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THE 클래식] 바로크와 고전파 잇는 로코코양식

흔히 음악사에서 바흐의 사망을 바로크와 고전파의 경계로 보고 있지만 1700년에서 1790년 사이를 보면 음악적으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로코코 양식인데 바로크와 고전파를 잇는 중간매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은 고전파 초기까지도 중요한 양식으로 구실을 했다. 먼저 로코코의 어원에 대해 말하자면, 인조동굴을 장식하는데 쓰인, 조가비로 장식된 바위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로카유(ro caille)에서 나온 말이다. 로코코 양식은 태양의 왕이라 불린 프랑스의 최전성기의 왕 루이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의 웅장함과 그의 치세(治世) 동안 유행한 바로크 양식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으며, 프랑스 조각가들이 파리 귀족의 새로운 주택을 보다 경쾌하고 아름답게 장식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미술사적으로 본다면 프랑스에서 루이 14세 시대에 나타난 바로크의 웅장하고 거대한 양식이 루이 15세 시대로 넘어 오면서 가볍고 장식적인 미술로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이러한 로코코도 그 뿌리는 궁정과 귀족이라는 것이다. 미술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로코코는 바로크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필자에게 로코코에 대해 묻는다면, 주저함 없이 로코코는 무엇보다도 화려하고 호화롭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로코코의 대상은 18세기 프랑스 풍속 그 자체이며, 로코코 미술에서 빠질 수 없는 페트 갈랑트 즉 우아한 연회가 상징하듯, 루이 15세 때에는 경쾌하고 감각적인 것을 즐기는 풍조가 팽배했다. 가볍고 정교하며 우아하고 고상한 로코코 양식은 곡선과 자연 현상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건축에 있어서 로코코 양식은 벽면과 천장, 소조(塑造) 등을 조개나 자연물 형상뿐 아니라 C자(字)나 S자 같은 기본형태 위에 교차곡선과 역곡선(逆曲線)을 그린 문양으로 장식했는데, 대칭보다는 비대칭을 기본으로 삼았다. 색상은 밝은 파스텔색, 상아빛 흰색, 황금색이 주로 쓰였으며 이 양식의 장식가들은 유리도 자주 사용했다. 건축과 미술에서 보여 지고 있는 로코코는 음악에서도 비슷한 양식으로 취해지고 있다. 로코코 음악. 먼저 좁게 본다면 이 시대를 대변하는 것은 프랑스의 클라브생음악이다. 대표적 작곡가로는 루이 14세 때 베르사유를 중심으로 한 궁정음악의 중심인물들이었던 쿠프랭, 라모, 다캥 등이 있다. 이들의 음악은 우아한 장식음으로 가득 찬 세련된 음악이다. 넓게 본다면 독일의 C.P.E 바흐나 크반츠 등에 나타난 감정과다 양식을 로코코적 양식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바로크 시기의 끝 무렵, 1740년대에서 1770년대까지 작곡된 경쾌하고 우아하며 아주 장식적인 음악을 로코코로 지칭하기도 한다. 요제프 하이든과 어린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초기 음악을 그 당시 시작되고 있었던 고전음악 양식에 속한다는 것이 더 적절하지만, 로코코 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서양음악의 이해

지난 시간까지 바로크 음악을 알기 위해 바로크 시대의 정치적 사상적 배경, 바로크 시대의 건축 그리고 미술에 이르기까지 들여다봄으로써 바로크 음악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 확실히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바로크 시대를 지나 짧은 기간이지만 로코코 시대를 거쳐 우리가 일상적으로 클래식이라 말하는 고전파 시대로 연결이 된다. 오늘은 이 음악사로의 여행을 잠깐 접어두고 우리가 아무 어려움 없이 접하고 다루고 즐기고 있는 음악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음악은 먹고 마시는 것 즉 음악은 생활이다라고 이미 정의한 바 있다. 필자가 18여 년 간 유럽에서 공부하고 활동 할 때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고민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할 때 유럽에서 꽤나 알려진 지휘자들과 교수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필자에게 던졌던 질문이 있었다. 왜 대부분 한국 연주자들은 음악을 한국식으로 연주 하지? 이건 우리 음악인데. 독일어 동시통역을 하고, 오스트리아 기독음악 총감독으로 활동하던 필자로부터 이 점에 대해 무언가 속 시원한 답변을 기대한 듯하다. 이 질문을 반복해서 들을 때 마다 필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내 자신에게 아주 오랜 기간 되묻고 또 되묻고, 어느 순간 이 질문은 필자에게 있어서 너무도 큰 고민이 되어 있었다. 얼마나 오랜 기간을 고민하고 내 자신에게 질문 했을까? 어느 순간 필자는 아, 이거구나! 하고, 희미하게 보여 지는 답을 찾은 듯 했다. 필자가 태어나서부터 자연스레 접해오던 음악은 바로 서양음악이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친구 중, 동양음악에 심취하여 이미 한국의 국립국악원에서 수년간 한국음악을 유학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자랑스럽게 연주하던 아리랑 그리고 필자의 아리랑 연주에 맞춰 어깨를 어색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온몸으로 표현하던 세마치장단. 필자는 그 친구에게 왜 한국음악을 너희 음악처럼 표현해?라고 질문하며 시범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 이들의 핏속에는 왈츠가 흐르고, 우리의 핏속에는 배우지 않아도 굿거리, 세마치장단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의 음악은 그 민족의 문화이자 생활인 것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언어가 필수가 아닐까? 언어를 알아야 그들과 소통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사상 나아가서는 시대정치를 이해하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 문화를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언어에 문법이 있듯이 음악에도 문법이 있다. 박자 속 악센트, 리듬원리, 대위법, 선율과 화성 그리고 목적 점 등.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전공자로써 서양음악을 연주할 때, 위에 나열 된 언어에서 목적 점까지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필수적으로 습득하고 중요시 다뤄야 할 점들이라 생각한다. 음악은 결코 테크닉만으로 연주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그 민족의 문화이고 생활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클래식] 바로크음악

그동안 바로크시대의 정치적, 종교적 배경 아래 나타난 바로크 건축 양식, 조각 그리고 미술의 특징에 대해 다루었다. 필자가 왜 이렇게 각각의 분야를 설명하려 노력 했는지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앞에 다루어진 내용들을 통해 이미 머릿속에 바로크 음악이 그려지고 이해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이제 바로크 음악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바로크 음악시대는 1600년에서 1750년으로 보고 있다. 1세기 반의 역사 속에서 바로크음악은 가지각색으로 변화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이 음악을 고유한 법칙 안에서 주관적 감정 표현을 극도로 자제 했다면, 바로크 음악가들은 인간 영혼의 고뇌와 정감을 음악 속에서 주관적 표현을 통해 극적으로 그려냈다. 즉 바로크 음악가들은 당대의 그림과 건축에서 볼 수 있듯이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적인 방법을 추구하였다. 바로크음악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통주저음(Basso Continuo)의 발달, 협주곡(Concerto), 강약의 표현 그리고 꾸밈의 발달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통주저음의 발달에 대해 설명 하자면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선율선과 베이스 위에 연주자가 그에 맞는 화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이다. 베이스와 화음은 보통 하나 이상의 콘티누오 악기로 연주 하는데 보통 쳄발로나 류트 오르간이 담당했다. 바로크 시대의 건축과 미술에서 중요시 되었던 대조는 전체 오케스트라와 작은 그룹, 또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대조를 이루는 협주곡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바로크 미술에서 강조되고 있는 공간과 거리의 환영의 모습이 바로크 기악음악의 셈여림의 대조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즉 메아리 효과라 말할 수 있는데 바로크 기악음악에서는 종종 같은 프레이즈가 처음에는 크게, 다음에는 작게 연주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렁차게 연주되는 트럼펫의 팡파르를 플루트가 작은 셈여림으로 받아서 연주하는 것이다. 또한 데스칸토(Descanto)나 카덴차(Cadenza), 선율 위에 나타나는 많은 꾸밈음들로 인하여 화려함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크시대에는 성악음악 분야에서 새로운 기법들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성악음악과 기악음악의 구별이 명료해졌고, 장조와 단조의 조성 체계가 확립 되었다. 이태리를 중심으로 오페라가 등장하였고, 이 후 칸타타 형식이 확립 되었는데 세속 성악곡이던 칸타타는 종교음악으로 흡수되어 독일에서는 교회 예배용으로 쓰였다. 또한 지금까지 성악을 중심으로 한 음악에서 기악음악이 발전 하였는데 소나타, 협주곡 그리고 모음곡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기악음악이 등장했다. 기악음악의 발전은 바로크음악을 특징짓는 또 하나의 큰 요소라 할 수 있다.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바로크 시대의 미술과 음악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바로크라는 시대 양식 개념은 본래 미술사 분야에서 일어나 음악사 분야로 이행되었다. 바로크 음악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그동안 시대적 배경과 그 안에서 표출된 건축 양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바로크시대의 건축 양식에 이어 미술 분야는 어떠했는지 알아보려 한다. 바로크 시대의 모든 미술에 있어서 중요시 되었던 점을 말한다면 아마도 대조와 환영이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한 중요한 기법중의 하나가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의 대조를 발견하고 사용했다는 점이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화가는 누가 있을까? 아마도 초상화 화가로 명성을 얻게 되었던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일 것이다. 그의 초상화 작품들 속에서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의 대조를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빛이 밝게 비추고 있는 인물의 얼굴과 어둡게 처리되고 있는 배경이 바로 그것이다. 대조와 함께 이시대의 화가들이 중요하게 사용한 또 하나의 기법은 환영이었다. 과연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환영을 표현 하였을까? 짙은 대리석처럼 보이도록 장식된 종이, 그림 속 벽에 그려진 가짜 문과 창문, 그리고 그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바깥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천장을 통해 특수 효과를 만들고 있다. 천장은 마치 열려져 있는 것처럼 표현 하고 있는데, 그 사이로 나타나는 구름과 그 구름 속으로 천사들이 날아오르는 것이 보이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대조와 환영의 특징들은 바로크 음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한 감정 상태를 묘사하기 시작한 바로크 작곡가들은 대조와 환영을 셈여림과 대조되는 연주 그룹을 통해 만들고 있다. 바로 협주곡의 등장이다. 17세기 전반 북부 이탈리아에서 나타난 트럼펫소나타는 합주형태의 협주곡이 탄생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과, 쳄발로 협주곡이 최초의 협주곡이라 볼 수 있다. 전체 오케스트라와 작은 그룹, 또는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대조를 이루는 협주곡(Concerto)을 통해, 바로크 시대의 미술에서 중요시 되었던 대조가 바로크 음악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 환영은 어떤 형태로 바로크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을까? 바로크 기악음악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셈여림의 대조를 통해 나타나는 환영의 효과이다. 즉 메아리 효과라 말할 수 있는데 바로크 기악음악에서는 종종 같은 프레이즈가 처음에는 크게, 다음에는 작게 연주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렁차게 연주되는 트럼펫의 팡파르를 플루트가 작은 셈여림으로 받아서 연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로크 미술에서 강조되고 있는 공간과 거리의 환영의 모습이 음악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크 시대의 정치적 시대 배경, 건축양식 그리고 미술의 특징을 통해, 보다 쉽게 바로크 음악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바로크 건축양식 Ⅱ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정치적 배경과 함께 바로크 시대의 건축양식에 대해 계속 알아보려 한다. 지난 시간에 설명 했듯이 바로크 시대는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선행 스타일로 대체 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시작 하였다. 일반적으로 고전부흥의 기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 건축을 최고의 예술로 평가하는 반면에, 전통에서 자유로이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바로크는 말세적 예술 또는 타락한 예술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바로크 건축이 신시대를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결코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새로운 표현형식은 16세기에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전개된 카톨릭의 강력한 반종교개혁을 그 원동력으로 하여, 17세기에 완전히 발달 하였다. 카톨릭 교회의 부패를 바로 잡고자 마틴 루터와 죤 칼빈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교회 내부에 깊은 반성과 함께 부패했던 교회를 정화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전개 되었다. 이 결과로 생긴 이 시기의 새로운 신앙의 모습은 영혼, 정신적인 면보다는 감각적인 면이 강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모습의 변화 속에 로마 교회에 사용되는 회화, 조각, 건축 등에 강렬한 감동을 주는 극적인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슬픔, 기쁨, 절망, 종교적 황홀경 등과 같은 감정적인 면에 강한 관심을 보인 바로크의 예술가는 이러한 감정 상태를 연구하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상화는 인물의 위엄과 인격을 강조하고, 조각은 깊고 강렬한 순간을 표현했고, 건축에서는 르네상스의 건축요소를 계승하여 사용 하지만, 변형이 나타나고 그 수법이 자유롭고 대담하게 되었다. 또한 심한 요철에 의하여 생기는 음영으로 강한 동적인 감각이 느껴지도록 벽면의 장식을 화려하고 힘차게 만들었다. 즉, 건축에서는 화려함과 강렬함 그리고 활기찬 질서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1600년대 중반에 지어진 베르사유 궁전이다. 수천 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 베르사유 궁전은 철저한 대칭적 구조로 설계 되었으며, 놀랄 만큼 웅장하다. 또한 전체가 거울로 장식된 회랑을 가지고 있다. 웅장함의 효과는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길게 늘어선 나무들, 연못 그리고 우아한 정원을 통해 외부에서도 계속된다. 바로크 건축에서 시간적 요소는 중요하다. 바로크 시대의 건축가들은 고립된 건물이나 고립된 공간에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모든 건축요소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내부공간을 두루 다니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전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도록 모든 구조를 연관적으로 구성하였다. 철저한 대칭구조와 함께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의 대조, 광선과 음영의 대조, 큰 것과 작은 것의 대조 그리고 점차적 감각변화 속에서 제시하는 클라이맥스는 바로크가 가지고 있는 교향곡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바로크 건축양식 1

바로크 시대 이전에는 르네상스 시대 와 매너리즘 시대가 있었고 고전주의가 뒤 따른다. 바로크시대 스타일은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선행 스타일로 대체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시작 됐다. 르네상스의 정적은 바로크이지만, 그 사이에 어떠한 이유로 매너리즘이 발생되고, 그것이 어떻게 르네상스를 종식시키고, 바로크의 발생과 성립에 영향을 주었는가는 바로크를 아는 것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매너리즘과의 관련성을 제외하고서 바로크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늦은 르네상스라고도 하는 매너리즘(Mannerism)은 르네상스 미술의 방식이나 형식을 계승하되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에 따라 예술작품을 구현한 예술 사조로써 1520년 경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하여 16세기 말경까지 지속됐다. 매너리즘을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탈법칙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부재의 크기와 위치, 부재들 사이의 비례와 배열 등 지켜야 할 많은 법칙이 있었는데 이것들을 깨트린 것이다. 유럽 역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 가운데 하나였던 16세기에 등장한 매너리즘은 시대 상황의 산물인 측면이 많다. 유럽의 정신적, 종교적 뿌리였던 기독교를 둘러싼 내부 분열 즉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유럽사회는 분열되었고 이로 인한 충격과 부작용은 매우 컸다. 분열은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고 종교전쟁을 낳았다. 신교는 카톨릭의 권위적 권력과 부패에서 벗어나 해방을 내걸었고, 이 대분열의 종교개혁 즉 종교전쟁을 통해 천 년 이상 이어온 카톨릭의 권력을 무너트렸다. 이 혼란의 정치적 시대 상황속에서 개인들은 심한 혼란과 소외를 느끼며 고통을 받았고, 건축가들은 이런 혼란의 시대 상황을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일탈과 반항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카톨릭은 반종교개혁으로 다시 권력을 잡고 사상, 학문, 예술 등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통해 간섭하고 탄압을 강화했다. 사상, 학문, 예술가들의 활동은 이러한 감독과 탄압에 의해 어려움을 겪었고, 이러한 부정적 상황에 대해 반발한 건축가들은 대립과 풍자로 표현했다. 건축가들의 이러한 고전주의 규범을 어기는 일탈은 곧 카톨릭에 대한 건축적 도전이자 반항이었다. 이것을 예술 양식으로 집단화한 것이 바로 매너리즘이다. 반종교개혁의 출현으로 세력 있는 중산층이 등장하고 절대왕정이 강화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크 건축, 미술에 영향을 준 중요한 요소이다. 바로크의 특징은 건축, 조각 그리고 그림과 같은 다양한 예술 장르 간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경향이다. 설계와 계획이 건축가, 화가 그리고 조각가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종합예술(Gesamtkunstwerk)이라 불리어진다. 이러하기에 바로크 양식의 건물 전체가 압도적인 것이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바로크

바로크 시대는 1600년경에 시작되어 1750년 요한 세바스티얀 바흐의 죽음에 이르는 150년간을 지칭한다. 바로크라는 시대 양식 개념은 본래 미술사 분야에서 일어나 음악사 분야로 이행됐다. 바로크는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를 뜻하는 프랑스어의 형용사인데 포루투칼어인 barroco에서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바로크라는 용어가 시대양식 개념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음악이 아닌 17세기의 회화, 건축, 조각에 의해서다. 바로크는 르네상스 말기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양식이 전화하여 생긴 양식이다. 르네상스의 후퇴라는 비난을 받아오다가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독자적인 새로운 양식을 확립한다. 르네상스를 새로운 이상에 의하여 발전시킨 것이 바로크 양식이다. 두시대의 사상적 내용을 비교하여 본다면 르네상스는 이지적인 것으로 바로크는 열정적인 것으로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대상에 법칙을 추구 했으나, 바로크는 대상을 관찰하는 사람의 주관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려 했다. 르네상스 양식이 자연주의 적이고 고전주의적이라면, 바로크 양식은 격정적이고 화려하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고전부흥의 기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르네상스 건축은 최고의 예술표현이라 말하고, 전통에서 자유로이 벗어나는 시도를 하고 있는 바로크는 말세적 예술, 르네상스 예술의 타락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바로크는 신시대를 전개시키는 선구로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7세기에 들어와서 완전히 발달한 이 새로운 표현형식의 원동력은 16세기에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전개된 카톨릭의 반종교개혁운동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음악, 미술, 건축, 문학가들이 다루고 있는 재료는 각각 다르다. 그러나 과연 이 분야들이 서로 다른 분야일까? 예술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놓여진 음악, 미술, 건축, 문학은 비록 사용하는 재료는 서로 다르지만, 각 시대를 표현하고 대변하기 위해 같은 구성과 형식 그리고 표현방법 속에서 변화되고 발전되어져 왔다. 왜, 바로크 음악은 풍부하고 화려한 장식적인 방법을 특징으로 하고 있을까. 바로크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로크 시대의 시대 상황과 함께 건축과 미술에 대한 이해가 되어져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 방법으로 바로크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악이 어떻게 변화되고 발전 되어져 왔는지 그 발자취를 더듬어 가 보려한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전문 연주자가 되려면…

필자가 오스트리아 유학 당시, 한국의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을 빈 국립음대 교수에게 소개해 준 일이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의 이름 있는 모든 콩쿨은 거의 모두 다 수상 하였고, 영재 수업을 받는 학생 이었다. 부모님의 열정 또한 대단 하셨던 걸로 기억 한다. 한국의 방학을 이용해 빈 국립음대의 교수님께 음악의 본고장에서 더 깊은 레슨을 받기를 원해했고, 어렵게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 비엔나에서 이루어졌다. 그 학생은 조금의 떨림도 없이 처음 뵙는 유럽 교수님 앞에서 너무도 멋진 연주를 했다. 당시 그 학생이 연주했던 곡은 그 연령의 학생들이라면 한국에서 입시를 위해, 콩쿨을 위해 당연히 소화해야 되는 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연주가 끝난 후, 교수님께서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쳐 주셨고, 이 학생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말씀하시기 시작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그다음 몸을 엎어졌다 돌아누웠다 하면서, 팔에 힘이 조금씩 생기고, 팔에 힘이 생기면 기어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려 하고, 그리고 다리에 힘이 붙으면 몇 걸음씩 걷고, 그러다가 걷게 되고, 뛰게 되고 하는데이 학생의 경우, 아직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면서 팔에 힘부터 키워야 할 나이에 걷는 걸 연습하고 있으니, 정작 걷고 뛰어야 할 나이가 되면 아마도 관절에 이상이 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아직 팔, 다리에 힘이 없어 기어 다니고 있을 때, 어떤 아이가 이미 부모님들의 욕심에서 나오는 시도로 인하여 무리하며 몇 걸음씩 걷고 있다면, 그 당시에는 그 아이가 박수 받고 주목 받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걷고 뛰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그 동안의 끊임없는 무리한 시도로 인하여 그 아이의 관절은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망가져 있을 겁니다. 전문 음악가가 되려면 연령, 시기별로 정확히 다듬고 숙련 되어져야하는 테크닉이 있어요. 이 학생이 조금 전 연주했던 곡은 이 학생 나이로 생각한다면 너무도 큰 곡이라 생각 됩니다. 이 연령대의 학생이 이 곡을 이렇게 연주 한다는 건 훌륭했어요.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이해하지요? 너무도 중요하고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 점에 대해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정승용의 The 클래식] 음악이란, 바로 우리의 생활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누군가는 따분하고, 지루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알고보면 클래식처럼 쉽고 재미있는 음악도 없다. 클래식에는 한 인물의 생애부터 한 나라의 역사까지 무수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정승용 지휘자는 26일부터 12월까지 매주 격주 화요일마다 독자들에게 정승용의 The 클래식으로 시대별, 작곡가, 직품, 연주자 등 다양한 클래식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수원 출신인 그는 세계 3대 음악원인 폴란드 쇼팽음악원 작곡과 석사, 빈국립음악대학교 대학원 작곡과 박사, 그라츠국립음악예술대학교 대학원 작곡과 석사를 취득한 뒤 외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전체 기독음악 총감독과 지휘를 역임했다. 한국인 최초 오스트리아 제1국영방송 ORF1이 선정한 세계음악가로 등재됐으며, 외국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전체 기독음악 총감독과 지휘를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일제에 항거한 시인 이육사의 시를 담은 곡을 작곡하는 등 세계 속에서 한국의 클래식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정 지휘자와 함께 클래식 세계로 빠져보자. 편집자주 음악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답변을 해야 상황이 온다면, 과연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문득 듣기에는 너무도 쉬운, 바보 같은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정확하고 명확한 답변을 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사전적 의미로 음악은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예술 또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을 소재로 하여 박자선율화성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 등으로 정의돼 있다. 필자는 음악을 깊이 배우고,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을 선택했고, 18여 년 이란 긴 시간 동안 폴란드, 독일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하며 활동을 했다. 폴란드에서 첫 유학을 할 때의 일이다. 지도 교수님께서 어느 날 별장으로 초대 해 주셨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레슨을 벗어나 음악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교수님과 동구권음악, 폴란드음악 그리고 한국음악에 관하여 많은 얘기를 나누던 중, 필자에게 물으셨다. 클래식음악이 뭐라고 생각하나? 필자는 주저 없이 음악사적으로 본다면 고전파음악이고,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서양의 전통적인 음악을 클래식 음악이라 말한다고 답했다. 교수님은 내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시다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셨다. 그럼,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나? 음악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유럽의 음악을 배우기 위해 필자가 처음 선택한 그곳 폴란드에서, 그것도 폴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교수님께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아직 음악가가 아닌 음악에 열정이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무언가 거창한 대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음악은 뭐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 앞에 머릿속은 멍해졌고,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으셨는지, 교수님께서는 껄껄 웃으시면서 간단하 지만 깊은 답변을 주셨다. 음악은 먹고 마시는 거라네.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답을 찾기 위해 유럽에서 그토록 긴 시간을 헤매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필자는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음악은 먹고 마시는 거라고.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바로 우리의 생활이라고. 정승용 지휘자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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