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구 계산종합의료단지 도시개발사업이 각종 위반으로 논란(경기일보 4·5·10일자 1면)이 이는 가운데, 구가 이 병원의 건축법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도 법적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계양구보건소도 의료법 위반 사항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구와 구보건소 등에 따르면 구는 지난 2020년 7월31일 계산의료단지 중 A동 건물은 사용승인(준공)을, B동 건물은 임시사용승인을 각각 했다. 임시사용승인이란 건축물에 대한 공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 정해진 기간 만큼 임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가 허가하는 것이다. B동의 1차 임시사용승인 기간은 2021년 12월31일까지이고, 2차는 2022년 7월31일까지다. 그러나 병원측은 2차 임시사용승인 기간이 끝난 8월1일부터 지난해 1월27일까지 5개월간 B동을 계속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측은 B동 지하 2층에서 원무과를 비롯해 각종 치료시설 등을 운영했다. 병원측이 약 5개월간 무허가 건물을 사용한 셈이다. 건축법 제22조 제3항은 사용승인이나 임시사용승인을 받지 않으면 건축물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축법 제110조는 무허가 건물을 무단으로 사용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국토교통부 건축법 담당자는 “구가 임시사용승인을 연장해준 것도 아니고 준공한 것도 아니면 당연히 무허가 건물이니 사용하면 위법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구는 당시 임시사용승인 기간이 끝난 것을 확인하고도 법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구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임시사용기간을 연장해야 맞지만 병원측이 계산종합의료단지 사업을 제대로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그랬다”라고 해명했다. 병원측의 이 같은 무허가 건물 사용은 의료법도 위반이다. 의료법 제33조 제7항에는 건축법 등 관계 법령에 따라 허가를 받지 않으면 병원 개설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구보건소가 2020년 8월12일에 임시사용승인서를 근거로 병원 개설을 허가했지만, 2022년 7월31일자로 임시사용기간이 끝나면서 허가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보건복지부 의료법 담당자는 “임시사용승인 기간이 끝난 건물에서 병원을 계속 운영하면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라고 했다. 이어 “이 경우 보건소는 의료법 제64조를 근거로 의료업을 1년의 범위에서 정지시키거나 개설 허가의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를 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보건소도 마찬가지로 병원측에 대한 법적 조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구보건소 관계자는 “당시 구 건축과에 문의한 결과 계속 사용하도록 해도 된다고 말해서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병원측 관계자는 “(행정 절차를 빼먹은 부분이라) 순서를 지키지 못한 것 같다”며 “법을 지키려고 했는데 몇 달 정도를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가 구덩이처럼 패여 차들이 (옆 차선으로)핸들을 꺾는데, 정말 아찔합니다.” 25일 수원특례시 장안구 정자동 일대에서 만난 시민 이명진씨(56)는 도로 위를 달리던 여러 대의 차가 특정 구간에서 ‘덜컹’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낮추는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해당 구간 부근으로 가보니, 도로 중앙 일부가 음푹 패여 있었다. 패인 도로(포트홀) 주변은 작은 흠집과 구멍들이 생긴 채 쩍쩍 갈라져 있었다. 포트홀을 발견한 일부 차는 속도를 줄였음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차체가 흔들렸다. 또 일부는 포트홀을 피하려 옆 차선 쪽으로 향하다 뒤따라 달려오던 다른 차량 경적 소리에 휘청이는 등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의왕시 월암동 인근 한 2차선 도로도 사정은 같았다. 도로에 깊은 구멍이 생긴 탓에 이곳을 지나는 버스, 화물차 등 대형차량은 차선을 벗어나는 등 위태로워 보였다. 포트홀 주변 도로도 이미 여러 차례 보수한 흔적이 보였지만 여전히 곳곳에는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주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공영진씨(42)는 “이 주변엔 화물차가 많이 다녀 (포트홀이) 더 많다”며 “버스 기다리면서도 큰 차가 포트홀을 밟지 않으려 옆 차선으로 피하려는 모습을 몇 차례 봤다. 혹여나 더 큰 사고가 날까 걱정”이라고 불안해 했다. 경기지역 도로 곳곳에 포트홀 발생 건수가 급증한 가운데 최근 내린 눈과 비로 도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며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접수된 포트홀 발생·보수 건수는 2021년 6만8천950건, 2022년 6만6천223건에서 지난해 9만6천960건으로 3만건 이상 늘었다. 포트홀은 겨울철 도로 아스팔트에 생긴 구멍 내 수분이 스며드는데, 여기에 제설제 등 외부 요인이 합쳐지면 더욱 쉽게 생겨난다. 최근 눈·비로 추가 발생한 포트홀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는 지난해 초 ‘도로 포트홀 관리 체계 강화 대책’을 마련, 민·관 협업 행정 체계 신고 시스템인 ‘경기도 도로 모니터링단 시스템’ 운영을 강화했다. 또 조사차량을 운행해 도로 포장 상태를 분석하는 ‘경기도 포장관리시스템’ 등도 추진했다. 하지만 우후죽순 생기는 포트홀을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트홀은 운전자의 직접적인 안전과 연관된 타이어 휠 등을 훼손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또 포트홀을 피하려 갑작스레 핸들을 돌려 옆 차량과 추돌하는 등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포트홀 관리를 위한 충분한 예산 확보와 함께 적극·지속적인 관리 강화 의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지난해 4월부터 관련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원천적인 문제 등으로 여전히 포트홀이 생기고 있다”며 “지속적인 정기 점검과 AI기반 포장파손 자동탐지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더욱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금요일인 26일 아침까지 강추위가 이어지다가 오후부터 평년 기온을 회복하며 포근해지겠다. 수도권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1~영하 4도, 낮 최고 기온은 영상 2~4도로 전날보다 3~4도 가량 높겠다. 지역별로 보면 ▲수원 영하 7~영상 3도 ▲성남·과천 영하 7~영상 4도 ▲용인 영하 8~영상 3도 ▲안성·이천 영하 9~영상 4도 ▲파주·양주 영하 11~영상 3도 ▲부천 영하 6~영상 2도 ▲인천 영하 5~영상 2도 등의 분포를 보이겠다. 이번 주 내내 지속되던 강추위는 이날 오후 기온이 영상권을 회복하면서 주춤하겠다. 파주, 양주, 연천, 포천, 가평, 양평에 내려졌던 한파주의보도 낮부터 대부분 해제되겠다. 다만 서울과 경기내륙을 중심으로 대기가 건조할 것으로 예상돼 산불 등 화재 예방에 유의해야 하겠다. 기상청 관계자는 “당분간 아침에는 기온이 낮아 춥겠으니 야외 활동 시 옷을 따뜻하게 입고 추위에 약한 어린이, 노약자, 심뇌혈관 질환자 등은 건강 관리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4월 총선에서 제3지대 바람은 불까. 현 단계에선 분명히 우매한 질문이다. 다만, 과거에 비해 선거판이 넓어진 것만은 사실이다. 거대 양당으로 구획되던 선거판에서 제3지대는 좁았다. 선택의 범위 밖에 군소 정당이 존재했을 뿐이다. 무소속 돌풍은 선거 초반 잠시 불다 사라졌다. 이번은 그 시작이 다르다. 거대 양당에서 떨어져 나온 당이 등장했다. 공천을 받지 못한 낙천자들이 비빌 언덕이다. 이런 총선 현상은 상당 기간 더 존재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제3지대를 넓히는 것은 물갈이 폭이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우선 추천 기준을 정했다. 최근 국회의원선거에서 세 번 연속 패배한 지역이다. 경기도의 민주당 바람은 2010년을 전후해 시작됐다. 2012년, 2016년, 2020년이 모두 민주당 승리 총선이었다. 59개 선거구에서 47.5%인 28곳이 해당된다. 여기를 전부 전략공천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전략공천 조건인 당협위원장이 공석인 곳까지 더하면 30곳 이상에 달한다. 뿌리 내린 패배 유전자를 뽑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큰 폭의 변화 없이 승리할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다. 그 대신 공천 후유증이 클 것이다. 기존 당협위원장 등 출마 예정자들의 반발이다. 연패의 책임을 말하는 이들은 적다. 모두가 힘들게 지역구를 관리해왔다고 한다. ‘당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승복 않고 나가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무소속 고생 안 해도 된다.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이준석 전 대표의 개혁신당이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는 변화의 폭이 좁다. 하지만 그 대상자의 정치적 영향력은 훨씬 크다. 이재명 대표와의 갈라서기로 탈당한 의원들이 그렇다. 9곳 정도에서 현역이 사라졌다. 전직 시장 등 지역 내 유력 인사들도 나갔다. 모두 ‘당이 배신했다’고 한다. 여기도 ‘이탈·탈락’ 후보군의 해방구는 있다. 이낙연 전 대표의 새로운미래, 비명계 의원들의 미래대연합이다. 초반 당세 확장을 위해 적극적인 ‘이삭 줍기’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발 빠르게 변신해 제3지대 당에 자리를 꿰찬 인물들도 있다. 기존에 몸담았던 당을 향한 공격에 선두에 선다. 아예 상대 정당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한다. 이들에 대한 당의 평가는 ‘저들이 당을 배신했다’다. 사실 따지고 보면 굳이 힘들여 구분할 것도 없다. 어차피 배신의 주체와 객체는 상대적 규정이다. 공천 안 주면 당이 배신한 거고, 당을 떠나면 당을 배신한 거다. 지금까지는 이런 읍소를 받아줄 제3지대가 넉넉해 이들 목소리를 확대시켜 줄 것이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제3지대는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공천 탈락자들의 일회성 분풀이도 서서히 사그라든다. 이게 통상의 총선 공식이었다. 이번에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고령 운전자 비중이 늘면서 교통사고 건수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운전을 하려면 인지능력, 주의력, 공간 판단력 등이 필요한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한 해 3만건이 넘는다. 경기도에서 고령 운전자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는 2020년 6천257건, 2021년 6천883건, 2022년 7천938건으로 계속 증가 추세다. 영업용 차량의 고령 운전자 비중이 상당히 높다. 경기도의 경우 택시기사 2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다. 지난해 기준 경기도내 택시기사는 개인 2만7천321명, 법인 1만839명으로 모두 3만8천160명이다. 이 중 65세 이상이 1만7천510명(45.8%)으로 절반에 가깝다. 서울시 택시기사도 전체의 50.3%가 65세 이상이다. 전국의 택시기사로 따져봤을 때도 45%(10만7천947명)가 65세 이상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최고령 택시기사는 92세로 나타났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남성 2명이다. 법인택시 기사중에도 87세의 고령운전자가 있다. 65세 이상 기사가 절반에 이르면서 안전에 불안을 느껴 택시타기 겁난다는 시민들도 있다. 실제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지난해 12월31일 고양특례시에서 60대 택시기사가 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승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1월27일 의정부에선 70대 택시기사가 옹벽을 들이받아 택시 전체가 불에 타는 사고도 있었다. 고령운전자에 대한 자격검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는 택시기사 등 여객자동차운수사업종사자에 대해 운전적성 정밀검사(자격 유지검사)를 실시해 고령 기사들이 계속 운전할 수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적합 판정’이 98.7%에 이른다. 택시기사의 자격 유지검사는 2019년부터 의료기관 적성검사로 대체할 수 있어 적합 판정률은 더 높게 나온다. 의료기관의 적성검사가 키와 몸무게, 시력검사 등 일반적 검사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유지검사는 3년(65~69세), 1년(70세 이상)마다 하는데 적성검사는 5년(65세 이상), 3년(75세 이상)마다 하면 돼 기준이 느슨하다. 자격 유지검사 자체가 실효성이 거의 없다. 의료기관의 적성검사는 더 심하다. 고령 택시운전자에 의한 사고 방지를 위해선 자격검사를 강화해야 한다. 야간 시력, 브레이크 압력,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 등 세부항목을 늘려 연령대별로 정밀하게 진단해야 한다.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면허 반납을 적극 검토할 필요도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다 간다는 지우편에도 안 가고, 다 본다는 101타워의 야경도 안 보고, 다 먹는다던 우육면도 한 그릇 안 먹었지만 나는 열흘의 여행으로 대만을 사랑하게 됐다. 도착한 날 저녁, 공항에서 시내의 숙소까지 가는 동안 트렁크를 끌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할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가까이에 있어 이동이 쉬웠다. 이 도시에서는 장애인의 일상이 덜 고단하겠구나 싶었다. 다음 날 시내를 걸어 다니는데 모든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등이 길었다. 건너야 할 보도가 좀 길다 싶으면 70초, 짧으면 30~40초. 노약자도, 장애인도, 어린이도 신호가 바뀔까 종종거리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신호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도시였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15위, 국가경쟁력으로는 세계 7위인 대만인데 고층 빌딩 사이로 옛 건물이 종종 보이는 점도, 거리에 우람한 나무가 많은 점도 마음을 끌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용수라 부르는 대만고무나무(반얀 트리라고도 불리는)의 근사한 위용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저 고목들을 개발의 이름으로 잘라내지 않고 보호해 왔다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상승했다. 겨울의 타이베이는 서울의 혹독한 기후를 피해 ‘피한’을 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12월 중순 타이베이는 낮 기온이 15~25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습도도 적당해 돌아다니기에 좋았다. 가는 비가 자주 흩뿌렸지만 타이중이나 타이난 같은 남쪽으로 내려가면 쾌청하다고 했다. 물가가 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지내는 일도 가능했다. 우선은 교통비가 저렴했다. 버스비나 지하철비가 600~700원.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 야시장이나 소박한 식당에서는 몇 천원에도 맛있는 식사가 가능했다. 타이베이 시민들은 친절했다. 억지로 만든 과한 친절이 아닌, 몸에 익은 자연스러운 배려와 담백한 친절이라 편안했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몸짓이 요란하지 않고 목소리도 높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대만 사람들은 모여 있어도 시끄럽지 않았다. 같은 푸퉁화(普通話)를 쓰는데도 방해가 될 정도로 떠드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매너가 좋아 어디에서도 불쾌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처음 온 낯선 도시인데 여유로운 시민들의 태도 덕분에 나도 긴장이 풀렸다. 타이베이에서는 지인 S의 신세를 졌다. 그녀가 친구들과 차 마시는 공간으로 마련한 집에 짐을 풀었다. 대만국립사범대학 근처라 도보 5분 거리에 괜찮은 카페가 많았다. 나도 매일 오전에는 카페에 나가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타이베이 구경을 다니는 식으로 열흘을 보냈다. 틈틈이 S를 만나 밥을 함께 먹었다. 그녀가 데려가는 식당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이었다. 황금조개로 육수를 내는 샤부샤부 집, 뜨거운 콩국과 곁들여 먹는 계란전이 맛있는 시먼딩의 노포, 구팅 역 근처의 늘 손님이 가득한 채식 식당 등. 오래 한자리를 지켜온 작은 식당들이었다. 지도도, 가이드북도 없이 느긋하게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내게 타이베이 시내는 즐거운 곳이었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시내에서도 한 블록만 걸어가면 나지막한 옛 건물이 나타났다. 도심 곳곳에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 있어 숨을 돌리기에도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한 공원은 다안 삼림공원이었는데 딘타이펑에서 딤섬을 먹고 소화를 시키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만은 우리보다 긴 50년의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도 격렬한 반일 감정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일본식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운치 있는 식당이나 카페, 갤러리가 돼 있었다. 옛 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곳이 송산 문화창의공원과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 담배 공장을 개조한 송산 문화창의공원은 주변에 넓은 연못과 공원이 있어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온 이가 많았다. 양조장이었다가 복합문화공간이 된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는 좀 더 아기자기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영화관과 갤러리, 카페와 식당, 수공예품이나 예술 작품을 파는 가게들이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들어서 있었다. 마침 그 안의 꽃집에서 크리스마스 장식품 만들기 수업 공지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나도 참여했다. 타이베이 사람들 틈에서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트리 모양의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여행의 훌륭한 기념품이 됐다. 송산 문화창의공원도, 화산 1914도, 대만의 유명한 위스키 공장도 건물 자체에 격조가 있었다. 공장 건축물 경연대회라도 하는지 어떻게 공장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등장하고 BTS의 멤버 누가 좋아한다는 카발란 위스키의 본고장이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거리인 이란에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후에야 카발란 공장에 들어섰는데 건물의 자태가 심상치 않았다. 구리를 입힌 거대한 증류기가 늘어선 공장은 공상과학영화의 배경 같기도 했다. 이토록 근사한 공장에서 빈손으로 나간다는 건 무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이 공장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핑크빛 라벨이 붙은 위스키 한 병을 사고 말았다. 타이베이에서는 거리를 걷다 보면 사원이나 절이 자주 보였다. 불교, 도교, 유교, 민간신앙이 섞인 대만만의 독특한 사원에서 오가던 시민들이 향을 피우고 복을 비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건강에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대화 속에서 본초강목이 튀어나오는 점도, 어디를 가나 온수를 내어 주는 모습도, 체온을 높이는 데 좋다고 알려진 약재가 온갖 형태의 먹거리로 만들어진 점도 재미있었다. 타이베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거리는 큰 재래시장이었다는 오래된 옛 골목과 상점이 늘어선 디화제. 100년 된 나지막한 건물에 깃든 상점에서 약재와 건어물, 말린 과일 같은, 100년 전에도 팔았을 상품들을 여전히 팔고 있었다. 영험한 월하노인이 연을 찾아준다는 하해성황묘에는 여행자들이 모여 향을 사르고 있었다. 저녁 무렵 디화제를 찾아가면 붉은 등이 켜진 상점들 사이로 퇴근을 서두르는 이들이 지나갔다. 종로의 피맛골도, 을지로의 골목도 다 사라져 버리고 오직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만이 승자가 되는 서울의 도심이 생각나 부러움이 밀려 들었다. 옛것이 함부로 밀려나지 않고, 자연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지지 않는 이 나라는 작지만 큰 나라였다.
한 해를 시작하는 때이다 보니 새로운 정책과 서비스가 발표되고 그 가운데 노인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는다. 호기심에 한 일간지에 게재된 글 가운데 ‘노인’ 혹은 ‘노년’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들을 헤아려 본다. 2024년이 시작되고 20여일이 겨우 지났는데 70개가 넘는 기사와 기고가 노인과 초고령사회를 다루고 있음을 발견한다. 연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글들을 분석해 본다. 그 가운데는 다양한 연령층이나 사회 집단 가운데 하나로 노인이 언급돼 딱히 가치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예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글에서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끼니를 챙기기도 어려우며 건강하지 못하거나 치매에 걸려 돌봄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만큼 암울하지는 않더라도 노인은 여전히 ‘지원’과 ‘봉사’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노인이 되는 것이 곧 고비용과 저생산성의 주체가 되는 것만 같다. 사회의 문제를 짚어내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임을 잘 알면서도 입맛이 쓰다.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는 취지로 구성된 고령친화도시국제네트워크(GNAFCC)는 대중에게 노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려서부터 노화와 노인에 대해 배우고,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함께 살아가는 노인을 더 많은 기사와 뉴스와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때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노인의 대부분은 사회와 다음 세대에 부담이 될 만큼 의존적이지 않다. 물론 전적으로 돌봄에 의존해야 할 만큼 취약한 노인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노인을 위한 지원을 축소하자는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쓰고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듯이 노인의 취약한 측면을 부정적이고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는 좀 더 도움이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노인이 되는 것도 나이를 먹는 것도 그리 서글프고 두려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푸른 용의 해’라는 2024년 갑진년 새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간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하루지만, 그래도 달력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면 왠지 모르게 설레고, 희망도 생기고, 새로운 목표도 생기는 것이 ‘새해’가 갖는 힘이 아닐까. 그러나 2024년 연초부터 경제와 관련한 어두운 전망과 소식이 줄을 잇는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2023년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4%로,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지난 2020년(-0.7%) 이후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0.8%) 이래 최저 성장률이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최저 성장률에 대해 고물가·고금리 등으로 인한 민간소비 위축과 수출 증가세 역시 둔화됐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 생산성 저하, 세계적 공급망 재편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0%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1월에도 경기 불황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같은 날 발표한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및 경제심리지수(ESI) 조사 결과’를 보면 이달 전 산업 업황 BSI는 전월보다 1포인트 하락한 69를 기록, 지난해 2월(69) 이후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조사됐다. BSI는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한 기업가의 판단과 전망을 바탕으로 산출된 통계로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보다 많으면 지수가 100을 밑돈다. 업종별로 보면 특히 건설업의 체감경기가 좋지 않았는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의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금리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KDB미래전략연구소 역시 올해 국내 경제 상황을 전망하면서 불안 요인이 많다고 꼬집었는데, 수출 및 설비투자 회복 등으로 2.2% 수준의 완만한 성장세가 예상되지만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실물경제 불안 요인도 같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사를 대상으로 ‘사자성어로 풀어 본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조사’를 실시한 결과 ‘어두운 구름 밖으로 나오면 맑고 푸르른 하늘이 나타난다’는 뜻의 ‘운외창천(雲外蒼天)’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중기중앙회는 운외창천에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원자재 가격 인상, 고금리 등 계속된 난관에도 희망을 잃지 않은 771만 중소기업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업인들의 희망과 용기를 응원한다. 올해는 용의 해 아닌가. 용은 12가지 띠 중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꿈과 희망을 나타내는 상징 같은 존재다. 경제 상황이 기적처럼 나아지기를. 비 온 뒤 맑은 하늘에 무지개가 떠오르듯 2024년 한국 경제에 무지개가 떠오르길 기도한다.
지구 멸망을 예고하는 시계가 있다. 시곗바늘이 자정을 가리키면 핵전쟁이 터졌음을 의미한다. 그때면 지구에서 인류가 사라진 뒤다. 지구종말시계 사용서가 그렇다. 핵전쟁이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공포가 처음 엄습했던 건 1945년이었다.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후였다. 미국 핵과학자회가 머리를 맞댔다. 이 단체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 원자폭탄 제조를 주도한 미국 핵물리학자들의 모임이다. 지구종말시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미국 핵과학자회는 그때부터 매년 지구종말시각을 발표해 왔다. 올해로 벌써 79년째다.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핵실험 경쟁 시기인 1953년에는 2분 전까지 임박했다. 핵무기 감축협정이 체결된 1991년에는 17분 전으로 늦춰졌다. 그러다 2020년 이란과 북한의 핵프로그램 등을 이유로 100초로 가까워졌다. 지구종말시계가 최근 멸망까지는 90초밖에 안 남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이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도 포함됐다. 앞서 2007년부터는 기후변화도 지구 종말을 앞당기는 변수에 포함됐다. 미국 핵과학자회의 지적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요원하고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은 여전히 심각하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러시아는 수많은 우려스러운 핵무기 사용 신호를 보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엄연한 핵보유국이다. 특히 이 지역에서의 분쟁이 광범위하게 확대돼 더 큰 전쟁이 일어나고, 더 많은 핵보유국이 개입할 수도 있다. 수십년 동안의 경고가 어디 지구종말시계 뿐이겠는가. 인류가 ‘자기 파멸’이라는 어리석은 무덤을 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