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경기도에 23개 화장시설을 추가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혐오시설이 들어설 것을 우려한 도내 지자체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지자체가 다른 지역에는 괜찮지만, 우리 지역에는 혐오시설을 유치할 수 없다는 ‘지역이기주의’까지 보이고 있어 지자체 간 마찰도 우려되고 있다.20일 보건복지부와 경기도내 지자체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15일 경기도에 23개의 추가 화장로 건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된 ‘제2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18~2022년)’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4월 수요조사를 벌일 예정으로, 이를 통해 화장로 건설을 필요로 하는 지자체가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정부의 이 같은 발표에 도내 지자체들이 주민 반발을 의식해 화장시설을 유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님비(NIMBYㆍNot In My BackYard)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지난 2011년 경기북부지역에 공동으로 화장시설을 건립하려다 주민 반발에 부딪혔던 포천, 가평, 구리, 남양주, 동두천, 양주, 의정부시 등 7개 시ㆍ군은 “우리 지역에는 화장장을 절대 유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남양주시 관계자는 “경기북부지역에서 화장장 건립에 선뜻 나서는 지자체는 없을 것”이라며 “경기동북부지역 지자체가 합동으로 화장장을 만든다면 적극 찬성이지만 우리 지역에는 주민 반대가 심해 화장시설을 건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의정부시 관계자도 “화장시설 확대는 국가시책이고 실제로 도내에 화장시설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주민들이 기피하는 혐오시설을 반기는 지자체가 어디 있겠느냐”며 “시민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우리 지역에 화장장을 설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화장장이 건립돼 있는 지역들도 화장로를 추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화장시설을 두고 도내 지자체 간 갈등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현재 성남시는 화장로 15기가 설치돼 있는 화장장이 있지만 현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하다며 추가 증설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수원시 역시 화장장을 개ㆍ보수해 공간을 확보하면 추가로 화장로를 설치할 수 있지만, 주민들의 반응을 우려해 보건복지부의 이번 방침을 검토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각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지자체들과 논의해 화장장 설치에 대한 조정방안을 찾겠다”며 “올해 안으로 각 시ㆍ군과 협의해 경기도 차원의 장사시설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임성봉기자
“경기 오악산 중 가장 빼어나다는 운악산이 쓰레기 산으로 변하다니 통탄할 일입니다” 20일 사단법인 환경보호운동본부 관계자와 함께 찾은 포천시 화현리 일대. 운악산 끝자락이자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 지역인 이곳은 인근 군부대만 눈에 띌 뿐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산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검은 천으로 만들어진 펜스 너머 산처럼 쌓인 쓰레기더미가 등장했다. 가까이 가보니 건축자재는 물론 생활쓰레기 등 각종 폐기물이 10m는 족히 돼 보이는 높이로 쌓여, 마치 ‘쓰레기 산’의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방금 이곳에 쓰레기를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5t집게차가 시민단체와 취재원을 확인한 후 부랴부랴 현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수부 환경보호국민운동본부 가평군 지역본부 감시단장(76)은 “지난 17일 순찰활동을 벌이던 도중 이 쓰레기 산을 발견하게 됐다”며 “불과 5개월 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분명 임야였는데, 5개월 만에 쓰레기 산이 생겨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이어 “겉으로 보이는 것만 2만t 이상의 쓰레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펜스도 일부 무너져 있어 비가 내리면 인근 한탄강과 가평 조정천으로 쓰레기들이 유입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경기도든 포천시든 누군가 나서 하루빨리 쓰레기 산을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 가운데 포천시는 이미 지난해 이 ‘쓰레기 산’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포천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12월28일 주민들의 민원을 통해 ‘쓰레기 산’의 존재를 알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결과 남양주시에 소재한 A 업체가 지난해 11월 남양주시로부터 폐기물 원상복구 명령을 받자 포천시에 땅을 임대해 폐기물을 옮겨 온 것으로 확인됐다.해당 부지 소유자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폐기물이 아닌 건축자재를 보관하는 줄 알고 임대해 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포천시는 지난 1월17일 A 업체 대표를 포천경찰서에 ‘무허가 수집운반 협의’로 고발조치 했으며, 포천경찰서는 지난달 1일 의정부지검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진행되는 사이 폐기물은 두 배 가량 증가했다. 포천시가 최초 인지한 지난해 12월께는 시 추산 3천400t가량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지만,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이후인 지난달 25일 포천시 현장 점검 결과 쓰레기가 5천400t까지 불어나 있던 것. 이후 지속적으로 쓰레기가 버려진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쓰레기가 7천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포천시 관계자는 “처음 쓰레기더미를 인지했을 당시에는 단순히 임시로 폐기물을 옮겨 놓은 것인 줄 알았는데 계속해서 폐기물을 버리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며 “A 업체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전국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인천시가 익명의 성폭력 신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인천시교육청이 내부 제도를 개선, 성폭력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익명의 신고에도 감사관실이 직접 나서 조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일 시에 따르면 내부망 사이트인 성희롱고충상담에 실명의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담당부서인 여성가족국 국장을 비롯한 내부공무원과 외부상담사, 감사관실 직원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 연 후 사안에 따라 감사관실에 조사를 요청한다. 감사관실은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인물 등을 조사한 뒤 가해자에 대한 징계절차에 돌입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절차 모두 피해자가 실명으로 신고를 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성희롱고충상담 사이트 자체도 피해자 또는 제3자가 실명으로 신고할 수는 있지만, 익명으로 신고할 수 없는 구조다. 피해자가 내부망 사이트 익명 게시판이나, 익명의 편지·투서 등의 형식으로 성폭력을 신고할 경우 가해자와 행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더라도 시 감사관실은 직접 조사에 나서지 않는다. 시 관계자는 “여성가족부의 대응매뉴얼에 따라 성희롱고충상담 사이트를 운영하고 실명으로 접수된 신고에 한해서만 조사에 나서고 있다”며 “정부가 대응매뉴얼을 개정해 내려주지 않는 이상 익명의 신고에 대해 조사할 당위성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시교육청은 성폭력의 경우 핫라인(HOT-LINE)을 통한 실명 신고는 물론, 익명의 신고에 대해서도 감사관실이 조사에 나선다. 애초 익명의 신고에 대해서는 시처럼 조사에 나서지 않았지만, 성폭력 등 중대한 사안의 경우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우려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기에 내부 방침을 바꿨다. 이처럼 방침을 바꾸게 된 이유는 지난 2012년 일부 학교장이 승진을 앞둔 여교사를 대상으로 성추행을 일삼고 있다는 투서가 전달됐지만, 익명이라는 이유로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 시교육청 감사관실은 약 두달 동안 인천지역 60개교 교직원 520명을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 부적절한 언행 등 부당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관리자 13명을 찾아내 징계 처분했다. 이후 시교육청 감사관실은 익명의 제보라고 하더라도 성폭력 등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조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특히 현행법에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범죄신고자나 그 친족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으면 그 취지를 조서 등에 기재하고 범죄 신고자 등의 인적 사항은 기재하지 않는다’고 적시돼 있다. 수사기관에서조차 익명의 신고에 따른 조사가 가능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도 교육청이나 수사기관 처럼 성폭력 등 신고자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익명의 신고에도 직접 조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의 한 공무원은 “직원 내부망에 미투와 관련된 글이 올라 왔음에도 익명이라는 이유로 시가 조사 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시교육청이 익명의 신고에도 조사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내부 제도를 개선해 피해자가 신원을 공개하지 않아도 조사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민기자
“정말 송구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 내 혼자서 모든 책임을 다 안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각오입니다.” 1995년 11월1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사 앞에서 한 얘기다. 수감을 위해 교도소로 떠나는 자리였다. 기업에서 수천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당시로서는 첫 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이었다. 외신까지 비상한 관심을 보일 ‘사건’이었다. 온 국민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온 말은 시인과 사과였다. ▶“다분히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 요구 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 1995년 12월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택 골목에서 밝힌 소감이다. 그 유명한 ‘골목 성명’이다. 보름여 전, 노 전 대통령과는 많이 달랐다. 현 정권과 맞붙겠다는 결기가 확연했다. 하지만, 내용을 따지고 들어가면 역시 범죄 시인이었다. ‘끝난 사건을 왜 다시 하느냐’는 투정이었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2009년 4월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기자단 앞에 섰다. 뇌물 등 혐의로 검찰에 불려가는 길이었다. 진보의 더 없는 가치였던 노 전 대통령이었다. 재임 내내 정치 부패와 전쟁을 치른 그였다. “노무현”을 연호하는 노란색 물결이 여전히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사과했다. ‘면목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국정 농단으로 통칭되는 다양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었다. 도로변에 태극기가 나부꼈다.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연호도 이어졌다. 얼마 전까지 ‘(특검이 나의 혐의를) 엮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던 그다. 하지만, 그 역시 검찰청에 들어서면서는 ‘송구스럽다’며 사과했다. ▶전직 대통령 사법처리는 이제 사건일 뿐이다. 여전히 1면 머리에는 오르지만 과거와 같은 흥분이 없다. 헬기까지 띄우던 취재 열기도 사라졌다. 지켜보는 국민의 관심도 많이 시들해졌다. 새삼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되레 짜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 짜증 속에는 ‘실망’이 섞여 있다. 왜 하나같이 검찰청에만 가면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느냐는 것이다. ‘결백하다’며 배짱부리는 대통령이 왜 없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가 오늘 또는 내일 새벽 결정된다. 이미 검찰 조사에 앞서 소감을 밝혔었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했다. 혹여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면 수감에 앞선 마지막 말을 할 것이다. 어떤 말을 할까. 역시 ‘죄를 인정한다’며 사과할까. 사과하는 전 대통령들의 ‘검찰 발언’에 신물이 난다.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큰소리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김종구 주필
근로시간 단축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업종의 특성 등을 감안하지 않은 탁상행정에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비용 증가와 수입 감소 등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일부 업계에선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개악법’이라며 거리로 나섰다. 전세버스업계의 사정은 심각해 보인다. 버스 업주는 물론 기사들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대형 버스사고를 막는다는 취지로 9월부터 시행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비현실적 입법’이란 지적이 노사 양측에서 제기되고 있다. 경기ㆍ인천ㆍ서울 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 임직원 500여 명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반대 집회’를 갖고 “법을 다시 고치지 않는다면 업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전 조합원 면허 반납도 불사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신설된 제59조 2항의 ‘11시간 연속 휴식 의무화’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59조 2항은 ‘사용자는 근로일 종료 후 다음 근로일 개시 전까지 근로자에게 연속하여 1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지 않는 5개 특례업종 종사자의 장시간 노동을 막아 휴식권과 건강권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는 근무 형태가 다양한 버스업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통학·통근용 셔틀 운행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전세버스업의 현실을 도외시했다. 업무종료 후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하려면 기사들이 오후 7시 이전에 퇴근해야 한다. 회사는 더 많은 기사를 고용하고, 근무조를 오전·오후, 오후·저녁으로 나눠 운영해야 한다. 시장 포화로 일감 부족과 구인난에 시달리는 전세버스업계로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회사들이 도산할 수도 있다. 탁상행정식 법안으로 피해는 업주뿐 아니라 근로자들에게 돌아가게 생겼다. 근로시간이 줄면서 월 200만원 수준인 현재 임금은 법정최저인 157만원으로 줄 수밖에 없다. 결국 기사들은 생계가 어려워 대리운전이나 불법 지입제 영업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천차만별인 전세 버스기사들의 근무 형태를 감안한 융통성 있는 보완이 필요하다. 하루 8~10시간을 연속 운행하는 노선버스나 관광버스, 출퇴근ㆍ등하교 등 하루 4~6시간 운행하는 셔틀버스는 법 적용이 달라야 한다. 휴식시간 보장은 근로 종료 시간으로 획일화할 것이 아니라, 실제 운행시간을 고려해 다음날 휴식 시간을 결정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업종 실태를 확인하고 업계 현실에 맞게 법을 재개정할 필요가 있다.
누가 뭐래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1호는 일자리 창출이다. 출범 직후부터 정부 역량의 상당 부분을 쏟아넣었다. 2017년 집행한 일자리 예산만 17조원이다. 올해는 이보다 2조원 늘어난 19조 2천억원을 편성해 놓고 있다. 상당 부분이 공공 부문 일자리 늘리기다. 공공기관과 시중 은행에 대한 취업 부정 단죄도 그런 차원이다. 부정 취업의 몫을 정당한 청년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취지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의욕적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 청년 일자리 해결의 핵심 창구인 기업의 엇박자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상반기 신규 채용은 답보 상태이거나 후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사 기업 182개 가운데 17곳이 작년보다 적게 뽑는다. 5곳은 아예 뽑지 않겠다고 했다. 채용을 늘리겠다는 기업은 16곳에 불과했다. 80곳은 채용 계획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의지와는 다르다. 주의 깊게 볼 것은 신규 채용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다. ‘회사가 어렵다’(25.9%)거나 ‘국내외 여건이 안 좋다’(20%)는 이유는 딱히 특별할 게 없다. 대신 예년에 없던 이유가 생겼다. ‘통상임금ㆍ최저임금 인상 등 인건비 부담이 증가해서’(14.2%)다. 기업들의 요구 사항도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12.1%)가 아니라 ‘기업 활동을 위한 환경 조성’(63.2%), ‘고용증가 기업에 대한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강화’(47.8%)에 집중돼 있다. 추론하면 답이 보인다. 지금 정부의 일자리 증가 정책은 기업에는 일자리 감소 정책인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 친 노동 정책이 기업에는 채용 여력의 박탈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레 강조하고 나설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일자리 정책 ‘미스매치’는 계속 지적됐다. 그러던 것이 이번 조사 결과로 통계화되고 상반기 채용으로 현시화된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에게서 ‘나아진 게 없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꿔야 한다. 예산 들여서 공무원 늘리는 정책은 옳지 않다. 기업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 이제라도 그 예산의 상당 부분을 기업으로 돌려야 한다. 직접 투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자리 만드는 기업에 세제 혜택 늘리고, 임금 지원 늘리고, 경영 지원 늘려줘야 한다. 1차 추가경정예산에 일자리 예산도 4조원이나 포함됐다. 그 예산부터라도 투입구를 바꿔가야 한다.
필자는 최근 노자가 던지는 33가지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7.8)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세계적인 도교 철학자 자오치광 교수가 미국 미네소타 칼턴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가 정리, 번역한 책이다. 67세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오치광 교수의 마지막 유작으로 미국, 일본과 중국에서 출판돼 화제를 불러온 책이다. 노장사상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도가철학을 말한다. 도가사상이라 하면 대개 무위자연을 떠올리게 되는데, 무위(無爲)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삶을 무위자연이라 한다. 해마다 세계 트렌드가 바뀌고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오치광의 이야기는 자칫 허무맹랑하다고 보일지 모른다. ‘무위무불위’의 영어식 표현은 ‘Do nothing & Do everything’이다. 즉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든 행하는 것’의 합성어인 셈이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무위는 무엇인가를 애써 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의 규칙에 순응하는 일종의 겸손인 반면 무불위는 자연스럽게 일이 일어나도록 좋은 습관을 들이는 과정으로 규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대중의 관심과 여론에 지나치게 민감해 설익은 정책을 추진하거나, 튀는 행동과 막말을 해서라도 주목받으려 하는 요즘 정치인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에 급급하거나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반대는커녕 눈치 보기 바쁘다. 요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일을 벌인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무언가를 기획하고 준비가 되면 일단 터뜨리고 본다. 언론을 통하든 개인 SNS를 통하든. 일부 정치인은 SNS 중독증에 걸린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모든 현안에 대하여 해법을 요구받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앞다투어 먼저 대안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반면 신중한 답변을 위해 즉답을 피하거나 고심하는 경우 정책적 역량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무능한 정치인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토론은 실종되고 ‘포퓰리즘이다,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판치는 세상이다. 최근 최저임금제 인상과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기 측의 주장만 일방통행할 뿐, 생산적 토론이 아쉽다.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렵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대로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생선을 굽듯이 나라를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너무 자주 뒤집으면 생선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하거나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졸속 정책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 모습을 그려보는 건 필자만의 바람일까?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요즘 극장가에서 오랜만에 영화가 판타지, 폭력이나 멜로물이 아니라도 흥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가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 관객은 영화에서 나오는 도시생활에서 찌든 젊은 주인공들이 시골로 내려온 후 농촌생활 모습과 주변에 흔히 있는 재료로 스스로 만드는 음식, 그리고 이웃과 친구와의 관계에서 많은 안식을 느낀다고 말한다. 새로운 의미의 힐링과 편안함을 주는 그야말로 별천지의 판타지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장년층에게도 어린이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도시생활의 무의미하고 고달픈 모습이 편의점 삼각김밥과 도대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직장 생활로 대변되고 있다. 반면 시골생활은 시골집의 푸근함으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가진 것으로 만드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요리로 어머니의 모습과 같이 나타난다. 또한 항상 나의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때로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농사의 결과를 보기도 한다. 물론 실제의 농촌생활과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미화된 부분이 있지만, 농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볼 수 있는 기회로, 일반 도시민에게 그리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서의 농촌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되었다. 올 3월6일 방문한 세계 3대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다시 한번 농업의 미래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통일이 되면 한국과 한국농업은 세계 최고의 투자처가 될 것”이라며 “미래에 필요한 인재는 주식 전문가가 아니라 트랙터 전문가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농민이 돼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청년들이 생활의 도피처로 생각한다면 농촌은 더욱 힘든 곳이며, 쉽게 역귀촌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귀농, 귀촌은 정부의 생활지원금 보조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삶이 미래의 밝은 전망을 보여 주어야 하고 그 길로 안내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는 작년에 이어 대학과 청소년에게 새로운 농업을 소개한 ‘청년팜발전소’를 한층 업그레이드하여 청년들에게 농업분야 진출과 창업농의 기회를 직접 부여하기로 하였으며, 대학생들의 진로 고민과 미래의 4차 산업으로서 농업을 미리 보여주는 기회를 준비 중이다. 우리의 젊은이에게 본인의 삶을 도망치는 귀농, 귀촌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서의 귀농, 귀촌을 강력하게 추천해 본다. 서재형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장
파주 수길원(坡州 綏吉園)은 조선 21대 영조(재위 1724∼1776)의 후궁이자 추존 진종소황제의 사친(생모)인 정빈 이씨(1694∼1721)의 무덤이다. 정빈 이씨는 이준철의 딸로 8세에 궁녀로 입궁하여, 1719년(숙종 45)에 영조의 맏아들 진종(효장세자)을 낳았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 정빈에 추봉되었으며,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자 왕의 사친의 지위에 맞게 원의 이름을 수길원이라 하였다. 신주(위패)는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을 모신 칠궁(七宮) 중 연호궁(延祜宮)에 모셨다. 묘소에는 문석인, 장명등, 망주석, 표석이 있으며, 현재 정자각 등의 건물은 소실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보는 것 자체가 힐링’ 스페인 남부의 작은 섬 가라치코 마을에서 한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이야기로 금요일 저녁, 바쁜 일상에 지친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윤식당2. 요즘 예능에서 흔히 보는 자극적인 소재나 설정도 없지만 ‘한 번쯤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우리의 로망을 담아서 일까.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시청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화면 속 가라치코 마을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마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동네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거리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서 훈훈한 정이 넘친다. 예전에는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파트 등 공동주택 생활이 익숙한 우리 세대는 요즘 옆집,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 몇 년 사이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여러 번 사회를 흔들었다. 특히 지난해 친부와 내연녀의 무차별 학대로 숨진 ‘고준희 양 암매장 사건’의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준희 양이 고통 속에 숨져가는 동안 ‘과연 우리는 무얼 했나?’라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준희 양이 차가운 주검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분명 여러 번 보냈을 안타까운 신호를 우리는 알아챘어야 했다. 준희 양의 아버지는 경찰조사에서 ‘훈육 차원의 체벌’이었으며 학대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아동학대 가해자의 상당수는 이렇듯 ‘훈육’의 명목으로 폭행을 정당화한다. 아동학대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체벌에 대해서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때릴 수도 있지’, ‘내 훈육방식인데 무슨 참견이냐’라는 인식이 여전해 학대와 체벌의 경계가 사실상 모호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1979년 세계 최초로 아동학대법을 제정한 스웨덴의 경우는 아동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체벌을 가하면 처벌받는다. 엉덩이를 때리는 등의 훈육 과정뿐 아니라 어른이 분에 못 이겨 아이에게 욕설을 해도 마찬가지로 처벌을 받는다. 아동학대의 신고체계도 간소해 지난 10년간 신고도 크게 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의 체벌인 경우가 많다.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동학대의 80%가 부모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피해 아동에 의한 직접적인 신고는 사실상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이웃들의 관심이다. 경기남부경찰청에서는 학대받는 아동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든든한 지원자가 될 수 있도록 주변에 따뜻한 관심을 갖자는 ‘우리아이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우리아이캠페인 노란 배지에 적힌 문구다. 다시는 제2ㆍ3의 준희 양이 생기지 않도록 ‘남의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라는 인식의 변화, 가라치코 마을 사람들과 같은 훈훈한 이웃 간의 관심으로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현주 안양동안경찰서 경무계 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