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기도지사의 실리콘밸리 방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지난 10.28-30간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 밸리 지역을 방문하였다. 2015년 들어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는 최초 방문으로 지역을 관할하는 공관장으로서 또한 개인적으로 경기도(평택) 출신으로서 많은 기대와 성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표단을 지원하려고 노력하였다. 금번 방문에서 가장 눈에 띠는 성과로서는 풍성한 투자유치를 들 수 있다. 실리콘 밸리 지역에서만 지멘스(Siemens) 헬스케어사 1억3천만 달러, YKMC글로벌사와 1800만 달러 등 2억 1천만 달러의 투자 유치에 성공하여 향후 경기도내 일자리 창출, 소득 증대, 기술 혁신 등 그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동부지역 방문시의 투자유치액을 합하면 15억 달러가 된다고 하니 경기도 경제발전 및 후생 증가에 금번 방문이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남경필 지사가 글로벌 스타트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현지 실리콘 밸리의 생태계에 맞는 기업 육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보였다. 글로벌 피칭데이(10.29) 행사에서는 도내 우수한 강소기업을 선발하여 현지 사정에 맞게 미국 투자자들에게 회사의 제품을 자신있게 설명함으로써 한국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이 행사는 본인이 생각하기에 광역 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남경필 지사는 청년 창업자들과 그들의 활동 방향에 깊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스킨십을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세계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는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청년들과의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남경필 지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과 면담을 통해 유익한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 등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관계자들과 한반도 정세와 동북아 미래비전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였다. 금번 남경필 지사의 실리콘 밸리 방문은 큰 성과를 거두었고, 앞으로 우리 지자체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명쾌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경기지역의 창조경제 혁신센터는 글로벌 진출을 담당하고 있어 경기도와 긴밀하게 협력하길 희망하며,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우리기업의 실리콘 밸리 진출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 본인은 지난 3년동안 실리콘 밸리 지역을 발로 뛰며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보고 듣고 느낀점을 담은 졸저 ‘창조경제의 꽃을 피우다’(GNPBOOKS)를 발간하였으며 우리 기업에게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는 수원시와 산호세시간의 우호협력 파트너십도 적극 추진하여 양 지역간의 관계발전에 기여하게 되길 바란다. 한동만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천자춘추] 이주배경 자녀의 성장과제 전망

거리를 지나다 보면 외국인의 모습은 자주 시야에 들어온다. 행정자치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1월 1일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74만1천919명이나 된다.외국인주민은 국내에 90일 넘게 거주하는 외국 국적자, 한국국적 취득자와 그 자녀들이다. 우리보다 먼저 이주민의 증가와 다문화사회를 경험한 주요 외국에서는 이주민의 사회, 경제적 주변화 문제가 자녀세대에도 재생산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두고 정책을 수립해 왔다. 우리사회에서 이주민 자녀세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것도 제도권 교육 안에 있는 다문화학생에 집중되어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그리고 학교 밖에 있는 이주민 자녀에 대한 정책이나 사업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그러나 이주민 자녀세대의 구조와 성장환경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녀세대 대부분이 동남아시아 출신의 어머니를 둔 한국 출생이며 어린 연령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현재는 출신국적이 한층 다양해졌고, 청소년기 연령층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외국에서 성장하다 10대 중후반에 입국하여 한국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도입국청소년도 늘어나고 있다. 재혼 다문화가정과 외국인근로자의 증가에 따른 결과이다. 이러한 이주민자녀 구조의 변화는 향후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집단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출신배경, 연령대, 가족구조 등 성장과정 상의 차이와 요구를 면밀히 반영한 정책수립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은 자녀 사회화의 장으로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학교나 또래집단, 사회환경이 일정 연령대에 영향을 미친다면, 부모를 중심으로 한 가족환경은 자녀의 탄생 이후 초기 발달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자녀세대의 원만한 성장을 위해 부모세대가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하는 이유이다.그러므로 부모세대의 정착과 자녀세대의 성장지원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정책이 확대되어야 한다. 결혼이민여성의 사회적 역량강화 사업인 다문화 강사, 방과 후 보조교사, 다문화 서포터즈 사업이 그 예이다. 또한 가정 내 이중언어환경을 조성하는 사업도 자녀의 이중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자긍심 향상에 도움이 된다.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주민과 다문화에 대한 우리사회 전반의 포용성과 감수성제고이다. 외국인혐오증이 새로운 사회적 현안으로 대두되며 제노포비아의 확산이 우려되고 있는 시점에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여 정책에 반영하는 준비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전경숙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정책연구실장

[기고]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기대하며

지난 6월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하였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질병관리시스템에 허점이 있었음을 자성해 보면서, 이제는 그동안 나타난 허점들에 대한 보완책 마련에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메르스 사태가 노출시킨 우리나라 질병관리시스템의 문제점들 중 대표적인 것은 ‘환자 진료정보 공유시스템 부재’로 초기 진압에 가장 큰 실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환자와의 문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메르스 감염환자가 여러 병원을 내원하는 것을 막지 못했고 감염경로 파악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이의 대안으로 전자건강보험증(IC카드)이 제기되고 있는데, 외관은 IC칩을 부착한 신용카드만한 크기의 카드로 표면에는 본인사진과 이름 등 최소한의 정보만을 표기하는 전자건강보험증은 카드에 내장된 IC칩을 통해 의료기관 방문이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되므로 메르스 사태와 같은 대규모 감염질환 발생 시 환자의 의료기관 방문 여부와 감염경로 등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전자건강보험증의 장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타 의료기관 이용 시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등 중복촬영 방지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으며, 응급환자의 만성질환정보, 약품 부작용 등을 신속·정확하게 확인하고 처치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전자건강보험증은 건강보험 재정누수를 막는 효과도 불러 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5년간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과 재외국민 등의 건강보험증 도용은 17만 건, 약 48억 원에 이른다. 적발 되지 않은 건을 고려했을 때, 이에 따른 재정누수 규모는 매우 클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14년 기준으로 종이 보험증은 약 2천만 건, 총 57억 원이 소요됐지만, 정작 병원에서는 주민등록번호만 확인하다 보니 종이 건강보험증의 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무용지물이 된 종이보험증 대신 전자보험증을 사용하게 된다면 분명 많은 행정력과 예산낭비를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전자카드 도입 추진이 중단된 뒤로 15년간 논의단계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이처럼 전자건강보험증의 많은 장점에도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개인정보 유출을 염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대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IC카드를 도입하면 반드시 카드가 있어야 접근이 가능하므로 오히려 개인정보 보안수준이 강화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IC카드를 먼저 도입한 독일과 대만의 경우 개인 의료기록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IC카드 외에 의사카드와 의료기관카드를 동시에 읽어야 가능한 ‘3중 보안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이미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하고, 우리나라의 발전된 보안기술을 바탕으로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를 종식하고, 보다 안전한 전자건강보험증의 혜택을 전국민이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김명중 협성대학교 대학원 교수

[사설] 쌀 수급문제, 근본적 대책 필요하다

가을추수가 끝난 농촌은 풍년을 맞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쁨보다는 시름이 더하다. 농민들이 시름에 찬 이유는 간단하다. 농사는 풍년이 되었지만 쌀값은 가뭄이기 때문이다. 쌀값이 지난해 보다 무려 8%나 떨어지고 있지만 소비는 늘지 않고 오히려 정부의 재고미만 계속 늘고 있어 농민들은 수확된 쌀을 어떻게 처리, 돈을 장만할지 걱정이다. 때문에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이에 분노까지 겹쳐 드디어 거리에 까지 나서고 있다. 전국 각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청사 앞에는 농민들의 분노가 표시된 현수막이 수없이 나부기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쌀가마를 시·군 청사 앞에 쌓아놓고 시위를 하는가하면 심지어 쌀을 태워버리는 극단적인 행태까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세종로 중앙정부 청사 앞에서도 이런 농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농민들의 멍든 농심은 더욱 깊어가고 있지만 정부나 국회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지난 달 29일 국회에 제출된 2015년 예산안에 의하면 쌀 재고 관리 비용만 연 5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정부 관리 양곡 재고량은 137만4000t에 이를 정도로 쌀 문제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쌀 소비는 매년 크게 줄고 있어 정부가 재배면적 축소를 유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농업기술 향상과 태풍·홍수 피해가 적어 쌀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2% 정도 늘고 있으니, 쌀 수급 대책 수립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금년에 쌀 20만t를 추가 매입한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것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우선 남아있는 쌀의 재고를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농업계가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대북 지원은 다소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전향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사회는 걸식아동이 있을 정도로 쌀을 식량으로 필요하고 있는 구호기관이 산재하고 있으니 이런 곳의 실태를 파악, 쌀을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런 단기적 대책 이외에 정부는 건조저장시설 확충, 쌀 생산조정 등 보다 근본적인 수급·안정대책을 마련해야 될 것이다. 농민들이 시위를 하면 그때마다 조금씩 수매량을 늘리고 있는 임기응변적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제 농민들에게 각종 보조금을 지원하는 대책은 한계가 있음으로 쌀 개방에 맞서 농업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양곡 위주에서 채소·특용·과일 중심으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며, 젊은 층 인력을 농업 분야로 유입시켜 다양한 가공·유통 기법으로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한 다각적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사설] 선거구 획정, 유·불리 계산법 경기도 유권자가 비웃는다

정치권이 선거구 획정 유·불리 셈법에 정신없다. 선거구 획정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다. 특히 경기도를 두고 튕기는 주판알이 치열하다.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영ㆍ호남 지역과 판이한 정치적 성향 때문이다. 여야가 막판까지 벌이는 신경전도 들여다보면 경기도 판짜기가 핵심이다. 대체로 경기지역의 선거구 획정이 내년 총선 승패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 정치권 전체의 의견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획정에 따른 유·불리 셈법이란 게 나온다. 경기도의 경우, 수원·용인·남양주·화성·군포·김포·광주에서 1석씩 총 7석이 늘어날 걸로 예상된다. 정치권은 대체적으로 야권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말하고 있다. 택지개발로 교육과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서 30∼40대의 젊은 유권자가 유입돼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이 이유다. 용인 쪽 예측은 조금 다르다. 분당에서 노년층이 유입돼 여권이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맞는 말인가. 수원의 예를 보자. 16대 총선에서 수원은 야권이었던 한나라당 남경필 박종희 신현태 의원이 싹쓸이했다. 영통 지역구가 신설된 17대 총선에서는 여권이었던 열린우리당 김진표 심재덕 이기우 의원이 이겼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극단적으로 오갔던 두 번의 선거였다. 그 후 18대와 19대 총선은 각각 2곳씩 황금분할 구도를 이어오고 있다. 이런 기본적 수원 정서를 무시한 채 6개월 뒤 유ㆍ불리가 얘기되고 있다. 용인ㆍ남양주ㆍ화성ㆍ군포ㆍ김포ㆍ광주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흐름이나 현재 인구 분포 등 어느 것 하나 통일된 법칙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경기도의 표심은 언제든 한쪽엔 일방적 참패를, 반대쪽엔 일방적 압승을 가져다줄 수 있다. 물론 황금분할의 기막힌 구도로 결론지을 가능성도 똑같이 상존한다. 이것이 경기도 유권자의 표심이다. 그러니 지금 정치권 주변에서 쏟아내는 셈법에 많은 도민들이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이다. 6개월 뒤 표심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경기도의 표심이 전국 단위 선거의 결과를 늘 좌우해왔다. 부질없는 경기도 표심 예측에 매달려 선거구 획정에 멈칫거려선 안 된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과감하게 나누면 된다. 행정조직과 최대한 부합할 수 있도록 나누면 된다. 표는 그런 연후에 나누어주는 점수로 가져가는 것이다. 경기도 여론은 6개월 뒤 보여줄 무시무시한 결과에 대해 아직 빙산의 일각도 내보이지 않고 있다.

[아침을 열면서] 웃음은 최고의 유산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자산은 과연 무엇일까. 현금일까? 부동산일까? 지식일까? 학벌일까?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볼 성싶은 명제다. 미국의 저명한 사업가이자 동기부여가인 폴 마이어는 탁월한 세일즈 능력을 바탕으로 보험 세일즈맨으로서는 전무후무한 매출실적을 기록하며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큰 성공을 거둔 폴 마이어가 ‘성공을 유산으로 남기는 법’이라는 저서에서 자녀들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으로 추천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놀랍게도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책 속에서 그는 “웃음이야말로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귀중한 재산 중 하나다”라고 말한다. 프랑스 속담 가운데서도 ‘모든 날들에 가장 완벽하게 잃어버린 날은 웃지 않고 지나간 날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다닌다. 웃음치료라는 업을 통해 15년 동안 10대부터 70대까지 만남을 갖다 보니 그 말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최근 많은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있다.이유인즉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서로 싸우며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들은 부모의 삶을 통해 미래에 대한 추측을 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자녀에게 제대로 된 유산을 남기자는 것이다. 폴마이어의 어머니가 자식에게 남긴 유산처럼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든 웃으라고 가르쳤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어머니의 인생이 늘 행복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다만 슬프거나, 괴롭거나, 절망스러운 순간순간마다 고집스레 웃음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녀는 이렇게 가르쳤다. 동전에 양면이 있어 어느 한 쪽을 바라보면 다른 쪽은 볼 수 없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웃음을 선택하면 슬픔과 외로움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항상 웃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그것을 보고자란 폴마이어는 전설적인 보험 판매기록을 세우며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에서는 웃음의 중요성을 조사했다. ‘과연 누가 성공할까?’ 돈이 많은 사람, 학벌이 좋은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힘들 때, 절망이 다가올 때, 삶의 밑바닥에 있을 때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웃음지수, 유쾌지수, 긍정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해 있더라는 것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상담과 웃음치료를 진행해오면서 웃음은 자신감과 희망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삶의 위기에서 헤쳐나올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가져다주는 도구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말을 남긴 듯하다. 그 의미를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웃으면 건강의 복을 남겨주는 것이다. 웃으면 행복의 복을 남겨주는 것이다. 웃으면 성공의 복을 남겨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자산은 언제든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자산은 영원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

[지지대] ‘수능 대박’ 선물

12일 치러지는 2016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험생을 위한 합격 기원 선물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수능 특수를 잡기 위해 ‘수능대박’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통가엔 찹쌀떡과 엿, 초콜릿 등 전통적인 응원 선물의 인기도 여전하지만 올해는 소원 팔찌와 걱정 인형, 이태리타월 등 이색 아이디어 상품들이 등장했다. 특히 손목에 차고 다니다가 저절로 끊어지거나 풀어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원 팔찌’의 인기가 높다. 마야 인디언들이 작은 인형에 걱정을 말한 뒤, 베개 아래에 넣고 자면 걱정을 갖고 간다고 하는 ‘걱정 인형’도 사랑을 받고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물과 깃털, 구슬 등으로 장식한 작은 고리 형태로, 갖고 있으면 좋은 꿈을 꾸게 해준다는 ‘드림캐처’ 팔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웹 예능 ‘신서유기’에 나와서 화제가 된 ‘드래곤볼 7성구 구슬’과 지니고 다니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위시본 목걸이’도 많이 팔린다. ‘수능 대박’ 등 합격을 기원하는 부적 이미지를 새긴 보조 배터리와 ‘잘 찍자’는 의미를 담은 도끼 모양의 볼펜, ‘팍팍 밀어준다’는 뜻을 지닌 이태리타월 등도 아이디어 상품이다. 최근엔 수험생이 꿈꾸던 대학의 로고가 있는 특별한 선물도 인기다. 서울대 독서등,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의 이미지로 표지를 장식한 ‘SKY 노트’ 등 해당 대학에서 실제 사용하고 있거나 대학 로고가 새겨진 고득점 기원 학습용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생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하버드ㆍ예일ㆍ컬럼비아대 후드티셔츠를 선물하는 소비자들도 있다. 제품 이름과 포장에도 수능 선물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됐다. 떡 전문점 빚은은 ‘정답의 신’, ‘백발백중’ 등의 이름을 단 ‘떡하니 합격’ 수능 선물세트를 출시했다. 파리바게뜨는 카스타드 찹쌀떡 등을 수험생 기호에 맞춘 제품 포장에 암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그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담은 그림 등 네 가지 합격 기원 그림 메시지를 담았다. 수능시험은 단 한차례의 시험으로 몇 년간에 걸친 수험생활의 모든 것을 평가받게 돼 수험생들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저런 수능 선물도 좋지만 부담감을 덜고 최대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격려가 최고의 선물이지 싶다. 이연섭 논설위원

[미래를 여는 역사의 門 해방 70년 京畿] 32.수원의 여성 독립운동가 기생 김향화

김향화(金香花)는 경성부의어느 마을에서 1897년 7월16일에태어났다. 순이(順伊)라는순박한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가족은 아버지 김인영(金仁永),어머니 홍금봉(洪今鳳),7살 차이나는 오빠 창환(昌煥)과4살 어린 여동생 점순(点順)이가전부였다. 구한말 일제초기는사회적 혼란과 수탈 속에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생계마저 위협받던 시절에김순이(김향화)라는 어린 처녀는입이라도 하나 줄여 보겠다는생각으로 수원군 북수리 48번지에사는 정도성(鄭道成)과결혼을 감행한다.남편은 부모라고 해도 믿을 만큼나이차이가 났고 김순이보다6살이나 나이가 많은 딸도 있었다.남편 정도성은 풍족하지는않지만 그래도 먹고 살만한 여유가있었거나 아들을 얻기 위해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을것이다. 김향화는 15살이나16살 쯤에는 결혼을 했을 것이다.1911년이나 1912년경에이미 수원으로 와서거주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일제식민지 시대 가난한 집 딸이 살아가는 법결혼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얻어 생계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그녀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순탄치 않았던 듯하다. 18살이 되던 해인 1914년 12월10일에 남편과 이혼을 했다. 결혼한 지 불과 몇 년 만의 일이다. 그해 5월에는 아버지 김인영이 사망을 했고 생계가 막막해진 가족들은 그나마 의지가 될 만한 여동생을 따라서 남수리 202번지로 이주를 해왔다. 남수리 202번지는 김향화가 수원의 대표기생으로 활동하던 1919년까지 거주하던 곳이다. 정확한 이혼 사유는 알 수가 없다. 김향화는 이혼 후에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당시는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어쩔 수없이 기생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기생으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이름이 필요했고 순박한 순이(順伊)에서 향화(香花)로 변경한 듯 하다.기생이 되기 위한 기예는 수원지역에 있던 기생조합이나 권번에 들어가서 배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설에는 1911년 15살의 나이로 기생조합에 들어갔다고 하나 기록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 아마도 이혼을 하고 나서 생계 방편을 마련하기 위해 기생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이때 나이가 18살이다. 기생이 되기 위해 훈련 받기 시작하는 나이가 10세 전후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아주 늦은 나이에 기생이 된 것이다. 기녀 수업을 언제 어떻게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1918년에 만들어진 ‘조선미인보감’에 의하면 검무, 승무, 정재춤, 가사, 시조, 경성잡가, 서관소리, 양금 등을 잘했고 수원을 대표하는 기생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시 수원기생은 개성기생 못지않은 기예와 풍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늦은 나이에 기생이 된 김향화가 수원의 대표기생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동안의 눈물나는 노력의 결과였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어린 처자의 눈물이 느껴진다. “온갖 계책으로 봄을 머무르게 하되 봄은 사람을 머무르게 하지 못하고 만금은 꽃을 애석해 하지만 꽃은 사람을 애석해 하지 않아, 나의 푸른 쪽진 머리, 주홍 소매를 쥐고서 한번 넘어지면 이십 광음이 끝나도다.누가 가곡이 근심을 능히 풀 수 있다 말하는가. 가곡은 일생의 업원이로다. 본디 경성 성장으로, 화류 간의 꽃이 되어, 삼오 청춘 지냈구나, 가자가자 구경 가자, 수원산천 구경 가자, 수원이라 하는 곳도, 풍류기관 설립하여, 개성조합 이름 쫓네, 일로부터 김행화도, 그 곳 꽃이 되었세라, 검무, 승무, 정재춤과, 가사, 시조, 경성잡가, 서관소리, 양금치기, 막힐 것이 바이없고, 갸름한 듯 그 얼굴에, 죽은깨가 운치 있고, 탁성인 듯 그 목청은, 애원성이 구슬프며, 맵시동동 중등 키요, 성질 순화 귀엽더라.” (조선미인보감 김향화) 2009년 포상된 김향화 표창장과 메달 ■ 기생도 대한의 딸이다.김향화는 1919년 2월25일 남수리 202번지에서 201번지로 분가를 했다. 기생으로서 자리도 잡았지만 기생이라는 직업자체가 떳떳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가족의 생계도 안정이 됐기 때문에 분가를 한 것 같다.그러나 1919년 운명적인 사건이 그녀의 삶을 바꿔 놓았다. 23살이 되던 해인 1919년에 고종임금이 승하하셨는데 소문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고종임금을 독살한 것이라고 한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나라가 망하니 임금도 독살을 당한다는데 민초들의 삶이 고단하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생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1919년 1월27일에 고종임금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날이었다. 이날 소복을 곱게 차려입고 기생동기들 20여명과 함께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서 덕수궁 대한 문 앞에 백성들과 함께 곡을 했다.김향화도 기생이기 이전에 조선의 딸이기 때문이었다. 3월1일에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수원에서는 3월 16일 만세시위가 시작됐고 27일에는 수원역에서도 그리고 시장상인들이 상점문을 닫고 만세시위를 벌였다. 김향화와 수원기생 33인도 여기에 지지 않고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3월29일 기생들을 대상으로 자혜의원에서 정기적으로 위생검진이 이뤄지는 날이다. 김향화와 일행은 자혜의원으로 가는 길에 경찰서 앞에 이르러 대담하게 독립만세를 불렀다. 검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다시금 만세를 불렀는데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을 지켜본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시위규모가 커졌다고 한다.만세를 부르던 날 김향화는 망해가는 조선의 딸이었고 독살 당했다는 고종임금에 대한 의리와 절의를 지킨 신하였으며 한편으로 위생검진이란 이름하에 자행된 일제의 여성 인권유린에 분노하는 여성이었다.1905년 소위 을사조약 체결 이후 조선인 창기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 성병검사가 진행됐다. 위생검사는 사람들이 보는 앞마당에서 칸막이를 설치하고 옷을 벗어 성기를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검사 방법이었다. 너무나도 강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사였다.자혜의원에서 위생검사를 받은 김향화와 기생들 33인에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망국의 설움과 인간 취급받지 못하는 기생의 처지에 대한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자신들의 처지와 조선의 운명이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김향화와 기생들은 경찰서로 잡혀갔다. 김향화는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2개월여의 감금과 고문 끝에 경성지밥법원 수원지청 검사 분국으로 넘겨져 재판을 받고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그녀들의 만세운동은 1919년 6월 20일 매일신보에 실리기도 했다. 1919년 11월2일 김향화는 가출옥 상태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소리없이 사라질 지라도 내 나라를 지키고 싶었소.김향화는 그렇게 6개월간의 심한 옥고를 치렀다. 그녀가 기생들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탓에 가족들에게도 여파가 미쳤다.기생이 돼야 했을 정도로 빠듯하고 어려운 살림이었는데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면서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옥고를 치루고 나온 뒤 그녀의 행적을 추적할 만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추적해 본다면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아야 할 만큼 힘들었던 것 같다.게다가 김향화는 기생일도 그만둔 것 같다. 1925년 신문에 수원예기조합 명단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곳에도 그녀의 이름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생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가족들도 생계유지를 위해서 다른 방편을 찾아야 했다.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가족들은 수원을 떠난 것 같다.김향화는 1934년에 향화라는 기생이름을 버리고 우순(祐純)으로 바꿨다. 기생 시절에 사용했던 향화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을 것이고 또한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한이 묻어나는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시기는 다르지만 여동생 점순은 화자(和子)로, 오빠 창환은 영석(永石)으로 이름을 바꿨다.여동생과 오빠의 경우 1940년 창씨 개명 과정에서 이름을 변경한 듯하다. 우순으로 이름을 바꾼 이듬해 1935년에 나이 39살의 늙은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김향화는 경성으로 이주를 했다. 어머니와 오빠 김창환은 1930년을 전후로 경북으로 이주를 한 듯하다.어머니 홍금봉이 1930년에 경북 김천군에서 사망을 했고 2년 뒤인 1932년에 오빠 김창환은 경북 달성군에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경상북도가 어머니 친정이었는지 선대 연고가 있었던 곳이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다.어쩌면 기생 여동생의 만세시위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 곳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오빠 김창환은 나이 42세에 혼인신고를 하면서 결혼 전에 낳은 아들 동철(東澈)을 비로소 호적에 올릴 수 있었다.정식 혼인 관계에서 얻은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정도로 경제적으로 열악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동생 점순의 행적도 알 수 없다.그녀는 딸 둘을 낳아 키웠는데 모두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약자이고 경제적으로 여러움에 노출된 사람들의 처지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김향화는 1935년까지 15년 동안을 수원에서 버텼지만 가족도 모두 떠나버린 상황에서 홀로 버티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결국 살아보겠다고 내려온 수원행을 포기하고 20여년 만에 서울로 올라간다. 그녀의 나이 39세가 되던 해이다. 꽃같은 나이에 수원으로 들어와 25년을 살았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꽃같은 얼굴과 구슬픈 목소리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기생 김향화였지만, 만세운동 이후에 가족은 흩어지고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에 시달렸으며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팔려가듯이 늙은 남편과 결혼을 해야 했고 이혼 후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처지는 식민지 조선의 자화상이다.김향화는 식민지 시대 사회적으로 가장 약자였던 가난한 집 딸이었고 천대받던 기생이었지만 조선의 독립을 당당하게 외쳤던 인물이었다.못난 나무가 산을 지키듯이 조선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김향화는 역사의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지난 2009년 4월 국가보훈처로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표창장과 훈장메달은 수원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류현희(수원시사편찬위원회 선임연구원)

토종어종 살려 ‘新 소득원’ 창출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와 가평군이 토종 민물고기인 미유기종 복원과 체험형 특화상품 개발에 나섰다.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와 가평군은 지난 7일 북면 백둔천에 고유어종인 미유기(길이 약 10㎝) 100마리와 다슬기 10만미를 시험방류 했다. 이번 미유기 시험방류는 지역특성에 맞는 토종어종의 증식과 생태체험 기회 제공을 통한 새로운 소득원 창출을 위한 어(漁)자원 프로젝트다. 미유기는 메기과의 물고기로 메기 모습과 비슷하며 물이 맑고 자갈이나 바위가 많은 하천 상류지역에 서식하는 어종으로 수질과 환경오염 등으로 서식처가 파괴돼 가면서 자원량이 감소하고 있다. 경기도 보호야생동식물(경기도 보호야생동식물 지정고시 제2012-135호)로 지정됐다. 앞서 가평군과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는 지난 4월 미유기종 보존 및 복원을 위한 MOU를 체결하고 채란 및 수정을 통해 인공 부화시켜 치어생산관리를 통한 방류질병검사를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과 기술배양을 실시했다. 양 기관은 자연에서의 서식과 생태조사 등 연구를 계속해 성숙 메카니즘을 규명하고 친어를 확보해 군 전역계곡으로 방류해 어족자원 활성화를 구축할 방침이다. 김성기 군수는 “토종어종 자원을 회복·증식시켜 체험형 특화상품으로 개발해 자연생태계를 보전하고 경제·문화·사회분야로 파급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수 소장은 “이번 방류가 토종어종의 자원회복과 하천생태계 복원은 물론 내수면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과 보존 및 증식을 위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가평=고창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