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5. 가평 남송미술관

산 높고 물 맑은 가평에 멋진 미술관이 있다. 남송미술관은 연인산도립공원과 명지산군립공원 자락에 안겨 있다. 푸른 숲에 둘러싸인 미술관에 들어서면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길가에 우뚝 서 있는 남송미술관은 궁궐의 정문처럼 위풍당당하다. 미술관에서 조금 걸으면 외벽이 커다란 캔버스처럼 카페 허수아비가 불쑥 나타난다. 허수아비마을의 카페 벽을 장식한 그림은 남송미술관을 설립한 남궁원 화백의 자화상이다. 붓을 든 남궁 화백의 눈빛이 강렬하다. ■ 사랑을 키우고 사람은 살리는 허수아비 미술관 허수아비는 남송미술관의 얼굴이자 상징이다. 1960~70년대 시골의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과 조각을 미술관 곳곳에서 만난다. 마주하는 풍경이 고향처럼 푸근하다. 가을 들판을 지키던 허수아비가 미술관의 주인공이 된 사연은 무엇일까. “허수아비는 어린 시절의 향수이자 삶의 철학을 담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허수아비의 허(虛)는 비움과 나눔을, 수(守)는 지킴을, 아(我)는 키움을, 비(非)는 세움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지요. 허수아비는 개인의 고통 치유와 사회적 공헌을 동시에 꾀하는 정신적 기반입니다.” 남궁 관장이 들려주는 허수아비 철학이 흥미롭다. 1997년 가을, 남궁 화백은 고향 가평군 북면 백둔에 허수아비 마을을 조성한다. 이어 2006년에는 남송미술관을 개관한다. 1만3천200㎡(4천평)의 대지에 1천650㎡(500평)의 전시 공간을 갖춘 허수아비 마을과 남송미술관은 지역민은 물론이고 동료 화가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았다. 경원대 미대 교수로, 경기도 예총 회장으로, 안양문화재단 대표이사로 활동했던 다채로운 경력의 유명한 미술가가 고향 가평에 미술관을 세운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들이 이 깊은 산골에 미술관을 세워 어떻게 운영할지 궁금해하고 염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씻고 목련, 철쭉 등 15개 전시실과 아트홀, 미디어 갤러리, 영화관, 카페 등을 갖춘 허수아비 마을 남송미술관은 곧 지역의 명소로 자리를 잡는다. 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남송미술관 남궁 관장의 인생과 작품 세계가 새삼 궁금해진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영화로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니 재미있다. 남궁 관장은 영상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할 정도로 감각이 젊고 도전적이다. 미술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영상실로 자리를 옮겨 다큐 영화를 감상한다. 지난해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40분 분량의 이 자전적 영화는 남궁 화백의 유년부터 현재까지의 모습과 도전으로 더욱 풍성해진 그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보여준다. 왜 허수아비가 미술관의 주인공이 됐는지 그 궁금증도 시원하게 풀어준다. 부친의 사망 및 어머니의 재가로 유년기에 겪은 쓰라린 경험과 사랑하는 딸의 때 이른 죽음이 안겨준 상실감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전시실에서 뜻밖의 사랑 이야기를 배치해 관람객을 미소 짓게 한다. ■ 부부가 함께 가꾸는 예술의 향기 바로 두 사람을 부부로 이어준 ‘연애편지’다. 정원이 아름다운 에코박물관 목련관과 진달래관에서 남궁 화백의 신작을 만난다. 백장미처럼 커다란 꽃 모양의 작품이 관람객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작품의 색깔과 질감이 부드럽고 따뜻하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유리관에 편지가 가득하다. 무슨 편지일까. “하하, 내가 총각 시절에 음악 교사이던 아내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전시한 것이지요.” 관람객을 위해 펼쳐 놓은 편지를 천천히 읽어본다. “순미! 가슴을 조이며 꼬옥 잡은 듯 안기운 무거운 펜을 지금 드는 순간, 원은 미의 곁에 있음을 알리는 영원한 종소리와도 같은….” 총각 미술 교사가 같은 학교의 음악 교사에게 1년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366통의 편지를 보내 결국 두 사람은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남궁 화백이 써 보낸 편지의 여백에 김순미 여사가 쓴 다짐의 글귀가 적혀 있다. “꼭 잡으리라. 영원불변하도록 우리들의 맹세, 우린 항해를 시작했다. 우리의 이 순간을 축복하고 언제나 변함없기를. 원! 사랑해요.” 지난해 결혼 50년을 맞이한 부부는 삶의 동지이자 예술의 동지로 깊이 연결돼 있다. 김 여사의 뜨개질 작품 조각을 캔버스로 활용하는 남궁 화백의 실험적 작업이 흥미롭다. “회화에 뜨개질의 따뜻한 질감과 손맛을 더하니 허수아비 비움과 지킴과 키움과 세움의 허수아비 철학을 더욱 친밀하게 구현한 시도로 평가받았지요.” 허수아비 철학을 함께 구현하고 회화 이상의 의미를 담아내는 예술공동체를 지향하는 부부 예술가의 모습이 보기 좋다. 김 여사의 뜨개질 작품은 허수아비 철학을 따뜻하게 확장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부부는 딸의 10주기를 맞이한 2022년 여름에 특별한 축제를 준비한다. 결혼 50주년을 기념하는 금혼식에 딸 송이를 기리며 365점의 작품 제작·기부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2022년 7월부터 1년 동안 매일 하나씩 총 365점의 ‘그림일기’를 제작했지요. 단 하루도 쉼 없이 작품을 그렸습니다.” 매일 한 작품씩 그리고 감상을 기록했다니 놀라운 정성과 집중력이다. 이렇게 부부가 힘을 합해 정성껏 제작한 작품으로 2024년 5월부터 6월까지 ‘남궁 원의 그림 축제’을 열었다. 미술관을 찾은 방문객에게 작품을 나눠주고 수익금은 지역사회에 기부했다. “1년 동안 매일 제작한 총 360여점의 그림 하나당 5만원에서 20만원을 기부하고 작품을 가지도록 했는데 수익은 가평군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봐주라는 딸 송이의 뜻을 평생 실천하는 부부의 마음이 고맙다. ‘그림 축제’는 허수아비 철학을 예술적으로 확장하는 통로가 됐다. 남궁 화백의 과거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감상하고 미디어아트 작품을 만나려면 남송미술관 전시실을 찾아야 한다. 회화와 영상 예술이 조화를 이룬 흥미로운 공간이다. ■ 남궁 화백이 꿈꾸는 함께 사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려는 예술가 부부의 열망이 가득한 남송미술관 정원을 산책하는 시간이 즐겁다. 정원 곳곳에 조각품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사슴과 강아지 같은 귀여운 동물 조각도 있고 거대한 사람의 얼굴을 조각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의 상징인 허수아비는 얼마나 많을까. 제각각인 허수아비의 모습과 몸짓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무 조각에 실을 칭칭 감아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붉은 머리의 허수아비 앞에 선다. 허수아비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노라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미술관을 산책하며 남궁 관장의 젊은 감각과 열정에 놀란다. 2016년부터 남궁 관장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아트1TV’는 국내 최초의 미술 전문 인터넷 방송이다. “소외된 작가들과의 소통을 중심에 둡니다. 예술 교육과 현장 전시를 주로 소개하지요. 예술 홍보를 넘어 사회적 봉사와 문화 확산이라는 비전 아래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궁 관장의 스케치북 ‘나는 대한민국의 화가다’ 역시 주목되는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윤인자, 장순업, 국경오 등 중견작가를 심층 취재해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인터뷰 콘텐츠 600여편을 제작해 유튜브로 방영했을 정도로 열정적이다. 이런 활동으로 남궁 관장은 지난해 아트코리아방송 메세나 부문 언론봉사 대상을 수상했다. 남송미술관은 관람객과 적극 소통하는 예술적 치유의 공간이다. 남궁 관장의 소망은 또 있다. “우리나라에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는 전업작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작가 중에서 실력파를 찾아내 소개하는 ‘작은 봉사’ 활동을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선별해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도민들에게는 관람의 기회를, 작가에게는 전시와 보존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요.”물 맑고 산 깊은 가평에는 예술로 아픈 세상을 치유하려는 아름다운 소망을 가진 미술관이 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경기문화재단,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서 ‘한양의 수도성곽’ 특별전

조선시대 성곽이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Hôtel National des Invalides) 내 입체모형박물관(Musée des Plans-Reliefs)에서 조명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 9일 조선시대 특별전시 ‘한양의 수도성곽 :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을 박물관에서 개막했다. 한양의 수도성곽인 북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문화교류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7월6~16일) 기간 중 경기도·고양시·서울특별시와 협력해 13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한양의 수도성곽(Capital Fortifications of Hanyang)’을 주제로,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선의 방어체계를 조명한다. 도성과 배후 산성, 그리고 연결성으로 구성된 구조를 중심으로, 독창적인 방어체계와 자연지세를 적극 활용한 축성방식을 국제사회에 알려 오는 2027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 등재 가능성을 높이고자 마련됐다. 전시가 열리는 앵발리드 내 입체모형박물관은 나폴레옹 통치기에 제작된 군사 모형 등 도시 방어와 군사 작전에 활용하기 위해 만든 군사시설의 축소 모형을 전시하는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재단은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동안 현지에서 홍보부스 운영, 자료 배포, 전문가 교류 등을 병행하며 적극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유정주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수도성곽 유산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공유하는 특별한 장”이라며, “세계유산목록 등재 추진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유산이 가진 위상을 더욱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1C한·중교류협회, 문화교류 초대전 개최

㈔21C한·중교류협회가 한국과 중국 문화 교류 강화를 위한 초대전을 개최한다. 협회가 협찬하고 더엘콜렉션이 기획한 이번 초대전은 오는 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토포하우스에서 진행된다. 초대전에는 중국 채묵 산수화 화가인 쩡강의 산수화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쩡강 작가는 인사말을 통해 “산수는 단순한 자연의 형태가 아닌 마음을 연결하는 고리”라고 소개했다. 이어 “중국 채묵 산수화에 대해서는 단순히 붓과 먹의 기법 전승이 아닌 철학적 사고의 외적인 표현”이라며 “자연의 숭고함과 생명에 대한 깨달음 속에서 한중 양국은 유사한 미학적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창작 과정에서 ‘묵분오색’의 전통 기법을 계승한 동시에 현대적 시각으로 산수의 경계를 해체하고자 했다”며 “이번 전시 작품들을 향해 장가계 계곡이 품고 있는 기이한 산봉우리와 강남 수향의 몽롱한 물안개, 호구 폭포의 우렁찬 기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술에는 경계가 없고 문화의 아름다움은 서로 통한다”며 “이번 그림전이 산과 바다를 넘나드는 미학적 대화의 장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률플러스] 지급명령(독촉절차)

지급명령(독촉절차)은 금전 그 밖의 대체물이나 유가증권의 일정 수량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청구권에 대해 채무자가 다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소송절차에 의하지 않고 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신속, 저렴하게 집행권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절차다(민사소송법 제462조). 지급명령은 대한민국에서 공시송달 외의 방법으로 송달할 수 있는 경우에 할 수 있다. 채권자의 지급명령 신청이 있을 때, 법원은 ① 신청요건의 흠 ② 관할위반 ③ 신청의 취지로 보아 청구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것이 명백한 때에는 그 신청을 각하하고, 위와 같은 각하 사유가 없으면 청구가 이유 있는지 여부를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 없이 지급명령을 발하고 지급명령 결정 정본을 채무자에게 송달한다. 채무자가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하지 않으면 지급명령은 확정된다. 확정된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므로(민사소송법 제474조), 채권자는 확정된 지급명령을 집행권원으로 해 채무자의 재산(부동산, 동산, 채권 등)에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채무자가 지급명령에 대해 이의신청을 한 때에는 지급명령은 그 범위 안에서 효력을 잃고, 채권자가 지급명령을 신청했을 때 소를 제기한 것으로 보아 통상의 소송절차로 진행된다(민사소송법 제470조, 제472조).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달리 기판력이 없다. 따라서 채무자가 지급명령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하지 않아 지급명령이 확정됐다고 하더라도 채무자는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해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다툴 수 있다. 대법원 역시 “현행 민사소송법 제474조는 확정된 지급명령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확정판결에 대한 청구이의 이유를 변론이 종결된 뒤에 생긴 것으로 한정하고 있는 민사집행법 제44조 제2항과는 달리 민사집행법 제58조 제3항은 지급명령에 대한 청구에 관한 이의의 주장에 관해서는 위 제44조 제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현행 민사소송법에 의한 지급명령에 있어서도 지급명령 발령 전에 생긴 청구권의 불성립이나 무효 등의 사유를 그 지급명령에 관한 이의의 소에서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 민사소송법뿐만 아니라 현행 민사소송법에 의한 지급명령에도 기판력은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9년 7월9일 선고 2006다73966 판결 참조). 이처럼 지급명령이 확정되더라도 다툴 방법은 있다. 그러나 채권자로부터 강제집행을 당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불복 과정에서 강제집행 정지 신청을 별도로 해야 하는 등 그 절차가 번거로워진다. 따라서 채무자 입장에서는 평소 법원에서 송달되는 문서를 잘 확인해 다툴 부분이 있는 지급명령에 대해서는 기간 내에 이의신청해 바로 대처할 필요가 있겠다.

“DJ와 아버지의 유산, 민통선에서 평화를 농사짓다”… ‘DMZ 평화와인’ 저자 김덕배 [인터뷰]

“50년 전 아버지는 남북 평화의 시대를 내다보며 철원의 유산 속에 근면함과 성실함이라는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또 DJ 선생님을 10년간 모시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평화와 화해, 용서와 통합 정신의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두 분의 유산에 땀으로 일궈낸 포도를 와인으로 빚으며 ‘평화’라는 시대의 염원이 잘 숙성되길 희망합니다.” 학군사관후보생(ROTC) 출신으로 1980년 신군부 상황장교였던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옳은 길’에 대한 강한 의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깊이 경험했다. 정치적 성공을 경험하다 돌연 자취를 감춘 그는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자 태고의 신비를 품은 철원의 비무장지대에서 ‘평화 와인’을 빚는 농부의 삶을 살아간다.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또 장관급인 대한민국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김덕배 전 국회의원(71)의 이야기다. 김대중 정권 탄생에 크게 기여하고 ‘성공한 정치인’으로 살던 그가 최근 도서 ‘DMZ 평화와인’을 펴냈다. “지금 시대에 김대중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며 평화를 논할 때라 생각했다”는 그는 최북단 철원 DMZ에서 포도를 재배하며 와인을 빚는 과정 속 민족의 평화와 미래, 시대의 가치 등을 말한다. 철원 비무장지대 월정역 부근 ‘철원사랑농원’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강원도 철원에서 포도와 사과를 생산하며 ‘DMZ 평화와인’을 탄생시켰다. DJ로부터 평화정신을 배웠다면, 그의 아버지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일러줬다. 저자는 이 유산을 토대로 직접 재배한 포도에 평화 정신의 가치를 담아 와인을 빚어낸다. 아버지가 남기신 땅이자 그가 농사를 짓는 곳은 DMZ 민통선 라인에서 채 1.5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철조망의 상처, 평화의 상징 두루미, 매일 양쪽에서 반복되는 각종 방송과 소음, 눈앞의 양 진영은 그에게 많은 생각을 남겼다. 저서 ‘DMZ 평화와인’엔 ‘성공한 정치인’으로 통했던 저자가 정치를 떠나 철원 DMZ에서 포도를 재배하며 와인을 빚는 이야기,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 시대와 평화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책을 통해 동포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잘 숙성돼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열리기를 소망한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책엔 아버지와의 이야기, DJ와의 시간 등을 소회한다. 1장 ‘늦가을 와인의 향기’에선 스무살 저자가 아버지의 특별한 유산을 받고 인생 후반기 60세가 넘어 철원 DMZ 땅에서 포도를 재배하며 와인을 빚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2장은 ROTC 장교로 1공수여단 상황장교로 신군부 주역 이야기를, 3장은 작지만 알차게 성공시킨 개인사업과 저자의 JC(한국청년회의소) 이야기가 옮겨졌다. 4장은 DJ와의 만남과 정치적 여정, 5장은 DJ 퇴임과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는 저자의 심정, 6장은 저자가 모셨던 DJ 대통령과 김원기 비서실장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7장은 저자가 꿈꾸는 미래와 희망이 그려진다. 특히 격변의 대한민국과 저자의 크고 작은 삶의 굴곡이 함께 맞물려 가며 새로운 가치와 이념, 시대 정신이 펼쳐지는 이야기는 마치 대하소설처럼 느껴진다. 독자들과 함께 ‘평화 유산’과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저자는 오는 17일 오후 1시 30분부터 킨텍스 제2전시장 301호에서 ‘DMZ 평화와인’ 출판기념회를 열고 그 뒷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할 예정이다.

꿈꾸는 이들을 위한 무대... 용인서 ‘제2회 대한민국 대학연극제’ 개막

용인특례시가 대한민국 연극의 주인공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위해 기획한 ‘제2회 대한민국 대학연극제’가 8일 오후 개막식을 시작으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9일 시에 따르면 ‘대학연극, 르네상스를 꿈꾸다’를 주제로 전날 개막해 25일까지 열리는 ‘제2회 대한민국 대학연극제’는 용인특례시가 주최하고, 용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국내 유일의 체류형 연극 축제이자 대학생 연극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의 대학생 연극 축제로 자리잡은 이 축제는 참가를 신청한 79개 대학팀에 대한 심사를 거쳐 본선에 오른 12개 팀이 연극제 기간 동안 각자 준비한 무대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대한민국 대학연극제는 대학생 연극인들이 상상력과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장(場)을 펼치고, 청년들 간의 문화교류를 위해 기획됐다. 지난해 제42회 대한민국 연극제와 함께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대학연극제에는 42개 대학 팀이 참가 신청을 했으며 올해에는 79개 대학 팀이 지원, 대학 연극인들의 관심이 증폭됐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8일 시청 에이스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을 비롯해 임대일 한국연극배우협회 이사장, 이화원 한국평론가협회 회장, 연출가로 심사위원장을 맡은 류근혜 상명대 이사장 등 연극계 인사와 대학생 연극인, 시민 등 약 400명이 참석했다. 개막환영 행사로는 용인문화재단 ‘아트러너’ 프로그램을 비롯해 총 15개의 체험부스와 생활문화동호회 3개 팀의 환영 연주회를 진행해 축제 분위기를 북돋웠다. 축하공연으로는 1회 대회에서 Best3에 선정된 단국대학교 팀의 ‘벽을 뚫는 남자’가 무대에 올랐다. 본선에 오른 12개 대학의 창의성과 개성 넘치는 공연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미 개막 전부터 전체 티켓 예매율이 90%를 넘어서는 등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이번 대회의 특징은 대학생들의 문화교류를 위해 수상작에 순위를 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쟁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이다. 본선에 진출한 각 팀에게는 시상금 400만원을 지급하며, 이 가운데 우수한 공연을 선보인 3팀을 ‘Best 3’로 선정해 학교 연극 발전 시상금으로 각 1천만원을 수여한다. 연기·연출 및 네트워킹 부문에서 두각을 드러낸 다섯 팀에게는 총 1천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본선에 오른 작품은 ▲Once on This Island(명지대학교) ▲민중의 적(세종대학교) ▲The Social Dilemma : 1984(호원대학교) ▲오델로(동신대학교) ▲HEE(인류, 멸종 그리고 진화)(대진대학교) ▲어펙트론 클래스(서울예술대학교) ▲레드 채플린(경성대학교) ▲종의 기원(단국대학교) ▲태어나 이토록 바란 적(청주대학교) ▲친애하는 멜리에스(중앙대학교) ▲백두;한라(인천대학교) ▲덜미(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열 두개다. 참가 학생들은 오는 13일까지 용인산림교육센터와 용인자연휴양림에 머물면서 교류와 창작 활동을 하는 체류 프로그램 ‘스테이&플레이’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본선 공연은 16일부터 23일까지 ▲용인포은아트홀 ▲용인시문예회관 처인홀 ▲용인문화예술원 마루홀 ▲용인시평생학습관 큰어울마당에서 진행된다. 공연은 전석 무료로, 용인문화재단 누리집에서 예매할 수 있다. 이상일 시장은 축사를 통해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지만 인공지능이 흉내내기 어려운 장르 중 하나가 연극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연극제에 참가한 여러분들이 무대 위에서 펼치는 여러가지 표정과 모습, 감정은 AI로는 나타내기 어려울 것이므로 여러분의 무대가 매우 궁금하고 여러분들이 어떤 연극을 선보일지 호기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겹눈’의 소유자 서성란, 진실과 대면하는 글쓰기를 보여주다 [경기작가를 해석하다 ①]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예술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 작가의 출간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일보는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경기예술지원 1, 2차’ 사업에 선정된 작가 10명에 대한 기획 평론 시리즈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를 연재한다. 5명의 문학평론가가 작가들의 창작 세계를 조명해 지역 예술 담론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서성란은 ‘겹눈’을 가진 작가다. 그는 199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한 이후 30년 동안 사실을 직시하되 쇠락과 노화의 풍경을 깊이 응시하며 공감과 상상 너머 진실과 대면하려는 글쓰기를 여일하게 보여줬다. 악성 치매노인(‘침대 없는 여자’), 죽음 앞의 인간(‘디그니타스로 가는 열차’), 이주여성·이주노동자(‘파프리카’ 및 ‘쓰엉’), 장애인(‘풍년식당 레시피’), 세월호 참사 희생자(‘유채’), 추방 입양인(‘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소설가 지망생(‘마살라’) 등 그가 소설로 형상화한 인물들은 그의 붓질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개인’으로 호명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의 출세작인 ‘파프리카’(2007년) 속 베트남 여성 ‘수연/츄엔’은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는 파프리카 줄기처럼 낯선 땅에서 자기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주여성을 은유한다. 그리고 ‘파프리카’의 문제의식은 장편소설 ‘쓰엉’(2016년)에서 더욱 심화됐다. 서성란은 ‘쓰엉’의 ‘작가의 말’에서 “‘파프리카’의 츄엔, 그녀는 쓰엉이 되어 내게로 왔다”고 썼다. ‘쓰엉’은 베트남어로도 출간됐다. 이처럼 서성란은 부름에 응답하는 행위야말로 책임감과 연결되는 문학의 윤리라는 점을 예민하게 의식하며 소설을 쓴다. 2022년 경기문학작가 확장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된 소설집 ‘유채’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려는 글쓰기를 보여줬고 ‘쓰엉’에서는 ‘가일리’라는 공간을 통해 낯선 타자를 좀처럼 사회적 성원(成員)으로 인정하지 않는 우리 안의 견고한 무의식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최근작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2024년)에서는 추방 입양인들의 ‘다중 소수자’로서의 존재를 오롯이 드러내고자 했다. 작품 제목 ‘이규호 노먼 테리어’는 ‘이규호’의 복잡한 고유성을 잘 드러내며 ‘당신의 존재는 죄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지만 서성란의 글쓰기는 당위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장편소설 ‘풍년식당 레시피’에서 상투적인 글쓰기에서 탈정(脫井)하며 ‘음식’(팥죽)이라는 코드를 통해 조각보가족(patchwork family)의 가능성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서성란이 어느 작품에서 “작가란 타인의 상처에 고통을 느끼고 아파 하는 사람”이라고 한 말은 서성란 글쓰기의 특장(特長)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공감과 상상 너머 ‘진실’과 대면하고자 하는 서성란의 글쓰기가 한국문학의 영토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국민 배우’ 신구·박근형, 인천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마지막 무대 선보인다

배우 신구와 박근형이 인천을 찾아 관객들을 만난다. 9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 따르면 신구와 박근형은 리모델링을 마친 소공연장 재개관을 기념해 오는 25일부터 26일까지 2일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를 선보인다. 이번 무대는 단순한 투어의 일환을 넘어 시민들과 함께 축하하고 감동을 나누는 뜻깊은 자리가 될 예정이다. 특히, 신구와 박근형이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이기에, 한국 연극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장면이 될 전망이다. 이번 공연에는 신구, 박근형을 비롯해 김학철, 조달환, 이시목 등 기존 멤버가 그대로 출연해 오랜 시간 다져온 호흡을 바탕으로 연기 앙상블을 선보일 예정이다. R석 6만원, S석 5만원이며, 예술회관은 소공연장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마음을 나누고자 인천 시민 20%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인천문화예술회관 누리집, 엔티켓 등에서 예약 가능하다. 인천문화예술회관 관계자는 “전국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연극에 최적화된 소공연장에서 재개관을 맞아 명작을 감상할 기회가 될 것”이라며 “신구, 박근형 두 배우의 깊이 있는 연기와 무대 위 존재감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생각하며 읽는 동시] 수박 씨

수박 씨 김경옥 엄마 수박 속에 잠자는 아기 수박 살살 꼬여내어 밭에다 놀게 해줬다 푸른 싹 틔워보라고 줄기도 뻗으라고. 싹 트는 아기 수박 과일 가게마다 여름 과일이 풍성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수박이다. 덩치도 클 뿐 아니라 왕성한 초록빛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이 동시는 수박을 소재로 삼되 그 속에 들어있는 ‘씨’를 노래하고 있다. ‘아기 수박’이라고 한 것도 귀엽지만 이를 ‘살살 꼬여냈다’는 표현이 너무도 재미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꼬임의 목적이다. 그냥 놀자고 꼬여낸 게 아니라 스스로 생성의 맛을 느껴보라고 한 것이다. 이쯤 되면 꼬임 그 자체는 결코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다. 우린 누구나 어릴 적에 친구를 꼬여냈거나 꼬임을 당한 일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꼬임은 대체로 같이 놀자는 것이었을 것. 그게 친구였고, 꼬임을 당한 쪽도 즐겁기 그지없었다. 김경옥 시인은 시조가 전문 분야임에도 간간이 동시조(童時調)를 보여주고 있다. 동심을 한껏 우려낸 이 동시조의 매력은 귀엽고 재미있음에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 동시는 무엇보다도 귀엽고 재미있어야 한다. 간혹 문학성 운운하면서 어렵게 쓴 동시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느끼는 필자의 감정은 억지로 넘기는 알약과 같다. 요즘엔 알약도 넘기기 좋게 코팅을 해 제조한다. 동시도 그래야 한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수원향교

교동은 향교가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수원향교 입구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는데 이는 충절을 상징한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세운 공립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여러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 사람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수원향교는 대성전을 비롯해 외삼문 동재, 서재, 명륜당, 내삼문 동무, 서무, 대성전 등 향교의 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1787년 정조가 친림한 이곳은 대성전 아래로 유생들이 학문을 닦던 명륜당이 있는데 현재 다양한 시민 예절 프로그램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곁에 있는 유림회관의 시민교육 또한 활발하다. 이곳의 명륜대학에서는 유학반, 서예반, 다도반, 한문반, 한시반, 경전반 등의 프로그램을 지속 운영 중이다. 또 성년이 되는 청소년에게 집체 성년례를 개최해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성년의 의미와 전통예절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향교 입구에 마을 공동체와 함께 벽화도 그리고 솟대도 만들어 세웠는데 아직 일부가 그 자리에 있어 흐뭇하다. 한 해의 반환점을 돈 후반부가 시작됐다. 온통 초록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왕성한 풀과 숲은 무표정하게 살모사의 혓바닥 같은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다. 불변의 시간은 뻔뻔히 속도를 내고 욕망의 내재율은 점점 나약해져 인생의 종말이 예술의 상실이라는 만성적 자책감이 재발한다. 한심하지만 조촐한 타협을 하자. 새파란 수평선에 뜬 흰 구름처럼 깨끗하고 한결같이.

문화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