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환ㆍ안지만ㆍ임창용, 프리미어12에서도 못 뛴다…대체 왜?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삼성 라이온즈의 윤성환(34)과 임창용(39), 안지만(32)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엔트리는 물론, 프리미어12 국가대표팀에서도 제외됐다.KBO는 다음달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펼쳐지는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대표팀 최종엔트리(28명)에서 임창용, 안지만, 윤성환 등을 빼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대신 좌완 선발 장원준(두산)과 중간계투 심창민(삼성), 마무리 임창민(NC) 등을 새로 최종 엔트리에 넣었다.이들은 예비 엔트리 45명에는 없던 선수다. 삼성이 한국시리즈 1차전 하루 전날인 이날 엔트리 28명을 제출하면서 임창용, 안지만, 윤성환 등을 제외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통합우승 5연패를 노리는 삼성은 최근 소속 선수 3명이 해외 원정도박 의혹을 받는 가운데, 몸에 이상이 없는 주축 투수 3명을 한꺼번에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했다.앞서, KBO는 이미 도박 혐의로 내사를 받는 선수가 프리미어12 엔트리에도 포함됐다면 엔트리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KBO 관계자는 “도박에 연루됐다는 게 사실이라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 국제 대회에 파견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한편, 프리미어12 대표팀은 26일부터 소집훈련에 들어간다.온라인뉴스팀

[미래를 여는 역사의 門 해방 70년 京畿] 30. 수원고농, 경기도 항일학생운동의 중심에 서다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6년 동안 한반도는 거대한 감옥이었다. 일제가 조선에서 시행한 교육은 식민지 체제에 순응하고 권력에 복종하는 ‘충량한 제국신민’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일본어가 ‘국어’이며 일장기가 ‘국기’였다. 모든 교과서는 일본어로 제작됐다. 고등교육을 받은 조선인들 중에서 민족정신을 말살하는 일제의 교육과 수탈을 위한 개발정책에 발 벗고 나서는 친일파들이 적지 않았다. 학교는 식민지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수원고농을 졸업하면 교원 자격증을 주고 ‘주사’라는 자리를 보장했기에 전국의 수재들이 몰려들었다. 민족차별은 수원고농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교장과 교수, 일본학생들이 공공연하게 조선인 학생을 멸시했다. “무엇이든 잘못된 것은 모두 ‘조선식’이다”라는 일본 학생과 교수들의 멸시와 차별에 조선인 학생들은 분노했다. 일본 교수와 학생들은 잘 되려면 ‘일본식’으로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 조선인 학생들이 생활하는 동료(관)과 일본인 학생이 생활하는 서료(관)은 생활환경부터 크게 차이가 났다. 조선 학생과 일본 학생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조선음식은 냄새가 난다”, “더럽다”며 먹지 못하게 하고 일본 음식을 주었고, 식탁에 갖다 놓았던 김치를 일본인 학생이 내다 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수원고농의 조선인 학생들은 1920년대부터 동맹휴학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일제의 차별정책에 저항했다. 1928년 9월1일, 우종휘, 김찬도 등 수원고등농림학교(이하 ‘수원고농)’ 재학생 11명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경기도 수원경찰서에 연행됐다. 체포된 학생들의 연령대는 21세부터 27세까지 다양했다. 세상에 ‘수원고농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이 던진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다. 31운동 이후 최초의 조직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 대처하는 조선인 동료 학생들의 태도도 화제가 되었다. 9월17일 아침, 일본인 교장이 연행된 11명 중 5명은 퇴학, 6명은 무기정학에 처하고, 조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2시간 동안 훈시했다. 학생들은 이 같은 교장의 처사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나흘이 지난 9월21일, 조선인 학생들은 연명 날인한 퇴학계를 학교 당국에 제출하고 언론에 사건 경위를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생들의 집단행동으로 이 사건은 더욱 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수원고농사건’은 1928년 봄에 수원고농을 졸업하고 경남 김해공립농업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김성원(1906~1998, 농학박사, 학술원회원)이 그 해 여름 외금강에서 중등교원 하계강습을 받다가 체포되면서 불거졌다.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킨 혐의로 아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은 김성원의 부친이 급히 김해로 달려가 숙소에서 문제가 될 법한 물건을 찾아내 모두 없애버렸다. 그러나 한 통의 편지가 남아있었다.경찰들이 책갈피 속에서 찾아낸 이 편지는 수원고농 재학생 우종원이 보낸 것인데, 비밀결사 흥농사(興農社)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었다. 김해경찰서로부터 사건을 이첩 받은 수원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조선인 학생 기숙사를 수색하여 찾아낸 ‘건아단(健兒團) 강령’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단기4261년(1928) 6월3일 자에 작성된 강령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본회는 신조선(新朝鮮) 건설을 목표로 문약(文弱)의 폐풍을 일소하고 상무적(尙武的) 정신을 함양하는 데 있다.”강령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도부, 권투부, 탐험부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아단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신조선의 건설’ 곧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정치적 독립이었다. 건아단은 생활 개선 운동부터 시작했다.먼저 늦잠 자는 학생들의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조기회를 조직해 체조와 냉수욕을 시작하고 술과 담배를 끊는 운동을 벌였다. 등산이나 여행을 통해 심신단련에 지속적인 노력을 쏟았다. 밖으로 드러난 건아단의 활동은 매우 건전한 것이었다.물론 이들의 핵심 활동은 다른 것에 있었다. 1928년 6월 하순, 건아단 회원을 중심으로 ‘조선개척사’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했다. 세부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이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학교에서 한참 떨어진 여기산 정상에 올라가 새벽 2시까지 의견을 교환했다.이 모임에 참여한 맹원은 수원고농 사건으로 체포된 11명이다. 건아단을 이끌었던 김찬도(1907~1994, 소설 순교자의 작가 김은국의 부친)는 광복 후 이렇게 회고했다.“기미년 독립운동에 수원사건으로 수백명의 애국동포가 잔인무도한 일본 군병에게 화장당한 제암리도 단(團)을 지어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서는 애국가를 합창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우렁차게 불렀던 것입니다.” 이처럼 건아단원들은 민족 고난의 현실을 직시했다. 동포들이 살해당한 수난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여 일제의 만행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복수를 다짐했던 것이다.건아단이 주력했던 사업은 야학운동이었다. 가난으로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지역 어린이들을 모아 우리말과 역사를 가르쳐 민족의식과 사명감을 일깨웠다.아래 소개하는 것은 농과3년 권영선이 지도한 고색리 야학강습소의 특별반 학생 김이덕의 작문 ‘우리 소년이 해야 할 것’의 일부분이다.“우리들은 지금은 소년입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태산같이 쌓여 있습니다. 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소년은 지금 결박되어 있는 입장입니다. 우리들은 지금은 국가도 없는 불행한 국민입니다. 이전에 어떻게 하여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일단 우리들은 국가가 없기 때문에 우리 소년들이 다시 국가를 세우기 위해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조선개척사’는 일본이 외국과 전쟁을 벌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농민봉기’를 일으켜 조선 독립을 쟁취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학생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정치적 문구를 빼고 단체의 명칭도 농민을 흥기시키겠다는 ‘계림흥농사’로 바꾸었다. 김찬도와 우종휘가 중심이 된 계림흥농사는 수원고농 출신 선배를 비롯해 국내외에 있는 모든 농학도를 포섭하여 전국 농촌에 협동농장을 통해 이상농촌 건설을 목표로 설정했다. 조선개척사가 결성되기 한 해 전인 1927년 2월15일,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협력해 민족단일전선을 결성해 공동의 적인 일제와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가 출범되었다. 신간회는 흩어진 대오를 하나로 모아냈다. 이듬 해 수원에도 신간회 지부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조선개척사는 신간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할 수 없다. 1928년 조선개척사 사건 이후에도 수원고농에서의 저항운동은 계속됐다. 같은 해 4월 수원고농에서 농학과에 입학한 김종수를 중심으로 상록수운동을 통해 야학운동을 더욱 확대하고 농민들을 대상으로 문맹 퇴치운동을 함께 벌였다.1933년 10월에는 사회주의 비밀결사인 독서회가 조직됐다. 1939년 4월 수원고농에서 정주영을 비롯한 학생 10여명이 ‘한글연구회’를 설립했다. 1942년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주동자 정주영을 비롯한 여섯명이 체포되어 구속됐다.일제 고등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1938년 경기도에서 열린 시국집회가 6천113건에 달했으며 참여 인원이 160여만명이나 됐다. 이러한 경기도 저항운동의 바탕에 수원고농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원고농의 불의에 저항하는 전통은 유신독재시절에도 이어졌다. 1975년 4월11일, 서울농대 축산과 4학년 김상진의 양심선언과 할복은 유신철폐운동에 불을 질렀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안양 KGC인삼공사, 시즌 첫 3연승 사냥 또 실패

▲ 2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 울산 모비스의 경기. 인삼공사 마리오 리틀이 모비스 커스버트 빅터와 아이라 클라크를 앞에 두고 골밑슛을 시도하고 있다. KBL제공 시즌 첫 3연승을 노렸던 안양 KGC인삼공사의 도전이 또 한 번 실패했다. 인삼공사는 25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원정 경기에서 울산 모비스에 82대102로 졌다. 연승 행진을 ‘2’에서 마감한 인삼공사는 8승8패가 돼 4위로 내려앉았다. 전날 안양 홈 경기를 마치고 울산 원정에 나선 인삼공사의 몸놀림은 무거웠다. 앞선의 압박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방어는 모비스의 패스워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리바운드 싸움에선 박스아웃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23대35로 밀렸다. 마리오 리틀(22점ㆍ5리바운드)과 이정현(18점ㆍ4어시스트)이 팀 득점의 절반에 가까운 40점을 합작하며 공격을 이끌어봤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부족했다. 1쿼터부터 15대24로 뒤처진 인삼공사는 2쿼터 들어 모비스 커스버트 빅터에게 골밑을 유린당하며 분위기를 완전히 내줬다. 점수 차도 34대54로 벌어졌다. 인삼공사는 후반에 리틀 등을 앞세워 추격에 나섰지만, 벌어진 점수 차가 워낙 컸다.인천 전자랜드는 부산 원정에서 kt 소닉붐에 77대89로 패했다. 알파 뱅그라가 19득점, 김지완이 17득점으로 분전했으나, 외국인 선수 안드레 스미스의 공백 탓에 리바운드 싸움에서 19대43으로 압도당한 게 패인이었다. 6승7패로 5할 승률이 무너진 전자랜드는 7위로 떨어졌다. 경기 종료 4분 전까지 75대77로 맞서며 시소 경기를 이어 간 전자랜드는 kt 마커스 블레이클리(27점ㆍ10리바운드)에게 연속 실점하며 추격권에서 멀어졌다. 77대83으로 뒤진 종료 1분6초 전에는 뱅그라의 3점슛이 림을 외면하면서 사실상 경기를 내줬다.조성필기자

K3리그 첫 무패 우승 금자탑… TOP 자리 반드시 지킨다

“모든 감독이 원하는 목표는 우승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해 다음달 21일 열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해 우승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올해 K3리그 정규리그에서 22승 3무 무패라는 대기록을 작성, 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포천시민축구단 인창수(42) 감독. 올해 포천시민축구단은 지난 2007년 출범한 K3리그에서 최초로 무패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고 지난 2009년 자신들이 세운 승점 67점(32경기)을 넘어 68.5점(25경기)으로 최다 승점도 갈아 치웠다. 또한 2012년 최다 득점(101득점)과 2013년 최소 실점(21실점)의 기록을 104득점과 17실점으로 늘렸다. 인 감독이 포천시민축구단 감독을 맡은 것은 지난 2013년 2월. 전 감독인 고 이수식 감독이 뇌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감독 제안을 받고 수락해 포천시민축구단과 인연을 맺었다. 인 감독은 부임 첫해인 지난 2013년 20승 4무 1패로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하고 우승까지 거머쥐었다.지난해에는 21승 3무 1패로 3년 연속 정규리그 1위는 달성했지만 단판 승부인 챔피언결정전에서 화성FC에게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해도 정규리그 1위를 달성, 4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아픈 기억이 있는 인 감독은 올해 우승에 더욱 목이 말라 있다. 인 감독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면서 “좋은 선수만 있다고 꼭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며 운동할 수 있는 여건, 임원진의 지원, 좋은 선수 등 3박자가 잘 맞아야 하는데 포천시와 임원진의 지원, 선수들의 노력이 잘 맞물려 4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앞으로 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느냐는 질문에 인 감독은 “선수 대부분은 부상이나 실력 부족 등으로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고 재기를 꿈꾸고 있는 선수들로 현재 제주유나이티드FC에서 뛰고 있는 강준호, 심영성 선수나 강원FC 안성남 선수 등이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면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지금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라고 웃으며 말했다. 포천=윤승재기자

독자와 소통 강화… 더욱 알찬 신문으로

경기일보가 안양지역 오피리언 리더들과 함께 독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창을 활짝 열었다. 본보 안양지사는 ‘제1기 경기일보 안양지사 자문위원회’를 발족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고 25일 밝혔다. 최근 동안구 소재 스칼리티움 8층 심포니 홀에서 진행된 이번 발족식에는 이순국 본보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자문위원 4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초대 안양지역 자문위원회 회장으로는 조용덕 한국청소년교육재단이사장이 위촉됐으며 부회장 직에는 이희복 주영종합건설 대표이사가, 고문에는 조남일 감리교회목사·이은중 전 안양지검청장 등이 각각 위촉됐다. 이순국 사장은 자문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전달하고 지면평가 및 편집의견, 신문발전 방향, 지역사회 선도지로서의 역할 보강 등 경기일보가 개선해 나갈 방향을 가감 없이 지적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 사장은 “지역 발전을 위해 선두에 서서 파수꾼 역할을 하는 경기일보 자문위원에 위촉된 것을 환영한다”라며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지면에 반영함으로써 안양시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열린 신문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조용덕 자문위 회장은 “독자로부터 사랑받는 신문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겠다”라며 “지역민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애향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각종 기사,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신문이 될 수 있도록 위원들과 노력하겠다”라고 답했다. 한편 안영지사 자문위원회는 정관에 따라 격 월 1회 셋째 주 수요일에 정기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위원 상호 간의 정보를 공유해 보다 나은 신문 지면을 위한 회의를 개최한다. 안양=한상근양휘모기자 자문위원 명단 △조용덕 한국 청소년 교육재단 이사장 △조남일 평촌감리교 관양교회 담임목사 △송범호 안양시 중소기업CEO 연합회장 △김호연 전 동안양세무서장 △김철륜 안양대학교 교육부총장 △이은중 법무법인 이은중 대표 변호사 △김유영 전 안양과천카네기 총동문회장 △이희복 주영종합건설 대표이사 △나홍희 대호전자 총괄이사 △조경연 새마을지도자 안양시 협의회장 △황인경 (주)한라식품 대표이사 △김정수 안양과천카네기총동문회 사무총장 △김사녀 경기여성 리더스 클럽 회장 △장인구 특허법인 다해 대표 변리사 △김기희 프리드라이프 본부장 △김주탁 (주)티제이텍 대표이사 △권도희 아이기스 화진화장품 전무이사 △김낙경 누렁소마루 대표 △김현정 세종오페라연구회장 △김혜정 M&J엔터테이먼트 대표이사 △류중경 대림대학교 컴퓨터소프트학과장 △문형국 (주)에이스테크원 대표이사 △박경진 한양대학교 도시디자인학과 교수 △박진호 박진호 멘토알파 비전센터 대표 △신태남 안양시 학원연합회 장 △오동국 안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오진경 행복한공간창조디자인 대표이사 △유미자 아르트오페라 예술단장 교수 △이동찬 윌스기념병원 대표 병원장 △이은명 (주)씨앤디 대표이사 △이의형 오엠피어학원장 △이재광 삼손종합정비(주) 대표이사 △이천석 KMC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이택호 경기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임병우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장권용 안양예솔어린이집 원장 △전봉학 경기일보 독자위원회 위원장 △정광진 북방문제연구소 원장 △조옥선 한국사회복지진흥원장 △최미숙 안양시 여성경제인연합회장 △한도희 IBK기업은행 평촌지점장 △홍옥자 홍옥자노래교실 원장 △김광식 가수 △이성범 뷰티디자인 강사 △김아담 영화배우 △김상진 한국마사회 렛츠런재단 사무총장 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