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잠시 쉬어가는 강의노트 이야기

2024학년도 봄 학기가 시작됐다. 강의계획을 짜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나의 강의를 수강할 학생들을 만나는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오랫동안 강의를 하면서 최근에는 새로운 사고와 환경에서 자라온 아들과 딸 같은 자유분방한 대학생들에게 세대 차이를 뛰어넘어 어떻게 전공 강의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곤 한다. 특히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오늘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중심의 정보를 획득하고 있는 세대들과는 달리 나는 화장실에서 종이신문을 통해 얻은 좋은 정보를 스크랩해 전공강의 중 학생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강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전공지식도 중요하지만 우리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 대학생들이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교양지식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리한 ‘잠시 쉬어가는 강의노트의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공부’ 이야기다. “공부란 자신을 다스리고 세상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젊은 대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는 성장 과정에서 오로지 대학 입시에 매달려 내가 왜 공부를 하는지 모르는 생활을 해 왔다. 그러나 성인이 된 대학생들은 본인의 의지에 따라 진정 왜 내가 공부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정약용 선생이 전한 공부 명언을 적은 연구실의 차 테이블 위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를 바라보는 제자들이 공부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면서 배움에 정진하기를 바라 본다. 두 번째 이야기,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장무상망(長毋相忘)’ 이야기다. 선생의 제자 이상적은 제주에서 유배생활하는 스승을 위해 중국에서 구한 희귀한 책을 보내줬다. 추사 선생은 그 고마움으로 ‘세한도’를 그려 선물하면서 우측 하단에 장무상망, 오래도록 우리 서로 잊지 말자라는 유인을 찍었다. 스승과 제자 관계 설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제자들과 함께 두 분의 마음 씀을 공유하고 싶다. 추사 선생이 유배된 제주 대정의 추사관에서 한정 복제본을 본 후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0년 11월 ‘세한(歲寒)과 평안(平安)전’에서 국보 180호, 길이 15m의 원본 ‘세한도’를 직접 본 감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세 번째 이야기,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이야기다. 우리는 오랜 기간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잠시 멈춰 버린 삶의 소중함과 시간의 가치를 알게 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간’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태초의 신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준 시간인 크로노스 시간’과 ‘사람들에게 각각의 의미가 적용된 주관적 시간인 카이로스 시간’,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했다. 결국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카이로스’로 이해하는 사람은 삶의 권태와 단조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하루라는 생각으로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만이 기회와 행운을 얻을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은 여전히 젊고 할 일은 많다. 그러니 순간 순간 의미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 미래를 잘 설계하기를 소망한다.

[문화카페] 이제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전문공간이 필요하다

2000년대 초반 이후로 꾸준히 지역의 문화예술회관이 지어지고, 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지속적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웬만한 새로운 공간이 조성되더라도 그렇게 주목을 못 받는 정도가 됐다. 그동안 지역에 지어진 공간들은 그 형태가 비슷해 500~900석 규모의 중·대극장, 200~300석 규모의 소극장, 그리고 전시실, 연습실 등 그 규모와 쓰임새 등이 대동소이해 나라 전체적으로는 관심을 받지 못할 경우가 많다. 지금은 새로운 공간을 조성하는 것보다 어떻게 운영을 잘할 것인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특색을 살려 운영하는가가 중요한 시대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정확히 목적 지향적이며, 그 특징을 살려 운영되고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적어도 문화예술공간에 한해서는 아직 계몽적이고, 디테일보다는 총론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든다. 최근 기회가 돼 유럽 몇 곳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방문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곳도 있었고 비교적 최근에 문을 연 곳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보니 ‘결과’보다는 과정 중심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청소년 극장인 더블린의 디아크(The Ark) 극장도 공연장 자체는 규모가 큰 것도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워크숍 공간과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잘 갖춰져 있고 활용도가 높아 보였다. 이런 공간에서 ‘어린이위원회’를 열어 아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또 극장의 백스테이지를 열면 외부 광장과 바로 통해 열린 극장으로서 야외공연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또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파세 아비에르토(Espace Abierto)라는, 우리말로는 ‘열린공간’을 뜻하는 어린이·청소년 공간은 그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 및 게임 공간과 가족들을 위한 카페, 워크숍, 강의실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작은 공연장도 가지고 있었는데 상당히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공연들도 프로그램되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워크숍 공간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철학 워크숍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토론뿐 아니라 그림 등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어린이·청소년 극장이나 공간은 단순 공연만이 아닌 다양한 활동, 다양한 장르가 융합돼 함께 이뤄지도록 설계되고 운영돼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이런 곳이 없는 것 같다. 이렇듯 앞으로는 장르적으로 전문적인 공간이 더 많이 조성돼 그 공간의 특징들을 잘 드러내면 좋을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장르의 전문공간이 늘어나 지역문화뿐 아니라 해당 장르를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무용 전문공간이나 인형극 또는 오브제 전문극장, 서커스 또는 피지컬 움직임 중심의 공연 공간, 어린이·청소년 전용문화예술 공간 등이 없거나 부족한 실정인데 이는 우리가 진정한 문화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없어선 안 될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카페] K팝∙K아트의 콜라보, 예술인의 무경계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예술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문화예술진흥법이나 저작권법, 예술인복지법,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같은 문화예술 관련 주요 법령에서도 예술인에 관한 구체적 정의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예술인복지법에서 ‘예술활동을 업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자로서 (중략) 창작, 실연,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는 포괄적 개념의 예술인 정의가 존재한다. 이러한 예술인복지법상 예술인 정의를 준용한다면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분야를 굳이 분리해 접근할 이유가 없어진다. 창작, 실연 등의 활동은 순수예술인과 대중예술인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성격이 아닌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접점을 형성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문화예술 현장에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교집합, 범위를 좁히자면 K팝과 K아트(미술)의 콜라보 현상이 명징하게 목도된다. 최근 블랙핑크 등 유명 아이돌그룹이 소속된 메이저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가 자회사 YG플러스를 통해 미술 분야에 진출한 소식은 단발성 화제로만 보기 어렵다. 대중음악 관련 지식재산권(IP) 사업에 주력해 온 YG플러스가 도예, 가구 디자인, 회화, 공예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스타 작가 8명을 한데 모아 서울 한남동에서 연 미술 기획전시회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순수예술 작가의 매니지먼트에 나선 첫 사례로 기록된다.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혀 작품에 열광하는 팬들과 적극 소통하려는 작가와 IP 상품화 노하우 및 대중음악 아티스트 매지니먼트 경험을 미술에 접목하려는 메이저 연예기획사의 희망 사항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오래전부터 유명 대중예술인이 순수예술 작품을 컬렉션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YG식의 K팝(대중예술)과 K아트(순수예술) 콜라보는 어쩌면 늦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BTS 멤버 RM이 윤형근, 손상기 등의 작품을 컬렉션하기 이전에 YG 소속 아티스트였던 탑과 태양은 이우환, 김환기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컬렉션한 건 K팝과 K아트의 콜라보, 즉 예술인의 무경계를 알리는 예고편이었을 수 있다. 이번 사례가 던진 함의는 묵직하다. 메이저 연예기획사가 음반 발매를 앞두고 공개한 티저 영상처럼 전시를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작가들이 홈파티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의 영상을 제작한 건 기존 미술 전시 풍경을 훌쩍 뛰어넘는다. 대중예술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노하우가 고스란히 미술 작가 전시에 녹아든 것, 그것이 본질이다. 유명 연예기획사가 주도한 K팝과 K아트의 콜라보는 유행이 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짚어보자. 신진 작가들이 설 자리는? 상업적 성공이 보장된 유명 작가 외에 미술 시장의 미래가 될 수 있는 신진 작가의 매니지먼트에 인색해선 안 된다.

[문화카페]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의 대처

“안녕하세요. 기호 ○○번입니다.” 아침 출근시간 힘찬 인사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큼지막한 표지판을 들고 함박미소의 출마 후보자 둘이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운전자와 보행자들에게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침저녁 공중파 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도 4월에 있을 제22대 국회의원선거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민의를 대변하고 대한민국의 의정을 새롭게 이끌 국회의원을 뽑는 국가의 중차대한 의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당마다 대책을 만들고 전략을 수립하고 초당적 노력을 기울여 새로운 지역 발전과 더 나은 지역민의 삶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공약을 내걸고 사생결단으로 승부를 가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보며 짐작하고 예상한다. 달콤하게 포장된 새로움의 공약은 책임 있게 지켜질 것이 아닐 수 있고 어쩌면 우리들의 기대감을 증폭할 홍보 수단과 득표를 위한 공염불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만큼 새로움은 시도조차 어렵고 현실로 만들어지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며 그렇기에 새로움의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회사와 대학에서 디자인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30년 이상 다양한 실무 경험을 했지만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면 두렵고 어렵다. 어렸을 적 느꼈던 하얀 도화지의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어느 순간 황무지의 개척과 같은 막막함으로 먼저 다가오게 됐다. 그만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적응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그 자체의 무거움과 어려움이 본질이라 생각된다. 대학으로 옮겨와 연구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연구책임자인 나의 판단과 결정하에 최종 결과물을 제시해야함은 물론이고 매번, 매순간 책임 있는 판단과 결정이 쌓여 결과물이 완성된다는 것을 잘 알게 됐기에 처음 흰 도화지와 같은 어려운 시작이 시간상에서 최초 지점의 의미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지속적이며 끝없는 새로운 시작점으로 다시 생겨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두렵고 어렵다. 예전 지역의 도시 브랜드를 연구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먼저 그 지역의 시각상징물 현황을 조사하고 분석한 후 다양한 의미요소와 시각요소를 진단하고 평가한 결과 기존의 시각상징으로 형성된 자산은 아깝지만 제거하고 새로운 시각상징물을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연구 결론과 함께 결정권자에게 발표를 통해 디자인 개발이 필요함을 합의했다. 연구팀을 재구성하고 수개월의 연구기간을 거쳐 최종 디자인 결과물을 도출하며 지나왔던 판단과 결정들의 순간은 연구원 누군가가 함께할 수도, 대신 할 수도 없는 온전한 ‘나’의 몫이며 책임이었다. 그 책임의 순간들을 홀로 연구의 논리와 통찰력으로 결과를 만들어 마무리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결정과 그에 대한 두려움은 지역을 이끌고 있었던 결정권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주민의 날에 맞춰 브랜드 선포를 기획하고 결정권가 직접 깃발을 흔들며 새로운 시각상징물에 대한 선포식을 진행하려 했지만 발표 일주일 전 담당자를 통해 새로운 시각상징에 대한 설명과 진행을 연구책임자인 나에게 위임하며 당신은 책임지기를 보류했다는 것을 알려 왔다. 잠깐의 고민 후 나 역시 책임지지 않았고 선포식은 취소됐다. 지금도 역시 지역의 도시 브랜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아득함과 두려움이 문득 문득 밀려온다. 만약 그 당시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을 새로움을 맞이하는 기쁨에 반드시 선행돼야만 하는 결정권자의 의무와 책임의식으로 생각하고 나라도 책임졌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사무친다. 하지만 새로움은 어렵고 벗어나고픈 책임감을 동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새로움을 당당히 바라보며 앞으로도 새로움을 감당할 것임을 예상하는 것은 그 모든 두려움을 상쇄할 만큼 새로움에 대한 벅찬 기대와 흥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년 22대 총선에서는 새로움을 기대하는 많은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책임 있는 의원이 선출돼 새로운 대한민국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길 기대해본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책임자를 기다려본다.

[문화카페]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내려놓기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Things to Come)’(2016년)은 파리의 한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라는 중년 여성의 삶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던 이자벨 위페르의 농익은 연기가 돋보인다. 한 남자의 아내, 두 자녀의 엄마, 홀어머니의 딸로 살아가는 나탈리는 자신의 직업에도 언제나 진심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갑작스러운 발언과 어머니의 죽음 등 그녀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일상의 균열을 대하는 나탈리의 태도에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그 시점에서 바라보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담담히 수용하며,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일상에 최선을 다한다. 변해 버린 남편과도, 급진적 사상을 표하는 제자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타자의 생각이나 주장의 다름을 받아들이되 나탈리는 묵묵히 자신을 지켜나갈 뿐이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희망을 품고 무언가를 시작하려 한다. 2024년이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도 훌쩍 지나가고 있다. 계획했던 목표를 실행하지 못하고 작심삼일을 일삼는 자신을 바라보며, 올해 남은 날들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나탈리처럼, ‘미래의 다가오는 것들’이 아니라 ‘현재의 주어진 것들’에 시선을 돌려 보자. 그것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나를 둘러싼 모든 존재의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와 그 모든 것이 지금-여기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롭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은 찬란한 봄의 전령들이다. 사계절 모두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연초록 잎새의 싱그러움과 살갗을 스치는 산들바람의 그 포근함은 봄의 진정한 선물임에 분명하다. 여기에 더해 루드비히 울란트의 시를 가곡으로 만든 프란츠 슈베르트의 ‘봄의 신앙’을 살포시 얹어보면 좋겠다. “...오 신선한 향기, 오 새로운 소리! 그러니 가엾은 마음아, 두려워 말아라! 이젠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달라지리라....”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 가사처럼 다가올 봄의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겨울과 봄은 서로를 이어주기에 겨울은 진정한 겨울이 되고 봄은 비로소 봄이 된다. 우리의 삶 역시 겨울의 차가움과 봄의 따스함이 공존한다. 슬픔과 기쁨, 고통과 환희, 절망과 용기는 대조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겨울과 봄이 그러하듯 이들이 얽혀 있기에 한 인간의 인생도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두 계절이 교차하는 이 모든 찰나의 순간, 모든 존재가 드러나는 봄의 찬란함을 놓치지 말기를. 그리고 그 역동적 생동감을 움트게 해준 겨울의 인내를 찬미할 수 있기를.

[문화카페]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인기 드라마 ‘카지노’의 배경이 됐던 필리핀 ‘오카다 마닐라’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즐기는 국내외 가족단위 관광객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복합 카지노 리조트 산업을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의 복합 카지노 리조트는 2000년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강원랜드’를 시작으로 동북아 최초 복합 카지노 리조트인 ‘파라다이스 시티’가 2018년 그랜드 오픈했다. 최근 동북아 최대 규모로 인천공항 인근에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가 5성급 호텔과 실내 공연장 아레나 등 어뮤즈먼트 시설을 순차적으로 열고 올해 상반기에는 국내 최대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개장한다고 한다.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바라보는 관점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옹호론적 견해와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판론적 견해가 있다. 복합 카지노 리조트에 대한 옹호론적 견해는 카지노가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카지노를 핵심으로 하는 복합리조트 산업이 가져오는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는 시각으로 대긍정-소부정의 경제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경제적인 관점의 사례를 살펴보면 전통 보수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싱가포르는 새로운 국가전략산업으로 관광산업을 선택해 2010년 ‘마리나 베이 샌즈’와 ‘리조트 월드 센토사’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개발하면서 아시아 최고의 부국이 됐다. 또 인천 영종도의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는 약 3천명의 인력을 채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인천 지역사회는 고용창출과 세수증대,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복합 카지노 리조트에 대한 비판론적 견해는 카지노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카지노를 중심으로 하는 복합리조트 산업이 가져오는 비용이 편익보다 크다는 시각으로 대부정-소긍정의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발견된 문제점을 살펴보면 복합 카지노 리조트 산업으로 인한 범죄 증가, 외화 유출과 세금 탈루, 도박중독과 자살 등 사회적 문제, 주거와 교육환경을 악화시키는 사행산업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Global Gaming Expo Asia 2023’에서는 아시아 복합 카지노 리조트 산업이 몇 년 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2027년 ‘나가사키 하우스 텐보스’와 2030년 ‘오사카 유메시마’에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오픈할 예정이고 동남아시아 국가인 마카오,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도 경쟁하듯이 복합 카지노 리조트 확장 및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식어가는 관광산업의 성장엔진으로 종합 엔터테인먼트가 융합된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선택함으로써 복합 카지노 리조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인접하고 관광 수요가 높은 일본 오사카에 관광콘텐츠와 인프라를 갖춘 오픈 복합 카지노 리조트가 들어설 경우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력은 과거 마카오, 싱가포르, 필리핀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들도 복합 카지노 리조트를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관광산업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토대로 옹호론과 비판론의 시선 간극을 줄여나가는 합리적인 숙의 과정을 통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화카페] 예술과 공공지원

연말과 연초로 이어지는 시기는 모든 사람이 설레고 바쁘지만 특히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에는 긴장되고, 스트레스받는 시기다. 바로 공공 지원을 받기 위해 지원서를 쓰고, 심사를 받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지원뿐 아니라 광역·기초지자체 지원이 이 시기에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술가 및 단체들의 한 해 ‘예술농사’를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공공지원은 예술가나 단체에는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필수적인 것이 됐다. 다행히 비영리예술 분야(전통예술, 현대무용, 연극 등)에서의 공공지원에 대한 인식 높아졌고, 이제 이에 대한 사회적 협의도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90년대 이후 공공지원의 규모와 수준도 상당히 발전해 왔으며 현재는 이 분야에 앞선 다른 어느 나라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다고 믿는다.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지속적 활동과 성장을 위해서는 창작 및 작품 유통을 위한 재원 확보가 필수적인데, 이 재원의 다원화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공공지원과 작품판매 수입(박스오피스 수입) 그리고 애호가의 기부 또는 기업의 스폰서십 등 이 세 가지 재원이 균형을 이뤄야 급변하는 시기에도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사정에 의해 한 가지 재원이 줄더라도 다른 두 개의 재원이 작동해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공지원은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으나 비영리예술 분야에서 작품 판매나 기부금 수입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고 비상시 작동도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단체들은 공공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지원을 못 받거나 지원 액수가 줄 경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예술은 ‘지원 형식’의 틀에 갇힐 수 있고 지원행정의 힘은 더욱 커지게 된다. 예술의 자유로움이나 창작의 새로움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몇 해 전에 있었던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런 공공지원에 대한 의존과 이에 따른 과도한 행정 개입이 빚어낸 최악의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 세 가지 재원 중 다른 쪽 재원을 더 개발해야 한다. 특히 ‘박스오피스’ 수입을 늘리기 위해 각 단체의 관객개발 활동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관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좋은 창작과 더불어 관객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고 관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창작에 집중하는 단체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공재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술단체의 건강한 지속성을 위해서는 창작지원뿐만 아닌 관객개발 같은 생존전략 분야에도 지원이 절실한 것이다. 또 관객개발은 개별 프로젝트나 단년도 사업으로 끝날 수가 없기 때문에 중장기적 계획과 지원이 절실하다. 현재 공공지원에 바라고 싶은 점은 두 가지다. 너무 개별 프로젝트 지원에 쏠려 있고 단년도 지원, 단년도 결산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관객개발을 포함한 단체 운영에 대한 지원, 중장기 지원 등 그 틀을 전향적으로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문화카페] 공연산업 성장의 그늘

‘1조2천696억원 대 1조2천614억원’. 금액만 놓고 보면 당최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조 단위 금액이어서 중견기업의 연간 매출액 따위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것도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눈치가 남다른 독자라면 이 칼럼의 문패가 문화예술의 영역을 다루고 있기에 문화 관련 데이터와 연결 지을 수는 있겠다. 두 금액의 차이가 82억원 정도인 이 의문의 데이터는 지난해 영화시장(1조2천614억원)과 공연시장(1조2천696억원)의 총매출 규모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영화관 박스오피스 수입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과 공연 티켓 매출 규모를 보여주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2024년 1월 현재 잠정)이 각각 집계한 수치다. 정부가 신속하고 정확한 문화산업 통계 확보를 위해 운영하는 두 시스템에 나타난 매출 규모는 영화시장과 공연시장의 한 해 성적표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데이터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국내 문화산업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영상예술을 대표하는 영화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는 대목은 예사롭지 않다. 2023년 영화관 박스오피스 총매출액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비해 66%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영화산업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본격화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의 영화 관람 플랫폼 이동이 엔데믹 이후 더욱 강화되면서 영화관 외면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영화관 생존을 위한 정책으로만 접근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영화 티켓 값 인상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둘째, 공연시장이 영화시장 매출을 처음 앞지른 ‘이변’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폐쇄됐던 공연 무대가 마침내 열리면서 억눌려 있던 대면 공연시장의 호황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문화예술의 다른 어떠한 영역보다 현장성이 중요시되면서 경험재로 꼽히는 공연의 특성이 고스란히 소비에 반영됐으며 특히 대면 공연에 대한 갈증은 공연시장이 ‘넘사벽’으로 여겼던 영화시장을 초월하게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여기서 놓쳐선 안 될 지점이 있다. 공연시장이 역대급 호황을 기록한 만큼 그것의 그늘도 짙어지고 있다. 공연시장 전체 매출에서 대중음악 콘서트와 뮤지컬 등 2개 장르가 공연시장 매출을 사실상 독식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중음악 콘서트가 전체 매출의 45%, 뮤지컬은 36%를 기록하는 등 대중성이 매우 강한 특정 장르 매출이 전체의 80%를 훌쩍 넘는 현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티켓 값이 치솟는 ‘티켓 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인기 아이돌과 스타급 아티스트 공연 티켓은 몇분 만에 매진되는 기록을 써가고 있고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도 코로나 팬데믹 이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20만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일부 장르의 잔치와 달리 연극과 클래식음악, 국악, 무용 등 순수예술 장르는 5~7% 수준의 저조한 티켓 점유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공연산업의 외형적 성장은 문화산업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분명 고무적이지만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여러 장르의 찬바람 부는 현실을 지켜보는 건 불편하다.

[문화카페] 예술과 소통

카운트다운 10, 9, 8…1. 00시. ‘댕~, 댕~, 댕~..’ TV의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등의 덕담을 메시지로 주고받으며 올해의 무사와 안녕을 염원해본다. 2024 갑진년, 용의 해가 시작됐다. 우리 모두의 기억과 아쉬움을 뒤로 남겨두고 새로운 한 해가 어김없이 시작된 것이다. 2023년이 시작되던 작년 1월1일, 우리는 토끼처럼 깡총깡총 도약하며 살아보자는 각자의 희망과 약속을 품으며 계묘년을 살아왔고 이제는 또 다른 웅비의 다짐으로 새로운 해를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2023년 12월의 마지막 날인 12월31일과 새로운 해인 2024년 1월1일은 시간의 흐름으로 바라본다면 새로울 것 없는 반복적인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아침의 분주한 시작과 직장, 가정, 학교, 기업 등의 일상과 저녁의 마무리는 올해에도 작년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며 그 ‘새로움’ 이라는 의미로 희망을, 목적을,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하고 써내려가길 기대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새로움’이라는 의미와 자극을 만들어 가며 나만의 인생을 완성해 가는 새로운 의미가 중요하고 필요하다. 필자는 디자인 전공자로서 기업이나 단체 등과 디자인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고 연구하지만 예술가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디자인 학문의 역사적 맥락과 배경도 예술과 관계가 깊겠지만 아마 어려서부터 새로운 것을 그리기 좋아하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화가를 꿈꿨던 것에 그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항상 예술에 대한 친근함을 가지고 있던 차에, 작년 말 국내의 한 기업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아트공모전 평가와 심사를 요청받게 돼 올해 시상식에서 심사평까지 연설하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금년으로 두 번째의 공모전으로 역사는 길지 않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전문가들과 함께 잘 다듬어 나간다면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의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라 기대됐다. 사실 다양한 위원회, 평가회 등을 다니다 보니 이번에도 봉사라는 이름의 일상적 평가 수행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공모전의 배경과 목적 등을 소개받고 1회 수상작들을 감상하고 흥미로운 제출 작품들을 평가하다 보니 그것이 작품과 작가들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좁은 편견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무엇보다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작품의 표현과 제작에 있어 경력, 성별, 연령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출품 자격이 된다는 것이고 특히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구상과 표현을 시도하고 ‘새롭게‘ 작품을 제출할 수 있다는 열린 개념이었다. 즉,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모두가 참여하고 만들 수 있다’는 공모 기준의 제시는 빠른 속도감과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시대의 흐름과 융합적이고 디지털적인 매체 환경 속에서 적절한 전략이라 판단됐다. 물론 심사평가 기준을 객관성 있게 만들기 어려운 점은 심사자로서는 다소 어려운 심사 과정이었음을 모든 심사위원이 느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위의 공모가 흥미롭고 시대적 흐름을 잘 읽고 있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은 제약하지 않았지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통 주제로 새해의 띠를 상징하는 동물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는 올해의 동물인 ‘용(미르)’을 주제로 다양한 발상과 표현의 예술적 실험들이 펼쳐졌다. 새로운 해에 모두의 공통 관심사 중 하나인 12지간 띠의 소재를 공모로 가져온 것은 브랜드 측면으로 본다면 멋진 차별적 콘셉트이며 나아가 스토리텔링으로서의 연상성까지 확장될 수 있는 스마트한 전략이라 판단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해 보다 창조적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 창의성이 회자되는 예술의 영역에서 가장 중심은 ‘새로움’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시대 흐름으로서 창의성은 독단적인 일방통행이 아니며 작가와 작품, 작품과 갤러리, 나아가 예술과 대중의 관계에서 상호 소통하며 보다 친근하고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개인적 체험과 해석의 영역으로 변화되고 있다.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실험적이고 다채로운 창조적 흐름이 생겨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예술에서 강조하는 화두는 ‘새로움’에 더해 ‘소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예술의 순수성과 함께 누가 적극적으로 소통했는지가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화카페] 공생의 아름다움을 위한 환대의 온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데 일명 ‘혼-’으로 시작되는 최근의 문화적 현상은 자칫 개인주의가 심화될 가능성을 초래할 수 있다. 혼자 영화관에 가기, 혼자 카페 가기, 혼자 산책하기도 꽤 낭만적이지만 함께 영화를 보고 그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며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것 역시 참 따뜻하지 않은가. 사뮈엘 벤체트리트 감독의 영화 ‘마카담 스토리’는 낡은 아파트에 사는 세 명의 주인공과 낯선 타자들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오래된 엘리베이터의 수리비를 내지 않아 탑승하지 못하는 40대 남자가 만난 병원 간호사, 10대 소년 샬리와 앞집에 이사 온 왕년의 유명 여배우 잔 메이어, 그리고 알제리 출신의 여인 하미다와 아파트 옥상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 존 매켄지. 세 쌍의 우연한 만남을 엮어내는 이 영화는 각자 다른 방식의 환대를 보여준다. 첫 번째 남자는 야간근무에 지친 간호사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사진을 찍어주는가 하면 두 번째 소년은 여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를 같이 보며 다시 연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해주고 세 번째 여인은 쿠스쿠스라는 전통 음식과 친아들의 옷을 주며 비행사가 편히 머물게 한다. 특히 잊히지 않는 것은 하미다의 눈빛이다. 그녀와 비행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꽤 잘 소통한다. 비행사를 대하는 여인의 시선은 발화되는 표면적 언어를 초월하는, 이른바 배려와 포용의 내면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낯선 타자와의 만남은 일견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마카담 스토리는 그 낯섦을 용해하는 환대의 온도가 있다. 그것은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도 그 온도의 포근함에 스며든다. 이처럼 세 명의 아파트 거주민은 불쑥 나타난 낯선 타자들에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환대를 실천한다. 그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필요한 안식을 제공하는 것까지, 환대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타자임을 말해준다. 인생은 수많은 점들이 이어진 선일 터인데 그 점과 점 사이에 우리가 만나는 타자들이 공존한다. 그렇기에 그 공존은 다름 아닌 공생이다. 단순히 함께 존재하는 공존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생인 것이다. 환대는 공존으로부터 공생으로 나아가게 하는 중요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그들 모두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레프 톨스토이의 말도 새삼스레 떠오른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가 하는 일이며,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내가 건넨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한다. 비록 그것이 내게 되돌아오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의 마음에 온기 한 스푼 얹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치 아니한가.

[문화카페] ‘바다 가꿈 프로젝트’ 이야기

많은 문학작품에서 우리 인류가 처음 바라본 바다는 ‘자줏빛 검은 바다요. 배를 타고 적들이 쳐들어오고 나쁜 소식을 가지고 오는 존재’로 묘사되고 인식되면서 바다는 두려움과 공포 공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대중관광(mass tourism)’시대가 시작돼 관광산업이 성장하고 정부와 여행사들이 바다를 매력적인 관광상품으로 디자인하면서 바다는 휴양과 행복을 제공하는 최고의 레저관광 장소가 됐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도 관광수요가 내륙 중심의 레저관광시대에서 해양 중심 시대로 전환되면서 바다를 찾고 해변을 즐기는 해변관광, 낚시관광, 요트 및 크루즈관광, 섬 트레킹 등 다양한 레저관광활동이 증가했다. 특히 어촌을 배경으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인 ‘도시어부’와 ‘삼시세끼’, ‘안싸우면 다행이야’의 인기로 어촌과 바다는 연인과 친구, 가족들이 함께 즐기고 휴양하는 장소로 인식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깨끗하고 아름다웠던 우리의 어촌과 바다는 해양레저관광객들이 버린 플라스틱과 유리병 등의 생활쓰레기, 어촌 양식으로 인한 스티로폼 폐기물, 어선 폐그물과 낚시어선의 쓰레기로 인해 섬·항구·바다해변 곳곳에는 해양쓰레기가 넘쳐나면서 아름답고 낭만이 있던 항구와 섬, 해변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최근 기후변화 위기와 바다환경오염 문제가 이슈화되고 어촌 주민과 많은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범지구적인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2017년부터 해양수산부도 ‘바다 가꿈 프로젝트’를 추진해 섬·어촌·어항·포구 등의 바닷가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꿔 ‘가고 싶고, 살고 싶은 장소’로 만들어 가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2023년 한국어촌어항공단에서 주최한 ‘바다 가꿈 프로젝트’경진대회에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당시 ‘바다 가꿈(clean)이 바다가 꿈(future)’이 되는 어촌마을 우수사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 속초 청호마을은 시민들과 함께 가꾸는 바다를 만들기 위해 지역해양환경 청년모임의 수중정화와 비치클린,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바다쓰레기 작품 만들기, 환경일러스트 작가·화가와 굿즈 제작, 고래인형 만들기와 같은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 환경체험교육 등을 진행했다. 두 번째 이야기, 인천 포내마을은 우리의 작은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워케이션 참여자들의 버려진 조개껍데기 공예체험과 바다 지키기 약속캠페인, 갯벌 체험객의 해감을 위한 페트병 활용, 폐어구 쓰레기통 제작과 폐그물 농작물 울타리 설치 활동을 전개했다. 세 번째 이야기, 통영 건유마을은 지역 초중고 학생들이 참여하는 굴패각 업사이클링, 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한 ‘바다 가꿈 골목갤러리’, 폐목선을 활용한 환경조형물 제작 등을 실시해 바다가 꿈이 되는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결국 ‘바다 가꿈 프로젝트’사업을 통해 모두가 어촌과 바다를 가꿈(clean)으로써 주민들에게는 쾌적한 삶의 장소로, 관광객들에게는 아름다운 레저관광 장소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바다가 꿈(future)이 되는 세상 이야기가 지속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문화카페] 새해 결심

요즘 해가 바뀐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쏟아지는 새해 인사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그림파일이나 지아이에프(gi·소위 움짤), 이모티콘을 활용한 인사가 개인계정이든 단톡방이든 넘쳐 나고 있다. 지난 한 해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묵묵히 기다리고 싶은 나의 연말연시가 약간은 방해받는 기분이라면 너무 이기적이거나 과장일까. 전처럼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것과 이렇게 손쉽고 무료인 온라인을 이용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환경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정서적인 요인을 제외하고 카드를 위한 종이 사용과 배달을 위한 차량 운행 등 따져보면 온라인 새해 인사가 환경적으로는 훨씬 유리해 보인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이메일 한 통을 보낼 때의 탄소 배출량이 4g 정도라고 한다. 이 이메일을 처리하고 보관하기 위해서는 서버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때로는 과하게 많아 보이는 온라인 새해 인사 교환 또한 환경적으로 월등히 나아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 새해에는 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위해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싶다. 그동안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등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했지만 앞으로는 좀 더 직업적으로 일상화해야 할 단계가 아닌가 한다. 영국에서 제작됐던 ‘씨시터 그린북(Theatre Green Book)’이라는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종합적인 가이드북이 본문에 이어 작년에 툴키트(Toolkit)가 한글로 번역돼 사이트에 올려졌다. 공연 제작의 상세한 부분까지 다양하게 지속가능성을 성취하기 위한 지침이 마련된 셈이다. 이를 매뉴얼 삼아 곁에 놓고 참고하려 한다. 또 나같이 국제기구나 국제교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비행기 타는 것이 다반사인데, 긴 비행시간과 시차 적응의 어려움뿐 아니라 다른 어떤 교통수단보다 탄소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 스트레스다. 그래서 대륙 간 이동에서는 항공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같은 대륙 내의 이동은 최대한 기차를 탈 예정이다. 유럽 같은 대륙은 기차비용이 저가 항공료보다 비싼 경우가 많은데 가격이 높더라도 기차를 이용할 예정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일 때문에 방문하지 않고, 현지에 더 머물면서 관계된 다른 일정을 잡아 최대한 머무는 시간을 길게 가질 예정이다. 마음대로 잘 되지는 않겠지만 그런 경우에만 해외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 외에는 줌(Zoom) 같은 온라인 회의 플랫폼을 이용해 최대한 비행기 여행을 자제하려고 한다. 또 이와 함께 새해에는 다양성(Diversity)과 포용성(Inclusion) 증진을 위해 활동 또는 마음가짐 역시 일상화하려 한다. 작년에는 수도권에 장애 예술 또는 장애 예술가를 위한 공공 공연장이 오픈했고, 배리어프리를 위한 다양한 지원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행동으로 직접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참여하는 축제 같은 경우 소수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반드시 주요 프로그램으로 포함시키고, 여건이 되면 공연 축제 또는 공연 제작에서 지속가능성 감독이나 다양성 또는 포용성 담당자를 채용해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하려 한다. 앞으로 이런 축제나 행사 위주로 참여하고 추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축제나 공연 또는 행사평가의 기회가 있다면 이 세 가지, 즉 지속가능성, 다양성, 포용성을 나의 높은 정성적 가치로 평가할 예정이다. 올 연말에 나 스스로 받아볼 성적표가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문화카페] 혼돈의 지역문화예술 생태계

문화예술은 소프트파워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분류된다. 인간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가치재로서 문화예술의 힘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멀리는 로마 시대부터 정치 권력자를 위시한 사회지배층이 문화예술을, 범위를 좁히자면 음악과 미술 분야 등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예술과 권력의 필연적 관계를 형성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 지도자 등 위정자들이 문화예술을 곁에 두고 ‘공생’을 지속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러한 문화예술은 기본적으로 외부 지원을 수반하는 특징을 지닌다. 미국의 경제학자 보멀과 보엔이 문화예술을 ‘시장실패의 영역’으로 지목하면서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이는 뒤집으면 ‘홀로 서기의 실패’와 그 의미가 맞닿아 있다. 특히 대중예술에 비해 산업화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클래식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전통예술 등 순수예술은 지원의 필수 장르로 인식되는 흐름이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정책적으로 순수예술을 지원의 핵심 분야로 설정해 놓고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문화예술진흥기금이나 일반회계의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동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지원만으로는 예술단체와 예술가의 문화예술 창작 활동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현실적 딜레마가 존재한다.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을 지칭하는 ‘메세나’ 등 민간 지원이 동반되고 있는 까닭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같은 문화예술 재원이 일관적이지 않다는 거다. 경기가 침체하면 세수가 줄고, 이의 여파는 고스란히 문화예술 예산 감축으로 나타난다. 당장 내년에 정부의 문화예술진흥기금을 통한 실질적인 정책 사업비가 10% 이상 준 것을 비롯해 각 지방자치단체도 문화예술 사업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상당수 지자체에서 세수 확보 부족을 이유로 지역의 전통문화 사업이나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사업 등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삭감하거나 주요 사업을 폐지하기로 한 결정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예산을 책정하는 입장에선 사업효과와 필요성 등을 감안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지만 합리적 기준과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후유증은 불가피하다. 문화예술 관련 예산 확보는 교육이나 복지 등 다른 분야과 비교할 때 집행의 중요성 및 시급성에서 뒤처지기 마련이다. 당국의 예산 삭감이 이뤄지면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직격탄을 맞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관례가 지속되면 문화예술의 퇴보는 자명하다. 지역의 문화예술은 지역주민의 삶을 풍성하게 이끄는 촉매제이자 지역에 대한 관심을 묶는 효과를 발휘한다. 문화예술이 공공 섹터 예산 확보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건 탈지역 현상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소멸의 대안으로 떠오른 다양한 지역문화 사업생태계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선 곤란하지 않나.

[문화카페] 정신과 육체의 진보

오전 5시 반. 어김없이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알람을 들으며 눈을 뜬다. 일어날까 아니면 오늘은 일요일이니 그냥 더 잘까를 두고 이불 속에서 망설인다. 잠시의 유혹을 떨쳐내고 늘 하던 하루의 루틴을 시작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 단지의 커뮤니티센터에 들어서는 순간. 툭탁 툭탁 툭탁, 흐읍 흐읍, 끄응 끄응 등 건강한 육체를 만들기 위한 아침을 시작하는 소리로 가득하다. 나 역시 늘 하던 대로 트레드밀의 스위치를 올리고 서서히 워밍업을 거쳐 4, 6, 8마일로 스피드를 올리고 잠자던 육체를 깨우며 건강을 만든다. 며칠 전 미국의 기업 테슬라에서는 새로운 안드로이드 로봇인 옵티머스_Gen2를 선보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불과 1년 전의 어설프고 혼자 직립해 있는 상태도 불안해 보였던 수준에서 올해 제법 로봇다운 모습과 사물을 취사선택하는 모습을 넘어 이제는 세밀하고 고도화된 자세의 제어와 유연한 손가락의 움직임과 관절의 움직임, 그리고 한결 미래지향적으로 느껴지는 외관 디자인까지 보여줘 공상과학소설과 영화에서 상상했던 그 모습에 다가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대신하는 로봇의 등장으로 우리의 삶도 혁신적인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인간의 육체가 해오던 일들이 변화될 것이며 특히 인간의 물리적 노동력은 상당 부분 로봇이 대치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얼마 전 다른 미국의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선보인 챗GPT-4로 대변되는 인공지능(AI)의 재등장으로 인한 충격에 연이어 미래에 대한 진보의 속도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와 흥분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 기어 올라오는 두려움과 근심은 보이지 않는 내일에 대한 인간의 초라한 미물로서의 쇠약함과 과민증만은 아닌 것 같다. 1980년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가 새로운 정보혁명과 정보사회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책인 ‘제3의 물결’에서 이야기했듯이 미래에 대한 예상과 기대는 인간을 보다 용감하고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지만 이와 함께 옆으로도 또는 역설적이게도 거꾸로도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언급한 내용이 기억난다. 디자인학과 교수로서 디자인 수업과 디자인 작업을 계속 해온 필자에게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은 하루도 넘어가는 일 없이 매우 속도감 있고 다양하게 다가오고 있으며 실질적인 디자인 연구 과정에서도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활용되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80년대 말부터는 디지털화된 그래픽표현의 방법론이 다양하게 진화하며 디자인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그래픽디자인의 오랜 고전이자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수업은 이제 디지털 폰트와 DTP(Desk Top Publishing) 등을 제외하고는 논할 수 없으며 종이 인쇄에 대한 역할론보다는 디지털매체와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변되는 뉴미디어의 의미론이 보다 부각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필자가 진행했던 오래전 대학의 디자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진행시킨 디자인 과제가 떠오른다. 모두 가지고 있는 컴퓨터와 관련된 툴은 치워두게 하고 조교를 통해 모눈종이, HB 연필, 자, 지우개를 나눠주고는 본인의 한글 이름 석 자와 영문 이름을 각각 명조(바탕), 고딕(돋움) 형식으로 종이에 디자인하게 했다. 예상했듯이 눈뜨고 볼 수 없는 본인의 이름 형태를 보고 놀란 것은 역시 담당교수가 아닌 그 자신이었으리라. 그것도 1학년도 아니요 졸업을 1년쯤 앞둔 3학년들에게는 꽤나 충격이었을 것이다.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괜찮은 것일까’라는 화두가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기술의 진보, 나아가 새로움의 혁신은 시대의 흐름이자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주요한 동력이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뇌를,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혁신을 통해 기존에서 보완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보완돼야 하는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잘 만들어 놓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출발선은 다를 것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로 대변되는 정신의 고양과 물리적으로 건강한 육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시대로서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매일매일 착실히 준비해야 한다.

[문화카페] 음식 콘텐츠로 읽는 문화코드

인스타그램에는 음식 사진이 넘쳐 난다. 멋진 레스토랑뿐 아니라 레트로문화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노포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도 많다. 최근 중장년층이 단골이었던 식당들의 주 고객층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필자도 그 유명한 을지로 골목을 가본 적이 있다. 마침 축구 경기가 열리던 그날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파티장에 온 것 같은 차림도 보였다. 청년들은 가게의 텔레비전이나 스마트 기기로 경기를 관람하며 모두 함께 열렬히 응원했다. 디지털 시대가 음식문화의 소비 행태를 변화시킨 새로운 광경임에 틀림이 없다. 이처럼 음식은 문화를 반영하는 코드, 즉 문화코드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문화코드란 국민성이나 국가정체성과 연관된 것으로 특정 지역에 속한 사람들의 문화적 무의식을 말한다.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문화가 다르면 코드도 다르다고 하면서 치즈의 사례를 든다. 프랑스는 치즈를 상온에서 숙성해 가는 살아있는 것으로 여기지만 미국은 저온살균법으로 치즈를 죽여 미리 포장한다는 것이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가 먹는 음식을 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본의 경우 만화, 게임,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음식을 소재로 한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작해 왔다. 만화 ‘신의 물방울’은 국내의 와인 소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드라마 ‘심야식당’과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한국판으로도 제작돼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음식을 다룬 일본의 콘텐츠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분명 음식의 재료 그 자체와 먹는 행위를 섬세하게 다루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그곳이 단순하게 음식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2007년)의 경우를 보자.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식당을 경영하는 사치에와 이곳을 방문한 미도리의 인연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식당을 중심으로 각각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조우한다. 카모메 식당이 힐링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을 환대하는 중요한 수단인 음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음식을 매개로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넘어 이웃이 돼 가고 관객 역시 그곳의 따스함으로 인도되기 때문이다. 사치에의 식당은 상행위가 이뤄지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사회적 공간인 것이다. 자신의 식당이 레스토랑이 아닌 ‘동네’ 식당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한 편의 영화도 그 나라의 음식 관련 문화코드를 읽는 데 도움을 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우리는 으레 특별한 음식을 찾는다. 1년 동안 럼주에 건과일과 견과류를 숙성시켜 만드는 독일의 슈톨렌이나 이탈리아 밀라노 지방의 대표적 빵인 파네토네가 그러하다. 다른 나라에도 연말을 기념하는 유사한 음식들이 많다. 외국 음식에 대한 지나친 선호라고 간주하기보다 다양한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코드를 해독해 보는 건 어떨까.

[문화카페] 기후변화와 K-겨울 관광콘텐츠

2016년 ‘슈퍼 엘니뇨에 녹아내린 겨울축제’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기후변화의 상징이 된 슈퍼 엘니뇨 때문에 대부분의 겨울 축제가 취소되거나 축소됐으며 겨울 스포츠관광의 대표주자인 스키 리조트도 따뜻한 겨울로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올겨울도 엘니뇨 현상으로 예년보다 포근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 시즌에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여행을 하지만 반대로 동남아 관광객들은 추운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세계적인 축제가 된 화천 산천어축제와 평창 송어축제, 태백산 눈축제, 그리고 무주 덕유산 리조트, 용평리조트와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등 K-겨울 관광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다. 즉, 하얀 눈을 보지 못하는 동남아 관광객과 대만 및 홍콩, 중국인 관광객에게는 우리나라의 매력적이고 독특한 K-겨울 관광콘텐츠 상품의 선호도가 높은 것이다. 일상이 된 지구 온난화는 전 세계적으로 폭염, 폭설, 태풍, 산불 등 이상기후 현상을 야기하고 있고 세계 어느 곳에서든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30년 사이에 평균온도가 1.4도 상승해 지구 온난화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고 더욱 가파른 속도로 기후변화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범지구적인 탄소중립 실현 노력에도 불구하고 겨울축제가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겨울 스포츠 관광콘텐츠 개발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계절이 뚜렷해 아름다운 자연유산의 매력을 만끽했던 우리나라는 겨울 관광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관광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내국인은 물론 동남아, 대만과 홍콩,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이고 독특한 K-겨울 관광콘텐츠 상품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지역 발전과 지방경영 수단으로 겨울 축제를 선택한 지자체는 지역주민의 소득 증대와 지역경제 발전, 지역 이미지 제고에 치명타를 입고 있어 지방 소멸시대에 더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겨울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송어나 산천어 양식장 업체들도 공들인 1년 농사를 망치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기후 변화로 인한 겨울관광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겨울 축제와 겨울 스포츠이벤트, 그리고 겨울 관광콘텐츠상품 공급이 과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 눈을 매개로 한 겨울의 낭만과 추억, 자연풍광의 아름다움을 즐겨왔던 축제인간(homo festivus)과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 세계를 더는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기후 변화에 대비하는 겨울 축제와 K-겨울 관광콘텐츠의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얼음낚시와 눈 조각 중심의 관광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을 수립하고, 하늘의 뜻에 기대기보다는 인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첨단 과학기술을 융복합해야 한다. 새로운 발상과 생각의 전환, 가치 협업을 통해 창의적인 K-겨울 관광콘텐츠 이야기를 구성하고 이를 관광상품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가 함께 해결해야 할 글로벌 위기인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아름다운 K-겨울여행을 즐기는 인간세계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는 혁신과 창조적인 사고의 전환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문화카페] 11월, 우리 아이들의 권리를 새삼 생각하며

모두 지나갔지만 11월에는 하루는 국내적으로, 하루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두 날이 있다. 그런데 두 날짜 모두 공교롭게도 우리의 미래라는 어린이·청소년들과 관련 있는 날이다. 그중 하나는 듣기 평가시간에는 비행기도 못 뜨고, 전국적으로 근로자 출근시간도 늦춰지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일(11월16일), 일명 수능일이고 다른 하루는 우리에게는 5월5일이 있어 잘 기념하지도 않고, 잘 모르는 날인 11월20일, 유엔이 정한 세계어린이의 날(World Children’s Day)이다. 바로 이 두 날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의 ‘어린이·청소년’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듣기만 해도 얼굴에 미소가 나와야 하는 어린이·청소년들에 대해 그렇지 못한 ‘어른’으로서, 또 그들을 위한 공연예술계 종사자로서 수능날은 그냥 단순 시험일이 아닌 매우 상징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유엔 어린이·청소년권리협약(UNCRC) 제31조에 의하면 ‘모든 어린이·청소년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에게 적합한 놀이 및 예술과 문화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어린이·청소년들이 얼마나 자신의 정당한 권리에 맞게 휴식과 여가를 즐기며, 놀이를 포함한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의심을 넘어 이젠 식상할 정도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펴낸 ‘2022년도 아동청소년 인권실태 총괄보고서(2023년)’에 의하면 우리나라 초중고교생의 평일 하루 평균 여가시간이 3시간 미만이 59%이며 평일 하루 평균 공부시간 3시간 이상이 40.4%에 이른다. 그리고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학생이 전체 33.5%이고, 그 이유로 학업 문제가 44.3%라고 한다. 이런 수치를 받아들고 우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차라리 어떤 특정 집단들이 이런 우리 어린이·청소년들의 쉴 권리, 즐길 권리를 막고 있으면 몰려가 시위를 통해서라도 시정할 수 있겠으나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권리를 막고 있는 꼴이니 정말 답답하고 우울하기 그지없다. 또 모두가 즐겁게 기념해야 하는 11월20일 세계어린이의 날은 어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하마스 정권과의 무력 충돌로 무고한 이스라엘 시민들이 납치당하고, 특히 가자지구의 여성과 어린이 희생자가 최소 1만명에 이르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 세계어린이의 날이 무색한 실정이다. 또 지금도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시민을 비롯한 어린이들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란의 어린 여성들의 상황은 어떤가! 대부분 ‘어른’들의 탐욕과 미움으로 생긴 갈등의 가장 큰 희생자는 어린이·청소년인 것이다. 분명 이들의 목소리와 아우성은 존재하는데 잘 들리지 않고,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아마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어떨까? 그래도 이들의 의견이 무시될까? 이런 와중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듯이 수도권 한구석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직접 만들고 발표하는 제30회 전국어린이연극잔치가 지난 25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온라인(게더타운)과 오프라인에서 진행되고 있다. 11월 마지막 날에 돌아본 단상이다.

[문화카페] ‘부머쇼퍼’의 문화예술 광폭 소비 좋지만

‘부머쇼퍼’는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와 재화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쇼퍼의 합성어다. 흔히 5060세대 소비자를 의미하지만 최근엔 학계와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부머쇼퍼의 범주를 1955~1974년생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러한 흐름은 50대가 부머쇼퍼를 사실상 이끌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부머쇼퍼는 기업 마케팅의 최대 표적이 되고 있다. 그것은 5060세대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은 소비와 지출을 하는 고객층으로 부상한 데 기인한다. MZ세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모바일과 PC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5060세대를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이끈 모멘텀이 코로나19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코로나 팬데믹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현장 소비가 보편적이었던 5060세대를 온라인 쇼핑이라는 비대면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 것이다. 부머쇼퍼의 소비 영향력은 외식, 의류, 여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되고 있으나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인다. 종합편성채널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대중가수 임영웅의 팬덤은 5060 여성이 주축이다. 티켓 오픈 1~2분 만에 전석 매진되는 기록을 써가고 있는 임영웅 콘서트 현장은 5060 여성들의 독무대나 마찬가지다. 임영웅과 같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친 가수 김호중의 지난 6월 초 크루즈공연 가격은 1인당 최고 400만원이었지만 사전 완판됐다. 김호중의 크루즈공연에 다녀온 5060 여성 팬들의 “평생 잊지 못할 공연”이라는 후기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덮고 있음을 볼 때 이 공연의 주 구매층이 부머쇼퍼 여성이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5060세대의 폭발적인 문화예술상품 소비는 대중가요에 그치지 않는 확장성을 보인다. 문화예술 콘텐츠가 집중된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률이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50대의 OTT 이용률은 2021년 44%에서 2022년 54%로 1년 사이에 무려 10%포인트나 늘었다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데이터가 있다. 20대(95%)와 30대(91%)에 비해선 여전히 낮지만 70%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기업들이 5060세대를 겨냥한 콘텐츠 제작 비중을 늘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60세대가 문화예술 소비를 이끄는 현상은 자연스럽다. 고학력이 많고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세대의 이른바 ‘내돈내산’(내 돈 내고 내가 산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취미활동은 삶의 에너지로 작용하기에 충분하고, 경제적 측면에서의 기여 역시 고무적이다. 다만 부머쇼퍼의 문화예술 소비가 대중예술에 편중되고 있는 현실은 살필 필요가 있다. 클래식 음악과 연극, 오페라, 전통예술, 무용 등 순수예술 분야에 관한 관심과 소비가 저조한 것은 아쉽다. 정서적 안정과 치유의 기능을 내포한 순수예술이 갖는 가치가 대중예술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본다면 5060세대가 소비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카페] 구세대·신세대

지하철 안에서 경험했던 일이다. 꾸벅꾸벅 앉아 졸면서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옆쪽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잠이 깼다. 상황인즉슨 서 계신 나이 지긋한 어르신에게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이 바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실은 젊은 학생도 다리가 불편해 앉아있던 것이고 외관상 드러나지 않으니 서 계신 어르신이 이를 불쾌히 여겨 꾸짖고, 다시 이에 대해 젊은 학생은 억울했고 민망해 목소리가 커진 것이었다. 겉으로는 ‘노인 공경을 하지 않은 젊은이의 불찰’ 정도로 이해될 수 있는 사건일 수 있겠지만 사건을 잘 들여다보면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어르신의 불찰'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약속을 끝내고 귀가하는 지하철에서도 계속 아까의 학생과 어르신의 일이 생각나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요즘 다양한 언론매체와 방송들은 새로운 세대인 MZ세대를 이야기하며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가 얼마나 다른지, 특이한지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그들의 문화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잠재력과 힘이 있는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이제 K-웨이브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화의 힘을 세계에 펼칠 수 있게 된다는 것으로 마치 그 이전에는 새로운 신세대는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필자가 신세대라 불리던 시대가 있었다. 1991년, 대학 1년생, 청춘의 91학번, 오렌지족과 낑깡족이 등장하고 퍼스널컴퓨터, 인터넷 무선통신 등의 신문물을 처음 접하고 자라온 세대에게도 그 당시의 언론과 방송들은 우리를 별종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세대로 이야기하며 ‘X세대의 새로운 등장’이라고 이야기했다. 필자에게 1990년대의 대학생활은 가능성, 자신감과 함께 번민과 걱정으로 가득한 시절로 기억된다.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젊음은 주어지며 이는 신이 인간에게 준 평등한 선물일 것이다. 그때의 나는 젊고, 패기 있고, 실수투성이였지만 신세대였다. 그 당시에도 많은 구세대의 어른들이 우리들의 젊음을 어리석고, 배려 없고, 자신만 알고, 나약하고, 무계획하며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걱정 가득한 전례 없는 세대라 정의 내리곤 했다. ‘너희 세대는 우리 때와 다르게 왜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고 특이하냐’며 별종 취급을 했다. 그러한 별종이 구세대가 돼 신세대를 바라보니 그때 우리가 들었던 말들이 지금의 신세대에게 어찌나 똑같이 지금에도 반복되는지 공공장소에서 젊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볼 때마다, 집에서 아들을 볼 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복되는 재생버튼과 같이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은 삶을 다하고 죽는다. 이러한 불변의 진리에 예외는 없다. 신세대는 구세대가 되고 구세대는 예전에 신세대였다.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서로 바꿔 생각하다)라는 사자성어야말로 세대 간 갈등의 이슈가 관심을 받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격언이 아닐까. 구세대에게 신세대는 위태롭고 과격하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과 혁신은 그들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의식으로 이뤄졌다. 또 신세대에게 구세대는 구태하고, 지루하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인류는 위험을 감소시키고 안정적 번영을 누려왔다. 아마 지하철에서의 어르신께서도 패기로 가득한 신세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또 젊은 학생은 언젠가 연륜이 가득한 구세대가 될 것이다. 그렇다. 구세대와 신세대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더 이상의 반목과 불화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모두 하나이듯이.

[문화카페] ‘인간, 자연, 기술’의 상생을 위하여

프랑스 파리의 센강변에 위치한 오르세 미술관이 원래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미술관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커다란 시계도 기존의 건물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흔적 중 하나다. 미술관 자체가 지닌 건축의 미학에 더해, 아름다운 센강과의 조화는 건물 외벽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자연친화적 건축물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방문한 천안 소재의 영화전문 북카페 ‘노마만리’는 통유리창으로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뿐 아니라 그곳에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영화 관련 전문서적이 가득하다. 향기로운 커피는 물론이고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는 3층에서는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세미나도 열린다. 건축물의 이미지는 도시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시정체성은 19세기 근대도시가 생기면서 논의됐고 근래에는 전통적 장소의 복원이나 지역 간 경쟁 강화로 인한 도시개발과 연결된다. 이처럼 건축물은 도시 정체성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도시 속 건축물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물로서 다름 아닌 기술에 의해 드러난다. 따라서 인간, 자연, 기술이라는 세 요소가 도시에서 상생할 때 비로소 바람직한 도시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도 마찬가지다. 장소에 대한 심리적 애착을 강조한 에드워드 렐프는 “집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정체성의 토대, 이른바 존재의 거주 장소”라고 말한 바 있다. 비단 집뿐이겠는가. 기억과 경험이 부여되는 모든 장소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자연을 건축물의 공간으로 품는 사례가 많다. 부암동 어느 높은 자락에, 하늘과 만나는 옥상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한 주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축가 최두남이 직접 설계한 이 집의 옥상은 마당이기도 하다. 집에 들어서면서 처음 마주하는 일반적인 마당이 아니라 옥상이 마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집 안 공간의 ‘흐름’도 빼놓을 수 없다. 문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집 안의 모든 공간이 연결됨으로써 시선이 그것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이 집의 진입 공간인 계단의 역할도 흥미롭다. 집 입구의 ‘수축’된 계단을 거쳐 올라갈 때는 옥상으로 이어진 뷰를 예상할 수 없지만 마침내 그곳에 이르러서는 빛과 개방감을 통해 ‘팽창’의 경험을 하게 된다. 집과 성벽의 통일된 곡선을 따라 펼쳐지는 하늘과 공기 가운데 어느새 인간도 집도 자연의 일부가 돼 가는 것이다. 수축에서 팽창으로 향하며 마주치는 자연, 그 시공간이야말로 인간, 자연, 기술이 조우하고 상생하는 사건에 다름 아니다. 건축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말이 떠오른다. “창턱에 비치는 햇살, 풀밭에 부는 바람도 사건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이 우리가 거주하는 장소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지금 도시의 빌딩 한가운데 있다면 그 빌딩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기를, 더불어 그 곁에 거주하는 기술과도 조화롭게 조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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