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버들개지와 등산객

[포토뉴스] 새학기 앞두고 참고서 구매하는 사람들

[인천의 아침] 보답

얼마 전에 의학과 1학년의 해부학과목에서 얼굴신경에 대해 강의를 했다. 해마다 그렇듯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내가 말하는 내용을 스펀지같이 받아들이려는 학생들의 열의에 찬 눈동자를 보면서, 나는 늘 이들을 좋은 의사로 만들고 싶었다. 어느덧 이번 학년도의 해부학 수업이 끝나, 최근 해부실습실에서 열리는 시신기증인 합동추모제에 참석했다. 제단에는 이번 학기에 시신을 기증한 8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해부학 주임교수의 인사가 끝나고 학생들이 조별로 나가서 꽃을 바치고 묵념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적막하였다. 옆에 앉은 부학장과 의학교육실장에게 나지막하게 음악이 있었으면 좋겠네요하고 말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내년에는 꼭 준비하겠어요 둘째 조의 헌화가 시작했다. 그 적막을 견딜 수가 없었다. 맨 뒷줄에 앉았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노래를 불렀다.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쉬리라, 어두운 이 밤에 바람 부나 마지막 조의 묵념이 끝날 때 2절이 끝났다. 곧 내빈 인사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갔다. 나는 여러분은 시신을 기증하신 분들에게 빚을 진 셈입니다. 이분들에게 보답하려면 여러분이 좋은 의사가 되어야 합니다고 했다. 이는 나의 박사 지도교수인 백상호 교수가 쓴 좋은 의사를 만드는 길이라는 논문 중에 있는 문구다. 좋은 의사는 기준 이상의 임상 능력과 바른 직업관, 높은 신뢰성을 가지도록 키워야 한다. 좋은 의사는 한 개인의 성품, 교육, 직업관, 제도, 자기노력이 톱니처럼 물려서 완성된다. 좋은 의사로 만들려면 대학에서는 정성과 교육기술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키워야 된다. 좋은 의사 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실천을 통한 의식의 변화, 그리고 교수의 롤 모델이다. 이 같은 내용을 요약해서 학생들에게 전해줬다. 이러다보니 이 학생들을 좋은 의사로 만들려면 의학지식, 임상술기, 태도를 가르쳐야 하며, 무엇보다 내가 먼저 좋은 의사의 역할을 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더 커지기도 했다. 또 앞으로 이 학생들과 3년간 같이 지내며, 이들이 졸업할 때 정년퇴임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더 무거워진다. 종일 외래 진료실에 앉아있다가 또 지하의 해부실습실에 있었더니 푸른 하늘이 보고 싶어진 탓에, 한하운 시인의 파랑새가 떠올랐다. 이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라는 시구를 읊으며 인사말을 마무리 했다. 이제 육신이 예비 의사들의 손에 해부되어 이 세상의 하실 일을 마무리하신 기증자들의 영혼이 푸른 하늘 푸른 들을 날아 안식을 얻기를 기도한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아침을 열면서] 3·1절 그날의 함성은

1919년 3월1일 오후,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다. 이와 동시에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스스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나와 만세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전국 곳곳에서도 조선 독립을 외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었다. 3ㆍ1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3ㆍ1운동은 우리 민족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독립운동이다. 독립선언이 있던 3월1일 이후 두 달간 1천500여회 시위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있었고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엇이 있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총칼로 무장한 일제의 서슬 퍼런 강압에 맨몸으로 맞설 수 있도록 했을까.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3ㆍ1 독립선언문 속에서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3ㆍ1 독립선언문에는 한 나라의 자주적 시민으로서 우리 민족 모두의 나라가 담겨 있다. 선언문에서는 반상(班常)의 구별도, 남녀(男女)의 구별도, 직업의 구별도 없다. 오직 조선의 독립과 자주적 시민만이 있을 뿐이다. 독립 만세를 외치는 모두의 나라가 담긴 것이다. 그 속에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民主)적 가치와 구성원 전부가 지향하는 공공의 선을 따르는 공화(共和)적 가치가 모두 담겨 있다. 이는 일제의 강압을 넘어선 우리 민족 모두가 나아가고자 하는 분명한 지향점이었고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치였다. 그날의 함성이 주는 울림이 백년의 시간을 넘을 수 있는 이유다. 3ㆍ1운동이 있은지 꼭 102년이 되는 날이다. 3ㆍ1운동의 의미에 비춰 최근 경기도 공공기관의 이전 결정을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공공기관 이전 결정은 민주적이지도, 도민 모두의 바람을 담지도 못했다. 오히려 경기도의 갑작스런 이전 발표로 도민들의 혼란만 부추겼다. 남부와 북부 간의 이견이 표출되고 있으며 공공기관 유치를 위한 각 시ㆍ군 간 경쟁 역시 가열되고 있다. 이는 경기도 공공기관 이전 발표가 도민 모두의 바람과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 반쪽짜리였음을 보여준다. 경기도 균형발전이라는 도민 모두의 공감대가 있음에도 말이다. 경기도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담아낼 더 큰 그릇이 필요하다. 민주적이지 못한 결정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문제를 낳는다. 균형발전이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의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더 나은 결정과 더 발전된 미래를 그릴 수 있다. 결코 혼자 먼저 가서는 성공할 수 없다. 3월1일 그날의 함성이 우리 후손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장현국경기도의회 의장

[사설] 처음으로 감소한 국내 인구, 특단의 대책 절실하다

지난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통계(잠정)는 가히 충격적이다. 인구감소가 예상되기는 했지만,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국내 인구는 3만3천명 자연 감소했다. 우리나라 인구가 출생아 수(27만2천400명)보다 사망자 수(30만5천100명)가 더 많아진 인구 데드크로스현상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도 0.84명으로 전년 대비 0.08명 줄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평균 1.63명) 중 합계출산율 1명 미만은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지난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결혼 자체가 줄어든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금년 역시 더욱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특단이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국가소멸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세 차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통해 총 225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저출산 최악이라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말 2025년까지 추진할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안을 내놨지만, 과거의 대책과 비교해서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는 천편일률적으로 저출산의 원인으로 노동시장 격차, 청년실업률, 집값, 교육비, 여성 경력단절 등을 거론하면서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이 근본대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강조한 해법이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인구절벽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연일 검찰개혁,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니 하면서 정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젊은이들이 출산과 결혼을 꺼리는 이유는 모두 알고 있다. 결혼을 해도 조그마한 아파트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에 그들에게 결혼을 하라고 설득해도 소용없다. 설령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고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지금과 같은 방식의 아동수당 지급이나 육아휴직 지원 정도의 대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까지 시행했던 저출산 해결책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에게 아이를 낳고 기를 환경을 만들어주는 절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과거의 진부한 정책에 대한 실패를 인정하고 과감한 정책을 효과적으로 실시해야 된다. 무조건 돈이나 쏟아 붓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정책을 가지고는 인구 절벽을 해결할 수 없다. 좋은 일자리, 신혼부부 주거 대책, 가정과 일의 양립, 양성평등, 돌봄인프라 확충,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정상화 등이 해결돼야 한다.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따른 가족 형태에 맞춘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저출산 정책이 나와야 한다. 보편 증세를 통한 대대적인 복지 개편이나 이민청 신설을 통한 이민 확대 등 과감한 전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지지대] ‘비폭력 신념’ 병역거부

우리나라 병역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특정종교 신도가 많다. 국회는 2019년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역 신설과 관련한 병역법을 통과시켰다. 대체복무제는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최근 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비폭력ㆍ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것이 정당한 사유라고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례다. 윤리도덕철학적 신념에 의한 경우라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면 예비군법이 정한 정당한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모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차례 예비군훈련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오씨는 어릴 적 폭력적 성향의 아버지를 보며 비폭력주의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보고는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역을 거부하기로 했지만, 홀어머니의 설득에 못이겨 군사훈련을 피할 수 있는 화학 관리 보직에서 근무했다. 제대 후에는 양심을 속이지 않기로 하고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 이에 14차례 고발돼 재판을 받았고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오씨는 예비군 8년 차까지 매년 3박 4일간 교도소에서 대체역과 동일하게 급식, 물품 보급, 보건위생 등의 보조 업무를 맡게 된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 시선은 차갑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안보상황이 엄중하고,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는 강력하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은 병역거부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했고, 소수의 목소리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확인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신념을 내세워 악용하는 부작용은 막고,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을 가진 병역거부자들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사설] 코로나 고통 상관없는 국회의원 후원금/유권자 위기에도 참 알차게 거둬들였다

불법 아니다. 부당성이 확인된 사례도 아직 없다. 극히 자연스러운 정치 활동의 하나다. 그럼에도, 액수를 확인하고 실상을 들여다보는 유권자는 불편하다. 더구나 지금이 어느 땐가. 모두가 코로나19로 삶의 터전을 강제 폐쇄당했다. 일자리에서 쫓겨나 길거리로 나앉았다. 이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정치인 후원금 호황 소식이다. 곱게 보일 리 없다. 정치인에게 후원금 모금 자유가 있듯이 시민에게는 후원금 행태를 지적할 자유는 있다. 본보 기자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년도 국회의원 후원회 후원금 모금액을 분석했다. 모든 국민에게 코로나 고통 원년이었던 2020년 모금 실적이다. 경인 지역 의원 72명의 모금액이 154억여원이다. 2019년보다 90억여원보다 64억여원 늘었다. 의원 1명이 평균 2천1천448만원을 거뒀다. 법적 모금 한도액은 평년에는 1억5천만원, 선거 연도에는 3억원이다. 21대에 새로 당선된 의원은 1억5천만원이다. 상황을 감안해도 후원금은 풍년이었다. 한도액(3억원)을 초과해 모금한 의원도 많다. 정당별로는 민주당이 11명, 국민의 힘 1명, 정의당 1명이다. 여권 성향 정당 의원들이 압도적이다. 경인 의원 1위는 심상정 의원(정의당)으로 3억1천887만원이다. 이어서 이재정 의원(민주당)이 3억1천63만원, 김병욱 의원(민주당)이 3억771만원이다. 전 재산을 5억9천만여원으로 신고한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3억668만원을 모금했다고 신고했다. 초과 금액은 다음해 모금 목표에서 차감된다. 1억원도 모금하지 않은 의원들도 있긴 하다. 김은혜 의원(3천726만원)ㆍ배준영 의원(4천169만원)ㆍ최춘식 의원(5천만원)ㆍ정찬민 의원(5천521만원)ㆍ김선교 의원(9천374만원) 등이다.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후원금을 청렴도 또는 능력과 연결지을 일은 결코 아니다. 많으면 부당하고 적으면 정당하다는 판단도 근거 없다. 과거에도 여당 편중은 심했다. 다만, 경험하지 않았던 국가적 위기를 생각하면 경험하지 않았던 지적을 할 수도 있다. 후원금의 객체도 결국은 어느 개인이고 어느 기업이다. 그 개인에 식당 문 닫으라고 했다. 그 기업에 사무실 문 닫으라고 했다. 심지어 가족 상봉도 하지 말라고 했다. 모두가 정치가 만든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그래놓고 자기들 후원금 접수 통로는 활짝 열어놨다. 한도액까지 초과하며 또박또박 챙겨 왔다. 이거 심한 거 아닌가.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이, 단 한 번의 농담으로라도 말 한 적 있나. 코로나 위기 1년 만이라도 후원금 받지 맙시다.

[인천 3·1운동 독립운동가 판결문으로 본 일제 탄압] “조선독립만세” 외친 27명 억울한 옥살이

만세를 부른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조선인으로 당연한 일이거늘.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 조종서 지사. 그는 일제의 탄압 속에 받아든 판결에 불복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현 인천 중구 영종국제도시가 있는 용유동(당시 경기도 부천군 용유면)에서 비밀 항일단체인 혈성단을 조직했던 그는 조선의 독립만세를 외친 것은 범죄가 아니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02년 전 오늘, 인천 시민은 31독립만세 운동을 했다. 태극기를 들고 평화로운 시위를 하던 이들에게 일제는 폭력적인 진압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만행은 일제의 재판 과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립운동가에게 과도하게 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과도한 형량을 선고했다. 이 같은 판결로 독립운동가 11명은 약 3천435일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인천시는 지난해 이들을 인천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들의 판결문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던 중 31운동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16명의 독립운동가를 추가로 찾아냈다. 이들까지 모두 27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억울함 속에 치러야 했던 옥고의 기간은 8천244일에 달한다. ■ 조선독립만세 그 날의 함성에 보안법 적용 남발 1920년 4월 8일 경성지방법원은 유학용 지사에게 징역 3월을 선고했다. 유학용 지사는 지난 1920년 3월 18일 인천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만세시위인 강화31운동을 이끈 삼촌(유희철 지사)의 권유로 31운동에 참여했다. 유학용 지사는 같은 해 5월 23일 만기 출소한다. 유학용 지사의 판결 기록에서는 그의 범죄사실을 읍내시장에서 수백명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적용한 혐의는 보안법 위반이다. 국가기록원의 독립운동관련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유학용 지사처럼 인천의 31운동 과정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27명이다. 재판부가 이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보안법 위반, 소요, 출판법 위반, 공문서 훼기, 집무집행방해, 주거침입, 절도, 전산법 위반 등 약 10가지다. 특히 재판부는 이 중 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천의 모든 독립운동가에게 적용했다. 보안법은 형법의 기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 중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한다. 당시 보안법 제7조는 정치적으로 불온한 언동 혹은 타인을 선동하고 교사 혹은 이용하거나 타인의 행동에 간섭해 치안을 방해한 자는 50대 이상의 태형, 10개월 이하의 금고 혹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어디까지가 불온한 언동인지는 불명확하다. 이런 특징은 고스란히 보안법 위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에 쓰인다. 김락기 인천문화재단 경영본부장은 명확하지 않은 보안법의 특징은 일제가 인천의 독립운동가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으로 활용됐다고 했다. ■ 식민통치 위협받자 높은 형량 선고 인천의 31운동 운동가 중 보안법의 최고 형량인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인물은 이담 지사와 김명진 지사 등 2명이다. 이담 지사는 1919년 3월 24일 이경응 계양면 서기의 집 벽과 대문을 부순 혐의를 받았다. 이담 지사는 31운동 과정에서 일제 순경의 칼에 맞아 순절한 이은선 지사를 애도하고자 모인 자리에 이경응이 보이지 않자 이 같은 행동을 했다. 또 김명진 지사는 지난 1919년 3월 8일 인천공립보통학교 동맹휴학 과정에서 학교 직원과 경찰서가 전화 통화를 해 학생을 감시하고 심한 취조를 하는 것을 막으려 전화 가공선을 절단했다. 인천의 31운동 독립운동가들은 한국의 독립과 관련한 직접적인 발언을 한 사람보다 식민통치의 대리자, 주재소 등 식민통치기관을 습격한 사람의 형량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 조선민족의 정의감은 죄가 되지 않는다 당당한 외침 실형을 선고받은 인천의 독립운동가 중 경성고등법원(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이들은 6명이다. 이들의 상고취의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문구는 조선민족으로 정의, 인도에 근거한 의사발동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인천에서 각 점포에 31운동에 동조하며 철시(가게 문을 닫는 것)를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 김삼수 지사는 상고 취의서에서 정의와 인도를 위해서는 도끼도 두려움에 충분치 않다고 했다. 이어 당당하게 정의인도를 위해 행동한 우리들은 정의와 인도에 위배하는 대일본제국 사법권 내의 절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31절을 맞아 인천의 독립운동가들의 판결문을 분석하며 그 속에서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수백, 수천의 독립운동가를 만났다.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독립을 위해 거리로 뛰어나간 이들의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승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