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칼럼] 대상포진 초기 치료 놓치면 만성 신경통 발병 위험 높아

대상포진 진단을 받은 72세 박 모씨는 3주정도 약물치료를 받고 난 후 피부 병변도 회복되어 완치된 줄 알았다.하지만 발진이 나은 후에도 한 달 이상 피부가 따가운 통증이 지속되다가 어느 순간 닿기만 해도 통증이 악화됐다. 다시 병원을 찾은 박 씨는 자신의 병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수두에 걸린 뒤 몸 속 신경에 잠복해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발생한다. 주로 가슴과 얼굴에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신경이 뻗친 몸 어디든 생길 수 있다.특히, 얼굴에 대상포진이 생기면 안면신경까지 바이러스가 침범하여 실명, 안면마비 등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발병 72시간 내 초기에 치료해야 합병증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대상포진은 초기에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고 물집은 통증이 나타난 후 하루에서 1주 정도 지난 후 발생하기 때문에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대상포진은 주로 몸의 한쪽에 띠 모양의 피부발진과 여러 개의 수포가 생긴다. 이처럼 몸 한쪽에 줄무늬처럼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대상포진의 큰 특징으로 꼽힌다. 피부에 생긴 물집은 보통 2~3주 내에 치료된다. 발진이 나은 후 수개월이 지나도 통증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 한다.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지속되며, 통증 양상은 다양하다. 날카롭게 찌르는 통증이나 옷깃만 스쳐도 굉장히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성통증이 지속 될수록 우울증, 불면증으로 이어져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대상포진 환자의 약 20% 정도가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겪는다. 특히, 고령이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높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발생 한 후에는 단순 약물치료에는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특수치료가 필요하다. 수원 윌스기념병원 한승탁 원장은 의료용 미세 바늘을 이용한 치료법을 사용한다. 굵기 0.25~0.35mm의 아주 가느다란 미세 바늘을 삽입해 약물을 넣는 방식으로 손상되고 변성된 조직을 재생시켜 기능을 회복하게 함으로써 통증을 사라지게 하는 치료방법이다. 미세바늘은 굵기가 아주 가늘기 때문에 시술 시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적고, 주사 시술로 인한 조직손상이나 감염의 위험성 거의 없어 합병증 발생률도 없다. 또한, 스테로이드는 근육이나 인대를 약화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해 사용하지 않는다. 한승탁 원장은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발병 위험이 높아지므로, 스트레스와 과로를 줄이고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수원윌스기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한승탁 원장

자도 자도 피곤한 ‘만성피로’ 커피 대신 운동으로 푸세요

현대인은 ‘피로를 달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로로 인한 일시적인 피로부터 질병의 신호탄까지, 피로의 유형도 다양하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특별한 원인도 없이 지속되는 만성 피로다. 그 동안 나를 괴롭혔던 피로의 정체를 파악하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한 해를 누리자. ■ 6개월 이상 피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만성피로 피로란 탈진되거나 힘이 없어지고 기능을 상실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1개월이 넘어가는 피로감은 일시적인 피로감으로 볼 수 없으며, 6개월이 넘어가는 정도라면 만성피로라는 용어를 쓰게 된다. 만성피로는 일상 생활에 큰 불편을 줄 뿐 아니라 질병과 연관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관심 있게 접근해야 한다. 만성피로의 2/3 정도는 내과적 질환이나 정신과적 문제로 발생할 수 있다. 흔한 원인으로 지속적인 수면 부족이나 불균형한 식사, 알코올, 카페인 등과 같은 문제들도 있지만, 빈혈이나 우울증, 갑상선 기능 이상, 당뇨, 심장병과 같은 질병들도 만성피로의 원인이다.생활 습관에 큰 문제가 없는 젊은 여성에서 만성피로가 있다면, 빈혈, 갑상선질환, 우울증과 같은 질병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만일 이유 없이 체중이 빠지고 만성적인 피로가 있다면 악성 종양과 같은 좀더 심각한 질환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실제로 임상에서 지속적인 체중감소와 통증, 만성피로가 동반된 환자들을 검사해 암을 찾아낸 경우도 종종 있다. 꼭 우울하다는 느낌이 아니더라도 즐거운 것도 없고, 음식의 맛도 잘 모르겠고, 막연히 만성적으로 피로하다면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다. ■ 만성피로증후군은 운동과 식습관으로 다스려야 만성피로증후군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상은 ▲6개월 이상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로하고 휴식으로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며 사회적 기능이 떨어질 경우 ▲기억력 혹은 집중력 장애 ▲침이나 음식을 삼킬 때 목의 통증 ▲목과 겨드랑이쪽 림프선의 통증 ▲근육통 ▲두 군데 이상의 신체 부위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관절통 ▲두통 ▲잠을 자도 상쾌한 느낌이 없음 ▲운동이나 힘든 일을 하고 난 후 24시간 이상 지속되는 심한 권태감 등의 항목 중 4가지 이상이 동시에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다. 만성피로증후군에 권유되는 치료법은 운동이다. 운동 초기 피로감이 좀 더 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운동의 시간과 강도를 점차 늘려가고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운동을 시작해도 호전이 없는 경우도 많다. 만성피로증후군에서 영양 불균형이나 대사 불균형과 같은 상태가 많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식단부터 바꾸어 보자. 이것이 어렵다면 나에게 부족한 영양이 무엇인지, 내 대사 과정에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자. 이러한 과정을 토대로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면 천천히 피로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장 건강은 신체의 건강을 조절하는 중요한 인자다. 위장 상태가 좋지 못하면 필요한 영양 균형을 맞추기도 어렵고, 장내의 지속적인 염증이 면역력과 에너지 고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내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몇 가지 원인들이 있는데, 불규칙한 식습관, 다양한 스트레스,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이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은 장내 염증을 유발하기 쉽고, 만성적인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유산균의 복용도 권장된다. 이와 함께 만성피로를 이겨내기 위한 생활 속 방법으로는 ▲충분히 잠을 자고 아침에는 햇빛보기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고 더 움직이기 ▲스트레스 받는 일은 잊도록 노력하기 ▲정해진 건강검진은 꼭 하기 ▲장 건강을 챙기기 등이다. 성남=문민석ㆍ강현숙기자 도움말: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상 교수

부평경찰서 제작 ‘테러 예방 포스터’ 안의사 손도장 사용… ‘무개념’ 논란

경찰이 제작한 ‘테러 예방 포스터’에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사용돼 논란이다.12일 인천지방경찰청과 부평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트위터 등 SNS에는 부평서가 제작해 배포한 ‘테러 예방 포스터’에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 사용되면서 누리꾼들의 비난 글이 잇따르고 있다.문제의 포스터에는 안 의사 손도장 아래 “STOP! 테러”라는 문구와 함께 “테러~! 여러분의 관심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 등이 쓰여있다.이에 SNS상에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보고 쓴 거 아니냐는 등의 비난이 잇따랐다.자신을 ‘티단’이라 밝힌 누리꾼은 “부평경찰 쪽에서 지하상가에 붙여놓은 건데 누가 봐도 저 손 안중근 손인데... 일본측에서 안중근이 테러범이 맞긴 한데 한국 입장에서 이걸 테러예방 포스터에 넣는 게 적절한 거냐?”고 지적했다.또 ‘물잡이’란 네티즌은 “아직도 경찰은 대한민국 소속이 아니라 일본 소속인 듯..”이란 의견을 달았으며 또 다른 누리꾼은 “정신 나간 부평경찰서 테러 방지 포스터”, “무슨 생각으로 쓴 거지 대체. 경찰 맞아”, “하도 많은 손바닥 중에 왜 하필 안중근 의사 손바닥이냐;;;” 등 리트윗 수가 수백 건으로 늘고 있다.논란이 확산되자 경찰은 안중근 의사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단순한 실수였다며 12일 포스터를 수거 조치했다고 해명했다.부평서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가 도안 3종류를 만들던 중 ‘테러를 멈춰야 한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집어넣었는데, 손바닥 모양을 찾다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캡쳐한 것 같다”며 “(만들 당시)뭐에 씌였는지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고 설명했다.이어 “문제가 된 포스터는 이미 수거 조치를 했고, 앞으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김덕현기자

하버파크호텔 리모델링 재검토

인천관광공사의 하버파크호텔 리모델링 계획이 원점에서 재검토될 전망이다. 수익성확보 방안과 예약문제 해결방안 등이 요원한 만큼, 매각을 포함한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12일 인천시에 따르면 오는 3월 하버파크호텔에 대한 운영권이 인천도시공사에서 관광공사로 이관된다. 이후 관광공사는 74억원대 리모델링을 실시, 하버파크호텔을 인천 가치재창조의 거점 호텔로 삼고 수익극대화를 이룬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10일 열린 제239회 인천시의회 임시회 인천관광공사 주요업무보고에서 시의원들이 수익성 부족과 기존 예약에 대한 취소·환불 문제, 공공성 훼손 등의 문제를 집중 제기하면서 사업에 차질이 예상된다. 특히 대다수 의원들이 이 같은 이유로 호텔 매각을 주장하고 있어, 이를 포함한 원점 재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관광공사는 리모델링 이후 향후 5년 내에 매출 수준을 80억원까지 회복하겠다는 계획이지만, 하버파크호텔이 지난 2009년 개장 이후 연간 10억원 안팎의 적자를 보고 있는 만큼 수익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같은 계획이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영업이익률은 연간 9.0%~13.4%에 그칠 것으로 분석돼, 5년 간 총 수익금은 40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관광공사의 계획대로 하버파크호텔의 운영을 전면 중단하고 리모델링에 나설 경우, 올해 12월까지 예약된 결혼식 5건, 연회 29건 등 34건의 행사와 4천916건의 객실 예약을 모두 취소·환불조치 해야 한다. 예약 취소에 따른 금전적 손해와 호텔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도시공사와 관광공사는 해결방안 마련에 아무런 협의를 나누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관광공사가 리모델링 후 시설 운영권을 민간에 위탁하기로 결정한 만큼, 추후 위탁 받게 될 사업자가 리모델링 비용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관광공사 황준기 사장은 “일대가 개항창조도시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서도 “매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두고 시와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하겠다”고 답변했다. 박연선기자

인천지하철 1·2호선 역사 5곳 ‘점포’ 조성

인천교통공사가 다양한 사업아이템 발굴을 목표로 수익공모 제도를 본격 시행한다. 교통공사는 인천지하철 1·2호선 내 공간 및 시설을 활용한 사업계획 제안을 받는다고 12일 밝혔다. 공사는 수익사업 공모와 관련한 홈페이지를 개통하는 등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시스템을 가동한다. 사업자가 사업계획을 제안하면, 공사 내부에서 사업성과 사업수행능력, 기술력, 제안가격 등을 심의해 60일 이내에 사업 추진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결정된 사업은 공사가 관련 사항을 지원하게 된다. 공모사업과 관련 문의는 공사 홈페이지나 서류접수(451-2203) 등을 통해 가능하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면 공사와 본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 추진을 위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공사는 올해 경영효율 극대화를 목표로 다양한 부대사업 시행을 통한 수익 창출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공사는 우선적으로 1·2호선 5개 역사에 5곳의 신규점포를 조성할 계획이다. 프렌차이즈 직영점 유치나 미니점포 개발사업 등을 본격화 할 계획이다. 특히 정보통신기술 융합 Wifi 모바일 광고, 교통카드 태킹 모바일광고 등 새로운 개념의 광고사업을 추진하고, 새로운 광고매체 개발 및 직영화를 강화하는 등 수익 강화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공사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다양한 수익사업 모델을 활성화해 공사와 사업자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양광범기자

[경기천년 999+1, 경기도의 思想과 思想家] 1.프롤로그

우리 역사에서 경기도의 의미와 정체성은 무엇일까. 5천 년의 역사에서 경기지역은 삼국시대에도 삼국 통일의 기반이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끝내 한강을 차지한 신라에 의해 통일이 됐다.통일 이후 중국과 교통하는 국제 교통로로 개방성의 중심에 있었다. 고려시대 역시 건국 주체가 경기지역 출신이다. 서해와 예성강을 아우르는 송도를 기반으로 하는 해상세력 왕건과 연천과 철원을 기반으로 하는 농림 세력 궁예의 대결은 왕건의 승리로 마감되면서 새로운 국가 고려가 건국됐다. 조선의 건국 역시 경기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신진사대부들과 무장 출신의 이성계의 결합이 경기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무능과 부패로 얼룩진 구 왕조를 물리치고 새로운 국가를 창출했다. 이로 볼 때 경기지역은 우리 역사에서 건국의 중심축이자 문화와 교류의 종심지이다. 이를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경기지역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경기 지역만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상은 과연 무엇일까. 물론 경기지역은 수도 서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과연 경기지역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조선후기 실질적인 주자성리학의 중심지는 서울과 경기지역이 아닌 퇴계학통의 근원지인 영남이고 율곡의 학통을 계승한 우암 송시열 학문의 근원지인 호서이기도 했다. 이들은 수도가 아닌 지방이지만 산림(山林)으로 서울의 관료들을 지배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경기지역이 주자성리학의 중심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기지역의 정체성과 사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국가 전체의 개혁을 주도하면 민산(民産)을 풍부하게 하고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실학(實學)에 있는 것이다. 더불어 실학을 기반으로 열려 있는 사고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에 있다. 이러한 실학과 개방성은 다른 지역에서 드러나지 않은 경기지역만의 독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실학을 조선후기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학품만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학이란 말 그대로 시대에 맞는 실질적인 실용지학(實用之學)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초기 주자성리학도 실용지학이 될 수 있었고 그 학문을 익혀 경세가로 활동한 이들은 모두 실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경기지역은 건국의 주체 지역으로 백성을 위한 위민정책을 만들기 위한 실학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경기지역은 특유의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다. 개방성이란 외부적 개방성과 내부적 개방성을 들 수 있다. 외부적 개방성이란 대외교류의 추진 및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내부 개방성이란 주자성리학만이 아닌 다양한 학문 사상을 수용하고 자신이 신분을 뛰어넘는 발상과 행동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농공상(士農工商) 체제하에서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구성을 추구하는 것과 양반사대부의 특권을 내려놓고 이를 통해 실용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기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중국과 교통하는 개방성을 갖고 있는 지역이었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이후 대당 무역기지로서 강화의 혈구진과 남양의 당성진을 이용했다. 이와 같은 교통로는 중국과 무역을 통해 선진 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특히 경기지역은 정치적 중심지가 되면서 아울러 경제의 중심지가 되어 물자유통이 활발히 이뤄졌다. 역대 왕조들은 전국에서 세금을 거두어 다시 분배하는 체제를 취했기 때문에 고려시대 이래 수도를 둘러싼 경기지역은 역로(驛路)와 조운(漕運)이 발달해 물자유통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경기지역은 국토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한강ㆍ임진강 등의 수로교통이 발달해 지리적으로 경제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역시 경기지역은 수도인 한성부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해상과 육로 등 주요 교통로와 직접 연결돼 발전했다. 육로는 한성을 중심으로 하여 방사선 모양으로 전국에 뻗어나갔는데 경기도는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간 경유지로서 기능을 했다. 이러한 지리적 요인 때문에 경기지역의 도시는 예성강 이북 지역의 도시나 금강 아래 지역의 도시들에 비해 훨씬 빠른 성장을 가져왔다. 특히 경기지역은 조선 후기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물류의 유통이 존재했다. 광주의 송파장은 영남에서 충청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한강변의 유통 거점이었다. 특히 송파장은 서울의 시전상인이 갖고 있는 금난전권(禁難廛權)이 적용되지 않게 설정한 곳이어서 시장의 활성화가 촉진됐다.양주의 누원점은 서울에서 원산과 함경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형성됐고 안성은 영남로와 호남로를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해 충청도와 전라도의 토산품이 집하되는 지역이었다. 특히, 중국과의 교통이 편리하여 일찍부터 대외무역을 비롯한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개성의 송도상인(松都商人)은 세계 최초의 복식 부기인 송도사개문서를 작성할 정도로 탁월한 상업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경기지역은 일찍부터 실용적 사고가 발전할 수 있었다. 지리적 측면에서 강과 인근해 있으면 강을 통해서 성장하는 특유의 개방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개방성은 자연히 경기지역을 발전시켜 조선후기에는 교하, 양근, 가평, 여주 등 서울에서 100리권인 원교(遠郊)의 범위를 벗어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경읍(京邑)’이라 불렸다. 경기지역은 조선 건국을 전후해 지역의 문화가 실용적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당대인들이 실학으로 평가하는 성리학의 등장이었다. 고려 말 불교의 폐단은 극심했다. 이러한 불교의 폐단으로 인해 이제현과 정도전 그리고 권근 등은 성리학의 ‘인의충신(仁義忠信)’ 등의 수기(修己)와 충효를 비롯한 오륜과 육예(六藝)의 학습으로 제가(濟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고려말 조선 초기 성리학자들은 성리학을 실학이라 규정짓고 불교와 한당(漢唐) 유학을 대신해 새로운 국가 수립의 기반으로 삼았다. 이러한 실학으로 인하여 조선 건국 후 국가 체제를 수립하고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사상으로 인식했다. 조선 초기 경기지역의 대표적 행정가이자 사상가인 황희는 성리학을 실학으로 인식하고 세종대 실용적 경세사상을 보여주었다. 그의 경세사상의 핵심이 ‘인권존중과 민본의식, 개혁을 통한 백성의 불편과 고통 해소’를 목표로 하고 있음과 더불어 구체적인 경세 정책으로는 ‘기강 확립 방안, 치안과 국방강화책, 빈민구제책, 교육정책, 언론과 여론 중시’의 5가지 측면으로 나타났다. 황희와 같은 파주 지역 출신인 율곡 이이 역시 실학을 추구한 인물이었다.율곡은 경세학을 추구한 인물로 실천이 수반되지 않으면 학문과 지식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학문은 실천적으로 현실에 적용돼야 그 존립 기반이 확보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이이는 성리학 전성기와 실학의 맹아기에 위치해 성리학을 하면서도 실학적 사유에 앞장섰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율곡 사상의 특성은 이후 전개된 경기지역 사상가들의 학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으며 영남 유학의 단조로움과 달리 다양성을 중시하는 학풍의 전개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조선 초기 경기지역 사상가들의 현실적 사상을 계승해 이원익과 김육의 공동체론을 바탕으로 대동법이 등장했고 박세당의 개혁사상이 등장했다. 또한 이 대동사상을 기반으로 미수 허목, 성호 이익, 순암 안정복 녹암 권철신으로 이어지면서 개혁사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들의 사상을 이어 정조시대에는 채제공, 서명응, 강세황, 홍양호, 서호수, 이가환, 박제가, 서유구, 정약용 등 경화사족 출신 ‘실학자’ 들이 정조의 탕평정치에 힘입어 당색과 신분의 차이를 넘어 함께 조정에 포진해 개혁을 주도했다.이들은 정조를 보좌해 학문과 문화예술의 발전을 도모했으며 개혁의 시범도시이자 실학의 도시로 화성신도시를 건설했다. 화성에는 그들이 구상했던 개혁론을 실제 정책으로 입안해 시행했으며 그 결과 ‘양반 상인론’과 ‘국영 시범농장론’ 같은 상업과 농업 진흥책이 실현됐다. 결국 경기도의 사상과 사상가들은 백성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만들고 학문과 사상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1년간 본보에서 21세기 경기도의 발전을 위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마음으로 근대 이전의 경기지역 사상가들과 그들의 사상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예전의 역사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이전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경기도와 한국 사회를 발전시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지역의 사상과 사상가들을 연구하는 중진 학자들과 함께 깊이 있으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연재를 할 것이다. 독자제현(讀者諸賢)의 기대와 성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김산 홍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