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료원 6곳 중 5곳 ‘한의과’ 전무… ‘진료선택권’ 없어 논란

경기도가 경기도의료원 6곳 중 5곳에 한의과를 설치하지 않아 도민의 ‘진료 선택권’을 박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의료원 관련 조례에는 한의과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스스로 지키지 않고 있는 셈이다. 9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도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에는 ‘한방의료를 통한 진료 및 한방 보건지도 사업’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중 한의과가 설치돼 있는 곳은 의정부병원뿐이다. 안성병원은 지난 2018년 신축 이전하면서 한의과를 설치했지만, 그나마도 1년 뒤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한의과 진료를 없앴다. 나머지 수원, 파주, 이천, 포천병원에는 한의과를 설치한 적이 없다. 앞서 도는 지난 2022년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지방의료원에 한의과를 필수적으로 설치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양의학과 한의학이 구분되는 국내 의료체계에서 도민이 양의학, 한의학 진료를 선택할 ‘진료 선택권’을 주고, 양·한방 협진 등을 통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같은 취지가 무색하게 조례가 개정된 지 3년이 돼가지만 현장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은 거동이 불편한 도민의 집이나 시설을 방문해 돌봄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경기도 돌봄의료센터’를 추진 중인데, 역시 한의학 진료는 빠진 상태다. 특히 도의료원은 ‘동서의학 연계센터’ 개설을 통한 양의학과 한의학의 연계를 운영방안으로 제시하고 있어 구호에만 그친 모순이라는 비판이다. 최성열 가천대 한의대 교수는 “지방의료원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을 낮춘다는 데 설립 목적이 있다”며 “한의학은 일차치료에 강점이 있고, 무엇보다 만성질환·근골격계질환·신경계질환에 치료효과가 있다. 조례에 명시된 만큼 도의료원에 한의과를 설치해 취약계층의 의료권을 강화하고, 양·한방 협진 등으로 발전된 의료서비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도의료원의 재정, 운영상의 어려움이 심각해져 한의과 설치를 고려하지 못했다”며 “궁극적으로 조례에 있는 도의료원의 양·한방 의료서비스 제공에 대해선 동의하기 때문에 도의료원 산하 병원들의 여건을 고려하고 경기도의료원장과 협의해 한의과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문화재단, ‘예술인 창작 지원’ 2025년 경기예술지원 공모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경기도 예술인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위해 ‘2025년 경기예술지원 공모’를 한다. ‘2025년 경기예술지원 공모’는 ▲기초예술 창작지원(문학, 시각, 공연) ▲모든예술31(경기예술 활동지원)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 총 3개 부문으로 이뤄진다. ‘기초예술 창작지원’은 문학, 시각예술, 공연예술 분야의 신작 창작을 위한 기초예술 장르별 지원사업이다. 예술창작 준비단계부터 창작품 실연·제작, 성과 발표까지 단계별로 차등 지원한다. 올해는 문학 분야의 취재·리서치를 위한 ‘창작준비 지원’이 신설돼 문학 작가들의 창작 준비단계를 지원할 예정이다. ‘모든예술31(경기예술 활동지원)’은 신작·기존작에 구애 없이, 창작·발표되는 모든 기초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되지 않은 남양주, 동두천시 등 9개 시·군은 경기문화재단에서 직접 공모를 시행하고,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된 22개 시·군은 경기문화재단과의 예산 매칭을 통해 기초문화재단에서 자체 공모를 시행한다.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은 도내 공공 공연장과 공연예술 단체 간 상호협력을 통한 우수작품을 제작하고 발표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창작 역량강화와 안정적인 제작환경 조성, 지역민에 대한 우수공연 서비스, 관객개발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춰 도민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수준 높은 공연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공연장과 단체를 지원한다. 공모는 오는 20일 오후 5시까지 국가예술지원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 접수 가능하며, 외부 전문가의 심의를 거쳐 오는 3월 중 선정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경기문화재단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 이정재, “‘제1회 박물관영화제’ 축하…뜻깊은 축제 함께해 영광”

배우 이정재가 경기도박물관의 ‘제1회 박물관영화제’ 개최에 축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2’ 미국 홍보 투어 중 특별 영상 통해특별 영상을 통해 “박물관과 영화가 만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뜻깊은 축제에 함께하게 돼 매우 영광이다. 제1회 박물관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하며 이번 영화제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오는 10~26일 열리는 제1회 박물관영화제는 ‘박물관이 영화를 만났을 때’라는 슬로건 아래 박물관 소장 유물과 영화를 융합한 새로운 장르를 선보인다. 개막작으로는 영화 ‘관상’이 상영되며, 조선시대 유물 ‘송시열 초상’과의 연계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역사적 유물과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 영화제 기간동안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유물과 관련된 영화 상영은 물론, 감독과 배우, 학예사가 참여하는 토크콘서트와 심포지엄이 열려 관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주요 상영작으로는 ‘왕의 남자’, ‘역린’, ‘남한산성’, ‘암살’, ‘자산어보’, ‘동주’ 등이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유물과 영화가 어우러진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체험할 수 있다. 경기도박물관은 이번 영화제를 통해 박물관이 단순히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관람객과 소통하며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도박물관 관계자는 “박물관과 영화가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시도는 역사와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하고 체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수원문화재단, 2025 문화예술지원사업 공모 시작

수원문화재단은 오는 10일부터 지역 문화예술인과 단체를 위한 2025년도 수원문화예술 지원사업 공모를 한다. 사업은 ▲문화예술 창작지원 ▲유망예술가 지원 ▲경기예술활동 지원 ▲형형색색 문화예술지원 등 총 4개 분야에서 진행된다. 지원분야 간소화 및 일원화, 청년예술인 우대, 원로예술인 및 장애예술인 대상 우선할당제 등 일부 내용을 개선했다. ‘문화예술 창작지원사업’은 지역의 전문예술인(단체)의 창작활동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공연·시각·문학 3개 분야의 미발표 신작에 한해 신청 가능하다. 사업비는 총 8천만 원으로 건당 최대 지원금은 분야별로 다르다. ‘유망예술가 지원사업’은 활동경력 5년 이내의 지역 신진예술가 및 단체가 대상이며, 공연·시각 2개 분야의 창작 및 실연을 지원한다. 청년예술인에 우대사항을 적용하며 건당 300만~500만원까지 차등 지원한다. ‘경기예술활동 지원사업’은 경기문화재단과의 협력 분야로 관내 지역공동체, 수원지역 문화기반시설, 문화유산 등 지역의 콘텐츠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우대 지원한다. 건당 최대 1천만원까지 차등 지원한다. ‘형형색색 문화예술지원사업’은 공연·시각·문학 총 3개 분야에서 상반기 중 연 2회 공모 방식으로 진행한다. 문화예술 지원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로예술인 및 장애예술인 대상 우선할당제를 실시하며 건당 최대 400만 원까지 차등 지원 받게 된다. 접수는 이달 22~24일 3일간 수원문화지도 누리집에서 진행되며 지원사업과 관련해 재단은 오는 13일 오후 2시 수원시미디어센터 1층 상영관에서 사업설명회를 개최한다.

경기도한의사회 한의약 콘텐츠 공모전, 재치만점 ‘한의약 홍보’ 레디 큐!

경기도한의사회와 경기일보가 공동 주최한 ‘2024 제7회 경기도한의사회 한의약 콘텐츠 공모전’의 결선 PT 및 시상식이 성료했다. 지난 5일 오후 4시 경기도의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결선에선 총 35개의 출품작 중 6개 작품이 결선 심사에 올라 대상과 최우수상, 우수상 수상자가 최종 선정됐다. 공모전 주제는 ‘감기의 한의약 치료’로 면역력을 강화해 감기를 예방하는 한의약의 효능과 만성감기·비염 등에 효과적인 점, 항생제와 관련 없는 한의약 등 한의약의 감기 치료 효과와 한의학에 대한 인식 개선, 대국민 홍보, 국민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영상과 홍보물이 제작됐다. 심사는 경기도한의사협회 회원들이 참여한 예선 심사 후 결선에 오른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평가했다. 출품자들이 직접 무대에 나와 기획 의도와 영상 상영과 홍보 자료 설명 등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후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최종 수상작은 콘텐츠의 주제 적합성과 향후 활용 가능성, 영상의 완성도와 홍보 확산성, PT 점수 등을 종합해 선정됐다. 대상은 ‘감기 예방은 한의약으로’를 출품한 박세리씨(개인)에게 돌아갔다. 박 씨는 한의약이 감기에 효과적인 이유와 감기의 근본을 치유하게 하는 점 등을 대중이 알기 쉽도록 구성한 점 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이어 최우수상은 ▲4조 이다현, 이다영, 이다인, 임지은씨의 ‘임산부 감기, 한방으로 답하다’ ▲5조 유강빈, 박근영, 김상유씨의 ‘한방이와 함께하는 항생제 없는 감기치료’가 수상했다. 우수상은 ▲1조 허은채, 김영웅, 김우현, 신정현씨의 ‘뉴스 감기 바이러스 침투 사건 ‘종결’ 한방에 가보자고’ ▲2조 고규린, 김가경, 백승진, 장영현씨의 ‘감기 에취!하면 한의원으로!’ ▲3조 우시은, 윤온채, 길의준, 최서윤씨의 ‘엄마의 마음으로 치료합니다’로 선정됐다. 대상은 경기도의회의장상과 상금 300만원, 최우수상(2개팀)은 경기일보대표이사회장상과 상금 150만원, 우수상(2개팀)은 경기도한의사회장상과 상금 50만원, 장려상 13개팀에는 경기도한의사회장상과 상금 10만원이 각각 지급됐다. 수상작은 한의약에 대한 올바른 인식개선 등을 위해 대국민 홍보자료, 한의약 교육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공모전에선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해 한의약의 효과를 확산하고, 다채로운 소통 채널로 젊은 세대에게 한의약을 알리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돼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용호 경기도한의사회장은 “매년 작품 수준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공모전을 하면서 한의약을 처음 접한 분들도 있을 텐데 이제 한의약 가족이라 생각하시고 많은 홍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은 “홍보 전문가가 되실 여러분께서 잠재력을 가진 K-메디신의 우수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도록 많은 관심을 갖고 활용해 주시면 좋겠다”며 “전세계에 한의약의 우수성이 알려질 그 시작점이 여기 한의약 콘텐츠 공모전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황세주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 부위원장은 “공모전에 젊은 대학생들이 다수 참여한 점과 창의적인 콘텐츠가 돋보이는 점에서 한의약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며 “한의약이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라며 경기도의회도 한의약의 발전을 위한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인터뷰 ‘대상’ 수상 박세리씨 “AI 활용 영상으로 일상 속 한의약 홍보 결실” 대상을 수상한 박세리씨(26)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큰 상을 받게 돼 더욱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 씨는 한의약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인식되도록 하고자 영상과 홍보물에 파스텔톤을 활용하고 노란과 초록 색상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디자인적인 측면보다 더욱 호평을 받은 것은 공모전의 취지를 잘 살린 ‘감기 예방은 한의약으로’의 주제의식과 구성이다. 박씨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목소리를 통해 한의약이 감기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상세하게 반영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개인적으로 영상 공부를 하던 박씨는 취업 준비를 하다 우연히 공모전을 보고 출품을 결심했다. 그는 “3주간 제작했는데 제일 시간을 많이 소요한 것은 스토리 구성이었다”며 “감기라고 하면 병원만 떠올렸는데 한방치료나 한의약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되는 줄 몰랐다. 새로운 것을 알게 돼 배움의 기쁨도 컸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유일하게 개인으로 출전한 박씨는 공모전 준비와 PT 무대를 혼자 도맡으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발표와 답변으로 심사위원들의 응원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박씨는 “우연히 참여한 공모전에 큰 상을 받게 돼 기쁘고, 잘 알지 못했던 분야를 알게 돼 더더욱 의미가 있었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의약에 더욱 관심을 갖고 홍보 확산 방안 등도 고민해 보겠다”고 전했다.

실학박물관, 개관15주년 기념 ‘밖으로 나온 실학’ 선보인다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이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동시대 실학의 가치를 알린다. ‘실학(은 원래) 박물관(에 없었다)’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 주민, 활동가와 함께하는 네트워킹 파티와 실학을 바탕으로 다학제 간 교류하는 세미나를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실학을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역사 속 학문으로 여기는 대중의 고정관념을 깨고, 실천적 학문으로서 실학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됐다. 오는 20일에는 지역활동가들의 네트워킹 파티 ‘밖으로 나온 실학’이 열린다. 박물관이 위치한 남양주시 조안면과 인접 지역인 양평군 양서면의 주민과 활동가를 초대해 지역 이슈를 파악하고, 실학박물관과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실학박물관은 ‘지역 연계·확산 강화 방안 연구’를 통해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활동가 16팀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네트워킹 파티를 시작으로 세 차례 분야별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기획·개발하고 올해 실질적인 지역 연계 사업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또 다음달 13일엔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동시대 실학 세미나 ‘실학, 오래된 새로움’을 진행한다. 여성학자, 사회학자, 천문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적 시각으로 실학을 재해석하는 학자들이 패널로 참여한다. 실학박물관은 이들을 ‘현대 실학자’로 명명하고 동시대 사회문제를 실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계획이다. 김필국 실학박물관장은 “실학은 단순히 역사 속 학문이 아니라 여전히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실천하는 가치 있는 학문”이라며 “실학박물관이 지역과 함께 실학의 동시대적 가치를 확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광대 왔소, 줄을 서시오…줄타기 이수자 ‘한산하’ [청년 장인, 전통을 잇다①]

전통은 ‘옛 것’, ‘오래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오랫동안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있던 무형유산 중 상당수가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이 크게 자리한다. 5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내 국가무형유산은 총 14개 종목에 기능보유자 14명(단체), 전승교육사 19명(단체)이 있다. 도 지정 무형유산으론 총 72개 종목에 41명의 보유자와 17곳의 보유 단체, 42명의 전승교육사가 활동 중이다. 도 무형유산 보유자의 평균 연령은 73세이며, 전승교육사는 60세다. 상당수 무형유산은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무형유산 보유자의 노령화와 전승세대의 무관심 등으로 맥이 끊길 처지에 놓였다. 실제 도 무형유산 가운데 보유자가 없는 종목은 7개(단체 제외)다.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엮어 갓의 둥근 테 부분인 양태를 만드는 양태장은 지난 2020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장인이 사망해 현재까지 보유자가 없다. 국가무형유산으로도 지정된 화각장은 9년째 도 무형유산 보유자가 공백이며 생칠장은 2022년 10월부터, 주물장과 조선장은 지난해 초 보유자가 별세한 이후로 보유자가 부재하다. 이 외에 상당수의 무형유산은 배우려는 사람이 없어 언제 명맥이 끊길지 알 수 없다. 위태위태한 전통유산에, 현재 유행하지 않는 전통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MZ 무형유산 전승·이수자들이 있다. 빠름과 변화, 유행에 민감함 등이 MZ 세대를 나타내는 주요 특징으로 꼽히지만, 이들에게 전통은 자신들이 잘 가꿔 나갈 현재의 이야기다. 우리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자신만의 예술성으로 현대에 전통의 이야기를 불어넣는 청년 장인들을 만나본다. 첫 번째 ‘MZ 장인’은 줄타기 이수자 한산하씨다. 3m 높이의 허공, 줄광대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외줄에 발을 얹자 주위에서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온다. 장구, 해금, 피리 등 삼현육각의 전통 음악이 시작되면서 줄광대는 줄 위를 걷고, 뛰고, 부채를 펼쳐 솟아가며 기예를 부린다. 줄 아래에서 흥을 돋우는 어릿광대의 재담이 더해지면 신명나는 ‘줄타기’ 공연이 완성된다. 허공이라는 걸 잊은 듯 하늘을 훨훨 나는 줄광대는 국가무형문화유산 줄타기의 이수자 한산하씨(21)다. 줄타기의 유일한 예능보유자 김대균씨의 제자 세 명 중 막내로, 국가무형유산의 명맥을 이어갈 MZ세대의 대표주자다. 한 씨는 초등학생이던 10세에 줄에 올라 4년 뒤 전수 장학생으로 지정되고, 19세에 시험을 거쳐 이수자가 됐다. 전통공연을 좋아하던 부모님 손에 이끌려, 수줍음을 이기기 위해 찾았던 ‘줄타기 보존회’. 그곳에서 줄타기의 매력에 빠져 스무살 인생의 절반을 줄을 타는 데 쏟았다. 그는 지난해 10월31일 남한산성역사문화관 개관식에서의 줄타기를 끝으로 군에 입대했다. 입대 전 마지막으로 선보인 무대를 마친 후 한 씨는 “어릴 때는 줄을 타는 게 마냥 좋았지만, 이제는 사명감이 생겨 줄을 놓을 수 없다”며 “줄타기가 전승 취약 종목이기 때문에 후대에도 전승되도록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줄타기는 지난 2016년 ‘국가긴급보호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더 이상 이수자가 없어 전승 단절 위험이 큰 종목에 내려지는 조치다. 그러나 한 씨를 비롯해 젊은 이수자들이 배출되면서 2023년 다행히 긴급 보호 종목에서 해제됐다. 사라질 위험에 처했던 줄타기가 보존된 데는 한 씨와 같은 청년들의 피, 땀, 눈물, 노력이 있었다. 이들이 지난 10년간 매일같이 줄을 탄 결과다. 줄타기의 가장 기본은 ‘중심’이다. 시선은 줄을 지지하는 작수목 사이에, 명치는 틀어지지 않고 정면을 바라봐야 하는데 ‘균형’을 잡는 데만 수년이 걸린다. 그 이후에야 줄을 건너가보고, 줄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한 발씩 들어보고, 비상할 수 있다. 한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허공에서 몸을 비트는 ‘허공잽이’ 동작을 배우다 안 좋게 떨어지면서 트라우마로 남았다. 허공에서 하는 동작들이 겁이 났지만 이겨내고 1년 만에 동작을 성공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이 정말 컸다”고 말했다. 이어 “줄타기는 좌절을 이겨내고 성취감을 얻는 과정의 반복”이라며 “체중을 조절해야 하고,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해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걸 억누른다. 또래 친구들처럼 여행도 가고 싶지만 꾸준히 줄을 타야 해 그것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하지만 줄타기를 계승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줄 위에 올랐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웃어보였다. 한씨의 목표는 신명나는 자신만의 줄판을 만드는 것이다. 줄타기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다양한 현대예술과 결합해 새로운 방식의 줄타기를 시도하는 거다. 줄타기와 연극을 결합해 줄 위에서 연기를 선보이거나, 재즈나 밴드 등 다양한 음악에 줄을 타는 식이다. 한 씨는 “김대균 선생님께서 항상 ‘줄에 너만의 이야기를 실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며 “대중적으로 줄타기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고, 잘 전승되도록 열심히 익히고 노력해 좋은 ‘광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간' 박물관이 된 집, 집이 된 박물관 [로컬이슈]

경기문화재단이 지난 2023년부터 경기도형 생활문화전시관 ‘작은박물관 세: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가족단위의 고유한 생활문화 전시관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집과 연결된 별도의 공간을 작은박물관으로 꾸며 가족의 특별한 이야기를 담는 내용이다. 특히 이 사업은 전국 최초로 시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해 파주시, 연천군 등에 세:간 다섯 곳을 조성했다. 내년까지 30곳의 세:간을 더 만들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지역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 ‘생활문화’ 전통·계승... 사회안전망 구축, 공동체 회복 세:간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또는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을 의미한다. ‘작은박물관 세:간’ 조성사업은 민간 문화거점 공간을 지속하기 위해 공동체의 최소단위인 ‘가족’이 주체가 돼 박물관을 조성·운영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 제7조(생활문화 지원)와 경기도 문화자치 기본조례 제9조(문화예술의 육성)에 따라 추진된다. 앞서 지역의 이야기와 역사를 다루는 ‘마을 박물관’의 경우 공공재원이 단절되면 황폐화되고 관리가 어려워져 운영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았다. 경기문화재단은 가족의 공간인 ‘집’에 박물관을 조성하면 공공재원의 지원이 단절된 이후에도 가족이 자발적으로 박물관을 운영해 생활사 문화 공간의 운영·관리에 대한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전통문화, 문화 유산 등은 잘 기록되고 보존되는 반면 ‘생활문화’는 해당 가족이 사라지면 함께 없어지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사라질 뻔한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할 뿐 아니라 ‘나’의 문화·‘가족’의 문화를 시민과 공유함으로써 ‘우리’의 문화로 확장해 지역문화 정체성을 강화하고 공동체 회복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세:간 사업은 공동체 회복을 통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문화 소외, 인구 감소, 지역 불균형, 지역 소멸, 빈집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세:간 사업 대상지를 기획·발굴한 뒤 생활사 기록·스토리텔링 전문가의 지원을 거쳐 전시물을 선별하고 전시공간을 구성한다. 이후 한 달에 2일 이상 전시관의 정기 개방일을 지정하고 사전 방문예약제 운영을 통해 수시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재단은 세:간 한 곳당 사업비 500만원을 지원한다. 사업 대상지는 △가족 소유의 시설물로 외부와 직접적인 연결이 가능한 공간 보유 △공간 조성 후 공공시설물로 정기·수시 개방 및 운영 △체험·교육 등 참여형 프로그램 운영 등 선정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 지난해 12월까지 파주·연천 등에 5호 개관...생활 장비 전시, 가족 이야기 전승 의미 2023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세:간’은 지난해 3월 연천군 군남면에 1호를 개관했다. 집과 연결된 1층 주차공간에 문을 연 이곳은 ‘유품형’ 박물관으로 서예가 김용환 소목장(1916~1982)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다양한 소목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김용환의 아들인 서예가 김기상, 서각가 김태영 작가의 작품과 생활물품 등 100여점의 전시품을 볼 수 있다. 특히 도장 만들기, 문패 만들기, 서예 등의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같은 달 파주시 민통선 내 해마루촌 1호집에는 2층 창고와 응접실에 ‘인물형’ 박물관인 세:간 2호가 문을 열었다. 파주에 민통선 마을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마을 조성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이와 더불어 해마루촌의 초대 이장, 마을해설사, 아마추어 무선사(HAM) 활동 등의 개인 생활사를 기록하고 전시했다. 이곳에선 동식물 소품 만들기, 생태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이어 지난해 12월엔 세:간 3, 4, 5호가 연이어 개관했다. 지난 12월8일 문을 연 세:간 3호 ‘송송골 김구장댁’은 한평생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에 거주해 온 97세 김동준씨의 아들 김종훈씨가 관장이다. 박물관에선 김동준씨가 직접 제작한 농기구, 40년간 보관 중인 땔감나무, 200년 된 밤나무 등을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옛날 집의 기와와 너와 등 다양한 생활사와 특별한 가족사를 전시했다. 김 관장은 개관식에서 매년 정월대보름 잊지 않고 해오던 ‘달집태우기’를 선보이며 가족 고유의 생활문화를 알리기도 했다. 12월21일 연천군 전곡읍에 개관한 세:간 4호 ‘사냥꾼의 쉼터’에서는 현중순 목궁 명인의 목궁 제작 장비를 전시하며 목궁의 역사적 가치와 목궁 제작 이야기, 가족사를 풀어냈다. 이어 12월31일 연천군 연천읍 ‘굼벵책방’이 세:간 5호로 문을 열었다. 연천승마공원 내에 있는 굼벵책방은 그림책을 주요 테마로 한 서적을 판매하고 원화를 전시하며 커뮤니티 공간이 있는 김지연씨가 운영하는 열린 책방이다. 특히 승마공원 설립자인 그의 아버지 김종식씨는 소를 키우던 삶에서 승마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해 승마장을 운영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가족사와 지역사에 대한 독특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시했다. 경기문화재단은 2025~2026년 세:간 30곳을 추가로 조성한 뒤 2027~2028년엔 60곳을 더 만들어 총 100호를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같은 지역에 있는 세:간을 연계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추진 계획도 세웠다. 인터뷰 김지욱 경기민속학회장 “경기도만의 민간 문화거점 만든다” 경기문화재단 ‘세:간’ 사업의 전시기획 자문, 가족사 발굴 등을 하고 있는 김지욱 경기민속학회장은 경기도만의 특화된 역사·문화·여행·관광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 사업의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세:간은 경기도 땅에서 오래도록 뿌리를 이어온 조부모, 부모의 삶을 통해 도민의 생활문화를 기록하고 활용하면서 후손의 미래에 뿌리를 이어줄 수 있는 것”이라며 “시·군별로 3~4곳의 세:간을 조성해 지역별 연계 투어 프로그램 등을 개발·운영하면 경기도만의 민간 문화거점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이들 세:간을 지역별로 통합해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세:간마다 자체 수익 사업을 개발해 운영 지속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간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기문화재단, 31개 시·군, 기초문화재단 등의 협력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시범사업을 추진해 본 결과 공간의 양적 확대와 체험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활용 방안이 필요하다”며 “31개 시·군, 도내 기초문화재단, 문화예술 기관을 대상으로 사업을 홍보해 상호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재단이 사업을 총괄 운영할 수 있도록 조직과 그에 따른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며 “지역의 다양성이 소멸되고 획일화되며 개인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세:간이 ‘언제든 찾아가 다양한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집’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가 공동체 회복을 견인해 이웃과 개인의 존재가치를 강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민예총, ‘2025 예술인 기회소득’ 원안의결 환영 성명 발표

(사)경기민예총이 지난 31일 ‘예술인 기회소득 정책예산 원안의결 환영 성명’을 발표하고 “2025년 경기도의 예술인 기회소득 정책을 지속할 수 있게 돼 환영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경기민예총은 성명을 통해 “지난 30일 예산안 처리가 법정 처리 기한을 넘기며 늦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문화예술 현장의 예술인들이 많은 걱정을 했었다”며 “예술인들이 걱정했던 이유는 상임위를 통과한 예술인 기회소득 예산이 예결특위를 거치며 중요 쟁점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예술인 기회소득은 오래전부터 현장의 예술인들이 ‘예술이 가진 공공재적 가치’를 중단 없이 확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며 “기회소득 덕분에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과 예술 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도민들의 문화적 삶이 풍성해졌다”고 강조했다. ‘예술인 기회소득’은 경기도 민선 8기 핵심사업인 ▲예술인 ▲장애인 ▲아동돌봄 분야 등의 ‘기회소득’ 정책 가운데 하나로, 예술이 가진 공공재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경기도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예술인의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조성하고,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표로 ‘경기도 예술인 기회소득 지급 조례’를 제정, 2023년부터 전국 광역지자체 최초로 예술인 기회소득을 시행했다. 지난해 도내 거주(용인, 성남, 고양, 수원 제외) 중위소득 120% 이하인 예술인은 연 150만원을 지원 받았다. 올해 예술인 기회소득은 예결특위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부침을 겪었으나 원안이 의결됐다. 김태현 (사)경기민예총 이사장은 “공연장 대관 여부를 고민하던 부천의 한 무용가는 지난해 예술인 기회소득으로 개인 무용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고, 안산의 한 극단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밀렸던 월세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이처럼 예술인 기회소득은 생계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예술을 포기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예술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게 한 마중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지난해 예술인 기회소득을 지급받은 많은 예술인들이 이를 통해 연구나 학습에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도민들이 더 질 높고, 수준 높은 예술을 접하는 긍정적 결과로 이어졌다”며 “이러한 정책은 늘 예산의 문 앞에서 위기를 겪는데, 앞으로도 긍정적인 취지 그대로 꾸준히 지속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기민예총은 정책이 지속되는 데 도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역할이 컸다며 성명에서 감사의 뜻도 내비쳤다. 경기민예총은 “예산이 삭감되지 않도록 도 의원들에게 현장 예술인들의 의견을 전달했고, 다행스럽게도 2025년에도 정책은 지속됐다”며 “황대호 위원장(더불어민주당·수원3)과 유영두(국민의힘·광주1)·조미자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남양주3) 등 문체위 소속 의원들은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문화예술의 힘이 중요함을 이해하고, 예술인 기회소득 예산을 지키는 데 힘썼다”고 밝혔다. 끝으로 “기회소득뿐만 아니라 문체위 의원들은 경기도의 2025년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에서 시대 변화에 발맞춘 정책 추진을 위해선 최소 3%의 문화·예술·체육·관광 예산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경기도 행정부에서 제출한 문화·체육·관광 분야 예산을 300억원 넘게 순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사)경기민예총은 문화예술 현장 예술인들을 대표하여 이러한 경기도의회 문체위의 모습에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나태주 ‘풀꽃’ 시인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어... 너와 함께면 먼길도 가까워” [신년인터뷰]

새로운 해가 뜨면 우리는 또 매일의 출발선에 선다.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경쟁을 하고, 괜찮은 척하지만 때때로 초라해지고 작아지기도 한다. 올해로 등단 55주년을 맞은 나태주 시인(80)은 ‘하루 종일 밝은 세상/반짝이는 사람들 사이/누비고 헤매고 다녔지만/마음은 여전히 어둡고 불안했지/이제는 나 반짝이지 않아도 좋아/억지로 환하고 밝지 않아도 좋아’(‘안녕, 안녕 오늘아’ 중)라며 그의 수많은 시를 통해 ‘너’와 ‘나’는 소중하고 ‘우리’는 꽤 괜찮다고 위로와 응원을 건넨다. 지난 12월 하순 충남 공주풀꽃문학관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키보다 곱절은 높은 철제 사다리에 올라 삐죽 웃자라난 나무의 가지를 치고 있었다. 방문객들의 사인과 사진 촬영 요청에 그는 “잠깐 기다려봐” 하고 달래며 모두 응했다. 자기 소개는 그의 시만큼이나 참, 소박했다. “저는 공주에 살면서 시 쓰는 나태주입니다.” Q. 문학관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마음을 많이 쓰던데, 대중과 늘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A. 안 봐주면 서운할 테니까. 타자와의 일이 힘들 때도 많다. 그런데 작가는 문장을 많이 가진 사람이고 나이 먹은 사람은 인생 경험이 많다. 학자는 지식과 이론이 많고 부자는 돈이 많고 직위가 높은 이는 권력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걸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 공유의 방법이 소통이다. Q. 시인이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는 건가. A. 그래서 조금 괴로울 때도 있다. 강연이나 글 요청 수가 많은데 다 들어주기는 어렵고 거절은 못해서 마음이 힘들다. 젊었을 땐 내가 세상에 요구했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세상의 요구가 나에게 온다. 나의 요구를 세상이 들어주지 않으면 섭섭하지 않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나에게 요구했는데 내가 안 들어주면 세상이 섭섭할 거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나에게 섭섭하게 느끼지 않도록 여러모로 노력한다. 예전엔 내가 길을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길을 물었는데 이제는 이 사람, 저 사람, 나에게 와서 길을 묻는다. 그래서 새해에 내는 시집에 ‘길’이란 시가 수록됐다. ‘예전엔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나에게 와서 길을 물으니/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웃음) Q. 매일이 바쁜데 요즘 어떤 마음으로 일상을 보내나. A. 우울하고 복잡한 날들이다. 국가와 사회적으로 여러 불편한 일이 있으니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지구적 인류의 상황은 철학자 한병철 선생 말에 따르면 ‘피로사회’에서 이젠 ‘불안사회’가 됐다. 희망은 밝고 환하고 아름답고 일이 잘 풀리고 좋을 때 갖는 게 아니다. 나쁠 때, 절망적일 때, 어두울 때, 힘들 때 갖는 거다. 그래서 새해엔 더더욱 우리 모두 희망이 필요하다. Q. 희망을 우리는 어떻게 건져내고 어떤 길을 비추며 살아야 할까. A. 희망은 살기 위한 노력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유대인들이 갇혔을 때도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죽음의 질곡에서 기어코 벗어났다. 희망을 가지려면 가슴에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새겨라. 사랑은 호기심, 믿음, 존경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호기심 정도에 끝나 버리는 것 같다. 헌데 믿음으로, 또 존경까지 나가야 한다. 나는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 집사람이다. 내가 많이 엉뚱한 짓을 하는데 그래도 믿어 준다. 그래서 더 엉뚱한 짓을 한다(웃음). 사실 믿어 주니 미안해서 엉뚱한 일을 조금 하다 얼른 돌아오려고 한다. 이게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 믿을 필요가 있다. 알고도 속아 주고, 슬그머니 져 줄 필요도 있다. Q. 지금 우리 사회에선 슬그머니 져 주고 또 속아 주는 그런 마음을 찾긴 어려운 것 같다. 정치·세대·성별 모든 분야에 갈등이 만연하다. A. 우린 모두 적당히 오염돼 있고 이기주의자다. 그래서 슬그머니 져 주고 또 내어 주는 거래가 필요하다. 우리 정치·사회판을 보면 거래는 없고 착취만 있다. 다섯 번의 경쟁이 있으면 두 판 정도는 내어 주고 세 판 정도 이기는 게 제일 좋다. 내 것도 좀 내어 주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한쪽이 모두 이기고 독식하는 구조가 어느 순간 만연해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은 절대 안 된다. 혼자 잘났고 혼자 똑똑한 독야청청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청청’이지 ‘혼자 청청’이 아니지 않나. Q. 코로나19때, 또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작가의 시로 위로를 얻는 이들이 많다. A. 코로나 시절에 책이 제일 많이 팔렸다. 내 시가 대중에게 지지 받는 건 내 호소만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호소와 고백을 들려 주세요, 내가 바꿔서 시로 써 드릴게요’ 해서 인 것 같다. Q. ‘풀꽃’ 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다. A. 내가 이 시를 하루에도 열 번 이상 쓰고 열 번 이상 말한다(웃음). 사실 이 시는 세상을 거꾸로 보고 쓴 시다. 세상이 어둡고 우울하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이 시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라는 건, 너를 예쁘게 보려고 애쓰는 나를 말하는 거다. 억지로, 힘 내서 노력하는 거다. ‘예쁘다’고 하면 예뻐지는 거니까. 삶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프고 지난하다. 그렇기에 그 반대의 삶을 희망하고 추구한다. 내 시들은 그런 반대의 노력을 표현한 거다. Q. 시대를 읽어내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 A. 이 시대를 살아가며 고민을 가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순간이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바로 그때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2022년),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2024년) 시집에서 ‘나’는 단수의 나이지만 사실 ‘너’들을 포함한 다수다. 나도 날마다 넘어질 것 같고 지치고 고달프더라. 거기서 나오는 나의 말이 그 시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말들은 다른 사람들, 특히 청춘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은연중에 떠오른 거다. 그래서 이건 나와 당신들, 그들과의 공동작업이다. Q.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이렇듯 우리는 함께 간다. 중요한 건 함께 가면서도 혼자서 간다는 거다. 나 스스로 별명을 짓자면 ‘자발적 고독자’다. 혼자서 자기 길 잘 가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룬다. 요즘 많은 이들이 혼자 있는 걸 너무 두려워한다. 그래서 주관없이 타협하고 부러지고 억지로 섞인다. 그러면 끝내 자기를 잃는다. 자기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잊기 쉬운 자기다움을 찾고, 스스로 자기 길을 가고 빛나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자아 정체감이 없으면 물이 넘쳐 흘러가는 것처럼 휩쓸려 간다. 무리 속에 또 군중 속에 매몰되고 만다. Q. 새해에 우리가 이뤘으면 하는 소망이 있나. A. 2025년은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새해다. 한 해가 온다는 건 매일의 태양과 365개의 달님을 공짜로 받는 거다. 그밖에 별과 물소리와 새소리, 나비, 구름, 또 푸른하늘을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이 받겠나.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서 이미 엄청나게 많은 선물을 가슴에 안았다. 위기와 실패, 절망은 늘 그 다음 것을 찾는다. 탈출과 성공, 희망이다. 새해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희망을 찾아나설 거다. 벅차고 힘들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즐겁고 좋은 마음으로 나아가자. 앞을 바라보고 희망을 만들어 나가면 향기로 가득 찰 것이다. 그러면 다시 365개의 새로운 날을 맞는 새로운 해가 기적처럼 올 거다. 당신과 내가 맞는 새해는 기적이다. 끝으로 나 시인은 시를 찬찬히 읊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 먼 길- 나태주 함께 가자/ 먼길//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 나도 그 길 위에서/ 나무가 되고/ 너를 위해 착한 바람이 되고 싶다. “‘먼 길’ 그 속엔 춥고 어두워도 함께 가자란 뜻이 있다. 모두가 ‘내가 있어 네가 있다’가 아닌,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당신 덕이다’ 이렇게 바꿔 생각하면 좋겠다. 억지로 노력이라도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서로 좋아지지 않을까.” 나태주 시인은... △1945년 3월 충남 서천 출생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 퇴임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로 등단 △소월시문학상,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윤동주문학대상 등 수상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 시집과 산문집 190여권 출간 △제43대 한국시인협회장, 공주문화원장 역임 △공주풀꽃문학관 설립·운영

문화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