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수 칼럼] 이데올로기 재소환과 한국의 선택

탈냉전의 질서가 한 세대 동안 지속되면서 세상은 국경선이 없어진 지구촌이 됐다. 앞으로도 이런 질서가 계속 유지될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당선인도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미국으로선 중국의 패권 도전이 반가울 리 없다. 이를 억제하고자 많은 정책들이 산발적으로 등장했다. 경제분야에서는 중국 화웨이의 5G 선점을 배제하기 위한 클린 네트워크와 중국을 국제공급망에서 제외하기 위한 글로벌경제네트워크(GPN) 구상이 등장했다. 안보 차원에서는 인도를 포함시키기 위해 기존의 아태전략을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바꿔 외연을 확대했다. 있으나 마나 했던 미-일-호-인의 4자대화체(QUAD)도 코로나를 계기로 안보대화체로 전환하고자 한다. 쿼드로 부족하니 여기에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 등 몇 개국을 더 포함시키는 쿼드 플러스(QUAD+) 구상도 등장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산발적인 더불어 정책만으로 우방국들을 결집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실감했다. 구심점도 없고 구심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 민주, 인권 등을 내포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소환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힘을 합쳐 공산당인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2020년 5월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16쪽짜리 대중국 전략 보고서가 신호탄이 됐다. 미국은 중국이 WTO 가입과 세계화 기회 등을 통해 경제발전을 하게 되면 국제질서에 순응하면서 어느 정도 독재체제를 벗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시진핑 등장 이래 중국은 오히려 독재 권력 공고화, 중국 인민들에 대한 사회적 통제 강화, 그리고 소수민족 및 종교적 탄압 등을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중국의 모델을 수출해 그 국가들로부터 이데올로기적 순응을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중국의 이런 행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지적하면서 중국과의 이데올로기전을 선포했다. 미국은 이 보고서에서 중국 대신 중국 공산당을, 시진핑을 주석(President) 대신 중국 공산당 총서기(General Secretary)로 표현했다. 심지어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2020년 7월 닉슨기념관 연설을 통해 만약 자유세계가 중국 공산당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중국 공산당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데올로기적 관점의 대중 접근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해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바이든도 동맹 및 파트너들과 함께 중국에 대응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면 1년 안에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담(Global Summit for Democracy)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소위 말하는 민주 동맹체 구상이다. 영국도 올해 5월, G7에 한국, 호주, 인도 등을 추가해 D-10(Democracies 10)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2021년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데올로기가 재소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든 당선인의 정책기조는 미국의 리더십 회복이다. 세상의 등불이 되려면 다자주의가 필수적이지만 이데올로기가 전면에 부상한다면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는 동맹과 이념 중심의 다자주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선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2013년 부통령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이든이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라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미국 대선이 끝난 지 벌써 3주일이 지났다. 세계 각국 정상들도 바이든에게 선거 승리를 축하하면서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지난 15일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미 대선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북한의 관영매체들도 현재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의 침묵은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북한은 어떤 선택을 할까? 도발일까 아니면 회담일까. 북한은 미국 리더십의 전환기 때마다 전략적 도발을 해왔다. 신행정부에 대한 탐색이나 신행정부에 대한 대미 협상력을 증대시킬 목적이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시기를 전후하여 전략적 도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당 창건일 열병식에서 공개한 북극성 4형과 괴물 같은 초대형 ICBM이 그 대상이다. 이와 반대로 북한은 도발의 후폭풍과 북미 회담을 염두에 두고 도발을 자제할 수도 있다. 만일 북한이 전략을 도발을 감행하면 유엔 안보리는 역대급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경우 유엔안보리는 결의안 제2397호의 트리거 조항(trigger clause)에 의거해 추가적인 대북 유류 수출 제한 등 중대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은 핵무기를 끌어안은 채 붕괴될 수도 있다. 북한은 현재 대북 제재, COVID-19, 그리고 자연재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의 평가에 의하면 올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8.5%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고난의 행군 기간인 1997년에 기록한 -6.5%보다도 낮은 것이다. 김정은도 2020년 8월 개최된 노동당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통해 북한의 경제 실패를 인정한 바 있다. 김정은은 이 회의를 통해 2021년 1월 제8차 당 대회를 열어 2021년 사업방향을 포함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만일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한다면 유엔 안보리는 자동으로 역대급 제재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북한은 바이든과 친 바이든 인사들의 북한 비핵화 발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바이든은 CVID로 통칭되는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면서도 북한의 핵 능력 축소를 전제로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북한이 줄곧 주장해 왔던 핵군축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바이든의 외교안보 분야 최측근인 라이스(Susan Rice) 전 유엔 대사도 2019년 2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CVID의 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국무부 장관으로 거론되고 있는 블링컨(Antony Blinken) 전 국무부 부장관도 2018년 6월 뉴욕타임스의 기고문에서 이란과의 핵합의가 북한 비핵화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와 핵회담을 해볼 만한 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할 것인지 회담을 위해 이를 유보할 것인지는 순전히 북한에 달렸다. 그럼에도, 북한이 합리적 판단을 한다면 도발보다는 회담에 기대를 거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북한 문제를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려놓고자 신형 잠수함 공개 등 회색지대(Gray zone) 성격의 도발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럴 때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을 억제하는 한편 비핵화 회담을 위한 구상을 정립하고 이를 당사국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내각이 구성되기 전에, 그리고 북한이 제8차 당대회를 하기 전에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컨센서스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포스트 113에 대비해야

딱 1주일 남았다. 미국 대선 이야기다. 미 대선은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외 정책이 변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는 미 대통령의 새로운 대외정책을 보면서 자국의 정책을 조정하게 된다. 이게 현실이다. 한국도 포스트 11ㆍ3에 대비한 정책을 준비하거나 조정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양 후보의 대외정책의 차별성과 유사성을 인식해야 한다. 트럼프 후보가 재선될 경우, 그의 정책기조는 여전히 미국 우선주의가 될 것이다. 거래적 관점의 동맹관을 유지할 것이기에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압박은 더욱 강화될 것이며 해외에서의 끝없는 전쟁을 끝내고자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에서 해외주둔 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시킬 것이다. 따라서 한미 간에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감축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재부상하게 될 것이다. 이달 중순 개최된 한미안보협의회(SCM)의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 현상유지라는 문구가 빠진 것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 대한 압박의 의미와 함께 주한미군의 역내 재배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대북한 정책에서 트럼프는 톱다운(Top-Down) 형태의 협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며 트럼프가 재선되면 이른 시일 내에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될 경우, 그 스스로 밝혔듯이 다자주의를 통한 미국의 리더십 회복(Renewing American Leadership)이 정책기조가 될 것이다. 전통적 관점의 동맹관으로 복귀하여 동맹들과 협력을 추진할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의 급격한 인상을 요구한 것은 거의 갈취적(extort) 수준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따라서 방위비 분담금은 합리적 수준에서 타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외주둔 미군 감축은 유연하게 대처할 것임을 밝혔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급격한 감축이나 조속한 감축은 당분간 자제될 것이다. 대북한 정책에서 바이든은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의 비위나 맞추었다고 비판하면서 북한의 핵 감축이 전제되어야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단계적 실무협상을 거쳐 최종 단계에서 정상끼리 합의하는 버텀업(Bottom-Up) 형태의 협상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조속한 북미정상회담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이든은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외정책 중 가장 유사성이 드러나는 분야는 대중국 정책이다. 올해 5월 미국의 대중국전략보고서가 발간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나홀로 정책이었다. 독자적인 정책은 관세 폭탄, 리쇼어링(reshoring), 하웨이 제재, 그리고 특정 중국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 지정 등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나 홀로 정책에서 자유세계와 공동으로 대응하는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 혼자서 중국의 위협을 감당하는 것이 벅차기 때문이다. 중국을 지구적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에서 제외하자는 경제적번영네트워크(EPN) 구축이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끼리의 협의체인 쿼드(QUAD) 플러스 구상 등이 이런 사례에 속한다. 바이든도 동맹 및 파트너들과 함께 중국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면 1년 안에 글로벌 민주주의 정상회담(Global Summit for Democracy)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한미동맹,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대중국 관계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두 후보의 선거 공약을 분석하고 또 분석해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 앞으로 4년의 미래가 대비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철저한 조사와 살해 명령 책임자 처벌 요구해야

지난 22일 어업 지도선 공무원이었던 A씨가 북한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고 시신도 훼손되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인질범을 무참히 살해하는 이슬람 테러조직인 IS를 연상시킬 정도로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그것도 비무장한 상태에서 기진맥진하여 표류하는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한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고무보트나 허술한 배로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불법 월경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지중해의 거센 풍랑에 의해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인접 국가들은 이들을 구조하고 나서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낸다. 이것이 인륜(人倫)이자 또 정상 국가의 모습이다. 북한은 25일 이른 오전에 청와대를 수신자로 하는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왔다. 김정은이 대단히 미안함을 전하는 내용도 있었다. 남북 관계 75년 동안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이렇게 신속하게 사과를 표명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의 통지문을 해석해 보면 사과의 진정성에 의문이 생긴다. 사건 조사 결과가 허점투성이고 변명으로 일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벌어진 사건에 대한 귀측의 정확한 이해를 바라고 있어 마치 한국 정부가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북한 조사 결과를 보면, 대한민국 민간인이 북한을 불법 침입했고 도주할 듯하여 정장의 지시하에 10여 발 사격을 가했으며 부유물은 해상에서 소각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허술한지 몇 가지만 짚어보자. 우선, 북한은 A씨를 80미터 떨어져서 신분을 확인했다고 했다. 주변이 고요한 육지에서도 80m 떨어져 서로 말을 주고받기가 어렵다. 파도소리 때문에 바로 옆에서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거리에서 탈진한 A씨에게 신분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신분이 확인될 리 만무하다. 둘째, 북한이 A씨를 발견한 것이 22일 저녁이라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오후 3시30분에 발견된 정황이 있다고 했다. 오후 3시30분이면 대낮이다. 훤하기 때문에 80m 떨어진 물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저녁이라고 했다. 저녁이면 80m 떨어진 물체도 잘 볼 수 없고 물체의 동향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발견 시간을 일부러 조작한 것이다. 셋째, 두 발의 공포탄을 쏘니 A씨가 도주할 듯했고 무언가 몸에 뒤집어쓴 정황이 보여 40~50m 거리에서 실사격을 했다는 것이다. 민간인인 A씨가 공포탄인지 실탄인지 알 길이 없고 또 아무리 기진맥진해도 총소리에 놀라 피살되지 않으려고 부유물을 뒤집어썼을 것이다. 북한군은 군함에 타고 있고 A씨는 부유물에 의지하고 있다. A씨가 살고자 도주를 한다면 몇 미터를 하겠는가. 북한 스스로도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도주할 듯한 상황이라고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넷째, 현지 해상에서 부유물을 소각했다는 것이다. A씨 사체 소각 여부는 쏙 뺐다. 한국군이 추정한 소각 소요 시간은 40분이다. 부유물 하나 소각하는 데 40분이나 걸릴 리 만무하다. 그리고 구명조끼를 입은 A씨가 바다에 가라앉았을 리도 없다. 최악에는, 살해된 A씨가 부유물과 분리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그 사체를 유기했다는 말이 된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냉소와 비판이 두려워 서둘러 통지한 북한의 책임 회피성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사건 전반을 철저히 조사하여 사실을 밝혀야 한다. 북한도 그래야 한다. 북한도 사살 명령을 내린 최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 지도자의 사과를 그나마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김열수 칼럼] 남중국해의 군사적 긴장과 한국 외교의 방향

남중국해의 파고가 심상찮다.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잇따라 군사훈련을 감행하자 미국은 정찰기와 함정 등을 보냈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자신의 영해라고 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차원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나 미국은 남중국해를 공해라고 규정하고 항행의 자유작전(FNO)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런 구도는 20여 년 전에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넓힌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이 발효되면서 이미 예견되었다. 문제는 이런 구도가 점차 구조화되고 촘촘해지면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양국의 공군 조종사들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고 양국의 함정은 41m까지 근접하는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양국의 군 최고지도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지난달 초에는 양국 국방부 장관이 90분간 전화 통화를 통해 우발적 군사충돌을 피하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전개된 현실은 달랐다. 중국은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쥐랑(巨浪JL)-2A를 남중국해로 발사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군사훈련에서 처음으로 JL-2A를 발사함으로써 미국에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미국은 이 지역에 다시 고고도정찰기인 U-2기 등 공군기와 함정을 출동시켰다. 미국의 이런 대응을 트럼프식 대중국 대응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미국의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트럼프가 중국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만약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중국 때리기는 멈출 것이라는 낙관적 희망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와 희망은 그야말로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 미국은 경계를 넘어 초조함을 느끼고 있다. 2030년이 되기 전에 중국의 GDP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도 많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 견제에 대해선 공화당과 민주당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통상 양국 간의 협력과 갈등은 동심원의 먼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문화와 스포츠를 거쳐 경제와 외교 단계를 지나 군사 단계에 이른다. 남중국해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양국 관계가 거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전방위적이다. 관세율 인상, 중국의 제4차 산업 선도 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 지정, 중국 기업의 미 증시 상장 제한, 5G를 장악할 수 있는 하웨이 퇴출, 틱톡과 위쳇의 사용 금지와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경제번연네트워크(EPN)도 구축하고자 한다.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역내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대만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면서 신장 및 티베트 지역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군사 면에서 미국은 태평양 사령부를 인도 태평양 사령부로 변경하고 이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양제츠 중국 정치국원의 방한이 없었어도 중국의 요구도 이미 나와 있다. 미국은 참여를, 중국은 불참을 요구한다. 일본은 철저히 미일 동맹을 중시한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이중 헤징전략을 추구한다. 분단된 현실과 북한의 핵보유를 고려해 본다면 중견국 한국이 일본이나 인도처럼 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외교의 원칙과 지향점을 수립하여 그 바탕 위에서 실리외교를 펼쳐 나가야 한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언명 속에 답이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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