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밝음의 법칙

붓다가 거듭 되풀이해 강조한 법칙이 하나 있다. 그 법칙은 어둠은 어둠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우가 증오로는 증오를 없앨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증오는 오직 사랑만으로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법칙이다. 다시 말해 오직 빛으로만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보면, 사랑이 우리 존재의 빛이며 증오는 존재의 어둠이다. 만약 어떠한 이유가 됐던 내 안에 어둠이 가득하다면 나의 주변은 증오로 덮힐 것이고, 내 안에 빛이 가득하다면 마찬가지로 내 주변은 그 빛으로 환히 비추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붓다는 수행자들에게 전 존재를 걸고서라도 사랑을 뿜어내고 빛을 발산해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초기 경전에는 그의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실천한 사례가 무수히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강조한 영원의 법칙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의하면 사랑만이 증오를 쫓아내며 빛만이 어둠을 이긴다는 것이다. 붓다의 교설에서, 어둠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정적 상태일 뿐이라서 그 자체적으로는 긍정적 실존이 없다. 따라서 어둠 역시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어둠을 상대하려면 빛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저절로 물러가고, 반대로 빛이 물러나면 어둠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화석화된 도덕적 관념으로 “어둠과 싸워라. 미움과 분노와 성욕과도 싸워라. 이것과 싸워라. 저것과 싸워라”고 가르치지만, 증오도 어둠이고, 성욕도 어둠이고, 시기심도 어둠이고, 탐욕과 분노도 어둠이다. 그래서 빛을 끌어들이라고 강조한다. 빛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명상을 통해 고요히 하고 사념을 비우고, 의식적이 되고, 경계하고, 자각하고, 깨어 있음이 빛을 끌어들이는 방법이라고 설한다. 성성하게 자각하고 원인과 결과에 대한 상관관계를 살피면서 깨어 있는 그 순간에는 미움이나 부정적인 관념들은 스며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각성 상태에서는 이미 타자를 미워한다는 상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붓다는 이를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체험을 하도록 정진하라고 한다. 그래야 존재적 차원에서 나와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타자를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의식적 상태에서는 행위의 결과를 전가시키고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겠지만, 누구라도 의식적이 되다면 증오는 사라진다. 그 둘은 공존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이 서로 공존할 수 없듯이. 어둠이란 빛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체득하는 것을 붓다는 지혜라고 했다.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반복하지 말고, 외부에서 빌려오는 정보 즉, 지식은 피할 때 내 안에서 피어나오는 스스로의 빛인 지혜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성규 철학박사·한국미술연구협회 이사장

[천자춘추] 온고지신

‘오은영 신드롬’이 일고 있다. 육아·심리 상담 분야에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다. TV속의 이야기이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생활 속 충돌의 숨겨진 이면을 이끌어내고, 이를 치유하고자 하는 진심어린 조언에 시청자들조차 숨죽이고 공감하며 안도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한 현대의 물질문명과 삶의 방식이 인간을 피폐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자조(自嘲)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오은영 박사의 위로가 누구에게나 절실한 까닭이라 생각한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범사회적으로 화합과 공존을 위한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 박사와 같은 치유 전문가가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기를 바랄 뿐이다. 생각해 볼 것은 우리에게 피하기 어려운 수많은 병폐들에 대한 해답이 이미 우리에게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경기도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기호철학의 종장인 율곡 이이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선생은 향약을 통해 함께 사는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려 무단히 애쓰셨고 장애인,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선생이 포함된 당시의 재산 분배기를 보면 남녀의 구분 없이, 나이의 구분 없이 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선생은 서얼과 서모 등 당시의 약자에 대한 차별적 행태에 대한 개선을 모색하기도 했다. 율곡만이 아니다. 경기도의 각 지에서 선현으로 추앙받는 이들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을 전한다. 그럼에도 이를 외면하는 현시대의 풍조가 아쉽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바탕에서 이어진 결과다. 한국 철학의 한 시기를 담당했던 성리학적 사상과 가치를 이어받아 현대의 우리 생각이 만들어졌을 텐데, 경기지방에서 크게 융성했던 성리학의 성과와 유산을 외면하고, 청산해야 될 악습의 시대로만 여기는 냉소적 태도가 안타깝다.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 율곡선생의 ‘은병정사 학규’, 우계 성혼 선생의 ‘서실의’, 남계 박세채 선생의 ‘남계학당 학규’의 일독을 권한다. 학교교육과 가정교육, 사회교육을 포괄하는 실천적 지침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상이 달라 무용(無用)하다고 혹평할 수도 있지만, 보기 나름이다. 우리 것을 지키고 이어가고자 하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헛된 집착이 아니라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통해 오늘의 사회를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교육을 통해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의 전통정신을 다시 연구하는 인문학적 열정이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말은 진부하지만 그 말 속에 담긴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기의 정신 문화적 전통이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우관제 파주문화원장

수원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공부의 위로'로 강좌 개최

수원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이 ‘공부의 위로’를 주제로 2022년도 정기강좌를 진행한다. 오는 14일 과학저술가 김병민 교수의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김병민 저, 현암사 간) 북토크를 시작으로 과학과 문학 북토크를 4회씩 총 8회에 걸쳐 선보인다. 과학 북토크에는 김병민 교수를 비롯해,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 정인경 과학저술가,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등의 과학인들이 참여한다. 문학 북토크에는조정선 작가와 이경란 작가, 오희승 작가와 오랜 기간 사회적 약자를 위한 투쟁에 매진해 온 ‘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이 참여한다. 지난 2019년 수원의 장안문 인근 행리단길에 문을 연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은 설립 첫해인 2019년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신형철 문학평론가, 은유 작가 등을 초빙해 한해 무려 70여 회의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는 성과를 거뒀다. 책고집의 올해 강좌는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과 수원문화재단의 동행공간 사업 등을 기반으로 기획됐다. 이번 첫 정기강좌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반기에 더욱 내실 있고 알찬 강좌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최준영 인문독서공동체 책고집 대표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공부를 통해 마음을 달래고 정신을 추스를 필요가 있다”면서, “책고집 강좌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이어나가는 것인 만큼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각 강좌의 수강료는 2만원이며, 크라우드 펀딩 후원자 및 수강권을 소지한 분은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강의 문의는 책고집 밴드나 책고집 사무국으로 연락하면 된다. 정자연기자

[지선 이모저모] 확진·격리자 발길 '뚝'..."권리 포기 안타까워"

○…1일 오후 6시56분께 코로나19 확진·격리 유권자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화성시 팔탄면 제1투표소 팔탄면행정복지센터. 선거사무 종사자들이 감염 예방을 위해 착용한 페이스 쉴드와 방역복 등이 무색할 정도로 유권자 발길 뜸해. 현 시간 기준 이곳을 찾은 유권자는 0명. 이날 오후 7시25분께 화성시 향남읍 제19투표소인 화성역사박물관 상황도 마찬가지. 현 시간까지 유권자 단 1명만 찾았다고. 이 때문에 12시간에 걸쳐 일반 유권자 선거를 진행한 데 이어 오후 6시30분부터 1시간을 추가로 근무 중인 선거사무 종사자들은 한숨만. 선거사무 종사자 A씨는 "(감염이) 두려워도 어쩌겠냐는 마음으로 임했는데, 허탈하다"며 "대부분이 거소투표로 진행한 거 아니냐"고 반문. 선거사무에 동원된 B공무원은 "내심 허탈하긴 하다"며 "확진자 분들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고 말해. 화성=김기현기자 의정부 제일시장 기표소서 투표용지 5장 발견 ○…오전 10시 42분께 의정부제일시장 번영회사무실에 마련된 의정부 1동 2 투표소 기표소안에 기표가 안된 투표용지 5장을 기표하러 들어갔던 주민이 발견해 신고. 투표 관리관은 참관인 입회아래 공개된 투표용지로 보고 선관위에 신고하는 한편 기록부에 기록하고 별도 보관조치. 이 투표용지는 투표가 종료된 뒤 투표함과 함께 선관위에 인계할 예정. 의정부시 선거지원상황실 관계자는 “사람이 몰리고 투표용지가 많다보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기표소를 자주 열어봐 확인해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혀. 의정부=김동일기자 시흥 정왕4동 투표소서 기표지 1장 훼손 ○···지방선거 투표가 시작된 1일 오전 8시 46분께 시흥시 정왕4동 1투표소에서 30대 남성이 투표지 한 장은 정상적으로 투표함에 넣고 나머지 한 장을 찟어 훼손하는 상황 발생. 투표소 관계자 선관위 문의 후 ‘공개된 투표지’ 도장 날인, 참관인 확인 후 투표함에 정상 투입. 해당 투표소에서는 이날 오전 12시 40분까지 기표소 점검 과정에서 미기표된 투표지 3장을 발견 참관인 설명 후 ‘공개된 투표지’ 도장 날인 후 투표함 투입. 당일 오전 오전 10시께는 정왕3동에 마련된 3투표소에서 50대 남성이 투표소 관계자가 자신의 신분증을 두 번이나 확인한다면 잠시 실랑이. 이후 이 남성은 ‘기분이 나쁘다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하자 투표소 관계자들의 설득으로 오후에 다시 와서 투표를 하겠다고 돌아가는 해프닝. 시흥=김형수기자 양평 사전투표을 도내 최다서 본투표율은 저조 ○…사전투표에서 경기도내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던 양평군이 정작 본투표에서는 기대 이하의 투표율을 나타내자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원인을 놓고 의견이 분분. 지역 정가에서는 군부대가 많아 군인들이 사전투표에 참여하고 여야 후보가 접전을 치르면서 이번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모아지면서 사전 투표율을 끌어올렸지만 본투표에서는 투표할 만한 사람은 이미 투표를 해 상대적으로 본투표율이 저조한 것으로 분석. 이날 오후 6시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를 제외한 일반 유권자 투표 마감 결과 투표율은 58.7%로 집계. 경기도 투표율 49.6%보다 9.1%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지난 민선 7기 때 투표율 61.9%에 비해 3.2%P 낮은 수치. 앞서 지난 27~28일 이틀간 치러진 사전투표의 투표율은 27.11%를 기록. 양평=황선주기자 양평 투표율, 청운면 63.05% 최고·양서면57% 최저 ○…6·1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 마감결과 양평군은 청운면이 최고, 양서면이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1일 오후 7시 30분 투표 마감 후 선관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운면의 투표율이 63.0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지평면(62.09%), 용문면(57.25%)이 뒤를 이어. 양서면 투표율은 57%로 가장 낮아. 유권자들은 군이 청운면에서 추진 중인 토종 씨앗 자원화 사업과 관련된 논란이 이번 선거에서 지역 최대 쟁점이 되면서 유권자의 관심을 끌어올린 게 높은 투표율로 나타난 것으로 분석. 양평=황선주기자 인천 계양체육관 개표장 앞에서 소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1일 오후 7시20분께 인천 계양구 계양체육관 개표장 입구에서 한 시민이 자신도 개표장 관람석에 들어가게 해달라며 입구를 지키고 서있던 경찰들을 향해 약 30분간 고성을 지르는 등 소란. 그는 경찰들에게 ‘이번 선거는 부정선거가 이뤄질 것이 분명하다’며 무차별적으로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인근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던 유튜버들과도 5분 동안 큰소리로 말다툼을 벌이는 등 소동. 이날 계양체육관 개표장 입구에는 경찰 200여명이 줄을 지어 돌발상황을 막기 위한 경계근무를 함. 경찰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 계양지역이 주목을 많이 받아 특정 정당의 강성 지지자와 유튜버들이 많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며 “안전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개표장 입구에 경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고 강조. 이지용기자

[기고] 오! 장미여, 장미여, 장미의 계절이여!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 Old time is still a-flying: And this same flower that smiles today, Tomorrow will be dying,” “할 수 있을 때 장미 꽃봉오리를 따세요, 시간은 쉼 없이 달아나고 오늘 미소 짓고 있는 이 꽃도 내일이면 시들어 버린다네.” 17세기 영국의 성직자이자 시인인 로버트 헤릭(1591~1694)의 영시 「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의 첫째 연이다. 특히 첫 구절은 영화「죽은 시인의 사 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과 처음 만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가르치면서 읽은 시(詩)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카르페 디엠’은 보통 ‘오늘을 붙잡아라’라고 번역하지만 결국 고귀한 인생의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고 한창 향기가 짙은 장미에 비유하여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장미는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생 덩굴식물로 북반구의 한대·아한대·온대·아열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야생종이 개량되면서 현재 지구상에 약 200 여종이 꽃의 여왕으로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러한 치명적인 매력으로 얼마나 많은 시인과 연인이 노래하고 탄성을 질러겠는가! 장미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신 큐피드와 얽힌 이야기도 있다. 꽃이 너무 아름다워 입술을 내밀었다가 꽃 속에 있는 벌이 놀라며 침으로 큐피드의 입술을 톡 쏘고 말았다. 이것을 지켜본 여신 비너스가 안쓰러운 생각에 벌을 잡아 침을 장미 줄기에 옮겨 버렸다. 그러나 큐피드는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그렇게 당하면서도 여전히 장미꽃을 사랑했다. 셰익스피어 역시 정형시의 일종인 14행으로 구성된 소네트(Sonnet)에서 장미를 즐겨 노래했다. 「“나는 백합의 설백(雪白)을 감탄하지도 않았고, 장미의 심홍(深紅)을 찬양하지 않았노라! 그들은 아름다우나 그대를 닮았을 때만 기쁨을 주도다.”」 사랑과 미(美)를 찬양한 위대한 셰익스피어도 도도한 장미를 자신의 시(詩)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 에서도 로미오에 대한 줄리엣의 애잔한 독백을 통해 고귀하고 영원한 가치를 장미의 이름으로 설파했다. 「“이름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롭지 않나요?”」 이 밖에도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가 지은 서사시 신곡(神曲)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천국이 불꽃과 별들의 어울림으로 가득 차며 천사들의 무리가 백장미처럼 변하는 모습이 환상적으로 묘사되었다. 위에 소개된 주옥과 같은 로버트 헤릭과 셰익스피어의 고전 시집(詩集) 두 권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공예 운동의 선구자인 월리엄 모리스가 세운 공방인 켐스콧 프레스에 의해 19세기 말에 출판되었다. 그가 공들여 만든 책은 당시 산업혁명을 통해 대량 생산된 여느 보급형 책과는 크게 달랐다. 켐스콧 프레스에서 간행된 책들은 최상의 종이와 잉크를 사용하고, 그가 고안한 초서체, 골든체, 트로이체를 서체로 활용했으며, 머리글자 장식, 책 테두리 및 외형은 직접 디자인하였다. 이렇게 공을 들인 명작은 월리엄 모리스 생전에 53종 66권을 500부 이내 한정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러한 그의 장인정신과 발자취는 출판 장정(裝幀) 역사에 아름다운 유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성하(盛夏)를 눈앞에 둔 5월과 6월은 장미의 계절이며 만물이 생동하는 싱그러운 시절이다. 로버트 헤릭이 노래했듯이 인생은 짧고 아름다우며 보낼 시간이 많지 않으니 현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혹시 잊고 살지는 않았을까? 아무리 바쁜 세상을 사는 현대인이지만 가끔은 근교의 책 박물관을 찾아 세월이 켜켜이 쌓인 오래된 책의 향기를 맡아보며 잠시 나마 지금의 삶을 돌아보면 어떨까? 아니면 기쁨의 꽃말이 있는 붉은 장미 세 송이를 준비하여 덧없이 시간이 가기 전에, 가슴속에 간직한 그 사람에게 사랑의 고백을 해봐도 더없이 아름다운 계절이 될 것이다. 노상학 한길 책 박물관 학예연구사

[핫이슈] 빛바랜 수원의 역사, 정체성을 깨우다

수원학연구센터, 특례시민 자부심 ‘UP’ 글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역사가 된다. 역사는 곧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부심이 된다. 수원특례시가 지난 2014년 2월 전국 기초자치단체로 최초 설립한 수원학연구센터(수원시정연구원 부설센터)가 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수원학연구센터는 지역 정체성 강화를 위해 마을조사 및 구술채록사업 등으로 수원의 역사를 기록하는가 하면, 수원학총서를 발간하고 있다. 수원학연구센터는 이러한 발간물로 인구 121만명 수원특례시 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 말하기 어려웠던 수원역 성매매 집결지 1960년대부터 지난해 5월31일까지 수원역 인근에 자리 잡았던 성매매 집결지는 말하기 조심스러운 지역의 역사다. 그럼에도, 수원학연구센터는 ‘빵과 장미 프로젝트’라는 제하의 간행물로 이곳을 기록했다. 수원역 인근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 촌으로 형성됐다. 당시 매산로1가 동산마을과 고등동 유교마을에는 외부인들이 유입됐고 이 중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수원역이라는 지리적 장점을 살려 하숙집을 운영했다. 이처럼 수원역에서 숙박업이 성행한 가운데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는 투숙객이 많았던 만큼 이러한 불법 행위가 자행됐다. 더욱이 숙박비보다 성매매 알선으로 얻는 이익이 커지자 자연스럽게 이 같은 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수원버스터미널이 수원역 인근에 있었던 시절 이곳의 성매매 업소는 호황을 누렸다. 1970년대 20여개였던 성매매 업소는 10여년 뒤 최대 50개까지 늘어났다. 성매매 폐쇄에 대한 관심은 지난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등이 제정되면서 본격 논의됐다. 여기에 민선 5~7기 들어 정비사업 타당성 조사, 성매매 피해자 현장상담소 운영 등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된 데다 경기남부경찰청이 이곳에 대한 단속에 고삐를 죘다. 결국 지난해 5월31일 기점으로 수원역 인근에 남아 있던 성매매 업소는 자진 폐쇄를 선택했다. ■ ‘인계본동’ 들어보셨나요? 수원의 행정 중심지이자 최대 상업지구인 인계동은 팔달구와 권선구 경계에 인접한 곳으로 산골짜기에서 비롯된 작은 내가 있어 ‘인도천’, ‘인도래’, ‘인도내’ 등으로 불렸다. 이는 현재 인계동의 명칭이 기반이 됐다. 교통의 중심지인 인계동은 구도심으로 낡은 주택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수원 토박이로 자신의 동네를 ‘인계본동’이라 부른다. ‘본토박이 동네’라는 뜻이다. 인계본동 주민들은 1940~1950년대 주로 농사를 짓거나 영동시장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떼와 장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4대에 걸쳐 인계본동에 거주한 임익상 씨의 집안이 이곳 최고의 부잣집으로 손꼽혔는데, 그 집이 어찌나 넓었던지 한국전쟁 과정에서 중공군이 수원을 점령하고 난 뒤 임씨의 집안을 식당으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이런 가운데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계동은 편리한 입지에 비해 낙후된 편이었다. 오죽했으면 ‘인계동 남자한테 시집도 안 보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후 인계동은 새마을운동사업으로 전기가 들어오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1980년대 들어서 성빈센트병원 남쪽으로 한신아파트가 건설됐다. 이 때문에 투기꾼 발걸음이 수원에 몰려 개발 지역의 대지가 시가의 2~5배나 비싼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지난 1991년 6월에는 인계동 근린공원 터에 경기도문화전당이 개관된 데다 뉴코아 수원점도 들어서면서 해당 지역의 발전이 이뤄졌다. 그러나 오히려 주민들 중 외지로 떠난 사람들도 많았다. 그 무렵 인구가 많은 곳일 수록 소비가 많았다는 것을 깨달은 자영업자와 시민들은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 지방자치 역사도 기록 빛바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UN 관계자들이 손가락으로 수원 남문에 붙어 있는 벽보를 가리켰고 표 형태의 벽보에는 동그라미 도장이 찍혔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행된 1952년 지방선거의 한 풍경이자 올해 개원 70주년을 맞이한 수원시의회의 첫 모습이다. 수원학연구센터는 이러한 모습을 ‘수원 시의원으로 살다’로 정리했다. 단순하게 조례 발의, 의원 정원 등 의정 활동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과거 시의원을 지냈던 사람들을 찾아 속 얘기를 들었다. 왜 시의원에 도전하게 됐는지, 시의원을 지내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등을 서술해 개인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를 통해 수원시의회 발자취를 재조명한 것이다. 수원학연구센터는 이러한 간행물 외에도 수원학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최대 180명의 시민이 경기대, 아주대 등 지역 대학교 교수와 함께 이를 듣고 있다. 수원학연구센터는 뿐만 아니라 수원을 주제로 한 자료를 축적하고자 수원학 학술연구지원사업도 하고 있으며 시의성을 고려한 수원학 학술심포지엄도 개최하고 있다. 수원학연구센터 관계자는 “내가 어느 지역에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려면 정체성이 필요하다. 또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곧 시민참여형 지방자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자료를 축적하는 등 시민들이 수원에 사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민기자

성인장애인 7만명, 정원은 70명 뿐…갈 곳 없는 성인 장애인

인천지역 성인 지체·발달장애인이 7만여명에 달하지만 이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는 서구에 단 1곳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곳의 수용 정원이 70명에 그쳐 나머지 성인 지체·발달장애인의 돌봄은 오롯이 가족 몫이 되고 있다. 1일 인천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지체·발달장애인은 미성년자일 때까지는 학교 등에서 돌봄을 받고 있지만, 성인이 되면 통학보조서비스와 발달재활서비스 바우처, 특수교육대상자 방과후학교 등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인천시교육청이 지원하는 활동 바우처인 ‘참 좋은 카드’의 지원도 끊긴다. 이외에도 시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여러 치료 활동도 받을 수 없다. 인천 서구에 사는 A씨(58)는 지체·자폐 장애를 가진 딸(23)을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딸이 학생이던 때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도왔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부터는 아침부터 하루종일 딸을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A씨의 딸은 거동이 불편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활동지원사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주간활동센터도 가봤지만, 아이 상태를 보더니 맡을 수 없다고 했다”며 “서구의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 지원을 했는데 경쟁률이 너무 높아 떨어졌다”고 했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B씨(62)는 시간이 갈수록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는 딸(27)을 돌보는 일이 힘에 부친다고 했다. B씨는 “딸이 고집을 피우면 성인 남자가 때리는 것처럼 힘 조절이 안된다”며 “성인이 되면서 힘이 세지는 아이를 보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날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B씨의 딸은 대소변을 혼자 볼 수 없어 1시간마다 화장실을 가야한다. B씨는 “1시간만 자리를 비워도 그냥 있는 자리에 싸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B씨의 딸은 1일 6시간만 활동보조지원서비스를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고, 나머지 18시간은 B씨에게 의존해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도 성인 지체·발달장애인들이 돌봄과 자립생활교육을 받을 수 있는 ‘평생교육센터’는 기초지자체 10곳 중 서구 단 1곳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계양·남동·미추홀구가 센터 설립에 의사를 밝혔지만 이들 모두 40~70명 수준의 수용인원을 계획하고 있어 성인 장애인 돌봄 문제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인천장애인부모연대 정경미 팀장은 “학교를 졸업한 성인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자체가 턱 없이 부족하다”며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서 산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돌봄 체계를 점검하고 24시간 지원 체계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시에서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24시간 활동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등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와 평생교육센터 담당 부서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해봐야 할 문제”라고 했다. 김지혜기자

안산시청, 강릉단오장사씨름 女 단체전 패권…시즌 3관왕

안산시청이 2022 강릉단오장사씨름대회 여자부 단체전서 시즌 3관왕에 오르며 최강의 전력을 과시했다. 김기백 코치가 이끄는 안산시청은 1일 강릉시 단오제 야외 특설경기장서 열린 2일째 여자부 단체전 결승서 화성시청을 3대0으로 완파하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안산시청은 지난 2월 설날장사대회와 5월 괴산장사대회에 이어 시즌 3개 대회를 연속 제패하며 최강의 전력을 과시했다. 예선서 국화급(70㎏ 이하) 간판 김다혜가 무릎 부상을 입는 돌발 상황 속에서도 구례군청과 괴산군청을 각각 3대2로 힘겹게 따돌리고 결승에 오른 안산시청은 첫 매화급(60㎏ 이하) 경기서 김은별이 화성시청 김시우를 맞아 첫판을 안다리로 내줬으나, 밭다리되치기와 밀어치기 기술로 내리 두 판을 따내 기선을 제압했다. 이어 안산시청은 국화급 정수영이 김주연과의 대결서 첫판 종료 1초를 남기고 왼덧걸이로 승리한 뒤, 둘째 판을 안다리되치기로 추가해 게임스코어 2대0으로 앞서가 승기를 잡았다. 안산시청은 매화급 두 번째 경기서 이아란이 ‘라이벌’ 화성시청 이연우를 맞아 첫판을 종료 2초를 남기고 안다리되치기로 따낸 후, 둘째 판서 상대의 2회 경고로 경고승을 거둬 손쉽게 우승했다. 김기백 안산시청 코치는 “예선서 (김)다혜가 부상을 입어 매 경기 한 게임을 내주고 하는 어려움 속에서 (김)은별이와 (정)수영이가 모두 승리해 줘 우승할 수 있었다”라며 “다른 선수들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무릎 부상에도 국화급 개인전 결승에 오른 김다혜는 엄하진(구례군청)에게 안다리로 첫판을 따냈으나, 하체에 힘을 주지 못하면서 2·3번째 판을 잡채기와 밀어치기로 연속 내줘 1대2로 역전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또 무궁화급(80㎏ 이하) 결승에 오른 임정수(화성시청)는 이다현(거제군청)에 0대2로 패해 준우승했고, 매화급 이연우(화성시청)는 4강서 져 3위에 입상했다. 황선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