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교권조례, 불발되나' 안건 심의 파행…15건 향방도 미지수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를 하나로 묶은 통합조례가 경기도의회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관련 단체와 교섭단체 양당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조례안을 심의할 예정이던 상임위는 파행됐고, 심의에 오를 예정이던 15개 안건의 처리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1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예결산안 심사에서 가까스로 회의를 연 교육기획위원회는 이날로 예정됐던 안건 심의를 개최조차 하지 못했다. 교사 단체들의 극렬한 반대 속에 ‘경기도교육청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통합조례안)’의 미상정을 당론으로 정했다는 더불어민주당과 조례안이 교기위 논의를 통해 도출된 결과인 만큼 상정 후 가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국민의힘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맞서면서다. 교기위원들은 당초 오전 10시 개회하기로 한 의안심의를 미룬 채 장시간 논의를 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하면서 이날 회의는 취소됐다. 20일 교기위 2차 추가경정 예산안 관련 회의가 예정돼 있긴 하지만, 이 회의에서 조례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통합조례안을 제외한 14건의 안건 역시 처리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들 안건 중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가 혼자 살아 남았다는 자책감에 사망한 단원고 고(故) 강민규 교감을 희생자로 지정할 근거인 ‘경기도교육청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추모의 날 지정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과 사이버 학교폭력 등에 대한 정의를 담은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마사토 운동장의 비산먼지 발생 정도 등을 검사할 근거가 되는 ‘경기도교육청 친환경 운동장 조성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등이 포함돼 있다. 만약 계속해 양당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15건의 조례안 자체가 후반기로 밀리는 상황도 가능한 셈이다. 이 경우 해당 조례안은 입법예고부터 모든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 때문에 도교육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도의회 내부의 중론이다. 민주당도 통합조례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닌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조례안이라는 점 때문에 안건을 상정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도교육청은 도의회, 교원 단체 등을 상대로 통합 조례안의 목적 등을 다시 설명, 설득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여전히 새 조례안이 기존 학생 인권, 교권 보호 조례 축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권리 축소가 아닌 확대를 위한 조례안인 만큼 이번 정례회 기간 내에 조례안이 상정될 수 있도록 도의회와 교육 구성원에 대한 설득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전거·보행자 뒤섞인 산책로… ‘위험한 동행’ [현장, 그곳&]

19일 오전 10시께 성남시 분당구의 탄천. 이곳은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구분돼 있지 않아 자전거가 길을 걷는 보행자들 옆으로 쌩쌩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산책로를 달리던 자전거 중 일부는 보행자의 진행 방향을 넘나드는 아찔한 상황도 연출됐다. 주민 이솔희씨(38)는 “이전에 산책하다가 자전거와 부딪혀 팔꿈치가 까진 적도 있다”며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를 명확히 구분해 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오후 2시께 수원특례시 권선구 세류동의 수원천 산책로도 상황은 마찬가지.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겸용으로 설치돼 있었다. 한 보행자가 먼저 걷고 있던 비좁은 길을 자전거가 빠르게 지나가려고 하자 깜짝 놀란 보행자는 재빨리 몸을 피하며 인상을 쓰기도 했다. 보행자와 자전거가 서로 경계하며 피해 다녀야 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이었다. 경기도내 10곳 중 8곳 이상의 산책로가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해 구분돼 있지 않아 시민들이 사고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경기도,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경기지역에 설치된 자전거 도로는 5천516노선에 총 길이 5천829km이며, 이중 4천948노선, 총 길이 4천831km가 자전거·보행자 도로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는 자전거와 보행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을 말하며, 한강이나 탄천 같은 산책로에 대부분 설치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책로가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 구분이 안 돼 있는 데다 안전 대책까지 미비해 보행자들이 사고, 부상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19~23년) 경기지역내 ▲자전거 사고 발생 건수 ▲부상자 ▲사망자는 각각 7천223건, 7천909명, 96명으로 집계됐다. 매년 1천400건 이상의 사고와 1천500명 이상의 부상자, 19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의 구분을 명확히 해 달라는 민원이 있지만, 도로마다 관리 부처가 제각각이고 부처마다 예산 등 여건이 달라서 일괄적인 개선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외부 활동 여건이 좋아져 산책로에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자전거 사고는 치명적인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근본적으로 자전거 전용 도로 확보가 좋은 방법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공간적인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며 “주의 표지판이나 분리대, 경계석 등을 설치해 도로를 구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 관계자는 “법적으로 도로의 주무부처가 다 달라서 일괄적으로 개선에 나서긴 어렵다”며 “반복적으로 민원이 접수되거나, 위험한 도로들은 각 주무부처에 표지판이나 분리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권고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인천 송도 자원순환센터 현대화 ‘쏠린 눈’

인천 연수구 송도자원순환센터(소각장) 현대화에 따른 구체적인 폐기물 처리 용량 등 분석 결과가 다음달 나올 전망이다. 인천시는 만약 송도소각장의 규모가 늘어날 경우에 대비해 주민들에 대한 인센티브 등 후속 조치 검토에 착수했다. 19일 시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다음달 초 송도소각장 현대화 사업에 대한 소각장 용량과 조성 비용 등 타당성 조사 결과를 확정해 시에 전달할 예정이다. 시는 옹진군 영흥도와 연수·남동·미추홀구의 폐기물을 맡고 있는 송도소각장이 낡아 제 성능을 내지 못하자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송도소각장은 1일 최대 540t의 용량을 처리할 수 있지만, 노후화로 현재는 480여t에 그친다. 시는 또 미추홀구 용현·학익 지구 등 인근 인구가 늘어나면서 폐기물 반입량이 증가하자 소각 용량 확보를 위해 이 같은 현대화 사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송도소각장의 폐기물 반입량은 지난 2019년 13만643t에서 지난해 14만6천164t으로 증가했다. 다만 시는 KDI가 송도소각장 현대화로 충분한 소각 용량 확보가 어려울 경우, 증설 등의 결과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시는 만약 KDI가 소각 용량 증설이라는 결과를 내놓을 것에 대비,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데 행정력을 모을 계획이다. 현재 송도 주민들은 악취 등을 우려해 송도소각장의 처리 용량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시는 다음달 초 KDI로부터 송도소각장 현대화 사업비 등의 결과를 받으면, 곧바로 주민 간담회를 열고 송도 등 연수구 주민들을 위한 인센티브와 사업 계획을 마련해 간담회에서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송도 주민들의 우려를 알고 있지만, 만약 KDI 용역 결과에서 증설이 불가피하다고 나오면 주민 설득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에게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이해를 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비만 오면 물바다… 또다시 드리운 ‘침수 악몽’ [반복되는 반지하 수난시대 上]

‘극한 호우’. 2022년 기상청이 만든 이 단어가 올해 대기 불안, 해수면 온도 상승 탓에 재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22년은 극한 호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 가구에서 발달 장애인과 그 가족이 고립,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한 해기도 하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는 반지하 피해 최소화, ‘반지하 퇴출’을 위한 대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상당수 반지하 주민은 여전히 그곳을 떠나거나 침수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일보는 올해 첫 장마에 앞서 반지하 가구의 현실과 정부, 지자체의 대책을 긴급 점검해 본다. 편집자주 “올해도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19일 오전 고양특례시 일산서구의 한 빌라촌. 반지하 가구가 모여 있는 이곳은 여름철 장마 때마다 크고 작은 침수 피해를 겪지만 어디에도 물막이 시설이나 배수펌프 등 침수 방지 시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창문 앞 엉성하게 기대 놓은 판자가 침수에 유일한 대비책이다. 주민들은 2년 전, 그리고 지난해 침수 피해 이후에도 특별히 체감할 만한 대책이나 지원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26년 동안 반지하 주택에 살고 있다는 남인수씨(60·여)는 “이곳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금세 창문으로 물이 폭포처럼 내려오곤 한다”며 “임시방편으로 창문 앞을 판자로 막아놨지만, 올여름 폭우가 쏟아지면 침수 피해는 반복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동두천시 불현동의 반지하 주택들도 폭우 대비가 허술한 모습이었다. 빌라 벽면에 ‘침수 우려 지역이니 침수 방지 대비용 모래주머니를 사용해 달라’는 현수막이 붙었지만, 그조차도 열악한 형국이었다. 수원특례시 권선구 고색동의 반지하 주택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2년 전 폭우로 반지하에 물이 차면서 주민들은 가재도구 대부분을 잃었지만, 일대 주택 20여곳 중 물막이 시설이 설치된 곳은 단 한 곳뿐이었고 배수 시설 역시 찾아볼 수 없었다. 기상청이 올해 많은 비를 예고했지만 경기도 내 침수 방지를 준비한 반지하 주택은 극히 일부에 불과,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대목이다. 경기도가 집계한 도내 반지하 주택은 지난해 기준 13만6천38가구다. 하지만 침수 방지시설이 설치된 도내 반지하 주택은 5천200여 가구로 3.8%에 불과한 실정이다. 도 관계자는 “건물 주인들이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침수 방지 시설 설치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해 침수 방지 시설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반지하 침수 피해 시설 조성은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선제 조사한 뒤 적극적으로 개입해 침수방지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획취재팀

‘반쪽짜리’ 반지하 조사·정책… ‘사후약방문’ 되풀이 [반복되는 반지하 수난시대 上]

경기도의 반지하 주택 실태 조사, 주거 상향 정책이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올해도 수해 후 피해 가구를 지원하는 ‘사후약방문’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도의 이사비 지원, 전세자금 무이자 융자 정책은 반지하 가구의 낮은 경제력을 보조하지 못한 탓에 저조한 수요를 보이고, 아직까지 침수 위험 반지하 주택에 대한 실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아 선제 지원과 핀셋 지원 모두 어렵기 때문이다. ■ 현실과 먼 지원 정책에…저조한 주거 상향 지원 사업 1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풍수해 대비 종합대책’ 발표를 통해 침수 우려가 있는 반지하 가구의 이주비 지원 대책을 진행한다. 반지하 주택 3천가구에 가구당 최대 40만원의 이사비를, 3개월 이상 거주자에게 최대 5천만원의 전세 보증금을 무이자로 융자해주는 게 골자며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4월 말 기준 지원을 받아 이주한 반지하 가구는 556가구에 불과, 목표했던 3천가구의 18%가량만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의 경우 4천90가구 지원을 목표로 16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지만, 실제 지원을 받아 이주한 반지하 가구는 1천914가구(46%)로 목표치의 절반을 밑돌았다. 도의 반지하 가구 이주비 지원 사업 실적이 저조한 데에는 반지하 주택 거주자의 74.7%가 저소득층인 점이 꼽힌다. 이주비가 모자란 데 더해 이주 이후 주거 비용 또한 부담으로 작용해 선뜻 이주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경기 지역 지상층 다세대 가구 평균 월세는 2022년 기준 47만원, 반지하는 38만원으로 23%의 격차가 있다. 올해의 경우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경기 지역 신축 5년 이하 빌라의 평균 월세는 63만3천원으로 집계됐다. 이어 ▲5년 초과~10년 이하(54.5만원) ▲10년 초과~20년 이하(52.6만원) ▲20년 초과~30년 이하(52.5만원) ▲30년 초과(49.4만원)가 뒤를 이었다. 지난해 전세 사기 여파로 전세 수요가 줄고 월세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지하 가구의 주거 상향 대안인 다세대 가구의 월세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거주자가 지상층으로 이주하면 최장 72개월동안 월 20만원씩 월세를 지원하고 있지만 경기도는 별도의 월세 지원책은 없는 상태다. 전세 시장의 경우 지난달 도 발표에 따르면 연립·다세대 전세가율이 올해 매매가 대비 평균 68.9%를 보였지만, 안성(93.9%), 용인 수지(92.2%), 안양 만안(82.1%) 등 일부 지역에서는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세가 자체가 높아진 데 더해 ‘깡통 전세’ 위험성도 상승, 반지하 거주민의 이주 장벽이 높아진 셈이다. 더욱이 반지하 거주민의 74.7%는 저소득층으로, 이들의 평균 소득(182만원)은 지상층 거주민 평균 소득(351만원)의 절반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이주비 40만원은 국토교통부의 지침이며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증액할 수 없다”며 “반지하 가구 지원 외에도 여러 주택 관련 정책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에 이주비 지원 금액 상향 등 추가 재정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조사·예산 부족에…침수 우려 반지하, 가용 임대 주택 모두 ‘깜깜이’ 이런 가운데 이사 비용, 전세 보증금 지원, 공공 임대 주택 확충 등 사업의 낮은 성과가 부정확한 실태 파악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기 방치 빈집을 매입, 임대 주택 조성을 거쳐 공급하거나 이주 비용을 지원하는 것 모두 한정된 재원으로 진행되는데, 경기도는 가장 지원이 절실한 침수 위험 가구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는 2022년과 지난해 ▲반지하 주택 신축 허가를 제한하도록 하는 ‘반지하 주택 주거 환경 개선 방안 협약’ 맺고 ▲장기 방치 빈집을 매입해 공공 임대 주택을 조성, 공급하며 ▲도시 재생 사업 지역 내 반지하 주택을 임차, 매입해 주민 공동 이용 시설로 시범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원의 한계와 정확하지 않은 지원 대상 가구 조사 결과가 겹치며 가시적인 성과가 도출되지 않고 있다. 경기연구원은 지난달 2일 ‘침수 반지하주택 ZERO’ 보고서를 통해 반지하 주택을 주거 가능 공간에서 일제히 퇴출하는 것은 거주민을 더 열악한 환경에 내몰 수 있는 만큼, 침수 반지하 주택에 초점을 맞춰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실제 전국 반지하 가구 54만5천389가구 중 25%인 13만6천여 가구가 도내 밀집돼 있고, 지난해 이 중 6.5%에 달하는 8천861가구가 침수 재해를 이미 겪은 상태다. 문제는 도가 침수 피해를 겪은 반지하 주택 현황은 파악하고 있지만 향후 침수 위험이 있는 반지하 주택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도가 집계한 침수 경험 반지하 주택 8천861가구도 침수 이후 신고를 토대로 확인된 건수로, 실제 침수를 겪은 반지하 주택이 집계치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올해도 침수 이후 현황을 파악하는, ‘사후약방문’이 반복될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침수 위험 반지하 주택에 대한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서울보다 인구 규모와 면적이 큰 경기도가 왜 조사를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마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인 만큼 가용 인력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위험 주택, 구역을 적극 발굴하고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반지하 가구 주거 상향 사업과 관련, “소극적인 이사 비용 지원에 머물기보다는 반지하 가구가 주거 상향이나 공공 임대 주택 입주 정책을 체감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사설] 핵심기술 국외 유출, 경제간첩죄 적용해 엄벌해야

산업 핵심기술의 국외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 생존은 물론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는 핵심기술 유출은 중대한 범죄다. 국부를 유출시킨 것이나 다름없고,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에 경제간첩죄를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 올해 1월 삼성전자 전 연구원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연구원은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의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시켰다. 빼돌린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 제조 기술은 반도체 기판 손상을 최소화하는 차세대 국가 핵심기술이다. 이를 협력사 대표와 직원 등 6명과 함께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설계도면을 중국에 넘겼다.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한 중국 국적 직원이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 화웨이로 넘긴 사례도 있다. 2013년 SK하이닉스에 입사한 이 직원은 2022년 거액의 연봉을 받고 화웨이로 이직했는데, 퇴사 직전 핵심 반도체 공정 문제 해결책과 관련한 자료를 3천여장 출력해 빼돌렸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 기업으로 핵심기술 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 어렵게 개발한 핵심기술을 중국 등으로 빼돌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다. 기술 유출로 인한 국부와 산업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 어렵다. 기술 유출을 막지 못하면 한국이 초격차를 유지해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몇 안 되는 분야마저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 경기남·북부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8~2023년) 경기도내 기술 유출 범죄 건수는 총 184건에 이른다. 연평균 30여건으로, 신고되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은 기술 유출 건수까지 합하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지해 있고, 그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국가 핵심기술을 가진 산업체가 상당히 많다. 각 기업이 핵심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2019년 기술 유출 범죄와 관련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지만 처벌이 상당히 미흡하다. 솜방망이 처벌이 산업스파이가 활개치게 만드는 이유로 꼽힌다. 법과 제도가 허술하면 규제와 단속을 해도 기술 유출 범죄가 끊이지 않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 해외에선 기술 유출 처벌이 강화되고 있다. 대만은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핵심기술 유출에 대해 ‘경제간첩죄’를 적용한다. 미국도 ‘경제 스파이법’을 통해 전략기술을 유출하다 적발되면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우리도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

[사설] ‘병원 불매’ 자초한 집단 휴진... 이제 그만 본래 자리로

지난 18일의 의료계 집단 휴진이 ‘대란’ 없이 끝났다. 전국 동네의원 5천379곳(14.9%)이 이날 휴진했다. 지난 2020년 의사 파업 때(32.6%)와 비교, 절반도 안되는 참여율이다. 사전에 집단 휴진을 신고한 곳은 전체의 4%였다. 그러나 이날 실제 15% 정도의 병원이 진료 파업을 했다. 인천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가천대 길병원과 인하대병원 등 대형병원들도 18일 정상 진료를 수행했다. 전국 8개 가톨릭대 의대 병원들은 당초 함께 휴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천성모병원도 최종적으로는 정상 진료로 방향을 잡았다. 사전에 인천시에 18일 당일 휴진을 신고한 의료기관은 46곳이었다. 전체 1천896곳 중 2.6% 수준이다. 그러나 이날 들어 실제로는 260곳의 인천 의료기관이 집단 휴진에 동참했다. 14.5% 정도다. 사전 신고는 없었지만 ‘의사가 아파서’ 등을 들어 병원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이날 꼭 병원에 갈 일이 없었던 시민들은 그냥 지나간 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나 고령자 등 건강취약계층에는 힘든 하루였다. 기침이 심해 동네 의원을 찾았던 한 노인은 뜨거운 날 헛걸음만 했다. 병원 앞에는 사유도 적지 않은 휴진 안내문이 내걸려 있었다고 한다. 전공의 의료현장 이탈 이후 ‘응급실 뺑뺑이’도 더 악화된 모양이다. 지난주 인천에서 50대 응급환자가 하루 종일 맹장염 수술을 받지 못해 헤맸다. 인천은 물론 서울·경기까지 이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전공의 사태 장기화로 병원들 상황이 전만 못하고 당장 수술할 의사도 없다는 등의 이유였다. 자포자기 상태의 이 환자를 인천의료원이 받아줬다. 입원 이튿날 오전 7시,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이 직접 수술에 나서 위기를 넘겼다. ‘병원 불매’는 이번 집단 휴진을 전후해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그간 은인자중하던 의료 소비자들이 맘카페 등에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서 집단 휴진에 동참하는 병원은 다 같이 가지 말자’, ‘이런 병원 공유해서 우리 동네서 장사 못하게 해야’, ‘파업하면 망하게 해줘야’, ‘오직 지 밥그릇 챙기는 생각하니 이제 불안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등등. 이번 집단 휴진은 자가당착, 자기모순의 혼돈만 확인시켰다. 갈수록 명분은 초라해지고 파업 동력도 급전직하다. 처음 국민건강을 위한 싸움이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양푼만 한 밥그릇 마냥 지키기’로 비친다. 제약회사 리베이트건으로 수사받는 의사가 1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바른 말 하는 어느 의사가 한마디했다. 의대 증원 1천509명이래야 15만 의사의 1% 정도라고. 더 길게 가다가는 사는 동네에서도 눈총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