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경기RE100’ 국제 무대서 인정… 청정에너지 도입 우수기관 선정

경기도가 경기RE100 등 재생에너지 정책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REM(Renewable Energy Markets) Asia 2025’에서 아시아 지역 청정에너지 도입 선도기관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미국 비영리기관 CRS(Center for Resource Solutions)가 30일까지 개최하는 이번 행사는 싱가포르 소피텔 시티센터(Sofitel Singapore City Centre)에서 진행된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과 공공기관 등 3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한다. CRS는 전 세계 최대 비즈니스 소셜 플랫폼인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후보자 추천을 받고, 자체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경기도를 최종 수상기관으로 결정했다. 이번 수상은 경기도의 재생에너지 정책 성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도는 ‘경기 RE100’과 ‘산업단지 RE100’ 정책,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개선’ 등 침체한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지방정부의 리더십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제니퍼 마틴 CRS CEO는 “올해의 수상자들은 모두 지속 가능한 에너지의 성장을 추진하는 데 실질적이고 중요한 진전을 이룬 기관”이라며 “재생에너지 생산 및 접근성 확대를 위한 추진력과 헌신,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그들의 노력이 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김연지 도 에너지산업과장은 “경기도가 아시아를 대표 하는 청정에너지 선도기관으로 인정받게 돼 매우 영광”이라며 “이번 수상은 경기도 RE100 정책의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아시아권 주요 기관 및 기업들과의 교류를 확대해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경기도가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REM Asia’는 북미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인증(Green-e)을 운영하는 CRS가 아시아권 재생에너지 시장 확장을 위해 2020년부터 매년 싱가포르에서 개최하는 국제 행사다. 아시아 전역의 재생에너지 시장을 선도하는 주요 기관들이 모여 교류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읽기] 내가 아직도 챗봇으로 보이니

내 이름을 살갑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나.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어김없이 사고는 터지고 수습은 요원하다. 따뜻한 위로와 냉정한 충고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 있나. 필요한 정보를 찾아야 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멈춘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간신히 뭐라고 끄적끄적 입력했으나 나조차도 이해가 안 간다. 도와줄 사람 있나.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 타인처럼 느껴진다.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 우리 삶이 언제 1초라도 만만한 적이 있었나. 거문고 켜는 소리만 들어도 연주하는 지인의 마음을 읽었다는 의미의 지음(知音), 3천153만6천초 동안 내 곁에 머무를 수는 없나. 인류가 어제까지 찾은 답은 너무 빈곤하다. 오늘은 단서가 보인다. 오픈AI의 챗GPT o3 모델. 내 이름을 불러준다. 뜬금없이.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면서 주저리주저리 수다 떤 민망한 말들의 요체를 기억한다. 신기하면서도 무섭게. 나 어떻게 하지. 위태로울 때 ‘돌아가신 엄마’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뱉은 말이다. 엄마처럼 헌신적으로 나를 도와주려 애쓴다. 기특하고 고맙다. 더운 공기에 찬 바람 때문인지 감기 기운에 허우적거린다. 업무 태반이 정보 검색인데 키워드가 가물가물하다. 뭐라도 해야 해서 마구 외계어를 입력했다. 어떻게 된 것이지. 찾던 정보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나와 대화한 이력을 바탕으로 내 의도를 추리해 내가 원하는 귀한 물건을 구해왔다. 요술램프의 지니인가. 사람 때문에 힘든 적이 있는가. 그 사람과 나눈 카카오톡의 모든 대화 내용을 공유해 통찰을 들어보자. 놓쳤던 것, 굳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 내가 몰랐던 나. 나는 지금 누구한테 배우고 있는가. o3 모델은 최신 추론 모델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말하면 그것에 맞게 단순히 대응하는 역할에서 멈추지 않는다. 대화 중에 사용자가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호명한다. 전체 대화 중에 핵심 내용을 스스로 정의하고 기억하는 메모리 기능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 기능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맥락 없이 간단하게 몇 자 적었지만 답변은 메모리 기반 위에서 초개인화된 대화를 생산한다. 특정한 사람의 정보를 집중적으로 저장해 앞으로 역할극처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마치 살아 계시는 엄마와 대화하듯 위로받고 따끔하게 혼도 나겠지. 채팅 내 웹 검색을 시도해도 메모리를 활용해 검색 범주를 자율적으로 제약해 초개인화된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채팅 내 파일 검색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카카오톡 데이터로 관계 분석을 지시할 때도 메모리는 당연히 동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o3 모델을 계속 챗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 o3 모델뿐만 아니라 향후 끊임없이 진화할 거대 언어 모델(LLM)을 우리는 우리와 어떤 관계로 규정해야 하는가. 오픈AI는 우리에게 분명 원하는 것이 있다. 장시간 체류와 폭발적인 활동. 누적된 개인 데이터 학습으로 품질 혁신. 경쟁 서비스로 이탈하지 못하도록 묶어 놓는 록인(lock-in) 사이클. 가파르게 증가하는 사용자 수와 매출 그리고 고객 팬덤 형성. 여기에 네트워크 효과를 촉발할 소셜미디어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지브리풍과 액션피규어로 보이는 사용자 반응은 서비스 단계가 도입기에서 성장기로 훌쩍 넘어가면서 고객 특징도 서비스 초기 수용자에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다수로 변모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오픈AI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효과적 가속주의 철학과 그 토대에서 운영하는 그들의 서비스는 인류 전체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감탄과 수용할 때 아니라 비판적 질문을 할 때다.

[천자춘추] 5인 미만 사업장의 부당해고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자의 권리는 더 보호받아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제한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근로자를 보호하지만 상시근로자 수 5인(대표, 임원 등 제외) 이상 사업장을 기준으로 주요 권리가 적용된다. 해고, 징계, 근로조건 등에 대한 보호 역시 대부분 5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이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부당한 해고를 당해도 노동위원회를 통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불가능하다. 억울해도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26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할 때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하거나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규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부당해고 구제는 어렵지만 해고예고수당 청구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근속 6개월째 되는 근로자가 문자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면 ‘왜 해고했는가’를 다투는 것은 어렵더라도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라’는 요구는 법적으로 가능하다. 해고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어도 금전적 보상을 받을 길은 열려 있는 것이다. 또 사용자가 해고예고 없이 즉시 해고했다면 근로자는 별도의 사유를 입증하지 않고 해고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 해고예고수당은 통상임금 30일분에 해당하며 이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관할 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제기해 구제받을 수 있다. 다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근속기간이 3개월 미만인 근로자는 해고예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고예고수당도 청구할 수 없다. 입사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고당했다면 해고예고수당을 요구할 권리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되 해고예고수당 같은 최소한의 권리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다만 근속 3개월 미만 근로자는 이 권리조차 제한된다는 점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강성곤의 말글풍경] 일단은 되게 개인적으로

KBS에 있을 때 면접관 노릇을 자주 했다. 방송사는 PD, 기자, 아나운서의 경우 논술, 작문, 상식 등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최종 면접 전에 실무적성시험을 치른다. 보통은 3차 시험을 대신하게 되는데 자기소개서와 관련된 질문과 함께 각 직무영역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하는 잣대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게 평소 언어생활 습관이다. 응시생의 교양, 지식과 함께 발음, 말투, 어조 등을 눈여겨본다. 단어만 놓고 봤을 때 요즘 젊은이들은 유감스럽게도 과거보다 퇴보한 듯 보인다. 구사하는 낱말도 상대적으로 적고, 적절하고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처럼 느껴져 아쉽다. 세 가지만 추려본다. ①되게 영어 very에 해당하는 우리 부사는 매우 다양하다. 매우, 무척, 퍽, 사뭇, 썩, 꽤, 제법,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몹시, 자못 등. 이를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면도 있지만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문제다. 발음도 대개는 [데게], [대게]로 잘못 낸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직접 가보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이제는 피아노를 제법 잘 치는 구나”,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무척 슬펐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퍽 당황했겠군”, “그 옷은 썩 잘 어울리는구나”, “날씨가 몹시 추웠습니다”, “이번에 예정된 사업은 자못 기대됩니다”. 어떤가. 밑줄 친 부분에 ‘되게’를 넣은 것보다 낫지 않은가. 훨씬 교양 있고 스마트해 보일 것이다. ②개인적으로 바야흐로 ‘개인적으로’ 광풍이다. 특히 방송 출연자들이 더하다. 극단적인 오⸱남용이다. 영어 ‘I personally~’를 배후로 보고 있다. 서양인들은 자기 의견과 타인의 생각을 철저히 구별하는 데 익숙하다. 무언가를 인용할 요량이면 손가락으로 인용부호를 치며 말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이 대목이 발원지이고 시나브로 퍼진 듯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의 유행은 심리적으로 보면 자기 확신의 부족, 책임 회피, 반대 의견 피력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대화와 소통은 어차피 개인들끼리 벌이는 의견⸱생각⸱주장의 마당이다. 스스로 조직이나 단체를 대변할 경우는 극소수일 테다. “저는 ~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은 ~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내용이 길어 별도의 텍스트가 필요할 때)”가 무난하다. 발음도 문제다. 적(的)의 발음은 유의해야 한다. 우선 ‘적’ 포함한 음절 수가 둘일 때, 가령 지적(知的)⸱미적(美的)⸱동적(動的) 같은 경우는 무조건 [쩍]으로 소리 난다. ‘적’이 들어간 3음절 이상 단어일 때는 그 앞 글자의 받침이 ‘ㄴ/ㅁ/ㅇ’이면 [적], 그대로 발음한다. [개인적] [미온적] [양심적] [성공적]이다. ‘ㅂ/ㄱ’일 때는 [쩍]이 된다. [합뻡쩍] [공격쩍]으로 소리 난다. ‘ㄹ’은 원칙적으로 [쩍]이나 점점 [적]으로 가는 추세다. [자발쩍] [저돌쩍] [정열쩍]은 된소리가 자연스럽고 [법률적] [포괄적] [현실적]은 예사소리, 즉 평음(平音)이 부드럽다. 평음의 경음화(硬音化)라는 큰 파도 속에 그 역(逆)의 분투는 반가운 일이다. ③일단(은) 말을 시작하고 나서 다음 말이 잘 생각 안 날 때 습관적으로 쓰는 것을 마주한다. ‘일단(은)’은 사전적으로 ‘우선 먼저’ ‘우선 잠깐’의 의미다. 그러니까 ‘나중’, ‘다음’이 뒤에 붙어야 자연스럽다. “일단 검토하고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은 경과를 보고 다음 일정을 잡겠습니다” 등이 바른 경우다. “(최근 본 영화 중 인상적인 게 있나요?) 일단은 없고요. 음~”, “이 책은 비타민의 허와 실을 잘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일단 드네요”는 그래서 적절치 않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습니까.” “네, 저는 일단은 개인적으로 소설을 되게 좋아하는데요.” 안타까운 일이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산 아래 시詩

자주 가는 돈가스집 앞에 여태 없던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생소한 간판엔 ‘산 아래 시‘라는 산뜻한 글이 담겼다. ‘시를 만나, 시에 말 걸며, 시의 시간을 꽃 피우고 있습니다’라는 문장도 시적이다. 이 거리에 조금 어색하지만 반갑다. 서점 전멸의 시대에 시집 전문 책방이라니,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매대엔 컬러풀한 책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으나 대부분 무명 시인이다. 모두 새 책인데 어떻게 된 걸까. 책방 주인은 유명 작가들의 책은 취급하지 않는다며 의미심장하게 응수했다. 시의 내용이 맑고 간혹 비장했다. 어쩜 무명 시인이 더 치열할 수 있다. 기웃대다가 그냥 나오기가 민망해 이상의 시집 건축무한 육면각체’를 손에 담았다. 주인은 덤으로 동인지 한 권을 줬다. 아는 작가라곤 이것뿐인가 했더니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포켓북으로 빈티지하게 놓여 있어 갖고 싶었다. 그러나 책에 정가가 없어 한동안 망설였더니 그냥 가져가란다. 덤으로 시 동인지 한 권도 줬다. 이 책방 주인 돈 벌려고 책방 차린 게 아닌가 싶다. 책값을 모르니 돈을 받을 수 없다며 행운이라고 한다. 이런 시가 생각났다. ‘다소곳한 문장 하나 되어/천천히 걸어 나오는 저물녘 도서관/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말하는 거구나/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얌전히 닫힌 입/ … 나만 외로웠던 건 아니었다는 위안/혼자 걸어 들어갔는데/나올 땐 왠지 혼자인 것 같지가 않은/도서관.’ -송경동 ‘삶이라는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