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제대로 들여다본다, ‘의사’가 낸 신간…‘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외

우울증 전문가라고 해서 우울증에 안 걸린다는 법은 없다. 정신과 의사 역시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불안하고 우울감을 느끼는 등 환자들이 겪는 증상을 똑같이 겪는다. 다만 이 같이 ‘나쁜 심리 습관’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을 뿐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심리적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안내한 책들이 서점가에 속속 자리하고 있다. 의사들이 낸 신간을 모아봤다. ■ 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 (윌북 刊) 세계보건기구 고문, 세계정신의학협회 위원 등 30여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의사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먼저 우울을 말할 용기’는 명망있는 정신과 의사 ‘린다 개스크’가 오랫동안 앓아온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회고하는 정신의학 에세이다. 우울증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우울증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음’을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용감한 일’임을 누구보다 강렬하고 설득력 있게 전한다. 저자는 지난 2020년 ‘당신의 특별한 우울’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치료 일기를 담아내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EBS ‘위대한 수업’에 우울장애 연구의 석학으로 출연, 우울증에 관한 진실하고 정확한 조언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기도 했다. 이번 신간은 그의 대표 저서 ‘당신의 특별한 우울’을 새롭게 매만져 출간한 것이다. 저자가 다루는 영역은 우울증과 깊이 밀접한 감정들(강박, 불안, 애도, 상실, 취약성)부터 수많은 키워드와 증상(정신병원, 자해, 우울증 약, 자살 충동)을 망라한다. 상담치료, 인지치료 등 몸소 겪었던 다양한 치료법도 담았다. 책을 통해 저자의 진실한 고백과 조언을 들을 수 있다. ■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 (웅진지식하우스 刊) 자존감 열풍 시대에 ‘가짜 자존감’이란 화두를 던져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를 펴낸 정신과 전문의 전미경이 ‘당신은 생각보다 강하다’를 펴냈다. 자존감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던 저자가 이번엔 나쁜 심리 습관을 끊어내고 인생의 변화를 불러오는 방법을 책에 담았다. 저자는 지난해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을 모두 여의었다.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며 환자들이 겪는 증상을 다양하게 경험했다. 불안하고 우울하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우울과 불안 등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결국 과도한 생각 때문에 마음까지 아픈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에 불안하고 우울한 나를 파고들지 말고, 주도력을 갖고 주변 상황을 통제하며 실행해야 나쁜 심리 습관을 깰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누구나 심리적 역량을 갖고 있어 달라질 수 있다고 단호한 어조로 설명한다.

삶을 향한 진솔한 애정…노년의 시인들이 펴낸 ‘거룩한 선물’ [신간소개]

노년의 시인들이 저마다의 세월로 아로새긴 관점을 행간에 투영하고 있지만, 그들의 지향점에선 느슨한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바로 ‘삶을 향한 진솔한 애정’이다. 시집 ‘거룩한 선물’(문학과 사람 刊)이 지난 20일 발간됐다.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정순영 등 총 네 명의 시인이 함께 손을 맞잡고 어느덧 여섯 번째 시집을 펼쳐냈다. 조병기 시인의 시에선 과거를 응시하는 회한의 정서, 문득 머릿속을 채우는 아련한 기억들이 짙은 잔향으로 맴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바라보는 화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안경을 고쳐보아도 거꾸로 서 있는 그림자”(‘얼굴’ 中)만 보이고, “외투 깃을 세우고 휘파람을 불며 떠나는 사나이”(‘목마’ 中)만 덩그러니 남았다. “머리 위로 저 푸른 하늘이 흐르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오늘 행복했다’ 中). 허형만 시인은 우여곡절의 삶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놓치지 않는다. 새벽녘 숲의 나무들이 부대끼는 소리를 ‘맑은 새소리’로 받아들이는 그의 시선은 사소한 일상에 가치를 부여한다. 임병호 시인은 삶을 지탱하는 근간을 돌아보고 있다.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역시 ‘시(詩)’다. 이래나 저래나 시가 함께 하는 삶일 때, 그의 삶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순영 시인은 유한한 인간의 세계와 절대자의 영역을 오가면서 시적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시구를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각종 종교적 모티브가 그의 감각 기관을 거치면서 현실 세계와 조응하는 듯 느껴지며, 또 다채로운 의미로 재편되면서 독자들에게 가닿는다.

물로 배 채웠던 아이의 성장일기…김재문 ‘그 아이는 기부천사가…’ [신간소개]

김재문 저자의 ‘그 아이는 기부천사가 되었다’가 지난 15일 출간됐다. 저자는 남양주시 토박이로, 가난한 어린 시절에 독학으로 건축 일을 배워 자수성가를 이뤘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험한 장사란 장사는 다 해보고 제대로 밑바닥의 설움을 살았던 저자는 1천억원 기부를 꿈꾸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저자가 돈을 많이 벌어서 으스대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어린 전사가 삶의 전쟁터에서 겪은 아픔과 생존력이 어떻게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챕터는 저자의 유년 시절과 청량리 학원에서 건축학을 배우던 시절까지, 두 번째는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1천억을 기부할 거부가 되었는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이 특별한 이유가 있다. 책을 사서 읽는 행위가 따뜻한 기부로 이어지는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금 전부를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할 예정이다. 저자는 노자 도덕경 8장 상선약수를 좋아한다고 한다. 지상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는다는 그 의미를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이 만물을 이롭게 하는 책으로 이 세상에 흘러 들어갔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다. 저자는 “이 책은 자신을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 세상을 위한 책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졌다”며 “배고프고 힘들게 자란 만큼 여전히 배고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큰 뜻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그 마음의 첫 출발”이라고 말했다.

성찰 깊어지고 ‘지혜’ 생기는 철학책 인기…‘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외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처세의 지혜를 주는 철학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연이은 전쟁 공포감과 어려운 경제 상황, 파렴치한 범죄 등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올바르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지친 마음을 달래 마음의 휴식을 얻으면서도, 삶의 무기가 돼줄 수 있는 ‘지혜’를 설파한 철학책들을 모아봤다.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유노북스 刊) 니체, 아인슈타인, 헤르만 헤세, 톨스토이 등 각계 명사들에게 영감을 준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40대 중반부터 서서히 알려지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40대까지는 학계를 떠나 은둔 생활을 했지만, 그는 자신이 언제든 인정받을 것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흔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40대는 위기를 넘은 때이자, 인생이 바뀐 분기점이다. 이 책은 인생을 끊임없이 고민한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사유 중 현시대 40대가 회의감과 상실감 등으로 마음의 위기를 맞았을 때 다스릴 수 있는 30가지의 내용을 담았다. 괴로움을 해소하는 법, 자기 인생에 집중하는 법, 자긍심을 갖는 법, 시간의 의미를 깨닫고 현명하게 사는 법, 이에 따라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진짜 행복’을 얻기 위한 고통을 겪으라고 말했다.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서 자신으로 옮기며 무너지고 부서질 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품격이 그것이다. 책을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모든 삶은 흐른다 (피카(FIKA) 刊) 이 책은 프랑스 최고의 철학과 교수로 꼽힌 ‘로랑스 드빌레르’가 바다를 통해 인생의 철학을 이야기한 인문 에세이다. 출간 후 프랑스 현지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4월 출간된 뒤 여전히 인문 분야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저자는 낯선 인생을 제대로 항해하려면 바다를 이해하라고 조언한다. 바다의 무한함을 보며 삶의 흐름과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바다가 잔잔하면서도 거칠고, 바로 와 닿을 것 같으면서도 금세 멀어지거나, 고요하면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 우리의 삶과 가장 흡사한 자연이라고 인식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물결치는 바다처럼 삶도 자연스럽게 물결치며 흐를 뿐이다. 저자는 특히 “어려움이 닥쳐도 결국에 모두 스쳐 지나갈 순간. 어떤 것에 실패해도 그것이 실패한 것이지, 나의 존재가 실패는 아니다”라고 강조해 울림을 준다.

어느 인천시 공무원의 아주 특별한 경험' [신간소개]

인천의 한 40대 젊은 사무관이 대한민국에서 4번째,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아시안게임을 어떻게 유치했는지 20여년이 지나 그 뒷얘기를 풀었다. 인구 11억명의 수도인 인도 델리를 따돌리고 인천이 아시안게임 유치를 확정한 순간 감동과 환희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상범 인천시 시정혁신관이 인천아시안게임유치단에 발령된 지난 2005년 8월8일부터 유치를 확정한 2007년 4월17일까지 ‘2014인천아시안게임’ 유치 활동 과정을 담은 '어느 인천시 공무원의 아주 특별한 경험'을 출간했다. 1964년 충북 충주시에서 태어난 그는 인천 제물포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직원, 영자신문 기자 등을 하다가 행정고시에 합격해 인천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개월 남짓한 아시안게임 유치 활동은 우물 안 개구리로 안주하던 젊은 사무관이었던 나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고 회상한다. 이어 “공무원 생활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와 열정을 바쳐 이룬 성취이자 보람”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추진 배경’, ‘아시아경기 유치추진 조직’, ‘국내·외 유치 활동 추진’, ‘후일담’ 등의 4가지 챕터로 구성했다. 1번째 챕터에서는 아시안게임 개최 신청부터 유치신청서 작성, 인천의 국제행사 유치와 타당성 검토를, 2번째에서는 시 유치활동 지원기구와 유치위원회, 유치위원장의 역할과 갈등, 조직의 불화와 극복 등을 담았다. 3번째 챕터에서는 이 혁신관이 직접 체험한 유치 활동들을 소개했다. 광저우 OCA 집행위원회 총회 참가부터 인도와 중국 출장, 스리랑카 남아시아 게임(2006), 쿠웨이트 OCA 총회까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마지막 후일담에서는 OCA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이 인천과 델리 중 ‘어느 도시를 지지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결과는 책을 읽어보면 눈치챌 수 있다. 저자는 “유치위원회 공식 백서에는 다루지 않았거나 못했던 경험과 비판적 의견을 담았다”며 “국제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거나 한시적 조직을 운영할 때 이 책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대목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간 ‘파견자들’로 돌아온 김초엽 작가 [저자와의 만남]

“그리고 이렇게 먼 곳으로 와서야 태린은 알았다. 증오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 더 멀리까지 올 수 있다고.” (김초엽, ‘파견자들’ 中) 소설 ‘파견자들’은 질문한다. 개인이 아닌 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무언가와 연결되거나, 전체이면서 부분이기도 한 그런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은 원래 살아 있는 다른 존재와 무생물 등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빚지고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질문이다. 지하와 지상으로 분리된 세계. ‘파견자’로 불리는 이들은 지상을 탐험하고 정복해 지하 속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태린 역시 파견자를 꿈꾸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다. 함께하는 무언가로 인해 태린이 혼란을 겪는 과정을 통해 소설은 ‘공존’과 ‘공생’의 키워드를 끌고 온다. 지난달 13일 출간된 신작 ‘파견자들’로 다시 독자들과 마주한 김초엽 소설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숱한 단편 소설, 논픽션과 에세이, 중편 소설 그리고 2년 전 나온 첫 장편 ‘지구 끝의 온실’에 이어 두 번째 장편까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담백한 문체 사이로 요동치는 감정의 파형들. 김초엽 작가의 글 속엔 공존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마주 보다가 어느새 연결되고 마침내 접촉하고 있다. 그의 세계에선 언제나 대상과의 거리를 의식하는 존재들이 계속해서 모습을 비춘다. 가깝지만 먼, 낯설지만 친숙한, 애정과 증오가 느슨하게 뒤섞인 그런 것들. ‘파견자들’의 태린도 내 안에서 공생하는 무언가와 끊임없이 거리감을 가늠하고 있다. 그의 소설은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환경과 상황을 거치면서, 기계나 외계의 존재 등 비인간의 관점에서 인간을 응시하는 작업을 반드시 수행한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인간과 그 주변을 다루는 이유는 인간이 그 자체로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복잡한 존재라는 데에서 비롯된다. 김 작가는 “절대로 그럴 거라고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조차 누군가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타인을 거리낌 없이 돕는다”며 “어두운 현실에 매몰되더라도 그 속에서 조금 더 나은 점이 무엇이 있을지 주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SF 장르에 주로 머무는 행보에 관해서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가장 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을 마주할 때면 추상과 관념의 영역보다 인간이라는 물질 자체가 궁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번 신작에 관해 김초엽 작가는 “첫 장편인 ‘지구 끝의 온실’을 읽은 독자 중엔 액자식 구성이 반복되는 등 단편에 적합한 구조로 여긴 분이 많은데 이번 장편은 처음부터 긴 호흡으로 몰입한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 첫 장편 작업과는 달리 어느 정도 갖춰진 틀에 들어맞게 집필하는 과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집필 당시 영향을 받았던 작품 중에 영화 ‘경계선’을 꼽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할 수 있는지, 옳은 일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릴 수 있는지 이야기로 풀어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닿았다”는 그의 말처럼 독자들은 태린과 이제프의 서사에서 그런 점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김 작가는 ‘파견자들’을 쓰는 동안 ‘공존’과 ‘공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곱씹었다고 말한다. 그는 “공존이나 공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그저 편하고 좋게만 다가올 때가 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고통이 격렬하게 또 치열하게 침투하는 관계”라며 “어떤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함께 하다 보면 서로 많은 걸 내어줘야 하지 않나. 이번 작업은 그런 점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고 전했다.

독립운동 시점에서 ‘반일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간소개]

신간 ‘붉은 항일’은 북한에 민족주의 정통성이 있다는 ‘반일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독립운동의 시점에서 파헤친 책이다. ‘붉은 항일’ 저자인 황대일 연합뉴스 선임기자는 “남한은 친일파에 관대했으나 북한은 친일 청산에 성공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 말이 일부만 맞고 나머지는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남한과 북한 모두 건국 내각에 친일 인사를 최대한 배제함으로써 정통성 경쟁을 벌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서도 “각료 외 요직에는 남북한 모두 조선총독부에 협력한 인물을 상당수 중용했다”고 말한다. 건국 당시 우수 인력이 극도로 빈약한 현실을 우려한 궁여지책이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저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 독립운동 단체는 일제와 마찬가지로 ‘타도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진영과 한시적으로 손을 잡는 척하다가도 종국에는 어김없이 내쳤다는 것이다. 1937년 보천보전투의 경우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항일연군 소속 한인들이 일제 관공서를 약탈한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북한이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해 보천보전투를 최대 항일무장투쟁으로 선전하는 등 완벽하게 역사를 왜곡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308쪽

중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담다…‘사우디는 지금’ [신간소개]

중동 문명권에 대한 오랜 호기심으로 20년간 발로 뛴 사우디아라비아 등 현장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 한국과 사우디를 오가며 문화교류에 앞장서고 기업인으로 치열하게 협상하며 얻은 살아있는 이야기로 중동의 이면을 소개하는 책이 출간됐다. 김유림 이화여대 신산업융합학부 겸임교수이자 ㈜넥스나인 대표이사는 사우디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 카타르를 중점적으로 다룬 ‘사우디는 지금’을 출간했다. 경기일보에서 2년간 ‘세계는 지금’ 칼럼을 집필하기도 한 저자는 사우디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에 대한 가십부터 독재의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 여성 인권 부재에 대한 우려 등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편중된 시각도 존재한다는 우려 섞인 지적을 한다. ‘지금의 중동’은 ‘지금의 대한민국’ 주요 교역의 시장이자 협력 파트너인 점을 강조하며,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시선으로 중동의 문화, 경제 등의 흐름을 살펴보길 권한다. 책은 ‘이슬람 문화와 신중동’, ‘사우디는 지금’, ‘GCC의 강자들’, ‘콘텐츠로 본 중동’으로 이뤄져 있다. ‘이슬람 문화와 신중동’에서는 의식주의 근간인 그들의 전통의상 ‘아바야’와 ‘아랍 커피’, ‘라마단’, 신중동의 ‘소프트파워’, ‘한류 콘텐츠’ 등을 담았다. ‘사우디는 지금’에서는 사우디의 경제계획인 ‘사우디 비전 2030’을 비롯해 경제·산업·관광 분야에 대해 다룬다. 여기에는 사우디의 전시 트렌드, 축구, e-sports 등을 담은 문화와 예술 소식도 녹여냈다. ‘GCC의 강자들’에서는 마케팅과 무역 국가 브랜딩으로 중동의 대표적 국가로 거듭난 아랍에미리트, 한국과 천연가스 수입을 비롯해 다양한 협력을 하고 있는 카타르에 대해 다뤘다. ‘콘텐츠로 본 중동’에선 중동과 이슬람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소개했다. 김유림 교수는 “책은 중동과 사막에 호감을 느끼는 학생들, 중동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 중소·대기업 관계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윤수천 4행시집,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메아리가…’ [신간소개]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말은 윤수천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 아동문학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는 윤 작가가 두 번째 4행시집을 펴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메아리가 있다’(詩와에세이). 지난 7월 ‘당신 만나려고 세상에 왔나 봐’로 첫 4행시집을 펴낸 지 석 달 만이다. “나의 4행시가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선사했으면 한다”고 밝힌 작가의 말처럼 그의 단시(短詩)는 단순하고 명료하면서도 울림이 있다. 여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알아?/왜 생겼는데?/딴 데 보지 말고/여기 보라는 거야.(‘여보’ 전문), 넘어지지 않으려면/채찍을 참아야 해/환호 소리 들으려면/울 줄도 알아야 해.(‘팽이’ 전문), 그가 의도한 4행시는 명확하다. 짧아서 지루하지 않고 쉽고 재밌어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시. 작고 별것 아닌 주제에서 찾아낸 반전의 힘이다. 시집에 실린 70여편의 4행시는 하나같이 작고 사소하고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들을 주제로 한다. 그는 이런 작고 별것 아닌 것들에서 주제를 찾아내 삶의 위로와 희망의 싹을 보여준다. “종소리를 멀리 가게 하는 건 거대한 그 무엇이 아니라 주먹만한 쇠뭉치가 일으키는 공명의 힘”이라는 그의 말처럼 말이다. 윤 작가는 “학식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도 즐거움과 공감을 느끼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는 시를 앞으로도 재미난 시를 쓰려고 한다. 시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한 번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네 줄 짜리 짧은 시를 계속 쓰겠다”고 밝혔다.

가을 감성 닮은 프랑스 문학…‘결혼·여름’, ‘사물들’

가을의 한복판, 때로는 거침없이 한편으론 유려하게 우리를 매혹하는 프랑스 문학 세계와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삶 속에 깃든 철학, 일상에 스며든 예술을 담은 책 두 권을 골라봤다. 먼저 철학자이자 작가였던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사유가 담긴 ‘결혼·여름’(녹색광선 刊)이 지난 8월 발간됐다. 그가 1936년부터 1년간 쓴 에세이를 모은 ‘결혼’과 1939년에서 1953년 사이에 집필한 에세이를 정리한 ‘여름’을 한데 묶은 책이다. 파멸을 향해가는 삶이라도, 세계 속에서 사랑과 욕망을 찾아 걸어가는 이의 의지가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결혼’엔 카뮈가 ‘이방인’으로 주목받기 전 무명 시절의 삶에서 묻어 나는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여러 도시를 떠돌면서 자신의 육체와 세계를 맞댈 때 느껴지는 생생한 삶의 감각을 활자로 옮겼다. ‘여름’은 카뮈가 20대 중반부터 10여년 간의 청춘을 지나는 동안 써내려 간 기록의 모음집이다. 유한한 인간에 대한 사색, 예술과 역사에 대한 단상들, 일상 장소와 여행지를 오갔던 경험 등 다채로운 소재를 풀어내는 이 책에서는 행간 곳곳에서 읽는 이를 매혹하는 단어들과 시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문체가 특히 돋보인다. 책을 읽다 보면 관능이 묻어나는 카뮈의 문체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그의 에세이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청춘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영원한 젊음과 생명력이 넘실대는 산문을 마주한 독자들 역시 일상 곳곳에 피어나는 찰나의 감정들에 충실한 삶을 꿈꿀 수 있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펭귄클래식코리아 刊)엔 1960년대의 프랑스 파리, 20대 청춘의 흔들리는 초상이 150쪽가량 짧은 분량의 지면으로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작가는 젊은 부부 제롬과 실비가 사회에 뛰어들면서 겪는 다양한 일들, 매일 마주하는 일상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단면들, 그로부터 이어지는 내면의 변화를 따라가며 책을 채워냈다. 페렉의 문체는 시종 간결하지만, 표현 하나하나에 세련된 통찰이 깃들어 있어 책장을 넘길 때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섬세한 묘사와 관찰이 계속되지만, 과열과 냉소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세공한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부와 재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내면은 끝없는 욕구의 연쇄로 가득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느끼는 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따라갈 때 독자들을 둘러싼 환경과 맞닿는 감상이 가능하다. 주인공들의 언행과 당시 시대상의 모습이 현대 사회와 정확히 겹쳐 보인다는 점도 소설이 현재까지 널리 읽히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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