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7호선 ‘청라 스타필드역’ 뚫린다

인천 서구 청라국제도시를 관통하는 서울지하철 7호선의 가칭 ‘청라 스타필드역’ 건설이 본격화한다. 1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시 도시철도본부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7호선 청라연장선 추가역 신설을 위해 민간사업자들과 분담금 조정을 끝냈다. 추가역 신설을 위한 건설비 1천935억원 중 청라 돔구장과 스타필드 사업을 추진할 ㈜신세계프라퍼티가 484억원(25%)을 부담한다. 또 서울아산병원 청라의 사업시행자인 청라메디폴리스피에프브이㈜가 200억원(10%)을 낸다. 이들 민간사업자들은 도시철도본부의 연도별 사업 계획에 따라 해마다 건설 비용을 분담한다. 앞서 인천경제청은 2만1천석 규모의 프로야구 경기장과 복합쇼핑몰을 결합한 스타필드 청라와 청라의료복합타운 등의 개발로 교통수요가 늘어나 추가역 신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지난 2022년부터 하나금융그룹, 신세계프라퍼티, 서울아산병원 청라와 분담금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추가역 신설 비용 분담을 위한 협의를 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청라국제도시 발전을 위해선 추가역 신설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수혜를 입는 인근 민간사업자로부터 건설비 부담을 이끌어내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특히 도시철도본부는 이번 추가역 신설을 위한 민간사업자들의 분담금 조정이 이뤄진 만큼 서울7호선 청라연장선의 추가역인 가칭 청라 스타필드역의 건설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철도본부는 설계와 시공을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턴키방식으로 공사 기간을 단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철도본부는 최근 지방기술건설심의위원회를 열고 사업 계약 방식 등을 논의했다. 철도본부는 현재 서울7호선 청라연장선 시공사와 별도 계약을 위한 행정절차에 6개월여가 걸리는 만큼, 올해 연말께는 착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본부 관계자는 “우선 서울7호선 청라연장선을 오는 2027년 개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며 “추가역도 최대한 공사 기간을 앞당기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7호선 청라연장선은 2027년 개통을 목표로 석남역~청라국제도시까지 10.767㎞ 구간에 7개의 정거장이 들어선다. 여기에 청라연장선 국제업무지구역(005정거장)과 청라국제도시역(006정거장) 사이에 추가역을 신설하며, 추가역은 2029년 3월 개통할 계획이다.

‘의원 징계안’ 52건 폐기 임박… ‘제 식구 감싸기’ 여전

여야가 21대 국회에 제출한 ‘의원 징계안’ 52건의 임기만료 폐기가 임박, 제 식구 감싸기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징계안은 총 53건이며, 이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징계안은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 징계안 1건뿐이다. 나머지 52건은 윤리특위에 계류중이며, 한 달 남은 21대 국회 임기내 처리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 의원 징계안도 21대 전반기인 지난 2022년 4월26일 밤에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을 처리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제출됐으며,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숫적 우위를 내세워 본회의에서 30일의 출석정지 징계안을 처리했다. 계류돼 있는 징계안 중에는 국회 윤리특위 윤리심사자문위원회 혹은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징계 의결을 요구한 의원도 포함돼 있다. 특히 거액의 코인 보유 및 거래 의혹을 받았던 김남국 의원의 경우, 국민의힘 의원 20명과 민주당 의원 20명이 각각 징계안을 제출해 윤리심사자문위부터 ‘제명’ 권고까지 받았으나 지난해 8월 30일 윤리특위 제1소위에서 표결 끝에 제명안이 부결됐다. 김 의원은 표결 전 민주당 탈당 및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22대 총선 전 민주당 주도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으로 옮겼다가 조만간 민주당으로 복당할 예정이어서 ‘꼼수 복당’ 논란도 일고 있다. 또한 여성 보좌관 성추행 의혹, 후원금 횡령 의혹, 피감기관에서 가족회사가 공사를 수주한 의혹을 받았던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도 처리되지 않았다. 경기·인천 의원 중 9명·13건의 징계안이 계류돼 있으며, 이 중 민주당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와 윤호중(구리)·권칠승(화성병)·김용민(남양주병)·김교흥 의원(인천 서구갑)은 22대 총선에 당선됐다. 지난 16대(2000년)부터 21대까지 24년간 제출된 의원 징계안은 총 247건이며, 처리된 징계안은 21대 1건과 18대인 2011년 강용석 의원이 성희롱 발언으로 ‘30일 출석정지’ 받은 사례 등 두건에 불과해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임기 만료되는 21대 국회의 뒷 모습은 국회 윤리특위 징계안 50여건이 임기만료 폐기 위기에 선 것처럼 그들만의 국회로 오점을 남기게 됐다”며 “징계안을 뭉개기만 하는 국회 윤리특위는 존재할 의미가 없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복지사각 ‘영케어러’… 나홀로 부양 ‘고통의 나날’ [집중취재]

#1. 올해 스무살이 된 김상욱씨(가명·남)는 선천성 장애를 가진 12세 남동생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친인척도 없는 그가 두 사람의 생계를 짊어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지면서 일을 할 수 없는 어머니 대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대학 진학조차 사치가 되면서 교사의 꿈은 버린 지 오래됐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는 있지만, 세 식구가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친구들이 ‘부모님이 이거 사줬다’, ‘부모님이랑 놀러 갔다 왔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 신세가 화가 나 자리를 피하곤 했다”며 “나에게 가정은 쉴 수 있는 곳이 아닌 무겁고, 책임져야 할 곳”이라고 울먹였다. #2. 올해 대학교 2학년이 된 김혜윤씨(가명·여)의 평생 소원은 돈 걱정 없이 살아보는 것이다. 3년 전 오빠 2명이 학교와 직장을 이유로 집을 떠나면서 뇌병변 아버지를 책임지는 건 오롯이 그의 몫이 됐기 때문이다. 용인에서 인천까지 대학에 다니면서도 PC방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오가느라 학교 생활에 집중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는 “가족이기 때문에 생계를 책임지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부에서 일자리 지원 사업 같은 걸 해주면 조금 더 살기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여는 등 축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홀로 부양자가 된 ‘영케어러(Young Carer)’를 위한 지원책은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영케어러는 가족을 부양하면서 학업과 생계를 짊어진 청년 또는 청소년을 이르는 말이다. 2021년 대구에서 20대 초반 아들이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돌보다가 극심한 생활고에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기도에서는 현재 영케어러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5월 ‘가족돌봄청소년 및 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든 도는 올해 2월에서야 실태조사 연구용역 계약을 했고, 아직 본격적인 조사는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렇다 할 지원책도 없다. 흩어져 있는 민간 사회복지단체의 지원이 아니면 사실상 영케어러가 지원받을 길이 없는 셈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케어러의 상황이나 조건이 다양한 만큼 사회복지 기관과 협력해 맞춤형 지원책을 찾는 게 필요하다”며 “금전적 지원에 한정하기보다는 부모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지난해 조례가 생긴 뒤 예산 편성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서도 “연구용역 계약을 한 만큼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는 사업을 편성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경기만평] 선전포고...

[사설] 임교육감 “학생인권조례 폐지 능사 아니다”, 공감 크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개인적으로 폐지가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 교육감은 지난 30일 이천 꿈빛공유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과거에는 절대 교권 시대여서 문제였다면 지금은 너무 학생 중심으로 치우치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교육 구성원끼리 존중하는 관계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정쟁에 휘말렸다. 국민의힘 주도로 지난달 24일 충남도의회에 이어 26일 서울시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의결하면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반발해 천막 농성을 벌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인권에 대못박는 퇴행’,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맹비난했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에서 김상곤 교육감 때 처음 제정됐다. 이후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등 모두 여섯 곳에서 시행됐다. 조례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개성을 실현할 권리 등 보편적 학생 인권을 규정하고 있다. 체벌과 두발·복장 규제, 강제 야간자습 및 보충수업 등이 사라지고 학생들의 인권의식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지난해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교원들이 교권 회복을 외치자,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됐다. 보수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폐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학교 현장에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서 교원의 교육활동이 위축됐다는 주장을 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만 강조하고 책임 조항은 빠져 미흡한 부분이 있다. 조례로 상벌점제를 폐지해 교사들이 학생 지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말 펴낸 ‘학생인권조례 바로 알기 안내서’에 따르면 2017~2021년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는 조례를 둔 지역이 평균 0.5건, 없는 곳이 0.53건이었다. 인권위는 “조례 여부와 교권 침해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 교사의 교육권이 침해된다는 주장은 교사와 학생을 경쟁하고 대립하는 관계로 보는 발상이다. 여야나 진보·보수 교육계가 학생인권조례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 교육부의 교권보호 고시 내용과 충돌되는 내용이 있으면 개정하거나 보완하면 된다. 학생과 학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거나,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권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면 된다. 12년간 이어져온 조례를 학교 구성원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임 교육감의 말처럼,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능사는 아니다.

[사설] 아들딸, 예비사위까지 세습채용... 청년들 눈 무섭지 않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 내 비리가 놀라울 정도다. 오랜 기간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채용 비리는 인천지역 선관위가 대표적이어서 혀를 차게 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어떤 기관인가. 공정한 선거 관리는 국가 경영의 틀을 세우는 일이다. 경력직을 뽑을 때마다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전•현직 간부의 아들딸, 예비사위까지 선관위 직원으로 입성했다니. 엊그제 감사원이 선관위 자녀 채용 비리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처음엔 선관위가 자기들은 감사를 받을 수 없다고 버텼던 그 감사다. 감사원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차장 등 전•현직 직원 27명에 대해 수사를 요청했다. 직권남용과 청탁금지법 위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다. 지난 10년간 중앙선관위와 지역 선관위는 291차례나 경력직을 채용했다. 그때마다 비리나 규정위반이 나왔다는 것이다. 인천지역 선관위에서는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아들의 부정 채용이 있었다. 이 간부의 아들은 본래 강화군청 직원이었다. 2020년 강화군선관위에 경력직으로 채용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 강화군선관위에 빈 자리가 없는데도 자리를 만들어 채용한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2019년 채용 수요를 조사했다. 당시 인천시선관위는 6급 이하 인원이 정원을 초과했다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1명을 채용하도록 했고 전 사무총장 아들이 원서를 내자 선발 인원을 2명으로 늘려줬다. 면접에서도 전 사무총장과 친분 있는 직원들이 면접위원으로 들어와 높은 점수를 줬다. 채용이 돼도 강화군선관위에서 5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 조건의 경력직 채용이었다. 그러나 이 직원은 1년도 안 돼 상급기관인 인천시선관위로 자리를 옮겼다. 이 직원에게만은 ‘5년간 전보 금지’ 조건을 풀어줬기 때문이다. 이 직원은 선관위 직원들 사이에서 ‘세자’로 불렸다고 한다. 지역 선관위가 선출직 단체장들을 압박한 정황도 나왔다. 충북의 어느 군 선관위는 군수에게 군 직원에 대한 전출 동의를 요청했다. 이 직원은 지역 선관위 간부의 자녀였다. 군수는 선관위와 군청 간 전출은 일대일 교류가 원칙이라며 거절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요청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서다. 오늘도 대다수 선관위 직원들은 묵묵히 맡은 바 업무에 바쁠 것이다. 일부의 일탈이긴 하지만, 국민들을 크게 실망케 한다. 선거 관리는 국민 신뢰가 생명이다. 선거 관리가 신뢰를 잃으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일벌백계의 단호한 처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선관위 자체의 자정 기능 회복도 시급해 보인다.

[함께하는 인천] 빛 바랜 역사적 인물

반가운 분들을 기리는 명예도로가 새롭게 지정돼 박수를 친다. 한국 미학을 개척한 우현 고유섭 선생이 성장한 인천 용동 큰우물 주변 260m의 ‘고유섭길’, 사학비리가 들끓던 인천대를 시립화한 최기선 전 인천시장 업적을 기리는 인천대 송도캠퍼스 600m의 ‘최기선로’,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모교인 송도고 앞 독배로 465m의 ‘윤영하소령길’이다. 그간 고유섭, 김구 선생의 호를 딴 우현로, 백범로를 지정해놓긴 했어도 이분들을 극진히 모시지 못했다. 우현 족적을 살필 수 있는 기념관이 없어 그의 진가를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구한말~일제강점기 인천감리서에 두 번 투옥되면서 탈옥 뒤 강화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인천내항 1부두 석축 공사 노역에까지 동원됐던 백범의 인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어떤 인물을 기리느냐에 따라 도시 품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 시내 건물과 거리엔 역사적 인물과 사건 현장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수두룩하다. 인천에도 일제에 항거한 3•1운동 만세시위 거리, 독립운동가 흔적이 많으나 시민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 얼마 전 우현 타계(1944년) 80주년을 맞아 그분의 미학 정신을 접할 수 있는 경주 감포 앞바다에 갔었다. 우현은 “죽어서도 왜구를 막겠다”며 유골을 동해에 뿌려 달라고 유언한 신라 문무왕을 흠모했다. 문무대왕 수중릉이 바라다보이는 이견정(利見亭) 바로 밑에 우현 정신의 상징인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라는 글을 새긴 추모비가 있다. 우현 추모비 쪽으로 가는 도중 경주 문인 김동리, 박목월을 기리는 ‘동리목월문학관’에 들러보니 감동스러웠다. 문학관은 두 사람 생애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보여주고 습작 노트, 서재, 유품, 작품집을 감상하도록 했다. ‘역사를 품은 도시, 미래를 담는 경주’라고 내세울 만했다. 인천에도 역사적 인물이 많으나 그리 빛내지 못하고 있다. 고려 대문호 이규보의 묘가 강화도에 있으며 임진왜란 의병장인 조헌 장군의 호를 딴 도로가 서구 중봉대로다. 한국 첫 근대 군함장 신순성, 평화통일을 외친 죽산 조봉암, 일장기 말소 사건의 이길용 기자를 알리는 기념공간이 없다. 문화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극작가 함세덕, 추사 명맥을 잇는 서예가 유희강, ‘그리운 금강산’ 작곡가 최영섭, 한국 미술계의 산증인 이경성, 첫 세계 여행가 김찬삼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다. 이제 역사적 인물과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도시라는 소리가 나오면 좋겠다.

[삶과 종교] 오월은 감사의 계절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고 가정의 달이라고도 한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부부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 살아온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달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근로자의 날, 성인이 돼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기둥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서로 챙기는 성년의 날도 있다. 또 꽃피는 아름다운 계절에 아기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연등축제를 하는 부처님 오신 날도 있다. 이렇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자연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 따뜻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대중들을 이끌고 길을 가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를 보자 다섯 활개를 땅에 던져 그 뼈에다 절을 하셨다. 제자 아난이 이유를 여쭸더니 “이 한 무더기의 뼈는 혹시 나의 전생의 부모일 것이기에 절을 하였느니라. 일체의 남자는 모두 나의 아버지이고, 일체의 여자는 모두 나의 어머니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에서는 수많은 생을 거듭하는 동안 모든 존재는 서로 얽히고 설킨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이 거대한 그물과 같다고 해 ‘인드라망’이라고 부른다. 그물망의 촘촘한 그물코가 끊임없이 이어져 한없이 넓고, 그물마다 구슬이 달려 있어 서로를 비춘다고 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는 그냥 우연히 만난 존재가 아니라 오랜 생을 거쳐 오면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해왔다. 그러니 지금 함께하는 인연은 결코 그냥 스쳐 지나칠 가벼운 인연이 아닌 것이다. 인간과 인간, 모든 존재와 자연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를 비춰 주는 아주 가깝고 친밀한 관계다. 서로를 비춰 주는 무수한 존재와 함께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생각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반성해 보게 된다. 중국 당나라에 양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불교에 깊이 심취해 무제(無際)보살이 사천지방에 와 계신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떠났다. 길 떠난 지 며칠 만에 신선의 모습을 한 비범한 노인을 만났고 노인이 그에게 물었다. “젊은이는 어디를 그리 바쁘게 가시오?” “무제보살을 뵙고 스승으로 모시고자 찾아가는 길입니다.” “보살을 찾으러 가느니 부처를 찾으러 가지 그러오?” “부처님이 어디 계시는데요?” “집에 돌아가면 이불을 두르고 신발을 거꾸로 신은 분이 있을 것이오.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지요.” 노인이 보통 분이 아님을 느낀 양보는 알겠다며 걸음을 되돌려 부지런히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밤은 깊을 대로 깊어 있었다. “어머님! 제가 왔습니다” 하고 문을 두드리자 어머니가 반갑게 뛰쳐나왔다. 어머니는 이불을 두른 채, 신발도 거꾸로 신은 채였다. 부처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계신 부모님이 부처님이다. 불교의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다. 지금 내 주변의 가족, 친척, 스승, 친구, 이웃에게 감사하는 그 마음이 부처님을 향한 마음과 다르지 않다.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없기에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아낌없이 베풀었으면 좋겠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문화카페]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로 시작하는 피천득 시인의 ‘오월’처럼 오월을 노래하는 많은 찬사들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춤을 추는 만개한 꽃들이야말로 단연 오월의 얼굴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오월에는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처럼 사람을 위한 기념일이 모여 있다. 그래서 오월은 눈부신 봄날의 자연을 찬사함과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는 오월을 맞이하노라니 기억에 남는 ‘노동 영화’들이 떠오른다. 기실 인류의 역사는 노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의 태동 역시 노동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영화는 제7의 예술로서 대중을 위한 예술로 탄생했다. 이전의 예술이 상류층을 위한 것이었다면 영화는 대도시 노동자를 위로하는 대중예술로 등장했던 것이다. 최초로 영화를 발명한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의 초기 작품 중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년)을 보더라도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있어 노동이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1월 개봉한 영국의 영화감독 켄 로치의 ‘나의 올드 오크’(2024년)는 영국 북동부 지역의 폐광촌에서 살아가는 주민과 그곳에 불쑥 나타난 난민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치 감독은 오랜 기간 노동자의 삶과 노동 현장의 사회적 모순을 고발하는, 이른바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를 제작해 왔다. 나의 올드 오크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년), ‘미안해요, 리키’(2019년)를 잇는 노동 영화로 올드 펍을 경영하는 티제이가 난민 소녀 야라를 환대하며 공생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는 지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된 다니엘을 통해 영국 연금제도의 모순을 조명한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가족을 위해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리키의 고된 나날을 포착한다. 특히 이 작품의 엔딩은 심하게 다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하러 나가는 가장의 모습으로 끝이 난다. 트럭 운전대를 잡은 리키는 그야말로 상처투성이다. 그는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가족의 만류를 뒤로하고 일터로 향하고 만다. 프레임을 가득 메운 리키의 그 피투성이 얼굴은 영화가 끝나도 가슴 먹먹하게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쾌청한 하늘, 불어오는 산들바람, 연초록빛의 싱그러운 잎사귀, 알록달록 화사한 꽃들.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을 뽐내는 오월의 첫날이 근로자를 위한 기념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다. 그렇기에 오월에는 생기 충만한 자연으로 향하는 시선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향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