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농약 마시고 골프채로 차량 3대 파손한 70대 병원 이송

술과 농약을 마시고 노상에 주차돼 있던 차량들을 골프채와 망치로 파손한 70대 남성이 붙잡혔다. 수원남부경찰서는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A씨를 현행범 체포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전날 오후 10시20분께 권선구의 한 노상에 주차돼 있던 차량 3대를 파손한 혐의다. A씨는 미리 준비한 골프채와 망치를 이용해 운전석 창문 등을 내리쳤다. 이 중 1대는 본인 소유 차량이었으며 나머지 2대는 60대 남성 이웃의 차량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현장을 이탈한 상태였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A씨 동선을 추적해 사건 발생 지점 인근 A씨 주거지 앞에서 그를 발견하고 검거했다. A씨는 경찰에게 “농약을 마셨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농약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빈병을 발견한 뒤 119에 공동 대응을 요청해 A씨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조치했다. 현재 A씨는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다. A씨는 이날 자신과 다툰 부인이 외출하자 집에서 술과 농약을 마신 후 밖으로 나와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 차량 소유주 B씨는 과거 주차 문제로 A씨와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상태가 호전되는 대로 구체적인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양휘모·윤현서기자

[내년 예산안 시정연설] 金 지사 “위기의 시대... 민생·기회·안전에 집중”

경기도가 ‘기회소득’과 ‘청년사다리’ 등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을 내년도 예산안에 담고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김 지사는 3일 열린 경기도의회 제365회 정례회 3차 본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 및 2022년 추가경정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통해 내년에 추진할 주요 사업을 소개했다. 그는 “복합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도민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도의 의지를 담았다”며 “중앙정부는 ‘건전재정’을 목표로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업예산을 축소했다. 그러나 위기의 시대에는 평시와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이 보다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도 예산안은 ‘건전재정’이 아닌 ‘민생재정’에 중점을 뒀다”고 예산 편성 방향을 밝혔다. 이날 김 지사가 소개한 내년도 예산은 ‘민생’, ‘기회’, ‘안전’에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먼저 ‘민생예산’은 주거, 교통, 일자리 분야에 중점적으로 편성해 ‘1기·3기 신도시 정비’ 등에 7천957억원, ‘GTX 등 광역교통 기반 확충’에 1조6천271억원을 배정했다. 중앙정부가 축소한 ‘노인 일자리’와 ‘국공립 어린이집’ 사업 예산은 각각 확대해 2천246억원과 132억원을 반영했다. 또 ‘기회예산’ 1조531억원은 ‘경기청년 사다리’, ‘경기청년 갭이어’ 사업에 61억원, ‘베이비부머 일할 기회 지원’ 사업에 91억원을 배정했다. 예술인 기회소득 66억원과 장애인 기회소득 10억원, 장애인 누림통장 9억원 등도 반영했다. 이와 함께 도는 기회터전을 위해 옛 경기도청 부지의 사회혁신 복합단지 조성에 20억원을 편성했다. 아울러 ‘안전예산’은 올해 대비 19.6% 증액된 1조1천966억원을 배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 조성에 1천643억원, 사회복지 예산에 14조3천390억원을 편성했다. 도는 지난달 31일 33조7천790억원 규모의 내년도 본예산안을 도의회에 제출했다. 도의회의 본예산안 의결 법정기일은 다음 달 16일이다. 한편 이날 오후 김 지사는 염태영 경제부지사와 함께 곽미숙 국민의힘 대표(고양 6)를 만나 2차 추가경정안 처리를 요청했지만 불발됐다. 김보람기자

[이태원 핼러윈 대참사] 도심 참사 불안 더 높아… 정부, 심리치료 나선다

“사람 많은 곳에만 가면 심장이 쿵쾅쿵쾅 해요.” 3일 수원특례시내 한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김모씨(32)는 이태원 참사 이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왠지 모르게 불안해진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매일 출퇴근길에 만원 버스를 이용하는데, 두렵기도 하고 숨 쉬는 것도 불편해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3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trauma)가 유족과 생존자는 물론 직간접적으로 사건을 접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파고들었다. 목격자들을 중심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호소하는 상담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상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가능성까지 우려하고 있다. 당시 안산 단원고 ‘스쿨닥터’로 활동했던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이번 참사는 바다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와 다르다.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대중이 받아들이는 불안과 공포의 정도가 더 크다”며 “폭탄 테러를 목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참사 현장을 담은 영상과 사진을 반복적으로 접하는 것도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하는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이렇게 큰 사고나 재난이 발생하면 충격적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뉴스나 영상을 계속 찾아보는 분이 있는데 멈춰야 한다”며 “우선 사안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서울 합동분향소 2곳에 설치했던 ‘마음안심버스’를 전날 대전 등에 추가 배치해 총 6곳으로 늘렸고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한수진기자

[라온고, 부정부패에 멍드는 아이들] ③"상납 없으면 아이 훈련에 차별 두기도“

“돈 봉투 의혹 야구부 감독, 상납 없으면 학생 훈련 차별” 평택시의 한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자신에게 돈 봉투를 주지 않는 학부모들의 아이를 차별하거나 노골적으로 상납을 요구해 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그는 학부모에게 돈 봉투를 받거나 코치들에게 지급된 판공비를 상납 받은 것은 물론 아이들이 마실 식음료를 더 비싼 가격임에도 아들 명의 무인상점에서 구매했다는 의혹(경기일보 10월28일·11월1일자 4·6면)을 받고 있다. 3일 복수의 학부모에 따르면 라온고 야구부 소속 한 학부모는 학교에 찾아와 돈 봉투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가 감독 A씨로부터 노골적인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지션별로 여러 명의 선수가 있기 때문에 조를 짜서 지도를 하는데, 계속해서 B군만 지도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며 “나중에 감독이 평소 친한 인물들을 통해 ‘B군의 부모는 인사도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고 해 이런 사실을 알게 됐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학부모는 “아이가 참다 참다 ‘감독님이 계속 나만 차별을 해서 야구를 하고 싶지 않다’며 눈물까지 흘리더라”며 “어떻게 지도자가 아이를 지도하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야구부 출신 졸업생의 학부모는 “우리 아이가 학교를 다닐 때도 명절이나 스승의날 같은 때에 부모들끼리 돈을 걷어서 당시 학부모 회장을 통해 전달하거나 직접 돈을 전달했다”며 “전지훈련 같은 훈련 시즌에는 아이를 잘 좀 봐 달라는 의미로 몇 백만원씩을 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아이와 비슷한 실력의 아이가 있었는데, 대회 전에 성의를 보이라고 해서 돈을 건넸더니 우리 아이만 경기에 나가고 그 아이는 (엔트리에서)제외됐다”고 증언했다. 학부모들은 A씨가 야구선수 출신으로, 경기도내에서 다른 고교 야구부 감독 등을 맡기도 했고, 야구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그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학부모는 “오죽했으면 아이들 사이에서 비슷한 실력인데 유독 출전을 자주 하는 아이가 있으면 ‘쟤네는 얼마나 (많이)준거야’라는 말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지난달 만남 당시 “학부모들에게 단 한 푼도 받은 적이 없다. 절대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 후 이날은 전화를 꺼두고 문자 등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사립학교 내 일반코치는 학교에서 징계 결정 등을 해야 하는 사안이라 학교 현장을 방문해 관련 절차를 상세히 안내했다”며 “학교체육소위원회를 통해 현장 및 탐문 조사 등을 하고 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교육공무직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 수위를 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와 별개로 감사관실에서 관련 자료 등을 토대로 감사의 개시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희·한수진기자

[경기만평] 이러면 나가린데...

[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2. 여주 여성생활사박물관

여주 ‘강천(康川)’은 이름처럼 남한강을 오르내리던 배들이 편히 쉬어 가던 마을이었다. 남한강 복판에 길게 누운 강천섬은 벗이나 가족과 소풍 가기에 썩 좋은 섬이다. 강천섬으로 이어지는 강천로를 따라 가다보면 1971년 개교해 1999년에 문을 닫은 강천초등학교 강남분교터에 자리한 여성생활사박물관(관장 이민정)이 있다. ■ 대를 이어 전해져야할 겨레의 살림살이 여성생활사박물관은 천연염색가 이민정씨가 30년 동안 수집한 여성생활과 관련된 유물 3천여점을 바탕으로 2001년 6월에 개관한 전문박물관이다. 이민정 관장은 ‘외국인 친구들이 자기네 전통 유물을 소중하게 주고받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한국의 옛 여성들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다. 그가 수집한 유물 중에는 한국전쟁 때 일본인이 가져간 것을 도로 받아온 것도 있다.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세운 이 관장은 “30여 년간 모은 유물들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오롯이 전달해 주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가을빛이 가득한 박물관에서 돌사람(석인)과 만난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로 크고 작은 장독들이 옹기종기 놓인 풍경이 고향집처럼 아늑하다. 박물관 벽면에 걸린 황토빛깔의 커다란 천에 새겨진 혜원 신윤복의 뱃놀이 그림과 ‘예술혼의 이음’이란 글이 눈에 들어온다. 10월1일에 시작된 2022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 ‘예술혼의 이음’은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 예술가 두 가문을 만나는 ‘예술혼의 이음’ 전소빈 학예실장은 ‘예술혼의 이음’전을 “문화의 지속성과 영속성에 대한 관심과 탐구에서 출발한 것”이라 밝힌다. 조선후기 단원 김홍도와 함께 활약한 혜원 신윤복(1758~?)의 증조부 신세담 역시 도화서 화원으로 ‘십로계첩(十老契帖)’을 남긴 신말주(1429~1503, 신숙주의 아우)의 8대손이다. 신윤복과 부친 신한평, 조부 신일흥, 증조부 신세담까지 4대에 걸쳐 화맥이 이어졌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아들과 딸을 돌보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인을 그린 ‘자모육아도’는 신한평의 풍속화 기법이 혜원과 단원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쌍검대무’를 비롯한 유명 작품으로 가득한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찬찬히 살펴보며 과거로의 여행에 들어간다. 고령신씨 집안의 유물인 ‘설씨부인 권문세첩’(보몰 제728호)과 신말주의 ‘십로계첩’(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은 조선 초 양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신말주를 비롯한 열 명의 인물들의 초상과 인물을 소개한 7언으로 된 시가 무척 재미있다. 옛사람들의 풍류가 물씬 풍겨난다.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제작한 고지도 역시 예사롭지 않다. 18세기의 강화도를 그린 ‘강화 이북 해역도’와 압록강과 두만강, 백두산 일대를 세밀하게 그린 ‘북방강역도’는 당시 지도 제작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방안처럼 꾸며진 전시실에서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9~1892)의 작품을 만난다. 대흥사 주지 초의선사가 허련에게 고산 윤선도 일가와 연을 맺게 하여 ‘공재화첩’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고, 추사 김정희를 소개시켜준 사실이 흥미롭다. 소치 허련家의 이음은 아들 미산 허형, 손자 남농 허건, 종손 의재 허백련으로 면면히 계승되어 한국 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신윤복 가와 허련 가의 대를 잇는 예술혼과 한국의 미, 풍속화와 남종화에 대한 고찰, 전통 회화의 실체들을 두루 살펴보는 특별한 기회다. ■ 선조들의 생활과 살림의 지혜를 한눈에 여성생활사박물관은 옛 여성들의 생활 모습을 두루 만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지금과 달리 전통시대의 여성은 육아를 비롯해 실을 뽑고 베를 짜서 염색을 해 옷을 만들고, 텃밭에 채소를 길러 음식을 만드는 등 가족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존재였다. 살림에서 여성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따라서 전시된 유물들은 대부분 여성들의 손때가 묻고 한숨이 배어든 것들이다. 복도를 지나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오르면 더욱 다양하고 흥미로운 유물들과 만날 수 있다. 옛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유물은 복도 좌우 벽면까지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실에서 만난 물레와 베틀은 옛 여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는 유물이기에 더욱 애틋하다. 옷을 넣었던 반닫이와 삼층장, 방안을 밝히던 등잔, 시집 갈 때 타고 가는 가마, 방안의 필수품이던 요강단지, 바느질할 때 손가락을 보호한 골무, 머리에 꽂는 비녀와 머리를 장식하는 화잠과 화관, 옷을 다리는 다리미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처녀와 총각들의 필수품이던 댕기, 도포를 여며주는 매듭, 되나 말로 곡식을 퍼 담던 용기, 1970년대까지 밥상에 올랐던 놋쇠그릇, 옛날 화장대, 옷을 펴기 위해 여인이 밤새 두드리던 방망이, 비옷인 도롱이, 사대부 여인들이 신었던 가죽신 운혜, 가오리가죽으로 만든 안경집까지 정말 너무나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다. ■ 전통으로 부활해야 할 특별전 ‘왕후를 만나다’ 아름다운 남한강과 비옥한 들판을 품은 여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아홉 명의 왕후를 배출한 명문가의 고장이다. 이처럼 특별한 역사에 기반으로 두고 박물관에서 기획한 것이 ‘왕후를 만나다’이다. 여주시의 후원과 대한황실문화원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전시지원을 받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왕후를 만나다’ 특별전은 전시와 참여, 공연과 체험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많았다. 조선시대 세자빈 책봉식’을 주제로 기념식과 한복패션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열린 ‘제7회 왕후를 만나다’는 조선시대 위엄과 품격으로 국모의 자리를 지켰던 왕비들의 삶의 외연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통 희생 등을 재조명한 기획으로 주목을 받았다. 왕비들의 삶과 관련한 자료와 여러 가지 궁중의복과 비녀 노리개 등의 귀중품과 일반 여인들의 사용하던 평상복, 각종 치장품의 전시전과 왕후 선발, 가례 재현이 이루어졌다. 2019년 7회까지 꾸준하게 이어지던 ‘왕후를 만나다’ 특별전은 2020년에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이음’이 끊어진다. 이경철 부관장은 여러 차례 행정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번 지원이 끊어지니 시에서 다시 예산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하네요. 아홉 분의 왕비를 배출한 여주시를 널리 알리는 이런 행사는 마땅히 부활되어야 합니다” ■ 남한강에서 만난, 우리 아낙네들의 역사 여성생활사박물관은 개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주제의 전시로 관람객과 만났다. 2014년 경기도박물관 미술관지원 사업으로 연 특별기획전 ‘여인의 향기, 불꽃처럼 바람처럼’, 2015년 특별기획전 ‘삼굿’과 2016년의 ‘청사초롱 불 밝히고’, 2017년의 ‘수미전’과 2018년의 ‘꽃버선 신고 때때옷 입고’와 2019년의 ‘초록바람전’ 역시 전통문화의 멋과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풍성한 자리였다. 2020년 특별기획전 ‘물 빛 바람의 노래’는 천연염색의 아름다움과 실용성 및 미술작품으로 발전 가능한 염색의 미래 가치를 두루 감상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기회였다. 2021년 ‘추모와 기억-조사(弔辭)’는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관계라는 틀 안으로 귀속되는데, 죽어서도 지속되는 영속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한글로 쓴 제문을 비롯한 유물들을 통해 살펴본 기획이다. 이제 22살 청년으로 성장한 여성생활사박물관은 한때 폐관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사립박물관은 국공립 박물관과는 달리 시설 개선에 투자를 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박물관 관계자들은 “현재는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여성생활사박물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저 유구한 남한강의 물줄기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 역사를 지탱해온 여성들의 숨결과 향기를 간직한 유물은 후손들이 지켜내야 할 자존심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사설] ‘이태원 블루’ 집단 트라우마, 적극적 심리지원 필요하다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많은 국민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를 접하고 슬픔과 분노, 불안, 공포, 우울감 등을 느낀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집단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태원 참사가 2014년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처럼 국가적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가 도심에서 발생해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람이 많은 데다 사고 영상과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돼 심리적인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정보기술(IT) 강국이자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인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의 걸러지지 않은 참혹한 영상이 퍼지면서 이를 본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한국인들이 참사 이후 온라인으로 전파된 끔찍한 장면들을 접하며 공포감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하면서,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깔려 있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 이런 일이 일어나기 쉬웠다고 했다. 실제 극심한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고 현장에서 생존한 환자는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아직도 현장에 계속 있는 듯한 ‘재경험’ 증상을 호소한다. 숨쉬기 힘들다거나 불안·공포감, 불면증이 많다고 한다. 유가족과 부상자, 구조요원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심리적 충격도 크다. ‘이태원 블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울감과 무기력, 불면 등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이가 상당수다. 트라우마 증상도 골든타임이 있다. ‘저절로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치하면 안 된다. 증상이 계속된다면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섬세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태원 참사는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밀집해 모이는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민들의 사회적 고통과 트라우마가 과거 세월호 참사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주변에서 서로를 돌보고 빠르게 치유받도록 돕는 ‘사회적 연대’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심리지원단을 설치해 심리상담에 나섰고 위기상담전화 등 여러 채널을 가동키로 했다. 또 국민의 심리 안정을 위해 운영해온 ‘마음안심버스’를 서울시내 분향소 외에 전국 각지의 분향소 인근에서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심리적 충격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세월호 유족의 상당수가 지금도 심리 지원을 받고 있다. 집단 트라우마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심리 지원이 절실하다.

[사설] 金지사 부인, ‘의전 없이 택시 타고 가겠다’/별스럽지 않은 말 한마디가 주목되는 사회

김동연 지사의 부인 정우영 여사가 한 행사에 참여했다. 27일 열린 ‘경기도 시·군 대항 장애인 합창대회’다. 행사 장소는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경기아트센터다. 모처럼의 행사 참여라서 도 비서진이 간단한 의전을 권했던 것 같다. 이에 정 여사가 과도한 의전을 안 받겠다고 했다. 차량에 대해서도 “조용히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거듭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최 측에서 현장 준비 요원들의 혼선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결국 택시 이용 뜻은 철회됐다. 공식 행사 참여가 뜸한 정 여사가 장애인 행사에 참석한 것 역시 주목을 끌었다. 행사를 주관한 경기도 장애인복지과도 예상하지 못한 참관이었다고 한다. 도의회 의장 등과 함께한 귀빈 차담 자리에서는 ‘조용히 있겠다’고 했다. 본 행사가 시작된 뒤에는 모든 참가자들의 경연을 보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 얘기는 도 장애인복지과 등 실무자들 입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정 여사는 물론, 김 지사도 아무 언급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현직 도지사 부인에 대한 의전은 규정에 없다. 전담 직원을 두거나, 전용 차량을 쓰거나, 사적 업무를 보는 일이 다 그렇다. 하지만 현실에서 제공되는 편의는 흔히 있다. 공식 행사에, 도지사 부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행사는 그렇다. 민선 8기까지 6명의 도지사 부인이 그 정도의 편의는 다 제공받았다. ‘혼자 택시 타고 가겠다’는 주장이 과민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행사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도 당연한 에티켓일 수 있다. 그런데도 얘깃거리가 된다. 그렇지 못했던 전례 때문이다. 전임 도지사 부인의 경우 과한 의전이 많이 있었다. 5급 공무원을 지사 부인 전담 비서로 채용했다. 도청 내 약국에 대리처방까지 시켰다. 체어맨 관용차는 당연하듯이 사용했다. 초밥·소고기·패스트푸드 등을 법인 카드로 샀다. 대선 과정에서 ‘도지사 부인의 국무총리급 의전’이란 말이 나왔다. 지사 퇴임 이후에 경기도 감사까지 받았다. 경찰이 수사했고,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택시 타고 가겠다’는 주장과 많이 다르다. 그뿐인가. 전·현직 대통령의 부인 구설도 그치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부인은 야권의 표적에서 벗어 나질 못한다. 논문 표절 의혹, 주가 조작 잡음, 도사 연관 의혹 등이 있다. 법적 책임의 유무를 떠나 의혹의 빌미를 준 것은 맞다. 전직 대통령의 부인도 의상 과다 구입 논란에 호화 외유 논란까지 휘말리고 있다. 이 역시 법률적 판단을 떠나 구설의 출발은 팩트다. 비난의 대상은 정파에 따라 다르겠지만 국민 다수에 주는 ‘지도층 부인 피로감’은 매한가지다. 김동연 지사 부인의 지극히 당연한 요구와 평범한 언행이 미담으로 바꾸어 회자되는 이유일 게다.

[지지대] 훈맹정음

점자(點字)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자다. 지면에 돌기한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맞추고 손가락으로 만져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 ▶점자를 사용하기 전에는 파라핀 서판(書板)에 글자를 음각하고 목판에 글자를 새겼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대나무를 이용한 점자인 죽력(竹曆)을 사용했다. ▶물론 한자가 기반이었다. 아직 한글을 기반으로 한 점자가 탄생하기 전이었다. 한자를 모르면 점자 사용은 소용이 없었다. 무용지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를 바탕으로 했던 점자도 나왔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의료기관인 제생원의 맹아부 교사가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한글을 바탕으로 하는 점자를 만들겠다고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겠다는 결의도 다졌다. ▶제자 8명과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꾸렸다. 본격적으로 한글 점자를 창안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갖은 고생이 뒤따랐다. 일제의 감시도 심했다. 한글 사용도 일일이 통제받던 시절이었다. 3년 후 마침내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점자가 만들어졌다. 훈맹점음(訓盲正音)이다. 1926년이었다. ▶세로 3개에 가로 2개 등으로 구성된 점자를 조합해 63개 점자를 창안했다.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 선생이 창시자였다.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 먼 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 송암 선생의 의미 있는 말씀이었다. ▶훈맹정음은 자음과 모음뿐만 아니라 약자, 문장부호와 숫자 등까지 점자로 나타냈다. 그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한 11월4일 훈맹정음을 반포했다. 오늘이 바로 훈맹점음이 이 땅에 나온 지 96년째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데스크칼럼] 출소 흉악범 거주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한 김근식. 김근식이 지난달 의정부지역 갱생시설에 입소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의정부시가 발칵 뒤집혔다. 김근식은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서 미성년자 11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의정부지역 시민 사회단체는 물론 김동근 의정부 시장이 갱생시설로 연결되는 도로 폐쇄까지 한다는 초강수를 두며 반발했다. 출소를 앞둔 김근식은 추가 범행이 확인돼 다시 구속됨으로써 상황은 일단락됐다. 이번엔 이른바 ‘수원 발발이’로 알려진 박병화가 출소해 시끄럽다. 박병화는 수원 일대 주택에 침입해 여성 10명을 성폭행해 15년형을 살았고 만기 출소한 뒤 거주지로 화성시를 선택하자 화성지역 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흉악범, 특히 연쇄 성폭행범들의 출소로 지역사회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여성이나 미성년자 성폭행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른 전력이 있다. 특히 죗값을 치렀다고는 하나 성범죄자의 특성상 비슷한 범죄를 자행할 여지가 높기 때문이다. 성폭행범이 전자 발찌를 끊고 다시 범죄를 저지른 사건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흔히 접한다. 스토킹 범죄자는 법원의 접근 금지 명령에도 신고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은 항상 뒷북이다.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씁쓸한 이야기에 동감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한 사람만 손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법과 나라를 믿을 수 없는 사회라는 인식. 이런 분위기에서 전과 11범, 18범의 흉악범이 내 집 옆에 이사 온다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결사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2020년 아동 성폭행, 살인 등 전과 18범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때도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흉악범, 연쇄 성폭행범에 대한 출소 뒤 대책이나 매뉴얼이 없고 재범을 예방하기 위한 법 개정 등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치권은 진정 국민을 위해 법 제도를 개선하기보다 정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국민들은 그래서 더 답답하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주먹구구식 대책만으로는 국민의 불안을 해결할 수 없고 흉악범이 출소할 때마다 반대 집회는 반복될 것이다. 이는 비단 출소한 흉악범 대책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정부와 정치권은 무수히 많은 대책을 발표했지만 우리 사회 안전 시스템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수백명의 젊은 사상자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대참사에서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났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은 경찰 등에 위험 신호를 보냈지만 정부는 대형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다. 국민이 정부와 정치권을 신뢰할 수 없는 사례가 또 하나 생긴 셈이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