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車車… 수원여대 해란캠퍼스 ‘목숨 건 통학’ [현장, 그곳&]

“통학로에 인도가 없는 게 말이 되나요? 학교 갈 때마다 차에 치일까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에요.” 18일 오전 9시께 화성시 봉담읍 상기리 수원여자대학교 해란캠퍼스. 정문을 나서자 학교의 유일한 통학로인 322번 지방도(왕복 2차선)가 펼쳐졌다. 그러나 이곳부터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안입구 삼거리 인근 버스정류장까지 약 1㎞ 구간에는 통학로는커녕 갓길만 있을 뿐이었다. 최대 폭은 2m정도로, 그나마 폭이 넓은 구간은 이미 차량들의 불법 주·정차로 점령돼 있어 통행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었다. 통학로 초입에 시선 유도봉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고작 10여m에 걸치는 수준이었고, 이 마저도 일부는 훼손돼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옆쪽으로 옹벽이 설치된 150여m 구간은 갓길 폭이 30㎝도 채 되지 않아 차량들이 학생들을 스쳐가다시피 할 정도였다. 때마침 전폭(자동차 좌우 끝단사이의 너비)이 넓은 대형 화물차가 갓길까지 침범, 통학 중인 학생과 부딪힐 뻔하는 등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오서진 수원여대 총학생회장(21)은 “약 1㎞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다 보면 ‘정말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데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라고 호소했다. 수원여대 해란캠퍼스가 문을 연 지 22년이 지나도록 통학로를 조성하지 못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학생들이 안전사고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와 수원여대 등에 따르면 수원여대는 지난 2001년 3월 화성시 봉담읍 상기리 336-26번지(부지면적 2만5천492㎡)에 연면적 2만6천914㎡ 규모의 해란캠퍼스를 조성했다. 해란캠퍼스에는 수원여대 28개 학과 중 ▲물리치료과 ▲식품영양과 ▲호텔외식조리과 ▲제과제빵과 ▲스포츠지도자과 ▲실용음악과 ▲반려동물과 ▲펫케어과 등 8개 학과가 설치됐다. 이날 기준 수원여대 전체 재학생(3천736명) 중 844명이 재학 중이며 여기에 해란캠퍼스 교직원 90여명과 복수전공자 등을 합하면 학교 전체 인원은 1천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해란캠퍼스가 문을 연 지 22년이 다 되도록 통학로를 설치하지 못 하고 있어 학생들이 안전사고를 우려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이에 수원여대는 학생 안전을 위해 지난 2019년부터 경기도에 인도 설치를 촉구해 왔으나 예산과 도로 규모 등 문제로 번번이 좌절됐다. 다만 도는 지난 2003년부터 ‘화성 자안~분천간 도로(지방도 322호선) 확포장 공사’를 추진 중이다. 당시 책정된 총 사업비는 936억원이다. 해당 사업은 해란캠퍼스 통학로가 포함된 지방도 322호선 6.4㎞ 구간을 2차선에서 4차로로 확장하는 내용으로, ‘인도 설치’ 항목이 포함돼 있다. 예산 확보 문제로 18년간 표류해 왔으나 2021년 해란캠퍼스 통학로가 포함된 2공구(자안입구 삼거리~상기교차로, 2.5㎞)가 행정안전부 지방재정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하면서 본격화했다. 1공구(청요사거리~상기교차로, 3.9㎞)는 비용 대비 편익(B/C)이 낮아 ‘사업 재검토’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도는 지난해 2월부터 2공구 재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올해 하반기께 완료 예정이다. 하지만 토지보상을 위한 측량과 감정평가 등 과정을 고려하면 완공까지는 최대 6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해란캠퍼스 학생들의 불만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수원여대 해란캠퍼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며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경기도 ‘지방도로사업’ 예산 모자라 표류 위기

경기도의 도로건설 예산투입이 지연되면서 각종 ‘지방도로사업’이 표류할 위기에 놓였다. 올해 추경을 통해 10년 이상 준공되지 못한 지방도로 사업비를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도 재정 악화로 불투명해진 데다 물가·지가 상승 압박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도에 따르면 도가 추진 중인 지방도로사업은 ‘제3차 경기도 도로건설 계획’ 및 ‘제5차 국지도 5개년 계획’ 등이 포함된 75개소다. 향후 필요한 총사업비는 3조1천600억원가량으로, 이는 올해 본예산 1천700억여원 등 이미 확보된 사업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문제는 도의 지방도로 예산이 적기에 투입되지 못해 공사기간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본예산·추경 등 일반회계와 지역개발기금을 비롯한 도 자체 재원은 최근 5년간 평균 1천695억원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8년 3천382억원이던 도 자체 재원이 지난해 1천30억원으로 크게 줄은 것이다. 반면 도의 토지 가격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3.11% 상승, 사업비 증가에 대한 부담을 더했다. 이에 장기간 준공되지 못한 도내 지방도로가 지난해 기준 18개소에 달했다. 장기 미추진 사업은 계획 수립 이후 10년 이상 경과된 사업을 뜻한다. 광암~신북 지방도사업(총연장 9.13㎞, 총사업비 991억5천500만원)과 가평~현리 지방도사업(총연장 13.4km, 총사업비 2천442억5천900만원) 등이 해당된다. 사안의 심각성은 5년마다 발표되는 ‘도 지방도로 평균 준공 기간(2016년~2020년)’ 조사 결과에서도 발견됐다. 조사 결과, 당초 도가 계획했던 지방도로 사업 기간 대비 실제 사업 기간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도의 추가 재원 확보는 난항이 예상된다. 당초 올해 추경에서 지역개발기금을 통해 장기미추진사업 11개소에 대한 사업비를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기금의 주요 수입원인 자동차취등록세 등이 크게 감소한 탓이다. 도 건설국 관계자는 “예산실로부터 올해 도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아 1개소에 대한 지역개발기금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도 관계자는 “올해 지역개발기금 신청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내년에는 일반회계와 지역개발기금 활용을 병행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지난 1월 ‘경기도 공공건설사업 총사업비 관리지침’ 개정을 통해 준공 기간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만평] 남국의 강...

[사설] 경기·강원 민간인 고엽제 피해, 실태조사·지원 이뤄져야

비무장지대(DMZ)에 대량 살포된 고엽제로 인해 수십년간 고통받고 있는 경기·강원 접경지역 주민들이 만났다. 17일 강원 철원군 생창리에서 이곳 주민 2명과 파주 대성동 마을 피해 주민 2명이 고엽제 살포와 후유증 등에 대해 털어놨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고엽제 피해자들의 이번 만남은 경기일보와 강원도민일보가 주선했다. 강원도민일보에 따르면 철원군 생창리 마을을 포함한 동부전선 일대에 1968년 4월15~28일 7천800드럼, 같은 해 5월15일~7월15일 1천5드럼의 고엽제가 살포됐다. 살포된 면적만 약 8천만㎡에 달한다. 철원지역 고엽제 피해자들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민간인이었지만 군부대에 동원돼 살포를 지원했다. 김영기씨(89)는 1960년대 말 민간인 신분으로 동부전선 일대에 고엽제를 살포했다. 권종인씨(86)는 3사단 백골부대에 동원돼 1971년 살수차로 고엽제를 살포했다. 보호장비 없이 맨손으로 희석과 살포 작업을 한 탓에 수십년째 피부병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선 고엽제 후유증이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으나, 국방부에선 인정하지 않았다. 미2사단에 근무했던 파주 대성동 마을 출신 김상래씨(77)와 박기수씨(79)는 군에 있을 당시 고엽제를 살포했다. 이들은 군 근무 때 고엽제 살포에 동원돼 뒤늦게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현행법상 고엽제 피해 지원은 고엽제 살포 당시 군인과 군무원에 한정돼 있다. 때문에 파주의 두 사람은 가까스로 지원을 받고, 철원의 두 사람은 민간인 신분이어서 보상을 못 받는 상황이다. 고엽제가 군인, 군무원, 민간인을 구분해 피해를 주는 게 아닌데도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당시 대성동 마을을 포함해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에 고엽제를 살포했던 이들은 피부병과 결핵, 천식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남아있는 이들도 나이가 많아 살 날이 길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정부가 고엽제 피해자임을 인정하고, 합당한 보상과 지원을 해주길 바란다. 군인과 군무원만 피해보상을 하고, 민간인은 제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지역 군부대 요청으로 수시로 고엽제 살포에 동원됐던 주민들이다. 정부가 벌써 전수조사를 하고, 민간인 피해보상에 나섰어야 하는데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늦었지만 파주시가 대성동 마을 주민들의 고엽제 피해 실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피해 지원 조례도 제정할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이다. 경기일보 보도 이후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파주시을)이 고엽제 피해를 입은 민간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반드시 법안이 통과돼 피해자들의 수십년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해 온 주민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적절한 보상과 지원을 하는 게 정부의 당연한 책무다.

[사설] 반려식물 토론회, 좋았고 실천하자

코로나19를 버텨낸 사업이 얼마나 될까. 택배 등 일부 업종에 불과할 것이다. 산업 전반이 코로나 충격 앞에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해 보이는 통계가 있다. 2021년 전국 화훼산업 판매액이다. 5천382억원어치를 팔았다. 전년도보다 113억원 늘었다. 최근 추세를 보면 이 수치의 의미가 보인다. 2005년 이후 꾸준히 감소세였다. 그러다가 모처럼 반등세로 접어들었다. 바로 그 변곡점이 코로나 팬데믹 중인 2021년인 것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신애 교수(건국대 일반대학원 바이오힐링융합과)가 관련 설명을 했다. 시민들이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줄였다. 그러면서 반려식물과 꽃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서도 ‘식물’ ‘식테크’가 급증했다. 또 하나 요인은 시민 의식 속의 개념 변화다. 관상용에서 치유용으로 넓어져 가고 있다. 정신건강치료서비스 개념으로 반려식물을 접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록의 힘’이라고 일컬어지는 건강 역할이다. 박 교수는 “(입증된) 치유 효과를 (실생활 속)문화로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장이 제기된 것은 토론회다. ‘반려식물과 화훼산업 활성화 방안 모색’이 주제였다. 경기도의회와 경기도가 주최했다. 지난 3월 경기도의회는 의미있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경기도 반려식물 활성화 및 산업 지원 조례’다. 반려식물의 개념과 정책적 지원을 위해 제정된 전국 최초 조례다. 이때 대표발의했던 방성환 도의원(성남5)도 토론에 함께 했다. 물론 전통 화훼농가의 어려움이 여전함은 알고 가야 한다. 토론회에서도 이를 위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다. 온라인 구매처 활성화, 화훼 농가 시설재배시설 최신화, 지속적인 국산품종 개발과 수입품종 의존도 축소 등이다. 황병국 성남시 화훼총연합회 회장은 “꽃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홍보를 통해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며 화훼산업진흥법 보완과 수입 꽃 원산지 표기 의무화에 대해 제안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목소리가 없다. 염종현 경기도의회 의장이 참석했다. 안철수 국회의원도 축하 인사를 했다. 방 의원이 토론회 의미를 설명했다. “조례 제정에 이어 정책 활성화를 위해 각 분야 전문가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예상대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반려식물 및 화훼산업 활성화를 위해 집행부와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겠다고도 했다. 좋은 자리였다. 이날 뜻이 조속히 행정에 접목되길 바란다.

[삶과 종교] 빈틈 없이 사랑하기

5월에 있는 기념일은 근로자의 날(1일),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스승의 날(15일), 성년의 날(셋째 월요일), 부부의 날(21일), 지인들의 결혼식과 각종 행사를 포함해 가정에 관련된 날이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 부른다. 팍팍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계획하고 챙겨야 할 이벤트와 선물들도 많기에 가정을 위한 기념일이 걱정과 부담으로 다가와 ‘가정의 달 증후군’이 생겨나기도 한다. 최근에는 부모와 자녀의 갈등과 충돌로 인해 ‘금쪽 같은 내 새끼’ 같은 다양한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 신체적이고 학습적인 측면에서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시간을 측정했더니 엄마는 23분, 아빠는 6분 정도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맞벌이에 투잡까지 분주하고 피곤한 탓에 이 시대 교육의 주체와 권위는 가정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듯하다. 창세기 49장22절에 기록된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는 말씀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축복한 표현이다. 가정에서 잘 키우고 양육해 담장 너머로 쭉쭉 뻗어 열매 맺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곳은 가정이 아니라 바깥이다. 학교, 입시학원, 과외선생, 교육상담가, 전문가, 교수들에게 자녀 교육을 위탁하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으며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권위를 가정 안이 아니라 가정 밖에 두고 대부분의 인생 결정을 외부에서 찾는 격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바깥으로 돌고 돌던 가족들이 만나니 함께 있으면 서먹하고 어색하다. 가족이지만 그 사이에 자연스럽지 못한 이상한 빈틈이 존재한다. 이를 ‘앵프라맹스(inframince)’라고 표현하는데 아래를 뜻하는 ‘infra’와 얇다는 뜻의 ‘mince’를 결합한 합성어다. 이것은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이며 냉기와 온기 사이의 아주 얇은 틈이기에 인간으로서는 깰 수도, 찢을 수도, 넘어설 수도 없는 아주 얇디 얇은 막이며 경계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나타나는 앵프라맹스, 빈틈과 경계를 어떻게 메우고 극복할 수 있을까? 해답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즉 초월적인 힘이고 영성의 힘만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 기도할 것을 제안한다. 기도는 쇼핑 목록처럼 원하는 것을 나열해 신에게 요구하는 청구서가 아니다. 기도는 관계를 향해 손을 내미는 행위다. 기도를 통해 초월적인 사랑의 영이 우리의 심장부로 들어와 ‘나 중심’으로 가득한 마음의 공간에 다른 이를 위한 공간 확장이 생겨 자기 중심성에서 ‘다른 이’와 ‘공동체’로 나아가게 한다. 가정의 달 5월, ‘나의 가족’, ‘내가 속한 공동체’, ‘이웃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의 얇은 틈과 경계인 앵프라맹스를 깨뜨리고 넘어서려는 기도와 시도를 해보자. 그것이 쌓이면 빈틈 없이 구석구석 사랑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천자춘추] 버스에 봄의 정다움이

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식장에 가는 경우처럼 같은 목적을 갖고 가는 길이라면 혹 버스 안에서 지인을 만나는 경우가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시내버스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난 일은 없다. 그리고 도시의 익명성으로 인해 버스 안의 승객은 모두 낯선 타인이다. 나는 시내에 나갈 때 승용차를 갖고 가지 않고 으레 시내버스를 탄다. 시내버스에 오르면 특별히 창밖 풍경을 살필 일도 없다. 자주 지나는 길이라 어떤 관공서가 있고 어떤 상점이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내릴 곳을 찾으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운전할 필요도 없고 알아서 실어다 주겠지 하고 기사를 믿고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는다. 세상에 제일 편한 곳이 시내버스 안이다. 봄이다. 비 온 뒤 하늘은 맑고, 가로수 은행나무에도 봄의 정다움이 가득하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봄의 기운을 빌려 인사하고 싶다. 그것이 봄의 힘이다. 실제로 나는 우리 집 동네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한다. 행궁동 안에 있는 문인협회에 가기 위해 수원역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올라서면서 빈자리가 있는지 둘러봤는데 승객이 반도 차지 않아 버스 안이 휑하다. 그런데 세상에! 둘이 앉는 좌석에 모두 통로 쪽에만 앉아 창 쪽 자리만 비어 있다. 통로 쪽에 줄 맞춰 앉아 있고 창 쪽은 줄 맞춰 비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통로 쪽에 앉은 사람이 몸을 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할 것이다. 차라리 서서 갈까? 통로 쪽에 앉은 사람 가까이 다가가 서 있어도 앉은 사람은 꿈쩍도 않는다. 아마 가까운 곳에서 내릴 것이니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수출 규모 세계 6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다. 선진국이라 불러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제 버스 착석은 안쪽 자리부터 앉는 전 국민 문화운동을 전개하자. 다음 정거장에 내리는 사람도 자리가 비었다면 당연히 안쪽 자리부터 앉아야 한다. 낯선 사람이 모인 곳에서의 에티켓은 더욱 아름답다. 모든 국민이 안쪽 자리부터 앉는 날 세계 1등 문화국민이 될 것이다, 그날 봄의 정다움이 버스 안까지 마음껏 들어오리라.

[지지대] 안재홍 선생의 호를 딴 민세초교

호(號)라는 게 있었다. 시제를 굳이 과거완료형으로 쓴 까닭은 요즘은 거의 사라져서다. 물론 아직까지 일부 서예가나 문학인 등이 사용하고 있다. 본명 부르기를 피하는 풍속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선비가 학문을 익히고 가르친 곳을 자신의 호로 붙였다. 이황 선생의 ‘퇴계(退溪)’나 이이 선생의 ‘율곡(栗谷)’, 박지원 선생의 ‘연암(燕巖)’ 등이 그렇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어휘를 호로 붙였다. 주시경 선생의 ‘한힌샘’, 최현배 선생의 ‘외솔’ 등이 그렇게 등장했다. 안재홍 선생은 평택을 대표하는 우국지사다. 일제강점기 신간회운동, 조선어학회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미군정청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됐다. 1989년 3월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선생의 호는 ‘민세(民世)’다. 1911년 와세다대 정경학부 재학 당시 ‘민중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이런 가운데 내년 9월 평택 고덕국제화도시에 문을 여는 초등학교 이름이 안재홍 선생의 호를 딴 민세(民世)초등학교로 결정됐다. 학교명선정위원회가 안재홍 선생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가칭 고덕4초등학교 교명을 이처럼 선정했다. 앞서 교육당국은 지난해 5월 고덕3중학교 명칭도 민세중으로 결정한 바 있다. 평택교육지원청 측은 “주민과 지역 인사가 함께 교명 선정에 참여해 지역 정서와 특성, 역사와 전통을 반영한 교명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중국 등 외국에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딴 교명이 더러 있다. 중국 혁명가 중산(中山) 쑨원의 고향인 광저우에 설립된 중산대학교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평택이 유일하다. 민세 선생을 배출한 민족의 도시답다. 늠름하고 자랑스럽다. 다른 도시들도 본받을 만한 사례여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