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8기 하남시는 ‘살고 싶은 도시, 도약하는 하남’을 시정 슬로건으로 삼고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행정서비스’ 구현을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본 이현재 시장은 ‘미래세대가 행복한 하남’을 모토로 아동보육 및 청소년교육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다채로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교육특화도시 하남’ 브랜드 구축을 목표로 특화형 어린이 놀이 및 체험시설을 갖춘 실내놀이터·어린이회관·어린이도서관 건립 등 아동보육 인프라 구축과 (가칭)한홀중 개교, 캠퍼스 투어, 명문고 육성 등 청소년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민선 8기 하남시의 아동·청소년 정책 등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 어린이회관·어린이도서관 건립... 글로벌 인재 양성 민선 8기 시는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가칭)하남시 어린이회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린이회관은 약 169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미사강변도시 내에 아동전용 놀이 인프라 시설을 건립하는 사업이다. 시는 지난달 어린이회관 건립 타당성 검토 및 건축기획 용역에 착수해 오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시장은 지난 9월 어린이회관 건립을 위해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상상나라와 성동구 아이사랑 복합문화센터를 직접 방문, 어린이 특화 전용 놀이 및 체험시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벤치마킹을 진행했다. 또 망월동 산 1-3번지 일원에는 사업비 약 125억원을 투입해 ‘(가칭)하남 어린이도서관’ 신축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건축기획용역이 진행 중으로 설문조사, 주민설명회 과정을 거쳐 2023년 설계용역을 통해 2025년 준공할 예정이다. 시는 이곳에 영어 등을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외국어 자료를 확충하고 어린이 독서 흥미 및 사고력 향상을 위한 독서문화교실, 다양한 체험교육 등 문화공간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 육아종합지원센터 3개 분소 2024년 설치 영유아 복지 지원의 거점기관인 육아종합지원센터 3개 분소(감일·원도심·미사강변도시)도 오는 2024년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육아종합지원센터는 어린이집 지원·관리 및 보육교직원 역량 강화 역할을 담당하며 가정양육을 위한 육아지원 서비스도 제공한다. 여기에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보육 확장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올해 5개소, 2023년 4개소를 확충해 오는 2026년까지 총 69개소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장애아통합어린이집 2개소를 오는 2024년까지 확충하고 노후된 국공립어린이집의 보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아이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미끄럼 방지 시설 설치, 화장실 개선 등 어린이집 환경개선사업도 진행 중이다.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초등학교 정규교육 이외의 시간 동안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다함께 돌봄센터’를 매년 3개소씩 추가로 확충할 계획이다. ■ 한홀중 2025년까지 개교 목표 30, 40대 학부모들의 신도시 유입에 따른 학생 수 증가로 과밀학급 문제가 지역 이슈로 대두됐다. 특히 미사강변도시의 경우 당초 계획인구인 9만2501명보다 4만여명 많은 13만867명의 인구(9월 기준)가 거주하게 되면서 이에 비례해 학령인구도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총 4개 중학교, 전체 155학급의 미사중학군 내 중학생 수가 2025년부터 5천명까지 증가해 학급당 30명을 넘어서고, 이 증가 추세는 2029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임 직후 제1호 결재로 ‘과밀학급 방지 전담팀’을 설치한 뒤 (가칭)한홀중학교 신설에 따른 학교 부지 마련을 위해 도시관리계획 결정(변경) 절차를 추진 중이다. 이 도시관리계획 결정(변경)은 최근 입안한 후 주민공람 중이며, 시는 오는 12월 경기도 도시계획위 심의에 상정시킬 것을 목표로 중학교가 적기에 신설될 수 있도록 광주하남교육지원청과 적극 협력할 방침이다. 광주하남교육지원청은 내년 1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목표로 경기도 자체투자심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이 시장은 한홀중 개교를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긴 오는 202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 학교보안관·하남형 스쿨존 사업 추진 민선 8기는 어린이가 안전하게 학습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2023년부터 어린이 안전을 지키는 ‘학교보안관’(안전지킴이)과 ‘하남형 스쿨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보안관은 학교 내 외부인 출입 관리와 학생 등·하교 및 교통안전 지도, 취약시간·지역 교내 및 교외 순회점검 업무를 맡는다. 시는 현재 운영 중인 학교안전지킴이 사업과 연계해 추가 예산 지원 및 인력배치 증대 등을 광주하남교육지원청과 협의했으며 11월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구체적인 운영 추진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하남형 스쿨존’ 설치를 통해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 원천 차단에 나선다. 하남형 스쿨존 사업은 총사업비 22억5천만원을 들여 노후된 어린이보호구역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이다. △시설물 시인성 강화 및 어린 친화시설 설치를 통한 안전한 통학로 조성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안전시설(사인블록, 보행자 펜스 등) 확충 △스마트 횡단보도(바닥신호등, 보행신호 음성안내 보조장치, 정지선 준수 계도 시스템 등) 설치 등이다. 시는 오는 2023년 2개소를 시작으로 연차별로 지속적인 개선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하남=강영호기자
축구나 야구경기가 끝나면 승자든 패자든 선수 또는 감독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런데 패자의 경우, 거의 공통된 것은 패배의 원인을 자기 실력보다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감독이 선수 교체의 타이밍을 놓쳤다든지 심판의 오심이 원인이라는 등등.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다른 것에서 찾아 실패에 대한 위로를 받고자 한다. 심지어 길을 걷다 부주의로 넘어지게 되면 먼저 구청장이나 시장을 비난하기도 하고 대통령을 원망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구청장이나 시장이 도로를 잘못 관리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길에서 넘어진 자신의 부주의는 생각 않고 원망의 대상부터 찾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핼러윈데이가 무엇인데 왜 거길 갔느냐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태원에 간 젊은이들에게 잘못이 없다. 한창 가슴이 뜨거운 청춘들이 오랫동안 코로나19에 갇혔던 터라 핼러윈에서 무엇인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필자도 그렇게 젊음이 있었다면 이태원에 갔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지금 가장 크게 지적되는 것은 경찰의 책임일 것이다. 사실 112 신고에 대한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녹취록의 생생한 부르짖음은 더 이상 경찰이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사고 4시간 전에, 그러니까 오후 6시34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로 시작해 ‘통제가 필요하다 ...’ 등 112에 조치를 요구하는 외침이 계속됐으나 경찰은 늑장 출동을 한 것이다. 특히 이들 112 신고 11건 중 ‘압사’라는 말이 6건이나 되는데 경찰은 ‘압사’라는 말뜻을 몰랐던 것일까. 이태원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들어 사고를 키웠다는 해밀톤호텔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해밀톤호텔은 폭 4m의 골목에 설계에도 없던 붉은 가벽을 마음대로 설치하면서 3m로 대폭 축소시켰고 이 때문에 사고 당일 인파의 병목현상을 일으켜 희생자가 많아졌을 것이다. 이태원 골목의 소음을 사고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설치한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음악 소리에 ‘내려가라’라든지 질서를 요구하는 외침,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는 음성까지도 제대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산구청과 경찰이 좁은 골목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홍콩의 경우 좁은 골목을 자동차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일방통행을 하게 해 사고를 예방하고 있음이 그 좋은 예다. 이 밖에도 그동안 핼러윈 행사를 너무 외형적으로 다뤘던 메스컴을 원망하는 의견도 있다. 다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모두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 많은 문제 중에서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만 골라 부각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건 발생 후 정쟁을 중단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다짐들은 벌써 사라지고 이 비극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국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30년 전 한국 천주교는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승용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정파나 종교, 남녀, 노사... 모두가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자는 ‘내 탓이오’ 운동이 지금 이 끔찍한 비극 앞에 우리가 가질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피천득 시인이 한 말이다. 사람은 아무리 잘나도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영화 같은 특별한 인연, 특별한 순간을 꿈꾸지만 사실 이미 그런 기회는 우리 삶에 수도 없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 한 병실로 들어갔는데 이미 그곳에는 다른 환자가 있었고, 보이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아는 분 중에도 보이차를 참 좋아하는 분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생각나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정말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내가 아는 보이차를 좋아하는 분을 그 환자분 역시 알고 계셨다. 심지어 그분은 언젠가 나와 이 환자분을 서로 소개해 줄 생각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은 그 환자분이 머물던 병실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간호사의 실수로 내가 그 병실에 들어갔고, 그 병실에 계신 분은 거짓말처럼 내가 알고 있는 분을 함께 알고 계셨다. 그날의 좋은 인연으로 그 환자분과 나는 지금 함께 여러 가지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설로 쓸 만한 일이 내 삶에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연의 힘이다.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을 한다. ‘내가 당황해서 바로 병실을 나왔더라면’, ‘보이차 얘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조금 더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더 흥미로워지고 풍성해지지 않을까. 다음은 그동안 내가 인연에 대해 깨달은 두 가지 통찰이다. 첫째, 인연은 일상에 숨어 있다. 인연은 언제, 어디서 오겠다고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 일상 속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인연의 기회가 열려 있다. 오늘 찾아올 수많은 인연을 열린 마음과 뜨인 눈으로 살피며 살아가면 피천득 시인의 말처럼 옷깃만 스치는 인연도 살려낼 수 있다. 둘째, 사랑이 인연을 만든다. 계산적인 사람은 인연을 끊어내기만 한다. ‘친구의 결점까지 사랑하라’는 이탈리아 속담처럼, 지금 보이는 약간의 단점도 사랑으로 덮어주자. 나와의 인연을 통해 그 사람이나 나의 인생이 아름답게 꽃피울지 모른다. 훗날 내가 정말 힘들 때 큰 도움을 주는 거목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일어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인연이 가진 묘한 힘이다. 조승원 한국장애인방송연기자협회 이사
푸른 하늘과 산등성이마다 붉게 물든 단풍도 잠시,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오랜 기간 소방관으로 살다 보니 요즘처럼 일교차가 클 때면 마음에 큰 걱정이 하나 생긴다. 그 이유는 심혈관 질환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심혈관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 한국인 사망 원인 2위로 지난 2020년 국내에서는 전년 대비 4.2% 증가한 약 3만2천명이 사망했고 매년 사망자가 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인 심혈관 질환인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70% 이상 막히게 되면 증상이 나타난다. 운동을 하거나 과식하거나 날씨가 추운 경우, 또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상황에서 가슴 중앙 부위에 죄는 듯한 압박감 혹은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팔이나 목 등으로 퍼지게 된다.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더부룩한 느낌이 있는 경우도 있고, 심장의 감각 신경이 둔해 심장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무런 증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많이 진행하면 숨 쉬는 게 어려워지고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거나 갑자기 정지하기도 한다. 급성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평소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을 익혀 둬야 한다. 심폐소생술은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혈액을 공급해주는 아주 중요한 응급처치술이다. 심정지 후 6분 안에 응급조치를 받으면 생존율이 3배까지 높아지는데 실제 가정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경우는 10명 중 1명도 안 된다고 하니 심폐소생술에 대해 미리 숙지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폐소생술 방법은 현장의 안전을 확인한 후 환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의식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만약 환자의 의식이 없다면 심정지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주변 사람에게 119신고(환자 수, 상태 및 응급처처 상태)와 자동심장충격기를 요청해야 한다. 다음으로 환자의 호흡을 확인해야 한다. 환자 가슴의 오르내림을 관찰하며 움직임이 없다면 심정지 상황을 바로 알 수 있겠지만 비정상 호흡 중 심장정지 호흡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심장정지 호흡은 매우 느리고 미약한 호흡 또는 간헐적으로 헐떡이는 호흡을 말하며 심장정지 직전 첫 수 분간 또는 심장정지 발생 후 초기 1분간 40% 정도에서 나타날 수 있어 심장정지 호흡을 심장정지의 징후라고 인식하는 것이 신속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소생 성공률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가슴 압박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바닥이 평평하고 단단한 곳에 눕힌 후 가슴 중앙(흉골)의 아래쪽 절반 부위에 깍지를 낀 두 손의 손꿈치를 댄다. 양팔을 쭉 편 상태로 체중을 실어 환자의 몸과 수직이 되도록 가슴을 압박한다. 이때 속도는 성인 기준 분당 100~120회이며 깊이는 5㎝(소아 4~5㎝) 정도로 강하고 빠르게 시행하며, 119구급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또는 환자의 의식이 회복될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만약 당황한 나머지 심폐소생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119에 신고 후 스피커폰 모드 또는 영상통화를 하면 119상황실 직원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해 주니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게 안내에 따르면 된다. 경기소방재난본부는 ‘심정지환자’ 생존율 향상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으며 ‘심정지환자’ 생존율을 선진국 수준인 10% 이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응급환자 발생 시 119에 신고한 후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심폐소생술 시행자가 된다면 구급대원도, 의료진도 아닌 최초 목격자인 여러분이 시행하는 심폐소생술이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시민 모두가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심폐소생술 익히기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 배영환 가평소방서장
동물의 모습이나 특징과 관련된 우리말을 알아본다. ▶알배기 : 알이 들어 통통한 생선 -아버지는 노련한 솜씨로 알배기를 잡아 오셨다. ▶불강아지 : 몸이 바싹 여윈 강아지 -가로등 밑에는 제대로 먹지 못한 불강아지가 있었다. ▶동부레기 : 뿔이 날 만한 나이의 송아지 -아버지는 가마솥에 쇠죽을 쑤고, 어미소는 동부레기에게 젖을 물리던 고향의 풍경이 그립습니다. 국립국어원 제공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죽음과 합승’은 지하철과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켜 검은 피카소라 찬사를 들은 그라피티 화가인 장 미셸 바스키아가 생의 마지막 해에 남긴 작품이다. 바스키아는 죽음, 인종차별, 흑인 영웅 등의 주제를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충격적이며 도발적인 그림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담론을 제시했다. 바스키아는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과도 매우 친해 워홀의 스튜디오인 팩토리에 들어가 예술적 관점을 더 확장하기도 했다. 그는 1987년 앤디 워홀의 사망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아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마약에 중독돼 다음 해에 27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바닥에서 시작해 짧은 시간에 성공해 천재로 살다 떠난 극적인 그의 삶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죽음과 합승’은 열광적이고 다채로운 색상과 풍부한 구도로 그려진 바스키아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단순하고 명료하게 그려졌지만, 그의 핵심 주제인 죽음은 여실히 표현하고 있다. 화면의 가운데는 네 발로 걸어가는 해골 위에 검은 피부의 남성이 타고 있으며, 그 남성의 얼굴은 얽혀 있는 원으로 그려졌고 오른 다리는 윤곽선으로 양팔은 움직임을 표현하는 듯한 선으로 묘사돼 추상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네 발로 걷는 해골은 X자로 그려진 눈으로 관객을 무심하게 응시하고 있다. 또한 배경의 금색은 엄숙한 종교화 같은 느낌을 주며 평면적인 인물들은 아프리카의 암벽화 같은 느낌을 준다. 죽음과 합승은 바스키아가 사랑한 르네상스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질투의 두 가지 알레고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질투의 두 가지 알레고리’는 네 발로 걷는 해골 위에 탄 여성을 그린 드로잉으로 ‘죽음과 합승’과 해골의 모습 및 화면이 삼각형의 구도로 구성된 점이 동일하다. 그는 짧은 예술 활동 안에서 큰 예술적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너무나 개성 있는 작품과 주제로 인해 많은 기관에서 외면했다. 하지만 사회를 관조하며 작업한 바스키아의 작품들은 1980년대 미국의 미술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문영 칼럼니스트
경찰이 앞으로 연쇄성폭행범 박병화의 주거지 주변을 상시 경비한다. 7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이날부터 박병화 거주지인 화성시 봉담읍 대학가 원룸 밀집 지역 주변 5곳에 지구대와 기동대 병력 10명을 상시 배치했다. 이와 함께 관할서인 화성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력팀 3명을 특별대응팀으로 편성했다. 특별대응팀은 보호관찰소와 24시간 소통한다. 박병화가 준수사항을 위반할 시에는 즉각 출동, 보호관찰관과 공동 대응한다. 경찰은 또 화성시와 협의해 특별치안센터 2곳을 마련했다. 아울러 거주지 반경 700m 내의 가로등 209개를 점검해 이 중 밝기가 낮은 14개를 LED 등으로 교체했다. 이와 더불어 박병화 거주지 주변 12곳에 CC(폐쇄회로)TV 27대를 추가 설치하고, 비상벨 12개도 확충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방범 진단을 통해 안전에 필요한 시설을 계속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병화는 2002년 12월~2007년 10월 수원시 권선·영통구 등 빌라에 침입해 20대 여성 10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5년형을 선고받고 지난달 31일 만기 출소했다. 이후 곧바로 현 거주지로 입주했다. 이곳은 수원대 후문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으로 도보로 3분 거리다. 이에 화성시와 지역주민들은 박병화 출소 당일부터 이날까지 ‘박병화 퇴거 촉구’ 기자회견 및 집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이들은 박병화 퇴거 때까지 읍·면·동별 순번을 정해 매일 오전과 오후 2차례씩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다. 화성=김기현기자
경기도의회 양당 대표의원이 ‘민생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 전격 회동하면서 경제 회복을 위한 사업 추진 동력을 얻게 됐다. 도의회 곽미숙 국민의힘 대표(고양6)와 남종섭 더불어민주당 대표(용인3)는 7일 도의회 지하 1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만나 민생 추경안 처리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앞서 이들은 지난 6일에도 추경안 심의 및 의결을 위해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에서 양당 대표는 제자리걸음인 도와 도교육청의 추경안 처리를 위해 이른 시일 내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소집하기로 합의했다. 양당은 이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는 9일 전후로 예결위 의결 절차를 밟은 뒤 본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곽 대표는 “추경 처리가 지연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도민이 많다. 논란이 되는 내용들을 정리한 후 본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 대표 역시 “도의회는 도민을 위해 존재한다. 도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협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추경안 처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도의회는 지난달 21일 제364회 원포인트 임시회 본회의를 열고 도와 도교육청의 추경안을 처리하고자 했으나, 도의회 양당이 심의 과정에서 충돌하면서 불발됐다. 임태환기자
지난 10월29일에는 여러 일정으로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고 밤에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TV에 나오는 이태원 참사 관련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처음에는 안전시설 및 시스템이 부족한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세히 보니 우리나라의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끔찍한 사고였다. 상상할 수도 없는 사고로 인해 현재까지 156명의 젊은이가 사망했고 중상 33명을 포함해 부상자가 197명이 발생했다고 한다. 어떻게 우리 대한민국에서 이런 끔찍한 사고가 날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기에 많은 젊은이의 희생이 더욱더 안타깝다. 우리나라와 상관없는 외국의 핼러윈 축제에 왜 많은 젊은이가 이태원으로 갔었는지 의아해하며 그들을 탓하는 여론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요즘은 글로벌 시대로 다른 나라의 문화도 이해하고 나아가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방송에서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물론 외국에서도 우리 K-문화를 많이 배우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더욱이 유치원 등에서 핼러윈 행사를 소개하고 교육 활동의 하나로 활용했기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핼러윈이 낯설지 않은 축제였을 것이다. 특히, 학교의 중간시험 등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지인들과 함께 해소할 기회로만 생각했지, 안전한 대한민국에서 그러한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 어디에서나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시설 및 시스템을 갖추고 항시 작동될 수 있도록 점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나를 포함한 어른은 나라의 기둥이 될 청소년이 잘 자라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도록 잘 보호하고 이끌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자리를 맡은 어른이라고 하면 책임감을 더욱더 크게 느끼고 매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했던 세월호 침몰 참사로 많은 학생을 잃은 아픈 경험을 벌써 잊은 것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당시 사고를 보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또다시 많은 젊은이를 희생시키는 사고가 발생하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11월17일에 있을 대입 수능이 끝나고 또 크리스마스와 연말에도 우리 청소년들이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준비하거나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한 행사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응원하며 사고와 범죄로부터 청소년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고 이러한 안전 문화가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김유성 인하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장
■ 초근목피로 생명을 겨우 이어가다 1920년대 말 쓰나미처럼 몰아친 세계적인 대공황은 민중생존권을 크게 위협했다. 치솟는 물가는 한국인들을 죽음 직전까지 내몰았다. 만성적인 식량난에 직면하는 비참한 광경이 매일 연출됐다. 전통적인 농업국가에서 저급한 만주 좁쌀을 수입하는 한심한 일이 다반사였다. 초근목피로 겨우 목숨만 이어가는 현실이었다. 이마저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중국 동북지역(만주) 등지로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났다. 심지어 먹고살기 위해 자식을 팔아먹는 일조차 흔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농촌계몽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배경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소설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이다. ■ 신앙생활로 이타적인 삶의 가치를 인식하다 최용신은 1909년 8월12일 함남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태어났다. 선조들은 경주에서 대대로 살다가 14대조가 원산 섭섬으로 귀양 간 이후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그는 언니 용순, 큰오빠 시풍, 작은오빠, 여동생 용경 등 3녀 2남 중 차녀였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아버지 등은 사립학교를 설립하거나 학무위원·교사 등으로 활동한 계몽운동가였다. 덕분에 그는 사립학교에 입학했다가 원산 루씨여학교로 전학했다. 루씨여학교를 졸업한 후 루씨여학교 고등과에 진학한 이듬해에는 루씨고등여학교로 승격됐다. 두호구락부에 가입해 2년 선배이자 고모인 최직순, 나이 어린 삼촌 최만희, 작은오빠와 사촌오빠 등과 활동했다. 재학 중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많은 서적을 탐독하는 등 지적 능력을 배양했다. 독실하고 참된 신앙생활은 그의 생애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후배인 전진은 “용신 언니는 남 앞에서 ‘내가 독실한 예수교 신자’다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성미였어요. 그러므로 그가 참으로 기독교정신 그대로 살아보겠다는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열심인 사람인 줄로만 알기 쉬워요. 그는 세상 사람들이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높고 깊은 견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에요”라고 회고했다. 수기 ‘새벽종소리에 따라 올리는 기도에서’는 신앙인으로서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는 목회자와 같은 금욕적인 생활로 충만했다. 전능하신 주에 대한 찬양과 동경은 자신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디딤돌이었다. ■ 농민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결심하다 최용신은 1925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웃에 사는 김학준과 약혼했다. 마을 교회를 다니면서 장차 농촌계몽운동에 같이 투신할 결심을 굳혔다. 약혼자는 적극적인 후원을 자처하는 등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재학 중 주일학교나 야학 교사로 참여하는 등 주민들 계몽에도 앞장섰다. 1928년 3월 루씨고등여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한 후 교목인 전희균의 권유로 서울 협성여자신학교에 진학했다. 특히 황에스터 교수가 농촌계몽운동의 실천성을 강조하며 현장 체험을 적극 권장함에 따라 여름방학에 황해도 수안군 천곡면 용현리로 첫 봉사활동에 나섰다. 동료인 김노득 등과 함께한 현장실습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신앙생활에선 조선남녀학생기독교청년회 하령회 준비와 회장협의회 개최를 위한 협성여자신학교 대표로 참가했다. 이듬해에는 강원 통천군 포항면 옥마동 옥명학원에서 실습 겸 계몽활동 병행에 앞장섰다. 현지 활동은 많은 갈등과 자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가난과 무지가 만연한 피폐한 생활상은 신학공부에만 매달릴 수 없게 만들었다. ■ 안산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1931년 10월10일 경기 수원군 반월면 천곡(현 안산시 본오동)에 한국YWCA ‘농촌지도원’으로 파견됐다. 1934년 봄까지 2년6개월, 1934년 9월부터 이듬해 1월 사망하기 직전까지 열성을 다했다. 종래부터 운영하던 교회 부속 야학인 천곡강습소 인가와 교사 신축은 첫 번째 과업이었다. 현지에선 위생생활, 생활개선 등에 대해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유지들과 상의해 강습소 인가를 이듬해 5월에 받았다. 강습생이 110여명에 달해 오전·오후·야간반으로 나눴으나 지원자를 수용할 수 없었다. 교실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은 돌아가지 않고 예배당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강습소 증축 계획은 1932년 8월 한가위를 맞아 학부형 위로회 개최로 이어졌다. 예배당 마당에 모인 주민들은 독창, 합창, 춤, 연극 등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로 응원했다. 마을 부인들은 그동안 저축한 300원 전액을 헌금할 의사를 밝혔다. 장소는 샘골 뒷동산 솔밭으로 소유주인 박용덕의 1천52평 기증으로 이루어졌다. 한 달 만에 정초식과 이듬해 1월 낙성식을 거행할 수 있었다. 샘골강습소는 현지인에게 단순한 교육기관 차원을 넘어 자신들의 염원을 담은 상징물이 됐다. 농가 부업 증대 방안은 학교 주변에 뽕나무 심기와 누에치기 권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나오는 수입 중 일부는 강습소 유지비나 농기구 구입 자금으로 충당됐다. 부녀회를 중심으로 위생생활, 환경개선, 저축장려 등을 위한 강연회도 열었다. 다양한 계몽활동은 부인들에게 사회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가치를 인식하는 요인이었다. ■ 생을 다하는 순간에도 샘골강습소 유지를 부탁하다 지식과 학문을 충족하기 위한 1934년의 일본 유학은 현장에서 느낀 생각을 실천하는 문제와 직결됐다. 최용신은 고베여자신학교 사회사업학과에 청강생으로 등록해 교내 잡지에 기고문 투고와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큰오빠 시풍과 동경 용경과의 재회, 약혼자 김학준과의 만남은 상호 믿음과 애정을 확신하는 데 좋은 기회였으나 학업에 정진하던 중 별안간 각기병에 걸려 6개월 만에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9월에 귀국하는 즉시 샘골로 되돌아왔다. 스스로를 지탱하기조차 힘든 병든 몸임에도 이전보다 더욱 정진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한국YWCA의 보조금 지원 중단 선언에 각계 지원을 호소했으나 대답 없는 메아리뿐이었다. 피로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수원도립병원에 입원해 여러 차례 수술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최용신은 1935년 1월23일 새벽에 가족과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떠났다. 그는 유언을 남겼다. ①나는 갈지라도 사랑하는 천곡강습소를 영원히 경영하여 주십시오 ②김군과 약혼한 후 십년 되는 금년 사월부터 민족을 위하여 사업을 같이하기로 하였는데 살아나지 못하고 죽으면 어찌하나, ③샘골 여러 형제를 두고 어찌 가나 ④애처로운 우리 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애처로운 우리 학생들의 전로를 어찌하나 ⑤어머님을 두고가매 몹시 죄송하다 ⑥내가 위독하다고 각처에 전보하지 마라 ⑦유골을 천곡강습소 부근에 묻어 주오. 샘골강습소는 그의 분신과 같은 너무나 소중한 보배였으리라. 사후에 심훈은 ‘상록수’라는 소설을 통해 그의 인생을 새롭게 조명했다. 유달영은 ‘농촌계몽의 선구여성 최용신소전’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1964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용신봉사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상했다. 활동 무대 인근에 상록수역, 상록수공원, 최용신기념관 등이 조성돼 다문화시대에 부응한 ‘상록수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글=김형목 (사)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