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전 그 때의 충격적인 기억들이 아직도 너무 생생합니다. 평생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허영철씨(95)는 그의 나이 19세 때 해병 2기로 군에 입대, 제주와 부산을 거쳐 미군 수송선에 올라 충분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장으로 향했다. 배 안에서 M1 소총 분해와 총기 닦기 등을 배운 것이 전부. 그는 배가 팔미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자신의 고향인 인천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미군의 월미도를 향한 함포사격이 이뤄진 후, 1950년 9월15일 오후 늦게 인천 만석동 부근에 상륙했다. 포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과, 곳곳이 불타고 있는 고향은 짙은 탄내로 가득한 전쟁터로 변해있었다. 폐허의 고향에서 자신의 집을 찾았지만 ‘인민공화국 청년단’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고, 세간살이도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격에 살아남은 동네 사람들은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허씨는 곧바로 서울 탈환 작전에 투입됐다. 김포비행장을 접수한 뒤 한강을 건넜고, 연희고지 일대에서는 1주일 넘게 치열한 교전이 이어졌다. 허씨는 후퇴하던 인민군이 시간을 벌기 위해 10대 아이들을 포박해 총알받이로 내몰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인민군의 잔인한 행동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눈물이 안 나올 수 없이 비참한 광경이었다”고 회상했다. 6·25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한 어린 소년, 즉 학도병 등의 감춰진 뒷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를 대상으로 구술 영상과 자료를 구축한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10일 인천연구원의 ‘참전유공자 아카이브 구축 보고서’에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참전했던 용사와 유가족 등 11명의 육성 증언과 함께 영상·음성 기록, 사진 자료, 녹취문 등이 담겼다. 개인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 편지, 일기, 군 문서, 지도, 포스터 등은 기증받아 함께 수집했다. 기록 내용은 단순한 전투 경험에 그치지 않고, 전쟁 이전의 고향 생활부터 정전 이후의 삶까지 개인의 생애사를 폭넓게 담고 있다. 출생과 학창 시절, 가족과 이웃에 대한 기억 등 전쟁 전 일상과 함께, 참전 계기와 소속 부대, 인천상륙작전과 이후 전투 경험, 기억에 남는 인물과 사건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또 전쟁 이후의 삶과, 후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도 포함했다.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성공 뒤에서 이름 없이 싸웠던 병사들의 공포와 상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등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전쟁 속 잊혀진 개인의 기억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참전유공자들의 구술 영상 11건은 공식 유튜브와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아카이브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관련기사 : 인천상륙작전 소년병 생존자 전국 22명뿐…통합 아카이브 구축 시급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60108580397
사회일반
박귀빈 기자
2026-01-10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