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자신과 대화하며 다른 이들과 함께 가는 길

이사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얼추 책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지난 해 홀로 되시면서 맏자식인 우리와 살림을 합치기를 바라셨다. 하여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그간 살던 집을 떠나 좀더 큰 평수의 아파트를 새로 얻어 함께 살게 되었다. 먼저 어머니가 이사하셨고, 일주일 뒤 우리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의 이삿짐이 옮겨지자마자 그만 병원에 실려 가셨고, 급기야 허리 수술을 받게 되셨다. 그로부터 스무 날 가량을 입원하셨으니, 그 사이 이사한 아들과 며느리 내외가 오래 떨어져 있던 두 집의 세간붙이들에게 제자리를 잡아주기란 그리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책을 정리하는 데 오래 걸린 까닭은 책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사할 때는 대개 그랬듯 이번에도 또 책 때문에 마음을 다쳤다. ‘어디 기증할 데 없어요?’ 바리바리 싸서 옮긴 책들을 다시 하나하나 풀어서 서가에 꽂는 내 등 뒤로 아내의 무심한 한 마디가 흘러내렸다. 여섯 해 전 이사할 때 그야말로 이천 권 이상을 ‘어디 기증’하는 바람에 지금은 썩 줄었음에도 또 기증하란다. 하지만 서재라기에는 비좁기만 한 공간에다 딴에 다시는 안 볼 듯한 책들을 세워 놓는 남편이 안쓰러워서 하는 아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게 무에 있겠는가. 마음이 상한 것은 실은 꽤 똑똑한 줄 알고 있었던 한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인터넷에 다 있는데 무슨 책이 필요해! 그렇대도 다 본 책은 없애야지. 책을 가지고 다니는 건 허영이야.’ 그렇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서 다 얻어낼 수 있다. 선형적이고 고정적인 기존의 텍스트 형태를 탈피한 인터넷 검색과 하이퍼텍스트는 정보를 주고받는 데 가히 혁명적이다. 특히 최첨단 네트워크 시스템인 하이퍼텍스트는 모든 정보를 상하도 선후도 없이 서로에게 독립적인 텍스트로 존재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사고 체계까지 바꿔낸다. 모든 바닷물이 결국 하나이듯 모든 정보도 서로 통하여 마침내 하나를 이루는 인터넷은 말 그대로 ‘정보의 바다’이다. 인터넷 정보와 그 취득 행위를 책과 책 읽기의 대안으로 보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책 한 권씩과 번갈아가며 씨름해서 얻는 정보의 양하고 인터넷 검색과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얻는 정보의 양이 어찌 비교될 수 있으랴. 오늘날의 인류를 있게 한 지식의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개별적인 안목과 생각을 정리한 역사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그 개별자의 안목과 생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있게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한 텍스트에서 다른 텍스트로 옮겨갔다 오거나 그러다 아예 앞 텍스트를 포기하는 것은 인터넷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다. 이 때 위대한 지식의 역사를 만들어낸 한 인류의 텍스트는 토막만 읽히게 된다. 그의 안목은 툭툭 아무렇게나 잘리고 생각은 잘디잘게 파편화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또 절감하고 만다. 그래서 책, 특히 종이책은 가장 소중한 아날로그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 도서관이었다.” 어린 시절 카네기가 세운 작은 도서관의 책벌레였던 빌 게이츠의 고백이다. 2004년 미국 시애틀 시에는 빌 게이츠의 2,000만 달러 기부로 초대형 첨단 도서관이 세워졌다. “활자매체의 무덤”이라는 도서관을 이렇게 세계는 계속 짓고 있다. 우리 국민 넷 중 하나는 일 년에 한 권의 책도 안 본다고 한다. 그러니 인터넷 사용량이 세계 1위면서도 독서량에서는 꼴찌일 수밖에. 책은 바로 다 읽을 수도 있고, 제목이나 목차 또는 앞부분만 훑어본 다음 나중에 꼼꼼히 읽을 수도 있다. 또 두고두고 밑줄 그은 데만을 펼쳐볼 수도 있다. 모든 책의 내용이 인터넷에 다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사회에 도서관이 필요한 만큼 개인에게는 장서가 소중하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가는 길이라면, 책은 결국 ‘자신과 대화’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이다.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머슴 대통령의 허상

광우병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유령을 사냥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지만 유령의 공포는 확산되고 있다. 광우병 위협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국민을 설득해도 의혹만 증폭시킬 뿐이다.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논란거리다. 전문가들은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것의 책임을 일부 인터넷의 선동과 미디어의 무책임한 보도의 탓으로 돌린다.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없다. 모든 위험은 확률적이다. 확률로만 보자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리는 것보다는 자동차 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동차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문제의 심각성은 광우병 자체의 위험성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본다. 전자의 위험은 허구일 수 있지만, 후자의 징조는 사실이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은 ‘말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실제로 미국을 방문하여 그가 얼마나 일 잘하는 대통령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일거에 쇠고기 수입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철폐를 위해 쇠고기 검역 조건을 완화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쇠고기를 수입하는 선물을 부시 대통령에게 주었다. 이 대통령은 이 거래를 철저하게 장사꾼 마인드에 입각해서 했다. 절대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저번 달 일본 방문길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 먹는 것, 맘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시장이 결정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시장지상주의를 신봉한다면 따로 정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취임 초기 이 대통령은 공직자는 국민의 머슴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새 그의 언행을 보면 그 말이 빈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누구인가? ‘왕회장’으로 군림했던 정주영 회장을 상사로 모셨던 분이 아닌가. 청와대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못한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지시하는 대통령의 ‘말’을 이행하기에 급급하다. 머슴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이 없어야 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결코 머슴이 될 수 없다. 머슴 리더십은 예수님이거나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서 최대이익을 얻으려는 기업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를 교회나 기업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와 기업은 정반대의 논리로 운영된다. 전자가 이타심으로 모인 공동체라면, 후자는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다. 이 대통령은 둘 사이의 모순을 머슴 리더십으로 지양을 하고자 했다. 성급한 판단인지 모르나 그 성과는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고 국민은 직원이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측근들인 ‘강부자’와 ‘고소영’끼리만의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다. 광우병 사태로 이명박 대통령은 탄핵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탄핵의 위기가 역전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에게는 그럴 것 같지 않고, 이는 위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은 명심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실패는 단순히 그의 몰락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는 사실을.

“과거는 낯선 나라다”

어제는 4월28일이다. 어제는 과거로 사라졌고 그날의 기억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달력을 보면 4월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일이다. 그런데 400년이 훌쩍 지난 까마득한 과거가 아니라 1986년 그날 서울 신림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날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세진과 이재호가 분신했다. 이 두 청년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중적인 반미 구호였던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제 몸을 불살랐다. 그들은 광주학살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미국에게 있으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미국 철수를 통해만 이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죽음으로 알리고자 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현재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시 대통령은 미군감축 백지화를 선물처럼 주었고, 우리 대통령은 그 선물을 너무나 고마워했다. 오늘날 ‘반전반핵 양키고홈’ 구호를 아는 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며칠 전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에게서 다음의 얘기를 듣고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비정규직 문제로 힘겨운 농성을 벌이고 있던 KTX 승무원들에게 어느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박종철 인권상위원회로부터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로 KTX 여승무원 조합원이 선정됐다는 통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초조해 하고 있던 조합원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서로를 얼싸안고 감격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데 박종철이 누구지?” 거기 있던 누구도 박종철이 어떤 사람인질 몰랐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을 해고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박종철이 누군지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철 사장은 누군가? 1970년대 유신독재에 대항해 민청학련을 조직한 주모자로 사형 언도를 받은 민주투사였다. 그런 그가 이른바 좌파정권인 참여정부의 공사 사장이 돼 노동자를 해고하는 당사자가 된 시대의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지난 일을 망각시킨다. 오늘의 정의를 내일의 넌센스로 만드는 게 역사일 수 있다. 그런 역사에 대항해 기억투쟁을 벌이는 영화를 몇주일 전에 봤다. 김응수 감독이 1986년 어제 분신한 두 열사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만든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독립영화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제목을 단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과거는 박물관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 속에 투영되는 것이다’라는 역설적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어제의 경험이다.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오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민주화된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고 사는 우리는 그런 일상이 만들어진 역사를 망각한다. 그 결과 우리 시대 ‘이념의 정치’는 갔고 ‘욕망의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정치가가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의 집값을 올리는 정책을 펴겠다는 정상배를 국회의원으로 뽑는 국민수준으로는 대한민국 선진화는 결코 이룩될 수 없다. 집단적 기억상실증이 우리를 점점 ‘욕망의 정치’에 빠지게 한다. 과거의 흔적들은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만 집단기억으로서 역사는 소멸하지 않고 존재해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 김세진·이재호 열사가 분신했던 1980년대는 지금 우리에겐 낯선 나라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무의미해진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에너지가 됐다는 사실을 역사로 기억할 때, 그들의 희생은 오늘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들은 죽은 후에도 우리와 함께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청소년 ‘예술 교육’ 시급하다

청소년문제와 관련해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시시때때마다 이들은 우리 주변을 맴 돌며 온갖 분탕질을 치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각급 학교는 학교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뭇매를 맞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새 정부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자 마자 0교시 수업이 어떻고, 우열반 편성이 어떻고, 과거 신물 나게 보아 왔던 패거리 투쟁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다. 학교폭력이 극성을 부리고, 인생을 꽃 피우지도 못한 채 세상을 스스로 등지는 피해 학생들이 있어도, 그 완강한 폭력에 대처하기에 너무나 무력한 이 사회를 우리는 멀쩡하게 두 눈 뜨고 쳐다만 볼 뿐이다. 심지어 교단의 교사들마저 학생의 주먹질에 시달리고 있는 게 작금의 소식이다.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은 교육현장에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고자 하는 전인교육의 정신이 매말랐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어느 교육자도, 어느 학부모도 인성을 계발하고 건전한 민주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전인교육이야말로 나의 제자, 나의 자식을 위해 정말로 중요함을 모르지 않는다. 입시지옥과 학교폭력은 이 시대의 저급한 문화가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물신주의와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집단적 경쟁 히스테리, 불신과 갈등, 증오와 분노 등이 만연해있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저급한 문화가 초래한 재앙이자, 병리현상이다. 이 같은 병리현상은 대중적 요법만으로 치유 할 수 없다. 인간존중의 가치를 구현하는 범국민적 문화예술 교육정책만이 근본적 치유책이다. 문제의 핵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답게 살 줄 아는 교양과 품격으로 이 사회를 재건하는 일이다. 우선 전인교육의 정신을 미래의 주역들이 자라나고 있는 청소년 교육현장에 되살려야 한다. 지·덕·체의 조화로운 발달을 도모하는 전인교육은 예술교육이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페스탈로치, 현대의 아도르노, 존 듀이에 이르기까지 예술교육은 전인교육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경우 고도의 산업화로 인간정신의 황폐화가 대두됐을 때, 예술교육에서 해법을 찾았던 것처럼 정보화의 심화에 따른 새로운 인간소외의 문제를 풀어갈 해법은 조화로운 인성을 함양하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줄 예술교육에 있다. 더욱이 21세기는 문화경쟁력의 시대이므로 창의성, 감성, 이미지 등과 같은 소양을 길러줄 예술교육에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우리 청소년들이 교양 있는 세계 일류시민으로 경쟁력 있는 인생을 개척하게 하려면 지금 당장 그들에게 양질의 예술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은 입시위주 교육에 밀려 예술교육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이외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각급 지자체 등이 주도하는 예술교육 지원사업이 있다. 방과후 학교를 활용한 예술교육지원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들 사업은 대체로 사업의 대상과 범위의 우선순위를 저소득 가정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다문화교육 등에 두고 있다. 이같은 사업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청소년 예술교육에 대한 발상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청소년 예술교육을 명목상의 학교교육이나 소외계층 복지 차원이 아니라 건강하고 품위 있는 민주시민사회와 세계 일류국가 건설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는 학교자율화 시책에 부응해 용기를 갖고 앞장서고, 학부모는 눈앞의 입시가 성공하는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정부 및 문예회관 등 공공문화예술단체는 학교와 학부모를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학교, 학부모, 공공부문간의 긴밀하고 다양한 청소년예술교육의 지역단위 연계 구축이 시급하다.

그린 마일- 파란 이별의 글씨

최근 부녀자 유괴살인, 초등생 성폭행 살인 등 패륜적 범죄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제종 언론 및 시민단체들이 사형제도 및 그 집행의 존폐와 관련하여 다양한 의견들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오랜 기간 찬반의 논리가 명료하게 정리·대립되고 있는 터라 새삼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최근 모 일간지에 사형폐지론 쪽에 섰으면서도 사형집행인의 인권을 논거로 제시한 특이한 주장들이 게재되었는 바, 그냥 지나치기에는 찜찜해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싶었다. 거기에서는 “동물을 죽여도 죄의식을 느끼는데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무리 제도 안의 합법행위라 해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흉악무도한 인간들을 보면 사형이 집행되어야 하나 그 사람들을 죽여야 할 누군가를 생각하면 이것처럼 또 끔찍한 일이 없다”며 논리를 비약시키더니 마침내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형집행 관리도 있다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이상한 사형집행 관리를 슬슬 피한다”는 생뚱맞은 얘기까지 나오는 등 작문의 의도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형벌의 집행을 관장하는 교도관들의 입장을 에둘러 헤아려 주는 마음이야 살뜰하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각인될 수 있는 행형의 이미지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긴요한 현실의 문제를 논의할 때는 출처불명의 전언이나 비현실적 관념론에 매몰되는 우(愚)를 경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행형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교도관이 그 본연의 임무인 형벌집행과 관련하여 불필요한 감정의 유발 및 개입이 제어될 수 있도록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을 강구·운영해 왔었다. 또한 오랜 세월 형벌의 집행에 종사해 온 교도관들은 필요한 사랑과 불필요한 정을 구분하는 지혜를 이미 스스로 터득하고,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므로 더는 이상한 웅변으로 논의의 본질과 쟁점을 흐트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혹여 잘못 전파되어 교도관의 자존을 왜곡·호도하고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할까 염려되어서다. 차치하고, 근자에 다시 열기를 더하는 사형존폐론의 공방은 마침내는 시민적 결단으로 판가름되어져야 할 숙제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차갑고 캄캄한 ‘그린 마일’의 문화적 야만을 지탄하는 의견이나, 또는 목숨 앞에 경건해야 할 의무가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냐는 소박한 분노 모두 일리 있는 추궁이어서 그 선택은 쉽지 않다. 아메리칸 버티고(American Vertigo)의 베르나르 앙리 레비(Bernard Henri Levy)가 “서구의 징벌정신이 오랫 동안 나병과 페스트라는 두가지의 경쟁모델 사이에서, 즉 배척하고 추방하는 권력모델과 인식하고 계산하고 결국 포함시키는, 보다 근대적인 권력모델 사이에서 망설였다”고 앨커트로즈를 앞에 두고 중얼거렸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 차분한 마음으로 결단을 내려 볼 시점에는 이른 것 같다. 영혼을 능멸한 죄에 이르기까지 관대해져 버리면 악을 부추겨 갈 것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바라고 인내하며 같은 하늘 아래 그 죄를 보듬고 설 것인지, 아니면 관용의 임계선(臨界線)을 무시로 침범하는 흉악범들에게서 더는 미련을 접고 아쉽지만 이제 파란 이별의 글씨를 보낼 것인지, 그리하여 차라리 상처받은 영혼들을 돌볼 것인지. 어찌하랴! 이 불편한 진실과 선택 앞에, 명료한 좌표의 설정은 이윽고 국민들의 몫으로 다가들고 말았다.

문예지 원고료 지원제도 폐지의 교훈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7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개원함으로써 예술가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제도가 처음 펼쳐진다. 이 문예진흥기금 프로그램을 대표했던 사업이 ‘문예지 원고료 지원’이다. 어떤 문예지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 그 문예지에 실린 문학 작품의 필자에게 국가가 원고료를 지원하고 또 그 40% 정도의 자사 고료까지 더 얹어 지급하게 하는 제도다. 1970~80년대 이 땅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지원 프로그램은 그러나, 1989년을 끝으로 폐지되고 만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유신 정권에 맞서 자유실천문인협회가 결성(1974년)되는 속에서도 이 제도는 많은 문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노순자의 단편소설 ‘산울음’(1986년)처럼 내용에 문제가 있다 해서 지원금 지급이 거부되는 작품도 여럿이었다. 시행 첫 해에는 현실 비판적인 경향의 계간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이 지원을 받았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은 1987년 6월 이후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재개된다. 1989년에는 ‘빨간 책’에 가까웠던 계간지 ‘실천문학’이 지원 대상으로 포함되지만, 여기 수록된 이른바 집단창작 작품에 대하여는 고료가 지급되지 않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제도 폐지의 이유가 되지는 못하였다. 먼저 지원금의 유용이다. 문예지사 측이 문인들에게 지원 고료를 지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품을 실어준 것만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하는 일부 문인들이 문예지사 측에 가짜 영수증을 써 주고 고료를 받지 않는 일이 흔했다. 일부 시 전문지를 중심으로 자사 고료마저 지급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반면 대하 장편소설은 지원금을 독식하다시피 하였다. 다음은 1987년 이후 지원을 기대하고 급증한 문예지 창간 바람이다. ‘실천문학’까지 지원 받는 실정이라면 그 어떤 문예지도 문예진흥기금 지원에서 예외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때 실무 담당자였던 필자는 제도 자체가 지닌 한계 때문에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 제도는 사실상 자의적일 수 있는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는 문예지의 편집권에 대한 지원 사업이었다. 편집자가 선고한 작품이면 지원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는데, 이렇게 편집자의 안목에 대해 지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었다. 더 나아가 이는 문예지와 그 편집자의 문단 권력 강화에 대하여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결과를 빚기도 했던 셈이다. 그래서 지난 2005년 시행된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지원’ 사업은 문인들에게 직접 고료를 지원하는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이 또한 필자가 모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함께 시행되고 있는 ‘문예지 구입 배포 지원’과는 별도로 문예지에 대한 지원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지만 신중해야 할 것이다. 물론 외줄을 타는 듯한 경영 위기를 딛고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내는 훌륭한 문예지에 대한 지원은 고려할 만하다. 예를 들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자사 고료를 지급하는 문예지를 대상으로 앞서 말한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지원’ 총 금액이나 작품 수와 연동하여 사후에 문예지를 평가하여 지원하는 제도 말이다. ‘2006 문화미디어산업백서’에 따르면 2006년 현재 문예지는 221종이다. 월간 ‘현대문학’이 경영난으로 인한 폐간 위기를 겨우 벗어난 게 2002년이었는데, 요즘도 없어지는 문예지보다 새로 생겨나는 문예지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문예지가 문학 권력의 최일선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변함없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참으로 안타깝다. 환경적 요인으로 순문학의 위기를 논하기 전에 문학계의 자성부터 해야 할 대목이다. 발표 지면이 많아져 좋다지만 함량 미달의 ‘문학교실 신인’, ‘아카데미 신인’ 장사 때문에 공멸해 가는 우리 문학의 앞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땅의 문예지는 18년 전의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로 보는 현실 정치

필자는 역사가지만 TV 사극을 거의 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사극을 열심히 보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그 기사가 실제 뉴스처럼 실리고 네티즌들이 논쟁을 벌이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얼마 전 필자는 처음으로 ‘이산’을 주말에 재방송으로 봤다. 정조가 노론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규장각에 서얼을 등용하려고 하자 노론의 수장인 좌의정 장태우를 위시한 노론 신하들은 등청을 거부하는 시위를 벌인다. 이에 대해 정조는 등청하지 않는 신하들을 해직하고 부서를 통·폐합해 관직수를 줄이는 한편, 새로운 관료를 파격적으로 충원하는 과거시험을 실시한다는 영을 내린다. 노론이 전례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또 반발하자 정조는 시대변화에 맞게 조정을 실용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 사극이 이런 식으로 정조 개혁을 연출하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표방하는 실용정부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사극은 현실을 반영해 과거를 상상적으로 재구성한다. 이것을 보는 역사가는 정조가 과연 그런 일을 실제로 했는지를 따진다. 하지만 시청자는 그런 문제보다는 과거의 권력투쟁에 투영된 당대의 정치현실을 읽는 것에 더 재미를 느낀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당파싸움의 희생자라는 문제의식으로 붕당정치를 철폐하기 위해 모든 당파를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함으로써 절대왕권의 확립을 꾀했다. 이에 대해 드라마에서 장태우로 나오는 실제 인물인 노론의 영수 김종수는 왕의 친위세력은 왕의 신하들이지 조정의 신하들은 아니며, 그런 신하들로 채워진 규장각은 왕의 사적 기관이지 국가의 공공기관이 아니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나 지금이나 정권교체 이후 단행되는 코드인사는 문제가 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은 당연하다. 인사권은 전통시대에는 왕, 그리고 우리시대에는 대통령에게 있다.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최고 통치권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최고 통치자의 영이 서지 않으면 국정운영은 파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정은 왕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인 국가기관이라는 비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한국사에서 정조시대는 우리가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로 해석되지만, 정조 사후 조선왕조는 세도정치로 치달음으로써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개혁군주로서 정조의 개인적 능력이 아니라 그가 없이도 작동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국난들을 겪고도 조선왕조를 500년이나 지탱할 수 있게 만든 기반은 왕이든 세도가든 누구도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방지했던 공론정치의 구조와 시스템이었다. 물론 이로 인해 당파싸움이 끊이질 않음으로써 국론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의 붕당정치는 오늘날의 정당정치와 같은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권력분립을 이뤄냈다. 이같은 측면에서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정조의 개혁을 잃어버린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의 기회가 아니라 붕당정치 구조의 붕괴로 인한 조선왕조 몰락의 계기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승만 이래로 대통령은 절대권력을 추구했다. 승자는 모든 권력을 독식하길 원한다. 모든 권력을 한사람에게 집중시키면 비판은 차단되고 아부만이 넘쳐난다. 한 정당 내에서든, 의회에서든 권력의 독점은 부패와 몰락을 유발한다. 타자란 나의 적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환경이다. 토인비의 말대로 도전과 응전으로 사회와 개인은 발전한다.

축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봄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지방자치제의 본격 실시와 함께 전국에 걸친 축제 붐이 조성됐다. 1991년에서 1995년 사이 150건의 축제가 만들어졌고, 1996년에서 2000년까지 358건, 2001년에서 2005년까지 394건의 새로운 축제들이 개설됐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1천200여건의 축제들이 개최되고 있다. 축제가 많이 개최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 1천200건 정도의 축제들은 사실 대단한 숫자도 아니다. 문화대국답게 ‘축제의 나라’로 불리는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우리로 치면 시·구 수준의 최소 자치단위인 3만여 코뮌(Commune)이 각기 1년에 서너건의 축제들을 치른다고 하니 프랑스 전체로 보면 1년에 10만여건의 축제들이 열리는 셈이다. 축제는 삶의 질과 관련된 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 중에서 볼만한 축제로 1만건 내지 2만건의 축제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비뇽 페스티벌’도 그들 가운데 하나다. 달리 말하면 10만여건의 축제 피라미드 정점의 한 부분이 아비뇽축제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의 축제들은 최소한 50년, 그리고 대부분 100여년 이상의 연륜 속에 자라온 숲과 같다. 상수리나무, 참나무, 전나무, 장미 넝쿨 등이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힘찬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문화 예술의 수풀이라고 할까. 오랜 세월에 걸쳐 조성된 그런 숲이기에 사람들은 즐거움과 기쁨, 신선한 감동과 호기심에 이끌려 축제의 숲을 찾게 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축제들은 몇몇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개 10년 내외 기간 동안 거친 땅에서 고된 성장 통을 겪고 있는 어린 나무들과 같다. 여기에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축제들이 한결같은 닮은 꼴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 축제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다만 공통적인 것을 든다면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축제가 필요하다는 것과 관광산업 개발을 위해 축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예술축제, 관광축제, 민속축제, 농산물 축제, 전통문화축제 등에 관계없이 축제를 하면 당장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을 주민들에게 주고 있다. 그러나 농·특산물 축제마저도 문화적 이미지가 없는 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어렵다. 세월에 걸쳐 잘 숙성시킨 포도주와 같은 축제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몰려오지 않는다. 축제는 문화다. 혼이 담긴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세월과 열정으로 연마하고 가꿀 때 영혼이 깃든 축제의 문화정체성이 형성된다. 이 때 사람들은 그 축제를 찾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축제의 문화정체성 확립이야 말로 우리나라 축제 문화가 당면한 가장 크고 시급한 과제이다. 시작한 지 몇년도 안 됐고 주민들이 축제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데 경제효과와 수익성과 관광산업의 성과만을 성급하게 내세우는 축제 발상은 생색내기에 바쁜 일회성 인기영합주의를 부추길 뿐이다. 1947년 프랑스의 지방 소도시 아비뇽에 ‘젊은 관객을 위한 새로운 연극’, ‘파리의 연극과는 다른 어떤 무엇’을 모색하는 예술가 쟝 빌라(Jean Vilar)가 나타난 것은 ‘공연예술의 아비뇽 시대’를 연 대사건의 시발이었다. 그의 목적은 아비뇽의 경제 발전이 아니었고 관광산업은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올해로 62회를 맞이하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인구 9만의 도시를 먹여 살리는 경제의 원천이 됐고, 20일 동안의 축제기간 중 방문객들만 10만여명에 이르는 예술관광도시로 아비뇽을 탈바꿈시켰다. 이제 아비뇽은 세계연극의 수도가 됐고 프랑스의 자부심이 됐다. 우리나라 축제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입에 올리고 싶을 때는 꼭 아비뇽을 먼저 생각해 볼 일이다. 문화·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면 당장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 것 같으나 축제의 문화정체성을 가꾸고 연마하려는 지역 지도자와 주민들의 확고한 의지와 인내심, 그리고 적극적 참여가 있다면 10년, 20년 후 우리는 분명 한국의 아비뇽 효과로 보답받을 것이다.

공자(孔子)의 공부법

선진화시대 실용주의가 팔달문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장안문 밖 처참했던 화재를 가슴에 묻은 ‘행복한 사람들’이 오늘 이 거리 한 귀퉁이 ‘대장금’에서 다시금 얼굴들을 맞댄다. 우리는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생활사를 이야기하고, 그리고 안양 초등학생의 실종 사건을 조금 더 길게 토론한다. 하늘의 명령을 알아차려야 할 나이를 훌쩍 넘겨버렸으니 쉽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당연할텐데 그 이야기를 씹고 또 씹는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물증을 둘러싼 실증주의에 대해 논하고, 소아에 대한 심리학이 어쩌고, 도덕이 어쩌고, 그러면서 마주보는 선량한 얼굴도 의심스러워지고, 그 논리도 목소리도 점차 공허해져 간다. 마침내 그런 험한 일을 용하게도 당하지 않고 너무 많은 날들을 살아왔고, 거기다가 바람에 흘러가는 홀씨처럼 또 피붙이까지 모질게 붙들고 있는 화상이 홀로 서서 헐떡거린다. 예전 같았으면 권력이니 자본이니 체제니 구조니 하며 벌써 이야기를 끝냈어야 할 터이다. 그런 것을 잘 설명해 놓은 텍스트도 있었고, 그런 ‘썰’을 풀면 넋 놓고 들어주던 얼간이도 곁에 있었고, 그 허술한 처방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노동현장도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이게 영 아니다. 늘 보던 마누라 얼굴도, 하루 종일 얼굴 맞대고 있는 동료의 얼굴도, 골목집에서 막걸리잔 기울이는 술친구도, 거리를 나서기만 하면 보이는 모든 낯선 얼굴들도 대하기가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리하여 오늘 다시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처음처럼 되돌아본다. 우리가 신념처럼 붙들었던 과학이 허망하게 무너졌던 바로 그 지점에서, 그리고 그 근대 과학이 회유하고 짓밟았기에 다시 주어 털어보는 공자의 그 궁상스런 행동거지에서. 가장 먼저 배우라고 했다. 사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워왔다.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류하고, 분석해 왔다. 그것을 자산으로 해서 그 무수한 시험도 통과했고, 밥벌이도 하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와 있다. 그러나 그뿐, 작금의 이 실종사건에 대해서 조차 나는 너무 무력하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바로 그것이다.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배우려면 배우려는 자세를 먼저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자기를 낮춰야 한다. 곱씹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다음은 자기의 적성을 발견하라 했다. 자기를 한껏 낮춰 세상의 모든 편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행위할 수 있는 주체가 없으면 말짱 헛 것이란 낮은 목소리다. 내가 무엇을 잘 하는지, 태어나면서 어떤 유전자를 받았는지, 그것을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잘 키워왔는지 등등 이런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고 나야 드디어 자기 발로 설 수 있게 된다고 공자는 말한다. 입장을 갖는다. 세계관을 확립한다는 등의 흔한 이야기 말이다. 이제 자기 개성을 갖고 타자들과 아울러 보편적인 세계라는 장소에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일침을 놓고 있다. 그 타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훈련이 남았다고 준엄하게 가르쳐준다. 하나의 잣대로 휘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있기에 그들을 높일 수 있고, 그래야 다 볼 수 있고, 자기도 볼 수 있고, 그들의 개성을 낱낱이 보아 제대로 대접할 수 있다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 날 아침에 보는 팔달문 거리는 덜 민망한 사람의 향기로 마주할 수 있으리라.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교정시설은 애당초 인적 없는 멀리에 자리하여 알카트로즈를 자처했다. 범죄자에 대한 이 사회의 불관용은 불가근(不可近)의 추방물을 찍어냄에 있어 교정시설을 쓰레기하치장 보다 결코 하위에 놓아둘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멀리로 더 멀리로의 격리만이 형벌의 역량이요, 그 격리의 방벽마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법이 주는 믿음이자 위안이었다. 그래서 교정시설은 언제나 숨어들었다. 제대로 된 길 하나 없는 궁벽한 산촌의 논두렁과 산기슭을 헤집고 파헤치며 가까스로 터를 잡았고, 이윽고 하나씩의 섬이 되었다. 그리고는 안도했다. 이 허허로운 바닥에서야 더 이상 퇴로를 염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 바람마저 부질없고 터무니없음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교정시설을 따라 큰 길이 나자 그 길은 마치 연육교(連陸橋)처럼 교정의 섬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배척의 경계선은 어느덧 흔적없이 허물어지고 꾸역꾸역, 쉼없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고적했던 섬마을은 삽시간에 부산한 삶의 너울에 휩쓸리고 말아버린다. 교정시설을 포위한 이주·정착민들은 교도소의 감시대보다 더 높은 빌딩을 짓더니 마침내 흰 눈 뜨고 교정시설을 감시하기 시작하고, 그리하여 다시금 불편한 이웃으로 전락하고만 교정관계자들은 본능처럼 몸을 움츠리고 사세(事勢)를 관망할 뿐이다. 교정시설을 백안시하는 사람들은 교도소나 구치소의 높은 담 안에는 맹수처럼 사납거나 상종 못할 인간 말종들만 가득하리라는 선입견에 매몰돼 있다. 일부 그런 부류들이 왜 없을까마는, 그러나 교도관들이 마주하는 더욱 많은 수의 재소자들은 우리가 늘상 마주치고 소통해 오던, 우리의 익숙한 이웃들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 중에는 졸음·음주운전 등 운전과실로 사고를 낸 동네 유치원 아저씨나 매일 출근시 마주치던 시내버스 기사들도 많고, 힘든 제조업에 뛰어들어 가족을 위해 열심히 땀 흘렸으나 불경기에 부도나 입소한 아들 녀석 친구의 아버지들도 여럿 있고, 한푼 더 벌어 가계의 보탬이 되고자 곗돈 관리하다가 돈 다 털리고 고생하는 내 친구의 어머니들도 많이 있다. 가족 한사람의 구금은 곧 전 가족의 마음을 구금해 버림을 이해할 수 있을 터에, 교정시설이 원격지에 있을 경우 생계를 돌보지 못한 채 그 멀리에까지 면회를 다녀야 할 가족들이 받을 부가적 고통 또한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거주지 인근의 교정시설은 막연히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될 게 아니고 구속된 자의 가족, 친지, 지인 등 방문 민원인의 불편과 아픔을 덜어주는 주민편의시설이라고 강변해 봄도 지나침은 아닐 것이다. 또한 교정시설은 격리와 구금이라는 기능 외에 재소자의 교화·개선이라는 보다 중요한 과제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출소 후의 원만한 자활과 정착을 위한 기능·기술력의 배양을 위해 다양하고 체계적인 직업훈련을 시행하며, 이러한 직업훈련은 사회 유수한 관련 기업들과의 연계와 교류 시스템을 확보할 때 그 효율성을 배가시킬 수 있다. 아울러 정서함양, 심성순화 등 마음의 도덕률을 깨우치게 하는 각종 교화프로그램 또한 종교인, 대학교수 등 자원 봉사하는 사회명망가들의 조력이 있음으로 하여 활성화되고 좋은 성과도 거두어진다. 말하자면 교정시설이 도시나 도시 근교에 위치하지 못할 경우에는 시설 본래의 임무수행과 목표의 달성은 지난(持難)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찌하랴! 좁은 나라 땅 어디에 자리잡은들 불편한 눈과 마음에서야 교정시설이 쉽게 가려질까. 우리 마을에 내린 눈 우리가 쓸고 치우듯 우리 이웃의 실수와 상처들 또한 우리가 보듬는다는 마음이 되면, 교정시설이 옆집 건물처럼 보여지기도 하고 생각의 간극 또한 좁혀질 수 있으리라. 이태희 서울지방교정청장

다시 기초예술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문화국가입니다. 최근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한류는 그런 전통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와 문화예술의 선진화가 함께 가야 경제적 풍요도 빛이 날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도 산업입니다.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격조가 올라갑니다. 문화로 즐기고, 문화로 화합하며 문화로 발전해야 합니다. 정부는 우리 문화의 저력이 21세기의 열린 공간에서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지난달 25일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사 중 문화를 언급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향후 문화정책의 가늠자는 ‘문화도 산업’이며,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져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명박 정부의 모두 192건의 국정과제 중 핵심과제(43건)로 문화부문에선 오직 ‘핵심 문화 콘텐츠 집중 육성 및 투자 확대’만을 포함함으로써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문화강국으로 나아간다는데 환영하지 않을 국민들이 어디 있으랴마는 헛헛한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은 왜일까? ‘문화도 산업’이라는 선언은 눈꼽만큼의 이의를 달기도 차마 불경스런, 이 시대의 당연한 화두일테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뼉만 치기에는 아직은 석연찮다. 자칫 문화의 경제적 부가가치만 지나치게 중시되다 보면 문화를 도구로 2차 상품을 만들어 파는 문화산업 기업들의 배만 불릴 것 같다. 대부분의 예술가들 방에는 여전히 가난의 곰팡이가 슬고, 훌륭한 예술 감상에 목마른 국민들의 발길은 더욱 높아진 문턱에 번번이 가로 막힐 것 같다. 한 나라 문화정책의 본령과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영국의 문화매체체육부 장관을 지낸 테사 조웰은 ‘정부와 문화의 가치(Government and the Value of Culture)’라는 글을 통해 “결핍, 질병, 무지, 불결, 나태 등 베버리지의 다섯가지 물질적 빈곤에 하나를 더해 ‘열망의 빈곤(The Poverty of Aspiration)’”이라고 부르고, “이의 퇴치를 위해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뛰어난 예술에 소수가 아닌 모두가 적극 동참하게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여기서의 예술은 요즘 우리가 말하는 기초예술이 아니겠는가. 창조형 예술산업인 기초예술이 발달하지 않고서는 편집·복제형 문화산업 발달은 불가능하다. 저작권을 매개로 이뤄진 문화산업의 다층적 구조에서 핵심 역할은 기초예술이 맡고 있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문화산업의 진짜 뿌리는, 그것만 해서는 밥도 얻어먹기 어려운 기초예술”이라고 썼다. 국가 문화정책에서 우선돼야 할 것은, 그러므로 기초예술이다. 이는 마땅히 기초예술의 창작 진흥과 그 향수 확대를 함께 아우르는 표현이어야 한다. 창작이든 향수든 기초예술로써 ‘열망의 빈곤’을 채우려는, 어찌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욕구는 ‘개인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생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결국 사회적 생산력의 원천이 되는 창의성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배고 또 낳는다. ‘문화강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필요한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이란 다름 아닌 기초예술을 만들고 즐기는 데서 나온다. 테사 조웰은 그 자체로서의 문화(Culture on Its Own Merits)를 지원해야 하며 문화를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부의 정책에 앞서 행해지는 가치판단은 피사체를 담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달리하는 카메라의 앵글과 같다. 정책도 사진도 앵글에 따라 전혀 딴판이 된다. 문화산업 정책은 문화를 그 자체로 옹호하는 관점에선 문화정책이지만, 경제적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삼는 관점에선 경제정책이다. 문화와 예술을 만들고 즐기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문화정책이다.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국민 성공시대’인가, ‘성공한 국민시대’ 인가

서구문명의 고향인 그리스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내가 사는 고장을 떠나 다른 장소의 풍광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넘어 4천년 이상의 시간을 넘나드는 역사공부였다. 무엇보다도 아테네 민주정의 현장을 보고 느꼈다는 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 아고라를 거닐며 소크라테스가 거리의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을 상상해 보고 재판 장면을 떠올렸다. 그는 사형을 선도한 아테네 시민들에게 “재판이 끝나면 당신들은 삶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반면 나는 죽음의 길로 떠나지만, 앞으로 누가 더 행복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기원전 399년에 벌어진 소크라테스 재판은 아테네 민주정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아테네 시민들이 가장 위대한 성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는 게 민주정의 딜레마다. 아테네 영광의 절정은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였다. 승리를 통해 아테네는 그야말로 ‘국민 성공 시대’를 열었다. 헤로도토스는 아테네가 승리한 이유에 대해 “제국인 페르시아에게는 왕 한 사람만을 위한 전쟁이었지만 민주정을 꽃피운 아테네에게는 시민 모두를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테네 민주정의 전성기는 페리클레스 시대다. 그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였다. 대표적 유적지인 파르테논 신전이 이때 만들어졌다. 신전 건축의 비용은 아테네 시민들의 세금이 아닌 스파르타를 위시한 전체 그리스인들의 희생으로 이뤄졌다. 페르시아 전쟁 후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의 재침을 막기 위해 동맹을 결성하고 그 기금을 델로스 섬에 보관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동맹의 금고를 델로스 섬에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옮기고 파르테논 신전 건축에 유용했다. 따라서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인들에게는 민주정의 성전이지만 다른 그리스인들에게는 아테네 제국주의 상징물이다. 이처럼 아테네 민주주의와 제국주의가 동전의 양면처럼 될 때, ‘국민 성공 시대’는 ‘성공한 국민 시대’로 전환된다. 아테네 제국주의에 대한 다른 그리스인들의 반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성공한 국민 시대’를 마감하고 정체성 위기에 빠졌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정을 비난하는 반체제적 발언을 계속함으로써 고발당해 재판에 회부됐다. 그렇다면 민주정을 옹호한 아테네 시민들과 이를 부정하고 현자의 정치를 주장한 소크라테스 가운데 누가 더 옳았는가? 이 문제는 인류 역사의 영원한 수수께끼다. 이명박 정부는 ‘국민 성공 시대’의 기치를 들고 출범했다. 하지만 이를 실현할 주체들과 정책들을 보면, ‘국민 성공 시대’가 아니라 ‘성공한 국민 시대’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대학 졸업자와 특정 지역 출신, 강남 부자들과 같은 성공한 국민들이 과연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펼칠 수 있을까. 정치가와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여론이다.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기 위해선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성공한 국민’이 아닌 ‘국민의 성공’을 위한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누가 ‘국민의 성공’을 위한 정치를 펼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성공한 국민’이 ‘국민의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유사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이 ‘국민의 성공’인가 하는 점이다. 물질이 아닌 정신의 성공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바쳤다.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성공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은 알았으면 한다.

문화부장관의 경륜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장관 내정자가 발표됐다. 유인촌 문화부장관 내정자는 문화정체성을 강조하고 국가브랜드 확립에 주력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유인촌 내정자가 영화감독 이창동, 연극인 김명곤에 이은 세 번째의 예술인 출신 장관이라는 게 화제거리다. 그러나 문화부장관이 예술인 출신이건, 교수나 행정인, 혹은 정치인 출신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문화부장관의 소임을 훌륭하게 치러낼 수 있는 경륜의 소유자인가 하는 점이다. 예술인 전력을 가진 분은 문화예술현장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남 다를 수 있다. 교수 출신은 해박한 식견으로 문화정책의 밑그림을 잘 그려낼 수 있다. 행정가 출신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조직관리능력으로 효율적인 국가 목표 달성에 유능할 수 있다. 정치인 출신은 지역·세대·계층간 갈등 조정과 국민적 합의 도출에 상대적으로 강하다 할 수 있다. 문화부장관의 소임은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문화예술의 향기 넘치는 건강하고 품격 높은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이같은 소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현장 감각, 탁월한 정책 기획능력, 균형과 조화를 아우르는 행정경험, 갈등과 위기국면을 헤쳐나갈 정치력, 모두가 필요한 것이다. 이같은 조건들을 어느 정도 상당한 수준으로 충족시키는 경우 우리는 높은 경륜의 문화부장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문화부장관의 경륜은 정책으로 가시화된다. 경륜이 높을수록 예술가들이 예술창조에 매진할 수 있게 하고, 일반 시민들이 문화예술을 생활 가운데 향유할 수 있도록 정책을 고안하고 시행한다. 그래서 높은 경륜의 문화부장관은 각기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나름대로의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한 족적을 남긴 장관들을 현재의 잣대로 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의 현주소는 어쩔 수 없이 이상과 현실의 타협이며 시대정신과 역사발전 과정의 궤적을 벗어 날 수 없다. 새로운 문화부장관 내정자는 그 궤적의 현재형이란 관점에서 과거 사례 한가지를 말해 보고자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좌우갈등과 전쟁의 상흔이 수습되고 1972년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드디어 북한을 추월할 무렵, 그때는 “잘 살아 보세”의 시대였다. 경제개발 정책이 착실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의식의 저변에는 자조적 엽전의식으로 얼룩진 국민적 자신감의 결여, 일종의 패배주의가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 당시 입만 열면 외쳐대던 ‘유구한 오천년의 문화민족’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와 같았다. 조국근대화의 필요충분조건인 국민적 자신감을 일깨우고 신생 대한민국의 문화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획기적 문화정책이 절실했다. 당시 윤주영 제3대 문화공보부장관이 이 문제를 제기, 공론화하고 나아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문화예술정책의 골격을 세우게 된다. 그것이 바로 문화예술위원회로 변신한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고 전통문화유산 보존계승에서 문화예술 창작과 보급에 이르는 민족문예부흥의 청사진을 구체적이며 단계적 실천과제로 집대성한 문예진흥법과 제1차 문예중흥5개년계획(1974~1978년)이다. 프랑스의 문화부장관 앙드레 말로가 제4차 국가경제사회발전계획(1961~1965년)과 제5차계획(1966~1970년) 등에 문예진흥계획을 포함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때 말로가 뜻했던 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상처 투성이인 프랑스의 국민적 자신감을 치유하는 문화정체성과 사회적 연대감의 확립이었다. 그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한 이어령 장관은 정부와 국회를 망라한 국가 지도층과 일반 국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 주고 문화예술정책의 새 시대 비전을 제시해줬다. 국민의 정부는 문화산업, 참여정부는 문화평등주의 등을 중요시했다. 국민의 정부는 5명의 문화부장관, 참여정부는 4명의 문화부장관을 배출했다. 장관의 경륜 보다 정권의 코드나 논공행상이 우세한 터에 단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윤주영 장관이 3년3개월, 앙드레 말로가 10년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다. 새 문화부장관 내정자의 높은 경륜을 기대한다. 이진배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지원수- 교정시설 체험

근자에 법관 및 검사들의 교정시설 체험이 빈번하게 시행돼 언론의 관심사로 기사화되곤 한다. 이는 수용체험을 통해 형벌집행 등 형사실무에 대한 현장감을 체득함과 동시에 재소자 인권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시행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교도관들 또한 신임교육과정은 물론, 현장 근무자 중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수용체험을 하게 해 재소자의 입장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는 도식화된 교정담론, 혹은 길들여진 사고에서 벗어나 몸으로 부딪치며 행형의 맨 얼굴을 바라보고 그 속살의 정체와 내음을 재인식하도록 해 재소자에 대한 보다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배려의식을 고양시켜 나가자는 데 그 뜻을 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행형은, 근대행형의 효시라 할 수 있는 16세기 암스테르담 징치장의 ‘두려워 말라, 나는 너에게 복수하려 함이 아니고, 개선시키려 함이로다. 나의 손은 엄하나 나의 마음은 따뜻하다’라는 슬로건을 필두로 18세기 존 하워드(John Howard)의 헌신적인 감옥개량운동을 거쳐 종국에는 지원수로서의 체험을 마다하지 않았던 용감하고 정열적인 행형인들에 의해 완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3년, 미국 뉴욕 주의 오번 시장을 역임한 오스본(T. Osborne)은 오번 교도소에 가명(假名)을 쓰고 지원수를 자청해 상당 기간 흉악범들과 같이 생활했고 수용체험을 통해 재소자도 사람이므로 그들을 신뢰하는 마음가짐이 없이는 교정교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수형자 자치제라는 교정 시스템을 연구하게 됐다. 이후 싱싱 교도소에서 과학적인 수형자 분류 방법을 전제로 한 자치제를 시행, 성공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오늘날 모든 국가의 행형자치제의 전범(典範)이 되는 뛰어난 행형제도가 창안됐던 것이다. 또한 일본의 세계적인 행형학자 마사키 아키라 박사는 동경제대 재학시절인 어린 나이 때부터 행형학이라는 미지의 학문에 심취해 장차 교도소장이 되리라 결심하며 교정시설을 견학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이후 1918년 사법관 시험에 합격, 검사로 활동하면서도 교도소장과 협의해 신분을 감추고 흉악범들과 거실 및 공장생활을 같이 하며 인본주의에 기반한 행형의 개혁방안 연구에 땀 흘렸다. 그 결과 사법성 행형국장을 역임하기까지 교정시설 건축의 쇄신, 행형누진처우제도 마련, 형사정책범론(刑事政策汎論) 외 다수의 행형서적 발간 등 행형발전에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오늘날의 행형은 앞에서 예시한 계몽 사상가들의 선도적 땀흘림과 박애주의적 개혁자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에 힘입어 인격행형(人格行刑)이 행형처우 전반에 구현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행형은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벤치마킹의 보고(寶庫)로 여길 정도로 제반 수용처우시스템의 급속한 발전을 이뤄 왔다. 다만 처우의 지나친 배려가 기율의 이완을 불러오고, 형벌 본래의 의의인 응보적 역할의 훼손을 우려하는 시각도 더러 있으나 인간 교정이라는 정답이 없는 방법의 선택은 결국 인간적인 배려로 귀착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라 생각된다. 덧붙인다면, 외부인의 교정시설 체험은 아무도 없는 거실에 문득 재소자의 입장이 돼 우두커니 앉아있기 보다는 차라리 일일(一日) 교도관이 돼 재소자들의 일상을 관찰함이 행형 실상을 파악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높은 담장 안쪽의 생활에서도 지키고, 돌보며 이제는 일선 교도관들이 오히려 형벌의 무게를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사에 신명나는 문화 비전을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썼을까? ‘국민’과 ‘민족’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국정의 철학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치지향적인 단어로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은? 다름 아닌 ‘경제’이다. 경제는 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 또는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준말로 정치의 첫째 목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느 대통령이든 공약에서나 취임사에서나 경제 정책에 대한 의지와 구상을 밝히는 것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 12월19일 대선에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경제 살리기에 대한 표심을 드러냈다. 이제 여남은 날 뒤면 그 기대를 한 몸에 안은 새 정부가 출범한다. 아니나 다를까. 새 정부의 청와대 수석 비서관 일곱명 가운데 다섯명이 학부나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러므로 대통령 당선인은 오히려 경제 이외의 소중한 가치를 더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국민들의 표심대로라면 경제는 정녕 잘 될 터(진정 ‘소망’한다)이지만, 국가 역량이 자칫 경제에만 집중돼 다른 지순한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저어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서 ‘경제’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가치지향적인 단어는 ‘통일’과 ‘문화’이다. ‘통일’은 이승만 초대 정부 때부터 불변의 가치였으며, ‘문화’는 이 시대에 더욱 받들어야 할 으뜸의 가치다. 지난 대선을 통해 특히 문화정책에 관심을 가진 국민들은 문화의 경제적 환산 값만을 다퉈 강조하는 대통령 후보들에게 깊은 우려를 보냈다. 대통령 당선인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며, 그의 신년회견에서도 ‘문화’는 한 마디가 없었다. “문화예술이 꽃피는 시대가 태평성대다. 그런 쪽으로 많은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고 문화예술계 원로들에게 한 덕담이 문화정책일 수는 없다. 문화와 산업은 어깨 겯고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문화산업육성론이 ‘돈 되는 문화’에만 경도될까 걱정된다. “문화도 경제”라는 당선인의 말이 경제를 위한, 문화의 도구적 기능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문화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다른 모든 도구들의 목적이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아니다. 그 돈을 도구로 문화적 삶을 영위할 때 행복을 느낀다. 적어도 지난 5년 동안의 문화정책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문화를 총체적 사회 변화의 도구로 간주했다고 지적하지만, 문화가 경제의 도구가 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다. 문화는 인간 정신 활동의 총화로서 적층(積層)되기 때문이다. 문화는 민간부문에 의한 공급만으로는 효율적인 상태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재화다. 시장에만 맡겨서는 바람직한 수준에 이르기 어려워 공공부문이 적극 권장해야 하는 가치재(Merit Goods)라는 뜻이다. 물론 공공부문의 지나친 보호는 자생력 없는 나약한 온실 문화를 양산하는 결과를 빚겠지만, 그렇다고 문화가 시장 권력에만 좌지우지되는 사회는 결코 양극화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문화정책에서는 시장 이상으로 공공의 역할이 요구된다. 문화는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동질성의 매체로서 통합적 기능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첫째라 해도 모두일 수는 없다. 경제가 첫째라 해도 모두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문화를 자본에 종속시켜 결국 문화의 획일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화의 가장 큰 덕목인 다양성과 경제 발전의 샘인 독창적인 생각(창의성) 등은 크게 위협받게 된다. 뿌리로 물을 먹지 못하는 꽃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며, 피운다 한들 오래 갈 수 있을까. 문화산업의 진짜 뿌리는, 그것만 해서는 밥도 먹기 어려운 기초예술이다. 제17대 대통령 취임사에는 ‘문화’가 ‘경제’보다 더 나왔으면 한다. 그렇게 신명나는 문화 비전을 기대하는 것이 혼자만의 과욕은 아니리라. 박상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전문위원

영어에 미친 나라

“미쳐야 미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뭔가에 미쳐야(狂) 한 경지에 이를(及) 수 있다는 뜻이다. 대가나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은 단 한번뿐인 인생을 걸만한 뭔가를 찾아 그것에 미쳐 사는 마니아다. 마니아가 많은 시대일수록 위대한 시대고 행복한 세상이다. 그리고 미칠 수 있는 대상을 많이 허용하는 두꺼운 사회가 좋은 사회다. 우리 사회 많은 사람들이 특정 물질적 대상인 돈, 얼굴, 몸 등에 미쳐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새해인사를 하며, 얼짱과 몸짱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런데 요새 미치고 싶어 안달하는 것이 새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온 나라가 영어에 미쳐 있다. 한 때 ‘미친 영어(크레이지 잉글리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는 아이디어로 영어로 세뇌시키는 학습법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필두로 인수위원회가 영어 전도사로 나섰다. 영어 전도사들은 영어를 잘해야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온 국민들에게 전파하는 설교를 열심히 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우리 존재를 규정한다. 우리가 한국인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어로 말하고 쓰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국가와 민족 가운데 자기 말과 글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한국어로 말하면서 한문을 쓰는 언문불일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어진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 나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모든 사람이 쉽게 깨우쳐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조선시대 벼슬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합격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한문에 통달해야 했다. 우리 시대 영어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로 계급이 나눠지는 ‘잉글리시 디바이드(English Divide)’ 이상으로 그 시대에서는 한문 해독이 신분 차이의 표지가 됐다.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이 평등한 민주사회다. 그래서 조선시대처럼 양반만 한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빈부차이를 초월해 모든 학생들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강화하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교육 개혁안은 매우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영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을 들으면서 뒤바뀐 세종대왕 말이 생각났다. “우리 말이 미국말과 달라, 영어와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에 어린 학생들이 미국인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새로 영어 전용수업을 만드나니, 모든 학생이 영어를 쉽게 깨우쳐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상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미친 것인가? 세상이 변했고, 변한 세상에서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영어에 미쳐야 한다. 이런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세종대왕은 아마 한글을 창제하신 것을 후회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지 않으셨다면, 온 국민이 영어를 국어로 사용해 영어에 미치기 위한 이런 생쇼를 벌이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세종대왕은 야속한 존재일 수 있다. 그런데 진정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영어 훈민정음을 만드는 세종대왕이 되고자 함인가?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우장춘 박사님께서 통곡하실 일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농촌진흥청은 없애버리고 원예연구소는 민영화 한다는 보도를 듣고서 원예연구소장을 지낸 사람으로서의 견해를 밝힌다. 원예연구소는 우장춘 박사님이 초대 소장인데 처음에는 민간기구로 출발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50년 3월 8일에 우장춘 박사님은 일본에 어머니와 가족을 모두 남겨둔 채 혈혈단신으로 한국의 원예 산업을 부흥시키고자 귀국하여 50년 5월 8일에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재단법인으로 설립하고 소장으로 취임, 농업연구와 후진양성에 착수했다. 그러나 곧이어 발발한 6·25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다가 53년 5월 20일에 한국농업과학연구소는 중앙원예기술원으로 정부기구화 됐다. 이 때는 정부가 부산으로 피란을 가 있었을 때였는데도 민간기구로는 농업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판단으로 정부기구화 한 것인데 원예연구소를 다시 민영화하겠다는 인수위의 결정은 6·25 동란으로 부산에 피난을 가 있던 자유당 정부의 결정보다도 훨씬 뒤진 무지몽매한 결정이다. 우리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해 단신으로 귀국, 10년간을 고군분투 하시다가 돌아가신 후 농촌진흥청 내에 묻혀 계시는 우장춘 박사님께서 통곡하실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예연구소가 처음에 민간기구로 출발했던 이유는 당시 혼란기에 정부기구로서의 출발이 어려웠기 때문인데 피란정부에서 정부기구로 만든 것을, 실용성을 추구하는 17대 대통령 정부가 민영화 한다는 조치는 납득할 수가 없다. 원예연구소가 민영화되면 실용성이 높아지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원예연구소가 국가기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원예 산업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 연구라는 분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실패를 자주 하게 되고 수많은 실패를 토대로 최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면서 2천 번의 실패를 하였기에 전구가 만들어졌다. 매독치료제인 페니실린의 이름이 606호인데 이것은 605번의 실패를 거듭한 다음 606번째의 실험에서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민영화된 원예연구소나 다른 1차 산업분야의 연구기관에서 이렇게 거듭되는 실패를 용납해 줄 것인가. 어림도 없는 말이다. 한 두 차례의 실패도 용납되지 않을 것이며 실패를 자주 하는 연구자는 즉시 자리를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원예연구소가 최근에 개발, 일본시장에서 극찬을 받고 있으며 한 번의 전시회를 통해 500만달러의 수출계약을 따낸 국화품종 ‘백마’는 육성기간만도 10년의 세월이 소요됐고 3만주 이상의 국화가 필요했다. 우리나라의 농업에 꼭 필요한 이런 기술이 하루아침에 개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기술이 실용화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 노력과 연구자의 열정을 필요로 한다. 원예연구소를 비롯 농업연구 기관이 민영화되면 이런 효율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하는 인수위의 말은 허구이거나 무지의 소치다. 농촌진흥청은 왜 필요한가? 연구자의 머릿속에서 구상돼 오랜 시일에 걸쳐 개발된 기술도 농가에 보급되기 전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농가에 피해가 최소화되기 때문이다. 개발된 기술을 다양한 지역에 맞는지 또는 실효성이 있는지 하는 점들을 검토하기 위해 지역적응연락시험, 생산력 검정시험, 농가 실증시험 등등 많은 단계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농가에 기술이나 품종을 보급하고 새로운 기술을 채택하는 농가에 기술을 교육하고 보급하는 일을 농촌진흥청이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농촌진흥청을 폐지하면 개발된 기술이나 품종이 농가에 보급되는 통로가 차단되기 때문에 실용화 되기가 매우 늦거나 어려워진다. 농촌진흥청 안에 우장춘 박사님의 묘소가 있다. 인수위의 이번 결정을 우장춘 박사께서 아신다면 지하에서 길이 통곡하실 일이다. 임명순 전 원예연구소장

농업기술 개발 보급, 국가가 직접 맡아야 - 농진청 폐지 재고를 -

농업은 예컨대 광산과 같은 1차산업에 속해도 다르다. 자연상태를 이용한 점에서는 같아도 광업은 단순생산인 데 비해 농업은 생명공학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우리 농업도 2차·3차산업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나, 농업의 가공 및 유통화 진흥에 1차산업 요소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역시 생명공학이기 때문이다. 농업의 2차·3차산업 진흥이 다른 보세가공처럼 수입원자재, 즉 외국 농산물을 원자재로 하는 것이 아닌 게 마땅하다면, 한국농업의 1차산업이 지닌 주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2차·3차산업을 위해 더욱 요구되는 것이 1차산업의 첨단 과학화인 것이다. 농업문제는 국가 과제다. 농업의 산업 비율이 정보산업·제조업·자동차공업 기타 등에 비해 아무리 상대적으로 왜소해졌다 해도, 국민생활의 먹거리를 담보하는 필수 불가결한 기본산업이다. 나아가 가공 및 유통화 등 2차·3차산업의 발달로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된 한국적 경쟁력을 갖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한국농업에 자급형 농민은 감소된다. 기업형 농업인이 주축이 돼야 한다. 외국의 농업에 비해 제한된 농지에서 품질좋은 농산물을 더 많이 경제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영농 각 분야마다의 신기술 보급이 절실하다. 농업의 과학화가 긴요하다. 생명공학은 어느 분야 못지않게, 아니 더 발빠르게 발전한다. 농촌진흥청은 이를 선도하는 국가기관이다. 농업기술 개발과 지도업무를 이원화하는 이명박 차기정부의 농촌진흥청 폐지안은 인식이 잘못된 출발로 생각된다. 우선 기술연구를 위한 정부 출연기관 설립이 현 농진청의 연구기능과 다른게 뭔지 의아스럽다. 이만이 아니다. 지도업무를 농림부 관료가 따로 맡는 것은 보급의 효율성에 문제가 많다. 농림부가 외곽기관인 출연연구원의 개발 기술을 어떻게 무슨 수로 농업인에게 보급하겠다는 건지 설명이 안 된다. 농촌진흥법을 없애고 대체 입법을 한다고 해도, 지방기관에서의 업무 효율은 연구·보급의 농진청 단일화 체계보다 떨어진다. 이원화는 한 몸에 붙지 않은 손과 발이 따로 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굳이 조직을 이원화해가며 별도의 정부 출연기관을 설립하는 것 자체가 실용주의에 합치된다고 보기 어렵다. 뭣보다 농업인 중심의 입장에서 보아 더욱 그렇다. 그렇게 해서 농업인들에게 득이 된다면 농진청을 열번 없앤다고 해도 옳다. 그러나 농업인들이 불편하고 부담이 가는 것은 예컨대 국가가 기술료 없이 제공하는 종자 등 모든 기술분야에 기술료가 발생된다. 기술보급에 문제가 많은 가운데, 보급이 된다 해도 이렇다. 로열티 문제도 생긴다. ‘제스프리 골드’키위의 경우, 100㏊에서 4천500t을 생산하면 생산액의 20%가량인 연간 35억원의 로열티가 발생한다. 절감돼야 할 생산비를 가중시키는 것은 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물가 오름의 요인이 된다. 대부분의 선진 농업국에서는 국가가 직접 농업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주관한다. 미국의 농무성 산하 농업연구청은 기술연구 및 보급을 하는 게 농진청과 흡사하다. 영국은 환경식품농촌개발부 관할 7개 책임운영기관, 과학기술청 산하 8개 연구기관이 국가기관이다. 독일 역시 농업기술연구소 등이 국가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일본은 다르다. 국가연구기관이던 것을 독립법인으로 전환시켜 운영한 것이 지난 2001년이다. 그러나 그간의 운영이 일본농업에 기여가 미흡한 실패 사례로 꼽혀 국가기관 환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차기 정부의 농진청 폐지안이 실패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여 걱정된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란 게 바로 그같은 반관 반민의 법인이기 때문이다. 농업 문젠 국가가 직접 맡아야 한다. 기술연구 기능도, 기술보급 기능도 국가가 이행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다. 농촌진흥청에 문제가 있으면 개혁을 하는 덴 동의한다. 그러나 폐지는 재고가 요한다. 한국농업의 2차·3차산업 발달을 위한 간곡한 당부다. 임양은 주필

실용주의의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대통력직 인수위원회가 이명박 새 정부의 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처음의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용주의 경제정책으로부터 시작해 실용주의 교육정책, 실용주의 외교정책, 실용주의 정부 조직 개편 등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소모적인 이념논쟁과 시대착오적 수구좌파 정책에 신물이 난 국민들에게 무엇이 정말 국민의 일상생활에 보탬이 되는가를 보여 주겠다는 실용주의 정책은 옳은 선택이며 매력적이다.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소리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정책이건 신중한 검토·여과·수렴의 정책형성 과정이 필수인데도 그러한 과정 없이 실용이란 이름으로 정책 하나를 뚝딱 만들고 발표하는 말 앞세우기 경쟁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대통령 당선인이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말이 앞서는 게 아니라 실천과 그 실천으로 얻게 될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기간 중 “경제 살리기, 꼭 실천해 내겠습니다”라고 되풀이해 국민들에게 철석 같이 약속했다. 실용주의는 이념이나 지식 자체를 중요시하는 게 아니라 이념이나 지식이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실용성이 있으며 이익이 있는가를 먼저 본다. 그래서 국민들은 실용주의가 빛깔 좋은 말잔치가 아닌, 살 맛 나는 새 세상을 여는 진정한 변화와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현장에서의 실천이 없는 탁상행정을 질타하면서 전남 영암군 대불산업단지 전봇대를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곧장 대형 화물트럭의 장애물로 민원의 대상인 전봇대 2개가 바로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고 그런 발표가 있던 날 오후, 5년 동안 뽑지 못했던 전봇대 한개는 철거됐고 또 한개는 다른 곳으로 이설됐다. 이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새 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쯤 갖고 실용주의 정책의 앞날을 낙관하기는 너무 이르다. 기실 따지고 보면 이틀만에 뽑을 전봇대를 5년 동안 방치했다 대통령 당선인의 질타 한마디에 부산을 떤 모양새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건 과거 익숙하게 보아 왔던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효율지상주의나 씁쓰레한 관료적 보신주의, 그리고 절대권력 추종의 부정적 유산 등이다. 실용성과 이익은 실용주의의 최고 가치다. 그러나 실용성과 이익이란 가치는 실용주의 철학의 토양에서 가꿔지는 꽃과 같은 것이다. 실용주의 철학을 결여한 실용성과 이익의 추구는 비윤리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는 물질 만능주의를 부추기고 효율과 성과중심의 무분별한 경쟁으로 사람들을 파탄시킬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용주의 철학의 대가, 존 듀이가 “지식(이념)은 항상 사람들을 이롭게 할 때 유용한 것이 되며, 철학자의 소임은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실용주의 철학은 인간을 중심에 둔 인식론과 인간의 도덕적 성장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철학적 인식을 결여하고 인문학적 접근을 망각한 실용주의의 추구가 만약에 앞에 언급한 과거의 부정적 유산들과 결합한다면, 이로 인해 야기되는 재앙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이명박 정부 실용주의 정책 성공의 관건은 문화·인문학적 접근의 성실성 여부에 달려 있음을 하루 빨리 깨닫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 점을 명심하고 정부 출범을 준비하는 게 본연의 임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하지도 않았고, 새 정부의 주요 정책을 책임질 각 부처 장관들도 임명되지 않았다. 인수위원회는 문화정책적 접근과 실용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것 같고, 국민들을 위한 실용주의정책 형성과정에 대해서도 별로 고민하는 모습이 아니다. 특히 실용의 가치를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건 존 듀이가 교육현장에서 ‘실험학교’를 통해 교육개혁을 구현하려 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하는데서부터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인수위원회는 실용 정부의 출범을 준비하는 소임에 오직 충실하고, 말 먼저 앞세우는 포퓰리즘과 아마추어리즘 등을 경계해야 한다.

사형폐지운동 유감(有感)

한해의 마감을 목전에 두었던 구랍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이른바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마음이 씁쓸했다. 일부 종교인들과 사형폐지운동 단체들이 함께해 지난 1997년 12월30일 이후 10년째 집행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사형제도가 국제사면위원회의 기준에 의할 때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되는 것이라며 자축의 한 마당을 펼친 것이다. 일찍이 카우프만(Arthur Kauffmann)이 언급했듯, ‘형벌의 인도화의 역사는 원래 시대정신에 반항하면서 희망을 갖고 인내함으로써 미래의 성숙을 기대한 인간의 역사’라고 할 것이니, 사형폐지운동 또한 인류문화의 진보와 성숙에 기인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움직임의 일단이라 이해할 수는 있으리라. 다만 오늘날 사형폐지운동 단체들에 의해 제기되는 사형폐지의 논거들 모두가 범죄의 실상 및 형벌의 현장과는 지나치게 괴리된듯해 사뭇 공허하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종교·인도적인 관념론에 지나치게 경도된듯 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사형제의 범죄예방효과에 회의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사형의 범죄억지력을 추단할 수 있는 통계적이고 객관적인 국내외 자료를 소개하자면, 미국의 경우 사형집행이 보류됐던 1966년부터 1976년 1월까지의 기간을 포함, 1980년까지 살인범이 인구 10만명당 5.6명에서 10.2명으로 거의 두배로 늘었으나, 연평균 사형집행이 71건으로 늘어난 1995~2000년에는 살인범이 인구 10만명당 5.5명으로 46% 감소한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또한 사형이 집행됐던 1988~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사건 발생건수가 연평균 672건이었으나 사형집행이 보류된 1998~2005년 연평균 살인사건이 1천18건으로 51.4% 증가하고 있음을 자료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확정된 사형의 집행유무에 따라서도 살인범 등 강력범죄의 증감이 확연하게 구분됨을 통계를 통해 관찰할 수 있을진대, 하물며 사형제도 자체가 폐지될 경우 생명보장의 갑옷을 입고 얼마나 많은 흉악범죄가 미소를 띠며 창궐할지는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사형제도 폐지는 일반 국민들의 소박한 법감정을 다스려 가야 할 공형벌(公刑罰) 본연의 임무를 스스로 방기하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 사형집행 시 피해자의 가족을 배석·참관하게 하는 연유도 범죄의 피해자들에 대한 응보욕구의 충족과 함께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위탁한 공형벌에 대한 신뢰감을 가일층 제고시켜 나아가는데 있음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형벌의 현장인 행형시설에서도 사형은 집행의 유무를 논외로 하고 형벌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많은 사형수들이 형 확정 후 손쉽게 종교에 귀의해 열심히 활동하고, 단시간에 선행(善行)을 흉내 내고 연습한다. 감형의 기대 등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중의 발로이건, 또는 지은 죄에 대한 회오의 몸짓이건 간에 이들의 이러한 돌변은 다름 아닌 사형제도 자체에 내재된 형벌의 위하력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사형이라는 형벌의 무게가 극악무도하던 범죄인들까지 왜소하고 겸손하게 만들어 주고 있음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처럼 사형제도가 교화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삶의 절실함을 일깨워 주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종국적으로 사형제도는 가정파괴사범 등 흉악범을 제외하고는 사형을 적용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를 대폭 감축시키고 개전(改悛)의 정을 참작한 선별적 감형 등 형집행의 융통성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야지, 제도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아울러 사형의 대체수단으로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는 교정·교화대책의 무용(無用) 및 인간의 희망을 거세한다는 점에서 더욱 잔혹하고 우리의 행형 현실에도 조화되지 아니함을 차제에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 흉악한 범죄행위에 대해선 반드시 치러야 할 고통스러운 대가가 있음을 예고하고 실행함은 결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선량한 이웃들의 존엄을 담보하는 정의의 회초리로 역할한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생을 가라앉지 않는 아픈 기억의 파편들로 인해 사는 것이 다만 고통일뿐인 피해자들에게 사형폐지운동은 또 다른 학대요 고문으로 다가들 수도 있다. 이미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사형수들의 뒤틀린 생활태도에서 형벌의 무게가 훼손되어짐을 느낀다. 교정시설의 담이 아무리 높은들 바람에 묻어오는 바깥세상의 기류마저 차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태희 서울지방교정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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