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광복절 맞아 ‘태극 페스티벌’ 개최

에버랜드는 광복절을 맞아 오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태권도 특별공연, 태극기 퍼즐 만들기, 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태극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먼저 8월 15일 광복절 당일 카니발 광장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의 광복절 특별 태권도 시범공연이 펼쳐진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시작하는 공연에서는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 30여명이 등장해 정통 태권도 품새와 기술은 물론,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격파 시범을 약 30분간 선보인다. 또한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어린이 손님들을 대상으로 ‘태극기 퍼즐 만들기’ 체험 이벤트도 진행한다. 전문 강사와 함께 어린이들은 색연필, 크레파스 등으로 퍼즐 위에 태극기를 직접 그려 보고, 건곤감리, 태극 문양 등 태극기에 담긴 숨은 의미도 배울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태극기 퍼즐 만들기 체험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이탈리아 레스토랑 ‘쿠치나 마리오’ 뒤편 특별 행사장에서 진행되며, 선착순 현장 접수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에버랜드는 광복절 연휴 3일간 태극기 모양의 페이스 페인팅 체험 이벤트를 곳곳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에버랜드 관계는 “광복절을 맞아 진행하는 태극 페스티벌과 디지털 역사체험관을 통해 온 가족이 함께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용인=강한수ㆍ권혁준기자

최여진 엄마, 기보배 선수에 “니 X이 미쳤구나” 욕설 글… 최여진 자필 사과문 게재

‘최여진 엄마 기보배’모델 출신 배우 최여진의 어머니가 양궁 국가대표 기보배에게 온라인에서 욕설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욕설을 한 이유는 보신탕을 먹는다는 것인데, 딸 최여진이 직접 자필 사과문을 게재하며 사태 진정에 나섰지만 논란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지난 7일 최여진의 어머니 정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기보배 선수 부친의 6년 전 인터뷰 기사를 올리면서 기 선수를 공격하는 글을 게재했다. 인터뷰 기사에서 기보배 선수의 부친은 “보배가 개고기를 먹는 날이면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중고등학교 때 개고기를 먹은 날은 좋은 성적을 냈다”고 말했다. 이에 정씨는 “죄송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욕 좀 하겠다. 한국을 미개인 나라라고 선전하느냐”면서 “니X이 미쳤구나” 등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 이후 온라인 상에서 이 글이 논란이 되자 정씨는 글을 삭제하고 “저도 기보배 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기 선수에게 지나친 발언을 한 점은 사과한다”는 글을 다시 올렸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 “유기견 봉사활동을 한다”고 소개하며 “최소한 국가대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대가가 오더라도 저는 똑같은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글이 온라인에서 거센 논란에 휘말리자 최여진은 8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올렸다. 자필 사과문에서 최여진은 “어머니가 온라인에 게재한 글이 기보배 선수와 그를 응원하는 모든 분에게 큰 상처를 드렸다”면서 “진심으로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제 어머니가 기 선수를 지목해 쓴 글과 사과문까지 뒤늦게 보고 참담한 심정이었다”면서 “기 선수가 제 어머니 때문에 더는 큰 상처를 받질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최여진은 “어머니가 뒤늦게나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인지했다”면서 “무지에서 비롯된 어머니의 큰 잘못이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제게도 책임을 물어달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팀사진= 최여진 엄마 기보배, 최여진 인스타그램 캡처

[경기천년, 학술토론회] “과거 천년은 미래를 보는 거울… ‘지방의 맏형’ 정체성 찾아야”

경기도의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는 무엇인가. 본보는 창간 이후 지난 28년간 경기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 왔다. 경기도는 오는 2018년 경기천년의 해를 앞두고 있다.경기도는고려시대 개경과 조선시대 한양, 일본강점기 한성부ㆍ경성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수도 서울의 주변에서 그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앞으로 통일의 시대가 오면 한반도의 중심인 경기도는 통일 한국의중심부의 역할을 과거 천년 동안 해 왔듯 그 역할을 앞으로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이에 본보와 경기연구원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함께 과거 천년의 역사 속에서 경기도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천년 경기(京畿)’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본보와 경기연구원은 지난달 26일오후 2시 경기연구원 대회의실에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후원으로 ‘경기천년기념 학술토론회’를개최했다.이번 학술토론회는 ‘왜 다시 경기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박정신 전 숭실대 부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경기, 그 천년의 이력)과 임종권 한국국제학연구원장(세계 천년의 도시와 경기), 허성관 전 광주과학기술원 원장(동북아 국제무역 중심경기), 김용국 아시아문화연구원장(동아시아 경기제의 변천과 경기도의 오늘)이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이날 토론자들은 과거 천년의 역사 속에서 경기도가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문화적 유산으로가치와 역할을 세심하게 더듬어가며 미래 경기 천년의 문을 여는 깊이 있는 논의를 펼쳤다.박정신 전 부총장은 “역사학은 눈의 학문이라는 화두를 던졌다.왼쪽 눈으로 보면 ‘좌파’, 오른쪽 눈으로 보면 ‘우파’, 현존 질서, 제도, 가치, 흐름, 이런 것을 두 눈으로만 보고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눈으로 보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역사학은 특히 눈의 학문이다. 윤리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강조했다.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대화하는 학문, 현재는 과거이고 미래이다. 역사학은 과거, 오늘, 현재의 학문이다”라면서 “경기도가 과거를 통해 새로운 천년을 그려보는 미래학으로서의 학술모임을 기대한다. 어제와 오늘 미래를 그려보는 학술토론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임해규 경기연구원 원장은 “경기도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문제는 본원의 주된 과제다. 경기천년과 경기 아이덴티티 문제를 계속 고민해 왔다”며 “오늘날의 경기도는 중앙집권적 국가시스템에서 벗어나 중앙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 맏형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있어야 한다. 경기도가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가치, 지리적지정학적 유리함 때문에 엄청난 문화의 보고가 남아있다. 이를 잘살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 경기, 그 천년의 이력-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경기라는 용어의 이념적 기초는 중국의 ‘시경’, ‘서경’, ‘예기’, ‘주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경기의 유래는 당나라 현종 때에 왕도의 주변지역을 경현과 기현으로 나누어 통치했던 것에서 찾을수 있다. 흔히 경기(京畿)란 서울을 둘러싼 그 문지방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우리의 역사에서 경기지역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계기는 고려 왕조의 성립과 관련이 있다. 태조 왕건이 개성에 도읍을 정하면서 경기지역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심 무대로 등장한다. 경기라는 명칭의 지방 행정조직이 편제된 것도 역시 고려시대이다.성종 14년의 적기 13현은 그 후 현종 9년에 경기로 된 지역이며 고려 말까지 언제나 경기의 모체가 된다. 정식으로 경기라 칭한 것은 현종 9년이고 경기라는 제도가 성립된 것은 성종 14년의 일로 이해할 수 있다. 경기도가 하나의 지방행정구역으로서 오늘날과 비슷한 지역을 가리키게 된 것은 조선조 세종 이후의 일이다. 1985년(고종32) 23부제의 실시 결과 경기도는 3부(한성, 인천, 개성) 34군으로 분리됐고 경기도는 일시 소멸됐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전국 13도, 7부, 1목, 231군으로 변경됨에 따라 다시 경기도로 부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는 중앙직할지였던 한성부가 경성부로 개칭돼 경기도에 편입됐다. 이때 한성부를 경성부라 개칭하고 한성부보다 격이 낮은 경기도의 소속관서로 해 수도로서의 개념을 없애고 일개 군과 같이 격하한 것이다.경성부가 서울특별시로 독립된 것은 1946년 9월로 미군정이 수립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다. 행정조직 담당을 위한 미군정의 부대의 배치 역시 경기도를 중심으로 집중됐다. 1945년 8월15일 역사적인 해방을 맞이했으나 경기도 행정구역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대폭 축소됐다. 해방 이후부터 6·25 발발 직전까지 경기도는 38도선 접경이라는 그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수많은 분쟁에 시달렸다. 1947년 3월18일 장단지역에서 남한 경찰과 소련군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해 소련군 병사 2명이 사망하는 등 1950년 6.25전까지 수많은 충돌이 일어났다.6.25의 발발로 인해 경기도는 주요 전장으로 변해 피해 역시 막대했다. 1960년대 들어서는 경기도의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인공업지역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1970년대에는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1980년대에는 안정된 성장과 함께 수도권 전역에 널리 분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970년대 종반 이후 대도시 집중의 인구 팽창에 직면하면서 도시인구 억제 사업을 보다 적극적이고 종합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된다. 80년대에는 수도권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등 이러한 권역 선정에 따른 지역개발 유도 전략은 90년대 몇 차례 수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계속 유지된다.2000년대 들어 빼놓을 수 없는 변화 중 하나는 경기도 제2청사 시대의 개막이다. 제2청사는 소외된 경기북부지역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북부출장소를 북부지청으로 승격시키고 부지사 행정체제로의 전환을 지시하면서부터 본격 추진한다.경기도는 새천년 시대의 문턱에 서서 오늘 2020년까지 도를 5개 권역으로 나눠 환황해권 중심지역으로 개발하겠다는 종합발전계획을 세우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7대 핵심 추진전략이 추진되고 있다. 김동환 연구위원은 “경기도의 이력서를 쓰는 기분으로 발표했다. 경기도는 사실 한반도의 중심이면서도 과거나 현재, 미래의 정체성이 애매하고 미지근한 지역”이라며 “경기천년을 앞두고 문화적 정치적으로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는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 세계 천년의 도시와 경기 - 임종권 한국국제학연구원장 유럽은 권력자가 통치를 위해 도시를 건설했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여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동양은 권력자의 인위적인 힘에 의해 건설됐다. 유럽은 문화와 다양성이 있는 통합적 방식으로 팽창되는 반면 동양은 권력체계가 무너지거나 권력구조가 미약해지면 스스로 소멸됐다. 도시가 만들어지는 내적 동기가 동양이 약하다. 경기가 천년을 맞아 도시의 모습을 유럽과 비교해보면 교훈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근대화 과정에서 인류 사회의 변화는 농촌이 아닌 도시중심이다. 유럽도시는 자주적, 독립적이지만 동양은 행정중심밖에 내적 동기가 없다.동양은 겉모양은 근대적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유럽과 상이한 시스템과 체계를 가지고 있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근대적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경기’ 자체가 도시화돼 있다. 경기도 전부가 다 도시다. 사회 박정신 前 숭실대 부총장 도시 속의 경기로 볼 정도다.각 도시와 농촌을 분리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 정책구조가 필요하다. 역사적 관점에서 따져보면 오늘날의 역사는 단편적이 아닌 전체적 행정ㆍ문화ㆍ사회 등이 내포돼 있어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오늘날 역사연구의 지향목표이다. 그런데 다 분리돼서 엇박자가 이루어졌다.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성장할 수 있다.도시사는 행정이나 정치적 관점만이 아니라 통합적, 문화ㆍ인류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세계화는 교통망이 허술할 때는 서로간의 소통 교류가 어려웠지만 지구촌시대에는 통합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제는 국가 전체가 하나의 도시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영국의 EU 탈퇴를 보면서 EU라는 체제를 생각해보니 여러 다양한 국가가 하나로 통합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것은 도시의 결합이다. EU는 국가가 아닌 도시의 연결이고 결합인 것이다. 도시중심으로 유럽이 발달하면서 도시가 국가를 발전시켰다. 도시는 고립된 자급자족이었던 것이 십자군전쟁 이후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발달했다. 동양은 권력자들이 통제하고 규제하는 구조지만 유럽의 영주들은 세금을 늘리기 위해서 상인들의 상업을 관리하고 지원했다. 그래서 유럽의 공무원들은 통제와 규제가 아닌 서비스적 관점에서 관료제가 발달했다. 유럽은 도시와 도시의 연결망으로 선진국으로 발전하고 자주적이고 총체적, 통합적, 융합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온 것이다. 유럽은 문화적인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는 도시연합이 결성돼서 EU의 지원을 받아 교류하고 의논한다. 유럽에는 도시가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수 없다.우리나라는 혼란스럽다. 유럽은 전체적으로 안정적이다. 파리는 중세적인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보존하고 있다. 21세기 도시는 행정적 시스템과 더불어 도시의 재생정책, 인문학적 관점에서 함께 실현시켜야 한다. 경기도의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는 무엇인가. 본보는 창간 이후 지난 28년간 경기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 왔다. 경기도는 오는 2018년 경기천년의 해를 앞두고 있다.경기도는 고려시대 개경과 조선시대 한양, 일본강점기 한성부ㆍ경성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수도 서울의 주변에서 그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앞으로 통일의 시대가 오면 한반도의 중심인 경기도는 통일 한국의 중심부의 역할을 과거 천년 동안 해 왔듯 그 역할을 앞으로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이에 본보와 경기연구원은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와 함께 과거 천년의 역사 속에서 경기도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천년 경기(京畿)’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 본보와 경기연구원은 지난달 26일 오후 2시 경기연구원 대회의실에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후원으로 ‘경기천년기념 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이번 학술토론회는 ‘왜 다시 경기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박정신 전 숭실대 부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경기, 그 천년의 이력)과 임종권 한국국제학연구원장(세계 천년의 도시와 경기), 허성관 전 광주과학기술원 원장(동북아 국제무역 중심 경기), 김용국 아시아문화연구원장(동아시아 경기제의 변천과 경기도의 오늘)이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이날 토론자들은 과거 천년의 역사 속에서 경기도가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문화적 유산으로 가치와 역할을 세심하게 더듬어가며 미래 경기 천년의 문을 여는 깊이 있는 논의를 펼쳤다.임종권 원장은 “경기가 천년을 맞이해 새롭게 도약하고 모든 사람들의 삶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기’ 도시들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의 네트워크가 필요로 하는 시점에 와 있다”며 “도시의 유럽이 되었듯이 도시의 ‘경기’가 되려면 도시마다 각기 다른 도시로서의 발전을 도모하기보다 공동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통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북아 국제무역 중심 경기 - 허성관 전 광주과학기술원 원장국가가 번성하고 이런 시기는 대륙성과 해양성이 동시에 이뤄질 때다. 대륙성은 삼국시대, 해양성은 고려시대에 발휘됐다. 오늘날 경기도 문제를 논함에 있어 걸림돌은 남북분단으로 북한 개성지역 등은 경기도에서 제외됐고 인천과 서울도 제외돼 과거의 경기와 현재의 ‘경기’는 다르다.고려말 권신들이 정부 각 토지를 점거하면서 토지 겸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폐해가 발생하자 조선시대에는 과전을 경기도에서만 실시하면서 경기도 행정구역의 확대가 이뤄졌다. 현재 북한 개성 인구는 25만명, 고려시대에 벌써 50만명인 대도시였다.상업은 고려사에서 연구가 부족하다. 고려에서는 상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벽란도에는 250칸정도 되는 객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왕실이 상업을 좋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왕건은 무역상인가문 출신이다. 역참제도를 통해 실크로드가 정비되고 왕실에서 직접 장사에 나서기도 했다. 고려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는 기록도 있다.고려가 474년 지속된 것은 상업을 통해 긴장된 국가관계를 완화시키지 않았나 하는 예측이 가능하다. 요나라를 제외하고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금나라와 고려는 관계가 특히 좋았다. 요나라와는 적대적이었다. 고급품을 송나라에서 들여오고 문방구류가 많이 수출됐다. 송나라 상인들이 대규모로 고려로 몰려(200년 동안 57회ㆍ연인원 5천명)왔다. 고려와 송과의 공무역은 고려에 유리한 상황이었다.당시 은병 한 근이 벼 20석 가치였다. 송과의 무역 중심지는 벽란도였으며 원과의 무역은 공무역이 활기를 띠었다. 원과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아라비아와도 무역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고려는 연산도로부터 육로로 가서 요수를 건너서 동쪽으로 그 강역은 3천790리로 기록됐다. 고려의 영토가 반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요동성 허베이성 일대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국력은 자신감의 발로인데 자신감은 고려가 조선보다 더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시대는 ‘대몽항쟁’, ‘요동정벌’ 등을 보였으나 조선시대는 ‘소 중화’로 약화했다. 생활수준은 일반적인 비교가 어렵다. 그러나 고려시대가 사치가 더 심했다. 양극화는 고려가 훨씬 더 심각했다. 대외적으로도 송나라는 요나라에 공물을 보내는 등 화의를 요청했으나 고려는 요나라를 대패시켰다. 국제관계에서 당시 남송보다는 고려가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허성관 전 원장은 “실학사상의 발원지가 ‘경기’다. 무역을 중심으로 초점을 맞췄다”면서 “ 중국과 일본은 경기가 봉건제하에서 나와서 봉건제 파괴 후에는 사라졌다. 우리는 중심지가 변하지 않는 한 경기는 없어질 수 없다. 우리가 경기천년을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경기제의 변천과 경기도의 오늘 - 김용국 아시아문화연구원장동아시아라 함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지칭한다. 이미 3국이 역사적으로 많은 교류가 진행됐으며 또한 문화적 교류도 활발히 진행돼 3국이 문화에 상호 영향을 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여기에 아울러 3국이 공히 경기라는 제도를 실행했었다는 사실은 동아시아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판단한다. 경기란 한나라의 수도인 서울(京)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지역인 기(畿)를 의미하는 것으로 한ㆍ중ㆍ일 3국이 경기제를 통해 무엇을 구현하고자 했는가를 비교해 살피는 것은 대한민국의 경기도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중국 당나라에서의 ‘경기제’는 왕궁을 보위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을 가장 큰 것으로 삼아서 시작됐다. 군사, 정치적 목적, 물화의 목적에서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특별 행정구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경기로 일반적 개념화되면서 오늘날의 성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한나라 때는 경기를 ‘거중어경’이라 불렀고 ‘강간약지’라고 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경기제를 수용했다. 행정구역을 어떻게 조성하는 것이 황궁을 보호하고 천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서 출발했다. 중국과의 공통점은 특권이 부여되고 있는 지역으로서 조세와 부역이 면제되거나 줄어들었다는 점이다.우리는 봉건이념에 기초해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 경기제 도입의 이유다. 궁성을 에워싸고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제도적으로 수용한 나라 중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도의 역사가 의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작은 경기에서 확대시켜 나가서 오늘날의 경기가 가능해졌다.이는 과전의 영향이 크다. 서양은 도시적 개념에서 농업생산성이 중요했다. 경기도 역시 물자가 흥성스러운 것과 더불어서 인위적으로 면적을 확장시켜온데 의미가 있다.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경기도에 살고 있다. 행정체제로서의 경기를 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유효했는가를 돌아봤으면 한다. 지방과 서울을 잇는 문화, 인적교류의 중심지로서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고려와 조선을 잇는 경기도의 기능 중 중간지대로서의 완충지 역할을 한 것이 경기의 핵심적 의미다.서울을 따로 보고 경기도를 따로 봐서는 경기의 역사를 바로 볼 수 없다. 서울, 경기, 인천을 아울러서 오늘날의 경기를 읽어나가야 미래 경기의 천년을 볼 수 있다. 경기도와 인천, 그리고 서울이 함께 하는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수도권 광역경제발전위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 자치단체가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발전 전략이 아니라, 이 지역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발전전략이 논의돼야 한다.김용국 원장은 “향후 천년에 대한 계획은 경기라는 제도의 도입으로 현재 경기도로 유지되어온 지난 천년의 역사와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광의의 경기에 포함되는 경기도와 인천, 서울이 함께 실리와 공공성에 바탕으로 둔 논의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맡은 바 역할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경기라는 지역이 동아시아의 문물이 교류하는 장으로서 소명을 수행하는 길이라 여긴다”고 주장했다.■ 종합토론강진갑 경기대 교수, 구미정 숭실대 교수, 김병기 독립운동사편찬위원장, 김소희 아시아문화연구원 연구원, 임연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기획실장, 정암 전 관동대 교수, 조의행 신한대 교수, 이수행 경기연 선임연구위원, 황금회 경기연 연구위원 등이 토론자로 참석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김병기 위원장은 김동환 연구위원을 발표에 대해 “경기도의 경제백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물 문화 역사를 반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경기 천년의 역사적 의미와 통일에 대비하는 경기도의 미래비전도 제시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정암 전 교수는 ‘세계 천년의 도시와 경기’ 주제 발표에 대해 “경기도의 미래를 얘기할 때는 경기도 자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내적 문제(경기도 자체), 외적 문제(외국, 서울, 전국과의 관계)가 있는데 그런 입장에서 층위를 낮추어서 경기도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유럽과 비슷한 수준에서 비교,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또 강진갑 교수는 “경기도가 경기천년과 관련해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경기도 천년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며 “균형감각을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이와 함께 이수행 선임연구원은 “경기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보다 명확하고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중국은 공산당이 도시의 성장을 억제했다. 중국은 2천년대 들어와 법률상 대도시의 성장을 허용했다. 앞으로 한ㆍ중관계에 경쟁 관계가 심화될텐데 중국의 도시정책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밖에 황금회 연구위원은 “대도시권이 집중 확장되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종합해서 ‘경기’ 이데올로기의 대담론이 완성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최원재ㆍ김광호기자

[경기천년, 새로운 천년을 연다] ‘건군 1300주년’ 日 고마군을 가다

지난 5월21일 일본 사이타마현 히타카시에서는 우리나라에도 큰 의미가 있는 행사가 개최됐다. 올해는 히타카시의 옛 지명인 ‘고마군(高麗郡)’이 건군 된 지 1300주년이 되는 해이고, 이날 13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것이다. 고마군은 고구려 왕족인 약광(若光) 등 고구려인 1천799명이 고구려 멸망을 전후해 일본에 이주, 이곳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지역으로 우리 역사에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자 한국과 일본의 교류 상징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많은 국민이 고구려는 북한지역과 만주지역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경기도 역시 고구려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구리시의 경우 지난 1994년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를 조사해 고구려시대 보루 17개소를 발견해 냈고 그곳에서 2천여 점의 고구려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기도 했다. ■ 1300년 전 고구려인을 재현하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5월21일 히타카시를 방문, 한일 교류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마군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남 지사는 히타카시 문화체육관에서 고마군 건군 1300주년 기념식 축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은 이제 미래로 가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이곳, 고마신사에서 정상회담을 갖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어 “한국, 중국, 일본을 (지리적으로) 보면 한국이 중간에 끼어 있는 것 같지만 미국 등 세계로 시각을 넓히면 한국과 일본은 함께 해야한다”며 “그 협력의 시작을 히타카시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이타마현의 작은 도시인 히타카시는 면적은 47.48㎢, 인구는 총 5만 6천여 명이며 농업과 관광업이 도시를 지탱하는 주된 산업이다.히타카시는 주민들에게 애향심을 심어줘 젊은이들의 유출을 막고 도시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 2년 전부터 고마군 건군 13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히타카시는 1300주년을 맞이하기 위해 지난 2년 전부터 각종 포럼과 세미나를 20여 회 이상 진행해 왔으며 130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특히 히타카시는 1300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무지개 퍼레이드’를 준비했는데 고마군으로 이주했던 1천799명을 기리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퍼레이드에는 3천여 명의 주민이 직접 고구려 의상을 제작해 입고 퍼레이드에 참가, 그 의미를 더했다. ■ 1300년의 세월 ‘시간’과 ‘사람’, ‘음식’, ‘꽃’과 연계 히타카시의 고마군 1300주년 프로젝트는 단발성 계획이 아닌 중장기적으로 검토되 진행된 사업이다. 히타카시는 이 사업을 지난 2011년 수립된 ‘제5차 히타카시 종합계획(2011년~2015년)’ 안에 포함시켜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히타카시는 1300주년 기념식이 단순히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시간’ㆍ‘장소’ㆍ‘사람’ㆍ‘음식’ㆍ‘꽃’을 연계해 정책을 추진했다. 먼저 시간과의 연계는 선조들이 구축해 놓은 유구한 역사를 후세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특히 아이들에게 고마군에 대한 역사적 교육을 진행했다. 장소와의 연계는 과거 고마군이었던 히타카시 인근 지자체와 연계해 고마군 관광 루트를 개발하고 과거 고마군 영역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자전거 길을 선정해 집중 홍보했다. 사람과의 연계는 고마신사 등 고구려 관련 문화유산을 핵심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 시민과 관광객 간 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또 주민들에게 중국어, 한국어 등을 배울 기회를 제공해 고마군에 대한 관심도를 더욱 높였다.음식과의 연계는 ‘구루메’로 불리는 고마전골요리를 홍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옛 고마군 전통요리를 맛보게 했다. 고마전골요리는 김치와 고려인삼 등이 들어가 한국적인 맛을 느낄 수 있으며 해마다 고마전골 콘테스트를 개최해 주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꽃과의 연계는 매년 가을마다 히타카시에 500만 그루가 피어 장관을 이루는 석산(만주샤게)과 국화 등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꽃 명소에 고마군 1300주년 홍보를 해 관광객들에게 기념사업을 홍보했다. 히타카시 관계자는 “1300주년 기념 프로젝트는 단시간에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히타카시는 1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5년 전부터 기획했고 본격적으로 2014년부터 사업을 실행했다.추진 당시에는 많은 주민이 고마군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지속적인 홍보와 포럼, 세미나 등의 개최로 인지도를 높였다”라며 “기념행사의 목적은 히타카시에 대한 애향심을 높이고 미래 성장동력을 얻기 위한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고구려 의상을 만들어 입고 퍼레이드를 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등 주민의 자발적 참여가 가능한 사업들을 많이 실시했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고마군 △ 역사 : 665년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서거한 후 급격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국가적 위기가 계속되던 이듬해 고구려는 왕족인 약광을 포함한 외교사절단을 일본으로 파견한다. 이후 667년 신라와 당나라가 고구려 정벌에 나서면서 668년 고구려 수도 평양이 함락돼 약광은 고구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이에 일본은 약광에게 벼슬을 줘 조정에서 관료로 일하게 했으며 이후 716년께 일본 내 7개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1천799명의 고구려인이 무사시노 지방으로 이주하면서 새롭게 고마군을 설치하게 됐고 약광은 초대 군장으로 부임했다.약광을 비롯한 고구려인들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미개발지였던 고마군을 개척해 나갔고 약광 사망 후 고마군 주민들은 약광을 기려 고마군 수호신으로 받들게 된다. 이것이 고마신사의 창건 유래이다. 고마군은 이후 1200여 년 가량 유지돼 오다가 1896년 이루마군에 편입돼 그 이름이 사라졌다. △ 위치 : 당초 고마군은 현재의 히타카시와 항노시를 중심으로 설치됐으며 중세부터 에도시대를 거쳐 군지역이 확대, 쯔루가시마시 전역과 카와고에시, 이루마시, 사야마시의 일부까지 포함됐다. 지금도 이들 지역의 오래된 돌비석이나 길 이정표 등에는 고마군이라는 문자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지금도 남아있는 고구려인의 문화 : 히타카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고구려 관련 문화는 ‘고마신사’이다. 고마군의 초대 군장인 약광을 기리기 위한 고마신사는 약광 직계 자손이 대대로 주지를 맡아오고 있다. 인근에는 약광이 안치된 쇼덴인(성천원)이라는 사찰도 있다. 또 히타카시 내에서는 최근까지 고마군과 관련된 문자가 새겨진 토기와 허리띠 등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구려 문화였던 양잠, 밀 생산,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 등의 문화도 히타카시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호준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기천년, 새로운 천년을 연다] 천년 경기의 발자취

고려 제8대 현종 때 개성 및 부근 13현을 중앙의직할로 해 ‘경기’라고 칭하면서 시작된 경기의 역사가 오는 2018년 꼭 1천년을 맞이한다.현재 경기도는 1천년을 맞아 다양한 학술제와 기념행사등을 기획하고 있으며 ‘경기 천년’ 기념행사를 통해 경기도민들로 하여금 애향심을 불러일으키고지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고 있다.그러나 도는 아직 어떻게 준비하면 도민들과 소통하고 지속 가능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를 놓고고민 중이다. 이에 본보는 올해 1300주년을 맞아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고마군을 찾아가 이들이 준비한 1300주년 기념행사를조명해 보고, 경기 천년 기념행사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오는 2018년 맞이하는 ‘경기 천년’은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 수도의외곽지역을 정식으로 ‘경기’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을 기준으로 삼고있다.그렇다면 ‘경기’라는 단어의 기원은 무엇일까.본래 ‘경기’라는 단어 중 ‘경’은 천자의 도읍을, ‘기’는 천자가 직접관할하던 도성 주위 1천리의 땅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기제는 당나라가 북제 이래 지방의 고을을 9등급으로 나누어 다스렸던 제도를 적·기·망·긴·상·중·하의 7등급 제도로 고쳐서 도성 안 혹은 경도가 다스리는 곳을 경현(또는 적현)으로, 도성 밖 주변지역은 기현으로 구분해이들을 천자가 거주하는 3경에 두고 특별지역으로 통치하던 데서 비롯했다.이러한 ‘경기’가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다『. 고려사』권56 지 10 지리 1 왕경개성부, 현종 9년을 보면 1018년 현종은“개성부를 없애고 개성현령을 두어 정주·덕수·강음 등 3현을 관할하게 하고, 또 장단현령이 송림·임진·토산·임강·적성·파평·마전 등 7현을 관할하게 하여 모두 상서도성에 직속시켰는데, 이를 경기라 하였다”고 나타나 있다.경기제가 중앙에서 분리돼 지방제도로 자리 잡은 것은 고려 후기‘경기좌·우도’의 성립이었다. 1360년(공민왕 9) 경기병마도통사를 둔것을 시작으로 왜구의 방어와 관련된 병마직이 설치되는 과정을 통해 경기가 차츰 좌·우도로 구분되어 갔고, 1388년(우왕 14) 경기좌·우도에 찰방 겸 제창고전민사를 나누어 보냄으로써 점차 행정기구화 됐다.경기가 도로 확립된 것은 1390년(공양왕 2)으로 경기를 확장해 좌도와 우도로 나누고 각기 도관찰출척사를 둔 때부터다.경기도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지금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조선 초기인 1402년 태종은 경기좌ㆍ우도를 합쳐 경기좌우도성이라 하고 관찰사와 도사를 뒀다. 1413년(태종 13)에는 다시 사방의 거리를 참작해 연안ㆍ배천ㆍ우봉ㆍ강음ㆍ토산을 황해도에 이속시키고 이천을 강원도에 귀속시킨 대신 충청도의 여흥ㆍ안성ㆍ양지ㆍ음죽과 강원도의 가평현을 내속시킨 다음 1414년(태종 14) 1월18일 관제를 고치면서 경기를 좌ㆍ우도로 나누지 않고 그냥 ‘경기도’라 부르도록 했다.이러한 1414년을 기념하기 위해 도는 지난 2014년을 ‘경기도 600년’으로 기념하고 각종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한반도의 중심, 경기도지난 2014년 경기문화재단이 ‘경기도 600년’을 맞아 출간한 ‘육백년 경기도’를 보면 경기도는 조선시대 경제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알수 있다. 17세기 이후 경기도는 한양을 소비시장으로 무와 가지, 오이,수박 등의 품종이 활발하게 판매되었고 이천의 쌀도 한양의 대갓집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18세기 들어서는 강화의 화문석과 안성유기 등 수공업이 점차 발전해 상품화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수공업의 발전은 18세기 중엽에는도내에 사평ㆍ광진ㆍ누원ㆍ검안 등 101개의 5일장이 개설되는 등 시장이 발달했다.이처럼 상업이 발전하면서 한양의 배후도시인 수원 등이 상업도시로 발전했으며 광주와 양주 등도 유통거점으로 성장했다.경기도는 경제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리서인 ‘택리지’는 경기도에 대해 “300년 동안이나 명성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유풍이 크게 떨치고 학자가 무리 지어 나왔으니 엄연한 하나의 작은 중화였다”며 우리나라 학문의중심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실제 조선사회를 지배했던 성리학은 16세기 이후 이황의 영남학파와 이이의 기호학파가 이끌어갔는데, 주로 경기지방을 중심으로 충청ㆍ전라도 사림들로 형성된 학파이다.조선후기 성리학이 한계에 부딪히자 급부상한 ‘실학’ 역시 서울과 남한강을 따라 경기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개혁적인 학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성호 이익은 안산에 거주하면서 제자를 길러 성호학파를 형성했으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경기도 광주 출신이다. 경기도는 천주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광주 천진암과 여주 주어사가 천주교의 발생지로 꼽히고 있으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용인 골배마실을 본거지로 안성 미리내와 광주ㆍ이천 일대에서 활발하게 전교활동을 펼쳤다. ■ 천년의 역사 속 빛나는 경기도 인물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도. 경기도를 빛낸 역사 속 인물은 누가 있을까. 가장 먼저 수원을 상징하는 인물과도 같은 정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22대 왕인 정조는 수원화성을 건립했으며 현재 화성에 묘소가 있다. 또 조선왕조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정도전도 꼽힌다. 고려말 조선 초기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삼봉 정도전은 평택에 불천위를 봉안한 문헌사와 기념관이 있다.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역시 남양주에 묘소와 생가, 기념관 등 유적지가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 문신인 황희 역시 경기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재상으로 꼽히는 황희는 영의정 18년, 우의정 1년, 좌의정 5년 등 총 24년간 정승의 자리에 있었다. 대쪽같고 강직한 성품으로 알려진 황희의 묘소와 신도비가 파주에 있으며 반구정에 영정이 봉안됐다.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율곡 이이도 파주에 묘소가 있으며 조선 후기의 문신인 채제공의 요소는 용인에 있다. 조선중기의 명장인 권율의 묘소는 양주에 있으며 고양에는 행주대첩비가 남아있다.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위정척사파의 중심인물인 최익현은 포천에서 태어났다. 최익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곧바로 상소를 올리고 국내외에 조약의 무효를 선포할 것과 여기에 가담한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문화ㆍ예술 분야에도 뛰어난 경기도 인물이 많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조선 중기 문인이자 정치가인 허균의 묘소는 용인에 있으며 조선후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는 과천에 추사박물관과 과지초당이 있다. 경기도를 빛낸 인물 중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 역시 많은데 신한청년단과 건국동맹 등을 결성했던 여운형은 양평이 출생지로 현재 생가와 기념관이 양평에 마련돼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요인인 조소앙 역시 경기도 파주 출생이다. 해방 후 임시정부의 법통 고수를 주장했고 남북협상에 실패한 이후에는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한 조소앙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당선되기도 했다. 경기도를 대표하는 여성에는 명성황후와 나혜석을 꼽을 수 있다. 조선 고종의 정비이자 순종의 어머니인 명성황후는 여주에 생가와 기념관이 있으며 1900년대 초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 등으로 활동하며 신여성의 상징으로 불리는 나혜석은 수원 출생이다. 이호준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안양시, 제71주년 광복절 맞아 경축식·기념음악회·태극기달기 운동 등 다채로운 행사 준비

안양시가 오는 15일 제 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선열의 숭고함을 계승해 제2의 안양부흥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한다. 8일 시에 따르면 시는 15일 오전 광복절 경축식을 시청강당에서 개최한다. 이날 경축식에는 지역 광복회원과 유족을 비롯한 유관기관단체장 등 700여명이 참석하며, 유공시민 10명이 시장표창을 수상할 예정이다. 이날 식전공연에서는 난타와 판소리 공연, 안양시립 및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열창하게 될 ‘아름다운 나라’, ‘무궁화’, ‘광복군 제2지대가’, ‘조국찬가’ 등 광복의 감동과 나라사랑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펼쳐진다. 이에 앞서 10일부터는 나라사랑 태극기 달기운동을 전개한다. SNS와 대형전광판 및 버스정보시스템을 통해 태극기 게양을 독려하는 한편, 동별 태극기 게양 시범단지를 선정하고 시민대로, 관악로, 평촌로, 흥안대로 등 주요 도로변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게양하고 11일에는 2001아울렛 일대에서 광복회원 50여명이 참여하는 태극기 달기캠페인도 전개할 계획이다. 광복절인 15일 오후 병목안시민공원에서는 광복기념음악회가 개최된다. 음악회에는 안양시립합창단, 안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뮤지컬 가수 소냐, 소프라노 박미자, 테너 이정원, 아코디온 정태호, 트럼펫 노수환·김정태 등이 출연해 클래식과 가곡 및 가요 등을 선사하고 하모니카 연주단(신바람하모반)의 광복기념 퍼포먼스도 펼쳐질 예정이다. 안양=양휘모기자

가평군 22일부터 25일까지 3박4일간 2016 을지연습돌입

가평군은 국가위기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총력안보태세를 확립하기위해 위기상황에 대비한 ′2016을지연습′을 실시한다. 군은 오는 22일부터 25일까지 실시되는 2016 을지연습을 위해 각 실과소 및 읍·면 주무팀장, 관계자 등 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회의실에서 각 부서별 전시 대비계획 준비상황과 위기상황 대응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올해 을지연습은 전·평시 위기관리 역량강화 및 국가총력전 수행지원태세 확립을 목적으로 행정기관 전시 전환절차 숙달 및 민관군통합방위태세 확립, 주민안보의식 고취에 두고 다양한 훈련이 진행된다고 밝혔다. 특히 지역 안보환경에 부합하는 실전적인 연습을 통해 위기관리 역량을 강화하기위해 민·관·군·경·소방 등이 참가한 가운데 전시종합상황실 방호 및 테러대비 통합훈련·수질오염사고 합동방제훈련, 사이버테러대비 훈련 등 실제 훈련이 실시한다. 특히 군은 이번 을지연습은 22일 새벽 공무원 비상소집을 시작으로 전시직제 편성, 행정기관 소산이동, 도상연습, 을지연습과 연계한 실제훈련과 민방공 대피훈련이 전개돼 총력안보태세 구축과 함께 23일에는 대성리 구운천에서 수질오염사고에 대비한 합동방제훈련이 실시되고 24일에는 전시종합상황실 방호 및 테러대비 통합훈련이 전개돼 위기관리 역량증가와 튼튼한 안보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된다. 한편 군은 이번훈련을 통해 민관군경이 각 분야별 충무계획의 실효성을 종합적으로 검증 보완해 위기관리능력을 강화하고 긴밀한 협업체계로 주민 안전 및 안보의식을 향상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 시험, 북방한계선 침범 등과 같은 도발행위는 튼튼한 안보 없이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자위역량을 극대화하는 을지연습에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참여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가평=고창수기자

“안산시 유공표창 후보선정 문제있다”

새마을운동 우수 공직자를 포상하기 위한 정부 방침에 따라 안산시가 유공 표창(대통령)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후보자와 관련이 없는 내용을 공적에 포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유공자 추천 심사 의결에 참여한 공직자 일부도 “후보자 본인의 공적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 공적에 포함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선정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8일 경기도와 안산시에 따르면 도는 지난달 15일 행정자치부의 ‘2016년도 새마을운동 유공자 포상 계획’에 따라 같은 달 25일까지 포상 대상자를 추천해 줄 것을 시에 통보했다. 이에 시는 지난달 21일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2016년도 새마을운동 표창 대상자 공적심사의결위원회’를 구성, A국장을 후보자로 선정하고 공적 내용을 심사 의결했다. 이번 대통령 표창 후보로 선정된 A국장의 공적에는 지난해 5월 메르스 환자 발생에 이어 다음 달 메르스 확진 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시 새마을회는 시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다음 달인 6월10일 새마을지도자 50여 명이 참여하는 방역단 발대식을 가졌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방역단은 경로당 400여 개와 역사 8개소 등 다중집합장소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방재작업을 실시하는 등 메르스 예방 및 차단을 위해 노력했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메르스 확진 환자가 증가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던 당시 A국장은 장기 교육을 마치고 지난해 1월1부터 12월 말까지 새마을운동 및 메르스 차단 업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평생학습원장으로 재직했다.또한, 시는 ‘생태하천 정화운동(EM흙공) 추진’ 등 5가지를 A국장의 대통령 표창 후보 선정에 따른 공적으로 들었으나 안산천 및 화정천 환경정비(EM흙공 던지기) 사업은 A국장이 다른 부서에 근무하고 있던 지난해 6월8일에 시행한 사업으로 확인됐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대통령 표창 대상자 선정이 공적과 무관하게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며 “이런 식으로 대상자가 선정된다면 그 상의 권위가 서겠냐”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새마을회를 포함해 국민운동단체는 자발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구성,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시는 단체가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 및 행정적 지원을 하고a 있다”며 “전국 단위 표창(추천)의 경우 공적심사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표창 상신한 당해 자치단체의 총괄적인 활동사항을 작성, 제출하는 것이 관례다”고 밝혔다.안산=구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