회 문제로 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영종도 드림아일랜드 사업 대상지와 영종도 미개발지를 잇는 교량 건설, 준설토투기장에 대한 정부 독점, 수익사업 위주 개발계획으로 인한 부작용, 미단시티 개발에 미칠 악영향, 해안도로 개설, 투기장 내 유보지 33만㎡ 무상이관 등에 대한 해결 선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TF팀을 통해 조기 사업 진행을 모색하고,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며 “특히 영종도 지역경제 발전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민교기자
안철수 사드 배치.
유방 통증은 30대 후반 여성이 가장 불편해 하는 증상이며, 유방 클리닉을 찾는 환자의 60% 이상이 유방 통증으로 방문합니다.특히 호르몬 대체요법을 하는 예가 늘어남에 따라 폐경 후 여성에서 유방 통증은 점차 증가추세에 있습니다.가벼운 유방 통증은 전체 여성의 절반 정도, 약 20%가 심한 유방 통증을 느낍니다. 대부분 유방의 통증은 정상 생리적 현상이지만 유방암의 유일한 증상일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유방암 검사를 해야 합니다. 물론 유방암 환자의 유방 통증은 한쪽으로 국한되면서 지속적인 통증을 갖는 경우가 많으며 전체 유방암환자의 5%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방 통증의 종류는 크게 주기적인 유방 통증과 비주기적 유방 통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주기적 유방통증’은 주로 20대에 잘 나타나고 22%의 환자에서는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아도 호전되지만 나머지는 폐경 전까지 지속되는 편입니다. 자궁적출술을 받아 월경이 없는 경우라도 난소 기능이 남아 있다면 주기적 유방통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인은 정상적인 생리주기마다 유방에 수분 저류가 생기면서 아픈 경우, 스트레스 등 신경성, 여성호르몬 분비 과다, 피임약 등 호르몬제 복용, 너무 기름진 식사, 커피 등 카페인 과다 섭취, 멍울과 유방암 등 유방 자체내 질환이 있을 경우, 과도한 음주 등입니다. 주기적 유방통증을 호소하는 사람 중 80% 이상이 이같은 원인을 제거하면 증세가 호전됩니다.유방이 무거운 느낌이나 압통 등의 불편감이 월경 시작 몇 일전부터 나타나 월경 후 없어지면 정상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으나 이러한 불편감이 1주일 이상 지속 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면 병원을 방문할 필요가 있습니다.반면 ‘비주기적 유방통증’은 대부분 유방 자체 문제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방 전문 외과 클리닉에 내원해 원인을 확인 후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원인으로는 유관 확장증, 관 주위 유방염, 경화성 선증, 유방 낭종 기타 유방의 혹, 유방암, 여성호르몬제제 금단 증상, 비유방성 통증, 가슴 근육의 통증, 가슴연골염 등이 있습니다. 월경 주기와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유방통증이 나타나거나 지속적으로 통증이 있는 경우로 대개 한쪽의 유방에서만 발생하며 대개 칼로 베거나 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 양상을 보입니다. 30대 여성에서 잘 나타나는 이 유방통은 50%에서는 자연 소멸되며 주기적 유방통처럼 오래가지 않고 수년 안에 소멸됩니다. 유방의 통증은 질환이 아닙니다. 유방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라고 보시면 됩니다. 가슴이 아프다고 본인에게 이야기를 할 때면 귀 기울여서 잘 들어주고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건강한 가슴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엄태익 수원 하이유외과 원장의 여성공감
최근 국소신세포암 환자의 수술 예후를 수술 전에 시행하는 간단한 혈액 검사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 홍성규(사진) 교수팀은 신세포암의 수술 후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밝혀내기 위해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서 국소신세포암으로 수술 받은 환자 2천965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수술 전 검사에서 아스파르트산아미노기전달효소와 알라닌아미노기전달효소의 비율(이하 AST/ALT)이 상승돼 있는 환자가 암이 재발하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스파르트산아미노기전달효소(이하 AST)와 알라닌아미노기전달효소(이하 ALT)는 혈액검사를 통해 측정할 수 있는 체내 효소 중 하나로, 대개 낮은 농도로 사람의 혈액 속에 존재하다가 특정 세포가 손상 받을 때 흘러나와 농도를 높인다.ALT는 주로 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간질환이 발병했을 경우에만 특징적으로 농도가 상승하게 되지만, AST는 간 이외에도 신장, 뇌, 근육 등에 존재하기 때문에 해당 부위에 질병이 발생하거나 과격한 운동 후에도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 따라서, AST의 농도가 높아져 AST/ALT 비율이 높아지면 간 외에도 여러 질환의 발병을 의심해볼 수 있는데, 이번에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 홍성규 교수팀이 ‘AST/ALT비율’에 따른 ‘신세포암 환자의 암 재발 및 사망률’에 대한 연구를 실시한 결과 두 요소간에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통계적 위험요인을 보정한 다변량 분석에서도 역시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재차 확인됐다. 분당서울대병원 비뇨기과 홍성규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추후 신세포암 환자들의 수술 후 예후를 예측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신세포암 수술을 앞둔 환자가 수술 전 검사에서 AST/ALT비율이 높게 나타날 시에는 추적 관찰을 통해 수술 후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우수성을 인정받아 권위있는 ‘영국 비뇨기과학회지(BJU International)’ 최근호에 게재됐다. 성남=문민석ㆍ강현숙기자
다산 정약용은 산성을 쌓기에 좋은 지형 네 가지를 이렇게 꼽았다.첫째는 사방이 높고 중앙부가 낮아 남한산성과 같은 지형인 ‘고로봉’이다. 둘째는 정상부가 평평하고 넓으며 사방을 잘라낸 것 같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산봉’이다.셋째는 배후에 봉우리가 있어 그 가운데에 장대를 설치할 수가 있고 허리 부분에 성을 쌓아 많은 무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모봉’이다. 넷째는 양쪽 끝단이 높고 가운데 허리 부분이 약간 낮은 지형으로 무릇 산길을 막아 쌓은 성과 같은 ‘마안봉’이다. 현재 경기도에 남아 있는 산성도 다산이 소개한 네 가지 범주에 드는 것들이다.다산 기준에 따른다면 이천 설봉산(雪峰山, 394m)에 자리 잡은 설봉산성은 산봉과 사모봉에 가깝다. 설봉산은 불경에 나오는 설산과 같다하여 ‘설봉’이라 불렸으며,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편 모양과 비슷하다해 ‘무학’이라고도 불렸다.《신증동국여지승람》과《여지도서(輿地圖書)》에 설봉산성의 둘레를 5,112척(1,500보)으로 기록하고 있다. 설봉산성으로 오르는 길은 설봉호수 오른편에 있다. 칠월의 한낮이라 조금 걸었지만 벌써 온 몸이 땀범벅이다. 15분쯤 걸었을까 시야를 가로막는 성벽이 나타났다. 원형을 복원한 동문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성벽이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등산객들의 출입구가 된 설봉산성 동문은 여느 산성의 출입구와 다르다. 밖에서 볼 때 왼쪽성벽은 성안으로 굽어들게 했고, 오른쪽 성벽은 밖으로 곡선을 그려 어긋나게 옹성으로 쌓았다. 산성에 올라서자 운치 있는 소나무 사이로 이천 들판이 펼쳐졌다. 비 온 뒤에 맞은 화창한 날씨라 멀리 장호원과 양평·안성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봉수대가 있는 칼바위 주변이 성의 중심이다. 이 부근에 장수의 지휘소였던 남장대터, 팔각의 제사터가 있다. 본성 성벽둘레는 1㎞ 남짓이며 성벽의 높이는 2~3m이다. 동서북 3곳에 성문자리가 있으며 성벽을 돌출시킨 치성 4곳과 군사들이 마시던 우물터가 온전하게 남아있다.성벽과 성 안에서 토기를 비롯해 철제 솥과 같은 취사용기와 쇠 화살촉 같은 무기류에 이르기까지 6세기 중엽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남장대 터에서 신라 경문왕 때의 연호인 ‘함통6년(咸通六年)’이라 새겨진 벼루도 출토됐다. 이천은 한강유역에 터전을 잡은 백제의 영토였다. 이곳에 고구려 장수왕(394~491)이 백제 개로왕(455∼475)을 밀어내고 남천현을 설치한 것은 475년, 장수왕이 왕위에 오른 지 63년이 되던 해였다.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맞섰으나 장수왕의 남진정책은 계속됐다. 부왕 개로왕이 전사하고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문주왕(475∼477)은 신라군의 도움을 받아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천도했다. 삼국 중 백제의 문화를 가장 높이 평가했던 다산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이때 백제가 한강유역을 포기하고 천도한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한성시대의 백제를 가장 괴롭힌 외세는 말갈이었다. 백제가 한강 이남으로 천도를 단행한 것도 사실은 낙랑과 말갈 때문이다. 고구려나 신라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후 백제는 다시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말았다. 고구려는 이천지역을 포함한 한강유역을 지키기 위해 설봉산성을 보강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이천지역을 오랫동안 지켜내지 못했다. 나제동맹을 맺고 무섭게 치고 들어온 신라에게 이천을 포함한 한강유역을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나라로 가는 바닷길을 열고 경기도의 곡창지대를 확보하면서 삼국의 강자로 부상했다. 538년, 백제 성왕(523∼554)은 웅진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고 내정개혁과 관제정비를 서둘렀다. 성왕은 한강유역을 되찾기 위해 고구려가 안팎으로 시련에 처해 있던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가야까지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551년에 백제 신라 가야의 삼국연합군이 총공격에 나서 고구려를 밀어붙였다. 연합전선의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백제는 고구려가 차지했던 한강 하류의 6군(郡)을 되찾고 신라는 한강 상류의 10군을 차지했다.한강유역의 탈환은 나제동맹군의 최대 승리였다. 그러나 신라가 553년(진흥왕 14)에 군사를 돌이켜 백제의 수복지인 한강 하류지역을 점령하고 거기에 신주(新州)를 설치했다. 진흥왕은 신주의 초대 군주에 가야출신의 왕족 김무력(金武力)을 임명했다. 백제와 신라의 동맹관계는 이로써 깨져버렸다. 신라는 중국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뱃길을 열고 한강 유역의 인적·물적 자원을 독점하는 전략을 강화했다.이듬해(554) 신라의 배신에 격분한 백제의 성왕이 신라를 정벌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처음에는 백제군이 우세했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전투에서 신주의 군주 김무력에게 크게 패했다. 백제의 피해는 엄청났다. 성왕이 전사하고 3만 군사가 전멸했던 것이다. 이후 백제와 신라는 백제가 멸망하는 660년까지 1백여 년 동안 원수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다. 신라는 한강유역의 심장에 해당하는 이천에 지방군사조직인 십정(十停)의 하나인 남천정(南川停)을 설치했다. 김유신(595~673)이 할아버지(김무력)가 활약했던 설봉산성을 찾았다. 한강유역을 되찾으려는 백제군을 막고 이천지역을 사수하기 위해서였다. 김유신은 남천정에서 장수들을 소집해 군사작전을 논의했다. 남천정이 바로 설봉산성이다. 이처럼 설봉산성은 지방행정조직과 군사요새를 겸한 복합공간이었다. 김유신은 설봉산성을 전초기지로 삼고 한강유역을 되찾으려는 백제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쳤다. 7세기 중반, 이천 설봉산성은 신라와 백제가 사활을 걸고 전투를 벌이던 최전선이었다. 진흥왕의 증손자 김춘추가 고구려의 힘을 빌리려 연개소문을 찾았다가 오히려 구속됐다. 기지를 발휘해 겨우 고구려를 빠져나온 김춘추는 이번엔 당나라로 가서 고종을 만나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킬 것을 제안해 약속을 받아냈다. 654년, 김춘추(태종무열왕, 재위 654~661)가 왕위에 오르자 김유신은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의 사비성을 공격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자 당나라가 노골적으로 신라의 영토를 탐냈다. 김유신은 백제 유민들을 끌어들여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는데 온 힘을 쏟았다. 무열왕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외조카 문무왕이 백제의 유민들을 적극 흡수하는 통합정책을 폈다. 이것이 신라가 최종 승리를 거둔 비결이다. 문무왕의 유언에는 김유신과 자신의 정치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에게 상을 내렸고, 신라 사람은 물론이요 고구려와 백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벼슬을 내려주었다. …변방의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일과 고을에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애고, 율령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즉시 개혁하라. 나의 이러한 뜻을 사방에 두루 알게 하고, 담당자는 시행하라.” 설봉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도 사용됐다. 그러나 이때는 군사요새로서가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참고로 설봉산성을 비롯해 하남 이성산성, 안성 망이산성, 포천 반월산성에서는 공통으로 제사를 지낸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유물과 유구가 출토됐다. ▲ 성화봉과 칼바위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는 산악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구당서》에도 “(신라 사람들은) 산천에서 제사 지내기를 좋아한다”고 지적하고 있다.신라인들이 산천에서 지낸 제사는 두 가지였는데 조상에 대한 제사와 농경제사였다. 이처럼 설봉산성은 삼국통일 이후 조상에 대한 제사와 농사를 주제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이러한 유물이 바로 칼바위 부근에 있는 팔각의 건물터이다. 이천 시민들의 설봉산 사랑은 각별하다. 이천의 문화를 소개하는 잡지의 이름이 ‘설봉문화’이며 매년 10월에 열리는 축제의 이름도 ‘설봉문화제’이다. 설봉문화제는 설봉산성이 있는 칼바위 꼭대기에서 고신제를 지내며 행사를 시작한다. 설봉산은 이천사람들이 의지하는 진산이다. 설봉산에는 ‘서희봉’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서희(徐熙, 942~998)는 고려를 침략한 거란 대군을 담판으로 물리치고 강동6주를 되찾아낸 겨레의 영웅이다. 무더위가 물러가면 가족과 함께 설봉산에 올라 보자. 한강을 굽어보며 설봉산성을 배경으로 당나라를 물리친 김유신 장군과 이천이 낳은 위대한 외교가 서희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좋을 것이다. 이경석 한국병학연구소
경기도의회 정기열 의장은 10일 김해 봉하 마을을 찾아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정 의장은 이날 “정치, 계층, 지역, 세대를 떠나 누구든지 행복을 누리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루며 사는 사람답게 사는 경기도, 사람이 존중받는 경기도를 만드는 따뜻하고 희망찬 멋진 경기도의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정 의장은 노무현 대통령 묘역 앞에서 “대통령님과 같은 멋진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동수기자
경기도의회 특별위원회 상당수가 간판만 내걸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일부 특위는 특위 종료와 동시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함에도 이를 이행치 않은 것은 물론 1년5개월동안 위원장 선출도 하지 않은 채 개점 휴업 상태로 방치되다 종료된 특위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도의회에 따르면 9대 의회 들어 결성돼 이날 현재 활동중이거나 종료된 특별위원회(예결위와 윤리위 등 상설특위 제외)는 지난해 2월 구성된 ‘미군주둔지역 피해 방지 및 지원 특위’를 비롯 모두 20개로 파악됐다. 이 중 남북교류 추진 특위 등 6개 특위가 지난달 30일 기준, 특위 운영을 마감했다. 하지만 활동을 종료한 6개 특위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특위가 위원장 선출, 업무보고 등 이후에는 회의를 제대로 열지 않거나 현장방문 참석률이 떨어지는 등 활동이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특위 구성에 제한이 없어 특위 구성 필요성보다는 감투를 나누기 위한 자리로 전락하면서 2~3개의 특위를 겸하는 도의원들이 많기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우선, 11명으로 구성된 ‘미군주둔지역 피해방지 및 지원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2월 출범, 활동이 끝난 지난달말까지 1년5개월동안 위원장과 간사 조차도 선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특위는 만들어졌지만 단 한번의 회의도 열리지 않았다. 1년8개월동안 운영된 조례정비 및 조정위원회(15명)는 총 7회 회의를 개최, 평균 2.9개월마다 회의를 여는데 그쳤다. 또 ‘접경지역 발전 및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 특위(14명)는 8개월동안 평균 2.7개월마다 회의를 열어 3회 개최에 그쳤다. 더욱이 위원장선출, 업무보고를 제외하면 사실상실질적인 활동은 현장방문 1회뿐이다. 특히 ‘미군주둔지역 피해방지 및 지원 특별위원회’, ‘접경지역 발전 및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 특위’, ‘남북교류 특위’ 등 3개 특위는 활동 종료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특위 보고서 조차 내놓지 않고 슬그머니 해산됐다. 도의회 관계자는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ㆍ운영 조례에 따라 특위 종료와 함께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어 일부 특위가 활동이 끝나고도 보고서를 내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특위 구성에 보다 세심한 논의가 필요하고 또 제대로 된 활동으로 특위 본연의 목적 달성에 충실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광호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지난 8일 남경필 경기지사와의 대담에서 수도 이전론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이날 남 지사와 가진 ‘월간 중앙’ 공동인터뷰에서 수도 이전에 대한 남 지사의 질문에 “수도권 집중은 엄청난 비용을 유발해 국가 효율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대책이 진지하게 모색될 시점”이라고 답했다고 더민주 이재경 대변인이 10일 전했다. 이 대변인은 “김 대표가 수도 이전론에 대해 긍정적으로 수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즉 수도 이전론을 제기하고 있는 남 지사는 인터뷰에서 내년엔 수도권에 3천만명이 거주하게 돼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와 남 지사는 이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김 대표는 개헌 방향으로 내각제에 무게중심을 둔 데 비해 남 지사는 독일식 모델을 감안한 협치형 대통령제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 지사가 경기도에서 펼치고 있는 연정과 관련, 두 사람은 독일에서 연정을 통해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콘라트 아덴나워 전 총리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전 총리의 사례를 들면서 협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