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참새와 망둥어

어릴 때 농촌에서 참새잡기를 즐겨 했었다. 마당에다 곡식이나 흙을 담아 나르는 산태미를 세워 놓고 그 밑에 쌀을 한줌 뿌려 놓는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참새들이 날아와 산태미 밑의 쌀을 주워 먹느라 정신이 없다. 이때 재빨리 산태미를 받치고 있던 막대기의 끈을 잡아당기면 두세 마리는 그 안에 갇히고 만다. 그런데 또 산태미를 세워 놓으면 죽어라 도망갔던 참새들이 다시 모인다. 제 목숨을 앗아갈 산태미인데, 그리고 그 위기를 겪었는데도 참새들은 다시 모인다. 어린 나이였지만 참새들의 그 건망증이 참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참새의 기억력은 3초만 지나면 망각된다는 속설이 사실일까?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참새보다 망둥이(망둥어)가 더 건망증이 심하다고 말한다. 망둥어를 낚시할 때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낚시의 미끼를 물었다가 몸부림쳐 살아 도망친 망둥이지만 다시 낚시를 던지면 입에 피를 흘리면서 또 미끼를 문다는 것이다. 참으로 지독한 건망증이다. 그러면 인간의 기억력은 얼마나 될까? 독일의 실험 심리학자로 유명한 헤르만 에빙하우스에 의하면 인간 역시 ‘망각의 동물’인 것 같다. 그에 의하면 학습으로 얻어진 100%의 정보량이 1시간에 50% 망각되기 시작하여 9시간 안에 급격히 망각되다가 하루 70%, 한 달 80% 등 망각곡선이 서서히 내려간다고 한다. 이것마저 완전히 무너지면 치매 현상이 나타난다. 얼마 전 한 대학교수가 쓴 글이 생각난다. 시골에 계신 노모를 찾아뵈러 가면 처음에는 얼른 알아보고 “우리 아들 왔구나!”하고 반가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아들에게 “누구세요?”하며 딴 소리를 하는 바람에 억장이 무너져 왈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것. 물론 우리가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생생히 기억한다면 이 또한 비극일 것이다. 적당한 망각은 오히려 정신건강에도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너무 빨리 뜨거워지고 너무 빨리 식어버리는 소위 ‘냄비 기질’ 때문에 망각 증세가 심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가령 호주 오픈 남자 단식 테니스대회에서 정현 선수가 한국 최초의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 국민들을 열광케 했는데 밀양 세종병원 화재참사사건이 발생하자 순식간에 그 열기가 뒤로 밀렸다. 이렇듯 집단망각에는 으레 대형사건의 충격이 촉매 역할을 한다. 지난 12월 인천 영흥도 낚싯배 침몰사고로 15명이 사망하자 모두들 경악했다. 그러면서 인재(人災)에 의한 안전 불감증을 개탄했는데 며칠도 못 가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29명의 희생자가 나자 영흥도 낚싯배 사고는 기억의 뒤로 밀려났고, 다시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발생하니 우리의 망각증은 쓰나미 현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안전 불감증’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건 후 제대로 시설을 점검하고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밀양 화재사건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이유로 크고 작은 화재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화재사건 뿐이겠는가. 모든 면에서 우리는 참새가 되고 망둥이가 되고 있지 않은가.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기고] 가상화폐 광풍, ‘세금’이 답이다

세상이 온통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암호화폐) 광풍으로 난리다. 정부는 가상화폐 투기 광풍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과 청년들의 큰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가상화폐 거래를 사실상 ‘도박’으로 규정하고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했다. 실업과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인생역전의 마지막 사다리’요 ‘재테크수단’이라며 뛰어든 무려 300만 명에 달한다는 가상화폐 개미 투자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급기야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하는 국민청원에 수십만 명이 참여해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가상화폐는 우리 삶과 산업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혁신적인 기술인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기존 금융규제나 경제질서를 거부하며 생성된 산업혁명적 ‘기술’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투기’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국민이 300만 명이나 되고 거래액수도 무려 20여 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세금을 낼 여력 없는 빈민의 세금’ 복권처럼 미래기술로 포장된 가상화폐 거래시장은 그들을 정조준하면서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현실이 된 가상화폐 시장을 연착륙시키는 건 가능할 것인가?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활로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폐쇄하는 등 무조건 불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2017년 7월 전 세계 비트코인의 70%를 보유한 중국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모두 폐쇄했지만 대부분 홍콩으로 이전되었다. 전 세계가 동시에 규제하지 않는 한 완전히 막을 수 없다. 반면에 일본은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거래는 신고하는 등 업계의 자율규제에 나서고 정부는 탈세와 불법을 감시하면서 사회적으로 결제수단의 하나로 인정하며 가상화폐를 산업화하고 있어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도박도 산업으로 치는 ‘빠찡꼬 천국’ 일본의 환경과 인식은 우리의 정서와도 많이 다르다. 우리도 업계와 정부가 힘을 합쳐 거래조작과 자금세탁을 막는 거래실명제를 정착하는 등 시장규제를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세금무법지대를 방치해선 안 된다. 실명제를 바탕으로 제대로 거래자료를 확보하고 직접 과세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투자자를 속이는 사기적 거래는 엄정하게 처벌하고 과세자료가 투명하게 노출되어 제대로 과세에만 나서도 특정인에게 장악된 채 이뤄지는 투기적 가격변동이 사라지고 가상화폐 시장은 진정될 것이다. 우선 현행법으로도 가능한 법인세와 사업소득세 등 사업적 이익에는 엄정한 과세에 나서고 거래를 하는 개인에겐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양도소득(자본이득)이나 기타소득으로 과세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국회를 열어 입법 보완해야 한다. 현행 증권거래세처럼 거래세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어떤 방식이든 TF만 만들어 탁상공론만 계속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과세 등 투기적 시장에 시그널과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적인 대응이 있어야 국민의 피해를 가져오는 가상화폐 투기꾼을 막을 수 있다. 지금 사상 최고를 경신하는 청년실업자 수도 가상화폐 광풍과 무관하지 않다. 가상화폐 시장의 투기 열풍을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신기술 등으로 무장된 벤처기업 투자 붐과 스타트업 창업 붐으로 전환하고 구닥다리 규제를 혁파해 수제 맥주처럼 청년과 중소기업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현장의 어려움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도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구재이 세무사·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천자춘추] 비트코인과 도박

최근 그 이름도 생소한 비트코인이 화두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도의 집약된 기술이자 가치이며 화폐로서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실체가 불분명하며 지나치게 과열된 투기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적 지식이 부족한 필자는 비트코인에 대해 미래가치인지 투기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다만 일선 현장에서 비트코인과 관련하여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을 보며 비트코인의 중독적인 면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두통으로 병원을 다니던 20대 후반 남성이 비트코인에 500만 원을 투자했다가 3천만 원을 벌었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비트코인으로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풀었고 거의 하루 종일 비트코인 관련 정보를 보느라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최근 시세가 떨어지며 그의 투자액은 1천만 원 정도로 가치가 줄었다. 원금보다는 여전히 이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돈 2천만 원이 날아갔다며 분개하고 심지어는 우울해했다. 이 환자의 비트코인 투자는 아직 병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차 그렇게 진행할 가능성이 있어 염려가 된다. 일반적으로 도박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경로를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도박중독은 4개의 단계로 이루어진다. 돈을 따는 게 첫 단계이며 점차 돈을 잃게 되는 게 두 번째 단계다. 가산을 탕진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거짓으로 돈을 빌리는 게 세 번째 단계이고 완전히 몰락하여 재기가 불가능한 것이 네 번째 단계다. 평균 15년 정도의 경과의 끝은 흔히 노숙자, 매춘부 아니면 자살이다. 비트코인은 투자자를 보호하지 않고 상하한선도 없기 때문에 크게 오를 수도 있지만 가치가 0이 되어 버릴 수도 있어 위험성이 훨씬 높으며 그러기에 도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은 초반에 돈을 따고 점차 위험성이 증가하여 돈을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두 번째 단계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만회하려고 무리하게 자산을 정리하거나 주변에서 돈을 빌리는 등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 도박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도박이 주는 엄청난 쾌감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명 ‘보상회로’라는 시스템이 작용하여 도박에게 이길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과량으로 분출되며 이후 뇌는 극도의 쾌감을 추구하고 일반적인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비트코인 투자시 점점 더 큰 돈을 추구하게 되고 일상생활이나 업무가 재미가 없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비트코인 투자가 도박이라는 뜻이 아니지만 노파심에서 도박이 되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다. 첫째, 반드시 돈을 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올인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잃어도 견딜 수 있는 액수로 투자를 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비트코인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비트코인 제조자나 초기 투자자이며 후반으로 갈수록 돈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염두에 두기 바란다. 두 번째, 벌써 3단계 이상 진행했다면 이미 중독 상태가 의심되는데 이 경우 비트코인 이외에 다른 것에 빠지라고 권하고 싶다. 예를 들어 스포츠, 동호회, 예술, 음식, 종교, 봉사활동, 명상, 친구, 강좌 같은 것에 빠지다 보면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 사회에 당부하고 싶다. 비트코인 광풍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혼도 어렵고 내집 마련도 어려운 젊은 세대의 절규라는 것을 깨닫고 건전한 노력만으로도 살만한 세상을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동근 마마라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보수 텃밭’ 요동… 경기북부 예측불허 승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텃밭으로 여겨졌던 경기북부의 판세가 예측불허의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북부 시·군 10곳은 접경지역 특성 등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강한 보수성향을 보이면서 보수 정당(현 자유한국당)에 유일한 판세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최근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진보 정당(현 더불어민주당)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부 지역을 차지하며 판세가 뒤바뀌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여야가 지역별로 수성과 탈환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6월 지방선거에서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다. 지난 1회 지방선거부터 6회 지방선거까지 경기 북부 10곳의 정당별 당선현황을 보면, 보수 정당은 경기 북부에서 4곳 이상에서 꾸준히 승리를 거두고 있다. ★도표 참조 특히 3회과 4회 지방선거에서는 각각 10곳 중 9곳, 7곳에서 당선되는 등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2010년 제5회 지방선거부터 진보 정당과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고 있다. 5회 지방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0곳 중 4곳에서 각각 승리를 거둬 동률을 이뤘다. 하지만 무소속 2곳 승리를 합하면 사실상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이 북부 최대 지자체인 고양을 비롯, 의정부·파주 등 인구가 30만 명이 넘는 비교적 큰 지역이라는 점이어서 한나라당에게는 두 배의 아픔으로 작용했다. 또한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도 당시 여야는 5곳씩 나눠가지며 동률을 이뤘으나 고양·의정부·동두천 등에서 진보 정당이 연승을 이어가 보수 정당 텃밭이라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현재 북부 10개 시·군 단체장 현황을 보면 시장이 공석인 파주를 제외하고, 여당인 민주당이 4곳(고양, 의정부, 양주, 동두천), 한국당이 5곳(남양주, 구리, 포천, 가평, 연천)으로 한국당이 1곳이 많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지자체 단체장 대부분이 민주당 소속이고, 더 이상 경기북부가 보수 정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민주당이 수성을 하고, 한국당이 탈환을 해야 하는 판세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와 관련 한국당 도내 의원 관계자는 “대표적인 접경지역 중 하나인 동두천의 경우, 민주당 시장이 내리 3선을 하고 있는 등 예전처럼 접경지역이라고 보수세가 강하진 않다”면서 “과거 보수와 진보 개념이 옅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선거판세를 바꿔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민·정금민기자

[지지대] 3연패의 무게-이상화

2012 런던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장미란이 있었다. 언론은 그의 역도 금메달이 확실하다고 점쳤다. 하지만 실패했다. 바벨에 작별 인사를 한 뒤 내려왔다. 울먹이는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 걱정이었다. “(결과가) 국민에게 실망을 드렸을까 봐 그게 가장 염려가 돼요.” 몸 상태가 이미 좋지 않았음도 고백했다. “준비하기 전부터 어려움은 있었고…사실 연습 때보다는 잘했어요.” 장미란은 그렇게 올림픽 2연패 실패를 국민 앞에 사과했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가 있었다. 언론은 ‘피겨여왕의 2연패 대관식 준비 끝’이라고 썼다. 하지만 은메달에 머물렀다. 편파 판정 논란 속에 인터뷰를 했다. “쇼트 롱 프로그램 모두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돼서 기분 좋고 홀가분합니다…저는 아무 미련도 없고 끝이 났으니까 그걸로 그냥 끝이라고 생각합니다…끝났다는 게 만족스럽습니다.” 김연아는 그렇게 올림픽 2연패 실패를 부담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겼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장미란도 못했고, 김연아도 못한 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다.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이상화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첫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이다. 4년 뒤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또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4년을 연습했고 또 얼음판에 선다. 올림픽 3연패 도전이다. 장미란ㆍ김연아 때처럼 또 국내 언론이 군불을 지핀다. ‘빙상 여제, 3연패 등극 준비 끝.’ ▶그런데 외신의 전망은 다르다. 이상화의 우승을 점치지 않는다.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이상화의 은메달을 예상했다. ‘두 차례 올림픽을 제패한 챔피언 이상화가 세리머니를 멈출 만 29세에 접어들었다’고 평했다. 1989년생이다. 순간 근력에 의존하는 이 종목에서는 거의 ‘환갑’이다. 경쟁자인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를 근래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SI 분석이 현실일 수 있다. 이상화에겐 왕관을 넘겨주는 올림픽일 수도 있다. ▶장미란은 교통사고 후유증을 겪었다. 연습 때부터 이미 메달을 딸 수 없음을 알았다고 했다. 김연아도 부상에 시달렸다. 허리를 젖히는 동작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3연패에 도전하는 이상화다. 체력적 한계에서 오는 고통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다만, 장미란이 그랬고,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말없이 출전일을 기다리는 것일 게다. 그 짐이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의 도전은 그래서 위대하다. ‘이상화 감동’은 이미 완성됐다. 함께 응원하며 행복해지면 된다. 김종구 주필

[사설] 중소병원 환자들 화재 불안감, 안전대책 강화돼야

병원에서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대형 인명피해까지 나자 입원환자와 보호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역 중소병원에 입원 중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병원 공포증’까지 겪고 있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이후 각 병원들이 소방점검을 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지만 환자들의 불안감은 쉽지 가시지 않고 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지금까지 모두 45명이 사망했다. 병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인명피해가 크다. 1993년 논산 신경정신과 의원 화재에선 34명이 숨졌고, 2010년 포항시 노인요양센터 화재에선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했다. 2014년 장성 요양병원 화재는 21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화재 원인의 공통점은 입원환자 대부분이 치매나 중풍 등으로 거동이 어렵고, 불이 잘 붙는 가연성 내장재와 용품으로 건물 내부가 꾸며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방시설과 의료진 부족도 한몫했다. 세종병원 화재 참사도 수십 년간 지적된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의료기관의 안전관리가 얼마나 엉성한지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다. 불이 난 세종병원과 비슷한 중소병원이 전국에 1천500개에 달하고, 대부분 화재에 취약하다니 심히 걱정스럽다. 병원은 병상 규모가 100개 미만인 일반병원과 100개 이상인 종합병원으로 구분된다. 종합병원은 까다로운 시설과 기준이 요구되지만 일반 중소병원은 적용되는 법이나 시설 기준이 훨씬 느슨하다. 소방시설 기준도 미흡하다 보니 중소병원은 화재 발생시 진압이 어렵다. 세종병원은 바닥 면적이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와 옥내 소화전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같은 병원인데 안전시설을 병상 수와 병원 면적에 따라 차이를 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규모 병원이라도 면적에 관계없이 스프링클러, 옥내 소화전, 방화문 등 필수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병원 화재 발생 시 체계적 대피교육과 안전훈련도 시급하다. 정부는 2014년 최초 화재 시 경보 전파와 소화 활동 실시, 안전구역 대피 유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기관 화재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안전훈련과 매뉴얼 숙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며칠 전 자칫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었던 신촌세브란스병원 화재가 조기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은 매뉴얼에 따른 사전 안전훈련 때문에 가능했다. 세종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극명한 차이다. 밀양 화재 참사를 계기로 중소병원에 대한 안전대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병 고치러 간 환자들이 병원에서 불안에 떨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사설] 양기대發 ‘남경필 道채무제로 선언’ 논쟁 / 숫자 비교 아닌 건전성 논쟁으로 이어져야

양기대 광명시장이 남경필 지사의 ‘채무제로 선언’을 공격하고 나섰다. 남 지사가 주장하는 채무 제로 선언이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남 지사는 언론 등에 ‘경기도 채무 3조2천억 원을 다 갚고 채무 제로를 달성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양 시장은 현재 6천84억 원의 채무가 남았는데, 상환을 위한 예산을 도가 2018년 예산에 책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 지사를 향해 “거짓말 도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재정(財政)은 모든 선거의 주요 소재다. 최근 지방 선거에서는 특히 그랬다. 민선 5기 선거는 ‘재정 파탄’이 이슈였다. 방만 경영의 책임을 진 민선 4기 단체장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민선 6기 선거는 ‘채무 탕감’이 이슈였다. 빚을 갚은 민선 5기 단체장들이 곳곳에서 재선했다. 그 채무 논쟁이 세 번째로 이어질 이번 선거다. 이번에도 채무 논쟁은 주요 이슈가 될 게 틀림없다. ‘채무 제로 선언’을 무기로 준비해 놓은 단체장이 여럿 뵌다. 관건은 유권자의 평가 기준이다. 8년 전, 4년 전과 달라졌다. 재정파탄이나 채무탕감이란 구호에 끌려다닐 뭉텅이 표는 없다. 채무 제로 선언이라는 이벤트에 혹할 유권자도 없다. ‘빚더미’ 또는 ‘빚 제로’가 결국 시민 생활과 무관한 정치 언어였음이 확인돼서다. 이제 부채 논쟁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건전성의 문제로 가야 한다. 채무라도 시민을 잘 살게 할 것이면 득표가 돼야 하고 탕감이라도 시민을 힘들게 할 것이면 감표가 돼야 한다. 이를 잘 알고 있을-잘 알고 있어야 할- 두 사람이다. 상호 비방이 아닌 정책적 공방이라는 측면은 지켜볼 만하다. 다만, 수준을 높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3조 2천억 원을 갚았다’가 아니라 ‘도 재정이 건전해졌다’는 자랑을 했어야 했다. 그게 도지사답다. ‘채무 상환 예산 편성에 실패했다’가 아니라 ‘도 재정 건전성이 나빠졌다’고 따지고 들었어야 했다. 그게 도지사 후보답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과거 숫자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13 선거전은 시작됐다. 멋들어진 대결을 보고 싶다. 정책을 놓고 벌이는 논쟁을 보고 싶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이번에도 낮아 보인다. 혈연, 지연, 학연을 들먹이는 선동이 벌써 만연하다. 시민을 위한 청사진인지 상대를 향한 대자보인지 모를 출사표가 곳곳에서 뿌려진다. 그래서 더욱 기대하게 되는 곳이 도지사 선거판이다. 차원 높은 정책 대결의 본을 보여주기 바란다. 시군마다 불 뿜을 게 뻔한 채무 논쟁이라서 더욱 그렇다.

[세계는 지금] 난민문제로 부각된 EU 내 동서유럽 갈등

EU는 국제사회에서 지역 국가들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는 지역통합의 이상적 모델이었다. 그런 EU가 지난해 영국의 탈퇴 선언에 이어, 올해는 동유럽 회원국들과의 갈등으로 심상치 않은 도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EU 집행위원회가 난민 할당제(EU 영내에 유입된 난민들을 EU 회원국에 할당, 수용시키는 제도)에 따른 의무이행을 거부해온 폴란드헝가리체코를 EU 재판소에 제소했고, 이들 동유럽국들은 이에 정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EU 회원국들 간 갈등요소가 된 EU의 난민 할당 문제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난민위기에서 비롯된다. 시리아 내전으로 수백만 명의 시리아 국민이 터키, 이라크 등 주변 국가로 피난하여 거주하게 되었는데, 2015년 중반까지 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EU 회원국으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2015년 8월까지 독일 약 9만 명, 스웨덴 약 6만 명 등). 독일이 경제력과 노동력 부족을 바탕으로 난민들을 계속 수용하는 정책을 펴자, 독일을 우선 목표지로 한 난민의 이동은 물밀듯이 계속됐다. 터키에서 쪽배로 목숨 걸고 풍랑이 심한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그리스에서 다시 발칸반도의 마케도니아-세르비아를 거쳐 EU 경계이기도 한 헝가리 국경을 넘은 후, 서유럽으로 향했다. 2015년 9월에는 EU 경계를 넘는 난민들이 하루 평균 8천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대규모 난민 유입이 계속되자 헝가리는 독일 등의 난민 수용정책을 비난하면서 난민들의 자국 통과를 거부하고 국경을 폐쇄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난민의 EU 입국 행렬은 헝가리의 인접국이자 EU 회원국인 크로아티아 국경을 통해 2015년 말까지 계속됐다. 이후 EU는 터키에 대규모 지원을 제공하고 터키는 자국을 통한 난민의 유럽 유입을 막는데 협조키로 하면서, 난민의 대거 유입은 소강상태가 된다. 그러나 대규모 난민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여전히 크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이 난민을 수용하는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토록 한다는 입장에서, 2015년 난민 16만 명을 회원국 크기나 경제력에 따라 할당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유럽국들은 의무할당에 반대투표를 던졌는데, 동 할당의 이행과정에서도 동유럽국들의 반발은 두드러졌다. 체코는 할당된 2천 명 중 12명만을 수용했고, 폴란드와 헝가리는 이행실적 제로다. EU 집행위는 결국 지난해 12월 이들 3국을 EU 재판소에 제소하게 됐고, 폴란드는 헝가리, 체코 및 슬로바키아와 함께 대EU 도전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 동유럽 4국은 난민 할당제가 국가 정체성을 약화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며 거부하고 EU의 지나친 주권제약과 내정간섭에 반발해온 점에서 입장이 같다. 그래서 향후 EU 내에서 동서유럽 회원국들 간 이민정책과 가치관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될 우려가 있다. 특히 폴란드는 현재 우파 민족주의 집권당이 영국을 본받아 EU 탈퇴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EU와 기본관계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깊은 호혜적 관계를 유지해왔고, 동유럽 4개국에는 각각 우리기업들이 많이 진출하여 경제적 이익이 클 뿐만 아니라 이들 4개국과 정치적 관계도 강화되어 왔다. EU와 동유럽 4국 간 갈등격화와 분열은 남의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