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평택이전, 상생 해법은. 上] 낡고 텅빈 상가... 준비없이 맞는 ‘8만명 이웃’

주한미군 용산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고 평택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다. 이달 중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가 평택시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의 이전을 공식적으로 완료하기 때문이다.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약 5배인 약 14.7㎢ 규모로 주한미군과 군무원, 가족 등 관계자 8만여명이 거주할 예정이다. 연합사 이전 완료를 맞아 평택시가 주한미군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는지 짚어보고, 상생 발전을 위해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기지 앞엔 식당과 술집이 대부분인데, 관광하거나 쇼핑을 하려면 누구라도 서울로 가지 않겠습니까.” 6일 오전 11시30분께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안정리게이트 인근. 미군 10여명이 점심식사를 하러 온 듯 케밥과 햄버거 등 미군의 취향을 고려한 식당을 둘러보거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클럽과 바 등의 유흥업소도 눈에 띈다. 이곳은 기지 앞 유일한 상권인 ‘안정리 로데오거리’다. 하지만 이들 식당을 제외하면 미군의 취향·체형 등을 고려한 양복점 및 수제화 상점, 아동용품점, 값싸고 특색있는 보세물품 상점 등은 없다. 한국식 도기와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곳이 소규모로 있긴 하지만 들어가는 이가 없어 파리만 날리는 상황인 데다, 거리 양쪽으로 들어선 상가 건물 10여곳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어 황량함마저 감돌았다. 메인 거리 옆 오른편 골목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좁은 길이 이어지며 빌라와 낡은 주택이 즐비했다. 곳곳엔 쓰레기가 방치돼 있고 미군뿐 아니라 통행하는 주민도 적어 로데오거리로 인식하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주한미군 타일러씨(28)는 “험프리스 인근에는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에 주말이면 동료들과 문화생활, 유흥 등을 위해 2시간이 걸리는 홍대로 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 온 지 10개월이 됐지만 그동안 로데오거리의 달라진 것은 없다”며 “가족이 왔을 때 체류할 수 있는 호텔, 쇼핑몰 등 최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상점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오는 15일 한미연합사 700여명이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주둔을 완료하면 평택은 ‘세계 최대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지’가 된다. 미2사단과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와 관계자들까지 더하면 최대 8만여명이 캠프 험프리스에 거주한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상권 등 기반시설은 여전히 부족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평택시에 따르면 안정리 로데오거리 일대 938개 건물 중 749곳(79.9%)이 20년 이상인 노후 건물이거나 연도를 알 수 없는 건물로 나타났다. 또한 로데오거리의 점포 중 64곳(5.3%)은 공실이며, 공가와 폐가도 각각 27곳(2.1%), 8곳(0.6%)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 2017년 미군기지 인근의 범죄발생 빈도가 평택시의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나 상권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박경찬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평택지부장은 “미군이 선호하는 분위기나 콘텐츠를 지닌 가게는 홍대 등 서울지역에 많이 있지만, 안정리는 낙후돼 있다”며 “미군의 소비, 문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상인과 주민, 지자체의 행정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도제한·교통문제가 발전 저해... 규제 해소 ‘절실’ 주한미군 평택 이전이 이달 중 완료되는 가운데, 캠프 험프리스가 자리잡은 팽성읍 일대를 활성화할 상권 형성을 위해서는 고도제한·교통 문제 등과 관련된 규제 해소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한미군은 지난 2003년부터 평택 이전을 추진해 2017년 7월 미8군사령부, 2018년 6월 주한미군사령부 및 미군·군무원·가족 등 1만여명이 각각 용산기지에서 평택으로 이전했다. 의정부·동두천 등 경기 북부에 주둔했던 미2사단도 2016년 7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이전을 완료했음에도 5년간 상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일 평택시에 따르면 상권 개발이 어려운 데는 ‘고도제한’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평택시는 캠프 험프리스와 오산공군기지로 인해 전체 면적 458.2㎢ 가운데 38%인 185.4㎢가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돼 건축물 높이의 제한을 받고 있다. 안정리를 포함한 기지 일대는 비행안전 5구역으로 캠프 험프리스 내 활주로 표고를 기준으로 45m 이하로만 건축이 가능하다. 15층 이상의 고층건물은 들어서기 어려운 상태다. 또 안정리 상권 내 사유지에 위치한 도로도 상권 활성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시는 지난 2018년부터 공용도로 등 안정리 내 도로를 정비해 오고 있으나 골목에 위치한 사도의 경우 토지주의 동의를 얻지 못해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골목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도는 관리가 어렵고 도시가 슬럼화하는 주원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통행이 자유로운 블록화한 상권의 재형성도 저해하고 있다. 이와 함께 평택 중심지와 팽성지역을 잇는 유일한 길목인 국도 45호선의 상습 정체 등 교통 문제도 팽성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를 두고 지역사회에선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도로 확장 등 교통 문제를 포함해 고도제한 완화, 대규모 공원 건설 등은 중앙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팽성지역에 추진 중인 송화2지구(6천400가구)와 함정지구(4천400가구)의 조성 후에도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선 인프라를 개선하거나 상업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동훈 평택시발전협의회장은 “평택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지역인데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됐다고 중앙정부에서 모르는 체하면 안 된다”며 “평택시와 정부가 협의해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형 평택시 도시계획과장은 “고도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6월 용역에 착수, 내년 8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 심의’에 완화를 요청할 예정”이라며 “고도제한 완화부터 추가적인 개발 사업 승인까지 중앙부처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협의해 안정리 상권을 안정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문가 제언 “상권 활성화·가족친화도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평택 이전에 발맞춰 평택시 지역경제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민·관 태스크포스(TF) 등을 구성하고, 가족친화적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장정민 평택대 국제도시부동산학과 교수는 “팽성읍 일대가 고도제한에 묶여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후한 상가들이 재건축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평택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곳인 만큼 지역과 미군기지가 상생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시와 시민, 상인, 전문가 등 민·관으로 구성된 TF를 만들어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장 교수는 “8만여명의 미군과 가족이 왔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안정리와 함께 동창리나 도두리 등 인근 구역을 미군이 원하는 콘텐츠를 담은 공간으로 개발하는 방법도 구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동시에 상권 특화 등 지역의 자체적인 노력을 통한 상권 기능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범현 성결대 도시디자인정보학과 교수는 “안정리는 건물 노후화가 심각한 데다 1970~80년대에 유행했던 시설이 그대로 있어 사실상 미군을 끌어들일 수 없는 상태”라며 “이를 위해선 평택시가 상점 매입 등을 해 한국적·지역적 특성에 맞는 가게들을 입점시키고, 상인들도 트렌드에 맞춰 가는 노력을 해 상권을 특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평택시는 선제적으로 골목길 등을 개선하고, 주차장 확장 등 공공 인프라 조성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한미군 가족의 영외 거주율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레저·편의시설을 확충하고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창언 경주대 ESG경영학과장은 “가족을 동반한 주한미군이 증가하면서 기지촌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족친화적이면서도 안전하고 밝은 도시문화를 선호하고 있다”며 “평택이 보유한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미군기지 영내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해영·김보람·안노연·김기현기자

‘로컬크리에이터’가 뜬다... 풀뿌리 경제 ‘블루오션’

지역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창업가인 ‘로컬크리에이터’가 주목받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는 지역의 문화·관광·자원 등을 비즈니스 모델에 접목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업 기업을 뜻한다. 부천에 위치한 ‘벨리언텍스’는 로봇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부천시 특화 산업인 로봇과 영화를 연계해 ‘촬영용 로봇팔’을 개발했다. 김태현 벨리언텍스 대표(39)는 제조업에 특화된 부천의 경우 다양한 제조기업이 몰려 있어 생산기간 단축에도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김 대표는 “해외에선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2~3주가 걸린다면 부천에선 2~3일이면 가능해, 꿈을 펼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말했다. 동두천의 ‘한통술’은 지난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됐는데, 전통 누룩제조법을 활용해 전통주를 제조해 3년 만에 동두천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한통술은 신한대학교 등과 MOU를 맺고 ‘전통주 융복합 테마파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또 양평군의 ‘핀치그린’은 수경재배 중 하나인 에어로포닉스(분무경) 기술을 활용해 각종 허브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양동기 핀치그린 대표(39)는 “작물 재배의 경우 자연환경이 중요해 ‘땅 좋고 물 좋은’ 양평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며 “지역에서 생산된 고품질의 기능성 식물 원료들을 산업계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같이 지역 기반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기 위해 정부 역시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0년부터 ‘지역기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사업’을 시작, 올해 3년째를 맞이했다. 이 기간 해당 사업에 선정된 도내 기업은 총 39개(2020년 18개, 2021년 11개, 2022년 10개)로, 이들 기업은 매년 100%에 가까운 사업 계획 수행률을 보이고 있다. 성영조 경기연구원 경제사회연구실장은 “지역 기반 사업은 창업으로 인한 부가가치가 지역으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며 “로컬크리에이터 육성은 결국 지역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진기자

[경기만평] 내가 나를...?

[사설] 도의회, 추경안 조속 처리해 도민 피해 최소화해야

경기도의회는 지난 9월8일 경기도가 제출한 6천282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2개월 동안 처리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도민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9월 본예산 대비 5조62억원 증액한 24조2천21억원 규모의 ‘2022년도 제1회 경기도교육비특별회계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지만, 이것 역시 도의회가 처리하지 않아 학교 급식 차질 등 여러가지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1일 제365회 도의회 정례회를 개회했으며, 지난 3일 제3차 본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도와 교육청이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의 통과가 불발돼 문제가 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각각 78석 동수로 돼 있어 개원 이래 사사건건 여야 정당 간 대립해 의회 운영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번 추경안 처리 문제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다. 지난 3일 김동연 지사는 도의회에서 ‘2023년 예산안 및 2022년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했다. 당일 오후 김 지사는 국민의힘 곽미숙 대표를 만나 2차 추가경정안 처리를 요청했지만 불발됐다. 특히 국민의힘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 9천억원의 일반회계 전출의 적법성을 문제 삼은 데 이어 버스업계 지원을 위한 유류비 지원예산이 쪽지예산이라며 예산 심의를 거부하면서 추경안 의결이 무산된 상황이다. 3일 예상했던 추경안 처리 불발로 인해 4일부터 도의회 행정감사가 시작됨으로 인해 당분간 추경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없다. 이로 인해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지역화폐 발행, 저신용과 저소득자 지원을 위한 대환대출,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등 도 자체 민생사업뿐 아니라 영유아 보육료, 긴급복지비 지원, 행복주택 건설사업 등 국고보조금 사업도 중단될 수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 추경안 처리 불발은 당장 12월부터 일부 학교가 급식 중단 사태를 맞게 되고, 학교 신설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해 도내 6개 학교의 개교가 불투명해졌다고 도교육청이 밝히기도 했다. 도교육청이 지난 9월 제출한 추경안에 급식경비 523억원, 학교방역사업 583억원도 포함돼 있어 추경 지연에 따라 학교기본운영비로 우선 지출해야 하는 어려운 실정이 예상되고 있다. 일부 학교는 학생들 건강에 위험 요소인 석면 교체작업이 중앙정부로부터 공사비가 교육청에 하달됐지만 추경안 불발로 겨울방학 시 시행할 공사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의회는 여야 간 정쟁보다는 민생을 우선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행정감사 기간이라도 도의회는 초당적으로 협력해 예결위와 본회의를 조속히 개최, 추경안을 처리해 도민은 물론 학교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설] ‘건전 재정보다 급한 게 민생 재정이다’/중앙정부완 다른 2023 경기도정 예산

김동연 지사가 2023년 예산안의 집행 방향을 밝혔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기 시대 극복을 위한 과감한 민생 재정’이다. 중앙정부의 신년 계획은 ‘건전 재정’에 방점이 찍혔다. 이로 인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업 예산 축소가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이와 다르게 잡았다는 게 김 지사의 신년 시정연설이다. 그가 직접 정리한 신년 예산 방향은 이렇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재정이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도 예산안은 건전재정이 아닌 민생재정에 중점을 뒀다.” ‘어려울수록 과감히 풀겠다’는 설명이다. 수립된 2023년 총 예산은 33조7천790억원이다. 주거, 교통, 일자리 등 민생에 투입되는 예산 분야가 많다. 1기·3기 신도시 정비에 7천957억원, GTX 등 광역교통 기반 확충에 1조6천271억원을 배정했다. 노인 일자리와 국공립 어린이집 사업에는 2천246억원과 132억원을 확대 반영했다. 중앙정부에서 축소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두 영역이다. 우리가 주목해 볼 또 다른 예산도 있다. 김 지사를 상징하는 예산인 이른바 기회예산이다. 경기 청년 사다리, 경기 청년 갭이어 등을 챙겼다. 베이비부머에 일할 기회를 지원하는 예산도 있다. 예술인 기회소득, 장애인 기회소득도 있다. 사업명에서 보듯 청년, 노인, 예술인, 장애인 등 어렵거나 취약한 도민이다. 앞서 주거·교통 등이 사회 전반의 경쟁력 조성을 목표로 한다면 이 분야는 ‘어려움 탈출’을 분명한 타깃으로 삼는다. 건전재정이라는 합목적성만으로 결코 소홀히 될 수 없는 최소한의 복지 분야다. ‘역경 극복’의 증인인 김 지사에게 도민이 갖는 희망이기도 하다. 시정연설에서도 이 부분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복합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도민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도의 의지를 담았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국가적으로 처한 위기를 누구보다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을 그다. 그런 그가 내린 처방이다. 지방정부 예산 투입을 경제 활성화로 이끌어갈 마중물이자 생산 수단의 출발 지점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 어려운 도민을 보듬고 있다. 이제 토론하고 완성시켜 가야 한다. 큰 방향이 옳다고 세부 사항까지 옳다고 덮어갈 순 없다. 민생 예산의 구체적 내용에 가감이 필요하고 방향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취약계층에 대한 정의나 대상 선정에서도 또 다른 판단과 이견이 제시될 수 있다. 바로 경기도의회가 할 역할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열흘 가까이 먹통 의회다. 추경안 처리도 못하고 있다. 도민이 뭐라 하겠나. ‘김동연 예산’을 설명받은 도민들은 이미 내년 예산에서 각자의 지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지대] 커피믹스

우리 국민의 인기있는 기호식품 중 하나가 ‘커피믹스’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물론 나들이 갈 때도 필수다. 경치 좋은 산이나 들, 바닷가에서 마시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커피믹스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한 포장 안에 커피, 프림, 설탕이 모두 들어있는 커피믹스는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직사각형이었다가, 1987년께 스틱형으로 바뀌었고 1996년에는 설탕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커피믹스가 국민적 유행이 된 것은 외환위기 때와 구조조정 바람이 불던 1990년대 말이다. ‘커피 타 줄 여직원’이 사라지는 바람에 일정한 커피맛을 보장하는 믹스가 직장을 중심으로 퍼졌다. 골목까지 커피전문점이 생기면서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지만 커피믹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커피믹스는 외국인들한테도 인기다. 커피믹스 맛에 반한 외국인들은 스타벅스 커피보다 낫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 방문기념 선물로 많이 쓰인다. 미국 LPGA 프로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커피믹스를 사다달라고 부탁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회 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선수들에게 쉽게 타먹을 수 있는 믹스가 ‘딱’이기 때문이다. 달달한 커피믹스가 갱도에 갇힌 사람도 살렸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 매몰된 광부 2명이 4일 오후 221시간 만에 극적 구조됐는데 커피믹스가 이들의 생존에 기여했다. 지하 190m 지점에 고립됐던 두 사람은 작업 전 챙겨갔던 믹스커피 30봉지를 밥 대신 먹으며 버텼다. 비상식량 역할을 한 믹스커피는 칼로리가 높고 여러 영양소가 포함돼 있다.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개는 50kcal다. 나트륨 5mg, 지방 1.6g, 탄수화물 9g, 당류 6g, 포화지방 1.6g도 들어있다. 극한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칼로리와 영양소가 들어있던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생환한 광부들에 대해 ‘커피 광고 모델하면 대박일 듯’ ‘꼭 TV에서 광고하는 모습 볼 수 있길’ 하며 믹스커피 광고 모델로 써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매몰된 광부의 생환에 믹스커피가 도움이 됐겠지만, 더 큰 이유는 삶에 대한 의지였다. 이연섭 논설위원

[아침을 열면서] 유리창 너머 세상

가끔 대관령에서 생활하면서 비로소 유리창 너머의 세상이 보인다. 유리창 하나를 두고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온다는 말이겠다.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 덕이 아닐까. 그간 생활해 왔던 어디인들 유리창이 없었겠는가 싶지만, 늘 유리창 안에서 살았던 듯하다. 아니, 사실 제대로 의식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유리창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곳 대관령 700고지에서 배워간다. 포슬포슬한 햇감자는 좋아하나 딱딱한 땅을 뒤집고 씨감자를 심는 일은 힘들어하고, 정부의 정책에 분노하지만 대안 제시에 게으르고, 학생들을 사랑하나 학업에 게으른 것 꾸짖음은 망설이며, 재난당한 사람들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선뜻 나서 작은 실천 하나 하지 못하는, 아니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남을 보며 나를 반성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는데, 나이 들어 조금씩 배워간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그 안의 나를 함께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이 육십이 될 때까지 세상과 대화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대화는 어떤 의미에서 일방적이었다. 설득하되 설득당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그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었지만, 나 자신을 대상으로 함께 두고 살펴보지 못했으니 일방에 치우친 셈이다. 이제 자신과 차분히 대화할 때가 됐다. 그러면서 밖을 보니, 유리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밖과 안을 갈라 놓으면서 이어주는 유리창이.... 나뭇잎 떨어져 뒹굴고 수북이 쌓인 가랑잎을 밟으며 걷는 대관령 700고지 11월 창밖의 여백이 그렇게 다가왔다. 무려 열 달을 공들이다가 마지막 사력을 다해 피운, 꽃보다 붉은 단풍. 그러나 이내 떨어져 바람에 몸을 맡기는 가랑잎들은, 할 일을 다한 잎사귀의 득도인가. 옅은 바람에 갈색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11월, 지금까지 알던 사람들을 모르는 척 떠나는 발걸음이 아프다.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희생자의 영면을 빌면서 주말 아침 어김없이 ‘치유의 숲’에서 웅장한 전나무 길을 걷다 보니, 처음 만나는 들꽃들이 말을 건넨다. 안녕, 유리창 밖으로 나왔구나. 어떻게 바람 잦은 대관령까지 왔다니, 가을에도 꽃이 핀다. 단풍의 화려함에 치여 잘 보이지 않지만, 눈여겨보면 여기저기 많다. 눈에 보여야 말귀도 알아듣는 자세라면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 귀엔 들리지 않는 법이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고, 총체적 부실을 저질러 놓고도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그들에게 사회 안전과 질서에 믿음을 다시 맡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치유의 숲 산책길에 고요함과 적막함에는 도시와 다른 질서와 아름다움이 있다. 허공이 있고, 바람이 있고, 울창한 나무가 있고, 바위도 있다. 그러나 전도유망(前途有望)한 많은 젊은이들을 지키지 못한 자책의 마음이 무겁고 발걸음도 힘겹다. 김근홍 강남대 교수·한독교육복지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