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구멍난 보트

상하이 현대음악축제의 초청으로 상하이 오페라를 지휘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지원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아직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모습에 우리를 따라오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막연한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바는 다르다. 서양문화의 비교척도가 되는 ‘오케스트라’의 경우, 중국은 방대한 자체 자원과 음악 선진국의 연주자들로 오케스트라를 형성하며 세계 클래식음악의 가장 중요한 마켓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우리의 경우, 우수한 인적자원을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현상유지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지 냉철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꽤 오래전부터 전문화된 운영 시스템을 가진 오케스트라 문화가 정착되어 유럽과 미국의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나는 2005년 차이나 필하모닉과의 연주 이후 상하이, 광저우, 선전의 오케스트라들을 지휘하며 이들의 과감하면서도 지속적인 육성, 그리고 이에 따른 빠른 결실을 목격하고 있다. 특히, 새롭게 지어진 최첨단 전용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면서 중국의 적극적인 시설 투자에 놀라고 있다. 중국은 오케스트라를 키워내는 최우선 과제인 전용홀을 만드는 것이 우리처럼 큰 과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웬만한 도시, 심지어는 작은 구청 산하에도 문예회관을 갖고 있지만 ‘다목적’을 지향하는 홀이 대부분이다. 행사를 포함하여 오케스트라, 오페라, 합창, 연극, 창극, 발레, 연극은 물론 뮤지컬까지 공연된다. 이 콘셉트의 모델은 짐작건대 1978년에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이다. 애초부터 공연예술 전반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974년, 그다지 풍요롭지 못하던 우리의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한복판에 건설을 계획한 것은 가히 파격적이며 미래를 향한 선구자적 시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전국의 모든 홀들이 유사한 다목적홀로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건축으로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연주 형태마다 요구되는 각기 특유의 섬세한 음향을 디자인할 수 없다. 오히려, 어떤 형태의 공연도 만족하게 할 수 없다. 이런 연주홀들에서 음향과 악전고투하던 나의 경험은 즐겁지만은 않다.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 전에 우수한 음향을 갖춘 전용홀을 지었어야 했다. 그곳에서 마음껏 연습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연주를 통해 기량을 향상하고 최고 수준의 음악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의 실현이 우리에게는 아주 멀고 어려운 과정으로 보이지만 문화 선진국의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해당 부서와 지방자치단체 수장들의 임기가 제한되어 있으니 백년 이상을 바라보는 플랜을 제대로 펼칠 수 없다는 점도 제약이 될 수 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시도에 적응되어 가는 느낌이다. 연주자들의 플레잉하는 소리가 정확하고 냉혹하게 되돌아오는 최첨단 음향에서 연주자들은 기량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연습실보다는 연주홀 무대 위에서 연습을 해야 한다. 연주 때의 음향에 익숙해야 제대로 소리를 만들 수 있다. 우리의 경제적 능력도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연주홀을 계획하던 1970년대와 비교할 때 놀랄 만큼 향상되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를 가진 지방자치단체들은 일시적 지원을 줄이고 오케스트라의 홈그라운드 ‘전용홀’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 이런 계획 없이 오케스트라를 발전시키겠다면 그것은 마치 바닥에 구멍난 보트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함신익 함신익과 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시간의 향기

박설희 이렇게 바빠도 되는 것일까. 시간이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시계를 분침, 초침 단위로 나누어 “바쁘다 바빠” 종종거리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손을 놓고 있으면 불안하다. 강의를 해야 하고 행사에 참석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모임에도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름이 알려지고 존재감이 커지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뿌듯함은 잠깐, 뭔가 자꾸 휘발되는 느낌이 든다. 시간을 쪼개면 쪼갤수록 시간은 점점 더 없어지고 “끝없는 현재의 사라짐”(한병철, 시간의 향기)이 있을 뿐이다. 시간의 양은 극히 팽창되었는데 시간의 질을 상실한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위의 책에서 활동적 삶 중심의 가치관을 사색적 삶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꿔야 시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숲 속의 빈터에 햇빛이 비치듯 한순간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가만히 마주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시간을 멈춰 세우고 머무름의 기술을 배우는 것, 아름다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기다림의 감각을 복원하는 것. 시간을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을 당장 멈추고 다른 시공간에 ‘나’를 밀어 넣는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나와는 다른 환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둘러보며 자신의 삶과 당면한 어려움을 다른 시각으로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저절로 넓어진다. 나만의 특수한 삶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삶에 대해 사색하게 된다. 여행은 ‘설렘’이고 ‘새로운 발견’이며 ‘충만함’이다. 단 한 번의 여행이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예는 무수히 많다. 운명적인 여행의 한 예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행을 들 수 있다. 그건 우발적 여행이 아니었다. 신문물을 접하고자 하는 열망뿐 아니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평생을 벼르고 별러 준비해온 여행이었다. 조선 사행으로서는 최초로 열하에 가게 된 연암은 약 5개월여에 걸친 중국기행을 마치고 짐보따리보다 덩치가 더 큰 메모 뭉치를 들고 돌아와 3년여 만에 열하일기를 완성했다. 열하일기는 길 위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만약 연암이 길 위에 나서지 않았다면 호질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허생전을 구술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곡장(好哭場)이나 코끼리를 통해 우주의 비의를 본 상기(象記) 등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 같은 호기심,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 새로운 문물에 대한 관찰과 사색, 초대받지 않은 자로서 역할과 책임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 풍자와 해학 등 그는 여행자의 미덕을 골고루 갖추었다. 여행은 홀로 떠나야 제맛이다.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다 보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주마간산, 풍광만 훑는 관광이 되기 쉽다.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여행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내게 주어진다면? 단연 사막으로 가 볼 생각이다. 주먹만한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그곳에서 어린왕자와 사막여우도 만나보고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도 피어나는 꽃과 풀을 지켜볼 것이다. 숨을 곳도 숨길 곳도 없는 사막에서 온전히 풍화되고 있는 무한의 시간을 느껴보고 싶다. 10월2일이 임시공휴일이 되면서 추석 연휴가 열흘이 되었다. 그 연휴를 다 누릴 수 없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국내로 해외로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올가을에는 운명의 장소로 여행을 해 보자. 시간의 향기를 느껴보자. 그도 저도 여의치 않다면 제자리에서 하는 여행이라도 해보자. 독서 말이다. 박설희시인

[문화카페] 발레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

지난 2010년, 5개 민간발레단의 단장이 모여 민간발레단 연합회를 만들고 어떻게 하면 발레시장을 더 키우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발레를 보고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서 발레단, 이원국 발레단, 와이즈 발레단 등입니다. 문화예술계가 모두 다 어렵고 힘든 상황과는 달리 국립단체에 대한 지원은 갑자기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민간발레단 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후 2012년 연합회를 협동조합으로 만들고 매달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다양한 공연, 교육 프로그램, 행사 등을 기획하게 됐습니다. 2015년부터 매년 진행하고 있는 수원발레축제와 횡단보도 깜짝 공연, 버스킹, 플래시몹 등이 그것입니다. 이를 통해 관객을 기다리지 않고 발레단이 관객을 찾아가는 다양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지난 4년간 꾸준히 진행해온 ‘발레, 아름다운 나눔’ 시리즈와 ‘셰익스피어 in 발레’, ‘차이콥스키와 발레’ 등 올 한해만 해도 3만명이 넘는 많은 관객과 만났습니다. 처음 발레가 시작된 이탈리아, 왕족과 귀족의 지원으로 세계 최초의 발레 학교가 생겨 발레 교육을 체계화시키고 발전시킨 프랑스, 오늘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고전발레의 틀을 만들고 발전시킨 러시아, 그리고 신고전주의현대발레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선도해가고 있는 미국을 발레 발전에 이바지해온 나라라고 말합니다. 최근 들어 위에 언급한 나라들보다 훨씬 늦게 발레를 시작한 우리나라가 세계 발레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 발레 영재들이 각자의 실력을 뽐내는 수준급 이상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학생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있고 전 세계 메이저급 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영국 런던 여행을 가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을 봤는데 자랑스럽게도 대한민국의 남성 무용수가 주역으로 너무도 완벽한 연기와 테크닉을 보여주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런 세계적 수준의 무용수가 해외에서 활동하며 국가의 위상을 높여주는 일은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일이고 기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내 발레 팬들은 이들의 활동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현재 재능이 많은 인재들이 입단해 활동할 수 있는 직업 발레단은 전국에 고작 세 군데뿐입니다. 지난 2015년 합류한 김옥련 발레단을 비롯해 발레 STP 협동조합의 여섯 개 단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유니버설발레단이 전 단원과 직원들에게 고정급여와 4대 보험을 주고 있습니다. 나머지 단체들은 일부 단원만 고정급으로 계약을 하고 나머지 단원들은 공연별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단체를 국가에서 다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20년 이상 고용창출을 하고 적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낸 단체를 선별해 국립단체의 10분의 1정도는 지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지난 한 달간 발레공연ㆍ행사장에서 만난 수많은 어린 발레 꿈나무들이 10대 후반, 20대가 되었을 때 직장을 찾아 가족과 헤어져 해외로 나가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발레단에서 다양한 안무가와 만나 활동하고 발레만 하면서도 직장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동남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발레단으로 오디션을 보러 오고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 관광업도 더불어 번창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꿈꿔봅니다. 김인희 발레 STP 협동조합 이사장

[문화카페] 문화유산 활용법

유난스럽던 폭우와 폭염이 9월이 되니 언제 그랬냐 싶게 물러갔다. 한 달 간의 유라시아 대륙 탐사로 방학이 유난히 빨리 끝나버렸다. 연구실에는 답사기간 여기저기에서 모은 자료들로 가득하니, 언제 저 자료들을 다 정리하나 싶지만 그래도 자료 한 아름 쌓아두고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라고 한 소리 듣는다. 답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실크로드다. 그 옛날 낙타 타고 하염없이 사막을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고속철로 반나절에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되어버린 그곳은 지금도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실크로드의 상징도시인 둔황이다. 둔황 막고굴은 오랜 세월 숱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우리에게는 혜초 선사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둔황 막고굴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첨단시설을 갖춘 관람센터이다. 막고굴의 유적은 사실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 영국과 독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에도 일부가 보존되고 있다. 일본의 오타니 원정대가 가져온 유물 중 일부가 조선총독부에 기증한 것이 지금껏 남아있는 것이 1천700여 점이다.전 세계에 흩어진 둔황의 유물을 포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디지털 둔황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막고굴 관람센터의 디지털 영상관이다. 막고굴이 형성된 과정을 영상으로 관람하고 원내 셔틀버스를 타고 막고굴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관람은 철저하게 가이드를 따라다녀야 한다. 수백개의 굴 중에서 딱 6개만을 보여준다. 관람이 끝난 굴은 여지없이 자물쇠로 잠가둔다. 더 보고 싶으면 몇 번이고 다시 오라는 게다. 막고굴 바로 옆에는 ‘우견둔황’의 대규모의 공연장이 있다. 인상 시리즈를 연출한 철삼각중 왕차오거(王潮歌)의 작품이다. 이 공연은 정경체험극이다. 박물관이나 갤러리를 다니는 것처럼 관객들이 다니면서 공연을 체험하는 형식이다. 제일 싼 표가 300위엔쯤 하니 5만원이 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공연이 끝나면 전통 야시장으로 향한다. 서역이니 양꼬치의 크기는 동북지역의 열 배쯤 되는 큼직한 것이 중앙아시아에서 먹는 샤슬릭에 가깝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막고굴 벽화에서 막 나온듯한 무희의 상이 길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이 먼 곳까지 구경 왔으면 제대로 며칠 지내면서 샅샅이 보고 가라는 듯 볼거리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 되었다. 그렇게 즐기면서 둔황에 대한 기억을 여행 후에도 오랫동안 가지게 될 것이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에 대한 기억은 덤이다. 세계유산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이다. 세상 어느 누가 보아도 보존할 당위성을 가질 정도의 유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세계유산이 있다. 경기도에는 수원 화성과 남한산성이 대표적이다.화성은 수원시내에 있으니 근처에 사는 이는 일부러 가지 않아도 보고 다닐 테고, 남한산성도 등산 삼아 한두 번 들렀을 터이다. 우리는 이곳에 무슨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시설 정비가 필요한 부분도 있을테고, 콘텐츠도 더 보태져야 할 일이다. 필자가 둔황의 문화콘텐츠에서 주목한 것은 숱하게 축적된 둔황학 연구의 성과물이었고, 이를 집대성하는 디지털 둔황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점이다. 연구자료가 바탕이 되어 이야기와 공연이 만들어지는 콘텐츠의 순환구조가 단단히 버티고 있다.문화유산의 원형성을 보존하면서 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 일은 한두 달의 기획으로 끝낼 일이 아니라 숙성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이 쌓여가는 구조를 기대한다. 은근과 끈기 하면 이웃나라 못지않으니 이 정도야 충분히 감당하리라. 김상헌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문화카페] N시인의 하소연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시를 쓰는 N시인이 어느 자리에선가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자기 작품은 평론가들에게서 외면당할 뿐만 아니라 문학상을 논하는 자리에 끼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라고 했다. 너무 쉽다 보니 늘 푸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우려먹을게 없다 보니 평론가들에게서 환영은커녕 외면만 당한다는 것. 문학상 또한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작품에 주게 되면 상의 권위가 떨어질 게 아니냐는 것. 그렇지만 자기 작품은 독자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한편으론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이 N시인의 하소연은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N시인과 같이 대체로 짧고도 쉬운 시를 쓰는 작가들은 한두 번쯤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평론가란 사람들은 남의 작품으로 먹고산다. 그러다 보니 자연 우려먹을 게 많은 작품을 찾게 마련이다. 아무나 읽어도 쉬이 이해가 가는 작품을 가지고 뭘 이야기할 것인가. 그러다 보니 난해하다싶은 작품에 눈이 갈 게 뻔하다. 문학상도 마찬가지다. 짧은 시보다는 길이가 있는 시, 쉬운 시보다는 난해하다 싶은 쪽의 시에 상이 주어지는 게 보통이다. 신춘문예 역시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신춘문예형 시’란 말이 나왔겠는가. 그러다 보니 아예 이를 염두에 두고 시작(詩作)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근간에 와서는 다행히도 이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당선되는 예가 늘고는 있으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그 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계보를 잇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정작 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고 있는 작품들은 평론가들이나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안중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나 이형기의 낙화, 김소월의진달래 꽃,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김춘수의 꽃, 김광섭의 저녁에같은 작품들이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어디 시뿐인가. 동화에도 그런 작품이 여럿 있다. 권정생의 강아지 똥,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 원유순의 까막눈 삼디기 등등. 반면에 소위 문학상을 탔다는 작품들의 현주소는 거의가 주소불명인 작품이 허다하다. 잠시 ‘반짝!’하고 난 뒤엔 어떻게 됐는지 행방조차도 묘연한 것들이 태반이다. 특히 시 분야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몇몇 평론가들과 심사위원들만이 좋아하는 작품들은 독자와의 눈높이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세월과 함께 쉬이 잊혀간다. 필자는 이를 요즘 말하는 ‘갑질’의 한 형태로 보고 싶다. 몇몇 사람들이 쥐고 흔드는 어쭙잖은 권력쯤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소위 ‘문제작’이니 ‘수상작’이니 하는 작품들에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문학성’이 어떻고 ‘새 지평을 여는…’ 운운도 좋지만 그보다는 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작품에 더 마음이 간다. Y작가는 한 독자와의 만남 자리에서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는 유리관 안에 진열된 트로피로 남기보다는 아이들의 발에서 짓뭉개지고 사랑받는 ‘축구공’으로 남고 싶다고. 그 얘기를 들은 난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쳤던 기억이 난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전곡 선사유적을 경기문화 일번지로

고려의 개성은 경기도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고 오늘날 서울은 결국 경기도의 품 안에 있는 셈이다. 한양 도성을 둘러싼 전역이 바로 경기도였던 것이고 경기감영터는 수원으로 이전하기 이전에는 오랫동안 바로 지금 발굴되고 있는 한양도성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는 서대문네거리 부근이다.수원 화성은 정조의 이상향의 수도이었고 당성과 경기만은 바로 황해 항로의 거점이었다. 한국 역사의 중심이자 그 축이 있었던 곳이 바로 경기도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곳곳에 민족사적으로 의미심장한 유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주민들 중에서 지난 천년 동안 이 경기지역이 우리나라의 문화수도였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왜 그럴까? 경기도나 경기문화재단이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기는 하지만 지역문화로서 도문화의 정체성이 견고하게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것은 그동안 인구변동이 극심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문화정책은 근본적으로 변하여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왜냐하면 현대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에서 문화의 역할이 증대되어야 하는 시기에 살아가기 때문이다.그동안 인구의 변동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그리고 도시 내에서 다시 계층의 분화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대에 살아오면서 지역적인 문화적 정체성은 상실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국가적인 정체성이 중요한 것은 오늘날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지역적 문화정체성이야말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사회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적인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술자리를 하면서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의 옛날이야기를 하면 편안해지기도 하고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나누고 살았고 같이 생활한 그 추억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 있고 그것이 공동체의 의식을 강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그러나 오늘날 살아가는 지역의 아파트를 고향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사는 도시에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지금의 세태이다. 어쩌면 남자들의 군대 막사 생활보다 못한 것이 바로 아파트 군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공동체생활사이다. 남겨지는 공동의 이야기도 없고 오가는 작은 정도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것이 바로 우리가 생활에서 하는 이야기 주제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과 또한 그러한 이야기 속에서 감성이 풍부하여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앞으로 장수 집단이 늘어나고 또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의 여유시간이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정책의 필요성은 불을 보듯 훤한 미래보기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경기지역공동체의 지역문화정체성 만들기와 강화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한 세심한 정책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제는 살아가야 할 지역으로서 주민들의 지역역사문화에 대한 인식의 강화이다. 물론 경기도나 문화재단이 많은 사업들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집중적이고도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경기도민의 지역 공동체의식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때이다. 살아가고 있는 지역으로서, 그리고 나중에 돌아와야 할 고향으로서 경기도의 감성적인 가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역문화유산들은 그러한 가치의 창조하여 나가는데 핵심적인 재료이다. 빛나는 중세나 근현대의 유산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주민사를 보여주는 전곡리 구석기 유적은 한반도 주민의 문화적 고향으로서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기원터로서, 그리고 경기문화 일번지로서 경기도민의 마음에 자리 잡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 정책 수행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카페] 신발

첫 출근을 하는 딸의 뒷모습을 본다. 새 구두, 새 바지, 새 셔츠…. 어떤 길도 걸어본 적 없는 저 구두를 신고 아이는 아스팔트와 보도블록과 흙길을 걸으며 때로 발뒤꿈치가 까지고 발톱에 피멍이 들고 발바닥이 화끈거리기도 할 것이다. 가기 싫은 길, 가야 할 길, 가고 싶은 길 사이에서 포기할 것과 선택할 것을 가릴 테고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제 분신을 데리고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늦지 않으려 부리나케 현관문을 닫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서는데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때묻은 운동화를 손으로 빨면서 ‘이 신발을 신고 아이가 길을 잃지 말고 학교를 제대로 찾아갔으면, 학교에서 올 때에도 헤매지 말고 집을 제대로 찾아왔으면’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고 했다. 지적장애아를 둔 어머니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하루 중 유일한 자기만의 시간에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문학 강좌에 나온 것이다. 매시간 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함께 많이 울었다. 아이의 운동화를 빨며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 돼 본 적이 있었던가.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었던 것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평소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보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겠다 등의 대답을 기대했던 것인데 한 어머니가 “춤을 덩실덩실 추겠다”고 했다.그 이유를 묻자 자신이 먼저 죽으면 저 아이를 누가 돌보나 늘 걱정인데 같이 죽을 테니 그런 축복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평범한 내 아이가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고, 비뚤어지지 않고 커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행복이란 게 별것 아니었다. 신발 생각을 하다 보니 또 하나 떠오르는 신발이 있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드린 가죽 구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큰 마음 먹고 사드린 유명 메이커 제품이었다. 아버지는 그걸 아끼느라고 친척들 결혼식에나 신었기에 거의 새것과 다름없었다. 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을 그대로 집에서 치렀는데 4월 초 늦은 봄눈이 내려 계단참에 내놓았던 까만 구두에 밤새 눈이 소복이 쌓였다. 구두코에 내려앉은 눈은 바람에 다 날아가 버리고 발이 들어가는 움푹한 부분에만 하얗게 눈이 남아 있었다. 55세에 질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흰 눈이 그 구두를 신고 있는 거였다. 순결한 발.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을 발. 새 구두라는 게, 발가락도 좀 까지고 발뒤꿈치도 까지고 하면서 발과 구두가 서로 가장 편한 형태로 변형되면서 형태가 완성된다. 이리저리 부대끼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편해지는 그 과정이 세상살이와 많이 닮았다. 몇십 개의 구두를 갈아 신을 즈음엔 은퇴할 나이가 되고 그 구두를 신고 공원 벤치에 앉아 주변의 꽃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움직이는 시간보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진다. 마치 식물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노인들의 신발이 화분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원을 참배할 때 신었던 낡은 구두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장애인 사회적 기업에서 만들었다는, 밑창이 닳은 구두. 고통받는 자들, 사회적 약자들과 동행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뚜벅뚜벅 흔들림 없이 강건한 걸음이기를 기대해본다. 박설희 시인

[문화카페] 지역문화진흥법은 구현되고 있는가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되어 시행된 지도 3년이 흘렀다. 지역문화진흥법 제정으로 지역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 근거, 지역문화재단 등 지역문화지원 시스템에 대한 근거, 지역문화 관련예산 및 지자체 계획수립에 대한 근거는 마련되었으나 지역문화정책의 주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고 법적 구속력이 강하지 않아서 지역문화주체들 간의 혼란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또한 지역문화진흥기금 등 지역문화 예산 마련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의무가 미비하는 등 여러 한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3년 전 이 법이 제정된 목적과 배경을 다시 한 번 더 되새겨 다시금 가속화시켜 볼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진흥법을 제정하게 된 데에는 지역문화진흥을 통하여 지역민의 삶과 지역사회의 질을 향상시켜 지속 가능한 지역문화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를 매개로 사회통합, 치유, 소통의 사회를 구축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과 상생협력의 지역문화를 만들어 나가며, 지역 고유의 자원과 가치를 재인식하여 경제 발전에도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에는 몇 가지 사회적 환경변화가 배경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인구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특히 지방에서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속이 진행되고 있어 그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고령화 등에 의한 사회적 문제 및 비용 발생과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사회적 요구가 증대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 공동체적 가치 회복 및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는데 지역문화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지역문화의 경제적 가치 인식이 증대되고 있어 지역 고유의 문화가치와 정체성에 부합하는 문화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는 점 등이 그 배경이다. 결국 각 지역이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도시의 문화가치를 제고하고 사회 경쟁력을 높여 도시발전을 이룩하느냐 못하느냐, 즉 문화도시를 만들어내느냐 못하느냐가 성패를 결정짓게 된 것이다. 문화도시로 만들어가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공동체 문화를 중심으로 고유한 지역가치와 삶의 문화를 찾고 향유하는 작은 마을 단위 지역문화를 활성화하고,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문화자산의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재발견하여 지역문화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고, 지역 고유자원과 문화, 역사를 활용한 축제, 전통시장 등 지역경제 활성화 모델을 발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둘째,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문화를 접하고 향유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문화 활동을 활성화하고, 지역주민이 쉽게 향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수요자 기반의 맞춤형 문화 활동을 증가시켜 주어야 한다. 지역문화공간의 다변화, 다목적화, 가변화로 문화예술과 일상생활을 연결, 주민들이 보다 쉽게 문화와 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공원, 역, 자치센터, 골목, 건물 로비 등 일상공간의 문화공간화를 확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지역의 문화정책 수립과 사업추진을 지원하는 전문기관으로서 지역문화재단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아직도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되어 있지 않다면 설립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의 문화가치를 제고하고 활성화하는 문화주체로서 지방문화원의 위상 상승 및 역할을 강화해야한다. 지역문화의 진흥은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 지역문화진흥법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역의 문화 수준을 높이면 국민이 행복해지며, 문화를 매개로 사회가 통합되며, 더 나아가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등 문화가 지닌 부가 가치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김승국 경기도문화재위원

[문화카페] 국악을 총망라한 박물관 건립을

반만년 우리나라 역사에서 악(樂)은 백성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았으며, 국가의 대소사에도 항상 수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제례악 뿐 아니라 연례악과 군례악도 크게 발달하여 치세지음(治世知音)으로서 예악을 숭상했다. 그 중 예(禮)는 질서를 의미하며, 악(樂)은 화목과 조화를 상징한다. 우리조상들은 예악사상을 통해 질서와 조화가 상생하는 이상국가 구현을 꿈꿔왔다.조선시대 역대 왕들은 음악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음악은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대왕은 대동정신을 강조하며 백성이 함께 즐기자는 뜻을 담은 ‘여민락’을 직접 작곡하였고,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이 편하고 즐거우면 정치가 조화를 이룬다’는 선현들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우리민족 전통의 음악역사를 한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반만년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며 늘 함께 한 국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은 드문 실정이다. 서울의 국립국악박물관, 난계국악박물관, 예당국악박물관 등 손에 꼽힐 정도다. 국립국악박물관에서는 악기 전시는 물론 국악인과 국악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규모도 협소하고 인지도도 많이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편이다.한국의 생활문화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국립민속박물관처럼 국악을 특화한 국악박물관 건립은 우리문화의 자부심이 될 것이다. 명품악기 장인들이 만드는 국악기와 고악기를 전시하고, 악서, 사진, 그림 등 전시는 물론 음악회와 강연회, 체험관 운영 등으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대중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대중들을 향한 개방되고 전문화된 국악박물관이 필요하다.국민에게는 교육시설이 된다. 그 곳에서 선조들이 꽃 피운 음악과 그들의 예술인생에 녹아나오는 의식과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들에게는 오래되고 느리게 형성된 옛 것들이 자극과 감명을 안겨 줄 수도 있다.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형성한 명인명창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음악과 삶의 흔적이 담긴 사진과 지도, 문헌 등을 가상현실 뷰어에 담아 시공간을 뛰어넘어 감상할 수 있게 한다면 스마트세대들에게도 새로운 콘텐츠로 접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악박물관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등재된 한국의 19개 종목 중 국악연주가 포함된 11개 종목을 전시 및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또, 우리나라 민간신앙으로 수세기를 이어온 무속관도 큰 의미가 있다.국악 관련 도서들과 데이터베이스화된 자료를 활용하여 새로운 콘텐츠도 만들어낼 수 있다. 전통연주 의상 전시를 통해 의복과 복식의 변화와 흐름도 확인할 수 있다. 고 음반에서부터 현재 작곡된 국악CD에 이르기까지 전시 및 감상실도 운영하고, 아시아 악기 및 세계의 희귀악기도 함께 악기체험 프로그램 운영도 가능하다. 국악기와 의상체험을 비롯한 포토존 설치,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의 판소리 소재의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흥미 있는 테마파크 운영 등을 통해 수익사업도 가능하다. 이처럼 국악박물관은 역사적, 학술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교육의 다양화 및 국악의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문화산업의 일환으로서 충분한 경제적 가치를 갖고 있다. 오늘도 필자는 반만년 우리민족의 전통음악역사를 담을 수 있는 국악박물관, 현재 있는 전시관 수준을 넘어선 국악박물관의 건립을 꿈꾼다. 좀 더 빠른 시일 안에 설립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어떤 도시에 세워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국악박물관을 건립하는 지도자와 그 도시는 세계적으로 높은 문화적 수준을 드높일 것이며, 시민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풍요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단장

[문화카페] 몽상예찬

‘몽상’의 사전적 의미는 ‘꿈속의 생각 혹은 실현성 없는 헛된 생각’이다. 흔히 사람들이 ‘딴 생각’ 혹은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딴 생각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저절로 빠지게 되는 이 딴 생각 왜 하지 말라는 것인가? 몽상은 두서없이 일하는 뇌의 움직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며 전혀 상관없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이 만나서 엉뚱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것이 몽상이다. 몽상가는 시험 잘 보는 사람들에게만 호의적인 이 세상과 친하지 않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학벌, 돈, 명예 등을 쫒기 보다는 자기 생각에 빠지는 것을 좋아한다. 사방팔방으로 생각이 열린 몽상가들은 남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을 느끼고 미세한 움직임에도 반응한다. 나무에 말을 걸고 작은 풀벌레의 울음소리에도 대답하며 주변의 사물들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이들은 자신만의 별세계에 주소를 둔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몽상가는 입을 열지 않고 눈빛으로 상대와 통하는 사람이다. 어느 자리에 서든 신선한 기운으로 사람들을 잡아끄는 그의 눈빛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온 몸의 감각을 살아 움직이게 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다시 보게 한다. 때때로 우리는 엉뚱한 생각에 빠져든다.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면서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보면 목적한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한다.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려 하지 말지니 몽상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한다. 인간은 본시 몽상가로 태어난다. 몽상에는 기초 학습도 단계별 학습도 필요 없다.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시작하고 언제든지 끝낼 수 있다. 몽상의 질에 대해서 논하는 사람도 실적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다. 몽상을 시작하자. 움직이는 생각을 그냥 내버려두자. 몽상 없는 삶은 반쪽짜리 시시한 인생이다. 알고 보면 인간의 문명은 몽상이 현실화 된 것이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달과 화성을 탐사하고,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스마트 폰으로 대화하는 일은 딴생각을 일삼는 몽상가로부터 시작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도 그것을 만든 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 몽상계에서 얻어낸 것들이다. 이 시대는 몽상을 장려하지 않는다. 서열화 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의 몽상 본능은 도태된다. 열심히 일하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 같은 인간이 되기 쉽다. 몽상은 오늘날 우리가 잊고 지내는 세상이다.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곳이며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살아도 비좁지 않은 곳이다. 여기 사는 이들의 생각은 높디높은 벽을 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좁은 틈을 찾아 빠져나가 신천지로 향한다. 이들을 가두어 둘 수 있는 곳은 없다. 몽상하라! 몽상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 땅에서는 누구나 시인의 언어로 존재하는 것들을 빛나게 할 것이며 충만한 상상력으로 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이름을 부여할 것이다. 전원길 서양화가

[문화카페] 장르에 발목 잡힌 한국문학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은 지난해 10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잘 알려졌듯이 밥 딜런은 가수이자 작곡가, 시인에다 그림까지 그리는 화가이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예술가라 하겠다.그러나 만약 밥 딜런이 한국 땅에서 살았다면 과연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었을까 싶다. 모르면 몰라도 우선 한국문단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도 못했을 뿐더러 노벨문학상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게 틀림없다. 자기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작가를 누가 노벨문학상이라는 영예의 자리에까지 모셔갈 것인가. 한국문단은 자기 장르 울타리가 생각 외로 엄격한 문단이다. 시인이 소설을 쓰거나 소설가가 시를 쓰면 자기 영역에 들어온 침입자쯤으로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특히 아동문학가가 시를 쓰거나 소설을 썼다하면 이건 아예 무시를 당하기 딱 십상인 게 한국문단의 현실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시인이나 소설가가 동시나 동화를 썼다 하면 오히려 대서특필하여 광고까지 해준다. 장르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지난번 정부가 발표한 문학진흥법에도 이런 편견은 너무도 잘 드러나 있었다. 문학용어에 시·소설·수필·평론은 들어 있었으나 아동문학과 시조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시조는 그래도 시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으나 아동문학이란 장르는 엄연히 성인문학과는 구별되는 장르 아닌가. 별도의 장르로 인정해줘야 마땅하다. 외국에서는 시인이 소설을 쓰거나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써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동화작가가 소설을 쓰거나 희곡을 써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발표한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 장르의 넘나듦에는 관대하다. 그들의 약력에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동화작가 등이 범벅돼 있는 게 그 좋은 예이다. 자기 영역에 대한 애착은 물론 있어야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울타리를 높게 쳐놓고 아예 넘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장애가 될지언정 도움이 되진 않는다.톨스토이도 말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썼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바보 이반」같은 작품은 우리나라에까지도 알려진 명작이다. 그런가 하면 전 세계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까지도 환영받는「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쓴 미국의 셸 실버스타인은 극작가에, 시인에, 일러스트라이터에, 음악가로 활동을 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차제에 평소 안타깝게 생각해 온 작가가 있다. 일찍이「성황당」이란 작품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해 일생을 소설 쓰는 일로 살다 간 정비석이 바로 그 작가다. 그는 뛰어난 문장가로 수많은 작품을 썼음에도 「자유부인」같은 대중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한국문학에서 제외되고 있음은 퍽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의 「산정무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금강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의 글을 읽는다면 반은 간 거나 진배없다고 본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과의 경계도 엄격한 규제보다는 상호 교류를 통해 공동발전을 꾀하는 쪽으로 전환의 모색이 필요하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우리는 모두 세계시민이었다

‘세계시민’이라는 것은 출신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아마도 동서양이 연결된 그리스의 당시의 사회문화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을 것이다. 다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자연주의와 평화주의의 문화를 가졌던 우리의 조상들이 특히 다함께 잘 살았던 것 같다. 역사서에 나오는 신라시대의 처용이야기를 보아도 그렇고 국제사회였던 고려시대에 아랍인이나 페르시아 인들과의 이야기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터키를 전공하는 이희수 교수의 바실라의 전설을 보면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에 도피하여 와서 공주와 결혼하여 잘 살다가 돌아간다는 이야기인데 분명히 세계시민적인 정신의 향기가 감도는 이야기다. 오늘날은 세계의 사람들의 이동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빨라졌지만 어디 가서도 살아가기가 힘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그래서 세계시민이라는 말이 20세기에 새롭게 우리 세상이 지향하는 화두로서 나왔을 것이다. 세계시민이라는 말은 유네스코가 지난 세기 후반인 1974년에 처음 사용하여 국제사회의 상호 이해를 증진하자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이러한 생각이 유엔에서 세계의 교육에서 가장 우선적인 주제로 개발하고 다루도록 한 것은 바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의해서 2012년에 결정된 것이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아마도 나의 짐작으로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많은 세계의 복잡한 일 중에서 그러한 주제를 우선적으로 다루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바로 그 국제이해교육을 위한 유네스코 센타가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우리의 역사적 운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수 년 전에 유네스코 총회를 참관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때 한국동란 이후 유엔이 우리에게 만들어주었던 한국어로 된 자연교과서를 유네스코 빌딩의 홀에 전시하고 반기문 총장이 기증식을 하였다. 반기문 총장이나 나와 비슷한 세대들은 그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를 하였을 터인데 정말 감회가 새로운 순간이었다. 일제강점기을 빠져나오자마자 일어난 한국동란, 우리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세계의 일원임을 보여준 그 작은 자연교과서가 오늘날의 유네스코 정신의 상징이 된 것이다. 바로 세계시민정신이다. 인간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다양한 생각과 문화는 통일될 수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화합할 지언정 강제로 통일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의 다양성은 바로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미래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잘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과 고통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고통들은 바로 사람들의 다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또한 그 다름에 대해서 인내와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시민정신은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의 사람을 위해 필요한 한 가닥의 생각이자 배려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제는 수백만을 헤아리고 또한 초등학교 한반에 대다수가 소위 ‘다문화’학생인 곳도 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생계 및 의료 지원과 봉사 프로그램들이 정책적으로 그리고 사회의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상당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월남 파병부대 출신의 인사가 주도한 베트남 가족 초정 프로그램은 그들의 경제력으로 어찌할 수 없이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아픔을 위로하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이 또 다른 한편으로 필요한 것은 모습과 문화는 다르지만 세계시민정신이 실린 따뜻하고 편견 없는 시선일 것이다. 이제 우리 고유 철학과 문화를 살려서 경기를 세계시민정신의 글로발 메카가 될 수는 없는가? 배기동 석학교수·유네스코 국제이해교육원 이사회 의장

[문화카페] 변화의 속도와 책임

얼마 전 실버 문학 시간에 앨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 분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손자랑 카톡을 주고받던 중에 손자가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못 하겠다고 했더니 ‘할머니 그것도 못 해?’ 하면서 무시를 하더라고요. 이제 겨우 여덟 살 난 아이한테 무시당했다 생각하니 기가 막혔어요.” 요즘 아이들은 걷기 전부터 엄마 아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자라난다. 이들에게 휴대폰과 같은 기기는 무척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분이다. 그에 비해 노년 세대는 그러한 기기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그 많은 기능을 다 활용할 수도 없다.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퍼스널 컴퓨터를 가진 개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보화 사회의 발전 속도는 가히 경악할 만하다. 예전에는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세대 차이를 실감했는데 이제는 전자기기나 인터넷, 인공지능 등의 활용 면에서 세대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것 같다. 몇 세대에 걸쳐 이루어지던 변화들이 지금은 불과 한 세대만에 이루어지고 있다. 변화에 점점 가속이 붙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아이들을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고 생물학적 부모가 따로 없으며 사회에서의 계급적 역할에 따라 태아 때부터 영양분이나 산소 공급 등 성장환경이 조절되며 우울해지면 ‘소마’라고 하는 알약을 삼키면 되는 사회…. 1932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유토피아라고 믿는 사회가 사실은 디스토피아임을 일깨워준다. 그로부터 8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종교나 윤리 등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하지 않을 뿐 기술적으로는 소설 속 내용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이전에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1818년 출간된, 공상과학소설의 원조이자 고전격인 이 소설에는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한다. 부제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인 이 소설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이나 무모한 과학적 실험이 불러올지도 모르는 끔찍한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원리를 발견하려는 욕망에만 빠져 있을 뿐 자신의 작업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의 외모가 끔찍하다는 이유로 학대 방치해서 그 피조물을 복수심에 불타는 괴물로 만들었다. 생명과학과 생명 복제 기술이 사회적 합의나 정서를 훨씬 앞질러 가는 오늘날, 메리 셸리조차도 이백년 후에 인간의 과학이 이 정도로 발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의 원리를 찾아내겠다는 의지로 피조물을 창조해내기까지 이르렀으나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에서, 원자폭탄의 이론적 바탕이 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인류를 대량살상하는 데 쓰일 줄 몰랐다는 아인슈타인의 변명을 떠올리게 된다. 동물 복제가 가능하다면 당연히 인간복제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인공적인 합성 세포를 만드는 기술까지 나왔다고 한다. 쥐의 머리를 다른 쥐의 몸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이만큼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우리는 불과 수십 년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게 되었다. 과학자들 대부분은 프랑켄슈타인처럼 인류를 위한다는 대의와 희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과학은 어디로 향하는가. 지구호에 탄 우리가 가는 방향은 어디인가. 과학자들은 알고 있는 걸까. 박설희 시인

[문화카페] 차별화된 관광 콘텐츠, 지역 무형유산으로

전국을 통틀어 경기도는 역사적으로 정치·경제·군사·문화의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경기도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수도인 서울특별시와 인천광역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황해도, 동쪽으로는 강원도, 남쪽 및 남동쪽으로 충청도에 각각 접하는 지역으로써 서쪽으로는 서해까지 포함하고 있다.따라서 경기도는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북과 남을 포괄하는 지역이요, 일찍이 서해를 통하여 중국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선진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발전적 토대를 이룰 수 있었기에 경기도가 갖는 문화적 잠재력 또한 크다고 볼 수 있다. 경기도에는 유·무형의 풍부한 역사적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11개의 국보, 165개의 보물, 69개소의 사적, 4곳의 명승, 19개의 천연기념물, 12종목의 국가무형문화재, 53종목의 경기도 무형문화재, 255개의 경기도 유형문화재, 22개의 중요민속문화재 등을 보유하고 있다. 가히 문화유산의 보고(寶庫) 지역이다. 최근 들어 경기도는 중국의 관광객 감축과 한류금지령으로 중국관광객 유치에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내기 위하여 해외의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개별 자유여행객을 유치에 힘을 쏟는 등 해외관광객 유치 다변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유럽과 미주에서 오는 올림픽 참관객들이 경기도를 관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하여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의 관광운영 실태를 살펴보면 경기도가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문화유산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원의 예를 들어보자. 수원시는 미학적으로 뛰어난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답게 20년 가까이 관광산업에 공을 들여온 도시이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원시가 관광산업에 성공한 도시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수원 화성행궁에 도착하여 행궁을 둘러보고 행궁 앞에서 펼쳐지는 무예 24기 상설시범 공연을 보는데 1시간 반이면 족하다. 행궁을 둘러본 후에 행궁 앞에서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화성어차를 타고 팔달문, 수원화성박물관, 연무대, 화홍문, 화서문, 화홍문, 방화수류정과 용연, 화성장대, 동장대, 창룡문,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서북각루를 둘러보는데 반나절이면 족하다. 그리고 공방거리와 통닭거리, 전통시장인 남문시장을 둘러보는데 반나절 정도가 걸려 현재의 콘텐츠로는 수원 관광에 하루면 충분하다. 관광산업이 성공하려면 하루에 뚝딱 보고 떠나는 관광이 아니라 체류형 관광이 되어야 한다. 수원의 경우 체류형 관광이 되기 위해서는 볼거리나 즐길거리, 먹거리가 현재보다 더욱 풍성해져야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수원의 관광 콘텐츠가 유형유산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무형유산 콘텐츠가 빈약하다. 수원사람들은 수원이 무형유산의 엄청난 보고였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수원은 조선조 광대들을 관장하던 화성재인청이 있던 곳이고 화성재인청의 예술이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57호 경기민요, 제92호 태평무, 제98호 경기도 도당굿,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승무와 살풀이춤은 화성재인청의 광대들이 보유하고 있었던 예능이었다. 그밖에도 화성재인청 광대들이 보유하고 있던 예능들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원시는 이러한 무형유산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수원시가 역사·문화도시임을 천명하고 있지만 정작 이러한 전통 무형유산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상설 극장도, 시립 전통공연예술단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수원시만이 아니라 경기도 전역에 걸치고 있다. 경기도의 각 지자체는 자기 지역만이 갖고 있는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문화유산을 발굴·조사하여 상설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할 것이다. 어디에 가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반드시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차별화되고 특성화된 상설 공연과 전시가 이루어져야한다. 김승국 경기도문화재위원

[문화카페] 문재인 정부는 ‘국악쿼터제’를 실시하라

국악의 예술적 가치와 우수성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19개 종목 중 국악은 ‘종묘제례악’, ‘판소리’, ‘가곡’, ‘아리랑’, ‘농악’ 등 5개(26.3%)를 차지하며, 이외에도 ‘영산재’ 등 6개 종목에 국악연주가 포함되어 있어 포괄적으로 보면 11개(57.8%)종목에서 국악이 중요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국악의 대중화, 생활화를 모토로 하여 다양한 국악진흥정책을 펼쳐왔다.정책 시행이후 30여 년이 다 되어가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대중화는커녕 오히려 외면당하는 현실이 오늘날 국악의 현주소다. 대중화라는 기치는 높았으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묵은 과제, 국악의 대중화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로서 ‘국악쿼터제’를 제안한다. 한국 영화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스크린쿼터제’가 있다. 극장 상영일수의 일정기준, 일수 이상의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다. 영화진흥법상 ‘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에 의해 제도화되어 있다. 2017년 현재 연간 73일(1년의 20%) 이상 한국영화 상영을 의무상영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최소한의 장치가 있어 그나마도 한국영화계는 외국영화의 무차별적인 시장잠식을 견제할 수 있다. 이제는 ‘국악쿼터제’를 도입해야 할 때다. 국악이 우리의 삶 속에서 생활음악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구호로서 주장하는 것은 한시적인 인식개선 효과는 있으나 지속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초고속 근대화를 거치면서 단절된 국악을 다시 이 시대에 주인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은 있다. 하나는 제도교육에 국악비중을 높여 실제적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상파 방송에서 국악을 많이 내보내는 것이다. 다행히 학교교육에서 국악을 성실하게 배우고 정상화 시키려는 노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일상에서 접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일 것이다. 일상에서 국악을 접하는 방법은 바로 방송매체를 통하는 것이다. 많이 듣고, 보고, 익숙해져야 관심이 가고 대중화가 이루어질 것 아닌가. 프랑스는 1995년 모든 라디오 방송 음악의 40%를 프랑스 샹송으로 편성하는 쿼터제를 실시한 결과 자국민에 문화자부심이 높아지고 세계 팝시장에서도 샹송의 산업화가 빠르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하지만 우리나라는 국악의 편성비율은 매우 미약하며 그나마도 자정을 넘기거나 시청률이 가장 낮은 시간대에 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전통음악 시장의 생산과 소비시장은 위축되고, 이로 인한 음반 및 공연 제작과 유통시스템 등 관련 산업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는 대중음악 쿼터제가 있다. 대중음악에 보장된 쿼터제는 연간 전체 방영시간의 50~80%로 ‘스크린쿼터제’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리나라 방송법은 제71조는 ‘전체 프로그램 중 국내에서 제작된 방송프로그램을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 이상 편성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대중가요의 방송분량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자체 경쟁력 강화로 이어짐으로써 현재의 대중가요 발전에 상당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자국문화와 콘텐츠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에 정작 국악은 빠져 있다. 전체 음악의 20%(10곡 중 2곡)만이라도 의무적으로 국악에 할당한다면 국악 대중화와 경쟁력 강화에 어떠한 정책보다 큰 기여가 될 것이다. ‘국악쿼터제’는 10여 년 전 노무현정부 때 전통예술 활성화 정책으로 이미 내놓았으며, 관계기관 협의와 공청회도 모두 거쳤다.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정부는 국악이 우리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인식부터 출발하길 바란다. ‘국악쿼터제’야 말로 우리의 음악적 고유성 즉 전통을 회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본다.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단장

[문화카페] 녹색 게릴라

오늘날 지구촌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을 위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서는 그 근본적인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긴장 관계를 미술로 풀어내는 2017미술농장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역예술활동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연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작업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이 참가했다. 대안미술공간 소나무에서 열린 이번 전시의 주제는 ‘녹색 게릴라’다. 자연계를 상징하는 ‘녹색’과 현대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을 상징하는 ‘게릴라’의 합성어이다. 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은 적진 속 게릴라의 시선으로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깨끗하게 다듬어진 과일과 채소의 씨를 받아 싹을 틔웠다. 작가는 상품화된 생명들을 ‘자라나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전원길은 새로 개설된 콘크리트 도로를 축소하여 온실 안에 모형으로 설치하였다. 콘크리트 도로가 주변의 자연을 더욱 쾌적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온실에 전시된 두 사람의 작품은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매일 새로워진다. 마틴 밀러(Martin Miller)는 닭이 선택한 단어를 조합하여 예언적 텍스트를 만들었다. 닭이 인간의 행운을 결정해 주는 존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반영한 작업이다. 임승균은 안성천에 임신 테스트기를 담그는 엉뚱한 실험을 하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을 감시, 수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텍스트와 행위를 작업의 중요한 전달 매체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의 작업은 예술적 상상력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게 한다. 권오열과 최예문은 잠깐 스치는 일상의 장면과 삶의 한 부분을 예술적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다. 권오열은 너른 목초 밭에 쌓아 올린 행사용 의자와 무자비하게 가지가 잘려나간 가로수를 찍은 사진작업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최예문은 투명 용기에 잡초를 담아 높이 쌓아올렸다. 잡초 뽑기라는 무심한 행위가 풀들을 위한 기념비로 되살아났다. 자연과 일상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녹색게릴라들은 살아있는 자연 안으로 그들의 작업을 확장하고 있다. 어쩌면 이들은 우리의 몸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비밀스런 감각을 꺼내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연의 숨소리를 듣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지구는 다시 그 왕성한 생명력을 회복할 것이다. ‘녹색 게릴라’들의 은밀하면서도 당돌한 움직임이 현대미술의 층위를 보다 두껍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상생의 미학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전원길 서양화가

[문화카페] 분단문학, 통일문학

휴전선, 군사분계선에 근무하는 국군 상등병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철조망을 따라 경계근무에 나선다. 어느 날 철조망 너머 북쪽 땅에서 햇빛을 받아 반사하고 있는 작은 돌멩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그 돌멩이가 하필이면 어머니의 얽은 얼굴을 닮았다.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철조망 너머로 손을 뻗는다. 그때 등 뒤에서 권총에 장진하는 소리가 들린다.소대장이 휴전협정 위반임을 알린 것이다. 그때 북쪽 병사가 나의 뜻을 알기라도 한 듯 그 돌멩이를 집어 철조망 사이로 건네준다. 그것도 휴전협정을 한 치도 위반하지 않은 채로. 나는 어머니의 얽은 얼굴을 닮은 그 돌멩이를 한시도 놓지 않은 채 애지중지 여기며 가지고 논다. 휴가를 얻어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낭패한 일을 당한다. 혹여 건빵이라도 있나 하고 삼촌의 가방을 뒤지던 조카 녀석이 기대와는 달리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돌멩이를 보자 화가 난 나머지 집 앞 시궁창에 던져버린다. 깜짝 놀란 나는 바지를 걷고 들어가 시궁창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마침내 돌멩이를 찾아들고 나온다. 구경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미친 사람이구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짓는다. 휴가를 마치고 귀대 길에 오른 나는 기차가 떠나기 전 배웅 나온 여동생의 손에 그 돌멩이를 쥐어준다. 그러고는 기차 의자에 등을 묻은 채 곤한 잠에 빠져든다. 유현종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꼽히는 뜻 있을 수 없는 이 돌멩이란 단편소설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하찮은 돌멩이를 통해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함과 아울러 통일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전후문학의 백미라 할만하다. 현충일과 한국전쟁이 함께 들어 있는 6월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완서는 오래 전 어느 해 6월, 한 지면에 ‘상처는 아물되 가끔 덧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지난날을 잊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백 번 옳은 얘기다. 한국전쟁은 ‘휴전’이라는 그럴 듯한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다. 끄집어내기 싫어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그날의 이야기다.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 역시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북에 고향을 두고 남하한 회계사 송철호의 노모는 지나친 향수병으로 하여 정신이상까지 일으킨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벽을 항해 누운 채 노인네답지 않은 카랑카랑한 음성으로 “가자!”만을 외친다.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지난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요즘 세대야 6ㆍ25 한국전쟁을 알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관없는’ 일쯤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 또한 이미 낡은 과거가 돼버렸다고 해서 케케묵은 이야기쯤으로 외면해서도 안 될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직도 가장 싱싱하고 매력적인 소재가 바로 저 아문 듯해 보이는 ‘상처’가 아닐까 싶다. 단편소설 수난 2대는 하근찬의 출세작이다. 대동아전쟁에 끌려가 팔 하나를 잃은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나가 다리 하나를 잃고 돌아온 아들을 등에 업고 냇가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을 떼어 다리를 무사히 건넌다. 소설 속의 부자는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이다. 전쟁이라곤 꿈에서조차 겪어보지 못한 요즘의 작가들에게 왠지 ‘통일문학’을 주문해보고 싶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경기도에서 ‘미완의 제국’ 고려를 생각한다

내년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이 되는 해란다. 우리나라 왕조의 역사 중에서 일반인들이 비교적 적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바로 고려로 생각된다. 이것은 아마도 왕조의 수도가 남한 지역에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몇 해 전에 고려 수도인 개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때만 해도 남한 지역인 연천이나 강화에 있는 고려시대의 중요한 왕실 관련 유적들은 제외되었던 것에서도 그 관심도를 알 수가 있다. 아마도 내년이 고려의 역사를 재조명하게 되는 대단히 중요한 해가 되어야 할 듯싶다. 특히 경기도로서는 개성이 바로 경기도에 속한다는 점에서 북한지역이지만 그 의의를 새로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고려를 되새겨야 하는 것은 단지 경기도민 만이 아닐 것이다. 고려는 오늘날 외국인이 한국을 부를 때의 코리아라는 말의 그 어원이다. 오늘날을 글로벌시대라고 하지만 이 때야 말로 한반도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국에서 탈피하기 위한 원대한 꿈과 노력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다.바로 황제라고 칭하기도 하였고 중국과 맞대응하였던 고구려를 이어받으려는 정신이 드높았던 시대였던 것이고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오늘날 현전하고 있는 역사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편찬된 시기이고 또한 단군신화가 널리 소개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그리고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가장 창조적인 문화유산인 금속활자나 대장경 등을 만들어내었다. 고려불화를 보면 그 종교적 예술적으로 강한 정신이 꼿꼿이 살아 있고 아마도 당대 세계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성을 보여준다. 또 한편으로 일제시기의 유행가이었던 ‘황성옛터’의 노래의 애수의 노래 가락에서 느끼듯이 고려는 바로 일제치하의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우리의 가슴을 파고 들었던 것이다. 몇 해 전에 남북으로 공동으로 발굴한 만월대를 방문하였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작은 개울 위에 놓인 다리를 넘어가서 바로 마주친 33단의 돌계단을 오르면서 서서히 나타나는 누운 임산부의 모습을 한 송악산과 그 아래에 펼쳐지는 옛날 궁궐터는 흔히 볼 수 없는 장관이었고 황제의 궁궐이라는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약간을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사신들이 고려가 높다고 느끼도록 만들었을 것인데 바로 세계의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의 궁전이었던 페르세폴리스의 입구 계단을 오르는 사신들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역사기록에도 보이듯이 중국 사신들이 궁궐이 너무 호화롭다는 등의 기분 나쁜 표현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조선의 역사의 중심터가 오늘날의 서울이었다면 고려의 정신은 바로 인천에 속하는 강화를 포함하여 오늘날 경기도에 퍼져있다. 강화는 바로 백 년간 고려왕도였고 대장경이 조판된 곳이기도 한 것을 잘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 연천의 경순왕릉도 신라왕의 무덤이지만 바로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의 적나나하게 운명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며 바로 이웃한 숭의전 역시 고려개국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남 이성 산성 아래에 나타나는 도시 유적은 바로 오늘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왕씨 성의 유래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용인 수지에 있는 골짜기 속의 서봉사라는 절에서도 고려 왕실의 힘을 엿볼 수가 있다. 왕실에서 출가한 현오국사비가 남아 있고 고려불교의 한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안산 대부도 등과 같은 경기만 해안을 따라 남아 있는 항몽 삼별초의 유적 등등, 경기도의 곳곳에 고려의 정신이 묻혀 있다. 그래서 경기도는 고려 정신의 계승자라고 하여도 당연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 같다. 고려 1100년을 맞이하여 남북통일 등의 새로운 국운을 일으킬 문화소재로서 경기도가 고려의 정신과 그 문화계승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배기동 한양대학교 석학교수·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문화카페] 이야기는 자란다

지금 서울에선 서울국제문학포럼이 열리고 있다. 세계문학의 중심에 있는 문호들과 작가들이 모여 오늘날 문학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데 행사 참여자 중에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벨라루스 출신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있다. 그는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낳은 작가로 유명하다. 논픽션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그의 글에는 전쟁과 핵에 의해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들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전쟁을 목격한 전쟁고아들을 인터뷰한 책 마지막 목격자들을 차례로 펴냈다. 당시 아프간전쟁이 터진 상황이었고 전장에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프간전쟁의 참상을 다룬 아연 소년들을 쓰게 되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썼고, 소련 해체 이후에 세컨드핸드 타임을 썼다.(생략) 올해가 러시아혁명 100주년인데, 나는 그 100년의 증인이고자 했다.”(한겨레기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그는 체르노빌 이후 새 역사가 시작되었고 이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일 뿐 아니라 재난의 역사가 될 것이라며 핵의 위험성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그는 국가가 이용하고 죽인 작은 사람들의 삶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영웅이 아닌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증언으로 가득 찬 그의 글에는 붉은 울음들이 가득 차 있고 마치 현장에 가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이 느껴졌다. 핍진하게 다가오는 목소리들을 읽다가 며칠 전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김소형(37) 씨는 추모글을 읽던 도중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의 아버지는 전남 완도 수협에서 근무하다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왔다가 목숨을 잃었다. “철없었을 때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와 엄마는 지금도 참 행복하게 살아계셨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번도 당신을 보지 못한 소녀가 이제 당신보다 더 커버린 나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을 이렇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당신이 제게 사랑이었음을, 당신을 비롯한 37년 전의 모든 아버지들이 우리가 행복하게 걸어가는 내일의 밝은 길을 열어주셨음을…사랑합니다, 아버지.” 기념식에 참석했던 대통령과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던 숱한 사람들을 울린 이 추모사를 들으면서 우리 현대사를 생각해보았다. 일제식민지시대와 4·3, 6·25와 5·18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사람들이 시작한 전쟁과 비극 중에서 희생된 것은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작은 사람’들이었다. 역사가 소수 영웅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이야기라면 그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숱한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는 누가 기록하고 후세에 전해야 하는 걸까? 고은 시인의 만인보가 새삼 소중하게 다가오는 까닭도 이때문이다. 묵묵히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이름 없는 사람들이 좀 더 기억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박설희시인

[문화카페] 문화산업의 진흥과 발전 위한 기반 자원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대선 과정에서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출범시켜야 하는 과제가 신임 대통령에게 맡겨졌다. 개인적으로 전통예술계에 속해있는 사람으로서 전통예술의 발전을 위한 신임 대통령의 관심과 역할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지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천명하였던 문화융성이 몇몇 사람들의 국정농단에 의하여 퇴색되었지만 그 기본정신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전통문화에 국한하여 살펴본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담은 국가브랜드를 개발할 것이며, 우리의 전통, 세계기록유산 등 자랑스러운 문화를 재조명하고 세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아리랑 등 주요 문화유산을 활용해 한국을 대표하는 킬러 콘텐츠를 만드는 작업을 병행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 설정이었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전통문화를 재발견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전통공연예술자원은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 유산이며, 한류의 근간이 되는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 문화의 DNA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정수인 전통공연예술이 세계 공연예술시장 진출을 논하기에 앞서, 국내에서도 각광받는 공연예술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고민이 깊어진다. 올해도 공연예술 시장에서 전통공연예술계가 활성화할 것 같지는 않다. 전통공연예술에 몸담고 있는 예술인 중 상당수는 국가의 지원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정부는 대한민국 헌법 제 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에 의거 정부 수립 이후 꾸준하게 전통분야에서 공연예술분야도 함께 보존하고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전통공연예술 분야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타 장르에 비하여 결코 적지 않다. 문예진흥기금의 공연예술 지원에 있어서도 전통공연예술에 대한 지원은 클래식 공연예술을 능가하며, 연극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상주단체, 학교문화예술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전통공연예술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 또한 적지 않다. 또한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유산 지정 및 보존과 전승을 위한 지원에 있어서도 전통공연예술은 전국단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전통공연예술의 진흥을 위해서 정부는 1994년 ‘전통공연예술진흥을 위한 발전계획’을 제시하였고, 2006년에 ‘전통예술 활성화 방안 비전 2010’을 제시하여 그 결과 4곳의 지방국악원, 전국 방송권의 국악방송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설립되었으며, 기존의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외에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가 설립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내었으며 당시에 수립한 정책적 기조가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전통공연예술은 아직도 과거의 예술로 치부된다. 전통공연예술이 오늘날의 공연예술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창작인력과 무대전문인력, 그리고 기획인력의 빈곤’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교육과 직결된다. 제도권내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전통공연예술계의 지속적인 재교육 체계의 구축도 중요하다. 우선 미래 세계 공연예술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중고등 및 대학과정의 국립학교의 전반적인 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대한 점검과 개혁이 시급하다. 물론 전문 인력양성에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일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통공연예술계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며, 부처를 초월한 범정부 차원의 추진계획을 치밀하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 김승국 경기도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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