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붙잡아야 삶과 가까워질까…‘남은 인생 10년’ [영화리뷰]

불치병에 걸려 인생이 ‘10년’밖에 남지 않은 여자는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영화 속 대사처럼, ‘10년’이라는 기간은 마냥 짧지도 않지만 또 그렇다고 무작정 길지도 않아 마음을 어디에 두고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난치병으로 생을 마감한 고사카 루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남은 인생 10년’이 지난달 24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예상가는 전개, 전형적인 장르 공식을 따라가는 멜로드라마일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흘러가는 시간을 버텨내는 삶을 담는 방식에 관한 고민들을 꾹꾹 눌러 담았기에 주목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가 시간을 어떻게 스크린에 옮겨놓았는지 살피는 일이 인물들의 삶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제공한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영화를 1년에 걸쳐 찍으면서, 시간 변화에 따라 배우들의 감정선을 매만졌다. 계절이 바뀌고,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에 다다른다. 촬영 환경에서 배우들은 뜨거운 햇빛을 받으면서 입김을 ‘호호’ 부는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몸을 감싸는 온도와 습도, 바람과 냄새에 의지해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내면의 감정에 귀 기울일 수 있다. 흩날리는 벚꽃잎, 불꽃 튀던 여름밤의 공기, 선선한 바람을 타고 멀어지는 낙엽 등을 넓은 화면 속에 담아내는 과정은 단순히 수려한 영상미 확보만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죽기 위해 살고 있는 마츠리가 쓰러졌던 그 가을날의 어느 산책로에 어떤 공기가 맴돌고 있을지, 죽음을 극복하고 삶의 의지를 이어가는 카즈토가 뒤를 돌아본 그 벚꽃길에서 눈앞을 스치는 꽃잎은 어떤 향과 사연을 품고 있을지 관객들도 함께 느껴볼 기회를 만드는 셈이다.

‘한국화 전문 화랑’ 수장의 작품 기증…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전시리뷰]

“제 선친이 미술계에 들어와 평생 일을 하고 생계를 꾸리면서 한국 미술계에 조그마한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그 바람에 따라 형제 간 뜻을 모아 의미있는 작품들을 기증하게 됐습니다.” ‘수집가’의 작품 기증은 미술인으로서 한 개인이 쌓아 온 역사를 기증한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작가의 작품 기증도 그 사례가 많지 않지만, 수집가의 작품 기증 사례는 더욱 드물다.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는 지난 2021년부터 2차례에 걸쳐 동산방화랑의 설립자인 부친 박주환(1929~2020)이 수집한 209점의 작품, ‘동산 박주환 컬렉션’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동산방화랑은 지난 1974년 서울 인사동에서 본격 운영한 한국화 전문 화랑으로,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해 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동산 박주환 컬렉션’ 209점 중 94점의 한국화 대표작을 선정, 내년 2월12일까지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시대 흐름에 따라 총 4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허백련의 ‘월매’가 압도적인 규모로 눈길을 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매화 고목을 10폭의 병풍에 먹으로 섬세하게 묘사했다. ‘북풍이 불어 사람을 넘어뜨리는데 고목은 변하여 거친 쇠가 되었네’란 좌하단 시구와 우측의 여백을 향해 뻗어 있는 매화 가지가 묘한 균형을 이룬다. 1945년 광복 이래, 서화가들의 창작 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은 ‘합작’ 문화를 헤아릴 수 있는 작품도 있다. 이상범·김기창·정종여의 ‘송하인물’엔 3개의 호(號)와 낙인이 찍혀 있다. 소나무는 정종여, 인물은 김기창, 좌상단의 화제는 이상범이 써 그림을 완성했다. 소나무 아래 바위에 기대 달을 감상하는 인물을 묘사했는데 먹과 색, 화제와 서정적인 여백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현대 도시의 건물을 색으로, 가로수를 과감한 수묵으로 표현한 송수남의 ‘자연과 도시’, 섬세한 필선과 담채의 조화로 8명의 소녀와 여인을 표현한 장운상의 ‘한일’ 등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표현방식을 절충한 당시 청년작가들의 현대 한국화도 만날 수 있다. 윤소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한국화 전문 화랑의 작품 기증으로 50년 역사의 한국화 특성을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됐다”며 “이번 전시로 한국화 연구 기반이 확장되고 수집가들의 기증문화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남준의 세계와 직관적으로 친해지는 기회…‘사과 씨앗 같은 것’展 [전시리뷰]

‘난해하지 않게,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백남준의 예술 세계’.  백남준아트센터의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지난달 27일 개막했다. 동시대와 소통하면서도 항상 시대를 앞서 갔던 백남준의 삶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만프레드 레베, 만프레드 몬트베, 알도 탐벨리니, 앨런 캐프로, 오토 피네, 저드 얄커트, 제임스 시라이트, 토마스 태들록의 작품을 다루는 이번 전시는 백남준을 비롯해 그의 곁에 머물거나 그를 스쳐갔던 작가들을 통해 백남준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는 데 집중했다. 총 29점의 작품과 인터뷰 프로젝트 비디오 14점이 관람객과 만난다. 전시는 198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임의 접속 정보’ 강연 도중 백남준이 당시 새롭게 태동한 매체인 비디오에 대해 예술과 소통이 교차하는 지점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고 언급한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씨앗은 무엇일까. 교차점에서 생겨날 어떤 가능성 내지는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녹아 있는 비유로 읽힌다. 이번 전시에선 현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 사과 씨앗을 어떻게 하면 싹틔울 수 있을지 백남준의 삶과 생각을 따라 고민에 빠져볼 수 있다. 백남준의 삶에서 뽑아낸 주요한 순간들이 전시장 곳곳에 스며들었다. 공연과 실험 작곡에 몰두하던 그가 독일에서 품었던 생각들, 텔레비전과 비디오 아트를 통한 프로젝트 작업으로 전 세계를 누볐던 시기의 작품들을 만난다. 이 가운데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에게 영향을 줬던 주변 동료 작가들, 그가 작업 때 작성했던 글을 함께 배치하고, 작품의 내부 구조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등 관람객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기획했다. 본격적으로 전시공간에 들어가면 처음 맞닥뜨리는 벽면에 연보가 보인다. 백남준이 1963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는 등 당시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사진들과 함께 아주 간결한 사건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글자와 숫자로 도배된 과다한 정보량을 들이미는 전시들과 다르게, 관람객과 백남준 세계 사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는 구성이다. 지난해 센터가 수집한 신소장품인 ‘랜덤 액세스 오디오테이프’는 백남준의 초기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백남준은 1963년 부퍼탈 갤러리 파르나스에서 선보인 첫 개인전에서 마그네틱 테이프를 풀어 제각기 조각으로 잘라낸 뒤 벽면에 붙여 놓았다. 이 테이프 조각에 관람객이 금속 헤드를 갖다대 녹음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랜덤 액세스’를 그가 다시 제작한 작품이다. 다시 만든 작품은 나무판에 붙은 테이프를 통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청취가 가능하도록 제작됐다. 소통을 강조한 전시의 기조 때문인지 전시장에서 눈에 띄는 작품들이 여럿 있다. ‘나는 이 곡을 1954년 도쿄에서 썼다’는 벽면의 흑경과 함께 배치돼 있다. 텔레비전의 후면을 열어 놓았기 때문에 내부 구조를 흑경에 반사된 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이 같은 구성은 전시장 초입에 있던 ‘퐁텐블로’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다. 기존의 작품을 이루던 CRT 모니터는 수명의 제약이 있어 사용시간이 한정돼 있으므로, 일부 뒷부분을 LED와 디빅스플레이어로 교체한 상태다. 내부 구조를 육안으로 볼 수 있기에, 이처럼 작품에 깃든 역사도 함께 음미하는 기회도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조권진 학예사는 이번 전시에 대해 “백남준의 작품을 따라가는 데 있어 그가 활용한 기술과 아이디어, 함께 했던 작가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그들의 피드백 등 단계적인 소통을 체험할 수 있게 전시를 기획했다”면서 “작품의 구성 원리와 기술의 구조적인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훨씬 깊게 이해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의 작품은 태생적으로 기술을 매개로 예술의 확장성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12일까지 열린다.

양평군립미술관, ‘양평·몽골 현대미술展’ [전시리뷰]

한국과 몽골의 현대미술 작품 110점을 한 공간에 모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양평군립미술관에 양국의 문화적 교류와 함께 몽골과 한국의 수교 33주년 의미를 더해주는 자리인 ‘양평·몽골 현대미술展’이 마련됐다. 몽골인 작가 29명과 양평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 25명이 각각 빚어낸 몽골 작품 84점, 한국 작품 26점이 내걸렸다. 양국의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작품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몽골의 자연환경을 담은 영상이 2층으로 향하는 길 벽면에 상영되고 있다. 영상에선 몽골의 유목 생활 모습과 드넓은 평야에서 말과 양 등 몽골의 가축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나오며 이곳을 지나면 몽골의 암각화와 몽골 풍경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또 몽골 전통 음악인 흐미가 흘러나와 몽골에 가지 않아도 몽골 현지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게 도와준다. 이어지는 2층에는 양평군 작가들의 회화 26점이 전시돼 있다. 그중 다섯 개의 산봉우리와 푸른 소나무를 낡은 철판 위에 그려낸 김성우 작가의 ‘일월오봉도 2023’가 눈에 들어온다. 낡은 철판 위에 전통 회화를 담은 독특함과 함께 높은 산과 나무가 없는 대초원 지대 몽골 특성상 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용선의 ‘NY subway 2013’은 한 사람이 지하철 공간에서 전철을 기다리는 모습을 그려냈다. 19세기 이후 개발된 대중교통 수단 지하철 공간의 운영과 함께 그에 맞게 적응해 행동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지나면 몽골 작가들의 작품이 내걸린 드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몽골이 품은 국가의 색채와 정체성이 단버에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 아말사이항 작가의 ‘Ancient Queens 2022’는 화려한 색의 전통의상과 모자를 착용한 여성들을 담아냈다. 고대 여왕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작가만의 기법으로 현대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눈길을 끈다. 흑질바야르의 작품 ‘To be or not to be 2018’에서는 기린, 곰, 원숭이 등 다양한 동물들이 나무로 된 사각형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작품은 지구온난화와 인류의 악한 행동으로 야생동물 멸종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내용을 담았다. 현 시대의 수많은 장점과 더불어 존재하는 단점을 작가만의 현대적 시각으로 풀어냈다. 전시를 기획한 라현정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인류가 직면해 있는 다양한 현상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양국의 현대미술 전시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인류 공동체적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5월21일까지.

삶은 좋고, 죽음은 나쁠까?…경기도극단 연극 ‘죽음들’ [공연리뷰]

살아간다는 건 바꿔 말하면 죽어간다는 것. 우리는 결국 죽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삶은 좋기만 하고, 죽음은 나쁘기만 한 걸까? 지난 2일부터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경기도극단의 연극 ‘죽음들’은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만날 기회다. 그렇다면 죽으러 가는 우리들에게 누군가는 ‘잘 죽어서 사후세계에 도착하는 법’을 안내해줘야 한다. 무대 위에서 느린 속도로 기이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늙은 죽음(김성태)과 젊은 죽음(최예림)이 바로 그 역할을 떠안은 안내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이 아니다. 죽음은 언제나 산 자의 곁에 동행하고 있었다. 늙은 죽음과 젊은 죽음은 어두운 무대 위 초록색 섬광을 받으면서 이런 말들을 내뱉는다. “상처받게 하지 말어, 우리는 누굴 죽이러 온 게 아니야. 태어날 때 산파가 필요하듯 죽을 때도 준비가 필요해. 우린 그걸 도와주러 온 거야. 누구나 죽는 건 처음이니까…”, “사람들은 눈에 안 보이면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아…우린 늘 곁에 있었거든”. 천혜자(김지희)는 딸 지율(이은)과 아들 한율(김형준)의 걱정 속에 죽음을 앞두고 있다. 지율은 엄마 곁을 맴도는 죽음을 향해 증오와 거부감을 드러낸다. 우리 엄마 데려가지 말라면서 예정된 죽음을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 지율은 왜 우리가 죽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죽음이 오는 게 싫다며 죽음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그랬던 그가 연극의 종착지에 이르면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 ‘죽음들’은 지율을 통해서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지율의 서사가 전개되는 동안 엄마 혜자는 죽으러 간다. 그 과정에서 무대 위로 끼어드는 젊은 시절의 혜자(장정선). 그는 딸 지율이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에서 자신이 지율로 태어날 걸 알지 못하는 존재(육세진)와 대화를 나눈다. 시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은 또 있다. 결국 지율과 함께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다른 쌍둥이 아들(노민혁)이 늙고 병든 혜자가 죽고 난 뒤 사후세계에서 만난다.   이처럼 관객이 도착한 무대는 단순히 몇 마디 설명으로는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곳이다. 무대 위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 속의 시간들이 이어지다가도 갑작스럽게 관객들이 낯설게 여길 만한 삶 이전의 세계를 함께 구현하고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이 시작되는 세상, 마치 뱃속의 어딘가를 형상화한 듯한 삶 이전의 세계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현실 속 사람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거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또 죽고 난 뒤의 세계도 묘사돼 있다. 흥미롭게도 각각의 세계가 공존하는 장면도 많다.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던 시간과 공간들이 점점 한 무대 위에 공존하는 장면이 늘어나는데, 각기 다른 곳에 있던 존재들이 한데 모여 함께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울림 있는 대사를 내뱉는 구간들은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면서 펼쳐왔던 독특한 서사에 짙은 여운을 남긴다. 연극을 보다 보면 배우들의 의상과 대사와 몸짓, 배경과 음악의 조절 등을 통해 계속해서 교차하는 시공간의 변화를 관객들이 잘 따라갈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번 작업을 총괄한 김정 경기도극단 상임연출은 황정은 작가가 빚어낸 희곡 속의 텍스트를 무대화하는 작업에 있어 먼저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연출의 단초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계속해서 교차하고 함께 다룰 때 관객들이 그 장면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번 작업의 최대 과제였다”라고 덧붙였다. 무대는 7일까지 이어진다. 

그가 공간에 정서를 투영하는 법…‘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리뷰]

한 남자가 오고가며 자신의 눈에 담겼던 공간을 캔버스 위로 불러낸다. 그의 눈에 비친 세계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기억과 상상이 뒤섞인 그의 공간은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곳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23년 해외소장품 걸작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지난 20일부터 서소문본관에서 개막해 관람객을 만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해 선보이는 작가의 첫 국내 개인전으로 화제를 모은다. 미국의 국민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 생애에 걸친 작품 160여점, 산본 호퍼 아카이브의 자료 110여점을 7개 섹션으로 나눠 선보이는 전시다.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구도와 화풍에 변화를 줬던 호퍼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뉴욕이라는 도시가 지닌 시공간적 특성의 빈틈을 파고들었던 작업 스타일도 엿보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호퍼는 자신의 눈에 담긴 장면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그가 캔버스에 풀어낸 공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연이 깃든다.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대도시부터 여행지 속 자연까지 호퍼는 일상 속에서 자신이 갔던 곳을 소재로 예술 세계를 표현해냈다. 사실 관람객은 ‘퀸스버러 다리’ 등의 작품을 볼 때면 그가 강 위의 배에서 강 건너의 풍경을 봤을지 배의 창문을 통해서 비친 풍경을 봤을지 알 수 없으며, ‘황혼의 집’, ‘밤의 창문’과 같은 작품을 통해선 그가 옥상에 서서 건너편 건물의 창가를 응시했을지 건물 안의 창문을 통해서 맞은편 사람을 바라봤을지도 예상하기 힘들다. 이처럼 그가 무심코 바라 봤던 교각의 돌출부, 목장의 지붕, 극장의 장식물 등 각 공간이 지닌 입체적인 특성뿐 아니라 그가 당시 장면을 바라봤던 위치와 구도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도록 모호하게 표현돼 있다는 점이 그림의 매력을 더한다. 호퍼의 그림 속 공간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전시장을 수놓는 호퍼의 그림들은 대부분 수직 구도보다 수평 구도에 맞춰져 있다. 눈의 시야각에 맞춘 영역까지만 표시하는 그의 그림은 그래서 사실주의의 흔적이 짙게 묻어나지만,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그리기로 결정한 이미지들에 대해서 장소와 연결되는 감정과 생각을 결합해 새로운 상상지대를 만들어낸다. 그 영향 때문에 배경의 세부 요소가 모호하게 뭉개지거나 빛과 그림자로 둘러싸인 채 본래의 형상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대개 뒷모습이거나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공간을 차지한다. 상당수 그림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일상의 공간이 그림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우선 매만지고 있지만 사람들 역시 그의 그림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푸른 저녁’은 시간대를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한 기운이 맴돌고 있다.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로도, 사물이 만드는 그림자로도 지금이 어스름한 저녁인지 자정이 지난 시점인지도 알 수 없다. 이곳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서로 대화나 교감이 전혀 없다. 생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우울한 색채보다 더 짙은 적막감을 만든다. 파리에 있던 호퍼가 뉴욕으로 돌아온 뒤 그 당시의 생활을 떠올리면서 만들어낸 그림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 호퍼의 상상이고 어디까지 실제 카페 속 풍경인지 감상자는 확인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그림의 모호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에드워드 호퍼는 20세기 초 현대인이 마주한 정서를 예리하게 포착해 화폭에 담아내 현재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며 “이번 걸작전이 팬데믹 이후 고립과 단절, 소외가 만연한 오늘날에 필요한 전시로서, 에드워드 호퍼에 대한 이해를 넓힐 뿐 아니라 고단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시공을 뛰어넘는 위안과 공감을 선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8월20일까지.

이런 가족도, 저런 가족도 모두 정상 아닌가요?…수원시립미술관 ‘어떤 Norm(all)’ [전시리뷰]

어떨 때 ‘정상’이고 어떨 때 ‘비정상’인가. 한국 사회는 임의로 설정된 기준과 규범에 따라 끌어안을 요소와 배제할 요소들을 선별한 뒤 차별을 정당화한다. 정치, 경제, 환경, 외교 등의 거대 담론이 아닌 피부로 와 닿는 일상조차도 ‘강요된 정상성’에 물들어 있다. 식생활, 외모, 패션, 주거 형태….그 중에서도 ‘가족’을 바라보는 통념은 오랜 기간 갇힌 틀을 맴돌며,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과 그 형태에 정답이 있는 듯 각자의 미디어 환경을 비롯한 일상에 영향력을 떨쳐왔다. 지난 18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한 현대미술 기획전 ‘어떤 Norm(all)’은 ‘어떤 가족이 정상인지’ 관람객들에게 질문한다. 강태훈, 김용관, 문지영, 박영숙, 박혜수, 안가영, 업체eobchae(김나희, 오천석, 황휘), 이은새, 장영혜중공업, 치명타, 홍민키 등 분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다큐멘터리, 회화, 사진, 설치 등 다채로운 분야의 작품들이 3부로 구성된 전시장 곳곳을 수놓고 있다. 이곳에 모인 작품들은 저마다 결이 다르고 지향점도 다르지만, 모두 관람객과 상호작용할 때 작품의 의미가 완성이 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품고 있다. 1부의 작품들은 전통 속 가족의 모습을 조망하면서 그 이념을 해체하려는 작업의 전초전을 위해 모였다. 강태훈 작가의 ‘나쁜 피’는 사회에서 작동하는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은유적인 오브제를 통해서 들추는 작업이다. 박혜수 작가의 ‘우리 친밀도 검사’를 통해선 관람객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가족에 대해 어떤 인식을 지녔는지 확인해볼 기회다. 2부에선 정상성의 폭력이 만들어낸 그늘 속에 늘 존재해왔던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만난다. 문지영 작가는 ‘엄마의 신전’ 회화 연작으로 개인의 경험을 캔버스로 끌고 와 정상과 비정상을 어떤 척도로 나눌 수 있는지 반문하고 있다. 그의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문제 제기뿐 아니라 그 다음 단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엄마의 신전 Ⅴ’ 속 남자가 사라진 공간에 어머니와 장애를 지닌 아이가 서로 의지한 채 서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가족 사진처럼 보인다. 이들을 가족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불러야 할까? 문 작가의 작품을 통해선 정지된 회화가 사회 문제를 머금었을 때 어떤 생명력으로 둘러싸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작법을 활용해 만든 홍민키 작가의 ‘들랑날랑 혼삿길’ 역시 성소수자 민기, 그의 연인과 가족들의 생각을 교차해서 담아내며 다양한 목소리와 생각을 관람객들과 나누고 있다. 이어지는 3부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가족을 정의하고 구성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생각들이 엿보인다. 김용관 작가에겐 서로가 서로를 익숙하게 받아들여야만 가족이 성립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의 믿음이 반영된 설치 작품 ‘무지개 반사’는 다양성과 평화를 상징하는 무지개 색상을 관람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작됐다. 김 작가는 “작품에 깃든 그래픽 요소에 대한 가치 판단보다 그것들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될 때 화합과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장수빈 큐레이터는 “최근 몇 년 간 혼란에 빠진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족’에 관한 이야깃거리였다”면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 속 가족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동시대 작가들의 관점을 빌려 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20일까지.

이희문과 경기시나위, 한바탕 울고웃은 '민요연습실' [전문가 리뷰]

‘민요연습실’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다섯 단원에 관한 얘기였다. 거기엔 웃음과 눈물이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원하게 털어놓는 그녀들의 얘기는 케이블방송의 토크쇼보다 더 재미있었다. ‘민요연습실’은 어떻게 재미와 감동을 주었을까? ‘우리 노래는 좋은 것이여’라고 한 마디도 외치지 않았다. 예술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일반 직장인과 별반 다름을 확실하게 알려줬다.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민요를 하는 단원들만의 영업비밀(?)도 알려주었다. 경기민요 대표곡 ‘노랫가락’ 곡조안에, 각자의 얘기를 노래 가사로 잘 담아냈다. 화려한 한복 속에 감춰진 그녀들의 고군분투기가 감동이었다. ‘우리비나리’(구희서 작사, 이준호 작곡)엔 더 큰 뭉클함이 있었다. 경기도립국악단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전신)의 창단연주회(1997년)에서 초연되었다. 민요선율과 국악관현악이 만난 불후의 명곡을 남긴 작사가와 작곡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을 여기서 해도 될까? 두 분께 크게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5인 중 최고참은 박진하. ‘긴아리랑’은 누구나 부르고 싶지만, 아무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긴아리랑’이 원래 그리움이 절절히 배어있다면, 박진하가 부르는 노래는 여기에 더해서 오랜 직장생활을 견뎌낸 뿌듯함이 더해졌다. 함영선은 선배와 후배 사이에 끼어있다. 자신도 긴아리랑을 부르고 싶지만, 배우지도 않았던 ‘병정타령’을 무대에서 불러야 했던 에피소드가 참 코믹하다. 연기를 잘해서 인정받은 하지아는 그동안 소리극에서 주인공을 참 많이 맡았다. 만삭의 상태에서도 주인공을 잘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힘듦을 내색도 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을 그녀의 심정을 짐작하게 해 준다. 심현경은 막내다. 하지만 그녀의 나이도 이젠 솔찮이 많아졌다. 후배가 언제 들어올 것인가? 막내인 그녀는 선배들과 다른 모습으로, 오늘도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 정가를 전공한 강권순 악장은 직장생활 2년 차의 초짜. 전공도 다른 상태에서 단원들과의 화합을 지향한다. 정가에 속하는 ‘수양산가’를 단원들에게 알려주었고, 정가와 민요가 어우러진 새로운 노래가 탄생했다. ‘어울렁더울렁’은 이들의 노래에 딱 맞는 표현이다. 신원영이 음악감독과 편곡을 맡았다. 경기민요의 본질적인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여기서 새로운 사운드를 입혔다. 고급지고(!) 깔끔하다. 앞으로 국악을 연구해서, 신원영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사랑을 받게 될 것 같다. ‘민요연습실’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정직은 최선의 방책’이란 서양속담이 있다던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민요연습실을 마치 다큐를 찍듯 솔직하게 보여줬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 경기소리꾼 이희문이 있다. 그는 이렇게 연출가로서의 역량도 튼튼히 쌓아가고 있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

아트스페이스J, ‘사진집 밖으로 걸어 나온 사진’展 [전시리뷰]

전시장에 걸린 사진을 지그시 바라본다. 사진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다. 한 장의 사진은 왜 이 사람이 이 피사체에 카메라를 갖다 댔는지, 그렇게 찍힌 사진이 현상과 인화, 인쇄, 출력에 이르기까지 어떤 여정에 몸담았는지 상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남 아트스페이스J에서 진행 중인 ‘사진집 밖으로 걸어 나온 사진’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유명한 사진집의 표지에 실리거나 책 속에 수록된 사진들을 사진집과 나란히 배치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끈다. 사진이 독립된 개체가 아닌, 책 속의 표지 사진으로 바뀌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원본 사진과 표지로 재편집된 사진 사이에는 어떤 관계와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을까. 10주년을 맞는 아트스페이스J는 오랜 기간 갤러리 차원에서 모아 왔던 소장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사진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만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사진전이나 사진집 출간기념회가 아닌, 사진과 사진집을 함께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메라로 찍어낸 사진을 액자 속의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어 선택한 용지나 기법에 따라 색감과 결이 천차만별 달라진다. 매체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사진의 특성 차이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첫 번째 홀에서는 필름 현상에서 인화에 걸쳐 프린트까지 인위적인 개입을 없앤 스트레이트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주로 접하게 된다. 처음 맞닥뜨리는 사진은 1985년 6월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표지를 장식한 ‘아프간 소녀’다. 미국의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가 찍은 이 사진 속 소녀가 책 표지를 벗어나 액자 속에서 우리를 응시한다. 책이 발간될 당시 출판사의 편집 부서가 왜 이 사진을 골랐는지, 원본 사진이 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홀에서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이 찍어낸 사진의 매력을 찾아보는 시간을 만끽한다. 양성철 작가의 ‘좋은 깃발 별이 되어’가 동명의 사진집 속 표지로 안착한 모습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표지로 쓰인 사진이 아니더라도, 사진집에 실려 있는 사진들 중 전시실 벽에 소환된 사진들도 있다. 오상조 작가의 ‘당산나무_전북 장수’가 그 예시다. 학예팀 측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가들과 협의를 통해 사진에 더 잘 어울리는 프레임을 고르는 데에도 신중하게 접근한 만큼, 사진이 소속된 장소와 사진을 머금은 매체들에 따라 어떻게 감상이 달라지는지도 확인 가능하다. 또 전시를 보다가 마음에 들거나 흥미를 끄는 사진이 있다면, 그 사진이 실려 있는 사진집을 들고 홀 중앙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사진집을 감상해볼 수도 있다. 전시를 기획한 한혜원 큐레이터는 “사진 매체가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다”며 “코로나19의 영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어서 사진집을 펼쳐보는 등 접촉과 교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번 기획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실 지 걱정이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27일까지.

소통의 오류 빠진 가면 쓴 현대인…수원시립공연단의 ‘억울한 여자’ [공연리뷰]

억울함을 토로하는 여자. 여자는 왜 억울할까? 무엇이 그를 억울하게 만들었을까? 가면 쓴 현대인들은 살아가는 내내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소통 속의 단절을 느끼는 한 여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장난 현대사회의 단면이 드러난다.   수원시립공연단의 정기 공연 연극 ‘억울한 여자’가 24일부터 26일까지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공연됐다. 구태환 연출은 쓰치다 히데오의 희곡을 특별히 각색하는 대신 원작의 결을 살려 작업했다. ‘도쿄’ 등의 지명, ‘가사하라 유코’ 같은 배역명 등이 모두 일본 원작을 그대로 따라간다. 국내 관객에게 익숙하게 하려면 현지화 작업을 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수원시립공연단의 ‘억울한 여자’는 그 노선을 선택하지 않았다. 구태환 연출은 “특히 대화의 연속에서 드러나는 섬세한 리듬으로 인물의 심리를 빚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관객들이 무대 위 배우들이 느끼는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2002년 일본에서 집필됐던 이 작품이 2008년 한국 초연을 거쳐 다시 2023년 수원에서 상연될 때 어떤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 걸까. 무대 위 배우들이 각자의 배역을 지금 이 시점에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난다.  일본의 어느 지방 소도시의 한 커피숍이 연극의 주 무대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만남의 광장에서 사람들은 서로 근황을 나누고 마음을 확인한다. 주인공 유코는 다카다가 쓴 그림책을 읽고 그에게 흥미를 느꼈고,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잘 이해하는 작가인 그의 팬을 자처해 그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는다. 유코는 네 번째 결혼, 다카다는 재혼이다. 연극을 보다 보면 이전의 세 남편이 왜 유코의 곁을 떠나갔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이르면 과연 유코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 남편들이 그를 떠나간 건지 의구심이 커진다.  유코는 자신의 마음을 전부 내보일 때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진정성 있고 문제 없다고 여긴 행동이 세상 사람들에겐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유코를 둘러싼 사람들은 언제나 많지만, 그는 철저히 고립된 존재다. 세상 그 누구도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유코 역시 세상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모두가 ‘소통의 오류’에 빠진 셈이다. 연극을 다 보고 나면 느껴지는 단어는 ‘불편함’, ‘위선’, ‘고립’이다. 인물들의 대화는 시종 삐걱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상의 대화가 아닌, 적막감과 머뭇거림이 쉴 새 없이 머문다. 일부러 딱딱하게 선을 긋는 사람도 있고, 과도한 친절로 무장해 접근하는 사람도 있다. 말을 하기 전에 자신이 속으로 하는 생각을 숨기고 비위를 맞추는 거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사람도 많다. 이 과정에서 말을 뱉기 전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 상대방 역시 그 정적을 충분히 감지한다. 관객들도 그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을 그대로 목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연극은 관객을 무대 장치로 압도하지 않는다. 한정된 공간에서만 진행되는 연극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그리고 그 대화 사이를 파고드는 공기다.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만 받아들이며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면 배척한다. 그와 같은 소통의 단절과 오류가 현 시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각자의 자화상을 제공한다는 점이 지금 이 연극이 우리의 내면에 다가올 수 있는 이유다.

1세대 조각가 김윤신 개인전 ‘더하고 나누며, 하나' [전시리뷰]

올해 여든여덟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인 1세대 조각가 김윤신. 그가 평생 주력해온 조각의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더하고 나누며, 하나’ 전시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나온 60여년의 작품활동을 각각의 공간에 담아냈다. 작가는 재료 본연의 성질을 파괴하지 않고 재료가 담고 있는 본래의 속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법을 추구한다. 전시 제목인 ‘더하고 나누며, 하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작품 제목으로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의 의미를 한글로 간략히 풀어냈다. 하나의 작품명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 철학이 확고하면서도 그 의미가 품을 수 있는 범주가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작가가 프랑스 유학 동안 제작한 석판화들이 등장하는 1층의 첫 섹션은 ‘예감’이다. 대부분의 석판화의 작품명이 ‘예감’인데 그중 1967년에 제작된 ‘예감’에 눈길이 간다. 태극문양을 표현한 듯하면서도 나선형 계단이 보이기도 한 작품은 흑백에 다소 차이를 주면서 약간의 공간감을 준다. 직선과 곡선이 겹쳐진 표현은 김윤신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공통된 조형적 특성을 예감할 수 있다. 두 번째 섹션 ‘우주의 시간’은 김 작가가 목조각을 하는 중간에 약 5년 동안 멕시코와 브라질에서 오닉스(Onyx)를 소재로 가장 힘든 과정을 동반해 작업한 석조각을 전시했다. 평범한 겉면을 깎아내 속살을 드러내면 나타나는 각기 다른 색을 띠는 결은 고급스러운 느낌과 마치 우주를 보는 듯 신비롭다. 다음 섹션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 복도 끝에서 마치 양팔을 벌리고 환영하는 듯한 알가로보 나무로 제작한 T자 형태의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1994-520’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작품을 비추는 조명은 그림자를 만들어 활짝 편 날개를 연상시킨다. 세 번째는 전시 제목과 같은 ‘더하고 나누며, 하나’는 그가 평생 주력해온 목조각이 펼쳐진다. 1970년대 ‘기원쌓기’ 시리즈의 작품들은 제목처럼 수직적인 쌓기에 집중했으며, 돌탑과 장승 등 한국의 토테미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가 추구하는 원 성질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휘어지고, 벌레가 먹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모습이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전개한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라는 작가의 독특한 철학을 형성했다. 음양사상의 원리를, 수렴하고 더해지는 ‘합’과 분열하고 나뉘는 ‘분’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뒤 조각을 통해 표현했다. 1984년 김윤신은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알가로보, 팔로산토 등 둘레가 크고 밀도가 높은 목재를 재료로 썼다. 단단한 나무가 빚어낸 볼륨감 속에 응결된 힘과 건축적 구조가 엿보인다.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 십자가 모양, T자 모양과 같은 형태로 전시된 작품을 통해 작가는 나무가 지닌 상징성에 절대적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을 덧대어 표현했다. T자 모양 나무의 끝부분에서는 한옥의 처마나 한복 소매 배래선을 품은 듯한 곡선의 미학이 묻어난다. 마지막 섹션 ‘노래하는 나무’에서는 김윤신이 지난해부터 한국에 있으면서 제작한 작품들이 보인다. 자연의 생명력을 노랑과 초록의 생동감으로 표현한 대형 회화 ‘내 영혼의 노래’뿐 아니라 호두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목조각도 보인다. 이들 중 일부는 경쾌한 느낌을 자아내듯 형형색색 채색돼 있다.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김윤신 작가는 국내에서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어 덜 알려졌다. 미술관은 대중들이 작가를 알아갈 수 있도록, 한국 여성 조각사의 확장을 위한 마중물이 되도록 전시를 기획했다. 전시는 오는 5월7일까지.

[공연리뷰] 하늘아래 두개의 인류 ‘낮과 밤’ 삶을 그리다

경기아트센터·경기도극단과 국립정동극장이 공동으로 기획·제작한 연극 ‘태양’이 서울 국립정동극장에서 지난 3일부터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태양’은 2021년 경기아트센터와 두산아트센터가 협력했던 초연 무대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이번 재연 무대는 초연에 비해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고, 어떤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다. ‘태양’은 21세기 초 바이러스로 초토화된 사회에서, 인류가 두 부류로 갈라진 상황을 그려냈다. 항체를 가진 우월한 존재들은 자외선에 약해 해가 진 뒤에만 활동하는 밤의 인간 ‘녹스’가 됐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햇빛 아래 살아갈 수는 있지만 도태된 낮의 인간인 ‘큐리오’로 불리게 된다. 흥미로운 설정을 도입해 희곡을 집필한 마에카와 도모히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SF면서 우화이기도 하고, 지극히 일상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이를 무대 위에 표현하는 데 있어 리얼리티의 라인을 어떻게 설정할지 매우 어려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태양’은 등장인물들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구현하는 방식에 관한 고민이 필요한 연극이다. ‘태양’에서 김정 경기도극단 상임연출이 재현해낸 무대는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곳이다. 무대는 관객들의 현실을 마냥 풍자하는 곳도 아니고, 현실을 굴곡 없이 재현해낸 거울도 아니다. 그렇기에 이 연극에선 배우들의 역할과 움직임, 그들의 에너지에서 피어나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녹스와 큐리오 진영에 속한 각각의 배역 한 명 한 명이 모두 특정 인간상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10명이 안 되는 출연진으로 갈라진 인류, 갈등으로 신음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려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지만, ‘태양’은 그 점에 있어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연극은 내내 서사의 굴곡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무대 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지 관객의 마음에 새겨넣고자 한다. 누군가는 녹스로 살아가길 포기하고 태양을 눈에 담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녹스가 되기 위한 묘수를 찾아내고자 한다. 또 누군가는 날 때부터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녹스였기에 빈틈이 보이고 불완전해 보여도 감수성과 낭만으로 가득한 큐리오의 삶을 꿈꾼다. 이처럼 다양한 부류의 인간이 제작기 다른 생각과 신념을 무대 위에서 펼쳐 놓는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이야기에 집중하는 대신, 배우들의 언행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김정 연출은 배우들이 토해내는 감정과 대화를 관객들이 온몸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선, 극장을 찾은 이들을 압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고 말하면서 작업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경기도 극단 소속인 임미정, 윤재웅, 이애린, 최예림 배우들을 향한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배우부터 극단에 새로 들어온 배우들까지 외부의 훌륭한 인력과 부딪히고 뒤섞이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뜻깊었다”며 “협업은 언제나 새롭다. 각자 지닌 잠재력과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극을 관통하는 주제, 결말 부분의 묘사에 있어 2년 전 초연 때와 다르게 접근했다. 당시엔 두 부류의 화합 가능성을 논했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특히 2021년의 ‘태양’을 다시 무대에 확장해 올린 데 대해 “코로나19의 혼란 속에서 시작됐던 ‘태양’은 우리 사회에서 발견되는 틈을 온기로 채워넣으려는 작업이었다”면서 “하지만 2년 뒤, 예측 가능한 공포는 사회를 양분했고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폭로하는 매개체가 됐다. 그래서 분열과 갈라짐으로 신음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대로 조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연극은 26일까지.

[공연리뷰] 청소년기 고민... 뮤지컬로 함께 풀어요

가상의 배역을 통해 허구의 세상을 연기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대 위가 삶보다 더 진짜 같은 삶의 현장이 될 수 있다면? 수원시청소년뮤지컬단의 생기로 가득했던 무대는 그 가능성이 실현되는 곳이었다. 지난 10일과 11일 양일간 수원청소년문화센터 온누리아트홀에서 수원시청소년뮤지컬단의 제6회 정기 공연 ‘스노우 데이’가 관객들과 만났다. 공연엔 중·고등학생 위주로 구성된 14명의 단원이 무대에 올라 1년가량 연습한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틈만 나면 공상에 빠져 살고 엉뚱한 생각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대니. 폭설로 휴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대니에게 정말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뮤지컬단원들은 지난해 수원특례시 제27회 양성평등주간 기념식 공연, 옴니버스 뮤지컬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 그리고 나’, 수원시청소년예술단 연합음악회 ‘어깨를 나란히 꿈을 향해’ 등 세 차례의 무대에서 이번 정기 공연의 ‘My World’와 같은 넘버들을 일부 활용해 공연을 펼쳐왔다. 여기에 더해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단원들이 동선과 안무를 일사불란하게 선보이면서 높은 완성도의 무대를 이끌어냈다. 이어 무대를 수놓는 모습은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일상의 학교 풍경이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 왁자지껄 떠들고, 정돈되지 않은 교실 분위기를 한순간에 휘어잡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주인공 대니는 자꾸만 지각을 일삼고 친구들, 선생님과 원만한 관계를 쌓아가지 못한다. 혼자 있을 때 지붕 위로 올라가 공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대니는 학교에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정신을 못 차린다는 꾸중을 듣기도 한다. 대니는 자꾸만 위축되고 작아진다. 이런 대니가 겪는 내면의 혼란, 청소년기에 직면한 다양한 고민들이 관객에게 잘 전달된 이유는 단원들이 몸에 맞는 연기를 소화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삶의 조각들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청소년기에 으레 할 법한 고민들, 학교생활,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제들,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맞닥뜨리는 갈등들 말이다. 이러한 이유에선지 객석엔 무대에 오른 단원들을 격려하고 응원하고자 공연장을 찾은 가족들과 친구들 외에도 뮤지컬단의 공연을 보기 위해 시간을 내 관람한 중·고등학생들이 꽤 많았다. 이들은 커튼콜에서 단원들에게 열띤 환호를 보내며 함께 호흡했다. 정유진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각색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가 뮤지컬단을 운영해오던 철학에 따라 이번 공연 역시 ‘공연으로서의 공연’이라는 기능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무대가 아닌, 학생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고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 특별한 결실이라고 설명한다. 정 예술감독은 “늘 흔들리고 요동치는 학생들의 내면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을 거듭해갈 수 있었다”며 “우리 작품은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외롭고 답답함을 느끼던 이가 친구가 생길 때의 순간, 더 나아가 함께하는 가치를 느끼는 과정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심으로 뮤지컬을 사랑하는 열 넷 배우들의 반짝이는 이야기를 많은 관객들과 나눌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강조했다.

[전시리뷰] 공동체와 개인 오가는 선택… 오산시립미술관 ‘일인가구’ 展

오늘날 꾸준히 늘어가는 1인 가구는 더이상 특별한 사회집단이 아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난 영향 때문인지 관계 속의 고립, 공존 속의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젠 누구에게나 그런 형태의 삶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다. 지난 17일부터 시작된 오산시립미술관 특별기획전 ‘일인가구’ 전은 집단 속에 머물렀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방문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13인(팀)의 작가들이 모여 풀어낸 ‘자발적 고립’, ‘발화’, ‘공감’ 세 개의 주제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집단과 개인을 오가는 선택에 직면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한다. 먼저 2층의 첫 섹션인 ‘자발적 고립’이다. 누구나 공동체를 벗어나 홀로 살아갈 때는 자신의 일상을 다시 살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전윤정, 염지희, 윤민섭, 안경수 작가는 이런 점에 착안해 작품을 구성했다. 특히 전윤정 작가의 ‘Black hair Rapunzel’은 캔버스 위에 표현된 검은 선의 집합으로 홀로 갇힌 긴 머리의 라푼젤을 형상화했다. 선은 하나이지만 여러 선들이 뭉치면 집단처럼 보이기에, 홀로 있는 존재를 구성하는 세계의 구성 요소 면면에 대해서 쉽게 정의 내릴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엿보인다. 두 번째 섹션 ‘발화’에선 표영실, 이지영, 지희킴, STUDIO 1750의 작품들을 통해 개인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느낀다. 1부의 작품들이 자신과 그 주변에 초점을 맞춰 응시하는 방법을 공유했다면, 2부의 작품들은 각자가 타인과 맺는 관계에 무게를 두면서 방향성이 확장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지영 작가의 ‘네면의 집’에선 내부를 의도적으로 비워놓고 누군가가 들어갈 법한 문을 열어놓은 채로 기다리는 기묘한 집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집에 있어야 하며, 그 사람이 집의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만나게 될지는 그림을 보는 이들 각자가 떠올려야 할 몫이다.  STUDIO 1750(손진희·김영현) 팀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의자와 침대 등의 생활 가구를 조명한 ‘XX씨의 방’ 시리즈에선 매트리스가 침대 프레임을 벗어나 크게 부풀려져 있거나 의자의 쿠션보다 한참 커져버린 나무 프레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상 속 사물이 왜곡된 모습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세상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공감’을 키워드로 체험의 공간을 만난다. 1부와 2부에서 관람객들은 개인이 집단과 어울릴 때 어떻게 소통할지 고민에 빠졌던 작가들의 사유를 경험했다. 이번 섹션에 마련된 설치 작품과 애니메이션 및 단편 영화들은 앞서 봤던 작품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1부에서 물리적인 확장을 담아냈던 윤민섭의 ‘Room series’가 방의 공간 속성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다룬 정다희의 단편 애니메이션 ‘빈 방’과 소통할 수 있다. 특히 최수환 작가의 ‘함께, 혼자’는 철골 사각 구조물에 두 개의 문이 달려 있는데, 사람이 문을 열고 드나들 때 안팎의 경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상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오산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자신과 주변의 사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메시지를 주는 전시”라며 “홀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살면서 느껴봐야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4월9일까지.

[전시리뷰] 첨단 기술로 담아낸 예술의 빛… 미구엘 슈발리에 '디지털 뷰티'

기술과 예술,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만나 매일 새롭게 쓰는 디지털 아트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미구엘 슈발리에가 선보이는 ‘디지털 뷰티’가 서울시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지난 18일 개막했다. 아라아트센터 5개 층을 활용해 열리는 이번 전시는 14개의 설치 작품 외 드로잉, 다큐멘터리 등 총 70여점으로 구성돼 작품 미구엘 슈발리에의 갤러리 전시 중 가장 큰 규모다. 미구엘 슈발리에는 1980년대 이후부터 예술적 표현 수단을 오직 컴퓨터에만 집중한 작품들을 공개해 왔다. 홀로그램, LCD·LED 화면, 3D 프린팅 조형물 등 발달된 현재의 기술로 작품을 만든다.  전시의 묘미는 관람객이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라는 점이다. 전시를 찾은 방문객들은 작품을 단순히 눈으로 관람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작품 속에 녹아들고 직접 이를 만드는 등 작품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작품은 이를 이용하는 관람객의 고유한 몸짓에 따라 형태가 변해 매분 매초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전시장에 들어서면 3면을 가득 채운 ‘그물망 복합체’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오늘날 우리가 맺고 있는 온‧오프라인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수많은 선이 얽히고 설켜 있다. 작품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선은 깨져 나가기도 다른 모양과 다른 색의 선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하 1층부터 지하 4층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작품을 관람하게 돼 있는데 계단 바로 위 천장에 설치된 ‘라이좀’은 어느 층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1천500개의 강철 막대와 UV 라이트로 구성돼 있어 라이좀이 생성하는 빛이 전시장 전체를 아우른다. 불규칙하게 연결된 막대들은 ‘디지털 뷰티’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지하 3층에선 미구엘 슈발리에와 패트릭 트레셋의 협업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디지털 예술과 로봇 예술이 결합한 ‘어트랙터 댄스’는 5개의 관절형 로봇팔이 쉴 새 없이 드로잉을 한다. 로봇은 동일한 간격으로 동그랗게 설치된 채 깃털을 달고 움직여 마치 무대 위에서 군무를 펼치는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1년여 이어지는 전시 동안 로봇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그려낼 예정이다. 어트랙터 댄스를 지나 옆에 위치한 룸으로 들어서면 로봇이 만들어낸 선들이 작품이 돼 방을 아우른다. 대형 스크린 양옆으로 설치된 통거울은 공간을 무한정 연장해 작품을 끝없이 이어지게 한다. 관람객은 마치 또 다른 세계에 놓인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전시장 말미에 설치된 ‘디지털 무아레’와 ‘매직 카페트’ 역시 눈길을 끈다. 1950~60년대 옵아트를 재현한 14m 높이의 디지털 무아레는 기하학무늬의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 그 아래 놓인 매직 카페트는 눈밭에 발자국을 새기듯 발걸음의 흔적을 남길 수 있어 재미를 더한다. 지상 5층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는 꽃이 피어나고 자라는 순서를 대형 화면에 담아낸다. 여덟 개의 꽃이 피고 지는 사이클을 통해 사람의 탄생과 삶, 죽음을 바라볼 수 있다. 최첨단 기술을 통해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는 단편적인 기술도 단순한 화려함도 아닌 삶과 자연, 사람이다.  전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미구엘 슈발리에는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하거나 볼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담아내고 싶었다”며 “작품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 관람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4년 2월11일까지. 

[전시리뷰] 보편성에서 찾아낸 새로운 이미지…‘틈의 풍경 between, behind, beyond’

자신만의 세계 구축과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30대 작가들인 김세은, 라선영, 송수민, 황원해 등 4인을 주목하는 자리가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 마련됐다. 젊은 작가들을 조명하는 ‘미메시스 아티스트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기획전인 ‘틈의 풍경 between, behind, beyond’다. 이들의 작품에는 보편적인 도시와 공간, 사람과 자연의 이미지를 다루는 시선이 녹아 있다. 작가들은 표면과 이면, 그 사이 생겨나는 틈을 각자의 방식대로 응시한다. 저마다 결이 다른 네 명의 작가들이 세상을 독해하는 관점을 어떤 측면에서 공유하는지 곱씹어보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전시의 매력을 발견한다. 자연광이 때때로 스며드는 1층에선 라선영 작가의 작품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얼굴 없는 사람 조각들이 교복, 작업복, 운동복을 입고 있다. 각자의 직업과 생활 영역 특성으로 세분화된 다양한 인간 군상은 삶의 풍경을 반영하는 하나의 소통 창구다. 이때 조각들은 눈높이보다 낮은 곳 혹은 바닥에 놓여 있어 관람객들이 조각을 조망하듯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객관화된 시선은 곧 개체와 개체 사이의 틈을 눈여겨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2층에선 작가들의 지난 전시 활동, 작업 동향 등의 궤적이 담긴 글과 영상 자료를 만날 수 있는 아카이브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눈을 돌리면 회화 작가 세 명의 시선이 공존하는 장이 펼쳐진다. 송수민 작가의 작품에선 회화와 공간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는 전체를 먼저 구성하는 대신, 부분에서 출발해 하나씩 연상하며 확장한다. 캔버스의 형태와 갯수를 조정하는 것 역시 그런 관점의 연장선이다. 작가는 여러 개의 캔버스가 연결된 거대한 작업인 ‘고요한 소란 1+2’에서 화산폭발과 들꽃의 이미지를 다양한 시점으로 조합했는데, 이를 통해 재현된 풍경보다는 풍경과 풍경 사이의 상상지대이자 모호한 틈새의 풍경이 생겨난다. 송 작가의 작품 곁에 김세은 작가의 작품도 보인다. 도시와 자연을 본 뒤 느낀 감정을 형상화한 것인지, 눈에 비친 모습 자체를 뒤틀리게 그려낸 것인지 모호하게 보인다. 어쩌면 김 작가의 작품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경험을 넘어서는 도시 곳곳의 이미지를 감각으로 드러내려면 추상의 형태에 가까워져야 하는 건 아닐까. 같은 층에선 황원해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황 작가는 도시 건축물의 부분에 내재한 물성, 도시의 평면성, 입체와 평면 사이를 오가는 이미지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그는 ‘Facade in facade’, ‘Moire’ 등에서 그림 속 요소들의 결합과 와해를 통해 화면 영역에 표현되는 조형성이나 움직임을 잡아내는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이 송수민, 김세은, 황원해 작가의 작품들이 일정 구간마다 느슨하게 교차되는 광경을 2층에 이어 3층에서도 지속해서 만난다. 이에 따라 관람객들은 세 작가가 각자의 대상에서 찾아낸 균열을 통해 이들의 작품 세계가 어떤 공통분모로 연결되는지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 전시를 기획한 김미금 큐레이터는 “인간과 공간 등의 테마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한 경향에 주목하고자 했다”라며 “재구성된 풍경이 만들어내는 탐색지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24일까지.

[전시 리뷰] “형태가 변하는 모든 것이 조각”…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조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지난 7일부터 열린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 전시는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 대표 현대미술작가 에르빈 부름의 작품 세계를 담아냈다. 타이틀 ‘나만 없어 조각’은 ‘조각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갖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했다. 에르빈 부름은 1980년대부터 조각의 본질과 형식을 탐구해 형태 변화, 부피 증감 등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정의한 작가다. 비만·행위·시간 등 형태가 변하는 모든 것들을 조각으로 재정의 한 그의 시선이 61점의 조각, 사진·영상, 퍼포먼스 작품에 담겨 예술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이번 전시는 연도 순이 아닌, 작가가 조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1부 ‘사회에 대한 고찰’에서는 부피를 변형시킨 작품들이 등장한다. 먼저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차량의 부피가 풍선처럼 늘어난 ‘팻 컨버터블(팻 카, Fat Car)’이다. 소비에 대한 욕구가 부풀려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표현한 조각 뒤에 놓인 모니터에선 팻 카가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굵은 목소리로 무기·마약 등 무거운 주제를 언급해 사회문제를 환기한다. 2부 ‘참여에 대한 고찰’에서는 ‘만지지 마세요’가 아닌 ‘참여하세요’라고 말한다. 특히 에르빈 부름을 다시 작가로 도약하게 한 ‘1분 조각’은 물성뿐만 아니라 시간성도 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분 조각’은 ‘동작의 속도를 늦춘다면 조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조각의 개념을 확장한 작품이다. 예로 작품 중 하나인 ‘에피쿠로스 태양 아래 빛을 쬐시오’는 천장에 걸린 램프와 받침대, 벽면의 지시 드로잉과 작품 사이에 신체부위를 두고 조각이 돼 보는 관객으로 이뤄진다. 관객이 직접 작품에 손을 대거나 밟아 보는 등 참여자가 조각 자체가 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3부 ‘상식에 대한 고찰’에선 조각에 대한 상식을 깨는 작품을 마주한다. 일반적으로 사진과 평면을 조각이라고 보지 않지만, 납작한 것들도 조각의 양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작가가 스스로를 모델로 찍은 ‘사진 조각’에선 예술가가 항상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통념과 정반대인 ‘게으름, 잠, 멍때리기’ 등과 같은 모습을 드러내 관습처럼 이어오는 생각에 대한 의문이 묻어난다. 이어 실제 모델의 옷과 팔·다리 등 표면 일부를 캐스팅한 ‘스킨조각’과 그림을 걸어 둔 ‘평면 조각’은 덩어리가 아닌 껍데기를 조각으로 남겨두며 ‘조각’에 대한 상식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조각은 모든 현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자 사회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구다. 현실적이어야 사람들이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들은 정치로 모두 해결할 수 없으며 예술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한 에르빈 부름의 통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시는 내년 3월19일까지 열린다.

[전시리뷰] 국내 도자사 새롭게 조명…경기도자박물관 ‘흑자 :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

도자기를 떠올릴 때 오묘한 검은 빛을 띠는 ‘흑자’를 단번에 생각해내는 이는 드물 테다. 청자와 백자로 수놓인 한반도의 도자기 역사를 짚어본다면 흑자는 제법 낯선 존재다. 하지만 흑자엔 긴 시간 동안 누적된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흑자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을 맴돌았고,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과 관계를 맺었을까. 경기도자박물관에선 지난달 29일부터 ‘흑자: 익숙하고도 낯선, 오烏’ 기획전을 열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전시는 흑자의 뿌리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1천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 도자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흑자에서 풍기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매력과 고유한 가치를 알린다. 칠흑같이 어둡게 주변에 스며들다가도 때때로 오색으로 반짝이는 흑자의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경기도자박물관 측은 국립중앙박물관, 경기도박물관 등 국내 주요 박물관 및 개인 소장가와 협력해 고려시대 이전부터 근대까지의 ‘흑자’ 및 관련 자료 70점을 전시장에 가득 채웠다. 1부 ‘검은 빛으로부터’, 2부 ‘까마귀를 걸친 은둔瓷(자)’, 3부 ‘빛, 변용과 계승’ 등 총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 시기를 수놓았던 흑자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흑자가 국내로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 전후로 추정된다. 이후 중국에서 꾸준히 수입되던 흑자는 자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자리 잡힌 고려시대가 돼서야 비로소 생산되기 시작했다. 고려가 해상무역이 발달한 데다 송나라의 차(茶)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흑자 문화와 연결된다. 그에 따라 이 시기의 흑자는 그릇이나 다완(찻잔) 등 실생활의 영역에서 많이 보였다. 당시 흑자는 청자를 생산하던 가마에서 함께 구워졌기 때문에 동일한 기형을 가진 청자와 흑자가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1부 전시공간에선 ‘흑유 탁잔’, ‘흑유 주자’ 등의 흑자를 통해 송나라의 영향권에 놓여 있던 고려 시기의 흑자 문화가 어떻게 형성, 발전됐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2부에선 조선 시대로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흑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사실 흑자는 당시 조선 백자나 고려 청자 만큼 영향력을 끼치는 도자기가 아니어서 생활 영역에서 골고루 쓰이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뿐 아니라 장이나 육류를 저장하거나 운반하는 용기로 쓰임새가 확대되기도 했다.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흑자가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에서 보듯 주병으로도 많이 쓰였다는 점도 확인된다.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파주, 포천, 가평 등지에 전용가마가 생겨나면서 수요와 생산량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는 등 흑자를 둘러싼 문화 전반의 변화 양상을 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생산되던 흑자는 수요와 용도가 다양해진다. 조선 때처럼 도자 본연의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기념품으로도 많이 생산됐다는 데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흑자 문화는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며 과도기를 겪는다. 당대 생산됐던 도자엔 외세에 의한 산업화와 전통 계승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흔적처럼 배어 있기 때문이다. 강명호 경기도자박물관장은 “우리의 도자문화를 풀어낼 때 백자나 청자 위주로 인식하던 기존의 틀을 바꾸는 시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이번 전시가 국내 도자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이자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3월26일까지.

[전시리뷰] ‘죽음을 대하는 선조들의 마음’…경기도박물관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

조선 시대 장례 문화를 수놓은 ‘지석’에 적힌 글귀를 음미하다 보면, 당대 사대부들의 살아 생전 모습들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글씨를 써서 남긴 이들이 죽은 이의 삶을 정확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올곧은 정신, 삶을 대하는 태도를 정성껏 추모하는 글자 속에서 발견한다. 경기도박물관의 특별전 ‘경기 사대부의 삶과 격, 지석’이 지난 7일부터 개막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국내의 공립박물관 가운데 지석을 최다 소장한 도박물관이 조선시대의 지석들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자리라는 점에서 뜻깊다. 1부 ‘예禮를 다하다’, 2부 ‘삶을 기록하다’, 3부 ‘경기사대부의 정신을 잇다’의 구성을 통해 관람객들은 지석의 의미와 유래, 시대별 지석 생산 문화의 변천, 그리고 그에 담긴 사대부들의 삶과 후손 이야기 등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지석은 죽은 이의 인적 사항과 무덤의 위치 정보 등을 적어 넣어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도자기판 내지는 판판한 돌이다. 기원전 3세기께 중국 진나라 때 등장한 지석 문화는 국내에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널리 유행했다. 고려 때의 지석은 돌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고 불교식 화장 문화와 혼합되기도 했다. 조선 때에 이르면 유교 문화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는데, 계층에 따라 재질이 다르게 생산됐다. 유교를 통치 이념 삼았던 조선 시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에는 ‘주자가례’(사람이 일생 동안 거치는 관혼상제 예절을 다룬 책)에 따른 장례 절차와 기준 등이 수록됐고, 그 속에 지석 제작과 매납 방식에 대한 내용이 발견된다. 경기도에서 출토된 지석에서는 조선시대 국가 운영의 핵심이었던 사대부들의 삶과 가치관, 그들의 죽음을 둘러싼 태도 등을 접할 수 있다. 2부 전시장에선 소재와 제작 방식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의 지석을 만난다. 음각, 상감, 청화, 철화 등 글씨를 새겨넣는 방식이 다채롭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의 선조들이 시기와 상황에 맞춰 효와 예의 도리를 다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히 ‘주자가례’의 원칙을 계승한 조선후기의 지석에는 정갈하고 단정한 멋이 깃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지석을 통해선 사대부의 생전 행적뿐 아니라, 사대부들을 떠나보내는 남은 이들의 비애와 태도를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지석의 제작 시기를 파악하는 작업은 그 집안 가세의 영향력과 수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3부를 수놓는 5개 가문의 지석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에 자취를 남겼던 사대부들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청송심씨 인수부윤공파, 청송심씨 사평공파, 풍양조씨 화양공파, 기계유씨, 남양홍씨 등이 그들이다. 조선의 지석 문화가 이들 같은 사대부들이 공유하는 특징을 살피는 데 있어 공통 분모가 된다는 데서 전시의 의의가 엿보인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은 “지석에 새겨진 사대부의 생전 모습들, 먼저 떠나간 사람를 향한 남은 이들의 마음을 살펴볼수록 나 자신을 돌아 보게 된다”며 “지석을 매개로 경기 사대부의 내면과 생각을 조명하는 이번 특별전이 우리가 그들에게서 어떤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통로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내년 3월26일까지 열린다. 송상호기자

[영화리뷰] 넓어진 무대에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아바타: 물의 길’

2009년 개봉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아바타’의 후속작 ‘아바타: 물의 길’이 13년 만에 극장가를 찾아 화제다. ‘아바타: 물의 길’은 개봉 첫날인 14일에 3시간12분이라는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35만9천288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아 흥행 몰이를 예고했다. 이번 영화는 기술력과 비주얼으로 충격을 선사했던 전작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진보했고, 어떻게 다른 세계관을 묘사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어 더욱 관심을 모은다. 특히 이번 후속작은 3D 안경을 착용한 뒤 산등성이와 열대우림 그리고 깊은 바다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OTT 이용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문화에 균열을 낼 수 있기도 하다. 과연 이번 개봉을 계기로 영화적 체험이 가능한 극장의 존재 의의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에이리언 2’,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통해 ‘속편의 제왕’으로 이름을 날린 제임스 카메론은 사실 ‘어비스’, ‘타이타닉’ 등의 장편과 심해·해양 탐사 등을 다룬 바다 관련 다큐멘터리 여러 편을 통해 바다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꾸준히 반영해 왔다. 이처럼 ‘바다’는 그의 영화를 대변하는 정체성과도 같은 요소라고 볼 수 있기에, 이번 작품은 1980년대부터 이어 온 그의 여정을 집대성한 무대로 볼 수도 있다. 관람 내내 화면을 들여다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화에 구현된 해양 생물들의 세밀한 움직임이나 수심에 따라 달라지는 바닷속의 풍광을 3D 안경을 낀 채 보고 있으면, 마치 물 속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도 든다. 그만큼 감독이 만든 판도라 행성을 뒤덮는 바다는 오로지 스크린만을 통해서도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매력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판도라 행성의 무대가 한껏 넓어지고 선명해진 대신, 서사의 무게는 줄었고 그 농도 역시 옅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1편에 이어지는 2편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들은 식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원주민(나비족)의 갈등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전개를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번 영화는 그와 같은 반복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성장’이라는 화두를 내세워 1편의 주요 등장인물로 대변되는 부모들과 자라나는 세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조명한다. 그렇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관계들은 거대한 해양 생물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 그 자체에 희석된다. 1편을 통해 판도라 행성이라는 낯선 세계를 창조해낸 제임스 카메론은 13년 만에 찾아온 속편을 통해 오히려 낯선 세계는 없다는 사실을 넌지시 드러낸다. 어쩌면 낯선 세계 대신 매혹적인 세계는 있다.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해, 막대한 제작비와 최상의 기술력으로 구현해낸 판도라의 바다는 그 목적을 분명 달성할 것이다. 다만 판도라의 확장은 더 완벽한 세계관을 향한 구축으로 이어질 뿐, 새롭고 참신한 자극과 서사를 접할 기회는 오히려 사라질지도 모른다. 13년 만에 돌아온 ‘아바타: 물의 길’에서 느낄 수 있는 건 그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감독의 야망이 아닐까. 이 야심이 2년 뒤 찾아올 또 다른 아바타의 후속편에서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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