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노인복지관, 시니어 모델 ‘ESG 확산 런웨이’ 성료

수원시 팔달노인복지관이 지난 6일 ESG 실천과 노인인식 개선을 위해 추진한 ‘RE:MAKER ESG 확산 런웨이’를 성료했다.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통해 진행된 이번 사업은 ‘환경·노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의류 재활용 전문 시니어 모델 양성 프로그램’이다. 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의류를 기부받아 차별화된 ESG를 실천하는 동시에 시니어모델의 활동으로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특히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 수원여대, 광교생태환경체험교육관과 지역주민들의 참여형 사업으로 운영됐다. 이날 ESG 확산 런웨이의 축하공연은 평균 나이 76세로 구성된 경기수원시니어모델협회 동아리 70+다시‘봄’에서 진행했다. 안혜숙 협회장은 ‘늙어가는 길’ 시낭송을 선보였고, 이어 강민주 강사의 코칭으로 만들어진 ‘촛불잔치’, ‘빗속의 여인’ 무대가 이어지며 관객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어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는 콘셉트로 시니어모델 14명이 각각 장롱 속 10년 이상 보관한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서는 1부 행사와 기부 받은 의류를 재활용한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걷는 2부 행사가 진행돼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윤학수 팔달노인복지관장은 “ESG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RE:MAKER’ 사업을 기획했다”며 “행사를 통해 ESG와 노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지역사회,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ESG 복지경영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8년 3월 개관한 팔달노인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팔달구 어르신과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교육, 복지프로그램, 사회체육프로그램 등 사업을 하고 있다.

한강 노벨상 연설, 31년 집필 인생… 내 모든 질문은 ‘사랑’ 향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고요한 음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모두가 한강 작가만을 응시하는 가운데, 그가 나지막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로 시 한편을 읽어 내려갔다. 1979년 4월 여덟 살의 나이에 써 내려간 이 시 이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한강은 ‘쓰는 사람’이 됐다. 한강 작가는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실-빛을 내는 실.” 지난 7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이 주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한강 작가는 ‘빛과 실’이란 제목의 8쪽 짜리 강연문을 발표했다. ‘채식주의자’부터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사랑과 폭력, 삶과 죽음 등에 관한 근본적인 고뇌를 청중과 나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매해 12월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 주간(Nobel Week·5∼12일)에 참석해 자신의 성취물이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연설을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노벨 강연(Nobel Lecture)’은 공식 시상식(10일) 이전에 열리지만 사실상 ‘수상소감’으로 여겨지며 노벨상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불린다. ‘빛과 실’이라는 제목으로 8쪽 분량의 강연문을 준비한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최신작인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삶과 죽음, 폭력과 사랑 등 근원적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를 청중들과 나눴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쓰던 시기 고통스러운 질문 안에서 머물렀다고 말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갔다. 그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한 그는, 열두 살의 나이에 서가에서 문득 발견한 ‘광주 사진첩’을 몰래 읽었을 때 솟구쳤던 근원적인 의문과 다시 마주하게 됐다. 5·18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게 된 고통스러운 질문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가,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는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질문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까지 글쓰기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는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背音)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한강의 이날 강연은 온라인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한국 시간으로 8일 새벽 1시부터 약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강연은 노벨위원회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됐으며, 900명 이상이 시청했다. 앞서 한강은 지난 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강 작가는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라며 ‘문장, 언어, 우리, 실, 빛, 전류’를 키워드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한강 2024 노벨문학상 ‘노벨 강연(Nobel Lecture)’ 전문] 빛과 실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다. 표지에 ‘시집’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을 발견한 것은 그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에서였다. A5 크기의 갱지 다섯 장을 절반으로 접고 스테이플러로 중철한 조그만 책자. 제목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선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올라가는 여섯 단의 계단 모양 선 하나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일곱 단의 계단 같은 선 하나. 그건 일종의 표지화였을까? 아니면 그저 낙서였을 뿐일까?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내 이름이,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 필적으로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페이지의 하단마다에는 각기 다른 날짜들이 시간순으로 기입되어 있었다. 여덟 살 아이답게 천진하고 서툰 문장들 사이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사십여 년의 시간을 단박에 건너, 그 책자를 만들던 오후의 기억이 떠오른 건 그 순간이었다. 볼펜 깍지를 끼운 몽당연필과 지우개 가루, 아버지의 방에서 몰래 가져온 커다란 철제 스테이플러. 곧 서울로 이사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자투리 종이들과 공책들과 문제집의 여백, 일기장 여기저기에 끄적여놓았던 시들을 추려 모아두고 싶었던 마음도 이어 생각났다. 그 ‘시집’을 다 만들고 나자 어째서인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졌던 마음도. 일기장들과 그 책자를 원래대로 구두 상자 안에 포개어 넣고 뚜껑을 덮기 전, 이 시가 적힌 면을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 그 여덟 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지금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 빛을 내는 실. 그후 14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5년이 더 흐른 뒤에는 약 3년에 걸쳐 완성한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를 쓰는 일도, 단편소설을 쓰는 일도 좋아했지만-지금도 좋아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종내에는 스스로 식물이 되었다고 믿으며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는 여주인공 영혜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그 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정체와 이탤릭체의 문장들이 충돌하며 흔들리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에서, 오랫동안 죽음의 그림자와 싸워왔던 여주인공은 친구의 돌연한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온힘을 다해 배로 기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쓰며 나는 질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생명으로 진실을 증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섯번째 장편소설인 ‘희랍어 시간’은 그 질문에서 다시 더 나아간다.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말을 잃은 여자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는 각자의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독하게 나아가다가 서로를 발견한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촉각적 순간들에 집중하고 싶었다. 침묵과 어둠 속에서, 손톱을 바싹 깎은 여자의 손이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장면을 향해 이 소설은 느린 속력으로 전진한다. 영원처럼 부풀어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한 부분을 보여준다. 이 소설을 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그 질문의 끝에서 나는 다음의 소설을 상상했다. ‘희랍어 시간’을 출간한 후 찾아온 2012년의 봄이었다. 빛과 따스함의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소설을 쓰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침내 삶을, 세계를 끌어안는 그 소설을 눈부시게 투명한 감각들로 충전하겠다고. 제목을 짓고 앞의 20페이지 정도까지 쓰다 멈춘 것은, 그 소설을 쓸 수 없게 하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점까지 나는 광주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1980년 1월 가족과 함께 광주를 떠난 뒤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 나는 아홉 살이었다. 이후 몇 해가 흘러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 당시 정권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증거하기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제작해 유통한 책이었다. 어렸던 나는 그 사진들의 정치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 훼손된 얼굴들은 오직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내 안에 새겨졌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그러니까 2012년 봄, ‘삶을 껴안는 눈부시게 밝은 소설’을 쓰려고 애쓰던 어느 날, 한번도 풀린 적 없는 그 의문들을 내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오래 전에 이미 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겠는가? 그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대면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글쓰기로만 그 의문들을 꿰뚫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후 1년 가까이 새로 쓸 소설에 대한 스케치를 하며, 1980년 5월 광주가 하나의 겹으로 들어가는 소설을 상상했다. 그러다 망월동 묘지에 찾아간 것은 같은 해 12월, 눈이 몹시 내리고 난 다음날 오후였다. 어두워질 무렵 심장에 손을 얹고 얼어붙은 묘지를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광주가 하나의 겹이 되는 소설이 아니라, 정면으로 광주를 다루는 소설을 쓰겠다고. 9백여 명의 증언을 모은 책을 구해, 약 한 달에 걸쳐 매일 아홉 시간씩 읽어 완독했다. 이후 광주뿐 아니라 국가폭력의 다른 사례들을 다룬 자료들을, 장소와 시간대를 넓혀 인간들이 전 세계에 걸쳐, 긴 역사에 걸쳐 반복해온 학살들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자료 작업을 하던 시기에 내가 떠올리곤 했던 두 개의 질문이 있다.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적었던 문장들이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자료를 읽을수록 이 질문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는 듯했다.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 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1980년 오월 당시 광주에서 군인들이 잠시 물러간 뒤 열흘 동안 이루어졌던 시민자치의 절대공동체에 참여했으며, 군인들이 되돌아오기로 예고된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두 개의 질문을 이렇게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후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 이따금 그 묘지에 다시 찾아갔는데, 이상하게도 갈 때마다 날이 맑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주황빛이 눈꺼풀 안쪽에 가득 찼다. 그것이 생명의 빛이라고 나는 느꼈다.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과 공기가 내 몸을 에워싸고 있다고.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당연하게도 나는 그 망자들에게,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일어난 어떤 일도 돌이킬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의 감각과 감정과 생명을 빌려드리는 것뿐이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싶었기에, 당시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었던 상무관에서 첫 장면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열다섯 살의 소년 동호가 시신들 위로 흰 천을 덮고 촛불을 밝힌다. 파르스름한 심장 같은 불꽃의 중심을 응시한다.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 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 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완성해 마침내 출간한 2014년 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다고 고백해온 고통이었다. 내가 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느낀 고통과,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느꼈다고 말하는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생각해야만 했다. 그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성을 믿고자 하기에,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 같은 해 유월에 꿈을 꾸었다. 성근 눈이 내리는 벌판을 걷는 꿈이었다. 벌판 가득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하나하나의 나무 뒤쪽마다 무덤의 봉분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에 물이 밟혀 뒤를 돌아보자,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에서부터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다 이 무덤들을 썼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래쪽 무덤들의 뼈들은 모두 쓸려가버린 것 아닐까. 위쪽 무덤들의 뼈들이라도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에게는 삽도 없는데. 벌써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는데. 꿈에서 깨어나 아직 어두운 창문을 보면서, 이 꿈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꿈을 기록한 뒤에는 이것이 다음 소설의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어떤 소설일지 아직 알지 못한 채 그 꿈에서 뻗어나갈 법한 몇 개의 이야기를 앞머리만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2017년 12월부터 2년여 동안 제주도에 월세방을 얻어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했다. 바람과 빛과 눈비가 매순간 강렬한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숲과 바닷가와 마을길을 걷는 동안 소설의 윤곽이 차츰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이 온다’를 쓸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학살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고 자료를 공부하며, 언어로 치환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잔혹한 세부들을 응시하며 최대한 절제하여 써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것은, 검은 나무들과 밀려오는 바다의 꿈을 꾼 아침으로부터 약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죽인다는 것은 차갑게 만드는 것. 역사 속에서의 인간과 우주 속에서의 인간. 바람과 해류. 전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이 소설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여정이 화자인 경하가 서울에서부터 제주 중산간에 있는 인선의 집까지 한 마리 새를 구하기 위해 폭설을 뚫고 가는 횡의 길이라면, 2부는 그녀와 인선이 함께 인간의 밤 아래로-1948년 겨울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민간인 학살의 시간으로-, 심해 아래로 내려가는 수직의 길이다. 마지막 3부에서 두 사람이 그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밝힌다.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뒤 3년이 흐른 지금, 아직 나는 다음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 책을 완성한 다음에 쓸 다른 소설도 오래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내 삶을 잠시 빌려주려 했던, 무엇으로도 결코 파괴될 수 없는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흰’과 형식적으로 연결되는 소설이다. 완성의 시점들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이다. 지금까지 쓴 책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이다. 어느 사이 모퉁이를 돌아 더이상 과거의 책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 내가 그렇게 멀리 가는 동안, 비록 내가 썼으나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게 된 나의 책들도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여행을 할 것이다. 차창 밖으로 초록의 불꽃들이 타오르는 앰뷸런스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게 된 두 자매도.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는, 곧 언어를 되찾게 될 여자의 손가락도.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내 언니와, 끝까지 그 아기에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이라고 말했던 내 젊은 어머니도. 내 감은 눈꺼풀들 속에 진한 오렌지빛으로 고이던, 말할 수 없이 따스한 빛으로 나를 에워싸던 그 혼들은 얼마나 멀리 가게 될까? 학살이 벌어진 모든 장소에서, 압도적인 폭력이 쓸고 지나간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밝혀지는,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심지에서 심지로, 심장에서 심장으로 이어지는 금(金)실을 타고? 지난해 1월 낡은 구두 상자에서 찾아낸 중철 제본에서, 1979년 4월의 나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 한편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2021년 가을까지, 나는 줄곧 다음의 두 질문이 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내 질문들의 국면은 계속해서 변하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 질문들만은 변하지 않은 일관된 것이었다고.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경기상상캠퍼스, 어르신들 만든 이색 ‘굿즈’ 출시

경기문화재단 경기상상캠퍼스는 지난 6일 디자인 프로젝트 ‘다정다가감’을 통해 경기도내 어르신들과 제작한 시니어 굿즈를 출시했다. ‘다정다가감’은 도내 문화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교육의 일환으로 문화 예술적 소질과 역량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된 디자인 기획됐다. 재단은 발달장애 디자인 그룹 ‘키뮤스튜디오’와 협업해 지난 10월부터 2개월간 파라밀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어르신들의 삶에서 가장 의미가 깊었던 이야기를 해보며 이를 담아낼 수 있는 키워드를 뽑아 상품을 제작했다. 어르신들은 아트숍을 방문하며 ‘굿즈’,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기상상캠퍼스 내 디자인 특화 공간인 디자인스튜디오의 장비를 활용해 문화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4차례의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드로잉, 캘리그라피, 실크스크린,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트워크를 진행했다. 어르신들의 아트워크는 양말, 노트, 키링, 엽서 등 시니어 굿즈로 제작돼 경기상상캠퍼스 디자인1978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추후 제작한 문화상품은 온라인 아트숍과 문화누리 상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어르신의 이야기가 담긴 문화상품은 도내 문화취약 계층 시설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어르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노년층의 문화 참여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파스칼 모라게스’ 국내 첫 협연… 경기필 ‘마스터즈 시리즈 V-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공연

경기아트센터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을 주제로 ‘경기필 마스터즈 시리즈 V-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선보인다. 경기필은 오는 12일 오후 7시30분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13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김선욱 예술감독의 지휘로 ▲작곡가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버르토크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작품116을 연주한다. 첫 곡은 작곡가 진은숙이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으로 작곡한 ‘수비토 콘 포르차’다. 김선욱은 피아니스트로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베를린필과 협연했으며, 정명훈 지휘로 서울시향과 음반을 발매하는 등 인연이 깊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은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협주곡으로,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석이자 파리국립고등음악원 교수인 파스칼 모라게스가 협연한다. 이번 공연은 파스칼 모라게스의 국내 첫 협연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버르토크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인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현대성과 민속성을 결합한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음악 작품 중 하나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과 함께 20세기의 고전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오케스트라 각 악기군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협연자로 나서는 셈이다. 오케스트라의 기능미를 탐구하기에 최적의 곡이다. 1악장의 엄숙함과 3악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에서, 끝악장의 삶의 긍정으로 옮겨 가는 점진적인 변화가 특징이다. 김선욱 지휘자는 “이번 공연은 어떤 상황을 극복하거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을 주제로 구성했다”며 “같은 클래식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고전과 구분이 명확하게 나뉘어 버린 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은 본래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었음을 보여주고자 위대한 고전을 상징하는 베토벤을 주재료로 시대의 초월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어지는 두 곡 역시 교향곡과 협주곡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이라며 “당시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클라리넷의 등장에 매력을 느끼고 생의 마지막 협주곡을 작곡한 모차르트, 그리고 타지에서 생활하며 몸이 쇠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버르토크가 역경을 이겨내고 작곡해 더 높은 경지에 이른 작품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말했다.

봉준호 등 영화인 2천명·영화단체 77개 "尹 파면·구속하라"

영화감독 봉준호·변영주·양익준, 배우 문소리 등 영화인 2천518명과 영화단체 77개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을 요구했다. 7일 ‘윤석열 퇴진 요구 영화인 일동’은 ‘내란죄 현행범 윤석열을 파면, 구속하라!’라는 제목의 긴급 성명을 냈다. 일동은 “대한민국의 영화인들에게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내란죄의 현행범일 뿐”이라며 “신속하게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파면·구속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대한민국 존립에 가장 위험한 존재는 윤석열이며, 대통령이라는 직무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시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등을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고 통칭한다. 윤석열은 오밤중에 위헌적인 블랙리스트를 전면적으로 실행해 버린 것”이라며 “윤석열과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계엄세력들의 구속 및 단죄는 타협 불가능한 자명한 수순”이라고도 강조했다. 일동은 끝으로 “정권 재창출을 위한 정치공학에 몰두하고 있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에게 경고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상식 밖이며 통제 불가능한, 대한민국 제1의 위험요소이자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의 대통령 직무를 지금 당장 멈추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누구에게 정권을 맡길지는 국민들이 결정한다. 내란의 동조자로 역사에 남을 것인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정치인으로 남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이번 성명은 지난 5일 오후 5시부터 6일 자정까지 진행된 연서명 결과다. 경기영화영상협의회, 여성영화인협회,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한국독립영화감독협회,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등이 동참했다. 연명 참여자의 활동분야(중복 투표)는 ▲관객(27.9%) ▲영화감독(21.1%) ▲영화 전공/비전공 학생(20.5%) ▲제작분야(19.6%) ▲평론가/활동가/배급/마케팅/영화제 등 영화인(12.7%) ▲영화배우(7.9%) 순으로 많다.

문단부터 영화계까지…200여개 단체·5천명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6일 국내 각계각층 문화예술인들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게 한 윤석열은 더 이상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한목소리로 윤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김홍신, 나희덕, 문성근, 유홍준, 정지영, 현기영, 이창동 등 전국 예술인 5천여명과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사)한국작가회의 등 200여개 단체가 시국 선언문에 연명하며 문학‧연극‧영화‧무용‧음악‧공연·전통예술 등 전 장르의 문화예술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윤석열퇴진예술행동(준)은 6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김평수 한국민예총 이사장,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김대현 한국작가회의 비상대책위원장, 박정의 서울연극협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2.3 친위쿠데타에 대한 문화예술인 시국 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백 이사장은 계엄령 사태에 영화 ‘서울의 봄’을 언급하며 현 상황을 꼬집기도 했다. 현장에는 젊은 예술인도 자리를 지키며 동참했다. 뮤지컬 업계에서 스태프로 근무하는 김수진씨(가명·23)는 “예술은 사람의 삶을 더 낫게 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며 “창작자로서 과거에 비해 무대에서 자유롭게 ‘풍자’를 하는 것에 대한 분위기가 위축된 것은 사실이며 여전히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이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업계에서 활동하는 30대 윤현정씨(가명)는 “예술 활동에 대한 예산이 계속 삭감되며 현장에서는 그 위기를 몇 배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독립영화의 제작 지원 경로는 확연히 줄어들고, 제작 편수도 절반가량으로 감소했다”며 “또, 부산국제영화제 등 대표적인 행사를 제외한 영화제 대부분이 당장 내년에도 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애초 7일 오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오전 사실상 ‘윤 대통령 탄핵 찬성’으로 선회하며 탄핵소추안 표결 시점이 하루 앞당겨질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장소와 일정이 변경됐다. 주최 측은 “표결 일정과 관련한 긴급상황이 발생해 탄핵에 더욱 힘을 싣고자, 하루 일찍 선언을 발표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현장은 한때 급박하게 돌아가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문학·연극·영화 등 예술계 단체 시국 선언문을 인용하며 입장을 밝히고, 예술 행동에 나섰다. 강욱천 한국민예총 사무총장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헌을 문란케 한 윤석열은 더 이상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이 공정과 상식, 평화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예술인은 각자의 예술 언어로 무장해 저항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영화 ‘서울의 봄’을 언급하며 계엄령 사태를 강력히 비판했다. 백 이사장은 “같은 영화를 봐도 누군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황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령은 국민 기본권의 제한이자,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영화인에게 위헌적인 블랙리스트를 작동한 윤석열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내란죄 현행범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국내 대표 문인 단체인 한국작가회의 김대현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국작가회의 성명서를 낭독하며 “윤석열의 야간을 이용한 기습적인 계엄령 선포와 합리적 근거가 없는 포고문은 국회의 정치활동을 억압하고 국민의 일상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 “윤석열의 계엄 선포는 열거할 필요도 없이 대한민국의 헌법을 짓밟는 범죄 행위임이 분명하다. 국민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작가회의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발표 직후인 4일 새벽 ‘계엄 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당신(윤석열)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각 단체의 성명 발표와 함께 이삼헌 (사)한국민족춤협회 이사장은 5분가량의 ‘예술 행동’을 통해 억압과 분노를 몸짓으로 표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김평수 한국민예총 이사장 등 예술인들이 ‘12.3 친위쿠데타에 대한 문화예술인 시국 선언문’을 공동으로 낭독하며 마무리됐다. ‘윤석열 구속 처벌을 촉구하는 예술인 일동’은 시국 선언문을 통해 “내란 책동한 윤석열과 친위 세력을 구속하라”고 선언했다. 예술인 일동은 “여기 ‘21세기 오이디푸스’가 있다. 비극의 원인이 오로지 자신에게 기인한데도 이를 바깥에서 찾고자 했던 어리석은 심문관이 바로 그 사람이다”라며 “자신을 제외한 범인 찾기에 골몰하던 윤석열은 마침내 국민 모두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하고 내란을 획책해 이를 실행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제 눈을 파낸 후 왕좌에서 물러났지만, 우리는 그에게 그런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이어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끈질기게 묻고, 우리는 이에 응답하기 위해 야만의 현장을 속속들이 기록할 것”이라며 “권력이 군대를 동원하여 시민을 겁박하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과 함께 저항의 현장에 함께할 것이다. 윤석열이 내란 행위에 책임을 지고 처벌이 조속하게 집행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강, 노벨상 기자회견서 “계엄령 소식에 큰 충격”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6일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 작가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롬 노벨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며칠 동안 아마 많은 한국분도 그랬을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작가는 “2024년 겨울의 상황이 (예전의 계엄과)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생중계돼서 모두가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며 “총 든 군인들 앞에서 버티려던 사람들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맨몸으로 장갑차 앞을 막았던 분도 보였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을 껴안으며 제지하는 모습, 총을 들고 다가오는 사람 앞에서 버티려는 모습, 군인들이 갈 때는 아들들한테 하듯이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작가는 “젊은 경찰분들, 젊은 군인분들 태도도 인상 깊었다”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바라건대 무력이나 어떤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10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 당시 한림원은 그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12월만 기다렸는데”…비상계엄 여파, 경기도 공연업계 연말 특수 ‘먹구름’에 ‘혼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에 따른 여파가 경기도 문화예술계에도 미치고 있다. 5일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비상 계엄령 선포 다음 날인 4일 전국에서 6만 6천758건(5일 저녁 7시 기준)의 공연 티켓 취소가 이뤄졌다. 전날(1만 3천193건)과 비교해 5배, 일주일 전(1만 7천911건)보다 3.7배 늘어난 수치다. 경기도에서도 379건의 예매 취소가 발생했다. 전날인 3일 단 1건도 취소가 없었던 것과 비교했을 때 크게 대조된다. 특히 12월은 연말특수를 노린 발레, 뮤지컬, 콘서트 등 공연이 가장 많은 달이어서 공연업계가 받는 타격이 더욱 큰 상황이다. 이달 고양, 의정부 등에서 2건의 디너쇼와 연말 콘서트를 앞두고 있는 A 공연기획사는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판매된 티켓이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을 겪고 있다. 4일 전체 객석의 5%(50장)에 해당하는 티켓이 환불된 데 이어, 이날도 비슷한 수의 티켓이 또 취소됐다. A 공연기획사 대표는 “홍보를 해도 모자른 시기에 티켓이 팔리기는커녕 환불 사태가 일어나 공연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며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니 연말 분위기를 즐기기 어려운 모습이다. 홍보비, 공연장 대관비 등 손해가 막심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한국민예총)은 이날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 윤 대통령과 계엄에 가담한 이들을 구속·처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민예총은 성명을 내고 “비상계엄의 이유는 어떠한 명분도 없었을 뿐더러 과정도 불법이었고 내용도 위헌이었다”며 “이제 남은 건 윤석열과 그의 잔당들을 끌어내리고 합당한 절차에 따라 처벌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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