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이집트 미술과 빵

이집트 벽화는 주로 피라미드 안에서 발견되는데 영생을 강조하는 이집트의 세계관 때문에 대부분은 재생과 부활을 주제로 하고 있다. 기법적으로는 기능성에 바탕을 둔 정확성 때문에 상반신의 정면, 옆면의 얼굴, 정면의 눈 등 정면성이라는 관념적인 예술관이 형성됐다. 피라미드 벽화에는 이외에도 당시의 생활상이나 다양한 사회상의 모습도 묘사돼 있다. 다른 지역의 분묘들과 달리 특징적인 것은 빵에 대한 그림들이 많다는 것이다. 원뿔 모양의 케이크를 제조하는 모습의 레크미르의 벽화, 엠머빌 빵 제조법이 있는 람세스 3세 벽화 등 그 외에도 빵굼터, 화덕, 밀을 가는 도구들도 발굴됐다. 심지어 멘투호테프 2세의 무덤에는 4천년 된 빵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주변국들은 이집트인들을 빵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는데, 이 말에는 칭찬과 경멸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지만, 이집트인들의 빵에 대한 자부심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집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상된 밀 가격 때문에 빵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지원으로 담배 한 개비 가격으로 빵을 스무 개나 살 수 있는 현재의 빵 가격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에도 빵 가격 인상을 시도했다가 폭동이 일어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있었고,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등을 보면 과연 인상할 수 있을까 싶다. 이집트는 현재 최대 밀 수입국이지만 과거 이집트는 최대 밀 생산국이었다. 기원전 7천년쯤 서남아시아에서 시작된 밀의 재배가 이집트에도 전해졌고,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에서는 밀과 보리가 풍부하게 생산됐다. 당시의 빵은 밀가루를 그대로 구운 납작한 모양의 맛없는 빵이었는데, 이집트에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발효빵이라는 혁신적인 발명품이 만들어졌다. 발효는 밀가루 반죽이 부패하는 과정이다. 다른 민족들이 음식의 부패를 막는 방법을 연구했다면, 이집트인들은 미라를 통해 부패를 연구한 사람들이었다. 이후 맷돌과 오븐의 발명을 통해 이집트는 빵에 대해서는 혁신의 나라가 됐다. 고대 이집트 빵은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고 로마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고대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사랑의 블랙홀이란 영화가 있는데, 자기중심적이고 시니컬한 TV 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래이 분)가 취재차 시골에 갔다가 눈보라에 갇혀 하룻밤 머물게 된다. 그런데 그 하루가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코너스는 분통을 터뜨리다가 점차 그 생활을 즐기면서 쾌락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영원한 삶은 결국 절망이었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어도 눈을 뜨면 또 하루다. 결국, 나중에는 체념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게 되자 멈추진 시간이 다시 흐르게 된다. 피라미드의 주인은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죽음 후에도 영원한 권력을 누리길 원했고 그래서 영생을 꿈꿨다. 영원한 시간의 주인은 신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영생을 꿈꾸지만, 그 삶은 지옥일 수 있다. 인간은 영생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 이집트 벽화는 영원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그저 아름다운 예술품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김진엽 수원시립미술관장

[문화카페] 지역 예술공간 운영하는 아무개의 첫 인사

2010년 즈음 경기도 문화예술의 주요한 흐름으로 대안예술공간의 등장과 약진을 뽑을 수 있다. 당시 모두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그 지역의 대안예술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하나의 이벤트로 느껴졌었다. 안산을 방문하면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를 들렀다가 원곡동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먹고 돌아왔다. 수원에 가면 대안공간 눈을 방문하고 전통과 동시대가 만나는 접점에서 벽화골목을 감상했다. 뜨거운 매 여름, 안양 석수동의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에서 석수아트프로젝트(SAP)가 열렸다. 전 세계의 작가들이 오래된 석수시장의 빈 점포에 스며들어, 낯설지만 신기한 예술적 사건들을 펼쳤다. 그 후 10년 동안 가운데 가슴이 뻥 뚫린 도나스 같은 경기도를 뱅뱅 돌아, 평택시 신장동 미군기지 앞에 서 있다. 2020년 평택 출신의 빈울 작가와 함께 협업공간_한치각이라는 문화공간을 열게 됐다. 오산미군기지가 주둔해 있는 신장동은 그들을 찾아 온 전 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함께 모여 살며 독특한 지역색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만나 지금은 경기도의 이태원이라는 별명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뽐내고 있지만 역사 속 신장동은 기지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산미군기지 일대가 고향인 두 문인이 박석수와 이규황이다. 작품 속에서 그들은 미군에게 소박맞는 누이가 됐다가, 징병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군인이 됐다가, 가족을 위해 궂은일 마다 않던 젊은 아버지이자 대한민국의 청년이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들의 작품 안에는 자신들이 겪었던 기지촌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대한민국의 근대 모습이기도 하다. 신장동의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와 사람이 도시 개발붐과 연로하신 나이로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시대의 증언자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간의 제약이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전염병 상황에서도 협업공간_한치각의 운영을 결정하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2020년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마침내 문을 열게 됐다. 한치각은 건축의 기본재료인 각목의 순 우리말이다. 신장동의 이야기를 담는 기본을 마련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붙인 이름이다. 이 작업은 누구 한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목소리를 보태야 하고 여러 분들이 기록하고 남기는 협업 과정이 필요하기에 협업공간이라는 이름을 더했다. 현재는 예술가와 지역 문화 컨텐츠 발굴, 기록 프로젝트, 전시, 문화예술 프로그램, 축제를 운영하고 있다. 혼자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선배들이 갔던 그 길의 시작점 어딘가에 와 있는 것 같다. 협업공간_한치각도 10년이 지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생강협업공간 한치각 공동대표문화예술기획자

[문화카페] 경문왕 복두장이의 후예

대선 정국이 혼탁한 가운데 비방과 야유가 국민의 이목에 낚싯바늘처럼 드리워지는 형국이다. 배척과 힐난은 당당하고, 수용과 자성의 태도는 미미하다. 대권이 시정(市井)의 무슨 이권인가. 국민 다수가 불쾌, 아니 분노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세상사 모두 단순치 않아 문제다. 그 부박한 현황에 개탄하다가 우리 언론의 지난 모습과 대조하면 어느덧 씁쓸하나마 누그러질지도 모르겠다. 왕조시대에 언로가 보장된 때가 있었다고 해도 언론은 왕권에 예속된 채 그 유지에 그쳤고, 일제 식민시대에는 어떤 비판도 총독부의 통치전략 검열을 거쳐 폐기를 모면한 순치의 여적이었다. 해방 이후에는 정권들이 권력을 유지하려다 독재화하면서 무엇보다 언론을 억압하고 침해했다. 심각한 갈등은 민주화 장정을 촉진했으며 최근의 재판정에까지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우리 언론은 간고의 여정 끝에 겨우 1987년 이후라야 정권의 견제와 자기검열에서 벗어났다고 하겠다. 그런데 2019년에 중국의 반체제 작가 옌렌커(閻連科)가 방한해 광우병 시위를 언급하며 정부와 권력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한국의 언론을 몹시 부러워했어도 우리는 별 감응이 없었던 듯하다. 이미 언론의 각종 의혹 제기를 당연시했고, 혹 허위 조작 사례가 있어도 대수가 아니며 언론들의 상호 검증과 국민의 시시비비 판별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31일에 여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본회 단독 상정을 중단하고, 야당과 숙의 기간을 갖기로 야당과 합의했다. 국가의 파탄을 제어한 다행한 조치였다. 이번 여야의 합의에 고무돼 국민 다수가 소통과 절제로 기존 정치문화를 혁신하라고 제언할 것 같다. 상대를 제압하려는 패도 추구에 국민은 분노할 뿐만 아니라 지겹기도 하다. 내년 대선이 배척과 힐난의 관행대로 치러진다면 여야와 진영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국가의 회복하기 어려운 큰 상처가 될 것이다. 이번 합의처럼 상대를 인정하고 절충하는 정치문화를 조성하며 대선을 치르면 통합지향 정권을 출현시킬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 권력을 담당하더라도 상대를 아무래도 배려하는 노선에서 일탈하기가 저어될 것이다. 새 언론중재법 개정안 마련이 그 시작이 되기를 축원한다. 여야는 여야를 넘어서서 민주 공화체제에서 언론이 무엇인지 새삼 살폈으면 하며, 우리 민중이 저 먼 신라시대부터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삶과 생리의 자연스러운 기본 발현으로 갈망하고 공명해왔다는 지향도 참조하기 바란다. 신라 경문왕의 복두장이(일종의 이발사) 이야기. 경문왕의 귀가 자라 당나귀 귀가 됐다. 그만이 알았고 평생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죽기 직전의 와중에도 그는 자타 억압에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서라벌 입구 도림사의 대나무 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 우리 임금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러고 나서야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었다 .(삼국유사 권2)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꽃자리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어디서 많이 본 문구지요? 저는 아주 오래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처음 봤습니다. 문구의 의미가 강렬해서 당장 머릿속에 새겨 넣었지요. 화장실 깨끗이 써달라는 부탁이지만, 인생사 여러 경우에 두루 쓸 만한 경구로 여겨 그리하였습니다. 인생사에서 자리 참 중요하지요. 평생 서로 자리 차지하기 게임하다 죽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특히 사회생활에서 겪는 수직적 자리다툼은 스스로 벗어나지 않는 한 평생 겪는 스트레스이지요. 계층의 사다리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 그 못지않게 올라가고 싶은 욕망. 이런 것이 마구 뒤섞여 편안한 마음인 날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때로는 긴장도 되고 자극도 돼, 삶이 다 그러려니 하면서 긍정 모드로 되돌아오곤 합니다. 어쩌다 보니 새 직장을 구해 자주 옮겨야 하는 트랙에 몸을 맡긴 지 오래됐습니다. 임기가 차면 다른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불편과 불안이 말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위안이 되는 말들이 있습니다. 앞의 경구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각오를 새롭게 해주는 말입니다. 지금 있는 지위에서 밀려나면 어찌하나 하는 불안이 밀려올 때는 성경 마태오 복음의 한 구절을 불러옵니다. 이처럼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품삯을 두고 다투는 일꾼들을 본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입니다. 누구나 늘 첫째가 되길 강요하는 사회, 꼴찌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 능력우선주의 사회에 울리는 경종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는 사회적 이동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1940년대 세습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미국 하버드대학 입학을 능력주의 방식으로 바꾸는 코넌트 총장의 시도를 소개하고 있지요. 지금은 그 능력주의가 또 다른 계층을 형성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높은 사회적 이동성을 확보하는 일은 공정한 사회의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동성을 강조하다 보면 지금 여기를 소홀하기 쉽습니다. 머문 자리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당장 지금 여기가 중요한데 말이지요. 매사 균형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선은 편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럴 때 저는 지난해 작고한 공연계의 어른이 평소에 자주 들려주던 시 한 편을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가 인생의 좌우명이라며 소개한 구상 시인의 시 우음(偶吟)2장입니다. 팬데믹으로 울적한 요즘, 서로 위로하는 기분으로 이 시를 읽으며 문화카페를 떠납니다 . 1.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2.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100명과 소통하기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운 8월이다. 그런 8월은 언제나 입추와 말복이 이어져 들어오고 칠석도 따라온다. 오뉴월은 약력으로 육칠월이 되니 7월의 끝자락이 아마도 더위의 절정이 되고 8월에 들어서면 염천 더위가 꼬리를 슬슬 내릴 때라고 미리 짐작해도 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랑대면 입 달린 사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두런두런 건너온 여름을 이야기하게 된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한다. 거리두기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오직 연구대상은 소통이란 단어다. 둘러보면 정류장이나 공공장소 심지어 음식점에도 마스크가 답이다 문구는 여전하다. 일 년 반만의 마스크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숨쉬기 편한 마스크, 비말 차단 마스크, 보건용 마스크, 항균 마스크, 덴탈 마스크. 한복마스크, 투명마스크, 식약처인증 국가대표마스크, 급식요리 마스크 등 사람의 입을 가리는 마스크는 다양하게 반응했다. 시민을 대상으로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교육하는 행복예절관도 마스크만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없던 길을 만들어서 함께 걷기를 유도하고 잘 따라오는지 못 오는지를 매일 매주 점검하며 호흡을 같이하는 긴장의 연속이다. 유치원, 초중고,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주중과 주말 또는 수능 후의 프로그램까지 헤아리다 보면 기획하고 진행하기가 만만치 않다. 다행히 주말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단위 체험 프로그램은 인기가 높아 신청이 밀리고 소외계층 지역아동센터는 비대면이지만 반응이 뜨겁다. 특히 초등학생 1학년부터 5학년까지의 여름방학 예절학당은 모집공고 나가기가 무섭게 마감된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열 명 단위 체험학습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는 사자소학 효행 편에 치중했지만, 이번엔 자신의 뜻을 세우고 학습하는 독서법을 강조했다. 김홍도 풍속화 그림 그리기, 민화 가방 만들기, 비석 치기, 손 재기차기 등이 현실적으로 그리 호감 품목은 아닌데도 아이들은 물론 따라오신 학부모님도 그 만족도를 돌아갈 때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이제 성인 대상 100명 소통하기다. 코로나19로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그 역할이 한계에 달해 정말 어디다 코를 대고 숨을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그리하여 개발한 프로그램은 언제 어디서나 일주일 내내 반복해서 들을 수 있으나 혹 내키지 않아도 상관없는 다양한 내용의 열두 꼭지 영상물이다. 다산 정약용의 자녀교육, 초록으로 치유하는 반려 식물, 천의 얼굴 관상학, 걷기 좋은 여행길, 마음 치유 차 명상, 태교 신기 등은 바로 제3기 행복예절대학 비대면 가을강좌다. 나는 매일 수강생들의 수강 뒷글을 읽지만,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9월의 첫째 목요일 오전 한 꼭지가 올라가면 다음 주 목요일까지 나는 100명과 인사하고 소통한다. 코로나가 내게 준 선물이다. 고맙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언어와 권력

여당이 언론중재법을 단독으로 개정하려 하고 있다. 허위 조작 보도와 가짜뉴스를 징벌하는 손해배상을 강화하고, 고의ㆍ중과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명책임을 언론사에 부과하며, 인터넷기사 열람차단청구권 등을 도입한 개정안을 지난달 27일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를 열어 일방 통과시켰다. 야당과 언론단체는 허위 조작 보도의 기준이 애매해 권력과 정부에 반드시 필요한 비판 보도까지 징벌 손해를 남발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언론은 표현의 자유와도 밀접하게 연계되고, 인권과 자유, 학문과 사상의 기초다. 나아가 무력을 대신해 권력 형성과 변동에서 주요 수단이다. 민주 공화체제를 지탱하는 본질인 언론, 그 관련법 개정은 어느 한 쪽의 관점을 초월해야 하기에 여당은 반드시 국정의 파트너인 야당과 협의해 처리해야 한다. 또 여야는 정식으로 토론해 특히 쟁론을 야기하며 시간의 경과가 요구되고 번복이 발생할 수도 있는 허위 조작 보도와 가짜뉴스를 판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제시하고 여론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한편 기사도 언어이기에 작성과 독해에서 의견뿐 아니라 사실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근년 이래 정치 공방에서 객관 해석이나 심지어 재판 결과가 출현해도 여전히 당리당략이 개입된 해석을 견지하는 사례들이 있다. 여당의 이번 개정안은 그 고질을 해소할 규범이기보다는 오히려 분쟁을 확대할 수 있어 계속 일방 강행한다면 오해가 더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정의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거쳐야 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말썽 많은 이른바 검찰개혁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우리 역사에도 해석의 여지를 당쟁에서 악용한 사례가 많다. 1689년 기사환국 당시 인현왕후가 폐출 돼 민간 사가에 방치됐다. 잡인들이 담 너머서 엿보며 기웃거려도 폐비를 두호하는 어떠한 언론도 역률로 처리하겠다는 숙종의 단호한 기세에 노론 포함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리(主理) 성리학자이기도 한 갈암(葛庵) 이현일이 전일의 왕비를 별궁에 거처케 하여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로 상소하면서 爲設防衛, 謹其糾禁(경비를 세워 잡인 접근 금지와 보호를 정중히 해야 합니다)이라고 했다. 1694년 갑술환국 이후 노론은 그 구절을 왕비를 모해한 불온한 의도의 말이라고 해석하며 갈암을 명의죄인으로 규정했다. 그 구절은 전후에 한 광무제와 송 인종이 폐출한 황후를 대우한 고사와 양식과 땔감도 지원해야 한다는 건의도 병렬돼 있어 문맥으로도 예우의 의도가 분명하였다. 하지만 노론은 그 해석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망국 직전인 1908년까지 갈암을 국가의 죄적(罪籍)에 유폐했다. 정적 남인의 대두를 대대로 견제하고 성리학의 다른 해석을 집요하게 부정하는 장치였다. 대선 정국 초입부터 그 비슷한 비열한 정략의 해석들이 국민의 이목을 어지럽히고 있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문화카페] 한국인 DNA에 예술성 없다?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S씨의 리사이틀에 참석했다. 정성껏 준비한 멋진 프로그램의 감동적인 연주를 감상하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73)이다. 그는 한국인 DNA에 예술성 없다라는 충격적 발언으로 논란이 된 인물이다. 한 개인의 음악적 표현은 복합적인 문화적 습성에 따른 전통에서 시작된다. 이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예술에 대한 예의다. 주커만의 동양계 연주자들에겐 노래 DNA가 없다 발언은 다양성의 무시에서 생겼다. 동양인들은 지나친 표현을 절제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해 왔다. 그것은 다른 민족이 가질 수 없는 매력적인 소통방법 중 하나다. 피부색에 따라 음악의 우월성을 비교하는 것은 삐뚤어진 시각을 가진 자들의 의견에 불과하다. 이번 사건의 중심지인 미국에선 형식적으로는 인종, 성별, 연령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은연 중 가지고 있는 인종차별적 의견을 발설할 때는 이어지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꽤 오래전부터 미국 음악시장 주류는 유대계 출신이 리드하고 있다. 근래 들어선 뉴욕과 미국 동부 음대 학생들은 동양계가 주류를 이룬다. 세계콩쿠르에서 아시아 출신 연주자들이 대거 상위 입상을 하고 있다. 유대계 연주자들은 이전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다. 커다란 변화다. 한국의 연주자 양성을 위한 조기교육의 훈련방법은 때로는 혹독하다. 반복적인 훈련으로 기술적 수준은 오르겠지만 음악의 깊은 느낌을 전달하는 부분에서 미흡할 수 있다. 이는 노래가 실리는 예술성을 기본기가 성숙된 후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하는 훈련방법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도 이런 방식의 훈련을 시키는 유대계 선생들을 많이 봤다.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지휘과 지원생들의 출신국과 예술성을 조합해 보면 각양각색이다. 일정 공식을 산출할 수 없다. 유대계 학생을 차별한 적이 결코 없다는 전제로 돌아보면 유대계 지원자가 최종 합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동양계 학생들이 우월한 예술성을 발휘한 경우가 많다. 악기를 다루는 유대계 학생들도 기술적으로만 우수한 것에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유대인들도 우리와 같이 나라를 잃고 박해를 받으며 생존을 위해 버텨온 처절한 표현이 그들의 음악속에 있다. 그들은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애환이 실린 방법으로 다르게 노래할 뿐이다. 주커만이 공개적으로 발설한 동양계 음악인에 대한 선입견을 통렬하게 뉘우치고 오류를 전향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교육계에서의 활동과 수입은 포기하고 혹독한 연습을 통해 전성기 기량을 가진 연주자의 길로 매진하는 것이 현명하다. 무대에서 악기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연주자와 달리 교육자는 인성, 사랑, 끝없는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S씨와 같은 한국 음악가의 연주에 참석해 편견을 깨트리는 행운을 갖기를 바란다. 함신익 지휘자ㆍ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어느 화가의 노익장

노익장(老益壯)은 나이가 많음에도 젊은이 이상으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노인을 일컫는 말이다. 중국의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전하는 이야기다. 나이 60이 넘은 대장군 마원이 반란군 진압을 위해 출전을 자원하자 광무제는 전쟁에 나가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며 만류한다. 이에 뜻을 굽힐 마원이 아니다. 그는 비록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도 갑옷을 입고 말을 탈 수 있으니 늙었다고 할 수 없다며 출정을 강행한다. 노장의 단단한 결기가 느껴진다. 노익장은 평소 마원의 좌우명이었다. 대장부가 뜻을 품으면 궁할수록 더욱 굳세고, 늙을수록 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마원은 이런 평소의 다짐을 난국을 맞이했을 때 유감없이 발휘하는 용기로 실천했던 것이다. 한 때 자주 쓰이던 노익장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세상이 많이 변했다. 요새 마원처럼 나이 60을 내세우며 노익장을 과시했다간 바보 취급받기 십상이다. 기대수명이 한참 높아지다 보니 여든 살은 돼야 노익장 소리를 들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생애 꼭 치러야 할 통과의례였던 61세 회갑연(回甲宴)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세태가 변했다고 노익장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니 들어서 더욱 빛을 보는 노익장의 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떠나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최근 내게 감동을 준 노익장 한 명을 꼽는다면, 세계 첫 우주 관광의 꿈을 이룬 영국 버진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이다. 심한 난독증 때문에 문서를 보지 못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대 다국적 기업을 일궜다. 그런데 올해 그의 나이 겨우 71살. 노익장이라고 부르기엔 아직도 어린 나이일지 모르겠지만, 우주를 향한 만인의 꿈을 현실화시킨 그 도전은 구국을 위해 전장에 나간 마원의 노익장 못지않다. 노익장은 전장과 우주, 정치, 남성의 세계에만 통하는 건 아니다. 창의성이 생명인 예술의 세계야말로 노익장의 보물창고다. 영국 화가 로즈 와일리 이야기도 그 목록에 들어갈 만하다. 1934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나이 87세다. 76세에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신예작가(가디언)가 됐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 세계 미술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으니 이보다 감동적인 노익장 스토리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 노익장이 더욱 와 닿는 이유는 한없이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그림의 세계 때문이다. 와일리는 전혀 때 묻지 않은 아이 같은 감성을 감미로운 색과 형태, 생물, 일상의 이야기, 위트 있는 기법으로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작가다. 그림 즉 회화의 장점을 맘껏 발산하면서 대중적인 방식으로 소통한다. 아흔을 앞둔 이 화가의 노익장이 고양 일산의 아람누리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터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올여름 당신의 휴가계획은

손서란 해가 바뀌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해 감내해야 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답답함으로 사람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다. 더욱이 요즘처럼 축축하고 더운 날이면 시원한 바다 풍경이나 깊은 숲 속 청량한 공기가 무척 그리워진다. 이명애 작가의 신간 휴가는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은 요즘 사람들의 욕구를 잘 드러내 옴짝달싹 못하는 요즘의 시기와 계절에 썩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표지를 넘기면 만나게 되는 주인공은 두툼한 겉옷을 입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내뿜는 한숨과 잔뜩 움츠린 주인공의 낯빛은 온기 하나 없는 푸른빛이다. 계절이 바뀐 줄도 모르고 입은 두터운 겉옷 차림의 주인공은 기차역 휴게실에 앉아 음료를 들이켜고서야 겉옷을 벗고 잠시의 휴식을 취한다. 잠깐의 휴식 속에서 만난 고양이를 따라 바다에 도착해 피서객으로 북적이는 백사장도 거닐고 바닷가 갯바위 위에 앉아 사람들 속에 있지만, 주인공의 낯빛은 여전히 푸른색이다. 열기로 가득한 바닷가 사람들 사이를 거닐어도 왠지 함께 동화되지 못하고 소외된다. 휴게실에서 만났던 고양이를 따라 바닷가 숲 속으로 발길을 옮기며 수풀 사이도 거닐고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도 만나며 흐르는 물에 세수하자 조금씩 낯빛은 푸른빛이 없어지며 미소가 지어진다. 그제야 주인공은 물속에 뛰어들며 몸을 담그며 온전한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온몸을 감싸는 시원한 물,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광활한 하늘에 붉게 물든 노을은 주인공에게 긴장을 털어버리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 된다. 많은 사람이 겪는 일상의 벗어날 수 없는 긴장과 초조는 사람들이 사색할 수 있는 시간뿐 아니라 정신적 여유를 앗아가 살아 있음을 잊게 한다. 한쪽은 일이 많아 힘들어 죽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일이 없어 심심해 죽겠다고 하니 일에 치어 에너지가 소모됐거나 일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현실에서 오는 무력감과 무기력은 어쩌면 같은 결인지도 모르겠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감성이 고갈될 때, 감정의 조직들이 너무 촘촘해 여유가 없거나 너무 느슨해져 좋은 기운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 한 번쯤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 전혀 다른 시간을 가져보면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기운이 차오를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고, 나는 방전되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충전되는지, 자신의 루틴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저마다 휴가의 시기가 다양한 것처럼 각기 다른 휴식의 방식이 존재하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충분히 충전할 시간이, 파란 그림자가 노랗게 변하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휴가는 바쁘게 살아가는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돌아보며 새로운 생기를 얻는 것은 어떨까.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수원과 화령전

수원 화성행궁은 정조가 세웠으나 화령전은 순조가 세운 정조(正祖)의 영전(影殿)이다.화령전은 1800년 6월28일 정조 서거 이후, 순조 원년 4월29일 완공해 정조 어진을 봉안했다. 순조 4년에는 화령전에 응당 행해야 할 절목인 화령전응행절목(華寧殿應行節目)을 개정해 수원 유수로 하여금 사맹삭과 탄신제, 납향제를 정기제향으로, 그리고 고유제, 이안제, 환안제를 부정기 제향으로 올리도록 한 곳이다. 화령전은 1963년에 사적 115호 지정됐는데 2019년 8월29일 문화재청에서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을 보물 2035호로 지정했다. 그 이유는 당대의 궁궐건축기술이 적용돼 그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성행궁에 가서 봉수당 지나 낙남헌을 가면 화령전이 보인다. 직접 보면 왜 보물이 됐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행궁은 일제 피압박 피해로 그 모습을 모두 잃었다가 2003년 복원을해 원형에 가깝게 완성했으나 그때의 건축물은 아니다. 그러나 화령전은 220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 잘 유지돼 있다. 조선시대 궁 안에는 선원전과 영희전이 있었다. 영희전은 조선시대 여섯 임금의 어진(태조, 세조, 원종, 숙종, 영조, 순조)을 봉안한 전각으로 해마다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납일에 제향을 올렸으며, 선원전은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익종, 헌종의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친히 삭망에 분향배례하며 각 임금의 탄신일에는 다례(茶禮)를 지냈다. 그러나 이제 명절다례를 올리던 영희전도 없어지고 임금의 탄신일에 다례를 올리던 선원전은 궁내의 유물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이고 있을 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수원화성 화령전은 정조어진이 모셔져 있다. 거기에다가 화령전은 순조 재위 34년 기간에 열 번의 행차와 친제가 있었다. 수원은 정조의 도시요 효의 도시라고 수원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도시 자체가 증명하고 있는 사대문과 성곽이 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능행차, 혜경궁의 진찬연, 무예24기, 과거별시 등은 실로 엄청난 역사의 도시가 되고 해마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정조대왕을 기리는 잔칫날이 된다. 수원은 정조임금님을 보유한 도시. 임금님이 모셔진 화령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부각될 음식, 복식, 의례, 무예, 음악, 궁중무용, 과거시험 재연 이 모든 국보적 종합예술을 어느 마을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있겠는가. 실로 무서운 도시요 미래가치를 가장 보장받을 도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우리는 아침에 집 나설 때 부모님께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한다. 수원화성문화제를 시작하면서 먼저 화령전에 고하는 의식은 왜 안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고유제가 어디 예산이 있어서 하고 없어서 안 해야 될 일인가. 보물이 된 화령전에 잔치가 끝나도 차 한잔 물 한 모금 올리지 않는 것은 효의 도시라 할 수 없다. 화령전을 패스한 축제는 축제라 할 수 없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적폐

우리 인간은 역대로 재난을 겪으며 삶의 한계를 인식하곤 하였다. 하지만 미물은 경악만 하지 않았다. 자타의 불행에 공포와 연민에 시달리며 그 개선을 거듭하였다. 비극 관람에서만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았다. 재난은 종교와 과학의 형성에 일조하였고, 정치와 권력의 전개에서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여겼던 천재(天災)는 과학과 기술로 오늘날 기대 이상의 제어가 가능한데, 노력하고 각성하면 예방할 수 있을 수 있다고 여겼던 인재(人災)는 형태를 달리하며 별 개선 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 역시 우리가 매번 성찰해온 아이러니이며 그 환골탈태 시도에도 자신이 없는 듯하다. 최근 광주(光州)에서 야기된 건물 붕괴는 우리를 다시 비애로 사무치게 하였다. 처참하게 돌진하듯 무너져 내리는 시멘트, 순식간에 사라지는 버스, 자욱한 먼지에 묻힌 비명. 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무도한 참사를 겪어야 하나. 또 불법하도급 등 원인과 안전관리 강화방안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 인재의 저변에 도사린 원흉은 그것들이 아니다. 부당이득 도점(盜占)과 강점(强占)이란 사실을 우리는 안다. 부정한 돈의 개재가 의심스런 가운데, 마땅히 들여야 하는 기초비용까지 줄이고 감행한 이욕의 연쇄가 야기한 인재. 그래서 사고 사건이라고 하기 어렵고, 굴착기 기사 구속? 그는 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2014세월호 참사가 그 선사(船社)와 우리 사회의 가슴에 천민자본주의의 주홍글씨 A를 각인하였으나 그러고도 같은 성격의 인재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6구의역스크린도어참사, 2018태안화력발전소참사, 2020이천물류창고건설현장폭발참사, 지난 4월 평택항컨테이너참사 등등. 중복되지만 근본문제를 분명히 하자. 참사들의 발생에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부당이득을 챙기는 인간의 무리한 욕심이 그 복마전의 주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더라도 이런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럴수록 우리는 삶을 사랑하고 책임지는 도리로 그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그런 비리를 우리 사회의 기본 적폐라고 문제시하고, 내년 대선에 매이지 말고 다각도로 그 청산에 나서기 바란다. 이 청산에 여야와 진보 보수가 따로 없고, 아무리 빨리 해결하여도 빠르지 않으며,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지 않은가. 중대재해처벌법도 살펴 보완하고, 관련된 각종 악착 기생(寄生) 비리를 모조리 근절하는 후속대책을 강구해 시행하기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법제만으로는 과도하고 부당한 이욕에서 야기되는 인재를 모두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우리는 고개를 흔들고 자신을 성찰하며 절제의 미덕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경청하면서도 경계하여야 한다. 실패하기 쉽고 새삼스러우며, 위선과 자기기만이 될 수도 있는 이 토로가 지겹기도 하고 각성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는 결국 자신에게 도전하는 용기가 계속 필요할 것이다.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그 좌절과 도전의 반복을 아예 인간 삶의 실존적 부조리라고 지칭하며 용기를 북돋는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 시인

[문화카페] 매킨토시와 음악

1980년 대 유학을 떠난 후 처음 접하는 것들에 대한 문화적 충격은 컸다. 익숙하지 않은 영문타자기에서 더 익숙하지 않는 영어로 씨름하던 과제물들을 1984년에 등장한 매킨토시 컴퓨터 앞에서 쉽게 해결하는 신기함은 놀라웠다. 키보드, 마우스, 플로피디스크 등 새로운 도구들은 신기했다. 컴퓨터를 사용하려는 학생들은 대학내의 컴퓨터 랩을 긴 줄로 메웠고 학기말 기간에는 제한된 시간만 허용되는 컴퓨터를 확보하기 위해 밤 잠을 설쳤다. 워드프로세서의 기능으로 시작하여 개인용 노트북으로 발전하고 1994년에는 인터넷의 사용이 일반시장으로 들어왔다. 불편으로 인식하지 못하던 기존생활의 패턴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고 편리한 것을 찾아내는 급격한 변화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이 인간세계를 어디로 데려갈지 상상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현대사회에 사는 누구도 이제는 기초적인 컴퓨터 기술을 습득하지 않으면 불편한 시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기본적 요소들을 남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만큼 새로운 시대의 행렬에서 뒤 처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 당의 대표가 정치지원자들에게 기본적인 시험을 보게 하겠다는 발상은 새롭다. 보좌관이 간추려온 자료들을 읽는 정도 또는 분석하여 올린 통계들을 앵무새처럼 낭독하는 형태의 올드방식으로는 시대에 둔화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신기술을 습득하는 현대생활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인터넷이라는 촘촘한 그물은 온 세계를 하나의 줄로 엮어 놓았으며 피할 수 없는 한 울타리 안에서 살게 하고 있다. 지난 40여년 간의 지구의 변화는 천지창조 이후 가장 급격한 변화라고 말 할 수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의 40여년을 서방세계에서 지내온 유학생활과 전문연주자 로서의 활동을 돌아보면 학생시절 처음 접한 것은 매킨토시 만이 아니었다. 현대음악이었다. 새로운 양식과 구조, 상상을 초월한 언어와 기법, 익숙하지 않은 화성과 별난 리듬 등의 창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개성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음악을 말한다. 이런 음악들과 친근하게 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음악산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음악은 과학기술과 상호관계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이 귀에 익숙한 작곡가들의 음악만을 고집하는 청중들이 있고 그들은 현대음악의 연주에 왜 우리가 이런 음악에 입장권을 내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 라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음악감상자의 실제경험은 연주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사실, 현대음악은 난해하다. 그 이유는 작곡단계에서부터 감상자의 현상학적 경험에 대한 친절한 고려를 제외시킨다는 면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21세기 작곡가들이 18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방하듯 친절하게 써내려 간다면 아직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깊은 산속 동굴안에서 과학기술과 차단된 상태로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연성의 도입으로 절충이 필요하다. 작곡가들은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작품의 독창적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지만 매킨토시의 발전의 흐름과 같이 처음에는 사용하기 난해하지만 익힐수록 편하고 줄 서서 찾게 되는 객관적 동질감의 요소들이 노출되어 1회용 연주가 아닌 지속적연주를 요청하는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접하고 싶다. 함신익 지휘자ㆍ심포니 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이왕이면 추임새를

판소리는 매우 독특한 우리의 전통 극음악이다. 주로 소리꾼 한 사람이 부각되다보니 1인극으로 알기 쉽지만 북 반주인 고수의 역할이 커 2인극으로 보는 게 맞다. 판소리에서 고수가 첫째로 중요하며, 명창은 그 다음이라는 뜻으로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고 한다. 반주자의 비중을 고려한 말이다. 문외한이 극장에서 판소리를 좀 더 재미있게 보려면 미리 구성 요소를 알고 가는 게 좋다. 사설은 판소리 노랫말이다. 연기자인 소리꾼은 이를 주로 소리(노래)로 표현하는데, 극 진행 중 상황 설명이나 장면 전환 등 노래보다 말로 표현하는 게 좋을 때가 있다. 이런 부분을 아니리라고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서양 오페라와 비교하면 판소리 노래는 아리아, 아니리는 레치타티보에 해당한다. 우리 판소리에는 이 외에 흥미 있는 요소가 몇 가지 더 있다. 너름새라고도 하는 발림은 소리꾼과 고수가 사설과 소리의 가락에 따라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몸짓을 말한다. 부채는 소리꾼이 발림을 하면서 유용하게 쓰는 소도구다. 고수도 북채를 들어 다양한 발림을 구사한다. 추임새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극 형식의 하나로서 판소리의 차별적인 특성을 집약한 자연스런 장치가 추임새다. 소리 도중에 관객들이 얼씨구, 좋다, 잘 한다, 그렇지 등의 감탄사로 소리꾼의 흥을 돋우는 것을 일컫는다. 별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 각자의 감흥에 따라 반응하면 그만이다. 악장과 악장 사이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을 에티켓으로 여기는 클래식 연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판소리가 오랜 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는 관객의 참여가 맘껏 열려있는 이런 개방성 덕택이다. 지난주 말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에서 이자람의 판소리 노인과 바다가 공연됐다. 판소리는 신재효가 체계화한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다섯마당이 바탕이다. 이 원형의 전승은 주로 인간문화재 등 명창들이 맡고 있다. 이자람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춘향가와 적벽가 이수자지만, 정작 창작 판소리 화제작을 꾸준히 내고 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아 그에게는 판소리의 고루한 이미지를 깨고 있다는 찬사 일색이다. 노벨상 작가 헤밍웨이 소설 원작의 노인과 바다는 이씨가 3년 전 첫선을 보였다. 오랜만에 현장 대면으로 치러진 이 공연에서 역시 주목을 끈 것은 관객들의 신명이었다. 이미 준비된 판소리 마니아인양 시시때때로 터지는 관객들의 추임새는 무대와 객석의 담을 헐어버려 하나로 만들었다. 얼쑤!, 좋다, 잘 한다. 추임새 소리가 격하게 극장에 일렁였다. 소리꾼과 고수의 노래와 연기, 반주도 덩달아 고조됐다. 판소리의 추임새를 일상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칭찬이다. 호응과 공감이라 해도 좋다. 그것이 반드시 곁들어져야 판소리가 온전한 공연으로 완성되듯이, 칭찬과 공감으로 완전해지는 우리의 일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판소리 한 편을 보면서 문득 꿈같은 현실을 그려봤다. 우선 공감 결핍은 아닌지 나부터 반성하고 칭찬 모드로 리셋하자고 다짐하면서. 그래, 이왕이면 추임새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오늘 당신의 워라밸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변함없이 길을 걷거나 차를 타거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손에는 여지없이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손에 쥔 휴대전화 안에는 무엇을 보든 소비를 자극하는 이미지와 문구들이 넘쳐난다. IT를 기반으로 한 최첨단 산업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소비자의 관심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알고리즘으로 한 두 가지 검색만으로 비슷한 정보들이 떠오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 데이터에 의해 나의 취향이 결정된다. 화려하거나 단순하거나 소비를 강요하는 넘치는 이미지들은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도 전에 인간으로 하여금 공감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한다.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소비자를 끊임없이 자극해 돈을 벌어들이고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업무를 요구하며 그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 하긴 앞으로 노동자들의 업무조차 로봇으로 대체돼 인간의 노동조차 불필요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비드 칼리가 쓰고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그린 책 누가 진짜 나일까?에서 주인공 자비에는 공장에서 부품의 수량을 계산하는 사람이다. 늘어나는 주문으로 그는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일상으로 자신의 사소한 삶조차 돌아보지 못한다. 물고기는 굶어 죽고 가족에게 안부 전화조차 할 수 없으며 친구를 만날 시간조차 없다. 고단한 삶이 싫어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 순간조차 주인공은 그가 그만두면 난감해할 고용주와 생활 형편이 어려워질 가족을 생각한다. 이미 그는 그 자신이 아니고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의 삶에 익숙해져 있어 그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 자비에가 일을 그만두려고 하자 그의 고용인은 선심이라도 쓰듯이 복제인간을 만들어 그에게 새로운 삶을 권유한다. 복제인간은 그의 업무를 대신하고 그는 자신의 삶을 살지만 자비에는 어쩌면 거꾸로 내가 복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며 모든 걸 두고 어린 시절 그가 좋아했던 바다로 도망치듯 떠난다. 사람이 일하는 것과 삶의 가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의 가치는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기업의 이윤 추구만을 위한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인간적 가치를 상실하고 무력감에 빠지게 되는 주인공에게서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찾고자 만들어진 복제 인간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를 읽을 수 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자비에는 모든 걸 버리고 어릴 적 좋아하던 바닷가에서 짭짤하거나 달콤한 크레이프를 구우면 살아가길 결심하는 선택을 한다. 결국 행복한 삶의 가치를 찾고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삶의 중심이 되어 깨어 있다면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나는 나일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나의 삶의 워라밸은 결국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지만 오늘도 많은 일하는 자들의 뒤에는 그를 바라보는 많은 기대가 그들을 노동의 현장으로 떠민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곡우에 딴 차

차를 따는 시기는 곡우(穀雨) 전후가 좋다고 한다. 곡우는 24절기의 여섯째 되는 날로 청명과 입하 사이 약력 4월20일이나 21일께, 봄비가 내려서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시기다. 이때는 한낮의 햇살이 짧아 힘세고 건강한 땅의 기운이 이파리로 밀고 나오기에 곡우 전후로 차 따는 시기를 정하고 이러한 차는 향이 아름답고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청명은 4월5일께이고 입하는 5월5일께이니 청명과 입하사이의 한 달은 곡우가 되는 기간이다. 우리나라는 이 한 달을 사이에 두고 그해 차 농사를 70% 이상 수확하는 제다원이 제주도를 비롯 해남 강진 보성 지리산 쌍계 화개 등 따뜻한 남도 일원에 분포돼 있다. 기후변화에 따라 그 채취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제다 실습은 입하가 지나야만 환영받는다. 입하 지나 훌쩍 지리산 화개동을 갔다. 섬진강에서 화개동으로 들어서자 길섶에 예쁘고 향기나는 제다원 이름들이 줄을 서서 반긴다. 일면식이 없음에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차를 내어 대접하는 풍토가 자리 잡힌 듯 미안하고 송구할 정도로 차 인심이 넉넉하다. 하동의 오월은 온통 차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차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찻자리대회가 열리고 차 겨루기대회 등 하동 야생차문화축제는 전국에서 차인들이 관심을 두고 모이는 달이다. 그러나 수준 높게 준비한 올해 아름다운 찻자리는 썰렁했다. 코로나19로 관객이 없어 둘러보는 내내 안타까웠고 주최 측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오랫동안 무거웠다. 이러한 시름을 달래준 것은 녹차로 만든 발효차로 쌍계의 녹찻잎으로 홍차를 만들고 황차 흑차 백차 청차를 만들어 특허를 낸 홍차 명장님의 차 강의였다. 밤늦도록 시음하며 감동을 연발하니 명장님 피곤도 잊고 내내 열강하셨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이파리가 작은 소엽종으로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녹차를 만들지만 차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다양한 기호에 발맞춰 발효차는 물론 가루차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화개동 어디에서나 선 채로 그 자리에서 한번 빙 둘러보면 차나무에 햇볕이 들지 않도록 채광막의 차밭이 상당히 눈에 띈다. 알아보니 예쁜 색깔의 녹차가루를 만들기 위함이고 이 가루차는 스타벅스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끔 차를 소개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이 차는 야생차로 손으로 덖은 수제품이라고 하며 재배차나 기계로 만든차에 비해 그 가격이 높음을 매우 강조한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야생차나 재배차는 모두 밭이나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구분을 짓는 일은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야생이나 재배 모두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지 않고 밖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또 수제차를 기계로 만든 차에 비해 월등하다고 하는데 그것 또한 옳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차를 만드는 일은 차를 우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차는 누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법으로 비벼냈는지 그 과정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좋은 차는 좋은 사람과 같다고 했다. 도시는 물론 시골 구석구석까지 커피 소비 세계일등 한국이 돼버린 지금 몸도 마음도 편안에 들게 하는 건강한 우리의 곡우차가 결코 커피에 밀리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문화카페] 이 시대의 정명을 위하여

청년들이 좋아하는 TV 교양프로그램의 삼국지 조조 편에서, 이 시대는 유학(儒學)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거세된 상태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다. 유학이 인격과 권력의 도덕화를 지향하지만, 신분사회의 산물이며 개인의 개성과 자유에 별 관심이 없고 남성중심의 시각에서 성차(性差)를 차별로 이끌기 쉬우며 솔선수범을 부각하지만, 권위와 서열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 유학을 역성혁명의 명분으로 내건 조선의 500년 왕정이 실제 그러지 못했으며 후기에는 기득집단의 교조주의로 고착돼 근대를 지향하는 다른 학문과 사상을 억압했다. 두 외척가문의 세도정치를 야기하고 민중의 정당한 봉기를 민란으로 규정하는 틀이었다가, 결국 나라를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오류와 귀결이 유학의 그 가치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그 가치를 정치와 일상에서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명분으로 삼고 실제로는 그 역행(逆行)과 악용(惡用)을 일삼은 위선(僞善) 세력 때문이었다. 역설이 아니면서도 역설인 이 문제가 진실이며 유학의 한계라면 한계요, 죄라면 죄다. 1910년 망국에 직면하자 막심한 피해자였는데도 오히려 역사와 민중에게 자결로 사죄한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 1842-1910)와 매천(梅泉) 황현(黃玹 : 1855-1910) 등의 염치에서도 우리는 유학의 진짜 실천을 보며 감동에 젖는다. 공자는 유학 가치의 실현에서 위선을 우려하며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정명은 명분과 실제의 일치를 거듭 강조한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위치와 직능에 그 이름대로 충실해야 삶에 진정성이 있고, 국가와 가정의 안정과 발전도 기약할 수 있다는 논리며, 그 일치를 이루는 소양은 역시 인의예지신이었다. 오늘 우리 사회에 비리와 범죄가 연속 발생하고 있다. 제어하고 징벌하는 제도와 법이 없어서인가. 악당을 능가하는 계략으로 악당을 제압해도 악당이다. 그리하여 유학의 오랜 주장, 유학의 그 가치들이 제도와 법과 융합해 질서를 형성해야 보다 나은 인본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의 화두인 공정도 인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통합과 복지 확대도 그렇다. 왕조시대에 유학 선비들은 힘이 없었지만, 이 시대의 시민들은 권력의 폭력에도 더 이상 속수무책이 아니다. 자신의 개성과 욕망을 분출하며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 과학과 기술과 경제와 매니지먼트가 세상을 유력하게 이끄는 시대, 4차산업과 AI가 대두되는 시대일수록, 사회와 관련된 개인의 수신(修身)을 강조하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 휴머니티를 우리 청년들이 추구하게 하려면, 유학의 인의예지신을 그 텍스트로 제공하는 배려가 가장 적합하고 효율성도 높지 않겠는가. 다만 유학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비판되면서 인의예지신 구현도 그 조건과 의의가 조정돼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도 마르크시즘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페미니즘과 국제사회를 또 동요시키는 시오니즘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삶에 관류하는 다른 가치들과 어울리면서 일상에서 그 실천이 가능한 행동양식(樣式)들이 무엇인지, 이 시대의 유학자들과 관련 기관들이 앞으로 더 활발하게 제안을 지속하기를 기대한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ㆍ시인

[문화카페] 어머니

베토벤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고 아들에게 돈벌이를 시키려고 11세때부터 생계형 연주를 시켰다. 베토벤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레나 케베리히는 이런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감싸주었다. 베토벤이 인류역사에 가장 훌륭한 음악가가 된 것은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다. 22살의 모차르트는 소년 시절 천재로 인정받고 대성공을 거둔 파리에서의 화려한 복귀를 꿈꾸며 어머니 안나 마리아와 함께 파리로 향한다. 어머니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고 아들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파리에서 성인이 된 모차르트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빛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파리의 남루한 호텔방에서 아들은 허기에 지친 어머니를 하늘에 보낸다. 어머니는 위로의 손길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최후의 피난처이다. 내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떠 올리고자 창가를 자주 바라보지만, 그 많은 사랑의 순간들을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다. 사랑받음이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특별한 것이 아닌 보편화 되었기 때문이다. 막내인 나의 손을 잡고 시장을 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을 기억한다. 동네시장에서 콩나물 한 움큼 사서 여섯 식구가 국 끓여 먹던 시절이다. 미아리고개 넘어 삼양동 달동네에서 피아노교습소를 찾아 1시간 이상 걸어다니며 피아노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골짜기에서 우수하다고 소문난 선생님을 찾아 헤매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첫 레슨시간에 어머니손을 잡고 산동네 길을 내려오던 1960년대의 삼양동은 익숙했던 옆집이 무허가 건물로 철거되어 하루 만에 없어지던 시절이다. 새 학년이 되면 작성하는 가족신상란에 부모님의 학력을 적는 칸이 있었다. 어머님의 학력이 국졸 (초등학교 졸업) 또는 국퇴 (초등학교 중퇴) 인지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국졸이라고 쓰는 편이 조금 나아 보여 그렇게 쓰곤 했다. 어머니가 중학교도 나오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다. 나의 어머니는 50세에 중풍으로 쓰러진 후 기적적으로 몇 개월 후에 일어났지만, 반신불수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한쪽 몸이 점점 기울어지는 상태로 88세까지 사시면서 하루도 재활을 게을리하신 적이 없다. 불구의 몸을 철저한 관리와 운동으로 극복하시고 모든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신 위대한 챔피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어머니가 쓰러지시던 그해, 나는 군대에 입대하였다. 겉으로는 많이 울었지만 우환이 있는 집안을 떠나는 것이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제대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또 다른 피신이었다. 가족들이 유학에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적극적인 찬성을 하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뿐이었다. 유학비용을 염려한 가족들의 판단을 뛰어넘는 무학력 어머님의 선택은 위대하였다 가라우, 우리 신익이래 뭐든 할 수 있지 안카써?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내로 빈궁함 속에 여섯 식구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인 달동네의 가난과 헐벗음에서 훌쩍 떠나고 싶었던 적도 많았을 것이다. 나를 품에 안아 주시던 어머님을 내가 성인이 된 후 꼭 껴안고 하룻밤도 지내지 못한 불효자이다. 어머니가 위급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여 어머니의 손을 잡았으나 그 손은 차가웠다. 오늘도 어머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를 향한 그 사랑의 눈길을 잊지 못한다. 어머니는 내 음악의 본질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그리움이 내 음악을 존재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어디서도 다시 찾을 수 없다. 함신익 심포니송 예술감독

[문화카페] 인생극장의 배우들

#배우1 : 필자인 나는 배우다. 정확히 말하면 배우 호소인이다. 일간지 연극담당 기자일 때 연극 출연을 꼭 하고 싶었다. 이 뜻을 기특하게 여긴 저명한 연출가가 기회를 줘서 배우가 됐다. 대학로 어느 대극장 무대서 데뷔했다. 쟁쟁한 출연진 틈에 끼어 기자 역을 열연했다. 분장을 하고 배우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정이 복받쳤다. 이후 순정한 연극 사랑이 짙어졌다. #배우2 : 변호사 선배도 배우다. 첫 출연이 아직까지 마지막인 나와 달리 꽤 이름 있는 연극과 영화에 수차례 출연한 베테랑이다. 주연급도 있지만 대부분 단역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광역시 연극에 아역 출연이 계기가 돼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섭외가 뜸한 요즘도 언젠가 불러줄 날을 고대하고 있는 준비된 프로다. 그 뜸한 이유를 묻고 놀리면 몸값이 오른 탓이라고 응수한다. #배우3 : 다음은 진짜 배우 이야기다. 아무리 단역이라도 배우1과 2의 연기가 가짜일 리 없다. 여기서 진짜라 함은 참을 뜻한다. 참 배우, 배우다운 배우. 어느 작품이든 역할과 직분에 빈틈이 없는 배우를 나는 참 배우라고 부른다. 올해 여든이 된 배우 박정자는 참 배우다. 지난주 막 오른 팔순 기념 공연 해롤드와 모드는 그 증거물이다. 극 중 19세 청년과 교감하는 박정자는 사뿐사뿐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는 진짜 배우다. 한자로 배우(俳優)의 배자는 사람이 아니다는 의미. 사람이 아니면 신이어야 한다. 연기의 신이 있다면, 연극에서 훌륭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는 신이 아닐까? 배역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페르소나(persona, 가면을 쓴 인격)는 인간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배우4 : 배우 윤여정. TV 브라운관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영화 미나리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5천년 한민족 역사의 첫 오스카상의 주인공. 칸느베니스베를린 등 명성 있는 유럽 대안 영화제가 있다 해도, 할리우드 아카데미 영화상은 주류 영화의 정상이다. 여기서 다른 부문이 아닌, 연기상을 탄 것은 가문의 영광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세계의 배우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국격의 차원을 높인 쾌거로 나는 본다. #배우5? : 다섯 번째 이 자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바로 당신, 여러분이다. 우리의 일상은 배우의 삶이나 다름없다. 나를 감추고 상황에 따라 연기해야 하는 배우의 그것. 연기법으로 메소드 연기라는 게 있다. 의사면 의사, 기자면 기자 등 어떤 배역의 정형성에 몰입해 최대한 사실감(리얼리티)을 끌어내는 연기법.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메소드 연기의 현장이다. 리얼해야 덜 까이는 냉혹한 현장. 셰익스피어는 세상은 무대요, 인생은 연극이라고 했으니, 따지고 보면 배우로 살다가는 게 우리의 일생이다.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그 사람의 몫. 보통 사람들은 조연보다 주연으로 살고 싶지만, 그 또한 허망한 일이다. 조연도 됐다가 주연도 되는 게 인생이다. 오스카상 조연상이 주연상과 다를 게 뭐람! 그때그때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올인하면 인생극장의 명배우가 될 수 있다. 윤여정의 오스카상이 우리에게 준 선물 같은 교훈이다. 정재왈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걷다 보면’ 보이는 세상

추위로 인해 빨랐던 걸음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다소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바뀌고 두터운 외투도 벗어 버리는 봄이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일상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스크에 가려 좋은지 싫은지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여럿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금지되고 마주앉아 차 한 잔 나누기도 조심스러워 사람 간의 사이는 멀어져 소통하기 더욱 어려워져간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상념이 고개를 들고 눈 마주치며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공감의 시간이 줄어드니 사람 간에서 느낄 수 있는 온기와 위로는 얻기 어려워 정서는 더욱 메말라가는 듯하다. 이럴 때 훌훌 털고 일어나 걸어보자. 걷다 보면 늘 다니던 골목길 언저리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났던 구멍가게 알바생의 잰 손놀림도 보이고 그 옆집 세탁소 아저씨의 뒷모습도 보인다. 골목 중간쯤 보호자를 따라 산책 나온 강아지의 볼일 보는 모습도 보이고 문 닫은 김밥집 주인의 조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발길이 가는 데로 천천히 길을 걷다 보면 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도 떠오른다. 늘 걸었던 길을 천천히 살피며 걷거나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발길 닿는 데로 걷다 보면 의외의 장소를 알게 돼 놀라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과거 기억들과 교차하며 부끄러움에 괜히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마음에 괜히 뒤돌아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발견과 기억의 연상은 새로운 사유의 시간이 된다. 걷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장소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파악하는 것은 새로운 기록의 파편이 되며 잊고 지냈던 정서에 자극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유들을 두루 살피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는 일이기도하다. 사르락 사르락 바람이 불어. 길을 따라 걸어 볼까?로 시작되는 이윤희 작가의 걷다 보면 그림책은 걷다가 발견되는 길거리 바닥의 이미지들이다. 사슴의 모양을 닮은 바닥의 보도블록, 차량 유도를 위해 세워놓은 고깔은 놀이로 변환되고 칠에 벗겨진 건널목 표시는 쥐처럼 보이 기도하고 새끼오리처럼 보이기도 하며 비에 젖은 도로는 흡사 거대한 거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느릿한 걷기를 통해 보이고 발견되는 것들은 의외의 기쁨을 주며 실리를 따지지 않아 어쩌면 순수로 가는 길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들이 얼마나 많은지. 천천히 걷다 보면 알게 되는 새로운 발견과 성찰의 시간은 스스로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고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시간들이다. 걷기를 통해 얻게 되는 소확행이다. 손서란 복합문화공간 비플랫폼 대표

[문화카페] 사월은 잔인한 달

그럼에도, 사월은 또 왔다. 반듯하게 쭈욱 뻗은 길가로 노오란 개나리 자지러지고 벚꽃 잠시 눈부시게 휘날리더니 비 온 뒤 이제 철쭉 진달래, 튤립, 할미꽃 그야말로 만화방창이다. 오래된 집들이 꽃 속으로 묻혀 들어가 얼얼한 겨울도 화사한 봄도 꽃 잔치에 잠시 주춤거린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은 어김없이 풀들이 수북하게 올라오고 질경이, 민들레, 제비꽃들과 함께 피고지고 지고피는 사월은 잔인하게 무쌍하다. 사월 들어서면서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따뜻한 하오의 햇살을 등지고 쭈그려 앉아 풀을 뽑는다. 하얗고 가느다란 실뿌리가 보드라운 흙 속에서 쑥 길게 뽑혀 나온다. 비 온 다음날은 유독 촉촉한 흙을 털어내며 미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풀들을 한쪽으로 모으며 읊조린다. 그래 봄이어서 너희 세상구경 좀 하겠다고 안간힘 쓰며 비틀고 나오는데 머리채 돌리며 뿌리까지 뽑아 내던져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너희들 도리 없이 뽑혀 나와 봄볕에 말라가면서도 내내 씨앗을 봄바람에 흩날리고 있잖니. 사월의 안산은 큰 행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내 일터가 단원고와 걸어서 10여분 거리여서 그런지 조금은 조용하고 조심스럽다. 나만 그러나 하고 주위를 살펴보면 누구랄 것 없이 해마다 이때 쯤은 비슷한 분위기임을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사월엔 노오란 저고리와 화려한 옷을 입기가 괜스레 민구하다. 416 기억식에서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한 여성이 7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친구 이름 하나하나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면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눈시울을 적신다. 일 년이 지났어도 지칠 줄 모르는 코로나는 우리네 일상을 계속하여 힘들게 하고 우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내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수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일상이 지금은 수시로 조율되고 있으니 학교교육의 추억은 더욱 멀어만 간다. 심지어 올해 입학한 유치원생은 학원운행 버스에 오르면 곧바로 벨트를 매는 전년도 원생들과 현저히 다르다고 사회적응 첫 단추도 익히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사월의 라일락은 향기를 바람에 날리어 곤혹스럽게 하고 꽃피고 난 뒤 무성하게 잎 키우는 목련 그리고 키 큰 살구나무 아래에 심을 꽃씨가 왔다. 방풍, 백도라지, 당귀, 금잔디, 백일홍, 허브 분꽃, 양귀비, 천일홍, 더덕 등 약재에 가까운 씨앗을 동생은 넉넉히 주고 갔다. 시골에서 자란 덕을 야무지게 실천하는 바람에 올여름은 행복예절관이 색다른 꽃들로 한껏 건강해질 태세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사월만 되면 어김없이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1948년 노벨문학상)의 황무지를 떠올린다. 제주 43사건, 419혁명, 416 세월호 참사 등은 엘리엇의 황무지와 수많은 생명을 잃은 사월과 겹쳐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죽은 땅에서 수많은 생명이 단단한 뿌리로 내려 밀고 올라와 온 누리에 향기로 꽃 피울 때 사월은 진정 가장 잔인한 달이 되지 않을까. 꽃씨가 자리 잡을 곳을 골라 약간의 흙을 파고 거기 사월의 꽃씨를 후북하게 심어야겠다. 그 위로 봄비는 토닥이며 내릴 것이다. 강성금 안산시행복예절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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